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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19일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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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북한의 변화와 대응원칙』(2)
글번호  139 작성일  2007-11-03
글쓴이  청지기 조회  10416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주의사회가 자본주의사회와 교체되어야 할 새로운 보다 발전된 사회라고 주장하였지만 인간해방의 견지에서 볼 때 사회주의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보다 뒤떨어진 사회였다. 사회주의는 새것의 가면을 쓴 낡은 것이었다. 독일의 파시즘 독재도 새것이라고 주장하였지만 결국 새것의 가면을 쓰고 역사무대에 등장한 낡은 것이었다.
 
 더구나 북한의 수령절대주의 독재체제는 소련의 스탈린주의 독재보다도 훨씬 더 퇴보된 중세기적 독재체제인 만큼 그것이 자유민주주의체제와는 대비도 안되는 낡은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북한의 사회주의체제를 동정하는 사람은 진보적 인사에 속하고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수호하려고 하는 사람은 보수주의에 속하는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것은 완전히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현 시대는 결코 현존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혁명적 방법으로 때려부술 것을 요구하는 사회주의 혁명의 시대인 것이 아니라 특권을 견제하고 점차 없애나가기 위하여 민주주의를 더욱 개선 완성해나가는 것이 역사의 전진운동을 대표하고 있는 민주주의적 개혁의 시대라고 특징지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예컨대 노동계급의 처지를 개선하는 문제도 공산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폭력적 방법으로 자본주의체제를 때려부수고 노동계급의 독재정권을 수립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기업관리를 더욱 민주주의적으로 개선하는 개혁을 통하여 실현하는 것이 사회발전의 요구에도 맞고 노동계급의 이익에도 맞는 옳은 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현시대의 기본 모순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간의 모순이나 노동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모순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비 민주주의(독재)간의 모순이라는 것을 말하여 준다.
 
 오늘날 북한의 수령절대주의 독재체제와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체제 사이의 대립은 우리 시대의 기본 특징인 민주주의와 비 민주주의(독재) 사이의 대립의 일환으로 된다. 그러므로 남북한의 대립을 단순히 민족내부의 모순으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국제적인 문제의 하나로 보아야 할 것이다.
 
 독재는 폭력에 의거하고 있으며 폭력은 침략과 전쟁의 화근으로 되고 있다. 오늘날 독재국가들은 폭력으로 인권을 유린하고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침략과 전쟁을 도발하고 평화를 위협하는 장본인으로 되고 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를 더욱 개선 완성해나가는 진보적인 국제사회 앞에는 독재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할 데 대한 과업과 침략과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수호할 데 대한 일대 과업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같은 2대 과업은 독재와 민주주의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는 한반도에서 더욱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한반도에서 평화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문제는 민족적 과업인 동시에 국제적 과업이기도 한 것이다.
 
 오늘날 일부 사람들이 남북간의 대립의 본질이 독재와 민주주의간의 대립이라는 것도, 독재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세계 인민들의 공동과업의 일환이라는 것도 다 망각하고 남북간의 대립을 민족 내부의 모순으로 묘사하면서 남북의 당사자들끼리 민족적 화해와 협력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한반도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자기들이 원인과 결과를 전도하여 생각하고 있다는데 대하여 반성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남북의 대립과 불화가 원인이 되어 북과 남이 정 반대되는 두 체제가 수립되었는가, 아니면 북에 독재체제가 수립되고 남에 민주주의 체제가 수립된 데로부터 남과 북의 불화와 대립이 나오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편견 없이 다시 한번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제2차대전이 종결되고 우리 나라가 일본제국주의 기반에서 해방된 시점에서 우리 나라는 식민지 반봉건 사회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발전의 합법칙성의 견지에서 볼 때 우리 나라가 반봉건 민주주의 개혁을 거처 자본주의 길로 나가는 것이 옳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었다. 자본주의의 길로 나가는 것이 옳았다는 것은 오늘날 남북간의 판이한 발전상의 격차를 통하여 생동한 역사적 현실로서 여지없이 실증되었다. 결국 우리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되고 대립되어 6. 25전쟁의 불행까지 겪게 된 것은 전적으로 북한지역을 점령한 소련이 우리 나라의 사회발전 단계를 무시하고 사회주의 독재체제를 수립한데 그 근본원인이 있다는 것이 명백하다. 북한에 수립된 독재체제는 북한을 기아와 빈궁의 땅으로, 혹심한 인권유린의 중세기적 암흑의 땅으로 만든 근본원인으로 될 뿐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고 우리 민족의 통일을 방해하는 기본장애로 되고 있다는 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평화를 수호하고 민주주의에 기초한 나라의 평화적 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서는 첫째로도, 둘째로도 그 기본 장애인 북한을 지배하고 있는 수령절대주의 독재체제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보다 더 명백한 것은 없을 것이다.
 
 또 북한의 독재체제와 남한의 민주주의체제의 대립이 처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제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 명백한 만큼 한국은 마땅히 자유민주주의의 국제적 아성인 미국과의 동맹에 튼튼히 의거하고 일본을 비롯한 자유민주주의 나라들과의 국제적 협조 밑에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입장을 확고부동하게 견지하여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회주의로부터 개혁개방의 길로 나가는 나라들을 평가하는 데서도 올바른 기준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오늘날 지난 시기의 사회주의적 독재를 버리고 개혁개방을 택한 나라들이 눈부신 발전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나라들이 발전의 모델이 되는 것처럼 환상을 가지는 것은 시기 상조한 것이다. 이 나라들의 급속한 발전은 지금까지 사회주의 독재에 의하여 너무도 억압되어온 인민 적 에너지가 민주주의의 도입으로 해방된 결과 이룩된 것이지 이 나라들의 현재 사회체제가 이상적인 것이기 때문이라고 속단할 수 없다. 이런 나라들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혼합한 것처럼 보면서 바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혼합하는 것이 발전의 제3의 길인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현 역사발전 단계에 대한 인식을 잘 못 가지고 있는 것이다.
 
 현 역사발전단계에서는 민주주의원칙을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면에서 더욱 잘 구현해나가는 것이 사회발전을 촉진하는 기본 추동력으로 되고 있다.
 
 오늘 개혁개방으로 나가고 있는 나라들의 민주주의 발전수준은 아직 선진자본주의 나라들의 민주주의 발전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개혁개방으로 나가는 사회주의 나라들의 전반적인 사회발전 수준이 오늘의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을 따라 잡기 전에는 이 나라들의 과도적인 사회체제에 대하여 마치도 그것이 보편적 가치를 가지는 발전형태인 것처럼 속단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나라들은 아직도 민주주의 길로 전진하는데서 시련의 고비를 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마르크스주의의 계급투쟁과 무산계급 독재론을 버리고 개인과 사회적 집단의 민주주의적 발전을 담보하는 새로운 정치이론에 의거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아직도 북한과 같은 최악의 독재국가를 계급적 연대성의 견지에서 동지적 관계를 맺고 옹호해나가는 것은 이 나라들의 민주주의적 발전에는 물론 우리 시대의 민주주의적 발전의 요구에 맞지 않는다는데 대하여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민주주의와 비 민주주의(독재)간의 대립을 주축으로 하는 현시대의 전진운동은 어디까지 계속될 것 인가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세계에서 차지하는 인간의 자주적 지위와 창조적 역할을 높이는데서 인간이 의거하여야 할 원리가 민주주의원리만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현 역사적 시대에서는 민주주의를 더욱 개선완성하여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 철저히 구현하는 것이 인간의 자주적 지위와 창조적 역할을 높이고 사회발전을 촉진하는 기본 방도로 된다.
 
 민주주의를 개선 완성해야 할 여지는 많다. 우선 민주주의원리를 정치분야의 원리로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경제분야와 문화분야도 민주주의원리에 따라 발전시켜야 한다. 즉 경제분야와 문화분야에서도 인민대중이 주인이 되고 인민대중의 창조적 역할을 높이는 것이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키는 올바른 방도로 된다.
 
