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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22일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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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도 국제사면위원회 북한인권 보고서
글번호  123 작성일  2007-11-03
글쓴이  청지기 조회  2337
국제엠니스티 보고서- ASA 24/06/96
 1996년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러시아 연방
 탈북난민과 노동자에 대한 추적, 협박, 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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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1. 서론
 
 2. 작업현장의 현실
 2.1 벌목장, 탄광, 건설 현장의 사전 배경
 2.2 작업 현장에서의 인권 침해
 
 3. 난민
 3.1 난민에 대한 배경 정보
 3.2 북한 난민에 대한 러시아와 북한의 정책
 3.3 북한 난민의 권리 침해
 3.3.1 북한 난민에 대한 국제엠네스티의 입장
 3.3.2 러시아 정부의 권리 침해
 3.3.3 북한 정부에 의한 권리 침해
 
 4. 권고 사항
 4.1. 러시아 연방 중앙 및 지방 정부에게
 4.2 북한 정부에게
 4.3 국제 사회와 UNHCR에게
 
 부록 1 - 모스크바 북한 난민의 성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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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러시아 연방
 북한 난민과 노동자에 대한 추적, 협박, 학대
 
 1. 서론
 
 북한의 인권 침해
 
 북한 당국은 인권에 대한 모든 정보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그 결과 인권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인권 상황이 잘 파악되고 있는 현 세계에서 북한은 인권의 현실이 가장 비밀스러운 나라로 남아있다.
 
 러시아에서 북한은 수 천명의 북한인 들이 일하는 벌목장과 다른 작업장들을 운영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북한 노동자들과 이 작업장에서 탈출하여 러시아나 여타 국가에서 망명처를 찾으려는 사람들에 대한 인권 침해를 기술하고 있다. 이 북한인들에 대한 인권 침해 사례는 처형, 가혹 행위, 북한 당국에 의한 난민 검거, 러시아 당국에 의한 강제 송환 등을 포함한다.
 
 소련과 북한의 관계는 1948년 북한 정권의 창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1960년대 한 동안 긴장 상태였지만 현재까지(소련 붕괴 후 러시아까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북한이 운영하는 수 많은 벌목장에 대한 협정은 러시아가 소련의 것을 그대로 승계했다. 심대한 인권 침해 때문에 그 벌목장이 폐쇄되어야 한다는 내외의 압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1995년 2월 그 협정은 갱신되었다. 새로운 협정에 따라 북한 당국은 벌목공들을 처우하는 데 있어 러시아 법을 준수해야 한다. 이 보고서 2장은 최근 벌목장에서의 변화와 그에 대한 엠니스티의 관심 사항을 다루고 있다.
 
 많은 노동자들이 벌목장을 비롯한 작업장들을 떠나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국가의 망명처를 찾고 있다. 이 노동자들은 강제 송환 조치까지 포함하여 북한과 러시아의 이중적인 인권 침해에 시달리고 있다. 북한에 강제로 송환된 북한인들은 구금되거나 심지어 사형에 처해지기까지 한다. 두 가지 사례에서 엠니스티는 송환된 노동자들이 처형되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북으로 송환된 노동자들의 운명에 대한 정보는 취득하기가 쉽지않다. 북한이 정보를 철저히 통제하고 국제 사회가 그들의 인권 현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보고서의 3장에서는 이 문제를 다룬다.
 
 3장에서 러시아 중앙 정부가 난민에 관한 국제법상의 자신들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음이 토의된다. 1980년대 이후 러시아의 지방 정부 인사들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그 결과 중앙 정부의 정책이 바뀌더라도 지방 정부는 새로운 정책을 이행하지 않고 과거의 관행을 고수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러시아의 법 집행 관리들에게도 종종 해당된다.
 
 이 보고서는 북한 당국이 악착같이 북한 난민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탈출할 경우 북에 있는 자신의 친척들에게 나쁜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위협을 받는다. 러시아 영토 안에서 난민들은 추적되고 있고 이 난민을 돕는 사람들은 북한 보위부로부터 위협을 받는다. 이러한 사실들은 국제 엠니스티의 보고서 "북한: 빗장 안의 인권 침해"에 기술된 내용의 일부분이다. (각주 1) 이 보고서는 북한 당국이 모든 정보를 독점하여 국제 사회의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진실 파악을 어렵게 하려 함을 말해주고 있다.
 
 이 보고서에는 러시아와 북한 당국에 보내는 여러 권고 사항도 포함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 이용된 정보는 엠니스티가 러시아의 다양한 지역을 수 차례 방문한 것을 포함하여 여러 비정부 정보원으로부터 수집한 것이다.
 
 2. 작업장의 현실
 
 2.1 벌목장, 탄광, 건설 현장의 사전 배경
 
 엠니스티의 정보에 의하면 북한인들이 구 소련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1967년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벌목장을 연이어 건설하면서 부터이다. 그 북한인들은 북한 당국이 선정해서 보통 3년 기간으로 보내진다. 북한인들은 벌목 산업 뿐아니라 건설 현장이나 탄광에서 일하기도 한다.
 
 하바롭스크와 아무르 지역의 벌목장은 1967년 소련 당 서기 브레즈네프와 북한의 김일성 간의 협정에 의해 세워졌다. 북한은 인력과 벌목장 운영을 책임지고 소련은 자연 자원을 제공했다. 수 년간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이익금은 두 나라 사이에서 분할되었다. 원래 이 벌목공들의 숫자는 20,000명에 달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2,500에서 6,000 사이이다. 북한인들은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락시 근처의 탄광에서도 일하고 있다. 국제엠니스티는 하바롭스크나 모스크바 인근의 뜨베르 등지의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북한인들도 있다고 전해들었다.
 
 벌목장이나 다른 작업장에서의 생활이 무척 힘들지만 북한인들은 서로 러시아에 일하러 가려고 경쟁이 치열하다. 월급이 북한에서 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난민들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3년 정도 일하면 냉장고나 TV를 살 정도로 돈을 모을 수 있다. 이는 북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노동자들이 러시아에서 체류할 때 받는 비자는 직장과 집 이외의 곳을 갈 수 없다. 개인적 또는 사무적인 일로 여행을 가야할 때는 러시아 지방 정부가 발급하는 특별 허가증이 필요하다.(각주 3)
 
 러시아에서 공식적으로 일자리를 찾는 것은 아주 어렵다. 오로지 북한 당국이 신임하는 성분이 깨끗한 사람들만이 러시아로 갈 수 있다. 여러 명의 관리들이 그 지원서를 승인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관련 관리들을 뇌물로 매수하면 충분히 러시아로 가는 허가증을 받는 듯 하다.(각주 4)
 
 벌목장에서 음식은 북한 당국이 제공한다. 벌목장 노동자들은 음식 상황이 매우 열악하다고 한다. 한 북한인에 따르면 한 때 러시아 의회 대표단이 벌목장을 방문하여 실정을 조사할 무렵 그가 여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통조림통이 부엌 찬장 위에 잔뜩 쌓여 있었다고 했다. 또 북한 노동자들은 전반적으로 누더기 옷을 입고 다니며 쇠약해 보이며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다닌다고 한다.
 
