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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7일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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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북한의 인권문제』 (3)
글번호  136 작성일  2007-11-03
글쓴이  청지기 조회  10835
2. 북한에서의 인권유린 실태
 
 지금 북한은 <인권이전>의 사회이다. 수령절대주의 사회에서 인권이란 있을 수 없다. 수령만이 절대적인 인권을 가지며 다른 모든 사람들은 수령의 부속물이다. 사람들의 운명과 인권이 모든 개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수령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다. 수령에게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것이 <최고의 도덕>으로 되고 있는 사회에서 수령절대주의 독재를 반대할 수 있는 인권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는가. 수령과 그의 대리인들이 아무리 인권을 유린하여도 그것은 최고의 도덕으로 평가된다. 어느 선진대국에서는 대통령의 성추문 문제가 국회에서까지 크게 논의되었지만 북한에서는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것이 최고의 도덕으로 되고 있기 때문에 수령의 성추문 문제라든가 수령과 그의 대리인들의 인권유린 문제는 제기될 수 없다.
 
 (1) 경제생활에서의 인권유린
 
 사람들은 보통 <인권>이라고 할 때 언론의 자유가 있는가,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보장되어 있는가 등 주로 사회정치생활에서의 평등한 권리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인권이란 <해당사회의 공동의 주인으로서 살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삶의 권리보다 더 중요한 인간의 권리란 있을 수 없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먹고 입고 쓰고 살 수 있는 조건과 일할 수 있는 조건이 보장되어야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삶의 조건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야말로 가장 초보적인 인권이라고 볼 수 있다.
 
 ① 북한 정권은 주민들에게 초보적인 삶의 조건도 보장해주지 않고 대량적으로 굶겨 죽이고 있다.
 
 북한에서 모든 생산수단은 국가가 소유하고 있다. 협동농장에서 토지는 <협동적 소유>라고 하지만 사실상 당의 소유로 되고 있으며 당의 소유는 곧 국가의 소유로 되고 있다. 협동농장원에게는 토지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자그마한 권리도 없다. 협동농장의 토지를 마음대로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은 수령의 대리인인 리당비서이다. 결국 협동농장의 토지도 수령의 소유로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통치자들은 말로는 모든 생산수단이 인민의 소유라고 한다. 그렇다면 모든 생산수단을 인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권리를 가져야 하며 생산물을 처분할 권리를 가져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한 권리는 인민들은 못 가지고 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생산수단을 모두 독점하고 있으면서도 인민들에게 생활조건은 보장해 주지 않고 있다.
 
 ② 무엇보다도 큰 인권유린은 수백만 근로자들을 굶겨 죽이고 있는 것이다.
 
 토지가 개인의 소유로 되고 있는 조건에서는 자연재해라든가 또 개별적 농민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 농사가 잘 안되어 굶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 이것은 별 문제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국가는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하물며 북한에서와 같이 공장과 농장을 모두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조건에서 수백만 인민을 굶어죽게 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정권을 독점하고 모든 재부를 독점하고 있는 수령이 책임지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북한의 아사자 수에 대하여 의견이 구구하다.
 
 그것은 북한이 아사자 수를 비밀에 붙이고 기아상태를 조사하는 것을 그 누구에게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것은 북한에 들어가 실정을 조사해 보지도 않고 북한의 기아상태에 대하여 이러구저러구 자기의 주관적 견해를 내놓고 있는 소위 <권위 있는> 외국 인사들의 주장이다. 양심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똑똑히 알아보지도 않고 남의 나라 인민이 굶어 죽고 있는 중대한 문제에 대하여 아는 체 하면서 함부로 북한의 기아상태는 대단한 것이 아니라느니 뭐니 하면서 무책임한 발언을 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한심한 것은 자기 동포들이 부르짖는 아우성 소리는 귀담아 듣지 않고 외국의 <권위 있는 인사>들의 말만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똑똑히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생사에 관한 문제에 대해 경솔히 발언하는 것보다 더 비도덕적인 행동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북한에서 그저 산 것이 아니라 최고 참모부에서 다년간 사업하였으며 가장 정확한 아사자 통계를 가지고 왔다. 우리가 가지고 온 통계는 뜬소문이 아니라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하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책임간부로부터 받은 재료이다.
 
 당중앙위원회 군수공업담당비서의 말에 의하면 1995년에 군수공장 노동자들에게 9개월 이상 식량배급을 주지 않게 되자 절반이상이 직장에 나오지 못하고 집에 누워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군수공장들에게 기술수준이 높아 <보배>라고 불리던 고급기술공만 2천명이 아사하였다고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처음에 굶어서 몸이 부은 것을 비상대책을 세워 고쳐주었는데 다시 굶어서 몸이 붓게 되자 어떤 방법으로도 살릴 수 없었다고 한다.
 
 1996년 11월에 중앙당 비서들이 모여 전국의 양곡생산량을 따져보니 210만 톤밖에 안되었다. 그래서 식량사정이 너무 걱정되어 아사자관계와 식량관계를 장악하고 있는 조직지도부 책임간부에게 기아상태를 물어 본 것이다. 이때가 11월 중순이었다.
 
 조직지도부 책임간부의 말에 의하면 1995년에 당원 5만 명을 포함하여 50만 명 이상이 아사하였으며 1996년에는 11월 중순 현재 벌써 100만 명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1996년의 양곡생산은 210만 톤밖에 안 된다고 하면서 이대로 나간다면 1997년에는 200만 명이 아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조직지도부 책임일군이 중앙당 비서에게 무책임한 말을 할 수도 없고 할 리도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1995년부터 96년 말까지 150만 명 이상이 굶어죽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자료이다. 1997년과 98년 사정은 똑똑히 알 수 없으나 식량사정이 크게 개선된 것 같지 않기 때문에 적어도 매년 100만명정도 굶어죽은 것으로 추측된다. 1998년초에 중국신화사통신이 북한의 농업위원회 간부가 제공한 자료라고 하며 보도한데 의하면 97년 말까지 280만 명이 아사하였다고 한다. 1996년 말까지 150만 명 이상이 아사한 것이 틀림없는 것으로 보면 97년에는 130만 명이 아사하여 도합 280만 명이라는 아사자 숫자가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1995년부터 1996년 말까지 아사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하였지 사태를 과장하여 말한 일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5명중 1명이 굶어 죽는 사회가 어떻게 지탱될 수 있는가?"라고 하면서 우리의 주장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공공연히 부정하고 나선다. 잘 모르겠으면 찾아와 물어보아야 할 것 아닌가. 자기가 잘 이해할 수 없다고 하여 남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얼마나 교만한 행동인가.
 
 우리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과연 북한의 인구가 얼마나 되고, 매년 자연증가율이 얼마나 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북한 통치자들은 인구수를 비밀에 붙이고 허위숫자를 공표하며 그나마 거기서 군인수를 빼놓는다. 북한의 인구는 보통 2천300만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군인수는 극비에 붙이고 있다. 2천300만에 군인수를 합쳐야 북한의 인구수가 나오게 된다. 설사 그 사람이 주장하는 것처럼 북한의 인구를 2천 250만이라고 가정하여도 1년에 100만 명이 굶어 죽는다고 부면 22.5:1이 굶어죽는 것으로 되지 어째서 5:1로 된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 <존경받는> 사람이 어째서 북한의 기아상태에 대한 우리들의 우려에 대하여 그토록 <우려>를 표시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북한의 기아상태가 세상에 공개되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은 북한 통치자들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1996년에 도처에서 사람의 고기를 판다는 말을 들었고 평양에서 있은 한 건은 직접 확인하였다. 그러나 남한에 와서 너무 창피하여 처음에는 이 이야기만은 꺼내지 않았다. 그 후 많은 탈북자들이 직접 보고 체험한 것을 그대로 말하였으며 그와 같은 비참한 자료들이 잡지 <월간조선>에 적지 않게 소개되었다.
 
 사람의 고기를 판다는 이야기는 해방전 일제식민지 통치시기에도 들어 본 적이 없으며 6.25전쟁시기에도 들어 본 적이 없다. 사람의 고기를 팔고 먹을 지경이 되었으니 북한의 식량사정이 얼마나 심각한가는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국경경비대의 총에 맞아 죽을 각오를 하면서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 탈북하는 사람이 10여만 명을 헤아리게 되었겠는가.
 
 그러면 누가 수백만 인민을 굶어죽게 하고 사람의 고기까지 먹게 만들었는가, 누가 정든 고향을 등지고 얻어먹기 위하여 10여만 명이 떼를 지어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는 모험을 감행하게 하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만도 여기지 않는 북한 통치집단이며 모든 권력과 재력을 독차지하고 있는 <위대한 장군>인 김정일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의식적으로 부정하는 사람들은 언제인가는 반드시 김정일과 함께 역사 앞에 응당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③ 북한 정권은 수많은 인민들을 굶겨 죽일 뿐 아니라 살길을 찾아가는 자유마저 빼앗고 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인민들을 응당 먹여 살려야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들이 살길을 찾아가는 것을 막지 말아야 하며 인민들 스스로 살길을 모색할 수 있는 자유라고 보장해 주어야 할 것이다. 또 모든 재부를 다 독점하고 인민들에게 먹을 양곡마저 주지 않는 조건에서 북한 통치자들은 인민들에게 충성을 요구할 권리도 없고 체면도 없다.
 
