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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전교조 (54편) - 민중(인민)인물 소개
글번호  57 작성일  2009-01-14
글쓴이  김구현 조회  1868
 

사악한 전교조 (54편) - 민중(인민)인물 소개


노무현 정권은 좌파정권? 좌파가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종북, 좌익정권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몇 명에 관하여 소개를 하고자 한다. 이종석, 이재정, 정동영, 김대중, 권영길, 노무현 등이다.


이종석씨는 노무현 정권아래 32대 통일부 장관직을 지내고, 지난 1988년부터 2001년 초기까지 이씨가 쓴 모든 논문과 글을 읽었다는 전 여옥의원은 이씨에 대해 “심각할 정도로 북쪽 사상에 치우쳤고 철저한 김일성 찬양주의자”라며 이씨가 6·25 한국전 당시 UN군에 의해 북한이 후퇴하는 장면을 ‘UN군이 북한을 유린했다’고 표현한 점을 꼽았다.


나다 교육공동체의 강유신 교사는 도덕을 ‘똥덕’으로 부르며 “도덕교과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교과”라고 주장을 하며 학생과 교사 사이에 반말을 하고 학생들이 교사를 양아치라고 부르고 이것을 수평적인 관계라고 하였다. 이종석씨의 부인은 2004년 9월부터 회비를 내었으며 ‘나다공동체’는 전교조와 주장을 같이하고 마치 공산당이 도덕을 천대하는 것과 같다


이재정씨는 32대 통일부장관으로서 “북침이냐? 남침이냐?”의 대답에 “나는 모르오.”라고 대답을 하였다.


이재정은 성공회신학교(~93년)를 성공회신학대학(93년~94년), 성공회대학교(94년~)로 성장시키면서 88년에서 2000년까지 교장, 학장, 총장으로 성공회대를 이끌어 왔다. 그는 이 과정에서 左派학자들을 대거 등용, 대학을 左派논리의 産室(산실)로 만들었다. 역대 성공회대 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성공회대의 교수 70%정도가 국보법 폐지에 나섰으며 성공회대 교수들은 연구실에만 머물지 않는다. 많은 교수들은 국가보안법폐지를 비롯해 宋斗律(송두율)석방운동, 한총련합법화 등에 앞장서왔다. 성공회대는 학교 교육목적인 사회화, 인간화, 민주화는 마치 전교조같이 민주화는 공산민주요 인간화는 공산인간화요, 사회화는 공산사회화와 같다.


노회찬, 심상정은 운동권학생 출신으로 공활을 했으며 권영길과 함께 국가보안법 철폐,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고 6·15선언 국가기념일제정촉구결의안에 서명, 2007년 10월13일 광화문 열린공원에서 열린 소위「제18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는 소위 「열사(烈士)」라는 이름으로 간첩·빨치산 출신들을 추모하는 행사에 참석하고 노회찬은 (<제7공화국> 건설을 위한 11대 테제)에서 사상과 정체를 잘 설명을 하고 있으며 모택동의 후계자 같은 주은래를 제일 존경한다고 한다. 


권영길은 “저는 빨치산의 아들”이라며, 그럼에도 ‘빨치산의 아들’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산사람’이었다 말했으며, 이같이 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통일 이야기만 해도 잡아 가두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 그는, “하지만 수 없이 많은 사람들(조봉암 등)이 외치며 죽었다. 목숨 빼앗기는 것을 알면서도, 목숨을 던졌던 통일인사들 덕분에, 지금의 권영길이 있다”고 강조했다.(조봉암 : 이승만 정권하에 국가보안법으로 사형. 노무현 정권이 애국인사로 등록.)


기사 참조 / 권영길은 “제가 보답할 것은 오직 하나다. 평화의 세상, 통일의 길을 여는 것이다. 자주, 민주, 통일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민중이 주인 되는,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부친 권우현은 6·25당시 지리산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휴전 후 대대적으로 전개된 빨치산 소탕작전 와중에 국군의 의해 사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 의원은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을 소중히 간직하겠다.”는 말을 했었다고 한다. 한편 이날 연설에서 “5.18 정신 계승은 노동자, 농민, 빈민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고 역설한 그는, 한미FTA 반대를 위한 “100만 민중대회”를 조직하겠다고 밝혔다. 군을 방문하여"10월 1일 국군의 날은 한국군이 최초로 38선을 돌파했다는 의미에서 제정된 날인데 평화, 통일로 가는 시점에서 광복군이 창설된 9월 17일로 국군의 날을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또 "예비군 제도를 폐지하는 한편 군복무기간을 2010년까지 18개월로 단축하고 2015년에는 12개월로 단축한 뒤 모병제로 전환하겠다."고 덧붙였다.


