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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전교조 (21편) - 교사와 노동자를 보면서
글번호  24 작성일  2009-01-14
글쓴이  김구현 조회  1697
 

사악한 전교조 (21편) - 교사와 노동자를 보면서


전교조를 분석하면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이 교사를 노동자로 변질시키는 것이었다. 이것은 세뇌의 기본 토대로서 노동자로 변질시키는 목적과 문제점을 자료적·역사적·사상적·논리적인 근거에서 밝힐 필요가 있었다. 노동자로 변질시킨 결과는 처참했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일차적으로 학생과 학부모에게 피해가 가며 모든 국민에게도 같다. 당장의 이득을 보는 조합원마저 최후에는 공산주의 자, 분별없는 자, 꼭두각시, 노리개로 남게 된다.


교사와 노동자는 모순(矛盾)이다.

모순(矛盾)은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맞지 않는 뜻으로 논리학에서는 두개의 개념이나 명제사이에 의미와 내용이 서로 상반되는 관계를 말한다. 중국 전국시대의 초(楚)나라에서, 창과 방패를 파는 상인이 ´이 창은 예리하기로 어떤 방패라도 꿰뚫을 수가 있다. 그리고 이 방패의 견고함은 어떤 창이나 칼로도 꿰뚫지 못한다.´고 자랑하였다. 어떤 사람이 ´자네의 창으로써 자네의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가?´하고 물었더니 상인은 대답하지 못하였다.


교사와 노동자를 물질적, 정신적인 차원에서 비교하면 전교조는 물질적 개념으로 해석하여 교사도 노동자라고 말한 것으로 마르크스의 유물변증법에서 비롯된 것이며, 일반적으로 정신적 개념에서 보면 교사는 기본적으로 자세, 자질, 의무, 책임감을 가지고 봉사, 책임, 희생을 바탕으로 학생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는 것으로 모두 정신적인 차원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원칙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일을 하므로 서로 모순된 것을 보여준다.


교사가 갖추어야 할 사항으로 자질이란 타고난 성품이나 소질, 분야의 일에 대한 능력이나 실력의 정도, 타고난 체질이며 자세란 몸을 움직이거나 가누는 모양, 사물을 대할 때 가지는 마음가짐이나 태도, 양심이란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며, 사명감이란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하려는 마음가짐을 뜻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교육자와 노동자계급의 개념이 다르다.


정신적 차원이 서로 다른 교사와 노동자는 결국 물질적면에도 양과 질에서도 다른 결과를 만든다. 이것은 결국 교사의 정신은 참교육을 할 수가 있어도 노동자계급의 적대적·계급적 정신은 참교육을 할 수가 없다. 교사와 노동자는 모순 이전에 반목의 개념으로 지금 전교조가 교사를 노동자로 만든 결과는 학교를 황폐화하고 교사의 정신을 썩게 만들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당사자인 조합원, 일반교사, 학부모, 학생에게 전달되며 더 나아가서 국가적인 손실이라 하겠다.


근로자의 날(노동절)의 기원

근로자의 날이 5월 1일로 된 유래는 미국에서 1886년 미국의 노동자들이 마르크스 사상으로 시카고를 기점으로 노동투쟁을 하던 날이었다. 마침내 5월1일 8시간 노동을 위해 총파업에 돌입을 한다. 이 사건이 바로 세계 노동운동사에 뚜렷이 자취를 남긴 헤이마키트 사건이다.


시대적 배경으로는 1847년 12월-1848년 1월에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집필 되었으며 1848년 2월에 런던에서 처음으로 공산당선언을 발표하였다. 마르크스의 사상이 미국으로 건너가 1886년에 노동투쟁으로 나타난 시대적인 배경이다.


전교조문건 / 1889년 7월 세계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이 모인 제2인터내셔널 창립대회에서 8시간 노동쟁취를 위해 투쟁했던 미국 노동자의 투쟁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기 위해 5.1을 세계 노동절로 결정하고, 1890년 5월 1일을 기해 모든 나라, 모든 도시에서 8시간 노동의 확립을 요구하는 국제적 시위를 조직하기로 결의했으며 1890년 세계 노동자들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치며 각 국의 형편에 맞게 제1회 메이데이 대회를 치렀다. 우리나라 최초의 노동절 행사는 1923년 일제 식민지 시절, 당시 노동자 조직인 ‘조선 노동 총연맹’의 주도하에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약 2000여명의 노동자가 “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 실업방지” 등을 주장하며 전 세계 노동자의 명절인 ´노동절(May Day)´기념행사를 최초로 치렀다. 해방 후에는 1945년 결성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는 1946년 20만 노동자가 참석한 가운데 메이데이 기념식을 치렀다. 전평의 깃발아래 서울운동장 야구장 바로 옆, 육상경기장에서 약 1,000여명의 노동자가 참석한 기념식이 치러졌다.