 그러나 북한 통치자들은 인민들이 자체의 힘으로 살길을 개척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굶주린 인민들에게 계속 힘들고 고된 역사(役事)를 강요하고 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벌어먹기 위하여 중국동북지방에 조선족 친척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총칼로 막고 있으며 사선을 넘어 요행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 중국동북지방에 까지 도착하여 헤매는 사람들을 자기들의 보위부요원들을 파견하여 마치 도망친 노예를 잡아가는 것처럼 붙잡아다가 야수적으로 처벌하고 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파렴치하게 국제사회에 손을 내밀고 비럭질을 하면서도 북한 인민들에게는 빌어먹을 자유마저 주지 않는 것이다.
 
 최근에는 평양거리에 빌어먹는 사람들이 나 다니는 것을 단속하는 한편 생활고에 시달리는 시민들을 무더기로 농촌에 추방하는 소동까지 벌이고 있다.
 
 원래 김정일은 <혁명의 수도> 평양에 장애인이 있는 것은 수치라고 하면서 모든 장애인들을 다 산간오지로 추방하였다. 이제 와서는 자기가 경제를 망치고 인민들을 빌어먹게 만들어 놓고는 그들을 보기 싫다고 농촌으로 추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성분이 좋고 김정일에게 충실하다고 하여 평양시에 살 수 있도록 우대를 받는 사람들의 생활은 편안한가? 그들 가운데서 극소수 특권층을 제외하고는 모두 굶주리고 있으며 고생이 막심하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시신을 영구보존하기 위하여 <금수산 기념궁전>을 꾸리는데 막대한 자금을 탕진하였을 뿐아니라 <충성의 노력동원>의 명목 밑에 굶주린 주민들을 강제로 일을 시켰으며 김일성의 영생탑 건설과 김일성·김정일의 업적을 빛내기 위한 우상화 건설에 계속 주민들을 동원하고 있다.
 
 우리는 1996년에 평양만수대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는 김일성동상에 매달 8일마다 꽃다발을 올리기 위하여(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7월 8일을 기념하여 매달 8일마다 꽃다발을 올린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평양시민들의 고생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절실히 느꼈다. 차를 이용할 수 있는 간부들은 몇 사람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줄지어 먼길을 걸어 왔다가 걸어서 돌아간다. 겨울에 꽃다발(생화)을 만드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현상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평양시가 누루를 위하여 존재하며 평양시민들은 누구를 위하여 살고 있는가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5년 말에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공장에 배치되어 당비서 수업(중앙당 간부들을 6개월씩 지방공장 당비서로 배치하여 당비서로서 현실을 체험시키는 간부단련 방법의 하나)을 하다가 겨울준비를 하기 위하여 돌아온 부부장이 찾아와 사업정형과 지방의 생활형편을 보고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공장 노동자들은 조개잡이도 하고 물고기도 좀 잡아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있지만 굶주린 유랑민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 곤란하다고 하면서 조개잡이 나갔다가 희생되는 사람도 많다고 하였다. 그 지방 주민들은 바닷가에 나가서 조개를 잡아 그것을 중국 어부들이 가져오는 밀가루와 바꾸고 있는데 굶주린 인민들이 모두 조개잡이에 나가다 보니 조개의 씨가 말라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조개를 잡기 위해서는 썰물이 나간 해변가 끝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되는데 여념 없이 조개를 잡다보면 밀물이 들어오는 것을 피하지 못하여 한꺼번에 300여명이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그는 또한 굶주린 부모들이 자기들은 굶어 죽을 각오를 하고 아이들만이라도 살리기 위하여 나가서 빌어먹으라고 그들을 집에서 내보낸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 거지가 많이 몰려다니며 특히 지방의 역전에는 빌어먹는 아이들이 우굴우굴한데 그 중 적지 않은 아이들이 굶어죽는다고 하였다.
 
 사태가 이렇게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우리 중앙당비서들에게 풀과 고기를 바꿀 데 대한 새로운 과업을 주었다.
 
 무엇 때문인지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김정일은 스위스에는 자기 서기실에 있는 가장 신임하는 사람을 대사로 내보냈으며 그 나라에는 보통 사람들이 대표단으로 나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김정일이 스위스 은행에 비자금을 저금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거기에 별장을 두고 자기 가족을 보내 살림도 하고 공부도 시킨다고 말하기도 한다.
 
 1996년에 스위스 대사는 김정일의 중학교 동창생이고 서기실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김정일에게 "스위스에서는 풀만 먹이는 방법으로 소와 양을 잘 기른다"는 자료를 보고하면서 식량사정이 곤란한 북한에서 스위스의 경험을 본받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기하였다. 김정일은 스위스주재 대사의 보고자료를 우리 비서들에게 내려 보내주면서 대책을 세 울데 대한 과업을 주었던 것이다.
 
 비서들은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또 하나의 천재적 창안"이라고 떠들면서 당장 비서들이 한 개 도씩 맡아 사료로 쓸 풀판을 조성하기 위한 사업을 지도하자고 제기하였다. 사람들이 무더기로 굶어죽고 있으며 인민들이 먹을 수 없는 것을 먹고 있는 형편에서 고기를 먹기 위한 풀판조성이 말이 되는가. 이때 자강도당 책임비서는 중앙당에 와서 자기 도에서는 너무 먹을 것이 없어 주민들에게 니탄까지 먹인다고 하였다. 이런 형편에서 풀판을 만들 수 있는 땅이 있고 노동력이 있다면 강냉이라도 한 포기 더 심고 돼지먹이는 뚝감자(돼지에게 먹이는 감자로서 두어 번 얼리면 독이 빠져 사람도 먹을 수 있다함)라고 한 포기 더 심어야 하지 않겠는가. 굶어죽는 사람들이 어떻게 고기 먹는 것을 바라겠는가. 굶어죽는 사람들에 대하여서는 생각하지 않고 고기를 더 많이 먹을 것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은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라고 하는 것이다.
 
 1996년 말에 인민군대의 군량미가 떨어졌다고 김정일은 크게 노하여 빨리 대책을 세우라고 호령하였다.
 
 이에 따라 당조직들과 독재기관들이 총동원되었다. 결국 군과 리의 농촌간부들을 발동시켜 농민들이 자기들의 식량으로 남겨 놓았던 몫 가운데서 3개월 분을 무조건 떼어서 군대에 바치는 <애국민 헌납운동>을 강행하였다. 이런 것을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중앙당 비서들도 장마당에 나가 쌀을 200㎏씩 사서 군대에 보냈다.
 
 김정일이 이와 같이 농민들이 겨우 먹고 농사를 지어야 할 양식을 강제로 징수하다보니 군대가 주민들의 식량과 가축을 약탈하여가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로 되었다. 이런 판에서 살인강도가 떼지어 나오고 사람의 고리를 파는 자가 나오는 것이 어찌 우연하다고 볼 수 있겠는가. 비교적 우대 받고 잘 산다는 평양시에서도 특수권력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아닌 보통 근로자들은 모두 "이대로는 정 못살겠다. 빨리 전쟁이라도 일어나 끝장이 나면 좋겠다"고 한다.
 
 이것이 북한의 일반 민심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정도로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인권이 유린되고 있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2) 정치생활에서의 인권유린
 
 ① 당의 관료주의와 인권유린
 
 <당의 독재>라고 할 때는 모든 당원들이 독재에 참가하여 특권을 누리는 것같이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독재에 직접 참가하여 특권을 누리는 것은 전임 당일군 즉 직업적 당일군들이다.
 
 당은 당중앙위원회로부터 하부 말단 조직인 초급 당위원회와 세포(당조직의 최말단 단위)까지 중앙집권제 원칙에서 조직되어 있다. 각군 당위원회는 지도기관이지 집행기관이 아니다. 지도기관에는 전임 당일군들만이 아니라 각계각층 당원들이 망라된다. 그러나 실제로 당조직을 움직이는 것은 지도기관인 당위원회들이 아니라 당위원회 사업을 실제로 집행해 나가는 전임 당일군들이다.
 
 당중앙위원회에는 그것을 축소한 지도기관인 정치국이 있는데 여기에는 당 전임 일군들 뿐아니라 각계 대표들이 망라된다. 그러나 당중앙위원회 비서국에는 전임 당일군들인 비서들만이 망라된다. 당중앙위원회 안에는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등 여러개의 집행부서들이 있는데 이 집행부서들이 사실상 당중앙위원회사업을 좌지우지하며 이 부서들을 몇 명의 비서들이 담당하여 지도한다.
 
