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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도 국제사면위원회 북한인권 보고서-3
글번호  122 작성일  2007-11-03
글쓴이  청지기 조회  2104
AI 번호: ASA 24/07/94
 
 Amnesty International
 International Secretariat 1 Easton Street London WC1X 8DJ United Kingdom
 Tel: (44) (71) 413 5500
 Fax: (44) (71) 956 1157
 
 북 한
 
 시바타 고조와 그의 가족의 처지에 대한 우려
 
 요약
 
 엠니스티는 시바타 고조의 행방에 대하여 우려를 표하는 바이다. 그의 사례는 엠니스티 1993년 10월 북한 관련 보고서(ASA 24/03/93)에 기술되어 있다. 북한 정부는 1994년 6월 9일 엠니스티에 보낸 편지에서 시바타 고조와 그의 모든 가족이 1990년 3월 열차 사고로 숨졌다고 알려왔다. 그러나 이 주장은 엠니스티가 독자적으로 확보한 정보와 일치하지 않는다. 시바타 고조는 당시에 여전히 구금되어 있었다고 한다. 엠니스티는 북한 정부에게 만약 그들이 숨졌다면 그에 대한 증거를 문서로 제출하라고 요구한다.
 
 북한의 정치범 구금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알려진 바는 극히 적다. 북한 정부는 엠니스티와 같은 인권 단체가 북한 내에서 인권 실태를 조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1993년 엠니스티는 북한에 정치적 이유로 구금되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일정한 정보를 입수했다. 시바타 고조의 사례는 엠니스티가 처음 공식적으로 발간하는 것이다. 엠니스티는 수 천명의 정치범들이 북한에 구금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엠니스티는 북한의 임의 구금, 고문, 가혹행위, 만연한 사형 집행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시바타 고조의 북한에서의 체포와 구금
 
 시바타 고조의 마지막 소식은 1990년 말 평안남도 승호리에 있는 수용소에 구금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정치적 혐의로 1984년 이후 거기에 수감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재일교포 신성숙과 결혼한 일본 시민이었다. 1960년에 이 부부는 3명의 아이들과 함께 북으로 이주했다. 그는 평양의 한 출판사 일본어 편집원으로 일했다.
 
 시바타 고조는 1962년 처음으로 체포되었다. 국제앰네스티는 그가 체포된 것은 재일교포의 부인으로 북한에 재정착한 일본인 아내들의 북한 정부에 항의한 사건과 연관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비록 북한 당국의 답변은 다르지만 말이다.(조선인과 결혼하여 1960년대 초 북한으로 간 일본 여성들은 1,800명 정도이다. 1962년 한 비공식적 소식통에 따르면 일부 일본 여성들은 일본 친척을 방문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시바타 고조는 그들로 하여금 북한 정부에 항의하라고 부추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 이후 북한 정부는 일본에 있을 당시 시바타 고조의 행적을 조사했다. 그 조사에서 시바타 고조는 1950년대 후반 일본 노동청에서 근무할 당시 일본 경찰관의 집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 1964년 구속되어 간첩죄로 20년형을 선고받았다. 구금되어 있는 동안 그는 채석장 등에서 수 년간 강제 노동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건강 악화로 수감 말년에는 강제 노동에서 면제되었다.
 
 시바타 고조의 만기는 1984년에 끝났다. 그러나 그는 석방되지 않았다. 비공식적 소식통에 의하면 그의 구금이 지속된 것은 정부가 그의 직장을 배정할 능력이 없었던 사정과 연관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 정부는 그가 반국가 음모에 연루되어 추가로 6년을 더 선고받았다고 주장했다. 비공식적 정보에 의하면 그는 1990년 말에 평안남도 승호리 수용소에 있었고 당시 그의 건강은 무척 않좋았다고 한다. 승호리에 수감되어있던 사람들에 따르면 그는 거의 걷지도 못하고 그의 식사 배급량을 먹을 수도 없었으며 혼자 지내면서 우울증에 걸린 것으로 보였다고 했다. 시바타 고조와 신성숙의 일본 친척들은 1960년대 중순에 그들로부터 편지를 받지 못했다. 여러 해 시바타 고조의 형이 그와 연락을 시도했지만 허사였다. 1992년 일본에서 살고 있는 시바타 고조의 친척들은 그가 아직 살아있으며 구금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소식들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엠니스티에 보낸 북한 정부의 답변
 
