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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전교조 (18편) - 특수공동체 에필로그
글번호  21 작성일  2009-01-14
글쓴이  김구현 조회  1580
 

사악한 전교조 (18편) - 특수공동체 에필로그


알고 있던 조합원을 만나서 전교조의 해악과 이적성에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나 놀라운 대답을 하였다. 그의 대답은 "아마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하여도 탈퇴를 할 사람은 없다."라고 대답을 하였다. 전교조에서 활동을 하고 있으면 꼭두각시가 된다고 말을 하였다. 더욱 놀라운 말을 했다. "꼭두각시라도 전교조에서 생활을 하겠다."라고 대답을 하였다. 분회장이 교육받는 것은 분회원을 선동, 투쟁하게 만드는 것으로 믿지 말라고 했다. 이번에는 분회장을 비판하면 나를 욕하겠다고 하였다. 전교조만의 특이한 현상이다. 과연 이러한 현상을 누가 이해를 할 수가 있을 것인가?


보통의 대화는 정상이나 전교조에 관하여는 비정상적이며 노동자가 아니라 교사라고 설득하여 교사라고 말을 하였지만 영락없는 노동자계급성에서 말하고 있었다. 노동자인지? 교사인지? 스스로 판단을 못하고 사이비 신도와 같은 모습을 보았다. 그는 스스로 속한 정체를 전교조의 정체를 모르고 세뇌된 결과이다. 보통의 사람을 이렇게 변질을 시킨 원인을 찾으려면 경험과 특정한 지식이 필요하다. 원인을 찾으려면 사이비종교, 세뇌, 공산주의 이론, 중국공산당, 특수공동체가 핵을 이루며 이곳에서 원인과 결과를 찾을 수가 있다면 딱딱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재미있는 내용이 될 것이다.


행복한 분회와 애정 만들기

조합원은 즐거움, 행복, 애정 만들기, 연인 만들기에 아주 좋은 요소는 모두 있다. 공식적으로 1년에 1박으로 2번 방학을 이용하도록 하며 매월 월례회의 최소 격주회의 또 집행부의 지시 때마다 모임, 분회를 근거로 하여 체육대회, 등산, 야유회 및 분회원만의 점심식사, 가정의 대소사일 챙기기, 신입조합원 환영식, 전출입조합원 환영 및 송별회, 분회원의 방과 후의 수많은 모임 등 시간이 지날수록 학교중심이 아니라 분회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준비과정 및 마무리까지 생각을 한다면 조합원의 모임은 헤아릴 수가 없이 많이 있다. 전교조는 분회의 운영에 애정을 가지라고 명시를 하여 공식적으로 호칭은 언니, 오빠로 하며 공동체적 삶이란 근거를 대며 너무나도 가족 같은 개념으로 지낸다.


이들은 공동체적 삶의 근본 뜻을 정확히 파악하지도 못하지만 가족 같은 분위기로 다른 곳에서 느껴 보지 못한 결속감을 보이는데 기본적인 모습은 운동권학생들이 과거의 정서적인 결속집단인 가족으로부터 벋어나 의식화된 집단의 강한 결속감을 보여주었다. 이런 현상은 보통 사람들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도 분회원들은 가능한 공간이 전교조의 분회이다. 의식화된 강한 결속과 수많은 모임을 통한 유대감과 결속력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가족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들은 전출·전입에도 모두 가족적 모습을 보이고 기대를 하며 한번 연관이 있던 조합원은 계속된 유대감을 가지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조합원이라는 사실만으로 가족애·동지애란 특수공동체의 남다른 의식을 가지고 있다.


애정 만들기는 이러한 구조와 개념에서 비롯되며 애정의 구조에 빠지면 나오기 힘든 곳이기도 하다. 마치 과거운동권 학생들이 부모님을 버리고 투신한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속에서 많은 조합원이 집행부의 사상과는 별도로 애정에 의한 만족을 느끼고 생활을 하는 것이며 전교조가 비판을 들으면 가족이 욕을 먹는 것으로 착각을 하여 심한 욕을 하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가족과 같기 때문이다.


이들끼리 결혼률을 보면 조합원 39.7% 활동가51.9 %가 조합원부부로 되어있다. (조합비 내는 인원기준: 2006년 84,000명 2007년 12월 77,700명으로 조합원부부보다 개인전교조 탈퇴를 추정하므로 2007년 12월의 부부조합원 비율은 더 높을 것으로 추정) 높은 수치가 이들의 애정의 결과를 만들어준다. 사회의 통계로 나타난 것 중 하나인 유부남과 솔로와 만남통계 46%나 나왔다. 이러한 통계에서 분회의 특성으로 수치가 높으면 높았지 낮아지지는 않으리라 본다. 분회의 가족과 같은 개념은 개개인이 결론을 내려야 하는 부분이지만 전교조가 조직다지기에 이용했다는 개념을 부인을 할 수가 없다.