 도당위원회에서는 도당 책임비서와 비서들의 지도 밑에 도당의 각부서들이 도당사업을 진행한다. 군(郡)당도 마찬가지이다. 초급당위원회나 세포인 경우에는 전임 당일군이 없을 수도 있다. 전임 당일군이 배치되어 있는 초급당위원회에서는 초급당비서가 전권을 가진다. 전임 당일군이 배치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는 초급당비서나 세포비서들이 상급당의 지시에 따라 당사업을 한다. 이 경우에도 사실상 전임 당일군과 비슷한 특권행세를 한다. 원래 전임이 아닌 경우에는 자기 직업에 따르는 일을 해야 하지만 당사업이 바쁘다는 구실 밑에 직업상의 일은 하지 않는다. 즉 당사업만 하고 직업적인 일은 하지 않고 해당한 노임만 타 먹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당 전임일군들은 수령의 대리인으로서 지도권과 통제권을 가지다 보니 그들의 관료주의가 대단하다. 예컨대 대학당위원회에는 전임 당일군들뿐 아니라 대학총장과 부총장들도 위원으로 들어가 있지만 실권은 대학당위원회 전임일군들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대학당 위원회의 위원도 아니고 그저 대학당위원회 사업을 하고 있는 전임 일군들(지도원 또는 부원)들의 권한도 행정간부들의 권한보다 크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있은 일이다. 대학의 졸업반 학생가운데서 한 명이 대학당위원회 지도원(부원)으로 배치되었다. 그러자 그는 다음날부터 자기를 지금까지 배워 준 선생을 불러 세우고 "왜 먼저 인사를 하지 않는가"고 추궁하였다. 이런 자들은 대학당비서는 하느님처럼 여기고 섬기지만 대학총장은 우습게 보고 있는 것이다. 대학이 이러다 보니 공장기업소나 농장에서 당일군들의 전횡과 인권유린은 더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물론 당일군이라고 하여 다 관료주의를 부리는 것은 아니다. 특히 김일성은 당일군들의 관료주의를 반대하는 투쟁을 꾸준히 벌였다. 그러나 김정일이 당권을 장악한 후부터 당내 민주주의를 거세하고 수령의 유일적 영도를 군대식 명령체계로 만들었다. 당내에서 선거제도를 완전히 형식적인 것으로 만들고 세포비서까지 다 상급당이 임명하도록 하였다. 초급당비서나 세포비서들의 지위가 당원들의 선거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상급당의 지시에 따라 결정되다 보니 그들이 상급당에 아첨하면서 관료주의와 인권유린행위를 더욱 자행하게 되었다. 또 나쁜 일을 많이 하여 여론이 환기되어도 초급당비서나 세포비서들의 비행이 상급 당일군들의 비호와 결부되어 있다보니 당원군중들이 초급당비서나 세포비서를 비판하여 떼어버리려 하여도 성공하는 경우는 거진 없고 오히려 복수를 당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었다.
 
 주민들의 일상적인 생활은 초급당이나 세포를 단위로 진행되는 것만큼 초급당이나 세포의 관료주의로 하여 모든 사람들이 다 자주성을 잃고 노예생활을 강요당하고 있다. 초급당비서나 세포비서들은 모든 것을 다 당조직에 보고해야 한다고 하면서 당원, 비당원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의 사생활 문제까지 장악하고 간섭하고 있다. 이 과정에 노골적인 인권유린행위를 수없이 감행한다.
 
 또 하급 당조직은 상급당조직에 잘 보이기 위하여 중앙의 지시를 에누리하여 집행하다 보니 죽어나는 것은 하부 말단의 인민들뿐이다.
 
 이전에 이런 일도 있었다. 당중앙에서 모내기를 6월 20일까지 끝내라고 지시를 주면 도당에서는 10일 앞당겨 6월 10일까지 끝내라고 지시를 주며 군당에서는 또 10일 앞당겨 5월 말까지 끝내라고 지시를 주게 된다. 그러면 리당에서는 농장원들에게 5월 20일 까지 모내기를 끝내라는 지시를 주게 된다. 모든 문제가 이렇게 되다 보니 과중한 부담과 고된 노동, 무권리에 시달리는 것은 대중이다.
 
 ② 북한의 법은 선전용, 실상은 무법천지
 
 북한에서 법은 선전용이고 인민들은 실지 생활에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헌법에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등 민주주의적 자유가 보장되고 최고인민회의를 최고 주권기관으로 하여 마치도 입법과 행정, 사법이 독자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100% 거짓말이다.
 
 수령의 유일사상만이 지배하는 북한에서 언론의 자유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동창회나 동향회 같은 것까지 절대 금지되어 있는 조건에서 집회와 결사의 자유란 말도 되지 않는다. 신앙의 자유도 규정되어 있지만 수령의 사상과 어긋나는 종교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평양에 만들어 놓은 교회는 모두 선전용이며 가짜이다. 불교사원들에 있는 중들이 진짜 중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북한에서는 진짜 종교를 믿는 사람은 신앙을 고백하지 못하고 가짜로 종교를 믿는 사람만이 신앙을 고백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군(郡)과 군(郡) 사이도 통행증이 없이는 자유롭게 다닐 수 없다.(최근에는 식량난 때문에 이런 질서가 파괴되고 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파렴치하게도 남한에는 자유가 없다느니 학생운동과 파업을 탄압한다느니 떠들지만 이점에서 남북 간의 차이는 문자 그대로 천양지차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남한에서 이인모가 40년간 장기수로서 전향하지 않고 지조를 지켰다고 크게 내세우는 동시에 남한이 그를 40년 동안 가두어두었다고 하여 남한에 민주주의가 없는 것처럼 비방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북한에서 반체제인사가 자기의 반체제적 입장을 밝힌다면 40년이 아니라 40분 이내에 체포되어 총살당하고 만다.
 
 김일성종합대학인 경우에는 대학 2학년에만 올라가면 학생들이 수령우상화에 대하여 의문을 품기 시작하지만 그 누구도 자기의 생각을 입밖에 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학원의 자유를 위하여 시위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또 노동자들이 파업한다면 그들은 즉석에서 <반혁명분자>로 체포되어 총살될 것이다. 모든 공장은 예외 없이 당의 소유이고 수령의 소유이기 때문에 공장지도부를 반대하는 것은 곧 수령을 반대하는 것으로 되어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1995년에 군수공장에도 9개월 이상 식량배급을 주지 않게 되자 절반 이상이 직장에 나오지 못하고 집에 누워 있었다. 이런 노동자들의 집을 당중앙의 군수공업 담당비서가 방문하자 빈사상태에서 뼈만 남아 누워 있는 노동자들이 "김정일장군님은 안녕하십니까. 비서동지께서 장군님을 잘 모셔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인사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북한 정권이 노동자들에게서 자주성의 흔적마저 없애고 그들을 철저히 노예화하였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학생들에 대해서는 더욱 가혹하게 대하고 있다. 소련에서 1956년에 흐루쵸프가 스탈린의 개인숭배를 비판한 후 조선유학생들도 그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다. 그래서 그들이 김일성의 개인숭배를 반대하는 말을 한 것이 드러나게 되었다. 북한 통치자들은 이 시기에 소련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학생들을 몇 달에 걸쳐 철저히 신문한 다음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학생은 모두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해 버렸다.
 
 또 1980년대에 소련의 군사관계대학에서 공부한 북한 군인들 속에서 반(反) 김정일조직을 만든 것이 탄로되어 1995년에 대량적으로 총살되었다. 뿐만 아니라 1980년 이후 졸업한 소련유학생들은 군인이 아니더라도 반 김정일조직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하여 외국출장을 금지시키는 한편 집요하게 그 연계관계를 따져 거진 모든 학생들을 총살하였다. 내가 직접 지도하던 주체과학원에서 일하던 까잔 종합대학 러시아문학부 졸업생(1966년생)은 그의 졸업논문 지도교수가 외국인 담당 학부장이었으며 외국인담당 학부장은 대체로 소련안전부와 연계가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인민군 보위사령부가 체포하여 총살하였다.
 
 김정일은 한때 유명한 작가인 이기영의 맏며느리인 영화배우 성혜림을 데려다 살면서 아이(김정남)까지 낳게 하였으나 소문이 퍼지는 것이 두려워 소련 모스크바로 보내여 살게 하였다. 그러자 자연히 소련에 있는 북한 유학생들 속에서 소문이 퍼지게 되었다. 김정일은 뒷소리를 하는 자들을 엄벌하도록 인민군대 보위사령관에게 지시하였다. 보위사령관은 모스크바에 있는 유학생들을 신문해 보고 성혜림이 모스크바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대답한 학생은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모두 처형하였다.
 
 김일성도 자기 정적(政敵)들에 대해서는 무자비하였다. 자기의 반대파는 모두 <반당반혁명, 종파분자>, <미제국주의의 고용간첩> 등의 누명을 씌워 예외 없이 숙청하였다.
 
 원래 <통제구역>이라는 정치범 수용소들은 김일성이 반대파들의 가족들을 수용하고 그들의 씨를 완전히 없애버리려는 기도 밑에 만든 것이다. 통제구역은 대체로 깊은 산골자기를 철조망으로 엄중히 둘러쌓고 본 구역과 예비구역으로 갈라놓고 있다. 본 구역에 들어간 사람은 영원히 거기서 나오지 못하고 인간이하의 천대를 받다가 죽게 된다.
 
 유명한 민족무용가 최승희는 김일성때 숙청되었다. 그의 남편인 안 막이 남노당에 관계되었다고 하여 먼저 숙청한 후 최승희도 오랫동안 검토 끝에 숙청되었다. 또 그의 딸 안성희와 그의 남편(모두 소련유학생), 그의 조카벌 되는 재능 있는 시인 최로사와 그의 남편(김일성종합대학 어문학부 졸업생)도 다 숙청하였다.
 
