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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19일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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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벨트 폴러첸, 공포의 帝國 체험記
글번호  108 작성일  2007-09-11
글쓴이  청지기 조회  2363
1. 행동파 의사 노르벨트 폴러첸
 
 40代 독일 의사 노르벨트 폴러첸은 독일 중부의 대학도시 괴팅겐에서 10년 동안 환자를 돌보던 사람이다. 그는 안정되고 풍족한 생활이 보장되는 의사로 安住(안주)하기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의료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싸우는 편을 택했다. 그래서 때로는 돈에 더 관심을 가진 동료들과도 싸웠고, 때로는 환자 수 백명을 조직해서 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는 아내와도 자주 말다툼을 했다. 유능한 사업가로 돈이 많았던 아내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에 관심을 가지고, 인도주의적 지원활동에 정신을 쏟고 있는 그와의 사이가 원만할리 없었다. 결국 이들은 아들 넷을 두고서 14년간의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말았다.
 
 바로 이때 독일의 민간구호단체 「 코미테 캅 아나무르(Komitee Cap Anamur)」 에서 북한에 가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왔다. 이 단체는 1979년에 창설되어 베트남의 보트피플을 구조하던 非정부기구(NGO)였다. 「캅 아나무르」는 당시의 구조선박 이름이다. 그 후 이 단체는 아프리카 지역과 체첸이나 코소보 같은 곳에서 구호활동을 했고 , 10개의 북한 병원을 지원하고 있었다. 폴러첸은 어렸을 때부터 동양에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때마침 독일(서독)에 진출했던 한국 간호사들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다.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오히려 그것이 그의 왕성한 호기심을 더 자극했다.
 
 2. 마취 않고 소녀 수술
 
 1999년 7월, 폴러첸은 평양에 도착했다. 그는 江이 있고 고층건물이 들어선 아름다운 평양市의 풍경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폴러첸은 곧 사람들이 모두 지쳐있고, 희망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아침 6시부터 노역동원, 대중집회, 행진 등 각종 행사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끊임없는 교육과 대중선전에 진절머리를 내고있었다. 그 중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워댔다. 그는 술값이 엄청나게 싸고 또 어디서나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의 실망은 다음날, 해주市 남동쪽 신원에 있는 병원을 방문했을 때 경악으로 변했다 . 그곳 의사들이 마취도 되지 않은 소녀를 수술하고 있었다. 의사가 배를 절개하는 동안, 소녀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입을 악물고 울지 않았다. 폴러첸은 소녀의 손을 잡고 수술이 진행되는 반시간 동안 소녀를 격려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병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소독약도 없었고, 주사기도 없었다. 의사는 맨손으로 수술을 하고있었다. 물은 물통으로 길어다 쓰고 있었고, 바닥에는 오래된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전기도 없었기 때문에 수술은 창가에서 하고 있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그는 해주市에 있는 병원을 방문했다가, 병실 한구석에 온 몸에 피투성이 붕대를 감은 남자가 버려져 있는 것 을 발견했다. 몸의 3분의 2 이상이 화상을 입어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폴러첸의 말을 듣고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안 의사들은 피부이식수술을 시작했다. 150명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피부를 제공했다. 폴러첸도 자원했다. 병원 의사가 면도칼로 그의 넓적다리에서 피부를 떼어냈다.
 
 환자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이 이야기는 북한 텔레비전과 잡지에 보도되었다. 북한당국은 외국인으로서 인류애를 보여준 그에게 우호훈장을 주었다. 운전면허도 주었다. 우호훈장은 엄청난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만 보여주면 어떤 초소나 검문소에서도 통과시켜 주었다. 이후 그는 마음대로 북한 지역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처음 얼마동안 폴러첸은 다른 외국 구호단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북한당국의 지시를 고분고분 따르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쫓겨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에게는 의문이 쌓이기 시작했다. 왜 평양시 안과 밖이 이렇게 다른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아로 고생을 하고 있는데도 평양에는 메르세데스 벤츠를 타고, 호화로운 음식점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서류상으로는 이미 전달된 것으로 되어 있는 구호품이 창고에 쌓여 있었다.
 
 3.미국 기자들 안내, 참상 보도케 해
 
 작년 11월, 폴러첸은 동료 독일인 간호사와 함께 병원을 향해 출발했다. 도중에 그들은 길 위에서 거적에 싸인 시체를 발견했다 . 다른 차들은 못 본 척 그대로 지나가고 있었다. 폴러첸은 차를 세우라고 말했지만 , 운전사는 그냥 달렸다.
 
