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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체험한 탈북자 문제 -이 민복-
글번호  76 작성일  2007-09-05
글쓴이  청지기 조회  3626
북한 식량난 해결은 개인농(중국식)을 해야 해결된다는 제의를 하였다가 탈북한 나는 그만 중국 경방대의 거리심문에 단속 되여 북송되었다. 탈북자를 북송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른바 중조 협약에 따라 넘긴 것이다.
 
  탈북자와 월경자
 
 탈북자는 북한을 등지려했던 사람이라 할 수 있고 월경자는 탈북 의사는 없고 여러 사정으로 국경을 넘나든 사람이라 할 수가 있다. 탈북자가 난민이냐 아니냐를 논하기 전에 탈북자와 이보다 훨씬 경한 월경자 경우라도 북한에서는 어떻게 취급하는 가를 체험기로 말해보자. 어떤 경우든 국경을 넘나들다 잡힌 자는 사회안전부(경찰)가 아니라 정치보위부 집결소(예심감옥)에서 취급한다. 그만큼 월경문제는 정치적 성격으로 우선 조사하는 것이다. 월경자는 정치보위부 집결소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듣는 섬찍한 말에 혼이 빠진다. 즉 <너는 국경을 넘어간 민족 반역자다. 죽어 마땅하다. 솔찍히 말하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집결소(예심소) 생활
 
 집결소 생활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가혹하고 열악하다. 집결소 생활 한 달은 징역 삼년 맞잡이라고 한다. 집결소에 들어서면 선언하기를 이 순간부터 인간이기를 포기하라며 이름 대신 수인번호로 호칭된다. <개새끼>, <처먹어> 등 짐승에게도 잘 부르지 않는 언어와 행위로 대하며, 보위원 앞에서는 머리 숙이고 굽어 앉아 노예처럼 자세를 취해야 한다. 남한에 와서 유명한 빠피용 영화를 보고 북한감옥과 대비해 보았는데 그 곳은 일생을 있고 싶은 곳으로 느껴졌다. 바퀴를 잡아먹을 자유라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북한 정치보위부 집결소는 마음대로 말하고나 웃고 나, 눕고 나 서고나 하지 못한다. 대소변도 승인 없이는 볼 수 없다. 처음 힘겹게 느껴지는 육체적 고통은 고문보다 꼼짝없이 가부자리 시켜 놓는 것이다. 이 정좌기간은 수용기간 내내 고독 속에 진행된다. 정좌고통 보다 더 못 참을 고통은 열흘정도 지나면 온다. 그것은 굶주림이다. 장장 옥수수 한줌에 소금 국 만 주니 피골이 상접하여 운신하기도 힘겹다. 북한에서 쌀보다 귀한 것이 콩이다. 감옥 밖도 그런데 수인에게서 콩밥을 먹기란 하늘에 별따기 다. 야맹증과 펠라그라, 괴혈병이 등 영양실조와 허기짐은 눈앞에 밥 덩어리가, 또는 고기 덩어리가 얼른거리는 환각에 빠지게 한다. 보름정도 지나면 집결소 측은 수갑도 채우지 않고 취조한다. 그만큼 맥을 출 수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집결소 생활의 긴박함과 허기짐 때문인지 수용기간 성적본능을 한번도 가져본 기억이 없다. 햇볕 쪼이기도 수용기간 내내 없다. 그만큼 바깥과 차단 되여 있는 곳이 집결소 구조다. 운동은 감방 내에서의 간단한 안마가 전부다. 목욕과 세탁은 수용기간 단 한번도 없고 수건과 비누가 없는 찬물 세수만 허용된다. 물론 치약과 칫솔은 없다. 화장지가 없으니 뒤를 본 다음에 손바닥만한 걸레로 이 사람 저 사람 맹물에 빨아서 쓴다. 감방 안에 있는 변기는 변기이자 세면기이다. 감방의 불결에 못 견디는 것은 수인이 아니라 간수(보위원)이다. 감시자로 감방 복도에 있는 그들이 오히려 참지 못해 청소를 하라고 소리친다. 한편 이와 바퀴벌레 등 벌레가 들 끓는다. 그러나 겨울에는 얼마나 추운지 몸속 벌레 외에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감방 안에서의 반항은 거의 무의미할 정도로 가혹한 제재를 받는다. 간혹 단식하는 이도 있으나 본래 열악한 식사조건에서 한끼 금식은 평상시 독감을 앓은 만큼의 후과를 가진다고 말한다. 그 만큼 북한감옥에서의 단식은 머저리 행위로 된다. 자살하고 싶어도 못하게 만든 곳이 집결소이다. 입소 초기 자살 위험 있는 물건, 심지어 단추와 지퍼, 팬티 고무줄까지 뽑아 버린다. 이러한 실태는 단순 월경자로 규명되여 넘겨지는 사회안전부(경찰)집결소에서 도 비슷하다. 조금 난 것은 밥 량이 좀 많고 과외노동이 있다는 점이다. 죄수가 죄수를 시켜 통제하고 구타하게 만들며 그 결과로 죽어나간 김재철(양강도 백암군 사람, 32세)이라는 사람도 목격하였다.
 