개개인의 사생활로 치부하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성은 정치·사회·윤리 등 온갖 분야에서 복잡다단한 모습을 보여준다. 안타까움·애틋함·기쁨·슬픔·절망·분노라는 감정을 낳고 이성까지 좌지우지한다. 어찌 되었건 남녀란 자석 같은 존재이므로 횟수에 충실 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실이다. 남녀관계에 친구라는 분쟁이 끊임이 없다. 한편으로는 절반의 정답이다. 왜? 여자는 남자와 친구가 가능할지 몰라도 남자는 여자와 친구가 될 수 없다. 남자는 생물학적으로 생식을 모든 가치의 최우선으로 놓은 포유류이다. 가족이란 말로 존재의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친구보다 더한 부부의 관계를 유도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전교조의 애정 만들기는 전교조의 조직 강화에 이용이 되는 것으로 처음의 끈은 남로당(남조선노동당)으로 부터 비롯되고 빨치산 그리고 한총련, 운동권학생을 거치어 가족애로 개념화되어 전교조의 분회까지 온 것이다.


어느 네티즌의 글 / 간혹 일어나는 일부 교사들 간의 도를 넘는 행태도 문제이다. 서로 같은 학교에서 5년 간 근무할 수 있는 환경 덕분(?)인지 그들은 서로 상당히 친하며 잘 챙겨준다. 때로는 가족을 보는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이런 장점도 때로는 술이 있는 회식이나 워크샵 등에서 남녀 간에 잘못된 방향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대부분 기혼자들임에도 불구 평소에 스스럼없이 친근한 호칭과 자연스런 스킨쉽을 통해 친밀감을 쌓아온 그들에게 술이란 것은 일종의 이성 마취제와도 같을 수 있다. 실제 불륜을 저지르는 교사들도 있다는 얘기를 가끔 듣곤 한다. 공립보다는 사립에서 상황이 더 심한 걸로 알고 있지만 결국 도토리 키재기이다. 학생들의 이성교제 및 성 욕구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야하는 책임을 지닌 교사들이 법에 위배되는 불륜을 저지른다면 대체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며 자라겠는가?


신문기사 참조 / 1967년부터 경찰에 투신해 30년 동안 대공분야에서만 근무한 우헌근 전 총경은 자신의 말처럼 "공산당 잡는데 인생을 다 걸었고 공산주의에 대해 나보다 더 생리를 잘 알겠느냐" 며 공산주의 이론을 줄줄이 꿰면서 주사파 등 공산주의 이론에 심취한 이들을 거론 "공산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거짓이고 이론 그 자체는 물론 구조와 조직 등 전체가 이중구조로 된 거짓 투성"이라며 2대원칙 3원칙 등을 세밀하게 설명했다. 그는 당시 수사내용을 말하면서 특히 의식화교육을 하는데 있어 남녀 혼숙 등 쉽게 꺼내기 어려운 얘기들도 언급했다. 즉 이들 좌경세력들이 "소위 의식화교육을 하면서 남녀가 한방에서 벌거벗은 상태로 교육하고 돌아가면서 함께 잠까지 잔다. 전문 사진사를 고용해서 현장에 잠입해 사진과 비디오 촬영을 해 명백한 증거자료를 갖고 있다" 고 설명했다. 이들이 이렇게 상상을 초월하는 행동으로 의식화교육을 하는 이유는 노동현장에 위장취업을 하고 노동자들에게 의식화교육을 주입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수치나 부끄러움을 해소하기 위함이고 여럿이 함께 잠을 자게 하는 것도 그렇게 함으로서 그들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라며 그것이 주사파의 기본원리라고 부언했다. 그러면서 "이들에게 교육장소를 제공하고 또 도피를 위한 은신처를 제공한 것도 ´도시산업선교회´ 등 교회가 중심이 되었다" 면서 "의식화교육에 제일 먼저 시동을 건 단체가 ´천주교 평신도 협의회´였다" 고 단체를 거명 하고는 당시 자신이 수사하고 검거했던 전·현직 유명 정치인과 유명 연예인 가족의 본명을 대기도 했다. "정권이 바뀌어 김대중이 당선되자마자 동교동 가신회의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 후 제1호로 손댈 자가 우헌근이고 우헌근을 잡으라는 명령이 떨어져 결국 중국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고 당시를 돌이키기도 했다. / 김대중, 노무현 정권하에 망명이 가장 많았다.