 러시아의 북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일주일에 1-3회 정도의 재교육 과정에 참석해야 한다고 한다. 작업장에서의 이런 과정은 북한에서 하던 것과 흡사하다고 한다. 각 과정의 주요 내용은 사람들에게 "사회주의 사회에서 가족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한 난민에 따르면 교육 과정의 주요 목표는 자신의 결점을 자아비판하고 타인들의 결점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한다. 비판의 주 문제는 반동적인 사상, 태도, 노동 기풍 등이다.
 
 북한인들이 국내로 돌아가면 마찬가지의 재교육과 다른 조치들을 받아야 한다. 한 노동자는 과거 자신이 7년간 벌목장에서 일할 때 두 번 북한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집 주변에서 2.5마일 이상을 특별 허가 없이는 나갈 수 없었다고 한다. 또다른 북한인은 자신이 유학생이었을 때 방학에 북한으로 돌아가면 약 한 달간은 재교육을 받아야 했다고 진술했다. 이 재교육 기간 동안에 학생들은 그 전에 못 보았던 선전 영화를 보아야하고 시골로 가서 현장을 방문하고 공장을 보고 정부 관리들과 일대일 면담을 진행해야 한다. 이 면담에서 학생들은 혹시 김일성주의에서 일탈한 것이 없는지 자세히 조사 받는다. 그 학생은 모든 북한 유학생들이 이 재교육기간에는 다 집결한다고 한다.
 
 벌목장을 탈출한 한 난민은 북한 노동자들이 집에 돌아가도 러시아에서 자신들이 본 것은 이야기할 수 없다고 한다. 노동자들은 자기들이 본 것은 러시아의 나무밖에 없으며 일하는 데 바빴기 때문에 러시아인들과 접촉할 기회가 없었다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한다.
 
 2.2 작업장에서의 인권 침해
 
 1990년대 초 러시아 언론이 북한의 벌목장 내의 감옥과 이곳을 탈출한 벌목공들을 북한 보위부와 소련의 경찰이 협력하여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함으로써 벌목장은 상당한 주목을 받게 되었다.(각주 5)
 
 여러 진술에 따르면 체그도민시의 벌목장 안에는 북한 당국이 운영하는 감옥이 있다고 한다. 한 탈북자는 감옥에 갇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했다. 그저 거래를 하다가 잡힌 사람들은 단지 며칠 구류된다. 그러나 말썽을 피워서 들어간 사람은 장기간 수용되며 가혹행위도 받는다. 그 감옥의 한 구석에는 사형에 처해질 죄수들이 사용했던 조그만 방이 있다고 한다. 감옥의 간수들은 북한의 보위부원들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신문에 벌목장 내 감옥 기사가 나간 후에 러시아 의회 인권 국장인 세르게이 코발요브가 이끄는 러시아 대표단이 언론에 나온 벌목장을 방문했다. 한 벌목공의 말에 따르면 그 대표단은 감옥을 찾아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감옥은 대표단이 떠난 후 바로 폐기되었으며 그 뒤로 죄수들은 다른 벌목장의 감옥으로 보내지거나 아니면 북한으로 송환되었다고 한다.
 
 벌목공들은 감옥이 모든 벌목장에 다 존재한다고 한다. 체그도민 뿐 아니라 거기에서 400km 떨어진 엘크히칸이라는 마을에도 또 다른 감옥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다.
 
 감옥은 일반 죄수용과 정치범용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한다. 정치범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북한 체제를 비판하거나 상급자들과 싸우거나 무기를 소지한 사람들이다. 탈출자들 중에서도 여러 이유로 감옥에 구금되었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가혹 행위를 당한 사람은 발견하지 못했다. 정치범은 2주 구금되어 있다가 북한으로 보내진다고 한다.
 
 엠니스티는 벌목장과 다른 작업장들에서 자행되고 있는 가혹행위에 대한 수 많은 진술들을 확보했다. 가혹 행위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무릎 사이에 각목을 끼우고 강제로 앉게 해서 끊어지는 고통을 느끼게 하는 방법도 있다. 다리 전체에 석고 깁스를 하거나 쇠 족쇄를 채우는 방법도 있다.(3.3.3 참조)
 
 벌목장에서 사형 집행도 있었다는 보고도 접했지만 엠니스티가 이를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다.
 
 위에서 언급한 탄광이나 건설장에서의 인권 침해 상황에 대해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2.1 참조) 이 장소들에서 감옥이 있다는 증언은 아직 접수하지 못했다. 노보시비르스크 근처 탄광에서 탈출한 한 노동자는 이 탄광에서 죄를 범하면 북한으로 송환된다고 한다. 그는 또 죄수들에게는 다리에 금속 족쇄가 채워진다고 한다.
 
 경과와 새로운 우려
 
 벌목장에서의 노동자들의 처우는 1990년대 초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너무나 오지이고 소련이 북한 당국에 전권을 주어 외부의 접근이 사실상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벌목장에는 소련 관리들조차도 허가증을 받아야만 출입이 되었다. 그 결과 북한 당국은 거의 마음대로 노동자들을 다루었다. 고르바쵸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신장된 개방과 언론의 자유 덕택에 언론인들이 드디어 북한의 벌목장에서의 인권 참상을 폭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참상의 공개 결과(각주 6) 벌목장 문제가 국제적 관심사가 되자 북한 당국은 벌목장에서의 노동자 처우 정책을 바꾼 것 같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벌목장은 오지여서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알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북한 당국이 벌목장에서의 노동자 대우를 변화시키고 적어도 벌목장 안의 감옥 몇 개 정도는 철거한 것 같다.
 
 여러 북한 난민들은 이제 정치범들을 벌목장안에서 처벌하지 않고 북한으로 송환하여 처벌한다고 한다. 엠니스티는 정치범의 처우가 조금은 좋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그들이 처벌되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 그리고 그들의 인권을 보호할 국제적인 감시망도 없다. 북한 당국이 정치범을 처리하는 방식이 변화한 것은 국제적인 감시를 피하기 위한 하나의 술책이 아닌가 우려된다.(각주 7)
 
 3. 난민
 
 3.1 난민에 대한 배경 정보
 
 러시아에서 일반 난민들의 처지
 
 러시아에서 북한 난민의 인권 문제는 이 나라 전체 난민 문제 중 일부분이다. 따라서 러시아 난민 상황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필요하다.
 