이승만 정권은 5월1일을 공산당의 날로 규정하고 3월 10일을 근로자의 날로 만든다. 민노총과 전교조는 다음과 같이 이때를 명시한다(정권과 자본은 노동자의 머릿속에서 ´노동절(May Day)´라는 말조차 아예 지워버림으로서 이 땅의 노동자를 권력과 자본에 순종하는 일 잘하고 말 잘 듣는 기계로, 의식 없는 노동자로 만들려고 5월 1일 노동절을 대한 노총의 생일인 3월10로 바꾼 것이다). 전교조와 민노총은 이승만 정권에 충성을 다짐하는 날로 보고 있으며 근로자의 날이란 단어를 인정하지 않고 노동절이란 주장을 한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민주노조 운동은 단위노조에서 지역에서 ‘노동법 개정 및 임금인상 투쟁본부’를 결성하였다. 1989년 투쟁본부는 제100회 메이데이´노동절(May Day)´로 를 앞두고 근로자의 날을 노동자 불명예의 날로 규정하고 5.1절 노동절의 전통을 회복할 것을 선언하였다. 1989년 삼엄한 경찰의 원천봉쇄를 뚫고 연세대학교에 모인 전국의 5천여 노동자와 청년들은 전야제를 갖고 4월 30일 세계 노동절 기념대회를 개최했다. 김영삼 정권인 1994년 국제적 노동절과 일치하는 5월 1일로 날짜를 변경했다. 세계적으로 매년 5월 1일을 노동절로 기념하고 있는 것은 1884년과 1886년 5월 1일 미국의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을 주장하며 총파업한 것에 기원을 두고 있다.


메이데이´노동절(May Day)´은 마르크스의 정신을 이어받은 미국의 노동자들이 5월1일을 투쟁한 날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다. 민노총, 전교조가 이런 내용을 조직적으로 민노총 간부들에 의하여 전교조 활동가들에게 노동자계급 의식화를 시키고 있다. 또한 계기교육내용으로 학생에게 교육을 시키고 있다. 5월1일은 공산당의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념이 대립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특별한 상황은 5월 1일을 근로자의 날로 하면 문제가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3월 10일을 근로자의 날로 만든 것은 바른 결단이며 5월 1일로 변경이 된 것은 좌익의 활동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근본적인 지식 없이 좌익들의 헛소리에 근로자의 날을 5월 1일로 교체를 하였다.


1848년 마르크스가 외쳤다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

스파이즈도 외쳤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민노총도 외쳤다 (전 세계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를 강화하자!)

전교조가 외쳤다 (교사는 노동자계급이다, 연대하여 투쟁하자!)

마르크스의 망령이 지금 전교조, 민노총, 민노당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교육자를 노동자로 변질 시키는 이유!

전교조가 ‘참교육’이란 거짓명분으로 창립이 되었지만 ‘참교육’이란 명분에 ‘자’하나만 붙이면 되는 간단한 현실에서 ‘참교육자’ 란 말을 하지 못하고 ‘노동자’ 또는 ‘교육노동자’란 말을 하여 억지로 조합원을 노동자로 변질시켜 사상개조작업을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교육자를 노동자로 변질시키는 이유는 한마디로 투쟁을 통하여 공산혁명을 하려는 시도이다. 교사의 정신은 노동자계급의 정신과 다르므로 적대적·계급적 원칙을 가진 노동자계급으로 변질 시켰다. 학습은 인식되며 인식은 행동을 한다. 즉 노동자로 변질시켜 투쟁을 하려는 것이다.


과거 러시아 혁명과 중국공산당의 역사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모택동은 사회주의 건설을 위하여 사상적 기반을 확립하기 위하여 전 국민적 교육운동으로 특히 구 사회에서 자기형성을 해온 지식인에게 ´사상개조´의 개념을 적용하였고 자기계급의 입장과 편견을 버리고,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자신의 인생과, 세계관을 개조하도록 요구를 한 것이다. 즉 비 노동자계급의 사상을 버리도록 하고 노동자계급성을 의식화하는 사상적변화의 방법과 과정이다.