 좌익계 학자들의 선배로 존경받고 있던 백남운도 1960년대 말에 김정일이 숙청하였다. 당시 국가보위부장이었던 김병하가 자랑삼아 자기들이 백남운을 통제구역에 데려갔다고 말하였다. 백남운에게는 작은 집을 하나 지어주었더니 그가 좋아하더라고 하였다. 그의 이야기로 미루어 보아 아마 백남운은 통제구역의 예비구역에 감금한 것 같다.
 
 백남운은 학자로서 반 김일성운동에 적극 참가할 사람이 아니며 기껏해야 몇 마디 불평이나 한 것이 도청장치에 걸렸을 것이다. 백남운은 거기서 죽었다. 교활한 북한 통치자들은 백남운이 학계에서 인기가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고려하여 최근에 그를 신미리 애국열사능으로 옮겨 안장하였다. 대성산 혁명열사능에는 김일성의 직계들만을 안장하고 있지만 신미리 애국열사능에는 남한의 민족주의자들을 끌어당기기 위하여 이용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설사 북한통치자들이 죽인 사람도 여기에 안장하는 일이 있다.
 
 북한 통치자들에 의한 인권유린은 군대생활에서 더욱 극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젊은 청년들은 30세까지 13년 동안 군대에 들어가 김정일을 위하여 총과 폭탄이 되어 죽는 연습만 강요당한다. 이것은 결국 북한의 대부분의 청년들은 한창 자기 재능을 연마하고 희망을 꽃피워야 할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김정일 한사람을 위하여 망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군대복무 기간에 청년들은 아름다운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폭력적 권력을 절대적으로 숭상하고 그에 무조건 복종하는 노예근성과 사람들을 살해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훈련만 받고 나오게 된다. 군 대안에서 보위부의 감시와 통제는 잔인하기 그지없다.
 
 1995년 6군단에서 반 김정일조직이 드러났을 때에는 좌급(소령급)이상 장교들과 가족까지 모두 총살하여 피바다를 이루어 놓았다고 한다. 최근에 중앙당 조직부에서 국가안전부위부를 검열하고 <반당종파집단>이라는 딱지를 붙여 책임자를 자살케 하고많은 간부들을 처형한 다음부터는 군대의 보위사령부가 더욱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국가보위부 사업까지 가로채고 있다고 한다.
 
 김정일은 절도나 강도 같은 일반 범죄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김일성, 김정일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뒷소리를 한 것이 발로되면 무자비하게 처형한다. 이런 경우에는 중앙당 조직지도부나 국가안전보위부, 인민군 보위사령부 같은데서 사건을 보고하면서 주동분자는 총살하고 가족들은 통제구역에 보내겠다고 제기하여 김정일의 수표(사인)를 받으면 그대로 즉각 집행된다. 여기에 아무런 법적 절차라는 것이 없다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북한에서 인권이 얼마나 무참히 유린되고 있는가는 김일성이 사망하였을 때 뚜렷이 나타났다. 온 나라가 몇 일 동안 계속 울음바다를 이루었다. 여기에는 물론 대부분이 김일성에 대한 우상화선전에 속아서 울었다고 볼 수 있지만 울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기도 하였다. 당조직에서는 누가 더 슬퍼하는가를 조사하여 그것을 간부들의 충실성 평가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김일성이 사망하였다는 부고를 듣고도 병원에서 나오지 않은 사람,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른 사람들은 모두 조사하여 처벌하였다. 내가 직접 지도하는 주체과학원의 경제학연구소 소장이었던 홍승훈박사는 울지 않고 자기가 타고 다니는 자전거를 수리하고 있었다 하여 철직되었다.(원래 박사, 교수들은 국가에서 승용차를 보장해 주기로 되어 있었으나 휘발유를 공급해 주지 못하여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홍승훈박사는 이것이 계기로 되어 얼마 후에 병들어 죽었다.
 
 나는 한때 모스크바에서 1953년에 스탈린이 사망하였을 때 소련인민이 슬퍼하는 모습을 본 일이 있다. 그러나 1956년에 흐루시쵸프가 스탈린의 비행을 폭로하자 누구하나 스탈린에 대하여 동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김일성에 대한 인공적인 우상화가 결국 그가 사망하였을 때 북한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것이 인민들의 전정을 우롱하고 인간을 우상의 노예로 만든 인권유린의 극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김정일은 테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모든 테러사건을 빠짐없이 직접 지휘한다. 미얀마의 아웅산 폭파사건과 대한항공기 폭파사건도 그의 직접적인 지시에 따라 진행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미얀마사건은 한국요인들을 살해하려는 소위 <계급투쟁>의 목적으로부터 출발하였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대한항공기폭파사건과 같은 것은 다만 그가 얼마나 인간생명을 천시하고 테러를 좋아하는 변태성격의 소유자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게 한다.
 
 그는 부화 방탕한 생활을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도 마치도 여성과의 관계에서 매우 결백한 것 같이 보이기 위하여 터무니없이 사람들의 사생활에 간섭한다. 그는 식량을 구하러 나가는 여성들이 남자들의 자전거 뒤에 타고 다니는 것이 미풍양속에 어긋난다고 금지시키는가 하면 여성들이 바지를 입고 다니지 못하게 하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도 보기 싫다고 금지시킨다.(이런 것은 김정일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금지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을 금지시킬 데 대한 제의가 군중 속에서 나온 것처럼 선전한다.)
 
 인민배우 우인희는 재능 있고 아름다운 영화배우였다. 그래서 최고의 영예칭호인 <인민배우>칭호까지 받았다. 그런데 그녀가 다른 남자들과 부당한 관계를 가졌다고 하여 공개 총살하였다. 조사하는 사람들의 신문에 견디지 못하여 그녀가 김정일과 관계한 것까지 고백한 것이 총살의 원인이라고도 하지만 어쨌든 유명한 노작 가의 며느리인 유부녀(성혜림)를 백주에 데려다 사는 것은 좋고 인민배우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진 것은 총살에 해당한다고 하니 이것을 어떻게 정상적인 사람의 사고방식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는가.
 
 ③ 출신성분에 따르는 차별대우와 연좌제(連坐制)
 
 북한에서는 지주, 자본가들은 모두 숙청대상이고 그들의 자녀들과 손자들까지 다 독재대상으로 된다. 그들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대학에 갈 수 없고 간부로 등용될 수 없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참을 수 없는 차별대우를 받는다.
 
 지금 이산가족 상봉문제와 성묘를 위한 고향방문을 북한 당국자들이 기를 쓰고 반대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일반적으로 이산가족이 천만 명이 된다고 하지만 북한에 실제로 살아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들은 이러저러한 계기에 다 희생되고 말았던 것이다. 아마 앞으로 남북이 통일되어 남한에 있는 가족들이 북한의 고향 땅에 가보게 되면 북한에 남은 가족들이 어떻게 억울하게 희생되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어떤 가족은 온 가족이 강제로 추방되어 완전히 희생되었고 어떤 사람들은 독재대상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라는 지시가 있을 때마다 독재자들의 마수에 걸려 희생되었다.
 
 독재기관들에서는 자기들의 성과를 과시하기 위하여 지주, 자본가 가족들과 월남자가족, 귀국자가족(특히 일본에서 귀국한 교포가족), 종교인가족들 속에서 일어난 사건을 침소봉대하여 처형하는 것까지 서슴없이 감행한다.
 
 1995년에 미국에 가 있는 교포로부터 북한에 남아 있는 노모와 동생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 조사해 본 적이 있다. 그는 북한에서 아무런 범죄도 범하지 않고 월남하였으며 미국에 건너가서는 안창호선생의 애국사상을 선전하면서 기업활동을 하는 훌륭한 기업가였다.
 
 우리는 김정일에게 보고를 올려 그 재미교포를 초청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당권을 이용하여 보위부일군을 파견하여 지방에 있는 그의 노모와 동생의 부인을 평양에 데려다 1주일간 같이 생활하도록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재미교포는 자기의 두 동생을 꼭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그때로서는 그의 동생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그에게 말해줄 처지가 못되었다. 그래서 "그것은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지나간 일을 생각하지 말고 미래를 위하여 서로 협조해 나가자"고 말해 주었다. 그 후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자기 동생의 소식을 알기 전에는 우리와 협조를 할 수 없다고 알려왔다. 그러다가 우리가 남한으로 와서 작년(1998년)에 서울에서 그 재미교포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우리에게 다시금 자기 동생소식을 알려달라고 요청하였다.
 
 그의 두 동생은 보위부요원들에 의하여 희생되었다. 그의 두 동생이 사는 곳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 범인을 빨리 잡으라는 지시가 위로부터 내려왔다. 범인을 빨리 잡지 못하면 그 리(里)에 주재하고 있는 보위부요원이 책임지게 되기 때문에 그들은 평소에 <월남자가족>이라 하여 경계하고 있던 재미교포의 맏동생을 범인이라고 하면서 체포하여 처형하였다. 그런데 얼마 후에 진짜 범인이 체포되었다. 이렇게 되자 둘째 동생이 자기형이 억울하게 희생되었다고 불평하였다. 그러자 그 리(里)의 당비서의 보위지도원은 자기들의 비행이 폭로될가봐 겁이나, 둘째동생을 불순분자로 몰아 체포하여 영영 나올 수 없는 통제구역에 보냈던 것이다. 이렇게 일단 처리된 문제는 직접 국가안전보위부를 담당한 중앙당 비서라고 해도 바로 잡을 수 없는 문제이다.
 