 1980년대 후반 러시아는 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1993년 2월)을 포함하여 여러 국제 인권 협정에 가입했다. 1993년 3월 포괄적 난민 법이 러시아 두마(의회)에 의해 채택되었다. 러시아는 UNHCR에게 모스크바에 지부 사무실 설치를 허용했다. 난민법을 이행하기 위하여 연방 이민국도 설립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좋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난민과 망명신청자들의 실제 상황에서 본질적인 변화는 없었다. 난민법이 통과된 후에도 연방국 사무소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설치된 사무실에서도 난민 승인 절차를 결정하는 데 대해 꺼려했다. 망명 희망자들은 자신들의 피난처를 요구하는 데 아주 큰 어려움이 있다고 불만을 터뜨려왔다.
 
 최근까지 난민으로 인정 받은 망명 신청자는 없다.(각주 8) 인근 나라에서 온 난민들만 간헐적으로 피난처를 제공받을 뿐이다.(각주 9)
 
 두마에서 최근 새 난민법이 심의되었다. 이 새 법은 망명처를 제공받을 권한을 대폭 축소시켰다. 난민과 망명 신청자들에게 제공되는 물질적 지원도 최소한으로 축소시켰으며 이는 국제 인권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법은 아직 채택되지 못했다.
 
 망명 요청자를 비롯한 외국인들과 비러시아 민족 계열의 러시아 시민들(대개 아시아와 중동 계열)은 종종 경찰의 폭력과 차별을 당한다. 엠니스티는 러시아 정부에게 이러한 관행에 대한 우려를 서한으로 정기적으로 보냈다. 1995년 9월 발행된 인권감시 보고서에는 모스크바에의 자행되는 인종주의적 경찰 폭력에 대해 다루고 있다.(각주 10)
 
 북한 난민 상황에 대한 소개(각주 11)
 
 러시아 북한 난민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러시아에서 일하도록 북한 당국이 파견한 사람들이 한 부류이고 다른 한 부류는 북한에서 일하다가 불법적으로 넘어온 사람들이다. 두 번째 부류는 북한에서 바로 넘어 온 사람들도 있고 중국을 거쳐서 온 사람들도 있다. 중국을 거쳐서 온 사람들은 정식 서류없이 온 사람들이 많다.
 
 엠니스티는 난민의 전체 추정치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 경찰의 컴퓨터에는 행방불명된 북한 벌목공들의 명단이 7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 숫자는 훨씬 많을 가능성이 크다. (각주 12) 노보시비르스크 근처의 탄광이나 뜨베르의 건설장을 탈출한 북한 노동자들의 숫자는 알려져있지 않다.
 
 북한이 러시아 극동 지역 벌목장을 비롯한 여러 작업장에서 북한 노동자들을 고용한 이후 많은 북한인들이 그 작업장을 탈출하였으나 본국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고 있다. (각주 13) 처음에 벌목장을 탈출하는 것은 무척 어려웠다. 북한 보위부의 통제도 강했을 뿐더러 소련 경찰도 탈출자를 체포해서 북한에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 보위부의 소련 활동을 허용하고 소련과 북한 정보부 사이에 협력을 다루고 있는 비밀 의정서에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1993년 러시아 의회 인권 국장인 세르게이 코발요브가 이 의정서를 불법이라고 선언한 이후 북-러 협력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각주 14)
 
 소련의 개방 이후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작업장을 탈출하는 노동자들이 증가했다. 이 증가의 주요 원인은 러시아와 북한의 통제가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많은 북한 노동자들은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장사를 한다. 이처럼 이동의 자유가 생기고 많은 외국인들을 접촉하면서 세상 바깥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남한의 실상을 알게 된 것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각주 15)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대부분의 경우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요인이 결정적일 때도 있다. (각주 16)
 
 북한 난민의 상황
 
 러시아의 대부분 북한 난민들은 자신들이 국제법상 난민의 지위를 받을 부여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난민 신청을 하지도 않는다. 모스크바에 있는 국제 기구와 NGO들이 부분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여러 단체들이 북한인들이 난민으로 인정받고 러시아나 다른 제 3국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모스크바에서 1995년 북한 난민 조직이 설립되었다. (아래의 성명과 부록 1 참조)
 
 그러나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북한 난민들은 그들의 권리를 거의 알고 있지 못하다. 지역 인권 단체도 거의 없고 북한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 많은 러시아 지방 관리들은 북한 난민 문제보다는 북한 당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데 더욱 관심이 많다. 따라서 북한 난민들은 러시아 당국이 난민의 권한에 대한 국제법을 알고 있음에도 그들과 접촉하는 것을 극히 꺼려한다.
 
 벌목공들의 문제가 더욱 복잡한 요인 중의 하나는 벌목장에 대한 새로운 협정이 벌목장을 허가 없이 떠나는 것을 불법이라고 규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 협정은 또 북한인들이 러시아의 법과 규정을 잘 준수하도록 지원하기 위하여 "북한의 해당 기구"가 러시아 경찰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이 조항은 북한 정부가 북한인들을 추적해서 검거하는 것을 법적으로 용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각주 17)
 
 북한 난민과 남한
 
 남한은 북한 난민을 오랫동안 받아 왔다. 그러나 북한 난민의 숫자가 증가하자 수용 절차가 길어지고 난민에게 제공되는 지원도 줄어들었다. 최근 남한 법원은 북한인도 남한인이라고 판결하였다. 그러나 이 법원의 결정이 난민의 피난처 제공 문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불명확하다. 남한에 온 북한인들은 남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 난민들은 그들이 북한이나 러시아 당국에 의해 체포되면 강제로 북한에 송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북한인들은 2년 이상 러시아에 숨어서 체류하기도 한다. 이들은 대부분 러시아에서 정착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러시아 당국이 자신들에게 망명처를 제공하지도 않고 오히려 불법외국인으로 체포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많은 북한인들은 남한으로 가서 정착하는 것을 유일한 희망으로 생각한다.
 
 반면에 어떤 북한인들은 자신들이 남한으로 가면 북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해를 입기 때문에 남한에 가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러시아에 남아 있으면 가족들에게 돌아가는 불이익도 작다고 한다. 이 때문에 몇몇 북한인들은 남으로 가지 않고 러시아에 남기를 희망한다.
 