  정치보위부 집결소의 임무
 
 모든 월경자를 취급하는 정치보위부 집결소의 기본 임무는 그 어떤 이유 던 간에 북한을 등지려한 탈북자를 판명하여 정치범 수용소인 <관리소>(북한판 아이슈비츠)에 보내는 것이다. 다시 살아 나 오기 힘든 정치범에게서 경제범은 하늘과 같이 부러워 보인다. 경제범은 아무리 엄중하다해도 재판과 형기가 있기에 살아 날 수 있는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다. 정치보위부 집결소에서 가장 엄중히 보는 것은 남조선으로 가려고 했던 탈북자이다. 그 다음은 중국을 비롯한 외국에 가서 살려고 했던 탈북자이다. 북한으로 다시 돌아오는 월경자(대체로 경제적이유)로 판명된 경우에는 사회안전부(경찰)집결소로 보낸다. 이곳에서 3-6개월 정도 수용 되여 고통을 주다가 석방, 또는 징역을 살아야할 대상이라고 판단되는 이들은 집결소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징역을 보낸다. 단순 월경이라고 해도 국경 법은 3년 징역이다. 제 발로 북한에 다시 돌아오다 잡힌 사람에 비해 체포 되여 북송된 탈북자는 당연히 더 엄중히 본다. 제 발로 돌아 온 자라고 해서 무죄는 아니다. 북한을 등지려는 것은 아니더라도 외국에 오래 머물러 있다 돌아 온 자는 그 동안 간첩임무를 받고 왔는지, 종교에 물들지 않았는지 등 의심이 떠나지 않는 대상이 된다. 특히 남조선 사람을 만났거나, 선교사를 만난 경우가 드러날 경우에는 틀림없는 정치범으로서 <관리소>행이며, 공개 처형대상이 된 사실도 최근 알려지고 있다. 최근 년 탈북자에 대한 처벌이 좀 나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탈북자 수가 급격히 증가 되여 어쩔 수 없이 느슨해진 것이지 월경자 정책의 본질이 변한 것은 아니다.
 