김대중의 일본이름은 ´도요다 다이쥬´이다. 김대중이 가장 잘못한 것을 말 하다면 전교조 합법화, 민노당 창설, 햇볕정책이다. 노태우 정권 당시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가 이적이념이라는 법원의 확정판결을 무시하고 공산꾼을 길러내는 전교조를 또한 합법화 하였다. 민노당을 창설을 해주면서 우리도 이 정도는 충분히 견디어 낸다는 궤변을 말하여 민중(인민)민주주의 세력이 정치권에 당당히 나가에 만들었으며 평화·민족·자주를 가장하여 연방제 통일 즉 적화를 위한 단계인 햇볕정책이란 이름으로 북한에 나라를 통째로 바치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도 민족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라고 단언을 할 수 있다.


북한에 퍼주기 햇볕정책은 북한의 인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김정일과 지도세력과 인민군을 위한 것에 불과했다. 수많은 쌀과 자금을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탈북자와 굶어죽는 인민은 산더미 같으며 2300만 이라고 알려진 인구가 소식통에 의하여 1800만이라고 한다. 또한 민주화를 외치는 민중세력은 북한의 인권에 대하여는 전혀 한마디말도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북한에 있어서 주체사상, 선군정치를 배제하고 경쟁주의, 자본주의와 함께 자유, 법치 그리고 ´인권´이란 단어는 강력한 ´키워드´이다.


Inside the World의 손충무 기자는 2007년 11월 19일 기사에서 김대중은 남로당(남쪽 공산당)중앙위원과 감찰위원까지 지낸 1967년 6.8총선거 때부터 김일성의 공작금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김일성은 김대중의 초등학교 동창생과 목포상고 동창생들 3명을 평양으로 불러 간첩교육을 시킨 후 엄청난 돈을 주어 木浦로 잠입, 김대중 선거 캠프에 침투시켰다. 김일성은 김대중 당선 후 간첩 3명을 평양으로 불러 국가 1급 훈장을 주었다. 평양에서 6개월간 휴식을 취한 그들은 드럼통에 막대한 달러와 엔화를 감추고 이번에는 임자도로 잠입, 서울 무교동에 청맥 잡지사와 중고자동차 소개소를 만들고 學士酒店을 열어 통일혁명당을 조직 활동하다가 일망타진 사형 당했다. 이들이 사형되자 김일성은 평양 모란봉 극장에서 대대적인 추모회를 열고 영웅칭호를 주었다. 그들 간첩 3명의 처단 이후 김일성은 김대중과 연락망이 단절되었다. 김일성은 그 후 전략을 바꾸어 일본 조총련의 비밀조직을 통해 김대중과 접선 지시를 내렸으며 중간 보호막을 만들기 위해 일본 국회의 친북파 의원인 뎅 히데오 (무소속), 이시바시 마사시 (사회당 총재), 우스노미야 도쿠마 (자민당)의원들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고 자금을 전달했다.


1971년 야당 대통령후보가 된 김대중은 도쿄 신쥬쿠 호텔에서 조총련 국제국장 (훗날 북한 부총리 영전)김병식 으로부터 당시 20만 달러 (현재,1,000만 달러 해당) 라는 큰돈을 받았다. 40여년 동안 “김대중은 자애로운 어버이 김일성 수령으로부터 바다보다 넓고 하늘보다 더 높은 은총을 입었다”고 1998년 김정일은 훈시를 통해 밝혔다. 김일성으로부터 엄청난 공작금을 받아 쓴 김대중은 김정일에게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박지원을 시켜 마카오 김정일 구좌에 8억 달러를 비밀리에 보내고 평양으로 달려가 김정일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김정일의 아비 김일성으로부터 40년 받아 쓴 공작금보다 몇 천배 아니 몇 만배에 이자를 계산하고 그 이자에 또 이자를 추가해 갚을 테니 비밀만은 폭로하지 말아 달라고 애걸했다. 그리고는 허울 좋은 햇볕정책을 만들어 50억 달러 이상을 갖다 바쳤다고 한다. 김대중은 그래도 겁이 나서 자신의 후임으로 김일성-김정일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남조선 빨치산의 영웅 권오석 동지”라고 찬양하는 권오석의 사위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다시 한 번 마구 북한에 퍼주기를 이어갔다. (권오석<권양숙의 부> : 대검 수사국, 좌익사건 실록에는 인민군이 점령 하자 자발적으로 치안대를 조직하여 양민 학살을 주도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 때 권양숙 여사의 나이는 4살 이였다고 유족들은 증언을 하고 있음. 그러나 청와대는 처음에 사실을 속이고 발표했다.)