 인간생활을 민주화한다는 것은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인간이 주인으로 되게 한다는 점에서는 인간생활을 자주화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비인간적인 것을 제거하고 사회생활을 더욱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요구에 맞게 개조해나간다는 점에서는 인간생활을 더욱 사회화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시기 민주주의를 개선완성하는데서 기본 장애로 되는 것은 폭력에 의거한 독재와 약육강식의 경쟁이다. 폭력과 약육강식은 다 동물세계의 잔재로서 반 사회적이며 비인간적인 요인이다. 민주주의를 개선완성해나가는 과정은 폭력적 독재와 약육강식의 경쟁을 반대하고 인간생활의 자주화수준을 높이는 동시에 이에 기초하여 사회적 협조의 범위를 확대강화함으로써 인간생활의 사회화수준을 높여나가는 과정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적 원리는 인간생활에서 보편적 가치를 가지는 인류공동의 생존과 발전의 원리인 만큼 매개 나라들에서 뿐아니라 국제사회 전체를 규제하는 세계인민들의 공동의 생존원리로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주의원리는 인류공동의 생존과 발전의 원리로서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 아직 일부 독재국가들에서는 인권유린이 혹심하지만 국제사회가 수수방관하고 있으며 국제분쟁문제해결에 폭력의 사용이 완전히 금지되지 못하고 있다. 세계평화가 완전히 담보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세계인민들이 공동의 노력으로 민주주의를 더욱 개선완성하여 국제사회에서 보편적으로 구현해나가는 것이 우리 시대의 절박한 과업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민주주의원리를 국제사회 전체에서 구현하자면 민주주의원리를 훌륭히 구현한 세계정치질서와 세계경제질서를 확립하는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면 인간생활의 자주화와 사회화가 세계적 범위에서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인간이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생활공동체의 단위가 오늘날의 민족이나 국가를 단위로 하는데로부터 인류를 하나의 단위로 하는 생활공동체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민족과 국가를 단위로 하는 생활공동체로부터 인류를 단위로 하는 생활공동체로의 이행은 세계에서 차지하는 인간의 자주적 직위와 창조적 역할을 높이는데서 획기적인 역사적 전환으로 될 것이며 이때부터 현 시대와 질적으로 구별되는 위대한 새로운 역사적 시대가 시작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역사적 시대를 맞이할 때까지는 독재와 약육강식의 경쟁을 반대하고 인간생활을 자주화, 사회화하기 위한 민주주의적 발전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우리 한반도에서 독재와 민주주의의 대립도 최악의 경우에는 국제적인 대립과 결부되어 오래 끌 수도 있다는 것을 예견하는 것도 나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운명 문제에서 주체는 우리 민족인 것만큼 조국통일을 앞당기는 문제는 우리 민족이 어떻게 적극적으로 투쟁하는가, 특히 우리 민족의 민주주의 역량이 어떻게 투쟁하는가에 많이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 북한의 소생과 대북전략
 
 붕괴에 직면하였던 북한 독재체제가 다시 소생되었다.
 그것은 주로 미국의 대북한 포용정책과 남한의 대북햇볕정책의 덕택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특히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한국정부의 대북햇볕정책이다. 한국의 대북햇볕정책은 한반도에서 평화와 화해의 분위기를 마련한 것으로 인정되어 국제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북한을 소생시킨 한국정부의 대북햇볕정책이 앞으로 어떤 부정적인 또는 긍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이 붕괴에 직면하였던 북한을 소생시키고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제 북한은 절망적인 경제위기에서 벗어났으며 최악의 국제적 고립상태에서도 벗어나게 되었다. 북한 체제에 대한 부정적 영상이 급속히 사라지고 서방 선진국들이 앞을 다투어 북한과 수교하는 바람이 불고 있다. 이것은 한국정부의 대북햇볕정책의 빛나는 결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외부의 막대한 경제적 지원에 비해 볼 때 북한 주민들의 생활은 더디게 개선되고 있으며 아직 정상상태로 복구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북한 통치자들이 외부의 원조를 독재체제를 재정비하고 군대를 강화하는 데와 북한의 국제적 지위를 높이기 위한 대외관계 발전에 우선적으로 쓰고 인민생활을 안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응당한 관심을 돌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북한 식 사회주의체제의 물질적 기초라고 볼 수 있는 기본적인 사회적 시책을 제대로 부활시키지 못하고 있다.
 
 북한 식 사회주의의 물질적 기초로 되는 사회적 시책은 다음의 4가지라고 볼 수 있다.
 
 ① 식량을 거의 무상으로 공급한다.
 ② 모든 사람들에게 다 일자리를 주며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다.
 ③ 무상치료제의 실시
 ④ 무료의무교육제의 실시
 
 이상의 4가지 사회적 시책을 통하여 북한에서는 국가가 주민들에게 최소한도의 물질생활과 문화생활을 보장해 주고 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이것을 우리 식 사회주의의 우월성이라고 널리 선전하고 있다. 1970년∼1980년대에는 이러한 사회적 시책이 비록 그 수준이 매우 낮은 것이기는 하였으나 북한 주민들에게 안정된 생활을 담보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1990년에 들어서면서 경제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주민들에게 최소한의 물질, 문화생활을 보장하는 문제도 해결할 수 없게 되었으며 이것은 독재체제를 유지하는데 치명적 타격으로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 통치자들은 우선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군대와 독재기구들을 강화하는데 선차적 주목을 돌리는 한편 인민생활의 4대 기초를 회복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원상회복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입수한 자료를 종합해보면 북한의 식량사정은 많이 호전되었으나 아직 상당히 어려운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북한 통치자들은 체면을 무릅쓰고 국제사회에 식량원조를 구걸하고 있다.
 
 수도 평양시와 당, 정권기관과 군대를 제외한다면 아직 지방도시들에서는 식량배급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작년(2000년) 9월까지는 1인당 매일 500g씩 계산하여 매달 10일분의 식량이 배급되었으며 지금은 그것이 2배로 늘어나 매달 20일분의 식량이 배급된다고 한다. 이것은 식량사정이 크게 호전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지만 그래도 일반주민들은 저녁에는 밥을 먹지 못하고 채소에다 옥수수알을 조금씩 섞은 풀죽을 먹는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 인민들은 굶어죽는 사람이 없어져서 다행이라고 모두 기뻐하고 있다고 한다.
 
 작년(2000년) 중반기까지만 하여도 공장에 출근하는 사람이 50%정도였지만 이제 와서는 거의 100%가 출근하고 있으며 학생들도 다 학교에 출석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 약이 없기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어렵지만 시장에서 비싼 값으로 약을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고 한다. 지방도시들에서 유랑 걸식하는 아이들의 수도 거의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앞으로 경제 형편이 좀 더 개선되면 북한 통치자들은 식량배급제를 비롯하여 4가지 생활시책을 완전히 복구하여 인민생활을 정상화하는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이렇게 한다 하더라도 그 생활수준은 주변나라 주민들의 최하층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형편에서 일단 인민생활을 원상대로 복구한 다음 북한 통치자들이 어떤 길로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 주목되고 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지금도 사회주의혁명위업이니, 강성대국건설이니 하며 떠들고 있지만 그것은 인민들을 기만하기 위한 빈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다시 과거로 되돌아간다면 더는 멸망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이다. 지금 북한 통치자들은 낡은 것을 고수하여 죽음의 길을 택하는가, 아니면 개혁개방의 길로 나가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서 있다.
 
 결국 북한 통치자들은 수령독재체제를 고수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부분적으로 개혁개방을 『우리 식』으로 하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경제복구사업은 빨라지게 되며 인민들의 물질생활수준은 높아지겠지만 수령독재의 폐단은 계속 인민들을 괴롭힐 것이며 남북간의 통일은 더욱 멀어지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통일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북한 전략은 어떻게 되어야 하겠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1)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할 데 대한 문제
 
 한반도에서 전쟁의 화근은 북한의 수령독재체제와 군국주의이다. 북한 통치자들은 소위 선군 정치를 주장하면서 국방위원회를 국가의 최고지도기관으로 하는 군사독재체제를 세워놓았으며 군대를 조국통일의 주력군으로 간주하고 있다. 북한 통치자들이 극심한 경제위기를 겪으면서도 방대한 무력을 유지하고 계속 대량살상무기개발에 전력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무력에 의한 남침 통일 야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북한의 남침을 억제하는데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주한 미군이다. 북한 통치자들은 세계의 유일 초대강국인 미국의 무력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므로 남한을 수호하는 주력군은 한국의 국군이지만 남침을 억제하는 면에서는 단연 주한미군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한 미군이 존재하고 한미동맹이 확고한 조건에서는 북한의 남침전쟁 도발은 거의 있을 수 없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남침을 막고 한반도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미군의 한국주둔을 계속 보장하며 한미간의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점에서 남북한의 이해관계는 완전히 상반된다.
 북한 통치자들은 주한 미군의 철수를 집요하게 요구하며 한미동맹을 반대하고 있다. 원래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철저한 계급주의자들이지만 미군의 한국주둔과 한미동맹을 반대하기 위하여 남북간의 문제는 민족내부 문제이기 때문에 외세의 간섭이 없이 남북 당사자들끼리 민족화해의 원칙에서 해결해야 한다면서 민족주의간판을 내걸고 있다. 그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외세란 곧 미국인 것이다.
 