 난민에 대한 또 다른 문제는 여권, 비자 문제와 관련이 있다. 러시아의 북한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여권을 조-러 접경 지대에서 북한 당국에게 압수당한다. 러시아 여권 비자 관할 사무국은 엠니스티에게 자신들은 북한인들에게 모든 입국 서류를 제공했다고 했지만 몇몇 북한 난민들은 그러한 서류들을 일체 받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엠니스티가 면담한 모든 북한 난민들은 자신들이 작업장을 떠날 때 여권을 폐기 처분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서 여권이 발견되면 러시아 경찰이 그들을 바로 작업장으로 되돌려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북한인들은 북에 있는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가명을 쓴다. 북한 난민들이 신분증을 소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새로운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러시아 관리들은 북한인 최경호와 러시아인 타티냐 도쿠체바의 결혼을 법적으로 등록하기를 거부했다. 최경호씨의 신분증이 없었기 때문이다.(각주 18) 하바롭스크의 여권, 비자 담당 사무소는 신분증이 없는 북한인들은 진짜 북한인들이 아니라 한국으로 가기 위해 신분을 속이는 러시아 조선족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엠니스티는 북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한 북한 난민을 알고 있다. 김선호라는 북한인은 1988년 북으로 송환되던 도중 자살을 했다. 그는 러시아 극동 지역의 한 도시인 벨로고르스크의 한 기차 앞에서 자신의 몸을 던졌다. 또 다른 북한인은 북한 보위부에게 체포되자 할복 자살을 해버렸다.
 
 어떤 북한인들은 소련의 감옥이 훨씬 안전한 장소라고 생각하여 고의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석방될 때 쯤이면 새로운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잔류하려 했다. 석방되면 북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살인을 하기도 한다. 엠니스티는 아직도 몇몇 북한인들이 모르도비아의 외국인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1995년에는 러시아 정부가 이들 중 한 명을 국제 난민법을 어기고 북으로 송환했다. (각주 19)
 
 3.2 북한 난민에 대한 러시아와 북한의 입장
 
 러시아 정부의 입장
 
 러시아 중앙 정부는 북한 난민이 러시아 영토에 체류하는 것을 허용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그러나 러시아 당국은 이 북한인들에게 난민의 지위를 부여하거나 영주권을 주려고 하지는 않았다. 사실 난민들은 러시아를 떠나 다른 나라에 정착하도록 권유받는다. 이러한 정책은 러시아 정부가 서명한 "난민의 지위에 관한 1951년 협약"에 부합되지 않는다. 러시아 당국은 북한 난민들에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적절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3.3.2 참조)
 
 그러나 이 정도의 정책만으로도 북한인들이 러시아에서 추방될 위험까지는 없을 수 있지만 현실은 항상 그렇지도 않다. 1995년 9월 러시아 행정 장관이 리은선이라는 북한인을 북한으로 송환하는 것을 승인했던 사건처럼 러시아 정부는 이러한 자신들의 정책도 철저히 준수하지 않고 있다.
 
 또다른 심각한 문제는 러시아 중앙 정부가 난민에 대하여 지방 정부를 충분히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지방정부는 중앙 정부와 달리 독자적으로 행동하며 북한 난민 문제가 있다는 사실 자체도 인정하지 않는다.(각주 20) 이 문제는 1995년 여름 엠니스티 대표단이 하바롭스크에 가서 북한 난민 문제를 토의할 때 명백하게 드러났다. 하바롭스크 당국은 북한 난민을 지원하는 문제에 대하여 명백한 거부 의사를 표명했고 그러한 문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바롭스크 내무국은 엠니스티의 활동이 러시아에게 전혀 도움이 않된다면서 엠니스티를 만나는 것도 거부했다. 이민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북한 난민을 본 적이 아예 없다면서 그 일을 외무국으로 떠넘겼다. 외무국은 북한인들의 문제가 자신의 관할권에 있지 않다고 했다. 1995년 중순 지방신문 티쿠켄스카야 즈베즈다에 실린 기사는 북한인들을 지원하는 사람들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이 지방의 언론인들에 따르면 그 기사가 연방 보안국 지역분소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고 한다. 몇몇 관리들은 공개적으로 북한인들의 북한 송환을 지지한다고 천명했다.
 
 북한 당국의 입장
 
 북한 당국은 자국민이 북한을 떠나 다른 나라에 정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는 1987년 판 북한 형법 47조에 탈북은 형사 범죄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최근 이 조항은 개정되어 탈북자에 대한 형벌을 완하하였으나 그들을 범죄시하는 것은 여전하다.(각주 21)
 
 한 북한인은 1980년대 후반 자신이 벌목공으로써 구소련에 가기 전에 북한 당국은 자신에게 "충성 서약"에 서명하도록 강제했다고 한다. 당시 북한 당국은 그에게 "만약 당신이 이 서약의 한 구절이라도 어기면 당신 뿐 아니라 당신의 가족도 처벌을 받게 되리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른 북한인들은 자기들이 왜 러시아로 가는지에 대해 서술하라고 요구받았다고 한다. 이 요구는 다름 아니라 자신들이 당시 북한의 수령인 김일성의 교시를 실행하고 조국의 이익을 위해 러시아로 감을 명확히 하라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또 북한 당국은 외교적인 채널을 동원하여 러시아 당국과 국제 기구에 압력을 가해 탈북을 방지하려고 하고 있다. 북한 정부가 러시아 정부에게 망명을 시도하는 어떤 특정 북한인이 북한의 형사 범죄자라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1957년 양국이 서명한 범인인도조약에는 형사 범죄 전과가 있는 탈북자들은 송환되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김명서 사건의 경우 북한 정부는 그가 대사관에서 금을 훔치고 살인을 저지를 범죄자라고 주장했다. (각주 22)
 
 과거에는 모스크바와 제네바의 UNHCR 사무소가 북한 당국과 접촉을 한 적이 있다. 북한 당국은 UNHCR에게 언론에 보도된 북한 난민들은 돈과 여타 재산을 훔친 범죄자이기 때문에 즉각 북한으로 송환되어 재판을 받아야 된다고 주장했다.
 
 3.3 북한 난민의 권한 침해
 
 3.3.1 북한 난민에 대한 국제엠니스티의 입장
 
 러시아도 가맹국으로 되어있는 "1951년 난민 협정 33(1)조"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떠한 체약국도 난민이 자신의 인종, 종교, 국적, 또는 정견 때문에 그의 생명이나 자유가 박해받을 수 있는 어떤 지역이나 영토로 추방하거나 송환시켜서는 안된다.
 
 북한으로 가길 원치않는 북한인들이 만약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면 처벌될 것이 확실하다. 1987년 북한의 형법 47조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조국과 인민을 배반하고 외국이나 다른 적국으로 탈출하는 공화국 시민은 최소 7년간 교화소에 구금된다.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사형에 처해질 것이다....."
 
