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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월 국제사면위원회 북한인권 보고서
글번호  125 작성일  2007-11-03
글쓴이  청지기 조회  2436
국제 엠니스티 보고서 1997년 1월(ASA 24/01/97)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
 공개처형:일치하는 증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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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공개처형에 대한 일치하는 증언들
 
 1. 서론
 
 여러 목격자들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수년 동안 공개처형이 집행되어 왔으며 북한 정부가 국제 엠니스티에 보고한 것보다 훨씬 많은 사형 집행이 있었음이 명백해지고 있다. 이 증언들을 기초로 국제 엠니스티는 북한에서 지금도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공개처형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최근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공개처형이 집행되고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각주1) 목격자들에 따르면 북한에서의 공개처형은 심지어 어린이들까지 포함한 대규모 군중들이 보는 가운데 집행되고 있다. 대부분은 중범죄에 대하여 사형이 집행되고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절도와 같은 경범죄에 이르기까지 공개처형이 실시되고 있다.
 
 북한 정부는 공개 처형에 대해서 부인하면서 일반적 비공개 사형만 아주 예외적으로 실시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제엠니스티는 1970년과 1990년대 초 사이에 북한의 여러 지역에서 집행되었던 여러 건의 상세한 공개 처형 증언들을 입수했다. 이 증언들에 비추어 볼 때 북한 정부의 공식적 부인에도 불구하고 엠니스티가 북한의 공개 처형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충분히 근거가 있는 것이다.
 
 이 보고서의 두 번째 장에서는 엠니스티와 서신 교환 및 회의 등을 통해 나타난 북한의 사형 제도에 대한 공식적 입장에 대해 논하고 있다. 세 번째 장에서는 사형 제도를 규정하고 있는 법 조항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 네 번째 장은 위에서 언급한 공개 처형을 상세히 묘사했다. 마지막 장은 북한의 사형 제도 적용에 대한 엠니스티의 우려와 몇 가지 권고 사항을 정리하고 있다.
 
 본론에 앞서
 
 이 북한에 대한 엠니스티 보고서는 오직 인권 문제에 대해서만 언급한다. 엠니스티는 어떠한 정치 체제나 정부에 대해서 지지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 엠니스티는 각국 정부가 이 문건을 선택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네 번째 장에 언급된 공개 처형에 대한 모든 정보들은 엠니스티가 공개 처형 목격자들과 직접 인터뷰를 함으로써 취합된 것이다. 북한 인권에 대한 조사가 남한에서 이루러진 적은 없으며 북한 정부의 자료 이외의 다른 정부 또는 공정하지 못하다고 간주되는 정보원으로부터의 정보를 활용한 적도 없다.
 
 이 보고서는 공개 처형에 대해서 다룬다. 엠니스티와 인터뷰한 여러 북한 사람들은 비밀 처형도 실시되고 있다고 했지만 그 처형의 상세한 내용은 언급하지 못했다.
 
 2. 사형 제도에 대한 북한 정부의 입장
 
 북한 당국은 엠니스티에게 사형은 극악한 사건에 있어서 아주 예외적으로만 실시되며 정치적 사건의 경우에는 실시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사형 집행은 1992년이었다고 말했다. 1995년 4, 5월 엠니스티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한 당국은 사형의 주목적은 범죄 억제 효과에 있으며 더구나 "사람들이 늘 행복한 사회주의" 북한 사회에서는 범죄가 아주 적다고 강조했다.
 
 북한 당국에 따르면 공개처형은 국가보위부의 규정에 따라 명백히 금지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엠니스티는 이 규정 원본을 보자고 요청했으나 북한 당국은 그 내용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강원도 재판소 소장은 엠니스티에게 자기 지방에서 사형 집행을 위한 공식 장소는 없으며 집행될 경우 그 당시 임시로 정해지며 그 장소는 비밀에 부쳐진다고 했다.
 
