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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덤 하우스 1999년 제네바 유엔 인권위원회 특별보고서
글번호  115 작성일  2007-11-03
글쓴이  청지기 조회  2161
Freedom House :
 The Most Repressive Regimes of 1998
 
 (A Special Report to the 55th Session of the United Nations Commission on Human Rights in Geneva, 1999)
 
 
 North Korea
 Political Rights : 7
 Civil Liberties : 7
 Status : Not Free
 ------------------------------------------------------------
 
 
 미 「프리덤 하우스」
 1998년 가장 억압적인 국가들
 
 (1999년 제네바 제 55차 유엔 인권 위원회 특별 보고서)
 
 북한편
 
 정치적 권리: 7
 시민적 자유: 7
 자유도 평가: 부(不)자유
 
 
 개괄
 
 1998년 9월 9일 북한은 경제 붕괴와 대량의 기아, 핵무기 개발에 대한 국제 사회의 우려를 뒤로 하고 정권 창립 50주년을 기념했다. 한국의 대북 유화적인 정부의 승계와 북한의 경제 침체가 맞물려 올 해 북한 정부가 태도를 바꾸어 개방적인 방향으로 향하지 않겠냐는 추측도 나왔다. 그러나 1998년이 끝나가는 지금 북한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봉쇄되고 비밀스런 사회로 남아있다. 변화의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북한 정권은 2차대전 종전과 한반도의 분단 이후 1948년 9월 9일에 창립되었다. 과거 소련 군대 장교였던 김일성은 모스크바의 지원을 받아 북한 정부의 수반이 되었다. 1950년 6월 김일성은 소련 군대의 지원으로 남한을 침공하여 전 한반도를 공산주의화하려고 하였다. 3년에 걸친 한국전쟁은 미국과 중국 군대의 개입으로 휴전하였으며 그 결과 한국은 두 개의 국가로 분단이 고착화되고 말았다.
 
 냉전 시기를 통하여 김일성은 막스레닌주의를 북한의 현실에 맞게 적용한 사상이라고 하는 주체 사상과 극심한 우상화를 통해 권력 기반을 공공히 해나갔다. 실제로 주체 사상은 김일성 통치하의 공산주의 영도 체계를 이념적으로 정당화했으며 스탈린주의적 경제 체계를 비롯하여 공(公)과 사(私)를 가릴 것 없이 사회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쳤다.
 
 1990년대에 이르러 북한 경제는 매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1991년 소련의 해체는 북한 정부의 가장 큰 후원자가 사라지고 국제 사회에서 더욱 고립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하여 북한은 지속적으로 핵무기 계획에 대한 국제 협상을 강요당해야 했고 그 보상으로 식량 지원을 받았다.
 
 김일성은 1994년 심장 마비로 돌연 사망하고 그의 아들 김정일에게 권력을 물려줌으로써 사상 최초의 공산주의 왕위 계승을 기록했다. 김정일은 그의 아버지가 죽은 이후 사실상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 권력 승계는 몇 년동안 미루었다. 1997년 10월에 이르러서야 노동당의 총비서로 추대되었다.
 
 1998년에 북한의 형식상 기구인 최고인민회의 선거가 진행되었고 김정일은 국가의 수반으로 등극하였다. 7월 26일 8년 만에 비로서 열린 선거에서 687명이 제 10차 최고인민회의 대표로 선출되었다. 헌법에는 5년마다 선거를 실시할 것을 규정하고 있지만 북한은 5년째 되는 1995년에 선거를 하지 않았다. 687개 선거구에서는 각 선거구마다 오직 한 사람의 후보만이 등록하였다. 지난 선거에서는 31%의 새 인물이 등용되었으나 이번 선거에서는 67%가 교체되었다. 이는 북한 지배집단 내 세대 교체와 이념 교체가 진행중임을 시사한다.
 
 제 10차 최고인민회의는 김정일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됨을 의미한다. 최고인민회의는 9월 5일 평양에서 소집되어 사회주의 헌법(김일성 헌법으로 개칭)을 개정하고 주석직을 폐지했다. 김정일이 승계할 것이라고 생각한 주석직이 폐지된 것은 예상 못한 일이었다. 김정일은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선출되었다. 이 직위는 북한 군대의 최고위직이다. 주석직이 폐지된 상태에서 국방위원회는 북한 사회의 최고 권력기관이 되었으며 그 위원장은 사실상의 국가 원수가 되었다. 김정일은 또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군최고사령관이라는 두 개 지위을 차지하고 있다.
 
 8월 31일 북한은 일본의 홋까이도를 넘어 태평양으로 떨어지는 3단계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는 주변국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 정부는 이 발사를 인공위성 실험이었다고 강변했다. 1998년 국제 사회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의지에 대해 심각히 우려했다. 평양 근교에 무기 개발 요새라고 추정되는 장소가 여러 곳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현지 시찰 요구에 대해 북한은 현금 300만불과 식량 지원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 요구는 거부되었고 사태의 심각성은 1994년 북-미 합의서를 파기할 가능성까지 몰고갔다. 1994년 북-미 합의서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핵무기 전용이 불가능한 경수로 건설을 지원받는 내용이었다.
 
 1998년 북한이 부분적 경제 개방을 시도하려는 조짐이 있었다. 북한 당국과 한국 기업 "현대" 사이에 금강산 개발과 관광객 유치를 위한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에서 현대는 향후 6년간 9억 6백만 달러를 지불하기로 약속했다. 1998년 말 아주 엄격한 조건에서 일단의 한국 관광객들이 금강산을 방문했다. 북한 당국이 현재의 라진-선봉, 남포-원산 이외에 추가로 자유경제지대를 창설하려는 조짐이 있었다. 북한 당국은 자유경제지대를 이용하여 북한 사회의 근본적 개혁없이 경제를 회생시키려 하고 있다. 9월 최고인민대의원대회는 이러한 경제지대 내에서 사업과 교역 활동은 소위 "사회주의 협동 집단"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결정했다.
 