 1996년 2월 북한 정부는 1995년에 형법 47조가 개정되었다고 엠니스티에게 알려왔다. 북한 당국에 따르면 그 조항은 이제 "공화국을 전복할 목적으로 외국으로 탈출하는 자는 처벌을 받는다"로 개정되었다고 한다.(강조 부분은 엠니스티가 함) 그러나 계속된 요구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그 원문과 그 처벌의 구체적 내용을 엠니스티에게 제공하지 않았다.
 
 엠니스티는 이 조항을 개정한 이후에도 탈북자들은 강제 송환되면 구금되든지 심지어 사형 당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순전이 북한으로 되돌아가지 않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순전히 자국을 떠나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구금되어 있는 사람들은 엠니스티의 분류에 의하면 양심수이다. 그리고 엠니스티는 어떠한 사형 제도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각주 23)
 
 또 엠니스티는 북한이 강제 송환된 탈북자들을 약식 공개 처형한다는 사실에 깊이 우려한다. (3.3.3 참조)
 
 엠니스티는 송환되어 심대한 인권 침해에 처해질 수 있는 어떠한 난민 신청인의 강제 송환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이런 맥락에서 엠니스티는 러시아 정부에게 1951년 난민법 33조에 요약된 불송환의 원리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바이다. UNHCR은 북으로 돌아가길 원하지 않고 제 3국에 피난처를 찾으려는 모든 사람들을 난민으로 인정한다.
 
 3.3.2 러시아 당국의 인권 침해
 
 인종적 동기의 인권 침해
 
 엠니스티는 북한 난민에게 가해진 여러 인종적인 학대에 대해 보고 받아 왔다. 이러한 학대는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유형이다. (3.1 참조)
 
 모스크바의 북한 난민들은 종종 신분증 검사를 위해 제지당한다. 만약 신분증을 제시하지 못하면 벌금을 물린다. 러시아 경찰은 대개 UNHCR에서 발급한 난민증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엠니스티는 러시아 경찰이 UNHCR 서류를 훼손시킨 여러 사례를 알고 있다. 신분증 검사 시 러시아 경찰은 북한인들의 몸에 돈이 얼마 있는지 확인하고 그 만한 액수의 벌금을 물린다. 한 북한인은 자신이 경찰에 의해 다섯 번 수색을 당했는데 2년 동안 벌금 액수가 200불에 달한다고 한다. 다른 북한 난민은 신분증 검사 후 얼마 동안 구금 당한 적도 있다고 한다.
 
 북한인들 중에 신분증이나 돈이 없어서 러시아 경찰에 의해 구타당한 경우도 여러 건 있었다. 1995년 중반 모스크바에서 "김모씨"는(각주 24)얼굴과 눈에 구타를 당했다.
 
 난민 지위 부여에 대한 거부
 
 러시아 정부는 일반적으로 북한인들의 난민 인정과 거주권 제공을 거부한다. 3.1장에서 언급된 것처럼 이는 러시아에 살고 있는 구소련 밖에서 온 난민들 처우 형태와 동일하다.
 
 많은 북한 난민들이 러시아에서 망명처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엠니스티가 아는 한 오직 한 사람만 난민의 법적 지위를 인정받았다. 이는 1992년 줄기찬 국내외 압력을 받고 대통령 령으로 이루어졌다. 다른 두 북한 사람은 러시아 극동지역 지방 정부로부터 거주권을 받았다. 두 가지 경우는 난민들이 러시아 내의 협조자가 있어서 언론의 도움을 청하거나 아니면 지방 정부의 인간적 친화관계를 활용한 것이다.
 
 이 외에 러시아에서 난민의 지위나 거주권을 부여받은 사례는 아직 없다. 난민의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1991년 보리스 엘친에게 망명을 요청하는 편지를 쓴 한 북한인은 임시 거주증을 부여받았으며 2년 후에는 시민권을 받을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2년 후 시민권 심사 위원회(각주 25)에 회부되었을 때 그는 거주허가증이 없기 때문에 시민권을 받을 수 없다고 통보 받았다.(각주 26) 그는 최대한 빨리 러시아를 떠나라고 명령받았다. 그는 1995년 한국으로 망명했다.
 다른 많은 경우에서 신분증이 없다는 사실이 망명지를 제공하지 않는 명분으로 작용했다. 최경호라는 북한인은 1993년에 러시아 여자와 결혼했다. 그러나 최씨가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이 결혼은 인정되지 못했다. 러시아 체류증을 얻기 위한 최경호의 노력은 모두 허사로 끝났다. 대통령 집무실에 보낸 그의 편지에 대한 회답으로 그의 사안은 지방 정부로 이관되었다. 그가 지방 정부로 찾아갔을 때 그는 오히려 체포되었으며 몇 주 후에 북한으로 송환되었다.
 
 러시아는 북한 난민, 실은 모든 외국 난민에게 망명처를 제공하려 하지 않고 있다. 많은 북한인들이 러시아 당국에 의해 북한으로 송환되었다. 이 때문에 북한 난민들은 망명처를 요청하기 위해 러시아 정부와 접촉하는 것을 극히 꺼리고 있다. 하바롭스크 이민국은 여태까지 북한인이 망명을 신청한 경우가 한 건도 없기 때문에 그들의 시각에서 볼 때는 북한 난민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엠니스티에게 말했다. 엠니스티는 러시아 당국이 고의든 아니든 망명 요청자나 잠재적 난민이 난민 지위를 신청하는 것을 저지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강제 송환
 
 엠니스티는 "닫혀진 빗장 안의 인권 침해"라는 보고서에서 러시아 정부에 의해 강제 송환되는 북한인들의 사례를 다루었다. (각주 27) 이 보고서에는 최경호씨 사례가 포함되어 있다.(위의 내용 참조)
 
 이 보고서에는 송창근의 경우도 있다. 송창근은 1995년 3월 살인에 연루되어 하바롭스크에서 체포되었다. 러시아 당국이 증거 불충분으로 그를 석방해야 했지만 그는 북한 당국으로 이관되었다. 그는 이미 남한에 망명 신청을 했고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자세한 내용은 3.3.3 장 참조)
 
 최근 송환된 경우는 리은선씨도 있다. 그는 1994년 러시아에서 망명 신청을 했다. 리씨는 안전에 대한 아무런 담보도 없이 또 그의 난민 심사 요청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었다.(각주 28)
 
 1995년 12월, 3명의 북한인이 블라디보스톡 공항에서 체포되었다. 러시아 당국은 그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첫 북한인이 북한 병사들에 의해 현장에서 총살을 당하자 러시아 당국은 나머지 두 사람을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돌려보내지 않기로 하고 블라디보스톡 감옥으로 되돌려 보냈다.(각주 29) 엠니스티는 이 북한인들을 본국으로 송환하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생명과 자유가 위협받는 곳으로는 보내지 않는다는 국제법 관행의 기본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며 따라서 러시아 정부에게도 나머지 두 사람의 러시아 망명이나 아니라 자신들이 희망하는 제 3국으로 보낼 것을 촉구했다.
 