 폴러첸이 뛰어내리겠다고 한 다음에야 車는 섰다. 시체로 다가간 그들은 그것이 군복을 입은 20代 병사이고, 8세된 소년의 체격을 하고 있었고, 온몸에 고문의 흔적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평양으로 돌아온 뒤 폴러첸은 적극적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는 북한당국에도 강력한 항의서한을 보냈다.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 신문기자나 미국 국회의원에게도 실상을 폭로했다. 이에 앞서 그는 작년 10월 말 美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당국의 명령을 무시하고 수행한 기자들을 자기 차에 태우고 돌아다니며 평양 밖의 실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워싱턴 포스트 등 有力紙 기자들은 폴러첸氏의 말을 인용하여 金正日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썼다. 이런 기사들은 클린턴의 訪北을 막는 한 요인이 되었다. 북한은 그를 「무정부주의자」라고 낙인을 찍고 그의 활동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車 부품이 없어지고, 타이어가 찢어졌다. 즉시 그를 축출하려던 북한당국의 시도는 독일 정부의 개입으로 일단 좌절되었으나, 결국 작년 12월 중국으로 쫓아냈다. 그러나 이 끈질긴 독일인은 곧장 서울로 왔다. 지난 1월16일, 관광단에 끼어 판문점으로 가서 「越北 시도 시위」를 하다가 유엔군사령부에 체포되기도 했다.
 
 폴러첸은 지금도 미디어와 접촉하면서, 북한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한 대규모 모금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유태인 학살의 잘못을 저지른 독일인으로서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또 하나의 거대한 아우슈비츠를 방관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죄악이라는 것이다. 기자는 그가 묵고 있는 조선호텔에서 이틀간 인터뷰를 했다.
 
 4.6·15 때 군중 속에 있었다
 
 ―얼마 전 金正日이 중국 상하이를 방문했습니다. 그가 20년 동안 변해버린 상하이에 대해서 놀랐다는 보도가 있었고, 북한의 제도를 개방하고, 정부도 개혁할 것이라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북한이 변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가 정말 개혁하리라고 믿으십니까? 경제제도는 개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뿐입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중국처럼 맨체스터式 賤民 자본주의를 도입하면서, 옛날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감옥에 가두어 두는 겁니다. 훨씬 더 무시무시한 제도입니다 . 중국式 제도에다 인권을 무시하는 제도를 복합한 제도죠. 그렇게 되면 북한 사람들은 모두 외국회사나 중국회사를 위해서 노예처럼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이 될 겁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가혹하고 非인도적인 상황이지만, 좀더 열심히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겁니다. 외국회사와 중국회사는 가능한 한 낮은 임금을 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죠. 노예처럼 부릴 겁니다』
 
 ―외국회사는 근로자에게 직접 임금을 지불 할 수 없겠죠?
 
 『외국회사들은 정부에게 임금을 지불할 겁니다. 그러면 정부는 대부분을 국고로 돌리고, 옛날과 마찬가지로 극히 낮은 임금을 노동자에게 떼주고, 가혹하게 대우할 겁니다. 金正日이 상하이를 방문한 목적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것은 非도덕적인 행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의를 해야 합니다』
 
 ―金大中 대통령이 평양에 가서 金正日을 만났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아마 당시 나는 시내 한복판에 접근할 수 있었던 유일한 외국인이었을 겁니다. 나는 평양시 중심지에 있는 개선문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나는 거리에 도열하고 있는 사람들 뒤에 서 있었습니다. 길에서 20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軍 초소가 있었고, 경찰 도 있었지만, 나는 우호훈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덕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초소에 있는 헌병에게 보여주었더니 통과시켜 주었고, 그곳에 머물러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난 한 시간 반정도 머물러 있었습니다 . 모든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울고 있는 것도 보았습니다. 모두 진정으로 환영하고 있었고,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광경 때문이었습니다. 두 지도자가 같은 차를 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金正日, 金正日」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金大中도 나왔습니다』
 
 ―그랬을까요? 그 사람들이 金大中을 부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金大中도 불렀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인상적인 광경이었습니다. 난 군중들의 한복판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金大中을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에게 이야기도 하고 ,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노인들은 대부분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사람들은 변화가 생기기를 바라고, 무슨일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하늘이나 어떤 다른 곳에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남쪽에서 식량과 돈을 보낼 것을 바라던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식량과 돈 이외에도 , 그 사람들은 국경이 열릴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친척을 방문하고, 서울이나 제주도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두 사람이 한 차를 타고 가고 있으니까 다음달에는 국경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난 충분히 그런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5.네 어린이의 죽음 목격
 
 ―당신은 북한에서 1995년이래 300만이 굶어죽었다는 주장을 믿고 있습니까?
 
 『나는 확언할 수 없습니다. 아니,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죠. 1995년이래 네 사람이 죽었다고. 왜냐하면 내가 보았으니까요 . 네 어린이였습니다. 나는 그 아이들이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네 사람은 확실합니다』
 
 ―거리에서요?
 
 『아뇨. 병원에서였습니다. 거기서 보았습니다』
 
 ―굶어죽었나요?
 
 『그렇습니다. 내 눈앞에서 죽었습니다. 그 들은 숨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락방까지 들어가 보았습니다. 한 아이가 마지 막 숨을 거두는 것을 보았고, 한 아이는 내가 들어가기 5분전에 죽었습니다』
 
 ―해주에서입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본 것은 그것뿐입니다 .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려고만 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도시 주변에 있는 묘지에 가서 뼈를 세어보면 됩니다. 그러면 1400만명이 될지도 모릅니다.
 