 어떤 사람이 정치적 과오를 범하면 본인이 처벌당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 친척, 친우까지 처벌대상으로 된다. 과오를 범한 사람이 높은 직위에 있을수록 그 영향을 청산하기 위한 처벌대상의 범위도 더 넓어지게 된다.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나와 김덕홍의 가족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친척인 줄도 잘 모르는 사람까지 모두 촌수를 캐내어 추방하였다고 한다. 또 우리를 따르고 우리와 가깝게 사업하던 간부들과 학자들 수천 명이 정치수용소에 감금되고 혹은 철직되어 지방으로 추방되었다고 한다.
 
 북한 통치자들은 세계인권 단체들에서 북한의 재판제도나 감옥형편을 요해하려고 하여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친한 동맹국의 정보기관에서 와서 제기하여도 인권유린자료는 절대비밀에 붙이고 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하여도 북한 통치자들은 "북한에는 감옥이 없고 인민군대안에는 영창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민주주의 나라들에 비하면 북한은 온 나라가 하나의 큰 감옥과 같은 만큼 정치범 수용소들과 감옥의 형편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겠는가 하는 점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군수공업담당비서가 김정일에게 군수공업부에서 대남공작원들이 사용할 저격무기를 새로 개발한 후 개를 대상으로 성능을 실험하였다고 보고하자 김정일은 개가 사람과 같을 수 없다고 하면서 "정치보위부에 지시해서 정치범들을 보내주겠으니 그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라"고 지시하였다.
 
 (3) 사상문화 생활에서의 인권유린
 
 인권의 견지에서 볼 때 사상문화 생활은 경제생활이나 정치생활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인간은 육체적 욕망만을 충족시키는 것으로서는 사람답게 살 수 없기 때문이다.
 
 ① 사상적 노예화
 
 북한 통치자들은 인민들에게서 자주적인 사상을 가질 권리를 완전히 박탈하고 자기의 사상만을 신봉할 것을 강요한다. 자주적인 사상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자주적 인간이 아니다. 사람의 행동을 규정하는 첫째 요인은 <사상>이다. 사람의 사상을 지배하게 되면 사람자체를 지배하게 된다. 북한 통치자들은 인민들의 사상을 지배함으로써 인민들을 자기들의 사상적 노예로 만들고 있다.
 
 지금 북한 사람들의 머리를 지배하는 것은 매개 사람들의 자주적인 사상이 아니라 김일성, 김정일의 사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요구와 이익을 실현하기 위하여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 김정일의 요구와 이익을 실현하기 위하여 살아가고 있다. 김정일은 "북한 인민들의 삶의 목적은 수령에게 충성과 효성을 다하는데 있다"고 노골적으로 설교하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이 사망하였을 때 온 북한 땅이 울음바다로 전환되었는데 이것은 북한 인민들이 제정신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 김정일의 정신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 김정일이 9개월 동안이나 식량배급을 주지 않아 온 식구가 굶주려 누워있게 되었다면 김정일은 자기들의 생명을 빼앗아 가는 원수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김정일의 만수무강을 축원하고 있는 군수공장 노동자들이 제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는가. 북한 인민들은 몸은 비록 자기의 것인 것 같이 보이지만 머리는 김일성, 김정일의 정신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몸과 정신이 다 김일성, 김정일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하여 복무하고 있다. 결국 북한 인민들에게는 자기 자신의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몸도 정신도 모두 수령의 것이다. 정상적인 제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의 생활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그것이 노예사상을 가진 노예들의 생활이라고 밖에 달리 생각될 수 없다.
 
 북한 통치자들은 수령의 사상이 바로 인민대중의 요구와 이익을 이상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김일성, 김정일의 사상이 북한 인민의 요구와 이익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김일성이 자기 아들에게 정권을 물려주겠다는 것을 누구의 승인을 받았는가.
 
 수백만 사람을 굶어 죽이면서 김일성의 시신을 영구보존하기 위하여 막대한 자재와 외화를 탕진하는 것이 인민들의 요구와 이익에 맞는가.
 
 청년들이 13년 동안이나 군대에 들어가 총폭탄이 되어 김정일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청년들과 그 부모들의 요구와 이익에 맞는가.
 
 6.25전쟁을 일으키고 우리 민족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들씌운 것이 우리 민족의 요구와 이익에 맞는가.
 
 북한 주민들이 기아와 빈궁에 신음하고 있는데 핵무기와 로켓트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막대한 군사비를 쓰면서 새로운 남침전쟁준비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 인민의 요구와 이익에 맞는가.
 
 살길은 개혁개방밖에 없는데 계속 수령절대주의를 고수하는 김정일의 사상이 인민의 요구와 이익에 맞는가.
 
 만일 수령이 인민의 요구와 이익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것을 참고로 하여 정치를 하려면 인민들이 자기의 요구와 이익이 무엇인가를 발표할 수 있는 사상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인정해야 할 것이 아닌가. 사상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억압하는 것 자체가 수령의 사상이 반인민적이라는 것을 실증하는 것이 아닌가.
 
 마르크스주의에 의하면 전복된 착취계급의 반항을 진압하기 위하여 노동계급의 혁명적 독재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지금 북한에는 지주계급도, 자본가 계급도 존재하지 않으며 정권을 탈취하려는 그 어떤 정치적 세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슨 근거로 민주주의를 완전히 말살하고 철저한 개인독재를 실시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수령은 정권을 독점하고 경제를 독점하고 사상까지 독점하고 있다. 수령절대주의는 말로는 착취와 압박을 반대하고 무계급사회를 건설한다고 하지만 실지로는 인민들을 철저히 착취하고 압박하는 수령과 그 추종자 집단이 지배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계급사회를 건설하였다.
 
 북한 통치자들은 북한 인민을 다만 무산자로 만들고 정치적 무권리자로 만드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영혼까지 빼앗고 노예근성만 가진 정신적 불구자로 만들고 있다. 그들은 인민들을 강제로 일 시키고 강제로 복종하여 만세를 부르게 하고 강제로 자기 사상을 신봉하도록 만들고 있다. 북한과 같이 전체 인민이 도탄에 빠져 신음하면서도 통치자를 위하여 온 나라가 떠나갈 정도로 만세를 부르며 또 그렇게 만세를 부르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사회는 일찍이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② 우민화(愚民化)를 위한 문화생활
 
 김정일은 김일성보다도 사상문화생활의 중요성에 대하여 더 강조한다. 그는 자기를 <사상론>의 창시자로 자처하며 문학과 예술의 <천재>라고 선전한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가 사상을 중요시하는 것은 인민들의 사상을 계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민들에게서 자주적인 사상을 빼앗기 위해서이다. 즉 인민들에게 인권사상을 넣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권사상이 싹트지 못하게 하고 노예적 굴종사상을 넣어주기 위해서이다. 그는 인민대중에게 실질적으로 무엇인가 유익한 것을 주는 것보다는 빈말로 속이는 것이 밑천이 들이 않고 편리하다고 타산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은 문학과 예술이 인간의 아름다운 생활을 정신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정신적 양식으로 될 뿐 아니라 그것이 인민들에게 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생활을 창조하도록 고무하는 정신적 힘으로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그는 오직 문학과 예술이 수령을 우상화하는 기만수단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만 알고 있다. 이런 사람은 문학과 예술의 천재가 아니라 문학과 예술의 왜곡자이고 파괴자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의 문학예술 작품은 오직 수령을 우상화한 작품뿐이다.
 
 북한에는 재능 있는 문학예술인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재능은 수령을 우상화하는데만 바쳐지고 있으며 앞으로 우리 민족문화를 빛내는데 이바지 할 수 있는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재능 있는 북한의 문학예술인들의 신세를 망치게 하고 북한의 문학예술을 기형화 한 것 역시 북한 통치자들의 씻을 수 없는 죄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당과 국가기관들에서는 토요일은 거진 일을 전폐하고 사상문화생활만 하게 되어 있다. 김일성, 김정일의 혁명역사학습과 저작학습, 정세강연과 영화감상회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 그것이 모두다 수령우상화로 일관되어 있고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통치자들의 속셈을 짐작하는 사람은 이 토요일과 같이 고통스러운 날이 없다.
 
 나와 김덕홍은 1997년 2월 12일부터 4월 20일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북한 통치자들의 테러를 피하기 위하여 불편한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들이 주고받은 이야기는 "이 불편은 평양에서 토요일에 사상문화 생활을 통하여 받은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여 북한에서의 사상문화생활은 사람들의 사상문화 수준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더욱 암매하게 만드는 비문화생활이며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혐오감만을 안겨주는 비문화생활이다.
 
 북한 통치자들은 주민들이 외국의 신문, 잡지를 읽거나 외국의 방송을 듣는 것을 엄금하고 있으며 상부의 승인과 감시를 떠나서 외국인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엄금하고 있다. 김정일의 직접적인 승인이나 당중앙 비서협의회의 최종승인 없이는 외국에 여행할 수 없다. 그러니 북한에서 특권을 누리고 있는 극소수 계층들은 외국에도 가 볼 수 있고 국제정세에 대해서도 알 수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정말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이 북한이 세계의 중심이고 김일성, 김정일이 제일 위대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그전처럼은 못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남한은 미제국주의 식민지이고 민중이 기아와 빈궁에 시달린다고 하였으며 자본주의 나라는 사람 못 살 <개 같은 세상>이라고 악선전하였다. 최근 년 간에 와서도 새로 인민학교(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는 학생들에게 하는 간부들의 연설에는 "공화국(북한)의 어린이들은 수령님의 은덕으로 돈 한푼 내지 않고 마음껏 공부할 수 있지만 남한에서는 학교문전에도 가보지 못하고 구두닦이나 하는 불쌍한 어린이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 와서도 <노동신문>에는 "전 세계 인민들이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을 인류의 태양으로 높이 우러러 모시며 남한 인민들은 그이의 정치를 한번 받아보았으면 한이 없겠다'고 간절히 부르짖고 있다"는 기사를 매일같이 내보내고 있다.
 