 북한 통치자들은 동족상잔의 6. 25전쟁을 일으키고 남한 동포들을 계급적 원수라고 하면서 무참히 학살하였으며 최근 몇 년 전까지만 하여도 당장 남침전쟁을 일으킬 것처럼 남한을 위협하면서 계속 잠수함과 잠수정, 무장 간첩단을 남파하며 전쟁도발책동을 감행하였다. 이런 북한 통치자들이 오늘날 갑자기 화해와 협력의 정신을 강조하게 된 것을 그들이 계급주의로부터 민족주의로 사상적 전향을 일으킨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바로 그들이 계급주의적 민족주의자들이라는데 더 큰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북한이 다른 민족이고 다른 나라라면 남북한이 평화적으로 오래 공존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남북한이 같은 민족이고 남북이 다 같이 민족주의적 입장을 고수하고 민족통일을 요구한다는데 더 문제가 있는 것이다.
 
 북한 통치자들은 마치도 자기들만이 민족주의에 충실한 것처럼 소란스럽게 떠들고 있지만 남이나 북이나 다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통일을 갈망하는 민족주의적 입장에 서 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남북간의 대립은 민족주의인가, 민족주의가 아닌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령절대주의에 기초한 민족주의인가,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민족주의인가 하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북측의 민족주의는 수령절대주의가 민족의 이익에 맞는다고 주장하는 민족주의이고 남측의 민족주의는 자유민주주의가 민족의 이익에 맞는다고 주장하는 민족주의이다. 북측이 수령절대주의를 버리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게 되면 곧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하여 우리 민족의 통일이 실현될 것이며 남측이 자유민주주의를 버리고 수령절대주의를 지지하게 되면 우리 민족은 곧 수령절대주의에 기초하여 통일될 것이다.
 
 남북 양측이 다 민족주의를 버린다면 수령절대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비록 양립할 수는 없어도 양자간의 투쟁이 불가피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체제를 달리하는 민족들이 서로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것처럼 체제를 달리하는 남북이 서로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양측이 다 민족주의 입장에서 민족의 통일을 지상의 과업으로 내세우고 있는 조건에서는 수령절대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대립과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다.
 
 수령절대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평화적 방법으로든 비평화적 방법으로든 투쟁과 경쟁을 통하여 어느 한 쪽의 부당성이 확정되어야 우리 민족이 하나로 통일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령절대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사이의 대립을 은폐하고 민족화해의 정신으로 통일을 이룩하자는 주장은 기만 술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북한 통치자들이 남북간의 체제의 대립, 수령절대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사이의 대립을 은폐하고 민족화해의 간판을 내걸고 남한에 접근하고 있는 기만 술책이 노리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로 반 인민 적이며 반민족적인 수령절대주의의 정체를 가리우고 남한동포들의 동정을 쟁취함으로써 남한으로부터 막대한 경제적 원조를 받아 자기들이 겪고 있는 심각한 경제적 위기를 극복해보려는 것이다.
 
 둘째로 수령절대주의의 침략적 정체를 가리우고 남침 야망을 포기한 것처럼 가장함으로써 남한 인민들이 평화적 기분에 사로 잡혀 남침위협에 대한 경각심이 마비되고 정신적으로 무장해제 된 상태에 있게 하여 자기들의 대남침투 작전을 용이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북한 통치자들은 최근에 와서는 잠수함, 잠수정을 파견하거나 무장간첩들을 침투시키는 것과 같은 노골적인 적대행위를 삼가는 대신 민족화해의 탈을 쓰고 남한의 친북 세력을 강화하고 애국적 역량을 약화시키기 위한 내부와해 사업은 결코 그만 두지 않고 있다.
 
 셋째로 남한의 친북 세력들과 그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을 부추겨 반미 감정을 조장시킴으로써 주인인 남한 인민들 자체가 남북의 화해가 실현된 조건에서 주한 미군이 필요 없고 한미동맹이 필요 없다는 것을 주장해 나서도록 하여 주한 미군의 지위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북한 통치자들의 이러한 기만 술책은 남한 사회에서 일정한 부정적 결과를 산생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북한의 수령절대주의 독재체제와 군국주의가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화근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기자신과 자기의 동맹자를 의심하고 북한 통치자들의 주장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수령절대주의 독재와 자유민주주의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으며 북의 수령절대주의 독재체제의 존재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화근이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하여 북의 남침전쟁도발이 언제나 가능하며 반드시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쟁의 화근이 존재하는 한 이에 대하여 언제나 경각심을 가지고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에 남침의욕이 있어도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어떤 경우에 남침전쟁의 위험이 더 커지는가.
 그것은 북이 군사적으로 남측보다 더 강하여 전쟁승리의 가능성이 클 때이다. 비록 실질적인 군사력이 남측이 더 강한 경우에도 남측이 평화기분에 사로잡혀 정신적으로 무장 해제된 상태인 경우에는 북측은 자기의 승리를 확신하고 남침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므로 남측의 군사력을 약화시키거나 북의 남침위험에 대한 경각심이 없어지고 평화기분에 사로잡혀 남침에 대한 대비를 약화시킬 때에는 북의 남침을 유도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남측이 평화기분에 사로잡혀 정신적으로 무방비상태에 있는 경우에는 북측이 통일전선전략에 따라 남한의 내부 분열을 격화시키고 친북 세력이 정권을 좌지우지하게 만들어 평화적 방법으로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붕괴시키고 수령절대주의 체제에 기초한 통일을 실현해보려고 책동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서는 전쟁의 화근인 북의 수령독재체제를 민주주의체제로 바꾸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으로 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언제나 남침에 대비하여 방위력을 강화하며 특히 국민들이 정신적으로 해이되지 않고 투철한 안보의식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 사람들은 북한이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경제적 난관이 증대되어 독재체제가 불안정하게 되면 전쟁을 일으키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면서 북한을 경제적으로 도와주고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침략성을 가진 대상이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경제적으로 약화되면 그의 전쟁능력이 약화될 수 있고 전쟁능력이 약화되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도 적어진다고 보는 것이 정상적인 논리라고 볼 수 있다. 전쟁능력이 약화될 수록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더 크다는 주장은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통이 큰 거짓말쟁이는 상식을 초월한 엄청난 거짓말을 하여 사람들을 『설마 그렇게 까지야』하고 어리둥절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상식을 초월한 궤변을 믿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은 없다. 특히 국가와 민족의 운명과 관련하여 상식을 초월한 괴상한 논리를 믿을 필요는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전야에 프랑스나 영국의 유화정책 지도자들이 히틀러에게 양보하여 얻은 것이 무엇인가. 히틀러의 침략적 야망을 더 키워주고 침략적 의지를 더욱 강화하여 주었을 뿐이다. 소련이 독소불가침 조약을 전적으로 믿었더라면 소련은 아마 히틀러의 전격전의 희생물이 되었을 것이다.
 
 전쟁의 역사에서는 투항을 가장하고 접근하여 불의의 공격으로 타승한 예가 수없이 많다.
 
 국가의 운명과 관련한 문제에서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면 전쟁을 미리 막을 수도 있고 침략자들이 전쟁을 일으키는 경우에도 자기를 지킬 수 있지만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있다가 만일에 불의의 사태가 일어나면 누가 책임지겠는가. 국가의 운명에 대하여 누구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또 책임질 수도 없을 것이다.
 
 국가의 운명에 대해서는 마땅히 인민 자신이 책임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인민은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언제나 전쟁을 방지하고 자기 나라를 자기가 책임지고 수호할 각오를 가지고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쁠 것은 하나도 없다. 국가의 운명과 관련하여서는 절대로 요행수에 기대를 걸지 말고 만전지책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2) 남북간의 평화적 경쟁을 강화할 데 대한 문제
 
 북한의 수령독재체제와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체제는 서로 상반되기 때문에 남북이 서로 싸우지 않고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는 있어도 상반되는 두 체제를 그대로 두고 남북이 하나의 민족국가로 통일될 수는 없다. 북한은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남한은 수령독재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독재도 좋고 민주주의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좋다는 사람은 독재를 반대할 것이며 독재가 좋다는 사람은 민주주의를 반대할 것이다. 이것은 결국 우리 민족은 반드시 독재체제에 기초하여 통일되든가, 아니면 민주주의체제에 기초하여 통일되든가 하는 이 두 길 중에서 어느 한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독재와 민주주의의 상반되는 두 가지 체제 가운데서 어느 체제를 통일조국의 체제로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총의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체제간의 대립을 계급적 대립으로 보면서 그것은 반드시 계급투쟁을 통하여 한편이 다른 편을 폭력으로 타도하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이러한 견지에서 6. 25전쟁을 일으켰다. 폭력에 의거하여 체제간의 대립을 해결하려고 한 북한의 시도는 남북한 양쪽에 다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안겨주었을 뿐 실패도 돌아갔다. 오늘에 와서는 남북간의 체제의 대립은 전쟁의 방법으로가 아니라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공인되고 있다.
 