 내가 본 것은 네 명뿐이었지만 그것도 너무 많습니다. 그 애들은 죽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2년 전인가,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1995년이래 북한에서 얼마나 기아로 죽었는지 조사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도 한국의 NGO들이 추산한 300만과 거의 비슷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보고서를 보았습니까?
 
 『보았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자신 은 없습니다. 추측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 만 증거가 없고, 또 조사를 하도록 허락을 받을 수 없으므로, 그것이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뼈를 세면 알 수 있겠죠. 그러면 400만명인지, 300만명인지 , 200만명인지, 10만명인지, 40만명인지 말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야 북한이 어떤 나라인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같은 곳인지, 아니면 그보다 더 심한 곳인지…』
 
 6.북한엔 富者도 많다
 
 ―북한에 가기 전에 수단에도 가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수단과 북한을 비교하면 기아상태가 어떻습니까?
 
 『수단은 가난한 나라입니다. 정부도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 사람들이 가난한 것은 자연적인 재해나 그들의 역사 때문입니다. 교육을 받지 못하고, 또 그럴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 광물자원이 별로 없기 때문에 가난하다고 도 말할 수 있습니다. 석유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사람들이 굶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이 다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생활수준 때문에 사람들이 가난합니다. 아주 부유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가난해질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은 부유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아주 부유한 사람도 있습니다. 문제는 돈의 분배에 있습니다. 다른 이유가 없어요』
 
 ―나도 5년 전, 강제수용소에서 탈출한 사람을 인터뷰한 다음, 당신이 하고 있는 일 과 같은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기사를 독일어,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영어 등 5개 국어로 작성해서, 미국에 1년 간 공부하러 갈 때 가지고 갔습니다 . 그것을 같이 공부하던 기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북한의 인권상황에 관해서 글을 한 번 써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흥미를 표시하지 않았고,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수용소에서 살다가 탈출한 사람이 바로 증거가 아니냐고 대답했죠. 그래도 그들은 다른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했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유태인들이 학살당했을 때, 연합국은 정보를 입수했지만,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지금 당신들도 같은 과오를 범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우리는 요구를 하고 접근해서 확인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온 세계 앞에서 그들을 규탄해야 합니다.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신문기자만 들여보내면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공연히 비판 을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중앙 방송은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고, 그들을 헐뜯는 악마라고 주장하고 있고, 또 이제는 그 나라의 적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반론합니다. 사실을 확 인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신문기자 등에게 현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나는 당장 사과를 할 것이고,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고. 난민수용소가 없고, 강제수용소나 교화 수용소가 없다면, 우리가 잘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북한 북부에서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이 없다면, 나는 당장 사과를 하고, 잘못을 시인 할 것입니다.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고, 그들을 전적으로 지지하겠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이 있다는 증거를 발견하면, 우리는 즉각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대단히 시급한 일이기 때문이죠. 독일같은 나라에서는 사람이 죽어 가는 긴급한 상황에서 응급의사는 즉각 행동을 취하도록 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의사의 면허를 박탈당합니다.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독일의 의사로서 지금 당장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나는 응급 의사로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했으므로, 의료인으로서, 또 하나의 독일인으로서 조처를 취해야 합니다.
 
 역사의 교훈도 배워야 합니다. 유태인이 겪었던 것과 똑같은 문제가 있다면 즉각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당시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잘못입니다. 증명은 그들이 해야 합니다』
 
 7.미국과 언론이 나서야
 
 ―하지만 金大中 정부는 관리들에게도 함구령을 내렸고, 언론에 대해서도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일종의 외교적 방식일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金正日에게 극히 우호적인 햇볕정책으로 계속해서 개방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독일은 용기나 힘이 좀 모자란다고 생각합니다.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언론에 공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이중적인 방식은 金大中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오히려 도와줄 겁니다. 그는 북한에 우호적입니다. 언론과 미국은 몇 가지 반대급부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식량을 주겠다, 돈을 주겠다, 경제교류도 허용하겠다 ,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가 접근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왜 아이들이 그런 꼴을 하고 있고, 어떤 사람이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다는 소문은 사실인가…. 나 자신은 강제수용소와 그 실태에 대해서는 아는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길 한 복판에서 죽은 병사를 목격했습니다. 틀림없이 그는 고문을 당했습니다. 함께 가던 동료는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회원이고 , 동독시절 간호사였습니다. 그 여자는 고문을 받은 희생자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그 병사가 고문을 받았다고 확인했습니다. 난 그 희생자의 사진을 찍고 싶었습니다. 사진을 찍어서 북한당국자에게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사진을 찍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왜 그들이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그런 시체를 발견하면 부검을 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는 그런 사진을 찍거나, 의학적인 검사를 할 수 있는 규칙이 없습니다. 그런 것은 허용되지도 않습니다 . 그것은 인권 유린입니다.
 