 김일성은 "인민들이 모두 흰쌀밥에 고기 국을 먹으로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살게 되면 인류의 이상사회인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또한 "세계에서 평양이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하면서 "평양은 도시 안에 공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공원 안에 도시가 있다"고 말하였다.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의 이 말을 그대로 믿고 있다. 흰쌀밥에 고기 국을 먹고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사는 것이 그리도 높은 생활수준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고기를 인구 1인당 36㎏이상 생산하고 소비하는 나라는 많다. 북한의 주변나라는 다 인구 1인당 고기를 36㎏ 이상 생산하고 있다. 36.5㎏이면 매인 당 하루에 100g씩 해당된다. 초가집을 허물고 벽돌집을 짓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며 각종 화학섬유로 만든 좋은 옷감은 면직물보다도 훨씬 값이 싸다. 물론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는 빈부의 차이가 있지만 평균해서 본다면 한국에서는 벌써 훨씬 전에 이러한 생활수준을 넘은 지 오래다. 북한에서는 자동차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전화기와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색텔레비젼 같은 것이 다 보통사람은 쓸 수 없는 특수상품, 득 <간부용>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좀 오랜 이야기이지만 북한에서 처음으로 평양에서 개성으로 나가는 길을 넓히고 시멘트로 포장한 일이 있다. 그때 이탈리아에서 온 대표단을 안내하는 아가씨가 손님을 모시고 그 길을 가다가 문득 이 길을 자랑할 생각이 나서 "당신네 나라에도 이렇게 넓은 길이 있는가?"고 물었다. 손님은 잠시 질문의 취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 머뭇거리다가 "혹 농촌에 나가면 이런 도로를 찾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작가, 예술인들에게는 그래도 김일성, 김정일을 우상화 할 수 있는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자유는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수령을 더 잘 우상화할 수 있겠는가 하는 한 가지 목표를 놓고 예술적 재능을 동원하여 서로 경쟁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과학을 하는 학자들에게는 수령의 저서의 정당성과 수령의 정책의 위대한 생활력을 해설 선전하는 것 이외의 것은 일체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또 수령의 저서를 써주는 이론기술자들이 어디 가서 좀 색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면 수령의 저서가 나오기 전에 수령의 사상을 앞질러 말했다고 하여 되게(엄중히) 문제가 설 수 있다. 이들에게는 창조적 사색의 자유는 완전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수백만이 현실적으로 굶주리고 있고 경제 전반이 마비상태에 빠져도 역시 사회주의 경제의 위대한 생활력과 자립경제의 우월성에 대하여 소리높이 선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북한의 수령절대주의 정권은 문화인들에게는 허위를 선전할 것을 강요하고 있으며 인민들에게는 허위선전을 받아들이는 것만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북한식 사상문화 생활은 많이 하면 할수록 현실로부터 뒤떨어진 더욱 우매한 사람으로 전환된다.
 
 ③ 사랑과 도덕을 빼앗는 수령절대주의
 
 김정일은 때때로 간부들을 모아 놓고 "동무들에게서 수령의 신임을 떼놓으면 단순한 고깃덩이에 불과하다"는 말을 한다. 김정일의 이 말은 현실 그대로를 표현한 것이다. 사실 북한 사회에서는 김정일의 신임만 떨어지면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된다. 그러다 보니 김정일의 신임이 모든 사람들의 <생명>으로 된다. 김정일에게 명줄이 쥐어져 있는 사람들은 그의 신임을 얻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김정일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희생할 각오를 한다.
 
 수령의 독점욕에는 한계가 없다. 수령은 개인의 생명, 재산을 다 자기 손에 틀어쥐고도 만족이 안되어 그 이상의 희생을 요구한다. 개인의 생명, 재산보다도 더 귀중한 것이 무엇인가. 사랑과 도덕이야말로 개인의 생명 재산보다 더 귀중한 것이다. 수령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도덕까지 빼앗으려고 한다. 개인의 생명과 생명이 결합되어 생사운명을 같이 하게 되면 개인의 생명과는 비할 바 없는 위력한 새로운 생명체가 출현한다. 이 위력한 새로운 생명체의 생명은 결합체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들의 공동의 생명이다. 개인은 자기 개인의 생명보다 공동의 생명을 더 귀중히 여기며 따라서 개인의 생명보다 공동의 생명을 더 사랑한다.
 
 생명과 생명을 결합시켜 보다 위력한 공동의 생명을 가지려는 요구가 <사랑>이다. 사랑이 주는 기쁨은 생명과 생명이 결합되려는 요구가 실현되어 개인의 생명보다 더 위력한 공동의 생명을 지니게 되는데서 오는 기쁨이다. 반면에 고독이 주는 슬픔과 고통은 위력한 공동의 생명과의 연계가 끊어지게 되어 고립된 개인의 미약한 생명만을 지니게 되는데서 오는 슬픔과 고통이다. 보다 많은 생명이 결합될수록 보다 위력한 생명체를 이루게 되며 보다 위력한 생명체와의 결합이 이루어질수록 개인은 자기 개인의 생명보다 훨씬 더 귀중한 공동의 생명을 지니게 된다. 개인은 이 위력한 생명체의 사랑을 고수하기 위하여서는 자기 개인의 생명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개인의 생명보다는 가족의 생명이 더 귀중하고, 가족의 생명보다는 민족의 생명이 더 귀중하며, 민족의 생명보다는 전 인류의 생명이 더 귀중한 것으로 된다. 이것은 사람은 자기 개인보다 가족을 더 사랑하며 자기 가족보다 민족을 더 사랑하며 자기 민족보다 전 인류를 더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또한 도덕적 요구에도 부합된다. 물론 이것은 생명과 생명이 결합되어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사랑하는 집단>을 이루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수령절대주의는 오직 수령 한사람만을 절대적으로 사랑할 것을 요구한다. 수령은 가족도 아니고 민족도 아니고 물론 전 인류도 아니다. 수령은 어디까지나 개인이다. 개인과 개인은 평등해야 한다. 수령은 다른 개인을 지배할 권리가 없으며, 가족을 지배할 권리가 없으며, 민족을 지배할 권리가 없다. 수령은 다른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민족공동의 위업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노력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수령은 지도적 지위에 있는 만큼 민족공동의 위업을 위하여 보통사람들보다 더 큰 역할을 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수령이 지도자로서의 의무에 충실할 때 그는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자격을 가진다. 그것은 그가 수령이기 때문이 아니라 <민족>이라는 공동생명체를 위하여 보통 사람들보다 더 큰 기여를 하였기 때문이다. 수령이 아니더라도 공동생명체를 위하여 큰 기여를 한 과학자나 문학예술가, 체육인들은 민족의 사랑을 더 많이 받을 자격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수령을 위하여 충성을 다 해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조국과 민족 앞에 큰 기여를 한 위대한 과학자나 예술가를 위하여 충성을 다 한다는 것도 명백히 부당하다. 더구나 인민을 통치하는 이기주의자인 수령에게 충성을 강요한다는 것은 인권유린의 전형인 것이다.
 
 수령절대주의자들은 오직 수령만을 사랑하여야 하며 가족에 대한 사랑, 민족에 대한 사랑, 인류에 대한 사랑은 수령에 대한 사랑에 복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령절대주의하에서는 가족들 사이의 사랑에서도 절대적인 주인은 수령이다. 수령의 마음에 안 들 때에는 부부가 이혼도 해야 하고 부자간에 서로 고발도 해야 한다. 원래 계급주의자들은 모든 인간관계를 계급관계로 전환시켰다. 그들은 계급의 이익에 맞게 행동하는 것을 최고의 도덕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도 계급적 관점에서 대립이 생기면 계급투쟁의 원칙에서 서로 적대시하기도 되어 있다. 수령절대주의에서는 수령의 요구와 이익에 복종하는 것을 최고의 도덕으로 보기 때문에 수령에 대한 충실성의 관점에서 차이가 날 때에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과 도덕, 부부간의 사랑과 도덕도 다 무시되어야 한다.
 
 김정일의 서기의 한 사람은 술에 취하여 자기 부인에게 김정일의 난잡한 생활에 대하여 비밀을 누설한 일이 있었다. 양심적이며 문화수준이 높은 서기의 부인은 깜짝 놀라 "한나라의 지도자의 생활이 그토록 어지러워서야 어떻게 인민의 행복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하고 고민하던 끝에 김일성이 김정일을 훈계하도록 할 생각으로 김일성에게 편지를 올렸다. 그러나 물론 그의 편지는 김일성이 아니라 김정일의 수중에 들어갔다. 김정일은 자기 서기의 부인을 체포하여 술파티에 끌어오게 한 다음 모든 술파티성원들이 보는데서 서기의 부인을 <반역자>라고 선포하고 총살하도록 하였다. 그는 술파티의 비밀이 나가면 총살한다는 것을 모든 술파티성원들에게 보여 주려고 하였던 것이다. 서기는 자기 부인을 자기 손으로 총살하도록 김정일에게 애걸하였다. 김정일은 서기의 청을 들어주어 그에게 무기를 주어 자기 부인을 총살하게 하였다.
 