 그러면 남북간의 체제상 모순을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하고 우리 민족의 통일을 이룩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일부 사람들은 남북간의 상반되는 체제상의 대립을 해결하는 데서 폭력적 방법, 전쟁의 방법을 적용하는 것을 배제하게 되면 남북간의 대립이 해소되는 것처럼 보면서 화해와 협력의 방법으로 남북간의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
 
 폭력적인 방법, 무력을 사용하는 전쟁의 방법을 배제한다고 하여 독재체제와 민주주의체제 사이의 대립이 없어질 수는 없다. 독재체제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민주주의체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상반되는 이해관계의 대립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조건에서는 그것을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다. 비폭력적인 방법에 의한 두 체제간의 투쟁이란 곧 평화적 방법에 의한 두 체제간의 경쟁이라고 볼 수 있다.
 
 원래 독재는 폭력에 의거하고 있으며 독재체제는 폭력의 사용을 본성적으로 요구한다. 폭력사용이 불가능한 조건에서 폭력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여 폭력을 사용하려는 독재체제의 본성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또 독재체제가 민주주의체제를 반대하는 본성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만일 독재체제가 민주주의 체제를 반대하지 않는다면 벌써 독재체제가 아니며 민주주의체제로 되어야 할 것이다. 독재체제를 계속 유지하면서 민주주의체제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런 것을 주장하는 것은 기만술책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상반되는 두 체제가 존재하는 조건에서 남북간의 관계는 전쟁이 배제된 조건에서도 평화적 방법에 의한 경쟁관계로 보아야지 통일된 민족내부의 협조와 협력관계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만일 남북관계가 평화적 경쟁의 관계가 아니고 협조와 협력 관계라면 벌써 민족통일이 다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통일에 대하여 논의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오직 통일정부를 세우기 위한 전민족적인 총선거를 실시하는 절차만이 남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남북간의 평화적 경쟁은 본질상 남과 북의 판이한 두 체제가 전민족적 지지를 얻기 위한 경쟁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체제와 수령독재체제 가운데서 어느 체제가 우리 민족의 생존과 발전에 적합한 우월한 체제인가를 남북한의 전체 인민이 정확하게 인식하고 우월한 체제를 통일조국의 사회체제로 선택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경쟁이다. 그런 것만큼 이 경쟁은 공명정대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독재체제와 민주주의체제는 그 특성이 상반되기 때문에 평화적 경쟁 방법에서도 차이가 있는 것이다.
 
 독재체제가 의거하고 있는 방법의 중요한 특징은 폭력적인 강제와 비폭력적인 기만술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체제가 의거하고 잇는 방법은 자유와 평등의 원칙을 구현한 민주주의적 방법이다. 우리는 평화적 경쟁에서도 기만과 음모 적 방법을 반대하고 민주주의적 방법을 고수해야 할 것이다.
 
 북한 통치자들은 우선 북한 사회를 외부세계와 완전히 절연시키고 북한 인민들에게 혹독한 폭력적 독재를 실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터무니없는 허위와 기만 술책으로 인민들의 자주의식을 마비시키고 우매화하고 있다. 북한 인민들은 사상의 자유, 신앙의 자유, 언론의 자유는 전혀 없고 외국의 방송이나 텔레비죤 시청과 외국 출판물 구독이 엄금되어 있다. 당의 승인과 감시 없이 외국인과 만날 수 없으며 외국에 전화를 걸거나 외국인과 편지거래를 할 수 없다.
 
 아침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방송하는 것은 수령의 위대성과 현명성, 천재성뿐이며 선군 정치의 우월성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또 외국 사람들이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인류의 태양으로 우러러본다는 소식과 남한 인민들이 김일성과 김정일을 끝없이 흠모하고 있다는 자료들만이 보도되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북한 인민들은 북한이 세계의 중심이며 김정일은 세계인민들이 한결같이 우러러보는 위대한 지도자인 것으로 알고 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북한 인민들의 남한 인민들과의 접촉을 엄금하고 남한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을 뿐 아니라 남한 인민들이 북한을 자유롭게 돌아보고 북한 동포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도 주지 않는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은 남한 인민들을 기만하기 위하여 대남 허위, 기만 선전을 공개적으로나 비공개적으로 끊임없이 진행하여 왔다.
 
 북한 통치자들은 이산가족상봉도 제정된 장소에서 면회하는 식으로만 허용하고 가정방문이나 성묘로 고향 방문하는 것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북한에서 수십만에 달하는 죄 없는 사람들이 정치범 수용소에서 가장 가혹한 인권유린과 학대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지만 북한 통치자들은 통제구역이라고 불리 우는 정치수용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자체를 완강히 부정하고 있다. 그들은 무장간첩을 내려보냈다가 붙잡혀도 그것은 다 남측이 날조한 것이라고 일축해버린다.
 
 이와는 달리 남측은 모든 것을 다 공개하고 있으며 북한 동포들이 남한을 자유롭게 방문하여 모든 것을 다 자유롭게 돌아보고 남한 사람들과 자유롭게 접촉할 것을 허용하고 있다. 이것은 너무나 불공평한 관계이다. 그러다 보니 북한 당국자들은 남한 실정을 잘 알고 있지만 남측은 북한 실정에 매우 어둡다. 북한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자들도 북한 통치자들이 허위 날조하여 발표한 자료에 기초하여 북한에 대하여 이리저리 추측하는 형편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을 무조건 도와주는 것은 결국 북한 인민들의 고통과 불행의 근원일 뿐 아니라 남침위험의 화근이고 민족통일의 기본 장애인 북한의 수령독재체제를 도와주는 것으로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체제경쟁에서 우리가 견지해야 할 원칙은 첫째로 북한에 주는 원조가 북한의 이익에 맞을 뿐아니라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승리에도 도움으로 되는 조건에서만 북에 대하여 원조를 주는 상호주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상호주의 원칙이라고 하여 상품교환에서와 같이 기계적으로 등가교환을 할 필요는 없지만 반드시 체제경쟁에서 이익이 되는가 손해가 되는가를 타산한데 기초하여 주는 것만큼 받아내는 원칙에서 북한과의 상호관계를 발전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이 수령독재체제의 정체를 알고 그것을 견결히 반대하며 자유민주주의체제에 기초하여 조국을 통일하는 길을 선택하도록 하게 하여야 한다.
 
 둘째로 자유민주주의체제인 남한이 정치, 경제, 문화, 군사의 모든 면에서 수령독재체제인 북한에 비하여 천양지차의 우월성을 가지도록 더욱 빨리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체제의 경쟁은 결코 말만 가지고서는 승리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자유민주주의체제의 비할 바 없는 우월성이 실증되어야 한다. 북한 통치자들이 아무리 독재와 기만의 방법으로 진실을 가리우려고 하여도 결국 진실은 알려지고 허위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남북간의 격차가 클수록 북한 인민들은 더 빨리 각성될 것이며 북한 인민들에 대한 남한 인민들의 견인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유민주주의체제에 기초한 민족의 통일을 그 어떤 힘으로도 가로 막지 못할 것이다.
 
 셋째로 평화적 경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언제나 비평화적방법에 의한 공격이 있을 수 있다는데 대한 경각심을 약화시키지 말고 북의 남침위험성에 철저히 대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독재의 생명은 폭력에 있다. 독재자들은 기회가 있으면 반드시 폭력을 사용하려고 한다. 김정일은 자기의 힘은 군사력에 있다고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평화적 경쟁에서 남측이 양보하지 않을 때에는 언제나 전쟁도발로써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정면에서는 평화를 주장하지만 뒤에서는 전쟁을 준비하며 또 남한을 내부적으로 혼란시키기 위한 작전을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화적 경쟁에서 남측이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앞섰다고 하여 마치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다 승리한 것처럼 자만 도취하여 북의 침공에 대한 경각성을 잃어버리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엄중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간의 관계에서는 체제간의 대립이 기본으로 되고 있기 때문에 체제경쟁에서의 승리를 보장하는 것이 기본 전략적 방침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우리가 이런 것을 강조하면 일부 사람들은 아직 냉전 식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우리를 비난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냉전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체험하지도 못하고 탁상공론만 일삼는 백면서생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지난날 소련과의 냉전을 승리에로 이끈 자유민주주의진영의 지도자들이야말로 탁월한 정치전략가들이었으며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킨 손자의 이른바 선의선의 전략의 모범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냉전전략의 본질은 열전을 막고 적에게 평화적 경쟁을 강요함으로써 공산독재체제에 비한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여 공산독재체제를 자멸하도록 이끌어 갔다는데 있다. 우리는 마땅히 장엄한 세계사적 실천을 통하여 그 정당성과 생활력이 검증된 위대한 냉전전략을 깊이 연구학습하고 그 경험과 교훈을 우리 한반도문제를 해결하는 데서도 창조적으로 이용하여야 할 것이다.
 