 그들이 서명한 유엔의 기준에도 위반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유엔회원국이지만, 그런 규정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 기를 원하고 있지만, 악마처럼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병사가 고문으로 죽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까?
 
 『외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독일에서 1000구나 되는 시체를 부검했습니다. 1년 동안 檢屍(검시) 의사의 일을 했습니다. 자살한 사람의 시체는 알 수 있습니다 . 범인이 고문을 해서 죽인 희생자의 시체 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사고로 죽은 사람도 알 수 있고, 자연사도 알아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판단을 하는데는 충분한 지식과 경험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 가던 동료는 옛 동독에서 감옥에 오랫동안 수용되어 있던 1000명 가량의 희생자를 검사했던 사람입니다. 그 시체를 보고 금방 확인했습니다. 20세 내지 24세 정도로 보이는 병사의 팔이 8세 된 아이나 다름없다면, 무언가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정도의 판단은 굳이 의사라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누구나 금방 알 수 있는 것이니까요.
 
 한마디로 영양부족입니다. 하지만 그 들은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고, 사진도 찍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감추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 배경에 무언가 범죄적인 행위가 있다고 규탄을 하려는 것이고, 그래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증거를 얻을 수 있을겁니다』
 
 8.내 배경은 세계의 기자들
 
 ―폴러첸氏가 金正日 일당이 북한에서 부유한 생활을 하는 것 을 보고 분노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신은 또 고생하고 있는 어린이와 사람들에 대해서 동정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 대조적인 분노와 동정심이 당신이 이런 일을 하고있는 힘의 원천입니까?
 
 『그것이 내 힘의 원천이고 기본적인 동기입니다. 내가 북한에 간 두 번째 동기는 어렸을 때부터 아시아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매력입니다. 나는 항상 중국, 상하이, 만리장성 같은 것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유일한 인상은 서독으로 일하러 왔던 상냥한 한국 간호사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독일에는 간호사가 무척 부족했습니다. 그때 나는 한국 여 자에게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무척 아름다웠지만, 사귈 기회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이나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것 도 아는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수단 남부나 북한 중 어느 한 곳에 갈 수 있다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나는 전혀 아는것이 없는 북한을 선택했습니다. 북한에 대한 여행안내서도 없었으므로 한번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달 후 나는 아내와 이혼을 했습니다. 그것도 한 가지 이유입니다. 당시 나는 독일의 보건제도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시위도 조직했고, 환자를 위한 행동도 했습니다. 나는 부유한 의사들과 싸웠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싸웠습니다. 아내는 돈이 많고 유능한 사업가였고, 나는 인도적 지원을 하는 의사였습니다. 그러니 항상 싸울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이혼했지만 , 아직도 서로 나쁜 감정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오해를 하고 있을뿐입니다.
 
 나는 북한에 간지 한달 뒤, 가족에게 편지를 많이 썼습니다. 나한테는 아들이 네명 있습니다. 그들에게 평양에 한번 오라고 초청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내가 화를 냈습니다. 왜 그런 위험한 장소에 아들을 초청하느냐고.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내의 판단은 옳았습니다. 나는 상황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굶어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돌보고, 그 위험 한 곳을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고, 체제를 바꾸고, 정부와 싸워 이겨서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나의 꿈은 평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을 평양으로 초청하는 것입니다. 위험이 사라지고, 안전한 곳이 되었을 때 말입니다. 꿈을 위해서 살고, 꿈을 위해서 싸울 때 사람은 강해지는 법입니다. 그러면 모든 고난은 극복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 이야기를 환자들에게 해주고 있습니다. 어려운 일 이 생길 때마다 자신을 믿고, 자기의 힘을 믿는다면 어떤 고난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나는 온 세계에 친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 내가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신문기자의 주소록이 있습니다. 지금 이들은 아주 가 까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베이징이나 도쿄에서 전화가 옵니다. 평양에서 만난 신문기자도 모두 전화를 해줍니다.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도와줄 것은 없는지,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지, 함께 평양에 갈 수는 없는지 묻습니다. 이들이 나를 도와줄 것입니다』
 
 9.올브라이트 수행 기자들을 안내하다
 
 ―북한에 고아는 왜 그렇게 많을까요?
 
 『글쎄요. 그것이 항상 내가 가지고 있던 의문이었습니다. 왜 고아가 이렇게 많을까 ? 부모는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우리는 몇 번이나 자문을 했습니다. 그 부모에 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하고』
 
 ―왜 고아에게 그렇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들은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옷도 변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캅 아나무르에서 보내주는 구호품을 그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새 상의와 새 바지를 갖다 주었습니다. 새 옷 을 갖다 주니까 아주 훌륭하더군요. 보통때는 정말 보기 처참할 정도입니다. 이 사 진이 우리가 옷을 전달하던 광경입니다. 어떻습니까? 괜찮은 사진도 있죠?』
 
 ―북한에 있을 때 독일인 의사는 몇 명 있었습니까?
 