 엠니스티가 북한에 체류시 모든 사형의 기록들은 중앙인민위원회가 보유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 기록들을 처리하는 여러 관리들은 최근 10년 동안 사형 건수는 매우 적다고 엠니스티에게 말했다. 한 관리는 한 두건 밖에 없었다고 했다. 변호사협회 회장은 한국 전쟁 이후로 10번의 대사면이 있었으며 1995년 노동당 창건 50주년 사면도 있었고 김일성 사망 조의 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사면이 있었다고 했다. 이 사면에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도 포함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엠니스티는 1993년 북한 당국에서 보낸 편지를 받았고 이 편지에는 1992년 공개 처형이 한 건 있었음을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주수만(30살)이라는 남자가 1992년 함흥에서 군중들의 요구로 공개 처형되었음을 밝히고 있었다. 주수만은 상습적인 악질범으로 84살의 주종은과 72살의 최련옥을 살해했다고 했다. 그는 형사법 141조에 따라 사형을 언도 받았으며 모든 법 절차는 준수했다고 했다. 그러나 1995년 엠니스티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한 당국은 주수만의 공개 처형을 시인하지 않았으며 이에 대해 북한 당국은 통역상의 실수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 관리들은 주수만의 공개 처형이 "군중들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는 정확한 뜻이 무엇이냐는 엠니스티의 질문에 명확히 해명하지 않았다. (각주2)
 
 3. 사형 제도에 대한 북한의 형법
 
 북한에서 사형은 언제나 있어왔다. 그러나 1957년 북한이 발행한 북한 형법의 주석(각주3)에 따르면 사형 제도는 결국 폐지될 것이며 현재는 최후의 극단적인 방법으로서만 이용되고 있다고 했다.
 
 1950년 형법에 따르면 사형은 네 가지 기본 처벌 조치의 하나이며 임산부를 제외한 18세 이상의 사람에게만 집행된다고 한다. "처벌은 물리적 학대나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라는 27조의 조항을 볼 때 공개 처형은 금지되어 있는 것 같다. 많은 범죄들이 사형 선고의 대상이다. 국가나 사회주의에 대한 엄중한 범죄, 즉 국가 범죄, 군대 범죄, 정부 조치에 반하는 범죄, 살인 등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
 
 1987년 개정 형법은 사형 제도는 두 가지 기본 처벌 조치 중의 하나다라고 한다.(각주 4) 사형 언도 최저 연령은 18세에서 17세로 강화되었으며(각주 5) 인간의 존엄성 모독을 금지하는 조항은 폐지되었다. 반면에 사형을 언도할 수 있는 조항은 5가지로 제한되었다.
 
 1987년 형법에서 "제국주의자와 결탁"하여 "민족해방운동과 자주통일을 위한 혁명 투쟁을 압살"하거나 "제국주의자들을 위해 조국을 배신하는 행위"에 대해 사형은 필수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52조)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경우에 사형은 선택적으로 적용된다고 한다. 조국에 대한 배신, 탈북, 간첩 또는 적을 방조하는 극단적인 경우(47조), "공화국을 전복"하거나 "반란"을 일으키려는 기도의 "선동자", "배후 조정자", 또는 "주동자"의 경우(44조) "공화국을 반대할 목적으로" "당과 정부, 관료 그리고 애국적인 인물"을 "테러하려 할 경우"(45조), 사형 또는 기타의 범죄에서 "특별히 극악한 경우".(141조)
 
 1995년 북한을 방문한 엠니스티 대표에게 북한 당국은 1995년 3월 형법이 개정되어 사형 집행의 연령을 17세에서 18세로 바꾸었다고 했다. 또 엠니스티가 해석이 모호해 정치적인 견해 및 평화적 표현에 대해서도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한 조항에 대해 아주 폭력적인 경우에만 법을 적용하도록 개정했다고 언급했다.(각주 6) 이 조항의 원문을 보자는 반복되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은 그 조항 원문과 개정 조항 목록을 제공하지 않았다.
 