김대중-노무현 左派정권 10년 동안에 200억 달러 이상이 김정일의 구좌나 평양으로 넘어갔다. 그뿐 아니라 30%의 좌파들을 길러내 자유 대한민국을 온통 붉게 물들여 놨다. 또 반세기를 이어온 한·미동맹 관계를 50%이상 깨뜨려 버렸다. 그래서 많은 미국인들은 이제 KOREA 하면 고개를 흔든다. 자유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지키려는 많은 국민들은 김대중-노무현에게 이제 치를 떨고 있다. (기사 끝)


이해찬은 김대중 정권 때 그는 5.18 유공자 포상을 자기가 하고 자기가 받았다. 그리고 지금 자기와 반대편에 있던 분들의 서훈은 취소시켰다.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을 담당하였던 당시 중앙정보부 김대중 담당 수사관이었던 이기동 씨는 그의 신동아 기고문에서 김대중이 최규하 대통령의 민주정권을 무력으로 붕괴시키고 자기가 스스로 대통령이 되려 하였다는 사실과 왜 이해찬이 5.18 유공자 포상 대상인지를 상세하게 증언한다. 김일성이 죽기 전 남조선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동지들과 의형제, 그리고 막내동생과 그리운 여인. 이들 4명(우스노미야, 김대중, 한완상, 손인실)을 가장 만나고 싶어 했다고 한다. 김일성과 의형제를 맺은 일본의 左派 거물 정치인 故 우스노미야 參의원과 김일성 사이에 1974년 9월 평양 대동강 별장에서 2박3일 회담을 하고 남긴 ´김일성-우스노미야 단독회담 보고서´라는 비밀 보고서가 일본 공안 조사청 지하실과 평양 김일성 궁전 비밀금고에 남아 있다. 그 보고서에 의하면 김일성은 우스노미야 를 통해 "우스노미야 선생과 나는 형제간 이고 내가 2살 더 많으니 형이 되는 셈이지요. 또 아우님과 남조선의 김대중이 형제지간 이라고 하니 우리는 3형제가 되는 셈입니다. 우리 3형제가 손을 잡으면 아시아에서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아우님께서 일본 총리가 되시고 막내 아우님인 김대중이 남조선 대통령이 되면 우리 3형제가 손을 잡고 미 제국주의자들에 대항, 큰소리치는 아시아의 龍이 될 것 입니다"라고 말했다. 김일성이 또 꼭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바로 한완상(韓完相) 대한적십자 총재이며, 그가 그토록 그리워한 여인은 前 YWCA 총재를 지낸 손인실(孫寅實) 여사였다.


1980.3.26일, 김대중은 YWCA 강연회 후에 장기표는 각 대학은 폭력시위를 과격하게 벌여 이 과정에서 민중의 호응을 얻어 정부중요부서를 점령하게 되면 무정부상태로 되는 데 이를 구심인물로 김대중 선생이 민중을 설득하면 정권장악이 가능하다고 하여 차기 정권까지 잡을 수 있다고 하면서 김대중에게 말하자 김대중은“알았다”고 대답했다.(지만원 박사 자료 중)


광주사태의 경우는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부분이지만 북한주민은 상식적으로 광주사태에 북한군이 투입이 되었다고 하며 귀순한 북한군이 설명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대중은 “나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여 이제는 거짓말을 승격화 했으며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대통령이 되면 전쟁이 일어난다.”는 선동을 하였다. 황장엽씨는 “김대중은 정말 파렴치하고 사람을 속이는데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그런 체질화 된 사람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김대중의 기만술책에 절대로 속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2006년 황장엽씨는 한국에 있은 좌익에 의하여 살해 공작에 있음이 알려졌다)