 『의사는 나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독일인 간호사 한 명과 기사 한 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내게 가장 큰 기회였습니다. 나는 사람들과 가까이 접촉하면서 치료를 하고 말을 걸 수 있었습니다』
 
 ―수술도 했습니까?
 
 『간단한 수술이나 대수술을 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병원에 있는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은 많이 찍었습니까?
 
 『사진은 한 2000장 가량 찍었습니다. 좀 더 될지도 모릅니다. 일상생활과 나에 관한 사진입니다. 예를 들면 이건 피부이식에 관한 사진입니다. 그 후 북한의 텔레비전에 나왔습니다. 이것은 모두 내가 피부를 제공 한 환자가 퇴원할 때의 사진입니다』
 
 ―모두 영양상태는 좋은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돌보면 이렇게 됩니다. 이게 그 결과입니다. 우리는 옷, 양말 같은 것을 갖다 주었습니다. 나는 의사였고, 환자들이 형편없는 상황에 빠져 있으면 , 증거로 사진을 찍어서 항의를 하곤 했습니다. 이 사진을 찍은 것은 독일의 제2 텔레비전이 왔을 때 였습니다. 나는 비디오와 함께 사진도 찍었습니다.
 
 누군가가 돌보고, 먹여주고, 식량을 갖다주는 사람이 있으면 달라집니다』
 
 ―올브라이트 美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당신은 자원해서 신문기자를 안내했죠? 당신이 그 사람들이 있는 호텔로 갔습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그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했고, 그래서 만났습니다. 그들에게 평양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호텔 밖으로 나갈 수 없었고, 평양이나 시골지방의 정보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10.북한 당국에 당당히 맞서지 않으면 우리를 어린애 취급할 것
 
 ―기자를 몇 명이나 안내했습니까?
 
 『하루 여덟 명. 사흘 동안 안내했습니다. 한 사람씩, 한 그룹씩 안내했습니다. 물론 북한 사람들은 방해하려고 했습니다. 내 차를 쫓아오려고 했습니다. 우리 차는 마력이 더 강했고, 또 나는 평양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시내 구석구석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週末이면 항상 걸어서 하이킹을 하고, 관광지를 구경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평양을 손바닥처럼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비밀스러운 곳을 모두 알고 있었고, 또 그런 곳을 가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허점이 많았기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좀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나는 軍 초소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특별한 행동은 내가 가지고 있던 일종의 통행증인 우호훈장 덕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자신이 있었습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 나는 그동안 내 진정한 힘, 진정한 능력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평양에서 나는 정말 강력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습니다』
 
 ―그 신문 기자들과는 어떻게 접촉했습니까.
 
 『난 호기심이 강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려호텔로 갔습니다. 평상시는 평양 남쪽의 해주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해주 호텔에서 한 주일 내내 지내고 있었습니다 . 그러나 때로는 평양에서 해야 할 일이 생깁니다. 그럴때는 고려호텔에서 아침과 점심을 먹으면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여기 200장 가량의 명함이 있는데 모두 내가 평양에서 만난 사람들입니다. 이 명함은 평양에 있는 카지노 매니저 것입니다. 그는 나와 아주 친한 친구입니다. 나는 평양에 머물고 있는 그런 모든 사람들의 의사였습니다. 나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사람들 , 러시아 외교관들, 라오스 대사관, 베트남 대사관 사람들의 개인 의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거의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신문기자들을 안내한 다음 당국에서 반응이 있었습니까.
 
 『그들은 10월 말, 나를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독일 외무부의 개입으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독일 당국의 개입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그보다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때문이었습니다. 난 북한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당장 도쿄와 北京에 있는 신문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당신들이 내게 취하려는 조처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그들에게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30분 뒤 전화가 왔습니다. 그리고 사과를 했습니다. 12월 말까 지 머물 수 있다고. 일종의 파워게임이었습니다』
 
 ―북한 당국자에게는 굽히면 안 됩니다. 당당하게 맞서면 물러섭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우리를 어린애처럼 취급합니다』
 
 11.그들은 모두 공포에 질려 있었다.
 
 ―북한 사람들은 말을 걸면 두려워하지 않던가요.
 
 『북한과 그곳 병원에 들어갔을 때 내가 내린 진단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는 증명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병원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사람들이 완전히 지쳐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완전히 싫증을 내고 있었습니다. 전혀 희망이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이상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하기를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통역을 통해서 가족상황과 직업 같은 것 을 물으려고 할 때마다 그들은 두려워했습니다.
 
 독일에서는 환자의 사회적 환경을 고려하는것이 통상적인 내 의무였습니다. 환자의 생활양식, 결혼생활, 가족상황, 직업, 학교생활 같은것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것 을 확인할 수 없고, 그런 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데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나는 그저 그들의 사회적 생활여건이 극도로 열악할 것이라고 추측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어려운 생활을 하고있습니다. 그러니 그 배경에는 그런 공포를 만들어 내고 있는 무언가가 있을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던 것 은 추측뿐입니다.
 
