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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6일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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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이순옥 증언> 꼬리 없는 짐승들의 눈빛(6) - 생체실험의 현장
글번호  163 작성일  2008-03-12
글쓴이  청지기 조회  11758
<증언> 꼬리 없는 짐승들의 눈빛
 
 
 
 6) 생체실험의 현장
 
 
 <무덤까지 갖고 가라>
 
 어느 날부터는 교화소에 교화 7국 사람들이 아닌 낯선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복 차림새로 보아 교화소 구내로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들도 경계하는 눈치였다.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간부 안전원들 속에 죄수가 앉아 있는 것이 그들로서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왜 사복한 ‘연구사 동무들’이
 교화소 구내에 들어왔나? 불길한 예감>
 
 그날 아침은 교화소장, 보위부장, 교화부소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모두 참가한 가운데 소장이 그 사람들의 일에 잘 협조하여야 한다고 짧게 말하였다. 생산국에서 내려온 사람들과는 다르게 그날 아침 분위기는 대단히 긴장하고 심지어는 무거운 압박감을 주는 듯 하였다. 감옥살이에서 터득한 눈치로 대충 분위기를 짐작하였다.
 
 
 그러나 사복을 한 사람들이 왜 여기까지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소장은 그 사람들을 “연구사 동무들”이라고 불렀다.
 
 
 외부에서 교화소 구내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들은 사회 안전부의 교화국, 생산국 등 간부들뿐이다. 중앙당 간부들이라고 하여도 들어올 수 없게 철저히 폐쇄된 구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사들이 들어왔다는 점이 이상하였다.
 연구사들이 교화소에서 무엇을 연구한단 말인가.
 알고 싶어도 물어볼 수 없는 죄수이기 때문에 눈치만 보았다.
 혹시 무서운 악몽을 몰고 올 사람들이 아닌지...
 두 번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될 터인데...
 
 
 그 당시 악몽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교화소에 연구사들이 처음으로 들어온 시기가 1988년 5월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내가 교화소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그때는 내가 종합 계산 공을 맡기 전이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시간이라고 하여도 죄수들의 식사는 간단하다. 고작 옥수수 빵 한 덩어리에 소금국 한 국자가 한끼 식사의 전부다. 그것도 작업장에서 식사를 하기 때문에 30분을 초과하지 않는다.
 
 
 그날은 웬 일인지 50명 정도 되는 여자 죄수들만 불려나와 강당으로 쓰는 건물 안에 몰아넣었다.
 나도 그 대열에 같이 불려나갔다. 강당에 들어서니 한 가운데에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파란 봄배추가 담긴 플라스틱 통이 놓여있었다. 여죄수들은 모두 오랜만에 배추를 구경하는 셈이다.
 
 <“네년은 온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배추국은 못 먹는 다”>
 
 저도 모르게 입안에서 군침이 돌았고, 당장 먹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잡혀 온지도 벌써 2년이 넘었다. 먹음직스러운 배추시래기를 보니 먹고 싶은 충동을 참기 힘들었다.
 
 
 주위에 교도관은 없고 경비대원들만 지켜서 있었다. 웬일인지 경비대원들이 화생방 훈련을 할때 입는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거기에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배추시래기에만 시선이 집중되었다.
 
 
 경비대원 한 명이 나와서 “너희들은 모범적으로 일을 잘하고 교화소 준칙(규범)을 잘 지켰기 때문에 소장동지의 지시로 모범 중채를 먹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나에게는 배추를 먹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나를 불러낸 것은 중채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죄수들 앞에 배추시래기를 골고루 배분하여 놓아주라고 불러냈다는 것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먹고 싶은 배추시래기를 한줄기도 먹지 못하고 그저 놓아만 주었다. 배추시래기라야 한 줄기씩이니 훔쳐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것을 경비대원이 놓아주기 전에 나한테 못을 박아 말했다.
 “네년은 온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중채는 없다. 50개를 세어왔으니 훔쳐먹을 생각을 하지 말아라.”
 그리고는 옆에서 지켜본다. 나는 그때 내 자신이 죽도록 싫었다. 순간이나마 비굴하게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자체가 너무나 분하였던 것이다.
 