 엠니스티는 다른 북한인들을 포함해서 위의 북한인들이 강제로 북한에 송환되어 구금되거나 심지어 사형될 지 모른다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 어떤 경우에는 강제 송환되어 약식 처형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엠니스티는 이 북한 난민을 송환하는 것은 1951년 난민 협정 33조를 정면에서 위배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러시아도 이 협정의 당사국이다.
 
 3.3.3 북한 당국에 의한 인권 침해
 
 추적과 협박
 
 엠니스티는 여전히 북한인들이 북한 보위부원들이라고 짐작되는 사람들에 의해 미행되고 검거되고 있다는 사실들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북한 난민들을 돕고 있는 사람도 북한 보위부원들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한다.(각주 30) 여러 사례에서 러시아 경찰이 북한 보위부원들을 돕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러 사례에서 북한인들이 머물고 있는 집이나 아니면 북한인들을 숨겨주고 있는 집들은 24시간 감시를 받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러시아 극동 지역 출신의 "이바노브씨"는 1990년대 초 북한 요원들이 하루 종일 주변에 있는 것을 창을 통해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극동 지역의 다른 소식통에 의하면 북한인들을 숨겨주고 있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은 늘 북한 요원들이 미행했다고 한다.
 
 극동 지역과 모스크바에서 북한 보위부는 북한 난민을 숨겨주고 있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의 집을 수색했다고 한다. 이 수색은 러시아 경찰이 보는 앞에서 이루었다고 보도되었다. 예를 들어 1995년 6월 29일 모스크바의 "권모"씨와 다른 북한인의 아파트는 한 북한 요원과 3명의 러시아 경찰에 의해 수색되었다. 그 아파트에서 한 북한인이 체포되었다. 경찰로 가는 도중 차가 시장 앞에서 잠깐 정지하는 사이 그 북한인은 용케 도주했고 새로운 은신처로 피신했다.
 
 1990대 중반 하바롭스크의 한 집은 영장없이 수색받는 동안 침대 안감을 찢어 트고 옷장 안을 조사했다고 한다. 1980년대 후반 우크라이나에서 북한 난민이 북한 보위부 요원에게 맞아 병원에 가 있는 동안 그의 아파트가 수색 당했다고 한다. 엠니스티는 모스크바의 한 학생이 러시아에 숨어 있는 동안 학생 기숙사가 완전히 수색 당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북한 보위부 요원들은 러시아 경찰을 돈으로 매수하여 이러한 수색을 자행한다고 한다.
 
 보위부 요원들은 북한인들과 그들을 숨겨주고 있는 사람들에게 언어적, 물리적 협박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한 북한 난민은 보위부 요원으로 판단되는 사람에게 구타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또 다른 북한인은 보위부원이 자신에게 "우리가 너를 죽이면 넌 자유롭게 될 수 있어"하는 협박을 들었다고 한다. 북한 난민을 돕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협박을 들었다고 한다.
 
 다른 경우에 북한 보위부원은 이미 체포된 북한인을 앞세워 다른 북한인들이 숨어 있는 아파트 문을 열게 하여 그들을 체포한다고 한다.
 
 보위부원들은 북한인들이 자주 가는 곳을 감시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남한 대사관 같은 곳이다. 러시아에서 불법으로 도주하는 루트도 감시되고 있다고 한다.
 
 엠니스티는 북한 당국이 북한인들을 미행하고 협박하는 것에 대해 강력히 비판한다. 이는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대한 국제협약 12조를 위반하는 것이다.
 
 탈북자 가족에 대한 북한 당국의 처벌
 
 북한 당국이 탈북자들의 가족도 처벌을 가한다는 소식에 대해 엠니스티는 심히 우려하고 있다. 많은 북한인들이 자신들이 북을 떠나기 전에 그와 같은 주의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엠니스티는 탈북자나 정치범들의 가족이 자신들의 집에서 어디 다른 곳으로 강제 이동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엠니스티는 탈북자들의 친척에 대한 처벌을 강력히 비난한다. 그리고 탈북이나 정치적 이유로 감금된 모든 사람들은 양심수라고 간주한다.
 
 체포된 난민에 대한 가혹 행위
 
 북한에 의해 체포된 북한인들은 심한 가혹 행위를 당한다. 박모씨는 1989년 북한에 의해 체포된 뒤 러시아 당국에 의해 구출되었다. 그는 의식을 잃을 정도로 구타당했다. 몇 가지 가혹 행위가 엠니스티에 보고되었다. 북한으로 송환되는 벌목공들은 다리 전체에 깁스를 시켜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다. "최모"씨와 다른 북한인들은 엠니스티와 인터뷰에서 죄수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족쇄를 채운 것을 보았다고 했다. 한 난민은 엠니스티에게 여러 번 도망쳐 도망가지 못하게 코에 쇠창살을 꼽아 밧줄에 묶여 있는 한 북한인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엠니스티는 그런 처우가 가혹하고 비인간적이며 치욕적인 것이라고 비난하는 바이다.
 
 강제 송환된 북한인들에 대한 처형
 
 엠니스티는 송환된 북한인들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수많이 입수했다. 이 정보들에 대한 구체적인 물증은 없었지만 최근 조-러 국경지대에서 발생한 사건은 충격적인 확증을 제공하고 있다.
 
 [송창근]
 
 1996년 6월 해안 지대인 크리모르스키 크레이의 주지사는 기자회견에서 한 북한인이 북으로 송환되는 현장에서 그것도 러시아 군인들 앞에서 북한 병사들에게 총살당했다고 이야기 했다. 주지사는 3명의 북한인이 한국 위조 여권을 가지고 한국으로 떠나려고 블라디보스톡 공항에 있을 때 체포되었다고 한다. 조사 과정에서 이 사람들이 북한인임이 밝혀졌다. 러시아 당국은 그들을 북한으로 보내기로 결정했으나 첫 번째 사람이 현장에서 총살되자 러시아 당국은 나머지 두 사람을 북한으로 보내지 않고 다시 블라디보스톡 감옥으로 구금하기로 결정했다.
 
 다른 사례는 송창근의 경우이다. 그는 1995년 북한 당국으로 이관되었다. 러시아의 믿을 만한 소식통은 송창근이 북한 당국으로 이관된 뒤 러시아 벌목장에서 처형되었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1996년 초에 북한은 엠니스티에게 송창근의 사진을 제공하며 그 사진이 송창근이 북으로 송환된 뒤 찍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었으며 엠니스티는 여전히 그의 거취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4. 권고 사항
 
 4.1. 러시아 연방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게
 
 북한 작업장과 관련하여 엠니스티는 러시아 당국에게 이 작업장에 대한 엄격한 통제권을 행사하라고 촉구한다. 러시아 당국은 특히 다음의 사항을 확실히 보장해야 한다.
 