 김정일과 그의 측근 <가신단>들 사이에는 동지적 관계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사생활, 가정생활에 이르기까지 다 김정일이 주인행세를 한다. 그는 자기에게 봉사하여온 미녀들을 그녀들이 요구하는 대상(상대)에게 하사하여 결혼시켜주고 그들을 계속 돌봐줌으로써 무조건 충성을 다하도록 조종한다. 김정일의 측근 가신들은 자녀들을 결혼시킬 때도 대상이 어떤 사람이고 어느 때 결혼하겠다는 것까지 보고 올려 결론을 받는다. 늘 가족에 대한 사랑은 수령에 대한 사랑에 복종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지배하는 조건에서 참다운 가족에 대한 사랑과 사랑에 관한 도덕에 대하여 생각할 수 없다.
 
 수령과 그 측근들 사이의 이러한 관계는 수령의 대리인들인 각급 당조직의 책임자들과 일반당원, 비당원들 사이에서도 일반화되어 하나의 관습으로 고착되고 있다. 초급당 비서들과 세포비서들은 당원들과 비당원들의 가정생활과 도덕생활의 구석구석까지 다 장악 통제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 산하 당원, 비당원들의 자녀결혼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노인들의 환갑잔치문제, 어린애들의 돌잔치에 이르기까지 다 간섭하며 이 과정에 범하는 인권유린도 허다하다.
 
 김정일은 특히 간부자녀들끼리 결혼하여 간부들이 가정적으로 친해지는 것을 매우 경계한다. 중앙당 간부 자녀들끼리 결혼할 때에는 그 부모들을 중앙당에서 내보내는 조치까지 취한다.
 
 당중앙 국제부의 부부장 아들과 정무원(내각) 부총리의 딸이 연애를 하여 결혼문제가 제기되었다. 국제부 부부장은 간부 자녀들끼리 결혼할 수 없다는 것을 자기 부인에게 말해 두었다. 그러나 젊은 청춘 남녀들은 부모들에게 결혼시켜 달라고 계속 졸랐다. 부부장이 한달 동안 해외출장을 간 사이에 두 집 부인들끼리 토의하고 결혼식을 해버렸다. 이 사실을 보고 받은 김정일은 부부장이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다고 하면서 부부장을 철직시켜 산하기관에 내려보내도록 지시하였다.
 
 수령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 인간관계,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와 무관계한 가족관계와 친척·친우관계는 다 배척되기 때문에 순가정적 분위기에서 즐기거나 친우관계를 두터이하는 접촉은 언제나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컨대 혹 쉬는 날 손자, 손녀들이 동물원 구경을 시켜달라고 졸라도 그들은 데리고 동물원이나 공원에 나가는 것을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 김일성의 동상이나 혁명박물관 같은 데를 가족들을 데리고 참관하는 것은 자녀들을 수령에 대한 충성심으로 교양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하여 환영받는다. 그러나 그저 가족들끼리 즐기기 위해 들놀이를 나간다든가, 다른 집에 놀러 가는 것은 좋지 않게 평가된다. 그래서 손자, 손녀들이 동물원 구경을 시켜 달라고 자꾸 조르면 그 가까이에 있는 혁명열사능을 찾아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동물원에 들리는 절차를 밟는 것이다. 물론 간부들의 이러한 일과생활은 빠짐없이 김정일에게 보고된다.
 
 나에게는 어릴 때 나를 극진히 사랑하고 돌봐준 8년 연상의 누님이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그의 남편은 6.25전쟁때 트럭운전기사로 군대에 동원되었다가 인민군대가 후퇴를 할 때 월남하였다. 그래서 누님은 평양시로부터 약 40㎞ 떨어진 곳에서 두 딸을 데리고 어렵게 살고 있었다. 나는 늘 누님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찾아가 보지 못하였다. 물건을 보낼 때도 다른 사람을 통해서 보냈다. 누님이 평양시에 들어오려면 통행증이 있어야 한다. 또 통행증을 받아 평양에 들어온다 해도 비서의 집에는 직계가족(출가한 딸과 사위)밖에는 들어올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에 찾아 올 수 없었다. 평양시내에는 형(해방 전에 사망)의 자녀들과 형수가 살고 있었으나 역시 한번도 그들의 집을 찾아가지 못하였다. 이렇게 놓고 보면 나와 나의 가까운 친척들 사이에는 아무런 연계도 없지만 내가 정치적으로 과오를 범하게 되면 나의 친척들은 무조건 추방되게 되는 것이다.
 
 어느 해인가 김정일은 크게 선심을 써서 우리 비서들이 가족을 데리고(부인과 어린 손자, 손녀) 휴양소에 나가 한달 동안 쉬고 오라고 배려해 주었다. 이 휴양소는 호위국이 관리하는 훌륭한 휴양소였다. 우리 비서들 4명은 각각 독립적인 휴양각에 들어 휴양을 하게 되었다. 나는 글쓰는 것이 본업이었던 만큼 휴양기간을 글쓰는데 이용하였지만 다른 비서들은 한곳에서 휴양하는 것이 답답하였다. 휴양기일이 끝나갈 무렵에 두명의 비서들이 가족을 데리고 금강산을 가보고 돌아왔다. 물론 그들도 당조직선을 통하여 보고하고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휴양이 끝난 다음 조직적으로 비판되었다. 비서들을 비판하는 것은 김정일의 지시 없이는 있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 비판이 김정일의 지시에 따른 것임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김정일 외에는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특수한 존재로서 자유로운 생활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것으로 인정되어 모든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중앙당 비서들의 생활이 이렇다 보니 수령절대주의 틀안에서 사는 일반대중들의 생활이 어떤가 하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전화가 100% 도청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독재대상들과 간부들과 중요한 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 집에는 모두 도청장치가 설치되어 있고 감시초소에서 엄중히 감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물정을 아는 사람들은 가정에서 속에 있는 것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법이 없다. 그 누구도 가정생활은 사생활이기 때문에 비밀이 보장되어야 하겠다고 주장하거나 요구하는 사람은 없다. 북한사회에서 그런 것을 바라는 것 자체가 어리석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편지 같은 것은 상대방에게 전달만 되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이 편지는 예외 없이 전부 뜯어보고 조금이라도 의문이 있거나 두고 봐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본인에게 돌려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여 그 어디에 가서 호소할 데가 없다. 그저 아마 도중에 사고로 분실된 모양이라고 답변하면 그만이다. 우리와 같이 특수한 지위에 있는 사람한테 오는 우편물도 전달되지 않을 때가 있다. 특히 외국에서 보내오는 편지나 도서 같은 것은 국가안전보위부나 출판물 검열총국 같은 데서 가로채고 보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고해서 어떻게 되었는가고 그 경위를 따져 물을 수도 없다. 만약 따져 물으면 "혁명과업과 관계도 없는 문제에 왜 중앙당의 큰 간부가 신경을 쓰는가"하고 오히려 의심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외국의 벗들이 무엇을 보냈다고 통지가 와도 송달되기 전에는 독촉하는 법이 없고 도중에 해당기관에서 가로챘다고 예측될 때도 따지는 법이 없다.
 
 외국의 벗들과의 서신거래는 일일이 당조직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비서들과 같은 중요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김정일의 직접적인 비준을 받아야 한다. 외국 손님들과 만날 때는 반드시 두 사람 이상이 같이 만나야 한다. 중앙당 비서인 경우에는 정식 도청장치를 해 놓고 예외 없이 녹음하며 중앙당 국제부의 면담록담당과에서 그 내용을 검토하고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 다 김정일에게 보고하게 되어 있다. 외국의 벗들을 자기 집에 초청할 때에는 그 이유를 밝혀 비서가 직접 김정일에게 모사전송기로 보고하여 승인을 받아야 하며 그 결과를 역시 모사전송기나 서면으로 보고해야 한다. 이것은 조총련간부들이나 재중, 재미교포들에게도 그대로 해당된다. 나는 오랫동안 대외사업을 하다보니 외국사람들 가운데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많고 재외교포들 속에도 각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아주 친한 사람은 오히려 집에 초청을 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그런 사람이 나와 매우 친하다는 것이 드러나게 될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 우려하기 때문이다.
 
