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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까지 먹어 봤시요"
글번호  99 작성일  2007-09-07
글쓴이  청지기 조회  2075
“먹을 거라곤 눈을 까뒤집고 봐도 없어. 석탄가루까지 먹어봤시요.” 도망와 피신해 있는 친척집 방. 갑자기 주먹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고향에서 굶주리고 있는 부모형제들을 생각하며 가슴이 복받친 탓이었을까? 지난해 함경도 경성시에서 식량을 구하기 위해 탈출했다는 한 청년은 지난 1일 중국 연길시의 한 친척집 방에서 이렇게 말하며 한동안 흐느꼈다.
 
 이제 30살인 그는 강냉이는커녕 입에 풀칠 한번 제대로 못하고 허기에 시달려야 했던 북녘의 아픔을 눈물겹게 털어놨다.(그의 사투리가 워낙 심해 녹음한 것을 여러번 들어봐도 제대로 살리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표준말로 옮기기로 했다. 다른 사람도 그대로 사투리를 살리는 것이 어려울 경우 표준말로 적기로 한다.) “마을에서는 이미 배급이 끊긴 지 오래여서 먹을 것이라고는 거의 없어요. 사람들은 풀이나 쑥, 칡을 뜯어 먹으며 간신히 연명합니다. 심지어 껍질을 벗겨낸 옥수수대의 속까지 죽처럼 끓여 먹기도 합니다. 송진을 떼어 두들겨쳐서 `송진떡'을 만들어 먹기까지 합니다. 그러면 대변을 보다가 항문 파열이 일어나요. 핏덩이를 싸는 거지요. 이미 대부분의 나무들도 허기에 지친 사람들이 하도 벗겨 먹는 바람에 앙상한 꼴을 한 채 온통 하얗습니다.” 감자나 옥수수 같은 건 심은 지 채 며칠 가기도 전에 다 먹어버린다고 한다. 종자가 마를 정도다. 그래서인가. 그는 탄공에 있는 석탄 가운데 타지 않는 돌탄가루를 옥수숫가루처럼 먹기까지 했다고 했다.
 
 그가 사는 마을에서는 많을 때는 하루 3명꼴로 죽어나갔다. 먹지 못해서다. “우리 이웃에 쉰이 갓 넘은 아저씨가 하나 살았어요. 그 아저씨가 어느날 밤 갑자기 밖으로 뛰어나와 허공에 외칩디다. `야, 이 밤에 돼지고기 한번 먹어봤으면 좋겠다.' 그러곤 쓰러져 죽었습니다.” 8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꼬박 굶었기 때문이다. 체격도 상당히 좋은 사람이었다. 건강했던 사람까지 죽어 나자빠지는 것이다.
 
 먹는 것만 최악의 상황이 아니다. 그에 따르면 밤에 전기가 끊긴 지는 이미 오래다. 양초도 없다. 온통 암흑이다. 기차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다. 다니는 기차조차 다 해발라져 창문이 없다. 가다가 한번 서면 7~8시간씩 서 있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최악의 상황에서 그가 두만강을 건너 중국쪽으로 탈출한 것은 순전히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어느날 어머니가 말했다. “네 아버지 저렇게 굶주려서 오래 못 사신다. 돌아가셔도 문제다. 갈아 입힐 옷도 없다.” 그런 말을 들은 그는 “어머니, 내 없으면 중국 간 줄 아시오”라는 말만 남기고 집을 나섰다. 허술한 국경초소 경비방을 뚫고 그는 두만강 다리 아래를 헤엄쳐 건너 중국 땅에 들어왔다. 넘어올 때 그는 한끼라도 제대로 먹어보면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는 탈북 뒤 한 시골 집에 숨어 있었다. 그곳에서 사냥개 4마리가 옥수숫가루와 누룽지 등을 먹는 것을 보고 무척 울었다. 고향 아버지와 어머니는 못 먹어서 그토록 몸이 부었는데, 이곳에서는 동물들조차 저렇게 잘 먹는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난 1월말 연길에서 만난 탈출자 3명의 `증언'은 훨씬 더 충격적이다. 가장 연장자인 김씨는 평안남도 개천에서 살며 인민군 고급군관(한국군으로 소령)으로 제대했다고 했다. 그는 96년 12월30일 두만강을 건넜다고 했다.(그의 증언은 특별취재반에 합류한 김재오 간사가 들은 것이다.) “우리가 사는 개천군에서는 1개 군에서만 하루에 굶어죽는 사람이 1백명 정도 됩니다.(이때 그와 같이 강을 건넌 다른 청년 김씨는 `1백명은 더 되고 한 2백명쯤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간사가 놀라서 `하루에 1백명은 너무 많은데, 한달을 잘못 이야기한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렇지 않아요. 분명히 하루에 그렇게 많이 죽습니다.”(이 부분에 대해선 그뒤 3차례 정도 확인을 했는데, 언제나 대답은 같았다고 김 간사는 확인했다.) “어린 아이들도 기를 수 없어서 1백50원(한국돈 1천5백원) 정도에 파는 경우도 있다. 거리와 역전에는 먹을 것을 찾아서 부모없는 어린 아이들이 뼈만 앙상한 채 떠돌아다닌다. 양식 1㎏을 위해서도 살인이 벌어지고, 길에서 여자 혼자 머리 위에 양식 같아 보이는 것을 이고 가면 굶주린 사람들이 달려들어 빼앗아 달아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다. 형제끼리도 이웃끼리도 양식 한톨을 가지고 싸우기 일쑤고, 생활이 전쟁이 돼버렸다.
 
 죽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시체를 담을 관도 부족하다.”(그는 북한에서는 고추조차도 영글지 않는다며 밥상에 오른 약 4cm쯤 되는 작은 고추를 보며 눈이 동그래졌다고 김 간사는 말했다.) 그는 “금년은 작년보다 수해가 더 심하고 기근이 더 심해 인구 절반이 굶어죽을 것”이라고까지 단언했다.
 
 지난 3월말 북한에 다녀온 한 조선족 밀무역자는 어려운 북한 상황의 단면들을 이렇게 전한다.
 
 “거리에서 비틀거리는 사람이 있어 술 먹고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먹지 못해 그런 것이었다. 역에는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곳곳에 몰려 있다. 자식도 있고 해서 안타까운 마음에 먹을 것을 주면 행여 누군가에게 빼앗길까봐 가슴에 움켜쥐고 멀리 달아나버린다. 장에서 빵을 파는 어떤 사람은 굶주린 사람들이 하도 훔쳐 달아나니까 빵 위에 그물을 치고 장사를 한다. 잘사는 사람들이야 밥상에 간장이다 고추장이다를 놓고 끼니를 떼우지만, 일반사람들은 하루 한끼 채우기도 힘든 상황이다.” 북한 소식에 정통한 연변의 한 조선족은 또 공장은 원자재가 없어 가동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원산에선 2월26일과 27일 전기가 들어왔을 뿐 두달 이상 동안 밤에 전기를 못 보았다고 말한다.
 
 
 출처:http://www.durihana.com/mai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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