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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애의 시신에서 나온 비닐봉지
글번호  81 작성일  2007-09-05
글쓴이  청지기 조회  3177
(아래의 글은 평안남도 OO시에 사는 40대 남자가 지난 99년 4월 말에 쓴 글)
 
 나는 아이들을 살려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이 생겼다. 종전에 죽기만을 기다리던 방식에서 죽는 날까지아이들을 위하여 무슨 짓인들 다 해보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곰곰 누워서 생각하니 아파트 1층 집에 쥐이빨 강냉이 종자를 매달아 놓은 것을 보았던 기억이 났다. 나는기억을 더듬어 아파트 골목을 누비다가 끝내 그 집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창문을 만져보니 다행이도 유리가 아닌 비닐방막 이었다. 허기에 지쳤던 두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지만 먹이를 구했다는 안도감으로 마음은 설렛다. 나는 준비해 가지고 갔던 칼로 비닐을 째고 옥수수 종자를 움켜 쥐었다. 먹이를 눈앞에 둔 야수의 흥분으로 내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때의 쾌감을 나는 적절이 표현할 길이 없는 것이 유감이다. 간난신고 끝에 옥수수 종자를 떼내어 가지고 집으로돌아오는 나의발걸음은 비칠거리기는 했어도 가벼웠다. 이것이 내 일생에 처음으로 내집은 도적생활이었다. 성공하고보니 나도 꽤 노력하면 훔쳐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어디에 무었을 하며 손에 닿는 대로 가능성이 있는 대로 훔쳐내어 자신들을 먹여 살리는 도적무리의 한 일원이 되어 버렸다. 이날밤 우리집에서는 근간에 보기 드문 성대한 연회가 벌어졌다.
 
 '눈물은 내려오고 밥술은 올라간다' 는 격언이 틀리지 않았다. 연달은 초상으로 푹 꺼져들어 갔던 생기가 옥수수 종자 다섯 이삭이 생기면서 집안에 화기가 돌았다. 죽은 건 죽은 것이고 산 놈은 살아야 한다는 삶의 요구가 우리들을 다시 제자리에서 일나게 만들었다. 나는 옥수수 종자 한 이삭을 아이들에게 날것으로 먹도록 배려해 주었다.
 
 음식이 익는 동안 아이들의 고통을 생각해서 그렇게 하였는데 두 딸애는 그 돌덩이같은 옥수수알을 맛있게 씹어 먹었다.
 
 아이들은 아버지와 함께 살아남은 긍지로 오랫만에 웃고 떠들었다. 이때부터 우리 세식구는 빌어도 먹고 훔쳐도 먹어 보고 땅에서 주워도 먹어보면서 신성천-고원, 원산-단천 등지로 방랑하면서 인간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며 인민이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 가를 직접 목격하면서 파리목숨 같은 인생을 유지 하였다.
 
 이 길에 고원에서 맏딸이 숨을 거두었고 그후 순천역의 쓰레기장에서 막내딸의 시체가 발견되어 나를 질식케 하였다. 막내딸은 마지막까지 나의 곁에남아 아버지께 충직했던 나의 혁명동지 였으며 이 세상에서 나를 고아로 만들어 버린 유일한 마지막 혈육이었다.
 
 (이미 아내와 아들은 아사로 94년도에 죽었음)그의 시체를 집에 가져가 헤쳐보니 가슴속에는 깨끗한 비닐봉지에 정성들여 골라놓은 배껍질과 배송치, 명태껍질 돼지뼈 한개가 들어 있었다. 아마도 나를 만나면 함께 먹으려고 그렇게 먹고 싶은 것도 참고 건사했을 딸애를 생각하며 나는 울고 또 울었다. 나는 양지바른 산기슭에 딸애를 안장하고 그 비닐봉지를 입가에 얹어 주었다.
 
 그때 막내딸 나이가 12세였다.
 
 
 (본 글은 '월간조선' 에서 실린 글로서 일부 생략되었음.-99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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