 엠니스티는 북한 형법 47조도 (즉 탈북, 조국과 인민을 배신하거나 간첩 행위를 하거나 조국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하거나 적을 돕는 사람에 대한 사형 또는 구금 기간을 명시한 조항) 개정되었다고 보고 받았다. 북한 당국에 따르면 "공화국을 전복하기 위하여 외국으로 탈출하는 것과 같은 행위를 하는 사람은 형벌에 처해진다"는 식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원문은 제시하지 않았다.
 
 1992년 형사소송법 16조에 따르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재판은 공개된다고 명시되어있다. "지방 법원"은 "형법에 따라 사형 또는 최장 15년의 노동 교화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 또는 "조국 반역죄"의 1심과 피고나 공공검사가 항소할 경우 2심을 다룬다. (181조) 특별철도법원(183조)과 군대법원(182조)은 "조선인민군의 남녀" 또는 "철도노동자"가 자행한 범죄를 다룬다. 이 사건들의 경우 피고나 검찰이 항소하면 중앙 법원이 처리한다.(184조)
 
 형사소송법 251조에 따르면 "피고와 그 변호인단 그리고 손해배상 청구자 등은 고등 법원에 항소할 수 있고 공공 검찰은 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1950년 형사소송법과 1992년 개정법은 사형집행은 모든 경우에 최고인민회의 간부회의와 국가 주석 산하의 중앙인민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각주 7) 1992년 형사소송법 296조 2항은 사형 집행은 공공검사의 출석하에 실시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사형 집행 방법에 대해 북한 형법이 규정하고 있는 내용은 없다. 아,태평양법률협회 저널의 한 글에 따르면 처형 방법은 정치적 필요에 의해 정해지며 공개적으로 처형이 집행된다고 한다.(각주 8) 이 글은 그 근거로 반국가범죄를 저지는 사람은 공개 교수형에 처해진다는 1951년 정치 훈령을 예로 들었다.(각주 9) 북한 형법에 대사면 절차에 대한 규정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4. 비정부 정보원으로부터 입수한 공개 처형의 내용
 
 이 장에서는 북한에서 주로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에 자행된 수많은 공개 처형을 기술하고 있다.(각주 10) 북한의 공개 처형에 대한 이 보고서의 정보는 단지 단편적인 사실일 수 있다는 것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 전 엠니스티 보고서에 언급한 것처럼 정보의 이동에 대한 북한의 법과 정부의 통제는 인권 침해에 대한 정보 취득을 아주 어렵게 하고 있다.(각주 11)
 
 각 정보들은 대개 부분적이고 제한적이다. 그러나 여러 독자적인 정보와 목격자들의 일치하는 진술 때문에 최근에도 공개 처형이 실시되고 있다는 보고의 신뢰성은 아주 높아지고 있다.
 
 북한의 공개 처형에 대한 보고자들은 북한의 영토 밖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적시되는 것을 극히 꺼려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이름이 밝혀질 경우 북에 남아있는 자신의 가족들이 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실시된 공개 처형의 정확한 횟수를 추정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엠니스티가 인터뷰한 거의 모든 북한인 들이 공개처형을 목격했으며 그들 모두가 공개 처형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에 견주어 볼 때 북한에서 공개처형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몇몇 북한인들은 자신들의 도시에서는 공개처형이 없었거나 최근에는 아주 드물게 일어났다고 밝혔다. 다른 정보에 따르면 1982,3년과 1990년대 초에 반범죄 운동으로 인하여 함흥에서 특히 공개처형의 건수가 많았다고 한다.
 
 엠니스티가 입수한 가장 최근의 공개 처형에 대한 정보는 1990년대 초에 일어났다. (아마 북한 당국이 언급한 주수만씨 공개 처형일지도 모르겠다) 북한의 인권 침해에 대한 정보는 엠니스티가 북한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할 수 없고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취득해야 한다는 어려움 때문에 항상 늦게 입수된다.
 