 자유민주 진영의 냉전전략가들은 소련에 대하여 평화공존의 원칙을 강조함으로써 도덕적으로 주도권을 장악하는 한편 소련의 전쟁도발책동에 대해서는 추호의 양보도 없이 강경 대처하는 확고한 원칙성을 견지하였다.
 
 북한통치자들이 1950년에 공산대국들의 지원 밑에 6. 25남침전쟁을 도발하였을 때 미국은 단호하게 침략군에 치명적 타격을 주었으며 막대한 희생을 무릅쓰고 3년간 전쟁을 계속하여 마침내 적들의 침략적 야망을 좌절시키고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수호하였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계속 자기 군대를 한국에 주둔시키고 북한의 끊임없는 전쟁도발책동을 제때에 저지시키고 한반도의 평화를 수호하는데 불멸의 공헌을 하였다.
 
 침략책동에 대한 미국의 강경한 원칙적 입장은 1962년 카리브해 위기 때에도 뚜렷이 과시되었다. 케네디 전 미국대통령은 쿠바에 핵무기를 배치하려는 소련의 기도를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침략적 적대행동으로 규정하고 핵전쟁도 불사한다는 확고한 입장에서 강경 대처함으로써 힘을 휘두르며 허장성세하던 소련지도자를 세계인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보기 좋게 굴복시키는 역사적 승리를 이룩하였다.
 
 냉전전략가들은 평화공존의 기치를 들고 소련의 새 전쟁도발책동을 계속 단호히 저지 파탄시키는 한편 평화적 경쟁을 통하여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우월성을 최대한 발양 시키는 전략을 힘있게 밀고 나갔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른바 제국주의 3대 모순으로 하여 자본주의는 멸망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3대 모순이란 자본주의 열강들 사이의 모순, 자본가계급과 노동계급간의 모순, 종주국과 식민지 사이의 모순을 말한다.
 
 냉전전략가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본주의체제로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한 이 3대 모순을 해결하고 공산독재체제에 비한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우월성을 빛나게 시위하였다.
 냉전전략가들은 그때까지 서로 물고 뜯으며 싸우던 자본주의 열강들의 관계를 국제공산독재를 반대하기 위하여 서로 긴밀히 협조, 협력하는 동맹관계로 전환시켰으며 국내적으로 빈부의 차이를 줄이고 민주주의적 권리를 확대하는 사회적 시책을 실시함으로써 노사간의 모순을 크게 무마시켰으며 구식민주의적 지배체계를 해체하고 신생독립국가들에 경제적 원조를 주는 방향에서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들과 신생독립국가들 사이의 모순을 약화시켰다.
 
 민주주의 진영이 국제적으로 통일 단결되고 국내적으로 화목과 안정이 실현됨으로써 과학기술의 발전과 경제발전에서 일대 전환을 일으키게 되었으며 평화적 방법에 의한 경쟁에서 공산독재진영을 압도하게 되었다. 이것은 공산진영의 국제적 영향력을 떨어뜨리고 공산진영 내부의 사상적 동요와 체제와해를 촉진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되었다.
 
 냉전에서의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역사적 승리는 우리들에게 귀중한 교훈을 안겨주고 있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미국과의 동맹을 백방으로 강화하고 일본을 비롯한 자유민주주의 우방들과의 국제적 연대성을 강화하여 북한의 남침책동을 제때에 저지 파탄시키고 한반도의 평화를 확고히 수호하여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 국민들에게 북한의 수령독재체제의 반인민적이며 반민족적인 정체를 깊이 인식시키고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각오를 강화하는 한편 그 우월성을 더욱 높이 발양시킬 수 있도록 민주주의적 개혁을 힘있게 추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북한과의 평화적 경쟁에서 남한의 우월성을 더욱 압도적인 것으로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현재 상태에서도 한국은 북한에 비하여 많은 면에서 우월하다. 경제적 면에서는 대비가 되지 않으며 군사적 면에서도 한미연합군이 북한군에 비하여 우월하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그렇다고 하여 북한을 과소평가하고 마치도체제의 경쟁이 끝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북한의 강력한 정치적 조직력과 사상적 집결력, 막강한 군사력과 중국과의 공고한 동맹관계 등을 응당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한국 내에 있는 북한을 동정하는 세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지만 북한 내에는 한국에 동정하는 세력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러므로 현 상태에서는 체제간의 경쟁에서 언제나 주도권이 반드시 한국 편에 있다고 단언할 수 없다. 한국이 자유민주주의체제에 기초하여 남북통일을 이룩하려면 아직도 평화적 경쟁에서 압도적 승리를 이룩할 수 있도록 더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3) 북한을 민주화하기 위한 운동을 강화할 데 대한 문제
 
 반세기 이상 남북으로 분단된 상태에 있는 우리 민족이 어떤 원칙에서 통일되어야 하겠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평화적 방법에 의거할 것인가, 비평화적 방법에 의거할 것인가 하는 것은 통일의 방법이지 통일의 기초로 되는 원칙이 아니다. 흡수통일을 한다, 안 한다 하는 문제는 통일의 원칙이 아니라 어느 편이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통일의 모체의 역할을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체제의 경쟁도 끝나지 않은 조건에서 흡수통일을 한다, 안 한다고 논의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민족적 단합과 동포애를 민족통일의 원칙이라고 주장하지만 바로 민족통일이 동포애에 기초한 민족적 단합을 의미하는 만큼 이것은 동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민족적 단합을 어떤 원칙에 기초하여 이룩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의 인민들이 민족적 통일을 이룩하려는 목적은 민주주의적 독립국가를 건설하고 다같이 국가의 주인으로서 민주주의적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는데 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적 원칙이야말로 남북한 인민들의 공동의 염원에 부합되는 통일의 원칙으로 된다.
 
 민주주의적 원칙에서 민주주의적 통일국가를 형성하기 위하여서는 남북한 인민들의 정치문화수준에서의 격차를 없애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일부 사람들은 남북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남북간의 경제발전의 격차를 줄이고 경제적 동질화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경제적 동질성이 민족통일에 중요한 조건으로 된다. 그러나 남북이 분단된 상태에서 체제경쟁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남이 북에 경제원조를 주는 방법으로 경제적 격차를 줄이려고 하는 것은 체제경쟁자체를 부정하는 그릇된 태도이다. 체제경쟁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승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남북간의 경제발전격차가 클수록 좋은 것이다.
 체제경쟁이 끝나기도 전에 남과 북의 경제를 하나의 민족경제와 같이 생각하면서 경제원조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옳다고 볼 수 없다.
 
 남북한의 경제발전격차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북한의 독재체제가 무너지고 민주정권이 수립되게 되면 남북간의 경제는 당장 하나의 민족경제체계로 결합되기 때문에 단시일 내에 경제발전의 격차를 제거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당분간 생활수준이 낮은 북한 인민들이 남한으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고 남측이 북에 1∼2년 동안 식량원조나 주어 북한 인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북한에 자유롭게 들어가 경제건설에 참가하게 되면 북한의 경제가 급속히 발전할 것이며 남한 경제도 방대한 통일비용의 부담을 피하면서도 남북간의 경제적 동질성 문제를 약 10년 어간에 기본적으로 해결하게 될 것이다.
 
 문화발전의 동질화를 실현하는 것은 큰 문제로 제기될 것도 없을 것이다. 민족공동의 언어가 달라진 것도 아니고 또 북한의 일반 교육수준이 비교적 높기 때문에 문화수준의 격차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머지 소소한 문제들을 북한 인민들이 자유롭게 남한을 와서 보고 남한 동포들의 발전된 문화생활을 직접 보게 되면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문화의 동질화 문제를 순조롭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는 민주주의적 정치문화발전 수준의 차이를 줄이고 정치적 동질화를 실현하는 문제이다. 이것은 곧 북한 인민을 민주화하는 문제이다.
 