 . 북한인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고 해서 구금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 북한인이 작업장이나 북한으로 돌아가거나 북한에서 돌아올 때 다리에 족쇄를 하거나 석고 깁스를 하고 다리 사이에 각목을 끼우는 등의 가혹행위를 받아서는 안된다;
 
 .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고 해서 사형, 구금, 가혹 행위를 당할 우려가 있는 북한인들은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만기를 채우지 못했거나 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은 북한 노동자를 북한으로 되돌려 보낼 때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각주 31)
 
 . 러시아 연방에 있는 북한 난민들에게 러시아는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
 
 . 러시아에 있는 모든 난민들과 망명 요청자들의 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 이 조치에는 망명 요청자가 자신의 행정 절차를 완료하기 전에 자신의 출신국으로 송환되어서는 안된다는 보장이 있어야 한다. 즉 그들의 망명 신청이 이민국에 의해 검토되고 또 그들에게 항소할 권리가 부여되기 전에 그들이 송환되어서는 안된다;
 
 . 자신의 자유와 생명이 위협받는 그 어떠한 국가에도 송환되어서는 안된다는 국제법의 기본 원칙을 존중한다. 즉 북한인들이 처형이나 구금될 지 모르는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어서는 안된다.
 
 . 북한인과 다른 난민들이 러시아에서 난민으로서 충분한 권리를 행사한다. 특히 북한 보위부 요원들과 러시아의 인종 차별적인 폭력으로부터 이들이 보호되어야 한다. 이 난민의 권리를 위반하는 사람들은 법적 제재를 받아야 한다.
 
 . 러시아에서 난민들을 검거하기 위한 북한 보위부원들의 모든 활동을 중지시켜야 한다.
 
 . 북한 보위부원들이 북한인들을 검거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하여 벌목장에 대한 1995년 협정 14조를 개정해야 한다.
 
 4.2 북한 당국에게
 
 엠니스티는 북한 당국이 러시아 연방에 거주하는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을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를 실행해야 한다;
 
 
 . 북한인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고 해서 구금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와 같은 이유로 이미 구속되어 있는 북한인은 즉각 무조건적으로 석방되어야 한다;
 
 
 . 족쇄, 석고 깁스, 다리 사이에 각목을 끼우는 등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며 치욕적인 온갖 종류의 가혹행위는 즉각 중지되어야 한다;
 
 .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고 해서 북으로 송환된 북한인들이 구금을 비롯한 다른 형태의 처벌을 받아서는 안된다. 이미 구금된 사람들은 즉각 조건 없이 석방되어야 한다.
 
 자신의 출신국을 떠나길 희망하는 북한인들에 대하여 엠니스티는 북한 정부에게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해줄 것을 촉구한다;
 
 . 러시아 당국이 보도한 1996년 조-러 국경에서 발생한 약식 처형에 대하여 충분한 조사를 시작하고 그 책임자를 처벌하라;
 
 . "모든 이는 자국을 포함하여 어떤 국가든 떠날 자유가 있다"고 규정한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협약 12조에 부합되게 "탈북"에 대한 정책을 즉각 변경하라. 그리고 북한 시민들이 북한을 장애 없이 떠날 수 있게 허용하라;
 
 . 탈북자와 그 지원자들을 체포하고 협박하려고 하는 모든 활동을 즉각 중지하라. 또 탈북자의 친척들을 처벌하겠다고 북한인들을 위협하는 관행을 즉각 중지하라;
 
 . 보고서 "닫혀진 빗장 안의 인권 침해와 리은선의 송환/ 북한의 안전에 대한 위협"에 언급된 강제 송환된 북한들의 거주와 법적 지위에 대한 확실한 서류 정보를 엠니스티에 제공하라. 이들 중에는 최경호, 리은선, 송창근, 최연단, 리송남이 포함된다;
 
 . 강제 송환된 북한인 그 누구도 단지 그들이 북한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양심수로 구금되거나 사형에 집행되어서는 안된다.
 
 . 어떤 북한인도 북한으로 송환되거나 그 어느 때에도 가혹 행위를 받아서는 안된다.
 
 . 고문과 여타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며 치욕적인 처벌이나 처우에 반대하는 1987년 협정(CAT)에 비준하라.
 
 4.3 국제 사회와 UNHCR에게
 
 엠니스티는 국제 사회에 북한과 러시아 당국을 압박하여 위에 언급한 권고 사항을 준수하도록 할 것을 촉구한다. 엠니스티는 특히 UNHCR이 러시아 당국을 압박하여 1951년 난민 협정을 성실히 이행하여 러시아에서 북한 난민의 망명처를 제공하고 그들을 충분히 보호해 줄 수 있도록 촉구한다. 또 엠니스티는 UNHCR이 러시아 연방의 지방 관리들을 교육하여 난민들을 잘 보호해 줄 수 있도록 촉구한다.
 
 ------------------------------------------------------------부록 1 - 모스크바 북한 난민 성명
 
 아래의 성명은 모스크바 북한 난민 협회가 발표한 것이다. 이 성명서의 견해는 반드시 엠니스티의 견해와 일치하는 것은 아님을 밝혀둔다.
 
 북한을 탈출한 난민들의 성명서
 
 우리는 북한을 탈출한 난민들이다. 우리는 자유를 찾으러 왔다. 우리는 세습 독재에 의한 정치적 압제와 전례없는 인권 탄압을 거부한다.
 
 우리는 우리 조국의 통일을 희망한다. 우리가 해외에 머무는 한 우리는 개인 안전과 생활 유지의 문제에 직면한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1. 최근 북한 당국은 난민들이 남한 정부에 의해 납치되고 있다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많은 북한인들이 북한 정부에 의해 납치되고 북한으로 강제송환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결연히 맞설 것이며 이와 같은 북한 정부의 비인간적이고 비이성적인 진실 왜곡을 강력히 비난한다.
 
 2. 우리는 우리가 머무르는 나라의 법과 질서를 준수한다. 그리고 우리는 국내, 국제법에 명시된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3. 우리가 대한 민국에 망명이 허용되거나 러시아의 거주권이 허용될 때까지 우리는 우리의 기본 생활을 함께 의지해 갈 수 있도록 맹세한다.
 
 4. 우리는 유엔, 국제 적십자, 교회, 인권 단체들의 지지와 격려를 호소한다.
 