 하지만 그들과 단독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때는 그들이 아주 우호적이었고,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나를 초청해서 모든것 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음식까지 주었습니다. 그들은 안방까지도 쓰게 해 주었습니다. 정말 친절했습니다. 난 그들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보통 사람들과는 아주 가까웠습니다. 그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들의 집을 방문하거나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게 가장 큰 불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회적 환경을 바꾸어야 합니다. 환경을 변화시키려면 주사를 할 필요는 없고, 개입을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직장 상사에게 이야기하거나, 아이의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하거나, 부모들에게 이야기해서 환경을 개선하라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곳에서는 그런것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독재체제를 무너뜨리거나, 사람들이 너무나 두려워서 말하기조차 하려 하지 않는 그 무엇을 극복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金正日의 가장 큰 파워는 공포입니다. 그 공포는 강제수용소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내가 길 한복판에서 죽은 병사를 발견했을 때, 내가 가장 놀란 것은 그 죽은 병사 그 자체가 아니라, 함께 간 통역과 운전기사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두려워하고 있었고,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한시바삐 그곳에서 빠져나가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곳을 떠나서 눈을 감고싶었습니다. 그러면 아무일도 없었던 것이 되고, 증거도 남지 않습니다. 그 들의 눈을 보았을때 나는 그들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문젯거리를 만들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당국의 지시에 저촉되는 우리 행동이나 태도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생기면 우리는 그 나라에서 쫓겨나겠지만, 그 사람들이나 그 가족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당시 나도 좀 두려웠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유감스럽고, 후회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평양에 온 미국기자들과 비공식적인 여행을 한 다음, 우리를 담당했던 북한측 연락책임자 역시 외무성에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 이후 나는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의 동료들에게도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그의 가족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딸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에게는 딸이 둘 있었습니다.
 
 그는 무척 잔혹한 행동을 했습니다. 그는 당원이었는데, 항상 달러를 뜯어내서 개인 용도로 쓰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잘못할 때마다 전화로 상부에게 보고하고 다시 우리에게 야단을 쳤습니다. 그는 어떤 면에서는 악질이었습니다. 그래서 후회는 하면서도, 별로 안되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원이었으니까요. 그가 용기 있는 사람이었더라면 무언가 다른 일을 했을겁니다. 그래서 안됐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란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싸우고 있는 전사라면 권력자에 대해서 미안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10만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그들을 죽여야 할 필요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나는 전사가 아닙니다. 나는 사람들을 돌보고,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는 독일의 응급 의사입니다. 나는 내 생명까지도 걸었습니다. 따라서 복종만 하는 그런 우둔한 사람을 돌볼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옛 나치 시대 사람들 같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항상 있습니다. 복종만을 강요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용기있는 사람이 아니고, 인간이 아닙니다』
 
 12.식량을 쌓아놓고 식량을 가져가라고 소리치면서…
 
 ―지금 당신은 어떤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까?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빌 게이츠, 테드 터너, 빌 클린턴, 마이클 잭슨 같은 사람과 접촉할 생각입니다. 그들에게 식량 원조로 북한을 개방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요청할 생각입니다. 식량 1t이나 100t, 10만 달러나 100만 달러가 아니라, 1억 달러 정도를 기부하라고 요청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국경으로 가져가 북한 사람들에게 말하겠습니다. 여기 돈이나 식량이 있으니 가져가라고. 단, 기자들도 함께 들여보내서 식량이 배급되는 곳까지 보게 하라고. 트럭을 한 100대 가량 빌려서 판문점에 갖다 놓고, CBS, 타임, 뉴스위크, 아시아위크,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기자들을 초청합니다. 그리고 북한 당국자에게 이 식량이나 돈을 북한 사람들을 위해서 가져가기를 거부한다면, 그 책임은 그들이 져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어쨌든 그들은 굶주리고 있으므로 그 식량을 가져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그들은 국제사회에서 좋은 평판을 얻고, 좋은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많은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식량을 받기 거절한다면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압력을 받으면 열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돈을 더 주면 문을 열겁니다. 그러면 더 많은 기자들이 북한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북한을 개방하고, 강제수용소의 문을 여는 이야기가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되면, 테드 터너와 빌 게이츠에게는 최고의 광고가 될 것입니다. CNN은 독점보도도 할 수 있을 겁니다. 독일에서도 모금을 할 생각입니다. 독일의 슈피겔誌도 내 계획에 관한 기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아마 다음 週쯤 북한에 관한 기사가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모금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큰 기삿거리를 만듭니다. 의약품을 사고, 식료품을 삽니다. 국경까지 가지고 가서 홍보활동을 하는 겁니다』
 
 13.아우슈비츠에서와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당신의 목표는 언론의 관심을 끄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이미 뉴스위크에는 한 주일 에 세가지 기사가 실렸습니다.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에도 기사가 났습니다. 여기 한국판 뉴스위크에도 양면 페이지로 기사가 났습니다. 또 하나 유명한 독일잡지 슈 테른도 커버스토리로 실을 예정입니다. 그 기사의 목적은 모금을 위한 것입니다. 북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입니다.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단체에 돈을 보내서 난민을 도와주고, 식량을 구입하도록 할 것입니다.
 