계급적원칙[階級的原則]은 혁명과 건설 등 모든 문제를 언제나 노동 계급의 입장에서 보고 노동 계급의 이익을 철저히 지키며 반대 세력과 타협 없이 끝까지 싸우는 원칙으로 한다. 일반적 과정으로는 증오-분노-선동-투쟁의 관계로 진행을 하며 전략과 전술적인 측면에서 교사를 노동자로 변질시키는 것은 공산혁명을 위한 사상개조작업이다. 전교조가 지겹도록 노동자란 주장을 하고 이 문제에 있어서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강원지부에 교사를 노동자로 세뇌하기 위하여 전교조 활동가가 올린 글

스승의 날 아침에 - 교사가 주체가 되지 못하고 ´주어진 날´이기 때문이다. 또 박정희 정권 시절 간소화 차원에서 없어졌던 ´스승의 날´을 80년 5월 광주의 피바다를 딛고 집권한 전두환이 자기 집권의 정통성 확립에 일조하기 위하여 생색내면서 부활시켜 줬던 날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측면에서도 스승의 날은 문제가 많다고 본다. ´스승의 날´이 굳이 필요하다면, 많은 이들이 주장하고 있듯이 차라리 2월 달로 옮기는 것도 좋을 것이다.<중략> 마지막으로 나는 스승이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 단지 스승이 되기 위해 평생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교육노동자´일 뿐이다. 이 사회의 진보와 발전 그리고 모순 해결을 위해 분투하는 ´노동자´로서의 삶에 ´스승의 날´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


"´군인´은 ´군인´이지 결단코 ´국방노동자´가 될 수 없는 것처럼, ´교사´는 ´교사´이지 결코 ´교육노동자´가 될 수 없다!"


전교조의 노동교육

교직은 천직이라고 말을 하며 또 사명감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지식과 인성을 가르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사가 스스로 교사이기 전에 노동자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전교조를 분석하니 교사를 노동자로 만들 이유는 분명해졌고 노동자로 되어야지만 활동과 이념을 학교 및 대중에게 전달하여 공산혁명의 기본토대를 만들자고 하는 것이다.


사이비종교의 세뇌방식 중 누구라도 납득을 할 수가 있는 상식적인 교리에서 시작하여 아주 조금씩 통념을 벋어나게 된다고 하는데 신앙이 깊어감에 따라 진도를 맞추어 나가기 때문에 본인은 느끼지를 못한다고 한다. 어느 단계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볼 때는 황당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본인은 당연한 듯이 생각을 하여 일반 사람들과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한다.


전교조의 노동자의식화는 사이비종교와 비슷하다. 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하여 동조를 얻어낸다. 점차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과도한 노동자의식화가 진행된다. 수많은 민노총의 강연과 관련된 책들 그리고 조합원들만의 모임으로 점차적인 의식화, 활동가들은 철저히 노동자의식화가 되었으나 처음 교육을 할 때는 간접적인 교육을 자료가 대부분이며 가입기간이 오래되고 또 분회장 이상의 교육은 강화되고 심화된다. 이러한 것은 모두 민노총의 주도적인 방법에서 개발이 되었으며 결국에는 ‘나는 노동자이다’라고 말을 하며 노동자의식을 가지고 생활을 한다. 스스로 정당하다고 생각을 하며 변한지도 모른다.


부적격교사는 누구인가?

부적격교사의 현재까지 기준은 도박, 알코올중독 등 교사의 자질 문제를 이야기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적격교사 역시 전교조와 교육부와 단체 협약안을 통하여 퇴출을 못하도록 만들었다. 교육부의 무능과 무사안일이 전교조에 끌려 다니어 항복한 문서가 단체협약안인 것이다. 부적격교사가 있음으로 해서 양질의 교육은 물론이며 학생의 인성에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당연하다. 부적격교사는 갈수록 증가하고 능력 없는 교사는 재교육의 시스템마저 없고 교사들의 막가파 웰빙시대가 도래했다.


조합원이 실력을 가지고 있어도 심성은 변하게 된다. 노동자계급의식화는 심성을 분노, 시기, 질투, 증오로 변하게 만든다. 이런 심성을 가진 조합원이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학생의 인성에 커다란 문제를 일으킨다. 인성은 따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언행을 보고 배우는 것으로 교사의 모든 언행이 결국은 학생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은 증오, 분노, 질투를 배우게 될 것이며 이렇게 배운 학생들이 사회에 나아가면 대화와 타협이 아닌 투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또한 계기교육을 통하여 국가정체성부정, 국기에 대한 경례거부, 교실에서 태극기 없애기, 애국가거부, 군대가지마라, 반미, 친북, 김정일 찬양, 사이비 통일교육, 노동자의식화 등을 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이 사회에 나오면 반드시 부정적인 가치관을 가질 것은 명확하다. 앞으로 국가발전과 가치관에 있어서 커다란 문제가 될 것은 예측된 현실이다.


부적격 교사의 1순위는 전교조 활동가들이며 활동가들에게 교육을 받는 일반조합원과 퇴출되지 못한 부적격교사들이다. 우리에게는 아이들의 인성을 바르고 아름답게 만들 의무와 책임, 권리가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경험이 적고 미성숙한 우리의 아이들을 전교조의 손에 놀아나게 해서는 안 되며 작게는 부적격교사 퇴출, 능력 없는 교사의 재교육, 노력할 수 있는 시스템 더 나가서 전교조 담임거부, 수업반대 그리고 의식화되고 있는 조합원 재교육과 분노, 투쟁 그리고 공산사상으로 무장한 전교조활동가를 퇴출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따로 있나?