 재판
 
 공개 처형 전에 진행되는 재판 절차에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한 북한인에 따르면 공개 재판은 1970년대 까지는 정식 절차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재판이 공개 처형 직전에 시행되거나(아래 "처형"편 참고) 공개 처형 6주 전쯤에 진행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공개 절차가 실제 재판인지 아니면 본 재판 뒤에 열리는 형식적 선고 절차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청진 출신의 "권모씨"(각주 12)는 엠니스티에게 1970년대 공개 재판의 절차에 대해 진술했다. 검사는 피고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이야기하고 피고에게 더 말할 것이 있냐고 묻는다. "권씨"에 따르면 모든 피고인들은 유죄를 인정하고 새 삶의 기회를 달라고 사정한다고 한다. 그러면 판사는 "이는 한 개인의 용서 문제가 아니고 헌법과 여타 법을 위반한 범죄이기에 너는 죽어 마땅하다"고 판결한다고 한다. 판결문이 낭독된 뒤 죄수는 법정 뒤에서 처벌을 기다린다. "권씨"에 따르면 14명의 강도가 청진에서 1974, 5년에 이와 같은 방식으로 처벌받았다고 한다. 그 강도단의 두목 두 사람은 처형되었고 나머지는 다른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다른 소식에 따르면 대부분 공안원이 죄인의 범죄 사실과 처벌 내용을 이야기한다. 그 공안원은 비교적 나이가 많다. 어떤 경우에 죄수는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지만 그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 말을 할 기회가 없는 경우도 많다.
 
 공고와 참여
 
 북한에서 공개 처형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공고된다. 대부분은 처형 장소의 벽이나 게시판에 공고문이 붙는 것이다. 한 북한인은 공장에도 포스터가 붙는다고 한다. 이 포스터는 대개 처형 장소와 시간, 죄인의 이름, 출생 장소와 시기, 졸업 학교와 범죄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 다른 공고 방식이 사용된다. 한 북한인은 그의 직장에서 처형 소식을 라디오를 통해서 들었다고 한다. 1980년 경에 평양에서 처형 장면을 목격한 최모씨는 엠니스티에게 "주민위원회"의 한 사람으로부터 처형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각주 13) 그 사람이 이웃 사람들에게 처형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왜 공개 처형을 공고하는 방식이 다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런데 공개 처형에 대한 공고는 사전 며칠 내지 2 주전에 시행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한 사람은 자신들이 그 공개 처형 장소에 가는 것은 의무적이라고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드시 의무는 아니라고 했다. 다른 북한인은 지방 정부 관리들은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목격자들은 그 죄인과 같은 단위나 직장에서 근무하거나 같은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이 그 처형 장소에 가도록 되어 있다고 했지만 다른 북한인은 "누구나 갈 수 있다"고 진술했다.
 
 그 처형 장소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숫자에 대한 추정치는 편차가 심하다. 몇 사람들은 수 만 명의 사람들이 참석하며 어떤 사람들은 6백에서 1천명 정도가 참석한다고 말했다. 한 북한인은 참석인들의 숫자를 정확히 추산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 장소가 꽉 찬 것은 사실이다고 했다. 여러 사람에 따르면 자신들이 아이였을 때 그 처형 장면을 목격했다고 한다. 함흥에서 여러 공개 처형 장면을 목격한 "김모씨"는 자신이 인민학교 4학년때(약 10살) 처음으로 공개 처형을 보았으며 자신과 같은 또래의 많은 아이들이 호기심으로 그 장소에 온다고 말했다.
 
 처형 장소
 
 공개 처형이 많은 사람들이 운집할 수 있는 공개 장소에서 진행된다는 데 대해 모든 진술이 일치했다. 이 장소들은 종종 도시 근교에 위치하는 데 1990년대 초반 함흥의 두 건의 공개 처형과 1988년 신의주 한 건, 1970년대 청진의 수 건의 경우에 그랬다. 신의주와 청진의 경우에는 강둑이 공개 처형 장소였다. 1970, 1986,7년의 원산 공개 처형은 모두 운동장에서 일어났다. 스포츠 경기장에서 처형이 집행된 경우도 있었다. 1980년경 평양에서 시행된 공개 처형은 평양의 남쪽 외곽인 오봉산에서 있었고, 1988년 평양의 공개 처형은 평양 시내 구역인 사마동에서 있었다. 이 장소들이 어떤 곳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죄인들과 그들의 죄
 
 국제엠니스티에 보고된 대부분의 공개 처형 건들의 경우 죄인들은 한 경우만 제외하고 모두 남자였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범죄 내용은 쌀을 훔친 경우에서 강간을 동반한 가중 살인까지 다양했다. 정치적 이유로 처형된 경우는 발견되지 않았다.
 