노무현대통령의 부친의 이름은 노판석이며 고향은 경상도가 아니라 전라도라고 말하며 권위주의를 없애고 서민위주의 정책을 펼쳤다, 좌파추적기자인 김성욱 기자의 ´노무현의 난´책에서 노 대통령과 정권은 수많은 이적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헌법에 위배가 되는 등 북한과 민중민주주의 세력과 맥을 같이 했다. "북한 문제만 잘되면 다른 것은 모두 깽판을 쳐도 괜찮다."란 말을 하고 북한이 주장하는 4대 노선을 추종하며 평양 방문에서 "인민은 위대하다.",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정당"이라고 사인을 했다. 이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란 국가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며 중국에서는 인권말살과 7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통일을 눈앞에 둔 시점에 중공군을 개입시켜 결국 지금의 남북분단을 있게 한 "모택동을 존경한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상황에서는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공산당이 허용될 때라야 완전한 민주주의"라는 망언을 했다,


조갑제 닷컴의 기사에는 주요요점은 다음과 같다. 노무현의 행적, 大逆罪 구성요건에 합치, 노무현의 5년간 행적은 대역죄의 구성요건에 완벽하게 합치하며 반역의 일반적인 공식은 1. 敵軍(북한군과 북한정권)을 이롭게 한다. 2. 我軍을 약하게 만든다. 3. 실제 전투상황이 벌어지면 我軍의 지휘계통을 타격하여 敵軍을 돕는다. 4. 我國내의 利敵세력을 지원한다. 5. 我國의 정통성에 대한 공격 등이며 노무현의 구체적 행위목록에 대하여 수십 건을 말하였다. 현재 자유행동본부의 고소 대상자에 올라온 상태이다.


정동영씨는 31대 통일부장관으로 민중(인민)민주주의 세력이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이 되었으며 국가보안법 철폐노래를 어린 학생들과 불렀다, 대선 당시에는 “정글자본주의”를 말할 때에 이것이 “천박한 자본주의”를 달리 말하는 것이다. “천박한 자본주의”는 전교조활동가들이 사용하는 단어이다. 모택동이 직접적인 단어를 숨기고 거짓명분을 이용하는 것과 같이 정동영이는 천박한 자본주의를 “정글자본주의”로 변질시킨 것에 불과하다. “천박한 자본주의”란? 사회주의를 꿈꾸고 있기에 말을 하는 것이며 이명박 후보의 3불 정책 폐지에 대하여 “땜질식교육정책”이라고 말하는 것은 전교조와 맥을 같이 하며 내신으로 입시를 대신한다는 것 또한 결과의 평등을 추구를 하는 것이다. “낡은 가치관”이라고 표현 것 역시 자유주의 대한민국을 수구로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선거를 맞이하여 “좋은 세상”은 “공산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좌익의 역사는 해방 전부터 오래 되었으며 뿌리는 북한의 김일성이다. 좌익들의 공통점이라면 부모나 가족이 좌익이어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또는 의식화작업을 거친 운동권학생출신이나 국가보안법에 연관이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들에게는 대한민국을 수구, 극우로 말하고 타도할 대상으로 여긴다. 미국, 일본도 적이자 증오를 가지고 있다. 또한 탈출구로 북한을 근본으로 삼으며 국가보안법을 최대의 악법으로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을 증오한다. 잠재되어 있는 친북, 반미주의자들이 대부분이 이러한 경우를 거치고 있다.


조갑제 기자는 월간조선 5월호에 이런 기사를 썼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친북 좌익 400만 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노무현을 밀고 있다, 보수가 자력갱생하기 위해서는 사상무장과 사상투쟁을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400만 명 모두가 사상에 투철한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거짓명분에 속고, 공산민주와 자유민주의 구분을 모르고, 특수공동체에 안주하고, 자신들의 이득을 위하여 안주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세뇌되고 활동가로 키워지며 좌익사상에 물든다.


이들은 조직은 ´민주집중제´란 엄청난 키워드를 가지고 활동을 하기에 더욱 무서운 것이다. 이념의 관철과 목적을 위하여 100명이 400만 명을 지도하고 스스로 지도 받는 공산운영원리이기 때문이다. 공산당은 살아있는 생명이며 스스로 움직이고 스스로 세력을 확장한다. 사상전을 위하여 이들은 굉장히 치밀하고 굉장한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여 우익의 활동은 집중력도 약하며 노력도 좌익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자유애국시민은 이들과의 싸움에서 세력을 집중하고, 건전한 애국핵심인사를 키워내고 국민은 사상무장, 사상투쟁을 위하여 반드시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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