 북한은 1945년에 해방되자마자 스탈린 식 독재와 봉건전제주의가 결합된 유례없이 가혹한 독재를 실시하여 왔으며 한번도 민주주의방향으로 전진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독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후퇴하여 왔다. 김일성은 스탈린 식 독재보다 더 후퇴하였으며 김정일은 김일성의 독재보다 더 후퇴하였다. 그 결과 북한 인민들의 민주주의적 자주의식은 마비될 대로 마비되었다.
 이와는 달리 남한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50여 년간 민주주의적 발전의 길을 걸어왔다. 그러다 보니 북한인민은 남한의 민주주의 정치문화를 이해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뒤떨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상태를 그대로 두고서는 북한의 독재체제를 허물고 두 체제간의 대립을 제거하는 문제도,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실현하는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그러면 북한 인민을 민주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① 민주화핵심대열을 꾸리고 민주화의 기지를 창설하여야 한다.
 
 북한의 수령 독재하에서는 수령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민주주의적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 독재대상으로 되고 있으며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장기간의 독재생활과정에 사람들의 자주의식이 마비된 결과 독재자를 맹목적으로 숭배하고 따라가고 있다. 또 생활형편이 너무 어렵다보니 먹고사는 문제에 몰두하여 인권문제에 관심을 돌릴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 민주화사업을 성과적으로 추진시키기 위하여서는 먼저 핵심대렬을 꾸리고 민주화의 기지를 창설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주화사업의 핵심대열은 무엇보다도 수령 독재의 피해를 가장 많이 받은 계층들을 기본으로 꾸려야 하며 민주화사업의 기지도 수령 독재의 피해를 비교적 더 많이 받은 지대에 만들어야 할 것이다.
 
 북한의 수령독재의 피해를 가장 많이 받은 계층은 어떤 계층이겠는가.
 
 첫째로 수령독재정권이 계급적으로 적대시하는 계층들이다.
 북한 통치자들은 자기 정권을 노동자, 농민의 정권이라고 주장하면서 지주, 자본가와 친일파, 친미파, 그리고 종교신자들을 적대시한다.
 
 토지를 5정보(5헥타르)이상 가지고 있는 사람은 지주계급으로 규정하고 다 숙청하여 다른 지방으로 추방하였으며 그들의 가족들은 손자에 이르기까지 적대계급출신이라고 하여 적대시한다. 이리하여 계급적 견지에서 출신성분이 나쁘다고 규정된 사람들은 모두다 독재의 대상으로서 심각한 피해를 받고 있다.
 
 둘째로 수령의 파벌과 다른 계통의 정치적 파벌에 속했던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다.
 김일성은 자기 파 중심으로 독재체계를 세우기 위하여 국내공산당세력인 남노당파와 소련파, 중국연안파 등을 무자비하게 숙청하였으며 그들에게는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라는 딱지를 붙였다. 그후 수령의 유일 사상체계와 유일 적 영도 체계를 세우기 위한 정치투쟁과정에서 숙청된 사람들도 역시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로 규정되었다.
 
 이러한 파벌투쟁과 정치투쟁의 희생자가 적지 않다. 남노당파로 숙청된 사람들만 하여도 그 가족까지 합치면 약 4만 명에 달한다. 그러므로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라는 누명을 쓰고 모진 학대를 받는 층이 적지 않다.
 
 셋째로 정치범수용소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가족들과 1995년-1998년 식량위기 때에 희생된 사람들이다. 정치범수용소에는 가족과 함께 보낼 수도 있지만 가족은 감시대상으로만 되어 남아 있을 수 있다. 정치범수용소에서는 말할 수 없는 고역과 학대에 못 이겨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오지만 언제나 20만 명에 달하는 죄 없는 죄인들이 반역자의 누명을 쓰고 상상을 초월한 생지옥에서 죽어가고 있다. 정치범 수용소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가족은 엄청난 수에 이른다.
 
 또 1995년-1998년 식량위기 때는 적어도 300만 명 이상이 굶어죽었다. 이런 사람들의 가족들은 당시의 고통과 불행이 골수에 사무쳐 있다. 이런 사람들은 다 수령독재의 비인간성에 대하여 강한 불만을 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밖에도 독재의 피해자는 많다.
 
 한창 배움의 꽃을 피우고 희망에 넘쳐있어야 할 청년학생들에게 13년간씩이나 군대에 들어가 수령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훈련만 받게 함으로써 그들의 일생을 망치게 한 수령의 군사독재에 대한 희생자들의 원한도 클 수 있다.
 
 또 북한 통치자들은 독재의 부당성을 비판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지식인들을 경계하여 그들을 혁명화, 노동계급화의 대상으로 규정하였다. 혁명화, 노동계급화란 노동계급의 본을 따라 혁명의 화신인 수령을 무조건 숭배하고 수령의 지시에 무조건 복종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육체노동자에게는 육체에 필요한 식량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정신노동자인 지식인들에게는 정신적 식량이 필요하다. 지식인들에게 정신적 식량을 섭취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하고 수령의 사상만을 신봉하고 그것을 기계적으로 선전하도록 강요하고 있는데 대하여 지식인들에게는 뿌리 깊은 불만이 있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지식인들은 수령 우상화의 미신을 반대하고 인권 옹호사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상문화적 바탕을 가지고 있으며 일단 민주주의적으로 각성되면 민주화운동에 앞장설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지식인들을 민주화하는데 중요한 관심을 돌리는 것이 필요하다.
 
 수령독재의 피해를 더 많이 받은 층과의 사업을 통하여 북한 민주화사업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역량을 조직적으로, 사상적으로 끊임없이 확대 강화하는 동시에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근거지를 튼튼히 꾸리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중국,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양강도와 함경남북도를 먼저 민주화하고 이 지역을 기지로 하여 북한 전 지역을 민주화 해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함경남북도는 평야가 적은 산악지대이지만 공업과 수산업이 비교적 발전된 지대이며 불리한 자연환경 속에서 단련되어온 관계로 주민들의 생활력이 강하다. 해방 전에 반일해방투쟁에도 함경남북도 사람들이 비교적 많이 참가하였으나 김일성은 그들이 자기파가 아니라고 하여 배척하였다. 그후에도 함경도 사람들의 진출을 견제하는 것은 노동당의 일관한 방침으로 되고 있다. 이에 대하여 함경도 사람들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
 
 또 함경남북도는 식량을 자급자족하지 못하는 지대인 만큼 1995∼98년의 식량위기를 맞이하여 아사자수를 가장 많이 낸 지대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양강도와 함경남북도를 민주화하는 사업을 앞세우고 이 지대에 민주화활동의 거점들을 많이 꾸리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 민주화사업의 거점은 해외에도 꾸리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 통치자들은 일찍이 재일 교포들을 조직화하여 조총련을 대남 사업의 중요한 거점으로 이용하여 왔으며 중국동북지방의 조선족들과의 사업을 통하여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역사를 과대 날조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여기에서 재미를 본 북한 통치자들은 미국과 러시아에서도 조총련형의 교포조직을 만들기 위하여 큰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오늘 날 북한은 해외동포들로부터 적지 않은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해외동포들과의 사업을 강화하여 해외동포들 속에서 북한 민주화사업의 거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해외교포들은 북한 통치자들의 직접적인 통제 속에 있지 않는 만큼 조금만 힘을 넣으면 그들을 민주주의 편으로 끌어당길 수 있으며 그것이 북한 민주화에 주는 전략적 가치는 매우 크다. 예컨대 중국과 북한의 동맹관계가 공고하여 불리한 조건이 있기는 하지만 중국 동북지방의 조선족 자치구를 북한의 수령독재를 반대하는 기지로 만들기만 한다면 북한의 민주화를 실현하는데서 결정적 승리를 이룩할 수 있는 확고한 담보를 마련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② 북한의 정치, 경제적 개방보다 사상문화적 개방을 앞세우고 북한 인민의 사상적 해방을 앞세워야 한다.
 
 북한 통치자들은 수령독재체제를 유지하는데서 물질적인 강제적 수단과 사상적 기만의 방법을 배합하여 적용하고 있다. 북한의 수령독재체제를 외부로부터 물질적 힘으로 붕괴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잘못하다가는 엄청난 손실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북한의 수령독재체제를 붕괴시키기 위해서는 북한 통치자들의 사상적 독재를 허무는 사업부터 먼저 시작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일본, 이탈리아 등의 독재체제는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 측의 무력에 의하여 붕괴되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인류는 많은 대가를 지불하였다. 그러나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진영의 독재체제를 붕괴시키는 것은 물질적 힘을 직접 동원하여 타격을 주는 방법이 아니라 냉전을 통하여 사상적으로 내부를 와해시키는 방법에 의거하여 성공할 수 있었다.
 