 <배추 시래기 국 먹은 사람들 피 토하고 죽어
 사람 죽는다, 소리 지르자 “네 이년 죽고 싶어 환장했냐?”」
 
 그런데 어쩌면 나 하나만 안준단 말인가. 다른 사람들이 먹는 걸 구경시키려면 차라리 불러내지나 말지...
 
 
 잠시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매 사람에게 한줄기씩 배추시래기를 놓아주었다. 여자죄수들은 오랜만에 먹어보는 배추시래기를 받아 들자 맛있게 먹어치웠다.
 
 
 잠시 후 강당 안은 온통 수라장으로 변했다.
 마지막 사람까지 놓아주고 뒤를 돌아보았다. 처참한 광경에 한동안 넋을 잃었고 그 다음은 기억도 잘 안 난다.
 
 
 좀 전 까지 배추시래기를 맛있게 먹었던 죄수들이 배를 끌어 잡고 죽는다고 소리 지르며 입으로는 검붉은 피를 콱콱 토해냈다. 홑 작업복 바지 밑으로도 검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너무나 짧은 시간에 강당은 피바다로 변했다. 입으로, 코로, 사람의 몸에서 내장이 다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 광경을 본 나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사람이 죽는다고, 살려 달라고 소리 소리를 질렀다.
 
 
 먼발치에서 지키고 있는 경비대원이 달려와 나를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눈에서 불꽃이 번쩍 튀였다.
 “이년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나?! 여기가 어디라고 소리를 질러?! 아가리에 자갈을 물려 검정콩알을 먹어야갔어?! 이년아! 아가리를 다물어라.”
 
 
 경비대원 한 명이 급히 달려와 나를 데리고 공장으로 갔다. 돌아와서도 너무나 무서워 도무지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사람 살리라” 했다고 ‘칠성 방’이라는 독방에 쳐넣어>
 
 사방대(안전원들이 작업장을 감시하는 곳)에서 교도관이 나를 불렀다. 떨리는 다리로 간신히 달려갔다. 관리지도원이 수도 칸에 가서 손을 비누로 깨끗이 씻고 오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교화소에서 보고 들은 것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한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하였다.
 
 
 
 (독 감방으로)
 
 
 나는 그날 소리를 지른 일로 하여 교화소장에게 불리어 나갔다. 그는 전후 사연도 묻지 않고 교화소 준칙(규범)에는 죄수가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고 물었다. 나는 알고 있다고 대답을 하였다. 그날 즉석에서 독방으로 끌려갔다. 교화소에서 말을 하면 처벌을 받는다는 것은 알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말 한마디에 독방까지 넣는다는 것은 미처 몰랐다.
 
 
 그렇게 되어 또다시 ‘칠성 방’이라고 부르는 독방 구경을 하게 되었다. 그곳은 교화소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가로세로 너비 0.6m, 높이 1.1m벽에는 뾰죽한 가시, 바닥에 변기구멍>
 
 독방은 가로 세로 너비 0.6m, 높이 1.1m 크기의 콘크리트 감방이다. 앞면에 있는 쇠창살로 된 문으로 기어들어 가게 되었다. 독방의 세면은 뾰죽한 가시처럼 벽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아무리 허리가 아프고 기대고 싶어도 기댈 수도 없게 만들어졌다. 바닥에는 자그마한 변기구멍이 뚫려져 있다.
 
 
 독방에 넣을 때 홑옷을 입혔기 때문에 차디찬 시멘트 바닥과 밑에 뚫려진 변기구멍으로 찬바람이 올라와 참으로 고통스럽다. 깔고 앉게 되어 있는 변기구멍에서 나는 역한 냄새는 말할 여지도 없거니와 봄이라 벌써 구더기가 줄을 지어 마치 나 한 사람을 다 파먹을 기세로 밀려 올라왔다.
 