 1994년 6월 9일 북한 정부는 제네바 유엔 주재 북한 영주대표부를 통해 엠니스티에 시바타 고조와 그의 가족에 대한 소식을 제공하였다.
 그 소식에 의하면 시바타 고조는 북한으로 이주한 직후 이름을 김호남으로 바꾸었다. 그는 간첩죄로 체포되어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구금되어 있는 동안 다른 죄수들로 하여금 반국가 음모를 꾸미게 하여 추가로 6년 형을 더 선고받았다. 북한당국은 시바타 고조가 1990년 1월 20일 석방되었으며 그의 가족들과 재결합하였다고 하였다. 그들은 1990년 3월 18일 함경남도 단천시 룡대동으로 이사하기 전에 평안남도 문덕읍에 몇 주간 거주했었으며, 단천시에서 영구적으로 정착할 목적이었다고 한다. 북한당국에 의하면 시바타 고조와 그의 모든 가족들이 기차사고로 모두 사망했다고 한다.
 
 시바타 고조의 현 행방에 대한 엠니스티의 우려
 
 북한 당국의 정보는 엠니스티가 다른 통로를 통해 입수한 정보와 부합하지 않는다. 가장 큰 차이는 시바타 고조가 사망했다고 하는 날짜이다. 엠니스티의 비공식적 소식통에 의하면 그는 1990년 말에 여전히 승호리에 구금되어 있었다. 이는 그가 1990년 1월에 석방되어 3월에 죽었다는 것과 모순된다. 엠니스티는 그가 그 열차 사고에서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아마 다른 이유로 사망했으며 그의 가족들은 여전히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북한 당국의 대답은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북한 당국은 시바타 고조의 아내인 신성숙이 왜 30년 동안이나 일본 친척들과 소식이 없었는지 해명하지 않고 있다. 엠니스티는 그녀도 구금되었거나 아니면 이동의 자유와 적어도 몇 년 동안은 친척들과 교류를 제약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시바타 고조가 1990년 석방된 이후 왜 일본의 그의 친척들과 연락을 시도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해명도 없다. 그리고 세 아들이 각각 38, 33, 28세가 되어 결혼해서 가족까지 있을 가능성이 많은 데 왜 그들 모두가 같은 기차에 타서 사고를 당했는지도 이해가 잘 안 되는 대목이다. 엠니스티는 시바타 고조가 그의 국적과 이름을 바꾸기를 끝까지 거부했다고 알고 있다. 함께 구금되었던 사람들도 그의 이름을 시바타 고조로 알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북한 정부의 그가 이름을 바꾸었다는 주장은 믿기 수긍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점들에 비추어 볼 때 엠니스티는 북한정부에게 다음과 같은 추가 정보를 제공할 것을 요구한다;
 
 - 시바타 고조가 "동료 죄수들을 사주하여 반국가 음모를 꾸며" 추가 6년 형량을 더 받은 데 대한 정보. 이 정보에는 그의 혐의에 대한 구체적 내용, 그의 재판 날짜, 그가 형량을 받은 이유가 포함되어야 한다.
 
 - 시바타 고조가 김호남으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공식 문서.
 
 - 열차 사고로 그의 가족이 죽었다고 하는 증거 문서. 이 문서에는 그 사고의 목격자 증언과 이 사고에 대한 공식적 조사 결과가 포함되어야 한다.
 
 - 기차 사고로 죽은 시바타 고조 가족 식구들의 정보. 이 정보에는 그들의 결혼 여부와 사고가 나기 전 거주지에 대한 정보가 포함되어야 한다.
 
 - 그들의 사체를 해부했다면 그 해부한 날짜, 시간, 장소와 해부 결과.
 
 - 시바타 고조와 신성숙의 친척들에게 그들의 매장 장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또 살아있는 혈육들이 있다면 그들의 이름과 주소, 그리고 연락을 취할 방법 등을 알려줘야 한다.
 
 이 보고서는 북한이 아주 고립되어 있고 국제 사회의 많은 비판을 받을 때 발간된다. 이 보고서는 오직 인권 문제만을 다루고 있다. 엠니스티는 모든 나라의 인권 침해에 대해 보고서를 제출한다. 엠니스티는 정부나 다른 단체들이 이 정보의 일부분만을 취사 선택해서 활용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출처: http://www.nkchosun.com/
 
 
이전자료 : 1996년도 국제사면위원회 북한인권 보고서
다음자료 : 1993년도 국제사면위원회 북한인권 보고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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