  재 탈북
 
  아이슈비츠 참상은 반세기전 전쟁 때 그것도 타민족에게 행해졌다고 하지만, 북한 통치자들에 의해서 행해지는 인권참상은 평화시기에, 그것도 같은 동족에게 행해지고 있다는 데 더욱 놀라울 일이다. 집결소 과정을 겪어 본 나는 북한이 얼마나 잘못 된 사회인가를 더욱 깨닫게 되었다. 농학자로서 중국의 농업실태를 보러 갔을 뿐이라는 강변이 먹혀들어 극적으로 석방된 나는 쇠약한 몸을 추리고 다시 탈북 하였다. 95년 남한에 오기까지 감옥생활만도 네 개 나라에서 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국민, 북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밖에 나와 보니 북한주민만큼 불쌍한 국민은 없어 보인다. 듣고 말하고 여행할 수 있는 초보적 인간 권리는 고사하고 옥수수죽도 못 먹어 굶어 죽고 있으니 말이다. 이 지긋지긋한 사회를 탈출하자고 해도 무슨 악연인지 다른 나라 난민 보다 비교도 안될 만큼 어렵다. 분단 반세기동안 쌓아올린 남쪽 휴전선은 엄두도 내기 힘든 곳이며 여기에 맞장구치듯 동서 양쪽에는 바다가 놓여있다. 이 바다는 쿠바 해안 정도가 아니라 철조망과 감시병이 지키고 있어 태평양 넘기 보다 더 힘들다. 유일한 출로는 북쪽인데 그곳도 간단치는 않다. 국경무장경비는 날로 강화되고 지리학적으로도 조국에서 가장 긴 강과 가장 높은 산이 국경선을 따라 가로막고 있다. 국경과 인접한 국가도 자유국가는 없고 세계에서 가장 넓고 인구가 많은 대륙과 같은 공산국가들 만 있다. 이들은 탈북자를 북송하는 나라들이다. 생사결단 간난 신고 끝에 이러한 과정을 넘으면 과연 탈북은 성공한 것인가. 권리를 깡그리 빼앗겼던 북한주민들은 탈북 하여도 철저히 무시당한다. 탈북자에게 있어서 희망의 등대이자 생명의 장소는 남한공관이다. 그러나 정작 가보면 북한 정권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또 주재국들과 외교적 문제로 받아들일 수도, 보호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가장 엄중한 탈북자는 월남기도자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북한에서 가장 엄중히 다루는 탈북자는 월남 기도자들이다. 그런데 남한당국은 어떤 태도인가. 지난 시기 정치 선전용 차원에서 귀순자로 적극 받아들였다. 그러나 탈냉전 후에는 북한당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이다.(남북은 아직 냉전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정말 북한당국을 자극하지 않고 신뢰를 위해 탈북자를 외면하는 가. 현실을 놓고 보면 그렇치 않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탈북자는 따라가서라도 데려오는 형편이다. 북한도 이를 모를 리 없다. 신뢰는 더 없어지고 대부분 탈북자를 방치하여 비참한 결과만 생산 된다. 국제미아가 된 탈북자들은 인신매매, 무임금 대상으로 되어 온갖 천대와 멸시를 당한다. 탈북자 방치는 헌법과 국제법, 인도주의를 무시하고 동포를 외면하는 처사이다.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전면수용 방침을 내놓은 지는 94년과 99년 두 차례 있었지만 행동은 여전히 다르다. 그 동안 탈북자 수는 수십만에 이른다고 조사되고 있다. 정부는 탈북자 수를 줄이는 데 급급하며, 외교 통상부 공보관까지 내세워 우다웨이 중국대사와 말을 맞추듯 국제법상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 동안 유엔난민기구가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7명의 탈북자는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북한으로 강제 이송 됐다. 조용히 잡혀간 수많은 탈북자에 비해서 이들은 그래도 행복하다.
 
  북한 식량난은 명백히 정치적 이유
 
 탈북자가 유엔난민이 아니라는 일부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그럼에도 이들의 기본 주장인 식량난 때문이라는 근거를 분석해보자. 공산국가에서 식량난의 근원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내 것이 될 수 없는 집단농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결론을 내린 중국, 베트남은 공산당 하에서도 집단농을 개인농으로 개혁하여 오늘의 풍요를 누리고 있다. 중국에 가 본 북한사람들은 북한에 비해 천국이라고 평한다.
 