 계속된 수해와 가뭄, 농업 정책의 실패, 구공산주의권으로 부터의 지원 중단 등의 원인으로 북한은 심각한 식량난에 빠졌다. 북한 식량난의 전체 실상을 알아내기는 어렵지만 북-중 국경 지역의 정보를 통해 추산컨데 북한의 기아는 아주 심각하며 심지어 인육을 먹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 당국은 국제 인권 및 식량 지원 단체의 실태 조사 요구를 거절했다. 9월 북한 내 최대 구호 단체인 "국경없는 의사회"는 지원품 배급에 있어 북한 당국이 부당한 간섭을 한다는 이유로 북한에서 철수했다. 북한 당국은 안전을 핑계 삼아 유엔 활동가들이 지방의 기아문제 실상을 확인하려는 요구를 거부했다. 국제 식량 지원이 군대와 정부 관리들에게 전용된다는 보도도 줄곧 있어왔다.
 
 1998년 남북한 당국은 오랜 적대상태를 종식하기 위한 대화를 재개했지만 아무런 성과를 보지 못했다. 4월에 4년만에 처음으로 북경에서 정부 당국자간 직접 대화가 있었다. 그 회담은 남북간의 휴전 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현재 남북은 전쟁이 끝난 지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공식적인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있지 않아 기술적으로는 전시 국면에 있다. 남북 사이의 휴전선은 지구 상에서 가장 중무장된 곳이다. 양 진영 모두 합해서 2백만의 군인들이 배치되어 있다.
 
 정치적 권리와 시민의 자유
 
 북한은 의심의 여지없이 세계에서 가장 통제된 사회이다. 북한주민들은 자신들의 정부를 민주적으로 교체할 수 없다. 선거를 정기적으로 실시하 지만 후보들은 대부분 집권 '노동당'후보이며 나머지 극소수도 당국이 만든 군소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선거는 정권교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입법부이자 공식적으로 국가최고기구인 '최고인민회의'(의회)는 유명무실한 기관으로 당 정책에 대한 형식적 승인만을 담당한다. 야당의 존재는 불법이며, 당국의 탄압과 광범위한 내부감시, 외부세계로부터의 고립 때문에 존재할 수 조차 없다. 이렇듯 북한에는 시민사회를 위한 최소한의 기본권조차 보장되지 않는다.
 
 사법부는 중앙 재판소와 그 산하 지방 재판소로 구성되어 있다. 북한의 의회인 '최고인민회의'가 최고법원인 '중앙재판소'의 소장을 선출·해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북한의 형법은 '반혁명범죄' 와 '광범위한 정치적 행위'에 대한 임의 체포·구금·처형을 규정하고 있다. 북한당국은 이러한 규정에 따라 주민들의 망명기도·당 비판·외국방송 청취 등을 임의로 처벌하고 있다. 변호사는 피고를 변호하기 보다는 피고인의 죄를 자백하도록 설득하는 역할을 한다. 결국 북한에는 법에 의한 통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의 수감자들은 심각한 부당대우와 빈번한 약식처형 등 열악한 인권상황에 처해 있다. 북한당국은 소위 "노동을 통한 재교육 시설"(노동 교화소)을 설립, 수만명의 정치범과 그 가족들을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정치범중 얼마는 '재교육'을 받고 몇 년 후 석방되지만, 대부분은 무기한 수용된다고 한다.
 
 북한당국은 통신감청과 조직적인 인적 정보망을 활용해 주민들에 행동을 비밀 감시하고 주민들의 주거지를 임의로 제약하고 있다. 더구나 학교는 아이들에게 부모들의 불순 행동을 고발할 것 등 반인륜적 행위를 강요하고 있다. 정부 당국은 과거보다는 낳아졌지만 여전히 개개인 별로 성분을 매겨 교육, 취업, 보건 등의 혜택을 차별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정부가 언론을 독점함으로써 오로지 관제 라디오, TV 선전만을 보아야 한다.
 북한에는 주거·이동의 자유가 없다. 내부 여행 규제가 조금은 완화되었다는 몇몇 보도가 있지만 여전히 북한은 당국 허가 없이 여행을 할 수 없으며, 공무나 관혼상제 경우외에는 허가 자체를 얻을 수가 없다. 특히 평양 여행은 엄격히 제한된다. 북한당국은 정치적으로 의심스러운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중 탈북자들은 중국 당국에 의해 북한으로 강제송환되고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약식처형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중국측 소식통에 따르면, 실제로는 국경인근에서 활동하는 북한기관원들이 탈북자들을 체포·송환시킨다고 한다. 극소수의 외국기자들만이 북한 입국이 허용되며, 일반 외국인들의 방북은 거의 불가능하다.
 
 직업총동맹은 북한의 유일한 노동조직이다. 직업총동맹의 각 급 기관들은 노동자들을 감시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다. 북한에서 노동 3권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종류의 노동운동은 불법이다. 다른 모든 기본권들과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는 종교자유 또한 제한된다. 당에서 만든 불교·기독교 단체들의 활동외에는 주민들의 종교활동은 금지된다. 사적(私的) 소유권도 허용되지 않는다.
 
 
 
 
 출처: http://www.n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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