 수령절대주의하에서는 가정에서 가족끼리 사랑도 마음대로 나눌 수 없고 친한 친구들과의 우정도 마음대로 나눌 수 없다. 오직 수령하나만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선전할 의무만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수령절대주의하에서는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김정일은 <조선민족 제일주의>를 주장한다. 이때 그가 주장하는 조선민족이란 그가 지배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런데 조선민족 제일주의 자체가 민족배타주의적 주장으로서 옳지 않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뿐만 아니라 김정일의 조선민족 제일주의는 곧 <조선 수령제일주의>이다. 그는 민족의 위대성은 수령의 위대성에 의하여 규정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조선민족을 <김일성민족>이라고 하며 자기가 곧 <조국>이라고 까지 노래하게 하고 있다. 참으로 후안무치의 극치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민족을 자기의 소유물 같이 여기면서 아무개 민족이라고 자기 이름을 붙이며 자기가 곧 조국이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더 자기 민족을 모독하고 조국을 업신여기는 교만한 태도고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이렇게 민족을 자기의 소유물같이 생각하는 자가 어떻게 민족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이런 사람은 철저한 이기주의자이기 때문에 민족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을 자기의 노예로 만들며 오직 자기 자신만을 사랑한다. 김정일의 조선민족 제일주의는 곧 <김정일 제일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김정일은 우리 민족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민족을 지배하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 남한 인민들을 동족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북한 인민들과 같이 노예화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한을 군사적으로 점령하는 것이 필요하며 남한을 군사적으로 점령하자면 남한을 적대시하도록 북한 인민들을 교양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남한 인민까지 지배하는 조건을 염두에 둘 때만 남북을 하나의 민족으로 생각하고 말하지만 남북이 대립되어 있고 남한을 정복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언제나 남한을 "적"이라고 말하다. 남한은 미제국주의 식민지이고 남한정권은 괴뢰정권이며 남한 사람은 모두 지주, 자본가들과 그들의 후손이기에 계급적 원수라고 설교한다. 이런 관점에서 김일성은 6.25전쟁때 남한의 계급적 원수를 소탕한다는 깃발을 내걸고 무자비한 동족상잔을 감행하였다.
 
 그리고 오늘날 김정일은 남한을 약화시키고 남한을 지배하기 위하여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남한의 경제성장에 대하여 극도로 질투하고 있으며 남한 사람들이 아무리 평화적 공존을 요구하여도 남한이 혼자서 평화롭게 잘 사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는 입장에 서 있다. 그는 남한에게 불리한 것은 자연재해까지 포함하여 다 좋아하고 오직 남한을 망하게 하는 방법만을 생각하고 있다.
 
 남한에 대한 김정일의 적대감이 얼마나 강한가 하는 것은 남한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은 못쓰게 지시하고 해외에 출장나갔다가 모르고 남한제 상품을 사오면 몰수하여 불사를 뿐 아니라 남한 물건을 사온 사람을 계급성이 없다고 하여 엄벌에 처한다. 특히 군대에는 오직 남한에 대한 적개심, 복수심으로만 교양하여 명령만 내리면 남한을 언제나 불바다로 만들고 남한 인민들을 몰살하고서라도 남한을 점령하여 김정일을 승리의 광장에 모셔야 한다는 단 한가지 사상만 가지게 하고 있다. 김정일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얀마에서 아웅산폭파사건을 일으켰으며 대한항공기폭파를 지시하였던 것이다.
 
 남한 사람들은 6.25때 침략을 당하고 무참히 학살당하고 기만당하고서도 그것은 공산당이 한 짓이지 북한 동포들이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북한 동포들에 대한 동포애적 감정을 버리지 않고 있다. 심지어 순박하고 선량하게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김정일도 우리와 같은 조선사람이고 자기 아버지와는 다른 새세대인데 설마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키기 위하여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미사일을 개발하겠는가. 아마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자기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우리 한국사람을 겨냥한 것은 아닐 것이다."라고 까지 너그럽게 생각하고 있다.
 
 김정일은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자기가 직접 지배하고 있는 북한 인민들에게 한 태도에서도 뚜렷히 나타나고 있다. 북한의 수백만 인민들이 굶어죽고 있는데 자기 아버지 시신궁전(금수산기념궁전)을 꾸리는데 만 막대한 자금과 자재를 낭비하는 사람이 과연 북한 인민을 동정하고 사랑한다고 볼 수 있겠는가. 수백만 인민들이 굶어죽고 있는데 계속 전쟁준비에만 몰두하고 인공지구위성을 쏴 올리고 <강성대국>을 건설한다고 떠드는 사람이 민족을 사랑한다고 볼 수 있겠는가. 심지어 자기의 삼촌을 18년 동안이나 내쫓고 자기의 이복동생들을 <곁가지>라고 하여 온갖 압박을 다한 사람, 수십만 무고한 사람들을 정치범수용소에서 죽어가게 하는 사람, 중국 동북지방으로 빌어먹기 위해 탈주하는 인민을 쏴 죽이고 동북지방까지 보위부요원들을 파견하여 탈북자들을 붙잡아 오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에게서 어떻게 민족에 대한 사랑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가까운 사람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서 어떻게 멀리 떨어져 있는 남한 동포들에 대한 민족애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북한은 유일사상의 나라이고 유일적 영도의 나라이며, 수령절대주의 나라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김정일의 생각이자 곧 인민군대의 생각이며 북한 인민들의 생각이다. 그것은 북한 인민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수령과 생각을 같이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북한 사람들 가운데 예외가 있다고 하여 수령절대주의가 지배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부인하려고 하여서는 안 된다. 김정일이 명령만 내리면 북한의 인민군대는 남한을 무찌르기 위하여 미친 듯이 달려나오리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김정일이 수령으로 존재하는 한 인민군대와 북한 인민들로부터 동포애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김정일의 수령절대주의가 북한 인민들로부터 동포애를 빼앗었다는 것, 즉 가족에 대한 사랑, 벗에 대한 우정뿐 아니라 민족에 대한 사랑도 빼앗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수령절대주의는 북한 주민들로부터 인류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사랑도 빼앗고 있다. 수령절대주의자들은 김일성과 김정일을 <인류의 태양>으로서 마땅히 인류를 이끌어나가야 하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북한 인민에게는 그 어느 나라 인민이나 어느 나라 지도자에 대하여 호감을 가지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미국, 일본은 사람 못살 제국주의 국가로 묘사되고 있으며 중국이나 베트남도 돈밖에 모르는 자본주의나라로 변질되었다고 비방하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를 거는 것 밖에는 우리의 민족적 영웅의 초상화도 세계명인들의 초상화도 걸지 못하게 하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은 인도주의사상이나 박애사상은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농민의 계급의식을 마비시키기 위하여 날조해낸 위선적인 사상이라고 비방하고 있다. 결국 김정일은 자기를 터무니없이 내세우기 위하여 다른 나라 위인들을 깎아 내리며 다른 나라 인민을 비방함으로써 북한 인민들 속에서 사실상 <인간증오사상>을 고취하고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으며 종교인들을 증오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만을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요구하며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존경하고 사랑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신을 믿고 사랑할 권리까지 빼앗고 있다.
 
 수령절대주의는 철저한 수령이기주의이다. 이기주의에 기초하여서는 도덕이 성립될 수 없다. 사회공동의 이익, 민족공동의 이익, 인류공동의 이익에 개인의 이익을 복종시킬 때에만 도덕이 성립될 수 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내놓고 수령을 신격화함으로써 수령에 대한 충성과 효성만을 최고의 도덕으로 내세우고 있다. 사회공동의 이익, 민족공동의 이익, 인류공동의 이익을 옹호하는 도덕은 모두 수령에 대한 충성과 효성의 일환으로서만 가치를 가지며 독자적으로는 도덕으로서의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이것은 사실상 수령에 대한 절대적 충성과 효성 이외의 도덕과 양심을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수령절대주의로 하여 북한 인민들은 전 인류적 가치를 가지는 도덕, 전 민족적 가치를 가지는 도덕을 잃어 버렸다.
 
 북한 통치자들은 오늘날 북한 인민들의 비참한 처지를 위안하기 위하여 과거를 잊지 말라고 하며 지난날 노동자, 농민들이 지주, 자본가들의 가혹한 착취와 압박 밑에 얼마나 고통과 불행을 겪었는가를 과장하여 보여주는 소설이나 영화 같은 것을 많이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그들은 이것을 계급적 원수들을 잊지 말기 위한 <계급교양>이라고 하지만 여기에는 과거의 비참한 생활에 비하면 지금 겪고 있는 고통과 불행은 참아야 한다는 것을 납득시키려는 의도도 숨어 있다. 그들은 다른 나라들에서도 잘 사는 것은 전혀 소개하지 않고 못 사는 것만을 선전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비참한 생활형편을 소개하면서 사회주의를 버리고 자본주의로 복구하면 이렇게 비참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또 김정일은 "오늘을 위한 오늘을 살 것이 아니라 내일을 위한 오늘을 살아야 한다"면서 미래를 위해서는 오늘의 고통을 참아야 한다고 설교한다. 그러나 오늘 북한과 같은 비참한 생활은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으며 수령절대주의가 계속 지배하는 한 북한 인민들의 내일은 오늘보다 더 비참하게 되리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김정일이 정권을 세습적으로 승계하고 개인독재를 실시하여 인민들에게 자유를 주지 않는다 하여도 그가 북한 인민들을 무더기로 굶겨 죽이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그가 자기를 <21세기의 태양>이요, <백전백승의 강철의 영장>이요, <하느님의 스승>이요 하면서 철없이 놀아도 우리는 그를 민족의 반역자로까지는 규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혁명이요, 사회주의요, 조국통일이요 하면서 사람들을 속일뿐이 아니며 그저 사람들의 자유권을 유린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민족을 말살하여 인권의 뿌리 자체를 없애버리려고 책동하기 때문에 그와는 타협이 아니라 결별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계속)
 
 
 출처: http://www.n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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