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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 의원 발언
글번호  10 작성일  2015-04-07
글쓴이  관리자 조회  1567
 

△ 李仁榮 의원 역시 국보법폐지와 6·15실현에 앞장서 온 인물이다. 그는 ① 2004년 8월4일 국보법폐지 입법추진위원회에 참여했고, ② 2004년 12월14일 국보법연내폐지를 촉구하는 의원단에 들어갔으며, ③ 2004년 12월23일 국보법폐지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했으며, ④2007년 5월31일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일」 지정촉구결의안에 서명했다.


△ 李의원은 ① 2005년 7월29일 「한총련」 관련 구속자·수배자 전원사면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고, ② 2007년 5월21일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사진작가 「이시우」 석방을 위한 성명을 냈으며, ③ 2007년 10월13일 광화문 열린공원에서 열린 소위 「간첩·빨치산 추모제」 추모위원으로 참여했다.


△ 李의원은 ① 2004년 9월2일 「美國의 북한인권법 제정 항의 서한」에 서명했고, ② 2005년 7월14일 「美日의 북한인권 문제제기 규탄 결의안」에 참여했으며, ③ 2006년 10월13일 북한 核실험 후 「포용정책 지속」을 주장하는 성명에 서명하는 등 김정일 정권 비호에 앞장서왔다.


△ 참고로 李의원의 칼럼을 일부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자주의 나라, 아 그리운 나라.(…)평소에 온건하다고 생각했던 장로님과 목사님께서 기도 도중 『저 오만한 미국으로부터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게 하시옵고~』 느닷없이 울컥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어쩔 수 없어 두 손을 꼭 잡고 부르르 떨었습니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얼마나 그리던 자주의 나라였습니까? 아니 얼마나 목청껏 외쳐보고 싶었던 자존의 선언이었겠습니까? (2002년 12월9일 칼럼 中)』


『사학법 개정은 자기 확신과 역사에 대한 투철한 신념행위였습니다. 그것은 改革과 守舊의 칼날 같은 대척점에서 망설임 없는 확고한 선택이었습니다. 이를 훼절하거나 물러서서 방치한다면 우리 가슴에 자기 부정의 독버섯이 싹트게 됩니다.(…)지난 해 사학법은 우리에게 改革과 守舊의 건곤일척의 대척점에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2006년 4월20일 칼럼 中)』


자료출처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21557&C_CC=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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