 공개 처형은 대개 살인죄를 범한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다. 많은 증인들은 가중 살인 사건의 경우 곧 공개 처형에 처해진다고 믿고 있었다. 강간 사건의 경우에도 공개 처형에 처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1982,3년 한 남자가 함흥에서 여자를 강간하고 쌀을 훔쳤다고 한다. 1980년경 평양에서 25살과 26살의 두 남자는 수 명의 여자를 폭행하고 강간한 혐의로 공개 처형되었다.
 
 1988년 한 남자는 살인 기도 혐의로 처형당했다. 45세의 광부인 그는 기차에서 물건을 파는 한 여자를 강도질하고 그 여자를 기차가 다리를 건너는 동안 기차 밖으로 던지려 하였다. 그 여자는 다행히 기차가 다리를 건넌 다음에 떨어져서 목숨은 구했지만 중상을 입었다.
 
 몇몇 사람들은 경범죄로 공개 처형당했다고 한다. 한 남자는 1975,6년 경 자신의 아내가 아기를 못 가진다는 이유로 아내를 구타하고 불구로 만들어 처형당했다. 1974,5년 경 두 명의 남자는 상습 절도와 협박, 공갈죄로 공개 처형당했다.
 
 경제 사범의 경우에도 사형이 집행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1982년 또는 1983년에 두 형제가 기차에서 쌀을 훔쳤다는 이유로 공개 처형되었다. 이 해에 반범죄 켐페인의 결과 훨씬 더 많은 공개 처형이 있었다고 한다. 1982년 신의주에서는 한 식당의 여지배인이 그 식당의 돈을 훔쳤다는 이유로 처형당했다.
 
 처형 집행
 
 처형은 총살과 교수형으로 집행되어 왔다. 몇몇 사람들은 1970년대 이후 교수형이 총살을 점점 대체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1990년대에도 여전히 총살이 존재한다고 진술했다.
 
 모든 처형의 경우에 죄인들은 처형 집행 전 눈을 가리고 팔, 다리, 몸은(어떤 경우는 목까지) 밧줄로 묶인다고 한다. 죄수의 입이 테잎으로 봉해지는 경우도 있다. 어떤 죄수들은 임시 받침대 위에 올라가 있고 어떤 사람들은 땅이나 화물차 위에 올라 서있는 경우도 있다. "최모씨"는 1980년 평양 오봉산에서 처형된 두 남자들은 처형 장소까지 질질 끌려왔으며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1985년 평안남도에서 처형을 목격한 "이모씨"는 군중들이 "살인자를 죽여라"고 함성을 질렀다고 말했다. 다른 죄인들은 구타당한 흔적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한 북한인은 자신은 구타 흔적은 보지 못했지만 죄인들이 초죽음이 되고 감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총살형은 대개 4명이나 6명의 경찰들에 의해 집행된다. 한 정보원에 따르면 서로 다른 지방에서 경찰들이 차출되어 처형을 집행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경우 각 처형 집행자들은 머리, 가슴 등 그들이 쏘아야 되는 몸의 부위가 정해져있다. 또 어떤 목격자는 죄인이 밧줄에 의해 지탱되는 데 한 사수는 그 밧줄을 쏘아서 그 죄인의 시체가 수레 안으로 떨어지게끔 역할을 부여받았다고 말했다. 사수와 죄인 사이의 거리는 약 10 미터 정도 된다.
 
 교수형이 집행되면 사체가 며칠 동안 그대로 방치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바로 수레에 실려서 어디론가로 보내진다. 그 사체가 어떻게 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가족들이 그 사체들을 매장할 수 있는지 또는 그 소지품을 회수할 수 있는지 분명치 않다.
 