 필자는 북한농업과학원연구원으로서 집단농과 개인농을 대비하는 생산성 시험을 한 적이 있다. 결과는 개인농이 집단농에 비해 3 배 이상의 소출이 더 난다는 것을 확인했다. 나의 탈북 동기인 개인농 제기사건도 이것에서 발달 될 만큼 확실한 근거였다. 심각한 현 북한의 식량난은 국민이 일해 먹을 자유 만 주면 풀릴 문제다. 이 사실은 북한통치자 자신도 잘 안다. 그러나 정권유지를 위해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니 인위적으로 백성들을 굶겨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개방만 해도 아사 될 정도로 되지 않는다. 이것도 정권유지를 위해 <우리 식 사회주의 고수>로 필사 반대한다. 살인적인 기아와 억압을 피해 탈북 또는 월경하여도 위와 같이 정치적 성격으로 가혹하게 취급하는 것이 북한정치이다. 단순 월경자라도 일단 외부세계에 나가본 북한사람은 눈을 뜨게 되며 점차 북한을 등지는 탈북자로 변모되여 간다. 또 이들이 국내 주민에게 끼치는 여파가 크다는 것을 잘 안다. 탈북자는 물론 외부 세계를 다녀 온 사람과 북한 정치와의 적수 관계는 해소할래야 할 수 없는 관계이다. 적어도 개혁 개방적인 북한정권자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말이다.
 
  "햇볕"과 정상회담으로 밀리는 탈북자
 
 남한정부가 진행하는 햇볕정책과 정상회담은 의의가 있음에도 의문스러운 것은 이를 강조할수록 북한인권과 탈북자문제를 멀리하는 데 있다. 이는 우리보다 국제적으로 어려운 독일 통일을 이룩한 서독의 정책과는 반대이다. 현재 북은 받아먹으면서도 뻣뻣한 자세이고 남은 주면서도 매달리는 자세이다. 북의 <광폭정치>와 남의 <대승정치> 때문에 그렇다고 정치가들은 말한다. 이것의 거짓됨은 북은 탄압하고 남은 쉬쉬하려 애쓰는 문제가 탈북자와 북 인권문제라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미 공개한 것처럼 햇볕 정책이 북한정권을 포용하여 개혁개방에로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데 정말 김정일 정권이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믿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야당시절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정보수단을 가진 여당정권에서는 현 북 통치자를 잘 알 것이다. 한마디로 수백만을 굶겨 죽이며 권력유지만을 위한 북 통치자는 그 자체의 권력유지를 위협하는 경제사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명분을 제공하고 대가를 바라고 있을 것이고, 선거 3일 앞두고 정상회담을 발표하는 것은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내가 해냈다는 욕심을 가진 인격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상황들이다. 정상회담이 거론 될 때 탈북자문제가 얼마나 멀어 지는 가는 94년 당시 해외(러시아)에서 탈북자로 있을 때 이미 뼈저리게 경험하였다. 이러한 정치권력자들을 믿을 수 없어 유엔난민(UNHCR)으로 첫 등록하고 언론에 나서자 놀라운 것은 <왜 탈북자문제를 유엔에까지 끌고 가며 소란스럽게 구느냐>라고 역정을 내는 남한공관이었다. 1년 전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 대부분에게 가해진 인권유린행위가 폭로 된 것처럼 탈북자에 대한 관점이 어떠했는가를 다시 확인한다.
 
  국민과 언론은 깨어 있어야
 
 탈북자와 북한인권문제를 멀리하는 그 어떤 "햇볕"과 정상회담은 얼마를 했던지 간에 정치가들끼리의 잔치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들을 견제하고 정도로 가게 하는 힘은 시민운동과 여론에 있다. 민주사회의 우월성은 바로 이것이라는 것은 지난 경험들이 보여준다. 따라서 국민과 언론은 깨어 있어야 한다. 빼앗긴 민주를 북한주민이 되찾을 때까지 그들을 도와 더욱 깨어 있어야 한다.
 
 
 http://www.durihana.com/main.htm
이전자료 : 중국, 탈북자 60명 북한 송환
다음자료 : 탈북 체험 - 최 중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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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0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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