 나는 독일인입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압력을 받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독일인은 2차 세계대전 후, 알고 있었으면서도 행동은 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여기서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아니 똑같은 상황입니다. 계획대로 된다면, 나는 100만 달러나 10억 달러가 아니라, 1000억 달러를 모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다음에 북한 당국자에게 묻겠습니다. 얼마면 나라를 통째로 팔겠느냐고.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 아이들조차 돌볼 수 없습니다. 자연재해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정부의 잘못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자기 아이들을 돌볼 수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개입할 권리가 있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난 일과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징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좋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최근 미국 CIA가 金正日이 스위스 은행에 비밀 계좌를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금이 43억 달러나 된다고 합니다. 金正日은 굶어 죽어가고 있는 자기 주민들을 위해서 그 돈을 한푼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국제 여론이나, 세계의 언론인들은 스위스에 비밀계좌를 가지고 있던 히틀러에게 대해서 그랬던 것처럼, 金正日도 규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14.북한의 정치범을 모두 사 버리자
 
 ―북한에 대해 정치범 한 명당 100만 달러와 교환하자는 제의를 할 생각은 없습니까?
 
 『그 역시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북한을 사버리는 거죠. 모든 정치범을 사버립니다. 당장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나는 또 두뇌의 풀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면 좋은 아이디어가 더 나올 것이고, 더 많은 사람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나는 원맨쇼를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나는 팀워크맨이고,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가 필요합니다.
 
 난 또 헤이그로 가서 金正日을 국제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 발표할 생각입니다. 집단 학살을 했으니까요. 시골에 있는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면, 그건 집단학살입니다. 다시 독일의 예를 들자면, 자기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는 기소하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기소하고, 아이들은 고아원 같은 곳으로 보내버립니다』
 
 ―북한 정권과 나치 정권의 기본적인 성격 을 비교해 보셨습니까?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나치가 정권을 잡고 있었을 때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그저 부모나 조부모의 이야기를 듣고, 당시 사람들이 모두 지금 북한에 있는 사람들처럼 두려워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아무도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았고, 아무도 이야기 할 수 있는 허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나치 독일에서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어린이가 히틀러에 대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역사 시간에 독일이 세계에서 최강국이라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10여 년 지나니까 그 들은 완전히 세뇌를 당해서 히틀러만 믿게 된 것입니다.
 
 평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은 세뇌를 당했습니다. 그들은 金正日에게 중독되었습니다. 그는 神과 같은 존재입니다 . 그러니까 그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알코올중독환자와 마찬가지죠. 알코올에 중독 된 사람은 의식이 없습니다. 자신의 중독이 나 알코올에 대해서 저항하지 못합니다. 외부에서 의사가 그의 손을 잡고 알코올중독 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스스로를 도울 수는 없습니다.
 
 옛 동독처럼 정부에 대한 봉기나 반격을 할 징후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지만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북한 정권은 동독보다 훨씬 폐쇄적이기 때문입니다. 옛 동독에는 반대세력이 있었습니다. 서독 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있었고, 전화를 하거나,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평양에는 학생들이 많이 있어도 평양 밖을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은 시골의 사정을 전혀 모릅니다. 독일이나 서울을 전혀 모릅니다 . 내가 서울의 관광안내서를 보여주자 그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높은 빌딩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비판을 할 줄 모릅니다. 비교 할 수 없기 때문이죠. 외부 세계에 대해서 는 전혀 아는 것 이 없습니다. 우리는 유치원, 학교, 고아원의 초청을 받아 가보았습니다.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던 것 은 일종의 연극이었습니다. 金日成의 생애와 죽음, 그리고 金正日에 대해서 공부하는 겁니다. 하루 종일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들은 당의 역사, 抗日운동에 대한 공부도 하고, 백두산에 있었다는 비밀기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 을 하루종일 공부한 다음에는 또 행진이나 매스게임 같은 것 을 연습해야 합니다. 다른 것 을 생각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사람들 잘못도 아닙니다. 고립되어 있는 겁니다. 아는 것 이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전향하지 않는다고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정보가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비교를 할 수 없으면 선택을 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선택이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정부에서 하는 말을 그대로 믿어야 하고, 또 그런 행동에 익숙해지고, 중독되어 있습니다』
 
 15.행동하지 않으면 아들에게 욕 먹을 것
 
 ―나는 金日成, 金正日, 히틀러, 스탈린이 20세기의 4大 악마라고 생각합니다. 金正日은 히틀러나 스탈린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러 병원을 돌아보고 나서는 사람들이 모두 깊은 좌절감 에 빠져 있고, 또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 을 알았습니다. 나는 해주, 원산, 함흥, 신의주, 청진, 남포, 평양, 북청 등 여러 곳 을 가보았습니다. 상황은 똑같았습니다. 그 들은 모두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서워서 당국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이념은 단 한 가지가 있을 뿐입니다. 왜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을까요 ? 그 배경에는 틀림없이 무언가 아주 악한 것이 있을것입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법전에 의하면 , 정부의 규칙을 위반하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최소 7년간 교화수용소에서 처벌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국제법은 교화수용소는 확인을 할 수 있게 허용하도록 명시되어 있습니다.
 
