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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전교조 (50편) - 386운동권과 전교조
글번호  53 작성일  2009-01-14
글쓴이  김구현 조회  1772
 

사악한 전교조 (50편) - 386운동권과 전교조


과거 386운동권 학생들이 의식화되는 과정의 최고는 위수김동, 친지김동을 외치는 주사파부터 민주화를 위한 학생까지 다양하게 세뇌가 되나 일반인들로서는 정확한 자료가 없으며 한정된 자료로만 이들의 행동을 알 수가 있다. 두 가지 내용을 자료를 근거로 하여 운동권의 의식화된 부분을 밝히고 전교조와 연관을 하여 설명을 하고자 한다. 1980년대의 학생운동의 이념적 지향성을 중심으로 ´이인수 씀´과 진터골 이야기´운동권수기´의 내용을 참조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 왜? 운동에 투신을 하게 되었는가?

과거 평범한 대학생들은 현실인식에 있어서 암울한 사회인식을 접하고 급진화되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현실인식과 사실인식의 충격인 광주사태 비디오 그리고 청개천의 봉재공장을 알게 됨으로 분노와 연민, 죄의식이 나타나게 되어 도덕적인 책임감을 보여 했다. 이러한 인식적인 충격이 클수록 행동화하는 경향이 컸으며 현실 문제를 바르게 찾고자 할 때에 방법을 모색하고자 ‘의식화’공부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의식화’되는 과정이 학생들에게 강한 정서적인 결속의 대상 ´한총련 및 동아리´가 출현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의식화 공부에 뛰어든 학생이 과거의 정서적 결속 집단(가족)으로부터 벗어나 의식화 집단(학생 운동가)과 강한 정서적 결속감(한총련 및 동아리 등)을 갖게 될 때 학생운동에의 투신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즉 동료에 대한 강한 신뢰와 애정이 학생운동에 직접적인 계기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들은 자의반 타의반 스스로 의식화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것은 보면 현재 전교조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교장과 교육부의 권위에 대한 인식 그리고 참교육을 향한 열정을 위하고 분회라는 특수공동체(가족애, 동지애)로 맺어진 것으로 활동을 하게 만드나 결국은 거짓된 명분으로 운동권학생이나 전교조조합원이나 모두 속아 넘어가는 의식화과정을 거친다.


둘째 - 주사파와 운동권학생

그 동안 한총련을 분석하여 보면 크게 두부류로 나눌 수가 있다. 의식화가 심해지면 당시의 한 수사관은 386운동권이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이라는 주문을 입에 달고 살며 전향서를 쓸 경우 죄를 불문에 부치겠다고 조건을 제시를 하여도 전향서 쓰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한다는 말을 하였다.


이들의 의식화하는 방법으로는 모택동의 거짓명분으로 참교육(공산교육), 민중(인민), 참세상(공산세상), 민주화(공산민주화) 등 거짓명분을 이용하여 의식화하게 만든 것으로 독재에 대응을 한다고 하나 역시 반공정책에 대응을 하기 위하여 독재란 명분을 주어주고 활동을 하게 만드는 것으로 일련의 모택동의 거짓명분 이용하기 전술인 것이다. 최고의 의식화 작업(세뇌)은 위수김동, 친지김동으로 변질이 된 것이다. 386운동권은 주사파부터 어려운 사람을 돕고자하는 운동권학생이 다양하고 스펙트럼하게 분포가 되어있는 것이며 이러한 것은 전교조도 별반 다르지 않으며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노동단체인 관계로 계급성과 대중성이 결합하여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운동권학생에 관한 이야기는 구전으로도 많이 들린다. 이들을 의식화하는 과정은 영어문법과 같이 매뉴얼을 가지고 의식화를 시켰으며 농활, 공활을 통한 의식화 방법까지 그러나 그런 방법이 모택동의 하방운동인 것은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일부는 난잡한 성생활을 하기도 하며 이들을 떠난다는 것은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을 떠난다는 것으로 배신자, 반동분자의 취급을 받고 이들이 나이가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민중민주주의 이념에서 떠나지 못하는 것은 이미 인생의 90%를 몸에 담고 있기에 떠날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은 그대로 전교조에서도 일맥상통하게 보여준다.


386운동권이 어디까지 세뇌가 되어 주사파인지 또는 공산민주인지, 자유민주인지 확인은 할 수가 없지만 정치계, 종교계, 사회 각 분야에 퍼져있다. 문제는 주사파들에게 거짓명분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과 학생이 이용을 당한 것이며 일정한 부분에서는 민주화(자유민주)를 위하여 공헌을 했을 것이다. 주사파가 아니라면 운동권이나 전교조교사 이던지 이것을 깨닫기를 바랄뿐이다. 그러나 공산당 운영원리인 민주집중제로 인하여 결국 주사파에 동조를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1989년 7월 임수경은 전대협 대표자격으로 평양축전에 참가한다. 폐막일, 북측 학생위원회 위원장과 함께 ´하나의 조국, 하나의 민족이 타의에 의해 걸어온 45년의 분열은 민족 비극의 45년 이었다´는 내용의 ´남북청년학생 공동선언문´을 채택한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든 임수경은 무사귀환을 위해 ´천구교정의구현사제단´에서 급파한 문규현 신부를 만난다. 분단선을 넘자마자 곧바로 체포되어 안기부로 끌려갔다. 이후 두 사람은 국가보안법에 적용돼 복역하다가 92년 말 가석방으로 풀려난다. 1991년 3월 윤기권이란 광주사태 주동자가 보상금 2억원 수령하고 영구 월북하였다. 1991년 3월8일자 광주의 일간지들은 [3월4일, 광주 5.18항쟁 부상자인 윤기권(광주 두암동)이 위대한 수령님과 참조국을 찾아 의거 월북했다...] 고 평양방송을 인용하여 보도하였다. ´한국 현대사 사료 연구소´(광주 소재. 소장 송기숙)에서 펴낸 『광주 5월 민중 항쟁 사료 전집』(1990)에는 윤기권의 사상이 증언 형식으로 채록돼 있다.


임수경은 위수김동, 친지김동까지 세뇌가 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민족, 평화, 통일이라는 거짓명분에 적당한 세뇌된 소영웅주의정도로 볼 수가 있다. 다만 뒤에서 조정·잠입을 시킨 것은 주사파 학생이며 그러한 사람들이 윤기원이란 주사파학생이다.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NLPDR)는 소위 주사파(主思派)의 혁명논리로 알려졌다. 82년 태동된 주사파가 운동권을 장악하면서 상황은 급반전 되었고 소위 ´투신(投身)´이라는 이름 아래 주체사상을 통해 부모님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운동을 연장하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것이다. "너희가 김일성주의로 무장하고 대한민국의 권부로 들어가서 출세를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주사파 교육을 받은 조직원들은 고시공부해서 판·검사하고 외무고시 봐서 외교관이 됐으며, 방송계에 침투해서는 PD, 작가와 교사, 교수, 종교인 등이 됐다. 그 중 가장 역점을 뒀던 분야가 교육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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