 5. 국제엠니스티의 우려
 
 엠니스티는 북한 당국이 사형은 굉장히 드물게 집행된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도 여전히 공개 처형이 집행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북한 당국이 지난 10년 동안 한, 두 건의 처형 밖에 없었다고 하는 주장은 엠니스티가 여러 목격자들로부터 확보한 진술과 일치하지 않는다. 공개 처형은 금지되어 있다는 북한 당국의 주장은 공개 처형을 목격한 사람들의 진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제엠니스티와 사형
 
 국제엠니스티는 그 어떤 경우에도 사형을 무조건 반대한다. 사형은 생명에 대한 인간의 권리와 잔인하고 비인도적이며 치욕적인 처벌을 금지하는 국제법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 인권선언 3항과 5항은 "모든 사람은 생명, 자유, 개인의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무도 고문 또는 잔인하고 비인도적이며 치욕적인 처벌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엠니스티는 북한의 목격자들이 진술한 공개 처형이 단지 북한에서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는 것의 일부이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 우려는 엠니스티가 인터뷰한 거의 모든 사람이 최소한 한 건 또는 그 이상의 공개 처형을 진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반박하는 다른 정보가 없는 조건에서 엠니스티는 현재에도 이러한 공개 처형이 지속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또 몇몇 죄수들이 구타당한 흔적을 보여주었다는 진술에서 엠니스티는 사형을 언도받은 사람들이 그 집행 전에 가혹 행위와 고문을 당하고 있지 않은지 우려한다.
 
 국제 엠니스티는 공개처형이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의 사형수의 권리 보호를 보장하는 안전조항 9조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믿는다. 이 조항은 "사형이 집행될 때 반드시 최소한의 고통만을 주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북한의 공개 처형은 ECOSOC의 안전 조항 1조에도 위반된다. 1조는 "사형을 폐지하지 않는 국가에서 사형은 오직 최고 엄중한 범죄에 대해서만 집행되어야 하고 그 집행이 치명적이거나 다른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 고의 범죄자 이외의 사람에게 적용되어서는 안된다. 살인 기도 혐의의 오산군의 45세 남자와 1988년 평양의 한 식당 여지배인의 사형 집행 사례는 1987년 북한 형법과 이 유엔 안전조항을 위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 정부는 적어도 1987년까지는 안전조항 6조를 이행하지 않았다. 이 조항은 "사형을 언도받은 누구라도 고등 법원에 항소할 수 있으며 그러한 항소 절차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1995년 북한 당국은 사형을 언도받은 한 사람이 항소를 하지 못한 채 1987년 사형집행 당했다고 엠니스티에게 말했다. 사형에 대한 사면이나 감형에 대한 권한(안전조항 7조)이 북한의 법제도에서는 제공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6.권고
 
 국제엠니스티는 북한 당국에게 다음과 같은 조치를 이행할 것을 권고한다.
 
 - 북한 정부는 1970년 이후의 모든 사형 선고와 집행의 완벽한 리스트를 공개해야 한다. 그 리스트에는 죄인의 이름, 죄목, 재판 지역이 명기되어야 하고 공개 재판 절차가 있었는지와 처형의 장소와 방법 그리고 형 집행을 누가 목격하였는지의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 정부는 1950년 이후 사형 제도에 관한 모든 법, 규정, 정부 훈령 또 노동당의 사형에 대한 모든 결의안과 문건 등을 공개해야 한다.
 
 - 모든 범죄에 대한 법률 상의 사형 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형법 22조와 사형을 언급하고 있는 모든 조항(44, 45, 47, 52, 141조)에서 사형 항목은 제외되도록 개정되어야 한다.
 
 - 사형제도를 폐지하기 전이라도 모든 처형이 즉각 중단되어야 하고, 더 이상의 사형 선고가 이루어져서는 안되며 기존에 사형 언도를 받은 사람은 모두 감형되어야 한다.
 
 - 사형에 대한 감형이 내려지기 전이라도 북한 당국은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이 ECOSOC 안전조항 등에 부합하는 국제 인권 기준에 맞게 처우 받아야 하며 사형수에 대한 처우가 더욱 열악해져서는 안된다.
 