 원래 공산주의 독재체제의 수립은 공산주의 사상선전으로부터 시작된다. 공산주의 사상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공산당을 조직하고 공산당이 노동자, 농민들을 선동하여 공산당독재정권을 세운 다음 공산당이 정치적 권력에 의거하여 공산당 독재체제의 사회제도를 수립한다. 그러므로 공산주의사상이 붕괴되면 공산당이 붕괴되고 공산당이 붕괴되면 공산당독재정권이 붕괴되며 공산당독재정권이 붕괴되면 공산주의 사회제도가 붕괴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점에서 공산주의 독재체제에서 공산주의사상은 생명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일은 공산주의 독재사상을 수령절대주의 독재사상으로 변질 시켜 수령의 유일 적 독재체제를 만들어 북한 사회를 망쳐놓았다. 수령절대주의 독재사상만 붕괴시키면 수령의 당도, 수령독재의 정권도 붕괴되고 수령독재체제 전체가 붕괴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북한 통치자들은 수령절대주의 사상을 자기의 생명과 같이 여기고 그것을 옹호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고 있다.
 
 수령절대주의 사상이란 한마디로 말하여 수령을 무조건 숭배하는 사상이다.
 
 김정일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우리가 말하는 당성이란 자기 운명을 책임지고 보살펴주며 빛내어주는 자기 수령, 자기 지도자에 대한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숭배사상입니다.』
 
 마르크스나 레닌은 자기를 숭배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반대하였다. 자기를 절대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숭배할 것을 요구하는데 수령절대주의의 창시자인 김정일의 후안무치한 독창성이 있는 것이다.
 
 수령절대주의 사상은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첫째로 수령을 무조건 숭배하도록 하기 위하여 소위 수령의 혁명활동역사라는 것을 터무니없이 과장하고 날조함으로써 역사를 위조하는 범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며 둘째로는 수령을 신격화함으로써 인간평등의 사상을 부정하여 사람들의 자주적 본성을 유린하고 있다는 것이며 셋째로 수령의 사상만을 절대적으로 신봉할 것을 강요함으로써 사람들의 사상적 자유와 인격적 발전을 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수령의 사상 정신적 노예로 만들기 위해서는 수령에 대한 허위선전을 믿도록 강요하는 한편 외부세계와의 연계를 단절하도록 강제적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북한은 문자 그대로 일대 사상 정신적 감옥으로 되고 있다.
 
 북한 통치자들이 수령절대주의 사상의 감옥을 유지하는 비결은 철저한 사상적 쇄국정책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허위선전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하여서는 수령절대주의 사상의 감옥을 깨야 하며 그러자면 사상적 쇄국정책을 마스고 사상개방을 실현하여야 한다.
 
 북한의 사상적 개방을 실현하는 것이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북한의 정치적 독재체제와 경제적 독재체제를 붕괴시키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쉽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정치적 독재체제를 붕괴시키자면 막대한 군사력이 동원되어야 하며 북한의 경제적 독재체제를 붕괴시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경제력이 동원되어야 한다. 북한의 사상적 개방을 위하여서는 이러한 막대한 비용이 필요 없다. 아마 비용의 면에서 따진다면 정치, 경제적 붕괴를 위하여 필요한 비용의 100분의 1도 들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독재사상을 붕괴시키는데는 사상적 무기만 동원되면 되기 때문에 물질적 위험성과 손실을 걱정할 것이 없으며 그 명분이 뚜렷하기 때문에 광범한 세계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세계여론의 지지를 받고 국제적인 연대성을 가지고 사상적 공세를 취하게 되면 북한의 사상적 감옥을 깨고 사상적 개방을 실현하는 문제를 성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소련붕괴의 역사적 교훈도 사상적 개방과 사상적 붕괴문제를 앞세우는 것이 독재체제를 붕괴시키는 비결이라는 것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서방세계는 소련을 붕괴시키는데 있어서 소련의 고유한 사회제도를 직접 공격한 것이 아니라 언론의 자유, 사상의 자유, 인권존중과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가지는 이념을 접수하도록 압력을 가하였다. 초보적인 민주주의 원칙의 정당성은 공산독재자들도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들의 헌법에도 다 명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독재가 강한 체제일수록 반독재 사상인 인권사상과 민주주의 사상은 독약과 같이 치명적인 작용을 한다.
 소련붕괴에 결정적 요인으로 된 것은 인권사상의 침투였다고 볼 수 있다.
 북한 독재자들도 언론의 자유와 사상, 신앙의 자유를 헌법에서 다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도 공식적으로는 부정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그들을 공격하여야 한다.
 그들은 신앙의 자유를 인정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가짜 교회당까지 만들어 놓고 가짜 종교조직까지 만들어 놓고 있다. 이것은 독재자들에게 이면에서 큰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우리는 그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인권사상과 언론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도록 사상적 압력을 강화하여야 한다.
 
 특히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서의 인권유린을 비판하는데 공격의 화살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통치자들은 정치범수용소의 존재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이것 역시 그들이 공개하지 못하는 심중한 죄악을 범하고 있다는 약점을 드러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의 야만적인 인권유린상황을 널리 폭로하고 정치범수용소를 공개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은 북한의 특수핵사찰 대상을 공개하여 북한 통치자들의 핵무기개발의 진상을 밝히는 것보다도 북한의 수령독재체제의 비인간적인 정체를 밝히고 북한에 대한 세계인민들의 인식을 바로 잡는데서 비할 바 없이 더 큰 의의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아직 국제사회는 북한을 사상적으로 개방시키는 사업을 앞세우는 것이 가지는 의의를 잘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군사적인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아끼지 않지만 북한의 사상적 개방을 위하여서는 큰 돈을 쓰려고 하는 것 같지 않다. 예컨대 미국은 북한의 금창리 지하시설이 핵 시설인가, 아닌가를 확인하기 위하여 북한에 막대한 식량원조를 제공하였다.
 
 북한 통치자들이 금창리 지하시설을 무엇을 위하여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비밀시설로 만들었던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북한 통치자들은 막대한 식량원조를 받기 위하여 비밀시설들을 다 딴 데로 옮기고 빈 굴만 보여주었다.
 
 지금 한국은 북한에 막대한 전력을 지원해주는 대가로 전선에 배치된 장거리포들을 후방으로 옮길 것을 제기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되고 있다.
 북한은 지금 당장 전쟁을 일으킬 생각도 없고 일으킬 수도 없는 조건에서 장거리포를 일시 후방으로 옮기는 것은 큰 문제로 될 것이 없을 것이다. 그 대신 전력을 공급받아 더 많은 장거리포를 생산하여 앞으로 배치하게 되면 한국에 이익으로 될 것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흥정보다는 북한이 인권과 민주주의에 관한 우리의 방송을 방해하지 않도록 한다든가, 북한의 청년학생들을 한 1000명 한국에 보내 한국 측이 보여주고 싶은 대상을 1개월 정도 보여줄 수 있도록 허용하는 문제 등 북한의 사상적 개방에 도움으로 되는 문제를 가지고 흥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만일 미국과 한국이 북한에 준 경제원조의 10분의 1, 지어 100분의 1이라도 그것을 북한 민주화를 위하여, 특히 북한을 사상적으로 개방하기 위하여 쓴다면 얼마나 큰 효과를 거둘 수 있겠는가 하는데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에서도 우리는 냉전시기의 민주주의 전략가들의 모범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1975년 헬싱키회의에서 소련이 서방세계가 경제, 기술적인 원조를 해줄 수 있다는 약속을 조건으로 하여 소련이 인권선언에 조인하는 양보를 얻어냈으며 이것을 계기로 소련에 인권사상이 대대적으로 들어가 소련의 사상적 붕괴를 촉진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소련청년학생들은 미국과 텔레비죤 방송을 교환하는 것을 통하여 미국의 발전된 면모로 알게 되고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 당시 소련의 청년학생들과 노동자들이 미국의 노동자들이 승용차를 타고 야외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장면을 보고 크게 떠들던 모습을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만일 인간이 육체만 가진 존재라면 동물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인간은 바로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데 동물과 질적으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사회체제를 변경시키는데서 물질적 조건을 변경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정신을 변경시키는 것이다.
 
 인간을 구속하는 경제적인 조건과 정치 군사적인 조건을 제거하는 것보다도 인간의 사상정신을 구속하는 조건을 제거하고 옳바른 정신을 넣어주는 것이 인간해방에서 더 큰 의의가 있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민주주의란 인민이 나라의 주인으로 된다는 뜻이다.
 인민이 나라의 주인으로 되려면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삶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주장할 수 있는 자유를 가져야 한다. 사상은 바로 사람들의 삶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표현하고 있는 인간의 정신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정신적 자유가 보장되어야 사람들이 나라의 주인으로 될 수 있다.
 