 
 그런 고통 속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을 하여도 내 머리를 가지고는 도저히 상상이 안되었다. 입과 코로 검붉은 피를 토하고 항문으로 피를 쏟는 현장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왜 그 사람들만 불러내어 먹였을까.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죄수들에게 주었을까. 그런 끔찍스러운 일을 인간이라면 감히 저지를 수가 있을까...
 
 
 아무리 이리 저리 생각을 굴려 보아도 나로서는 결론을 짓지 못했다.
 일 주일 만에 독 감방에서 나왔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른 것이 일주일동안 독방처벌을 받은 이유란다. 하지만 죽는 사람들의 현장을 목격한 나의 입을 영원히 막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알 리가 없었다.
 
 
 감옥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자 생활에서 큰 충격과 공포를 가지고 다시 한 번 무서운 살얼음판을 걸어가게 되었다.
 
 
 독방에서 나온 지 며칠 후부터 고열이 나기 시작하였다. 고열로 눈을 뜨면 온 세상이 다 불붙는 것 같았다. 갈증이 나고 목구멍이 부어 올라오고 입술에 물집이 생겼다. 손가락 사이에 물집이 생겨 손등이 부었다. 근질거려 긁어 놓은 자리가 터져 손가락이 화농을 하였다.
 
 <구더기 끓는 독방에서 일 주일 만에
 나오자 손과 입술에 물집생기고 고열로 떨어>
 
 일을 하지 못하고 작업장 구석에서 고열로 떨고 손과 입술에 온통 물집이 생긴 것을 본 반장이 교도관에게 보고하였다.
 
 
 어느 날 사복을 입은 사람이 들어와 나를 세워 놓고 이리 저리 살펴보았다. 손가락에 생긴 상처가 며칠이나 되었느냐고 물었다. 사복 입은 사람은 “네가 강당에서 배추를 놓아줄 때 손을 입으로 가져갔는가?”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 사람은 며칠간 고열을 이겨내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내가 손을 잘 씻지 않아 그렇게 되었다고 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영문도 모른 채 심한 고열에 시달린 후 다행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몸서리치는 일들이 기억에서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오늘 또 사복 쟁이가 나타났으니 그들의 말과 행동에만 신경이 갔다. 정작 내가 맡은 일에는 건성으로 덤벼 치며 허둥거리고 있었다.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평소의 나답지 않게 당황해 하는 모습을 눈여겨본 사람은 역시 재정부장이었다.
 
 
 “순옥이 무슨 잘못한 일 있어? 왜 진정을 못하고 하루 종일 벌벌 떨고 있는 거냐? 너한테는 상관없는 일이니 신경 꺼도 돼! 네 일이나 잘하면 그만이다.”
 무슨 뜻에서 하는 말인지 재정부장이 한마디 하였다.
 
 <3년째 되는 섣달 그믐날 아들 얼굴 눈에 어른거려>
 
 그렇게 며칠을 꼼짝하지 않고 재정부장이 지키고 있었기에 연말 결산 보고서를 끝낼 수 있었다.
 그날은 오랜만에 재정부장이 “순옥이는 감옥에 두기는 아깝다. 너는 내가 아무리 지켜보아도 감옥에 올 사람이 아닌데 재수 없이 걸려 이 모양이 되었지. 그래도 집으로 살아 돌아가겠다는 희망을 잃지 말아라. 그래야 좋은 날을 볼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 말을 들으니 집생각, 아들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설날에 끌려간 사람들>
 
 다음날은 설날이다. 어느 때보다도 아들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이제 새벽이니 내가 교화소에 잡혀 온지도 벌써 3년째 되는 1989년 정월 초하루인 것이다. 한 해를 별 사고없이 감옥생활을 할 수 있었고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재정부장을 따라 감방으로 들어갔다. 공장 죄수들은 연말 마지막 작업을 일찍 마치고 입방하였다. 나는 혼자 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저녁에는 당직 관리지도원들이 감방으로 데리고 가 감방안전원에게 인계하게 되어 있다.
 
