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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의 조카 만나고 온 50대 조선족 증언
글번호  66 작성일  2007-09-05
글쓴이  청지기 조회  3247
9번째 증인으로 지난 5월말 무산에 있는 친조카를 만나고 온 조선족 강 아무개(58)씨 얘기를 싣는다.
 
 강씨는 돌아오자마자 가족 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생활비를 대폭 줄일 것, 아이들 용돈도 줄일 것, 식탁에 반찬 세가지 이상 올리질 말 것' 등을 결정하고 모아진 돈으로 조만간 다시 다녀와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무산 쪽에 살고 있는 친척들을 방문하고 왔습니다. 회령쪽으로 건너가 기차를 타고 갔는데 몇 시간이면 갈 거리를 사흘 걸려서 갔습니다.
 
 기차가 고장나서 하룻밤을 기차에서 새웠고, 그 밤사 이에 누군가가 바퀴를 빼내가 이틀을 다시 또 묵어갔단 말입니다 . 무산에 도착해보니 상황은 더욱 나빴습니다.
 
 동양 최대의 노천광장이 있는 무산시가 이렇게 황폐해지다니…. 놀랐습니다.
 
 조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빈집이 많았습니다.
 
 아예 한 동이 빈 곳도 있다고 합니다.
 
 죽어나간 곳도 있고, 집까지 팔고 나간 경우도 많다고 했습니다.
 
 조카와 친하게 지냈다는 어느 집은 중국쪽에 친척이 없어 어려웠는데, 집에 있는 물건을 하나씩 팔아 연명하더니 마침내 5월초에 집을 북한 돈 1만원(쌀 1㎏에 80원) 팔아 밥을 지어먹고 가족들 모두에게 얼마간의 돈을 쥐어준 뒤 뿔뿔히 흩어졌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너희들을 더이상 책임지지 못하니 후일을 기약하고 그 때까지 어떻게든 살아 있어라'고 말한 뒤 헤어졌다고 합니다.
 
 조카가 얘기하기를 아이들은 무산 시내에서 꽃제비를 하고 있는 것 을 가끔 보았으나 친구와 그 부인은 그 뒤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
 
 학교가 열기는 여는 것 같았습니다.
 
 풍금소리도 나고 운동장에서 줄 서 있는 것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들 절반 가량은 가지 않았고, 교원들도 나오는 않는 사람들이 많아 정상적인 교육은 거 의 되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조카는 공장도 서버린지 오래라고 합디다.
 
 기름이 끊어진 게 작년 말이고 노동자들도 더이상 일하러 오지 않는다고 해요. 가끔씩 온 사람들도 기계 부품 중에 값이 비싸게 나가는 동을 뜯어가기도 하고 고철이 돼버린 기계를 가져가 팔기도 한답니다.
 
 중국의 무역업자들이 밀가루를 가지고 들어와 고철을 실어가기 때문에 바꿔 먹는 것이죠. 공장 단위 책임자가 알면서도 말리지 못한다고 합니다.
 
 상부단위에서 `공장일꾼이 굶어죽으면 당신 책임'이라는 얘기를 들은 뒤부터 `그래, 일단은 그렇게라도 살아라'고 방조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기계, 전기선, 전화선 등 다 뜯어다가 식량과 바꿔 먹는다면 머지 않아 교통이나 통신 등 기본적인 시설들이 완전히 파괴될 텐데 걱정입니다.
 
 무산에 사는 다른 조카는 김일성 대학 출신이란 말입니다.
 
 내가 보기에 영어도 잘하고 최고의 인텔리인데 연구소에서 생활이 보장이 안되니 배낭을 메고 식량을 구하러 다닙니다.
 
 중국에 오기만 하면 미래가 창창한데…. 이 얼마나 국가적 손실입니까. 북한 전역에서 결혼할 때 예전에는 출신성분, 당성 등을 높은 가 치로 여겨 서로 데려가려는 신랑, 신부감이었지만 요새는 중국에 친척이 있는 사람을 최고로 친답니다.
 