 물론 사람들의 요구와 이해관계에는 공통점과 함께 차이점도 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요구와 이해관계의 차이점을 사회공동의 이익에 맞게 조절하는 것은 민주주의 정치의 과업이다. 민주주의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들이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주장할 수 있는 사상적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북한은 수령의 사상 하나만을 신봉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나라로서 사상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전혀 없는 나라의 전형이다. 이러한 북한에 대하여 당장 사상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허용하라고 요구하면 내정간섭이라고 하면서 반발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자격을 가지려면 전 인류가 다같이 인정하는 사상과 도덕적 규범은 인정하고 지켜야 할 것이다.
 
 오늘 신앙의 자유는 공산주의자들도 다 인정하는 것이다. 종교를 믿고 안 믿는 것은 사람들의 자유이다. 종교를 선전할 자유도 있고 반 종교선전을 할 자유도 있다. 그러므로 북한은 먼저 신앙의 자유만이라도 허용하여야 하며 선교사들이 북한에 들어가 자유롭게 선교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줄 의무가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인민들이 친선협조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인류공동의 염원이며 역사발전의 필연적 요구이다. 북한 통치자들도 말로는 세계인민들의 친선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세계인민들의 친선협조 관계를 발전시켜나가자면 세계적 범위에서 정보를 서로 교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북한 통치자들이 수령을 신격화하는 선전을 하는 것을 방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민주주의 나라들이 전파하는 정보도 북한은 허용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수령절대주의를 선전하는 자유는 요구하면서 민주주의 사상을 선전하는 것은 엄금하고 있다. 이것은 북한 통치자들이 평등의 원칙에서 서로 물질문화와 정신문화를 교환할 데 대한 국제적 관례를 지키지 않는 이기주의적이며 배타주의 적인 태도이다. 이런 태도를 고치지 않는 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의 대우를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이다.
 
 북한은 마땅히 외국의 방송과 텔레비죤의 시청을 방해하지 말아야 하며 외국의 대중보도출판물들이 북한에 들어가는 것을 막지 말아야 하며 외국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전화를 걸며 편지를 보내는 것을 막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 모든 것을 다 반대하고 철저한 사상적 쇄국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국제사회는 일치 단결하여 강력히 규탄하여야 하며 이러한 폐쇄정책을 고치지 않는 한 절대로 경제적 원조를 주지 말며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서 대우해주지 말아야 한다. 이리하여 북한의 사상적 개방을 유도하는 문제를 선차적으로 해결하여야 할 것이다.
 
 ③ 자유로운 인적교류를 실현하여야 한다.
 
 북한을 민주화하고 남북간의 정치문화발전의 격차를 없애기 위해서는 남북간의 자유로운 인적교류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 통치자들은 말로는 남북의 화해와 교류협력을 강화할 데 대하여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인적교류를 제외한 물건의 교류를 실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남한의 기업가들이 북한에 들어가 북한 인민들과 협력하여 기업활동을 벌리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남한으로부터 경제 기술적 원조를 받으려는 목적만을 추구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경제적 원조자체가 북한을 개혁개방에로 유도하는데 도움으로 되는 것처럼 주장하면서 금강산관광에 대해서도 큰 의의를 부여하였다. 금강산만을 보고 오는데 북한 인민들에게 무슨 영향을 줄 수 있단 말인가.
 
 금강산관광에서 북한은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었지만 남한의 경제인은 막대한 적자만 얻었다. 일부 사람들은 북한이 서방 자본주의나라들과 국교를 맺는 것을 개방의 표시인 것처럼 평가하고 있다. 이것은 정치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국제적으로 자기 존재를 인정 받으려는 것은 응당한 것으로서 처음부터 절실히 요구하여온 것이다. 국교관계를 설정한다고 해서 공산주의 독재국가가 자본주의 국가로 변한 일도 없고 회교국가가 기독교국가로 변한 일도 없다. 또 정치적 대표단이 교환된다고 하여 정치관계에서 반드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보통 그것은 외교이며 정치적 흥정에 지나지 않는다.
 
 남북의 분단을 종식시키고 민족의 통일을 이룩하는데서 주인은 응당 남북한 인민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남북한 인민들이 자유롭게 내왕하며 친선을 도모하려고 하는데 무엇 때문에 북한 통치자들은 그것을 한사코 방해하며 또 그렇게 방해할 권한을 누가 주었는가 하는 것이다.
 남과 북을 막론하고 서로 자유롭게 내왕하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며 누구를 막론하고 다 자기 나라의 남과 북을 가보고 서로 친숙해질 것을 바랄 것이다. 이러한 민족적인 절실한 요구를 가로막는 것이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북한 통치자들이다.
 
 북한 통치자들은 왜 남북간의 인적 교류를 한사코 반대하고 있는가.
 
 북한 통치자들은 남북간의 인적교류를 반대할 뿐만 아니라 북한 내에서도 인적교류를 극력 제한하고 있다. 그것은 독재자들이 인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우고 독재에 맹목적으로 복종하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즉 그들은 인민들이 어느 군에 가보니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든가, 어느 군에서는 인민들이 수령과 당에 대하여 불만이 대단하다든가, 어느 군에서는 군대들의 행패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는 등 인민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과정을 통하여 독재를 반대하여 뭉치는 것을 극도로 겁나하고 있다. 수령절대주의자들은 심지어 간부들이 사적으로 모여 앉아 식사를 같이 하거나 술을 같이 마시는 것도 매우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북한 인민들이 남한에 와보고 남한 인민들이 잘사는 정형을 보고 돌아와 우리는 왜 못사는 가고 논의하게 되면 독재체제가 위태롭게 되리라는 것은 뻔하며 통치자들은 바로 이것을 겁나하는 것이다.
 
 그러나 남북한 인민들은 같은 민족으로서 반드시 하나로 통일되어야 할 사람들이며 천만가족이 갈라져 있는 상태에서 내왕의 자유를 억제하는 것은 반민족적인 범죄행위라고 밖에 달리 말할 수 없다.
 
 금강산은 옛날부터 조국의 명산이지 그것이 북한통치자들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러나 파렴치하게도 북한 통치자들은 금강산을 비롯한 명산의 큰 바위마다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하는 구호를 새겨 경치를 망치고 있는가 하면 같은 동포인 남한 인민들에게 막대한 입산료를 받고 조국의 경치를 동포들에게 팔아먹는 반민족적인 추행까지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들한테서 어떻게 민족적인 화해와 협력의 정신을 찾아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정치를 잘 못하고 경제관리를 잘 못하여 굶어죽게 되었으면 그저 와서 도와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피를 같이 나눈 동포들 사이의 의리이지 경치를 팔아먹고 군사적으로 위협하여 빼앗으며 군사적 위협을 좀 늦추는 방법으로 또 빼앗아 먹는 것이 동포들 사이의 화해와 협력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북한 통치자들의 이러한 부당한 요구를 단호히 배격하고 남북간의 인적교류를 방해하는 그들의 반민족적 죄행을 끊임없이 폭로, 규탄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남북인민들이 서로 자유롭게 내왕하는 문제를 실현하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고 투쟁해야 할 것이다.
 
 우선 이산가족상봉을 자유롭게 실현하는 문제와 선묘를 위한 고향방문을 실현하는 문제부터 시작하여 남북한 인민들이 자유롭게 내왕하는 문제를 선차적으로 해결하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온 민족이 절실히 요구하는 문제에는 외면하고 경제교류만을 떠드는 자들과 맞장구를 치는 것은 민족 앞에 그들과 같은 죄과를 범하는 것으로 될 것이다.
 
 청년학생들의 수학여행단을 교환하여 젊은 세대들이 자기조국의 강산을 보고 자기 동포들의 생활을 요해하며 남북에 남겨놓은 선조들의 문화유적을 참관하면서 민족적 긍지와 애국정신을 키우는 것이 누구에게 손해를 준단 말인가.
 
 북한 통치자들은 예술단을 교환하는 데서도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따내려고 비열하게 책동하고 있다.
 그러지 말고 남북한의 인민들이 정기적으로 노래경연모임을 가지고 서로 지방적 특색을 살려 인민 적 문화예술을 자랑하며 같이 즐기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러한 노래경연모임 같은 것을 평안도와 경상도, 함경도와 전라도 등 도별로 할 수도 있고 시, 군별로 조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인민들의 자유로운 교류와 내왕을 통하여 서로 친숙해지는 가운데 서로 경제적으로 협조하는 문제도 협의가 되어 경제적 협조도 진행하고 대학과 연구기관들에서 과학문화 적 협조도 진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서이며 형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남북 인민들의 자유내왕을 방해하는 북한 통치자들의 반민족적 죄행을 단죄하면서 여러 가지 형태로 남북한 인민들의 인적교류와 화합을 실현하기 위해 적극 투쟁하여야 할 것이다. (끝)
 
 
 
 출처: http://www.n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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