 
 설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5시 정각에 기상을 하였다.
 오늘은 모처럼 휴일이다. 설날에는 교도관들이 설 명절 휴식을 하기 때문에 죄수들도 그날만은 감방에서 쉰다.
 
 
 갑자기 투박한 평안도 사투리로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종합계산공 어느 감방이가? 나와! 빨리 나와야 되갔어. 빨리 나올 준비해!”
 
 
 감방 관리지도원의 목소리다. 나는 감시창에 대고 “피복 감방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감방안전원이 급히 다가와 문을 열었다. 오늘도 창고에서 물자를 출고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무심히 나갔다. 그런데 물자 출고가 아닌 죄수 명단을 주면서 감방마다 불러내라고 하였다.
 
 <쉬는 날 누울 수도 말할 수도 없어
  줄 맞추어 하루 종일 꿇어앉아야>
 
 여러 감방에서 불러낸 죄수들은 30명이었다. 그들은 오랜만에 차려진 하루의 휴식을 못 쉬게 된 아쉬운 표정으로 불려나왔다.
 
 
 감방에서는 쉬는 날이라고 하여도 마음대로 누울 수도 없고 서로 말도 할 수 없다. 줄을 맞추어 하루 종일 꿇어앉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쉬는 날 또한 고역이다. 죄수들은 항상 고통 속에서 수령에게 죄지은 몸이지만 죽이지 않고 살려준 것을 고맙게 생각하라는 뜻에서 한시도 편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간에 잠간씩 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이다.
 
 
 감방안전원은 불려나온 죄수들을 이미 대기하고 있던 경비대원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나도 경비대원을 따라 가라고 하였다. 나는 사실 쉬는 날이라고 하여도 감방에 있는 것이 싫었다. 끊임없이 일을 해야만 집생각 할 짬이 없고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설날 하루를 쉬는 것이 싫었는데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나왔다.
 
 <창문 밖 능선으로 죄수들이 걸어 올라가는데
  옆으로는 방독면 쓴 사람들이 따라가>
 
 여자공장 입구에는 이미 교화과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창고에서 방독면 10개를 내어 경비 대원에게 주라고 하였다. 그의 지시대로 창고에서 방독면 10개를 출고해 주었다.
 
 
 그날 직일관은 교화과장이었다. 그에게 어제저녁 결산 보고서를 끝내느라고 다음날 생산 지령서를 작성해놓지 못하고 입방하였다고 말하고, 감방에서 나온 김에 오늘 마저 끝내겠다고 말했다. 교화과장도 지령서가 안 나가면 공장에서 일을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순순히 일을 하라고 하였다.
 
 
 오랜만에 조용히 혼자 일을 할 수가 있어 오늘 많은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사무실로 올가갔다. 그러나 내 생각은 곧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사무실에는 이미 교화소장 이하 간부들과 며칠 전에 보였던 사복 입은 사람 몇 명이 와 있었다. 그 자리에는 재정부장도 있었다. 재정부장은 그렇지 않아도 너를 불러낼 참이었는데 마침 나왔으니 잘 되었다고 하였다. 그날 밀린 일들을 많이 처리했다.
 
 
 설날인데도 간부들의 표정은 어두웠고, 대화도 크게 하지 않고 묵묵히 담배만을 피워댄다. 평소 같으면 나한테 이것저것 시키기 때문에 일하는데 방해가 많았지만 그날만은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속으로 “인간 독종들이 다 모였지만 오늘이 설날이라 잔소리를 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다행으로 여겼다.
 