 - 북한 당국은 사형을 폐지하자는 시민적, 정치적 권리를 위한 국제 협약 제2 선택 의정서를 인준해야 한다.
 
 - 북한 당국은 고문과 여타 잔인하고 비인도적이며 치욕적인 처우나 처벌에 반대하는 협정에 서명하고 인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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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록 1-국제 엠니스티에게 보고된 공개처형
 년도
  장소
  처형자 수
  TD VALIGN=MIDDLE WIDTH=28%>
 죄목
  처형방법
 
 1970
  원산
  남자 1
  살인/강간 (?)
  총살
 
 1970
  청진시
  남자 2
  강도
  총살
 
 1974/75
  청진시
  남자 2
  강도
  총살
 
 1975/76
  ?
  남자 1
  아내 구타로 불구자 만듦
  총살
 
 1980경
  평양 오봉산
  남자 2(25,26살)
  수 명의 젊은 여인을 폭행하고 강간함
  총살
 
 1980대 초
  청진시
  남자 2
  ?
  교수형
 
 1982/3
  함흥시
  2 형제
  기차에서 곡식 훔침
  ?
 
 1982/3
  함흥시
  남자1 or 2
  강간 및 절도
  ?
 
 1985 (?)
  평안남도
 
 (정확한 장소는 미정)
  남자 3
  살인
  교수형
 
 1986
  원산
  남자 1
  살인/강간 (?)
  총살
 
 1987*
  원산
  남자 1
  살인/강간 (?)
  총살
 
 1988
  함경북도 오산군
  남자 1 (45살)
  살인 기도
  교수형
 
 1988
  평양 사마동
  여자 1
  횡령
  교수형
 
 1988 8월
  신의주시
  주송일
  살인
  총살
 
 1990년대 초
  함흥시
  남자 1
  살인/강간
  총살
 
 1990년대 초
 
 (1992?)*
  함흥시
  남자 1
  살인
  총살
 
 
 
 * 이 처형은 북한 당국이 언급한 것과 동일한 내용 같음(2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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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1: 지난 10년간 공개 처형이 집행되었던 나라는 아프가니스탄, 알바니아, 차드, 적도기니, 이란,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소말리아, 시리아가 있다. 리비아에서는 교수형이 집행된 이후 TV에 그 장면이 보도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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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2: 1995년 엠니스티가 북한을 방문한 동안 북한당국은 1987년 강원도의 또 다른 사형 집행을 언급했다. 그 지방 재판소장은 그 지방의 마지막 처형이었다고 말했다. 한 젊은이가 젊은 소녀를 강간하고 살해하여 처형당했다고 한다. 그 청년은 항소하지 않고 처형당했다. 처형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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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3: 심 현상, 조선형법해설, 북한 형법에 대한 주석 (일반 부분), 평양 국가출판사, 1957년
 각주 4: 22조 참조. 다른 기본적 처벌은 노동 교화이다. 다른 형태의 처벌은 "투표권 박탈", "재산 몰수", "자격증 박탈과 유예" 등이다.(형법 2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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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5: 형법 23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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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6: 국제 엠니스티 우려의 요약본 참조(ASA 24/03/93) 1993년 10월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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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7: 1950년 형소법 275(4)조, 1992년 형소법 297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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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8: 법률아시아(Lawasia), 북한 형법의 분석적 연구, Volume 4, Number 2, 197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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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9: 1951년 4월 17일 정치 훈령, 최고인민회의 간부회의 공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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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10: 부록 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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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11: "폐쇄된 빗장 안의 인권 침해"(ASA 24/12/95).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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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12: 모든 목격자들이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했다. 따라서 따옴표 안에 있는 모든 이름은 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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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13: 주민위원회의 정확한 역할은 분명치 않다. 그러나 그들은 행정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정부와 당의 정책을 전파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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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Index: ASA 24/01/97
 국제 엠니스티 1997년 1월
 
 
 출처: http://www.n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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