 5. 우리는 우리의 조직이 조국의 통일을 위한 강력하고 선봉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1994년 12월 30일
 
 탈북자 난민협회
 
 각주 1: AI 번호: ASA24/12/95, 1995년 12월 발행
 
 각주 2: 한 탈북자의 추정으로는 노보시비르스크 근처 탄광에 약 3000명의 북한인들이 일하고 있다고 한다. 하바롭스크와 뜨베르에 몇 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각주 3: 새 협정 14-5 조를 참조할 것. 구 협정이 동일한 조항을 가지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나 그럴 가능성이 많다.
 
 각주 4: 북한인들은 엠니스티에게 자신들이 경찰들에게 시계, 술, 돈 같은 물품을 주었다고 이야기했다. 한 북한인은 경찰에게 심지어 냉장고를 가져다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각주 5: 탈북자를 체포하기 위한 러시와 북한 당국의 협력에 대해서는 이 보고서 3 장을 참조할 것.
 
 
 각주 6: 위에 언급한 폭로의 결과 북한과 러시아 당국은 상당한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러시아 인권 운동가들의 압력 하에 러시아 정부는 1993년 12월 벌목장 협정이 만료된 후 그 협정을 갱신할 것을 고려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 인권 관련 조항을 포함시키기로 했다. 새 협정은 1995년 2월 긴 토론과 북한의 인권 조항 삽입 문제에 대한 초기 반대를 무릅쓰고 서명되었다.
 
 각주 7: 국제엠니스티는 보고서 "닫혀진 빗장 안의 인권 침해"에서 북한 당국의 이러한 정책을 상세히 정리하고 비판했다. (AI 번호: ASA 24/12/95) 1995년 12월 발간
 
 각주 8: 1996년 3월 수 명의 아프간 가족들이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각주 9: 과거에 소련의 일부분이었던 나라들을 지칭하기 위해 이 용어가 쓰인다.
 
 각주 10: Human Rights Watch/Helsinki, “범죄 또는 단순한 처벌?: 모스크바 경찰의 인종주의적 공격”, 1995년 9월 발간.
 
 각주 11: 북한으로 돌아가기 원하지 않는 모든 북한인들은 이 보고서에서 난민으로 지칭되었다. UNHCR도 같은 입장이다. 자세한 설명은 3.3.1 장 참조.
 
 각주 12: 조-러 사이에 과거 협정이 만료되자 양 측은 1년간 새로운 협정의 내용에 대해 토의했다.(2장 참조) 이 기간 동안 벌목장은 운영되지 않았고 북한 당국은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불하지도 않고 음식을 공급하지도 않았다. 일부 노동자들은 북으로 돌아갔으나 2,500명 정도는 러시아에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일자리를 찾아 큰 도시로 떠났다. 이 사람들이 북한 당국에 의해 실종자로 처리될 가능성은 작다. 이들 중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했는지도 불분명하다.
 
 각주 13: 러시아 극동지역의 벌목장들이 다른 작업장에 비해 더 많은 정보가 유출되었기 때문에 이 보고서에서 훨씬 많이 다루어졌다. 그러나 다른 작업장은 벌목장보다 훨씬 좋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무런 근거도 없다.
 각주 14: 북한 보위부는 러시아 영토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다. 몇몇 경우에는 러시아 경찰들과 협력하고 있다. (3.3.3 참조)
 
 
 각주 15: 러시아 극동 지역은 한국 상품과 사업가 및 여타 한국인으로 넘쳐난다. 한국이 억압적이고 가난한 나라라고 들었던 북한인들이 한국의 현실이 교육받은 것과 다른 것을 깨닫는다. 몇몇 북한인들은 러시아에 있을 때 한국 라디오를 듣고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엠니스티에게 진술했다.
 
 각주 16: 엠니스티는 탈북자의 가족이 처벌 받은 두 가지 사례를 알고 있다. 이 탈북자들은 만약 북으로 송환되면 같은 상황에 처할 것을 우려했다. 또 다른 북한인은 현 북한의 정치 체제에서는 아무런 희망이 없기 때문에 탈출한다고 밝혔다.
 
 각주 17: 이 부분은 1995년 2월에 체결된 벌목장 관련 협정 14(5)/(12)를 참조할 것. 14(5)조는 "이 신분증은 작업장과 임시 거주지에서만 유효하다"고 써있다. 14(12)조는 "북한 측의 해당 기관은 러시아 기관을 도와 북한 시민이 러시아 연방 내의 외국인 거주와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을 준수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되어 있다.
 
 각주 18: 3.3.2 장 참조
 
 각주 19: 러시아/북한:리은선 송환/북한의 안전에 대한 위협(AI 번호:EUR46/06/09) 참조 1996년 2월 발간.
 
 각주 20: 몇 가지 예외가 있음이 언급되어야 한다. 러시아 극동지역의 몇 관리들은 북한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깊숙이 개입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은 중앙 정부의 정책에만 국한되고 북한인들에 대한 난민 지위 부여에 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각주 21: 3.3.1 장 참조
 
 각주 22: 김명서는 러시아의 유학생이었다. 그가 학생 아파트에서 사라진 뒤 북한 당국이 그를 의심했다. 그는 북한으로 돌아가길 원하지 않았으며 1992년 러시아에서 망명을 허용 받았다.
 
 각주 23: 강제 송환된 북한인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국제엠니스티는 보고서 "닫혀진 빗장 안의 인권 침해" 참조 (AI 번호: ASA 24/12/95) 1995년 12월 발간
 
 각주 24: 인용부호 안에 든 모든 이름은 안전상의 이유로 쓴 가명이다.
 
 각주 25: 시민권 위원회는 망명과 시민권 문제를 다루는 대통령 집무실의 기관이다.
 
 
 각주 26: 거주허가 제도는 소련의 시민 거주를 통제하는 방법으로 활용된 것이다. 이 제도는 완전한 이동의 자유를 명시한 1993년 헌법에 의해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모스크바와 페테레스부르그에서는 여전히 실시되고 있다.
 
 각주 27: AI 번호: ASA 24/12/95, 1995년 12월 발간
 
 각주 28: 이 사례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리은선 송환/북한의 안전에 대한 위협(AI 번호:EUR46/06/09) 참조 1996년 2월 발간.
 
 각주 29: 이 사례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강제 송환된 북한 난민의 처벌"제하의 3.3.3 장 참조
 
 각주 30: 어떤 경우에는 북한 보위부원들이 임시로 개인들을 고용하여 일을 맡기기도 한다. 이 보고서는 그러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각주 31: 벌목장에 대한 1995년 협정의 3조는 러시아 연방의 벌목공 최소 작업 기간을 3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AI 번호: ASA 24/06/96
 1996년 9월 국제 엠니스티
 
 
 출처: http://www.nkchosun.com/
 
 
이전자료 : 1997년도 국제사면위원회 북한인권 연례보고서
다음자료 : 1993년도 국제사면위원회 북한인권 보고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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