 
 오전 10시경인 것 같다. 앉아있던 간부들이 일어났다. 하나같이 맞은편 산등성이로 시선을 집중했다.
 나도 무심결에 머리를 들었다. 내 책상은 출입문 반대쪽인 능선을 마주보고 앉게 되어있다. 내가 앉아있는 사무실은 교화소 건물 3층에 있고 정면으로 보이는 능선은 거리가 가까워 잘 보인다. 사무실 창문 쪽으로 내다보이는 능선으로 아침에 불려나갔던 죄수들이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하얀 눈밭으로 검은 점들이 줄을 서서 움직이고 있었다. 옆으로는 방독면을 쓴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방독면 쓴 사람들이 뭔가 작은 물체를 죄수들
 쪽으로 던지자 연기가 오르더니 움직이던 죄수들이 눈밭에 퍽퍽 쓰러졌다>
 
 죄수들이 독가스 훈련을 하지는 않을 텐데... 방독면을 쓴 사람들이 무엇인지 작은 물체를 죄수들이 지나가는 쪽으로 던졌다. 순간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금시 사라져 버렸다.
 
 
 움직이던 죄수들이 눈밭에 퍽퍽 쓰러진다. 뒤에 서 있던 간부들이 일어섰다. 나도 벌떡 일어섰다. 고요 속에 몇 초가 흘렀다.
 
 
 갑자기 사무실 간부들 속에 있던 사복 쟁이 몇 명이 환성을 질렀다. “성공이다! 성공이다!”
 무엇이 성공인지 좋아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소장이 “연구사 동무들이 큰일을 하였습니다. 수고 하였습니다”고 연거푸 격려해 주었다.
 그제야 그들이 연구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우리가 기대한 것보다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라며 대단히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취장에 죄수들의 식사통계를 내야 한다. 이미 내 책상에는 불려나간 죄수들의 명단이 놓여있었다. 교화과장은 그들을 사망으로 삭제하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나도 그제서야 정신이 든 것 같았다. 30명의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다니... 사람들이 죽는 현장을 보면서 “성공”이라고 환성을 질러대다니...
 
 <사람들이 죽는 현장보고
 ‘성공’이라고 환성질러___함흥과학원 생화학무기 연구사들>
 
 내가 지금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골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전신에 힘이 쭉 빠지는 것 같다. 무엇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해마다 한두 번씩 비슷한 실험들이 반복되었다. 그 후 사복 입은 그들이 다름 아닌 “함흥과학원” 생화학무기 연구사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화소 보위부장의 말은 충격 그 자체였다.
 
 
 “‘생화학무기는 적을 죽이기 위해서 실전에 사용할 무기인데 동물에게 실험을 하는 것은 실효성을 검증하는데 정확치 않으므로 정치범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도 좋습니다.’라는 연구소에 내려진 수령님의 교시(지시)에 의해 죄수들을 실험대상으로 하니 교화소 간부들은 연구사들의 요구를 무조건 잘 들어주어야 한다”고...
 
 
 
 (죄수는 각종 실험대상)
 
 내가 수감생활을 하는 1988년부터 1992년까지 해마다 1월부터 2월사이에 실험을 하였다. 1993년부터는 분연구소가 내려와 있었다. 그러니 살려서 내보낼 수 없는 악질 반동들, 수령님과 당을 따르고 믿을 대신 하늘을 믿는다는 “정신병자”들은 제일 먼저 실험대상으로 죽였다.
 
 
 한번 끌어낼 때 적게는 30명, 많게는 100명이 될 때도 있었다. 실험 대상은 대체로 남자죄수와 여자죄수를 같은 비율로 하였다. 잡혀 온지 얼마 되지 않은 교화소에서는 비교적 건강이 양호한 사람들이 그렇게 이름도, 흔적도 없이 비밀로 영원히 매장되었다.
 
 <의대 졸업 후 軍醫 배치되면 현장실습위해 교화소로>
 
 교화소 밖에는 안전원들과 경비대원들, 가족들을 위한 병원이 있다. 병원에는 평양 사회안전부 소속병원 의사들이 내려와 있다. 군의들은 외과수술을 빨리 하는 것으로 최고의 의술을 인정받는다고 하였다. 군인들이 훈련 중 사고가 나면 빨리 수술을 해야 하므로 군의로서의 외과수술을 배우기 위해 종종 교화소를 찾는다고 하였다.
 