 적어도 굶어죽지는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9번째 증인으로 지난 5월말 무산에 있는 친조카를 만나고 온 조선족 강 아무개(58)씨 얘기를 싣는다.
 
 강씨는 돌아오자마자 가족 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생활비를 대폭 줄일 것, 아이들 용돈도 줄일 것, 식탁에 반찬 세가지 이상 올리질 말 것' 등을 결정하고 모아진 돈으로 조만간 다시 다녀와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무산 쪽에 살고 있는 친척들을 방문하고 왔습니다. 회령쪽으로 건너가 기차를 타고 갔는데 몇 시간이면 갈 거리를 사흘 걸려서 갔습니다.
 
 기차가 고장나서 하룻밤을 기차에서 새웠고, 그 밤사 이에 누군가가 바퀴를 빼내가 이틀을 다시 또 묵어갔단 말입니다 . 무산에 도착해보니 상황은 더욱 나빴습니다.
 
 동양 최대의 노천광장이 있는 무산시가 이렇게 황폐해지다니…. 놀랐습니다.
 
 조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빈집이 많았습니다.
 
 아예 한 동이 빈 곳도 있다고 합니다.
 
 죽어나간 곳도 있고, 집까지 팔고 나간 경우도 많다고 했습니다.
 
 조카와 친하게 지냈다는 어느 집은 중국쪽에 친척이 없어 어려웠는데, 집에 있는 물건을 하나씩 팔아 연명하더니 마침내 5월초에 집을 북한 돈 1만원(쌀 1㎏에 80원) 팔아 밥을 지어먹고 가족들 모두에게 얼마간의 돈을 쥐어준 뒤 뿔뿔히 흩어졌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너희들을 더이상 책임지지 못하니 후일을 기약하고 그 때까지 어떻게든 살아 있어라'고 말한 뒤 헤어졌다고 합니다.
 
 조카가 얘기하기를 아이들은 무산 시내에서 꽃제비를 하고 있는 것 을 가끔 보았으나 친구와 그 부인은 그 뒤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
 
 학교가 열기는 여는 것 같았습니다.
 
 풍금소리도 나고 운동장에서 줄 서 있는 것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들 절반 가량은 가지 않았고, 교원들도 나오는 않는 사람들이 많아 정상적인 교육은 거 의 되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조카는 공장도 서버린지 오래라고 합디다.
 
 기름이 끊어진 게 작년 말이고 노동자들도 더이상 일하러 오지 않는다고 해요. 가끔씩 온 사람들도 기계 부품 중에 값이 비싸게 나가는 동을 뜯어가기도 하고 고철이 돼버린 기계를 가져가 팔기도 한답니다.
 
 중국의 무역업자들이 밀가루를 가지고 들어와 고철을 실어가기 때문에 바꿔 먹는 것이죠. 공장 단위 책임자가 알면서도 말리지 못한다고 합니다.
 
 상부단위에서 `공장일꾼이 굶어죽으면 당신 책임'이라는 얘기를 들은 뒤부터 `그래, 일단은 그렇게라도 살아라'고 방조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기계, 전기선, 전화선 등 다 뜯어다가 식량과 바꿔 먹는다면 머지 않아 교통이나 통신 등 기본적인 시설들이 완전히 파괴될 텐데 걱정입니다.
 
 무산에 사는 다른 조카는 김일성 대학 출신이란 말입니다.
 
 내가 보기에 영어도 잘하고 최고의 인텔리인데 연구소에서 생활이 보장이 안되니 배낭을 메고 식량을 구하러 다닙니다.
 
 중국에 오기만 하면 미래가 창창한데…. 이 얼마나 국가적 손실입니까. 북한 전역에서 결혼할 때 예전에는 출신성분, 당성 등을 높은 가 치로 여겨 서로 데려가려는 신랑, 신부감이었지만 요새는 중국에 친척이 있는 사람을 최고로 친답니다.
 
 적어도 굶어죽지는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http://www.durihana.com/mai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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