 나는 의사입니다. 그리고 북한은 유엔 회원국입니다 . 따라서 유엔의 규정에 따라서 우리는 북 한의 의료상황과 식량사정, 교화수용소 같은 것을 시급히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앰네스티 인터내셔널」과 「휴먼 라 이츠 워치」에게 북한에 들어가 보도록 요청할 생각입니다.
 
 최선의 감시자는 잡지나 텔레비전의 기자들입니다. 그들은 찾아낼 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정말 단호한 각오로 접근해서 대담하게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들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내게 필요한 것은 군대처럼 공격을 할 수 있는 일단의 신문기자들입니다』
 
 ―그런 기자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나는 이 아이디어를 강조할 생각입니다. 나는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으니까요. 확신합니다』
 
 ―미국에 클린턴 행정부와는 여러 면에서 대조적인 부시 행정부가 들어섰습니다. 對北 정책도 클린턴 행정부와는 달라지지 않을까요?
 
 『나는 파월 국무장관의 힘을 믿고 있습니다. 파월은 사담 후세인에게 했던 것 과 같은 일을 할 것입니다. 그는 잘못된 일을 발견하면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에 침공했을 때, 국제사회는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히틀러가 오스트리아 ,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에 침공했을 때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아 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반론을 제기하지 않으면, 우리는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것이 됩니다. 50년 전 우리가 했던 일을 50년 후 다시 되풀이하는 셈입니다. 그것은 우둔한 짓입니다.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 했다고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행동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아들이 나를 비난할 것입니다.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서 왜 행동을 취하지 않았냐고. 나는 아들에게서 그런 비난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일을 해야 합니다. 특히 나는 독일인으로서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운 것 을 이행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16.북한 사람들은 金正日 중독자
 
 ―옳습니다. 유태인들은 외부세계 사람들이 독일 강제수용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면서도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똑같은 이유로 비난을 받게 될 겁니다.
 
 『틀림없이 비난을 받게됩니다. 그들은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북한 사람 들 자신은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중독되어 있습니다. 광신자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金正日에게 중독되어 있습니다. 외부세계 일을 알 수 없으니,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그들만의 神을 믿고있습니다. 알코올중독자에게 왜 알코올에 빠져 있느냐고 야단을 쳐보아야 바보 같은 짓입니다. 외부세계나 친척, 친구, 의사가 중독증세를 치료해야 합니다. 북한에 있는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기를 기다릴 수도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NGO나 인권운동가 같은 사람들은 공격적인 행동을 취하거나 미디어를 사 용해서 앞면에 나서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들은 대부분 점잖고, 아주 부끄럼을 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주 인간 적으로 행동합니다. 인권운동가는 사업가처럼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업가처럼 일을 할 때는 주저하지 말고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나서서, 다음날 아침 신문 일면에 나올 만한 일을 해야 합니다. 적극적인 사업가들은 그러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야 사업이 잘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방식으로 하면 틀림없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17.그들은 외교관처럼 행동해야 하지만…
 
 ―지금 소속단체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금은 단절되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에 머물러 있으려면 다른 수가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나와 의 관계를 끊지 않으면 그들이 축출됩니다 .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지의 존 라킨 기자가 쓴 기사에도 나와 있지만, 그도 우리 단체의 창설자인 노르덱에게 확인을 했다고 합니다.
 
 노르덱은 비공식이긴 하지 만, 내 사정을 이해한다고 했고, 내가 제기 한 인권문제도 이해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내가 한 방식에는 찬성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른 기구와 마찬가지로 외교관처럼 행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나도 그런 사정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또 그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그들은 외교관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무척 안 된 일이지만, 그곳에 머물러서 일을 하려면, 아직 평양에 남아 있는 우리 동료들처럼 유치원이나 고아원을 도와주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시골에 가서 고아원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유럽에서 북한에 보낼 식품을 수집하고 있는 내 동료가 있습니다. 그 동료도 그 일을 계속하려면 나와는 관계를 끊어야 합니다. 나는 충분히 그런 사정을 이 해하고 있고, 또 동의합니다.
 
 나에게는 그 들과는 다른 일이 있습니다. 항의를 하고, 내 개인적 견해를 발표하는 일입니다. 내 가 여기 머물고 있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물론 그것은 내 개인적인 의견이고, 「캅 아나무르」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출처: 月刊朝鮮 3月號 [趙甲濟 편집장의 심층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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