 
 군의들이 현장에서 수술을 할 기회가 매일 넘쳐 나게 사고가 많은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의학대학을 졸업하고 군의로 처음 배치를 받으면 현장실습을 위해 교화소에 데리고 온다는 것이다.
 
 
 어린 군의들에게는 수술에 앞서 사전 교육을 시킨다.
 
 
 첫째, 수술대 위에 놓은 것을 사람으로 생각을 하지 말라.
 둘째, 수술대 위에 놓은 것은 동물이므로 손이 떨려서는 안 된다.
 셋째, 수술대 위에 놓은 것은 적이다. 너를 죽이지 않으면 네가 나를 죽일 것이다.
 
 <군의관 3대 수칙.
  수술대 위의 사람은 사람 아니다. 그것은 동물이다. 그것은 적이다.>
 
 군의들 속에 이런 3대원칙을 지키도록 교육을 시킨다는 것이다. 젊은 혈기의 군의들이 죄수들을 적으로, 동물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인간으로서, 의사로서의 털끝만큼의 인정사정을 볼 여유조차 없이 철저한 교육을 시키고 수술 칼을 잡게 한다.
 
 
 사고가 많은 탄광, 기계공장들에서 죄수들이 실려 오면 마치나 기다렸다는 듯 몇 명씩 떼로 달려든다. 팔, 다리가 부러진 사람을 놓고 마취도 없이 그대로 수술을 한다. 사정없이 나무토막을 잘라내듯이 뭉텅 잘라버리기가 일수인 것이다. 살려달라고, 죽는다고 소리를 지르면 입에 솜뭉치를 틀어막고 짐승을 잡듯이 해치우고는 돌아서 나오면서 마치나 개를 잡은 포수마냥 우쭐대는 모습을 거의 매일 같이 볼 수 있다.
 
 
 군의들을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너희는 사람을 살리는 의사이기 전에 사람을 잡아가는 아귀들이구나. 천벌을 받을 놈들이다. 제발 하늘이 두려운 줄 알아라.”고 고함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아내는 때도 많았다.
 
 
 나는 교화소 죄수들의 의무실로 매일 간다. 병방 죄수들의 식사통계를 받으려 가는 것이다. 병방 의무실 한쪽에 붙은 작은 수술실 앞을 자주 지나다니게 된다. 침침한 작은 방에서 새어나오는 애처로운 비명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고 귀청을 째는 듯한 비명소리에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래어 귀를 손으로 막고 허둥거리며 도망을 치듯 달아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수술실 앞을 지나칠 때 비명소리를 들은 날은 하루 종일 머리가 어질 거리고 속이 울렁거려 당장 다 토해버리고 싶은 고통을 당하곤 하였다.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아침 첫 시간에 병방으로 다녀온다.
 
 
 병방에 갇힌 죄수들이 창백한 얼굴들을 하고, 손목이 잘려 나가고, 팔다리가 잘려진 채 그래도 어떻게 하던 살아남겠다고 몸부림을 치는 모습을 대할 때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끈질긴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환경이 어려울수록 생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해진다는 것을 보았다.
 
 <구천지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밝힐 때가
 됐다2300만 영혼 구원위해 한민족이 나서야>
 
 그런 처지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의 심정을 일만 분의 일도 이해가 안 갈 것이다. 그들은 죽는 것이 편하지만 억울하게 죽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기억도 안 할 것이다. 아니 기억 못할 것이다.
 
 
 시체가 무더기로 화장되는가 하면, 탄광 폐갱에 매장되어 있다는 것을 하늘만이 지켜보시고 계실 것이 아닌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많은 죄수들의 불쌍한 영혼들이 이 세상에 한을 품은 채 허공에 떠돌고 있을 것이다. 구천 지옥에서 이런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밝힐 때가 되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이 한이 속히 풀리도록 간절히 기도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아니 제대로 믿는다면 북한의 2,300만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한민족인 우리가 나서야 될 때라고 생각한다.
 
 
 
 출처 : 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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