조합원 중에 노동자의식화 교육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일부조합원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교사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영락없는 노동자계급성을 가지고 있다. 말 따로, 생각 따로, 행동 따로, 결과를 보여준다. 우선 자신이 노동자가 아니라 교사라고 말하는 조합원을 보면 전교조 집행부가 주장을 하는 것에 동조를 한다. 기본적으로 전교조는 계급성과 대중성의 바탕위에 모든 주장이 사회주의이며 노동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궁극적으로 정치 세력화하여 공산혁명을 하려는 것이다.


조합원 대부분이 교장과 교육부를 적대시 한다. 이것은 노동자계급의 적대적원칙이며, 잡무타령, 고교평준화, 교원평가반대, 부적격교사퇴출반대, 수준별 수업반대, 이동식수업반대, 보충수업반대, 방학 중 등교반대 등 전교조가 주장을 하지만 비논리적인 핑계로 결국은 사회주의 원칙과 노동자의 이기적인 이익이다.


조합원이 적대적원칙, 계급적원칙을 가지고 전교조의 주장에 동조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선동되어 투쟁을 하면 스스로 교사라고 해도 노동자계급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집행부의 치밀한 사상개조의 방식으로 학습에 의하여 인식되고 행동을 한다. 정말로 무서운 일이지만 개념 없이 행동하고 동조를 하면 이 같은 결과를 만든다.


나는 교사인가? 노동자인가?

지금 일반조합원은 “나는 교사인가? 노동자인가?”를 반문해야 한다. 이미 세뇌가 되어 스스로 노동자로 자처를 하는 활동가들이나 조합원에게는 스스로 자각을 기대하거나 재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반드시 일부는 퇴출을 시켜야 할 존재들이다. 그러나 아직 세뇌가 진행 중인 일반조합원은 반문을 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스스로 합리화하는 단어로는 ‘교육노동자’이다. 국어사전에도 없으며 전교조가 만들어낸 신조어인 것이다. 이것은 대외명분으로도 쓰이며 조합원을 세뇌하는데 사용된다. 일반조합원은 마음 한 구석에는 교육을 노동으로 보지 않기에 교육노동자란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모순된 내용의 과정으로 조합원을 노동자계급성을 가지게 할 때에 중간단계로 심리적인 안정감을 가지게 하며 합리화 하는데 사용된다. 치밀한 구체적인 해석을 하여 변혁한 말로 모순된 내용을 숨기려는 은밀한 단어이다. 노동자신분으로 교권을 말하면 명분은 없고 도덕적가치관은 무너지게 된다. 노동자에게 이권은 있어도 교권은 없다.


노동자의식화는 무서운 것이다. 교사의 정신을 변질시키어 증오-분노-선동-투쟁을 하게 만들며 집행부의 충실한 노리개로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신이 처한 환경과 그동안 전교조에 의하여 치밀하게 세뇌 되어온 것을 의식하고 본래의 직업인 교사로서의 정신을 가지고 충실히 학교생활을 학생들과 해야 할 것이다. 교사를 노동자로 만든 것은 전교조집행부가 충실한 꼭두각시로 만들려고 한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사상에 이용되고, 스스로 본분의 도리를 못한다면 그 또한 인간답지 못한 것이며 교사로서 본분을 망각한 것이다.


지금 전교조의 홈페이지는 투쟁과 노동자 이야기만 존재한다. 이런 조직에서 과연 교사의 본분을 지킬 수가 있을 것인가? 절대적으로 아니다. 점차적으로 아주 서서히 변해간다. 냄비 안에 물고기를 넣고 서서히 끊이면 자신이 왜? 죽는지를 모르다고 한다. 지금 마치 조합원을 보면 냄비 안에 들어있는 물고기와 같다.


자신을 거울로 한번 보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처음 교사가 된 때를 생각하시고 전교조에 가입을 하여 점차적으로 변해가던 당신의 모습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는 교사인가? 노동자인가?”를 심각하게 생각을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집행부가 던져주는 달콤한 꿀단지가 결국 여러분을 노리개로 만들 것입니다.


당신을 가족으로 만들어 애정으로 뭉쳐진 사람이 당신을 노동자로 만들려고 한다면 그것은 당신을 사육하여 꼭두각시, 노리개로 만들려고 하는 아주 간악한 방법입니다. 교육자로 돌아가서 아이들에게 존경받는 선생님이 되시기를 간절히 애원합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시기를 간절히 애원 합니다.


“나는 교사인가? 노동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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