주사파는 투신이라는 이름아래 주체사상을 연장하는 프로그램으로 PD, 법조인, 종교인, 교사 등이 되었다, 그중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이 교육계였고 고스란히 창립선언문, 규정, 규약, 노래, 규정·규약해설에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NLPDR)이라는 혁명논리가 배어나온다. 혁명논리가 문서화 되어 나타났다면 "소위 의식화교육을 하면서 남녀가 한방에서 벌거벗은 상태로 교육하고 돌아가면서 함께 잠까지 잔다."는 조직 강화의 내용이 주사파가 침투한 일부 전교조의 특수공동체에도 배어나올 수밖에 없다고 짐작을 할 수가 있다. 주사파출신이 개입되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며 특수공동체가 그러한 영향에 간접적으로도 벋어나지 못할 것이다. 개인의 도덕성과 조직원의 특수성에 따라 정도를 달리 할 것이나 모두 그런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지향을 하는 점은 부인을 할 수가 없다.


전교조 탈퇴가 어려운 이유

전교조의 가입과 탈퇴가 자유롭다고 하지만 속 내용을 보면 탈퇴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지금 수많은 국민의 지탄과 좌익(빨갱이)소리를 들어가면서 탈퇴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원인에서 볼 수가 있다. 전교조는 조합원을 계속적으로 속이고 잘못된 정보를 주입, 세뇌하여 사실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전교조에 대하여 조금씩 눈을 뜨고 알고 있다고 하여도 탈퇴는 사실상 여러 가지 그물을 쳐놓고 방지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실적으로 전교조의 정체를 알거나 적극 동조하는 조합원을 제외하고 일반조합원의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다음과 같다.


첫째, 특수공동체의 가족애에서 비롯된다.

전교조는 가족애·동지애로 뭉친 집단으로 이들은 가족과 같이 지낸다. 현실적으로 부부 전교조가 50%에 육박하고 일선학교의 분회로 구성된 조직은 5명으로 이루어져 남녀혼합, 나이혼합의 구성되어 가족과 같이 지낸다. 이런 현실에서 동지애란 개념은 이들만이 가지는 특별한 사항으로 탈퇴란 곧 가족과 같이 행복하게 지내는 사람들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념은 지금 일반적인 상황보다는 심각한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탈퇴는 집단 이지메로 인한 완전한 단절로 가족과의 단절과 같다. 지금은 탈퇴가 지속되어 방지를 목적으로 분회원간의 각종 친목을 도모 하도록 지령(2007)이 내려왔다.


둘째, 탈퇴구조의 어려움

조합원이 탈퇴를 하려면 우선 분회장에게 보고를 1차적으로 하는데 분회장은 회유와 압박이 진행된다. 자신이 속한 분회나 또는 자신의 권유로 가입을 시킨 조합원일 경우 책임을 지고 탈퇴를 못하도록 만든 조직이다. 탈퇴를 한다고 말을 하면 그대부터 압박이 시작이 되기에 어려움이 있다. 탈퇴가 주로 학교이동 시기인 3월과 9월에 이루지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셋째, 집단 이지메

전교조는 가족애와 더불어 동지애가 있다, 탈퇴란 친구가 아닌 적으로 되는 개념이다. 물론 탈퇴뿐만이 아니라 집행부와 다른 주장을 하거나 의식이 다르면 배반자, 반동분자(전교조에 반대를 행위를 하는 자로 전교조의 목적이 공산혁명이므로 공산혁명에 반대하는 자)란 말을 서슴없이 하는 집단이 전교조이다. 이들의 만류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탈퇴를 하면 그 순간부터 집단이지메가 들어간다. 이런 현실에서 이지메가 되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 탈퇴를 못하는 조합원이 많이 있다. 또한 가입을 하지 않으면 특히 전교조의 숫자가 많은 시골학교에서 집단 이지메에 들어간다.


넷째, 일신상의 안위

일신상의 안위를 위하여 가입을 한 교사들은 전교조의 그늘 아래서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에서 이들의 탈퇴는 곧 안위를 지킬 수가 없으므로 탈퇴를 할 수가 없다.


다섯째, 사립학교의 비리와 못된 교장의 대응부재

못된 교장에 대응을 하기 위하여 많은 교사가 전교조에 가입을 하고 있으며 전교조의 해악에도 스스로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 권위만을 앞세우는 교장이 전교조의 숫자를 증가시킨다는 말이 있다, 사립학교의 비리도 같은 경우이다. 그러나 전교조는 사립의 비리를 역으로 이용하여 학교를 점령하기 위한 것이지만 명분은 있다. 사립학교의 비리나 못된 교장에 대한 대응부재가 문제이며 전교조 같은 이적단체의 조직을 힘을 빌리지 않는 방법이 요구된다. 반드시 두 가지가 요구 된다. 전교조 견제와 비리, 못된 권위를 대응방법으로 전교조가 견제가 되지 않으면 비리의 대응방법만을 위한 것은 학교점령, 학교황폐화 공산세뇌의 교육장이라는 극단으로 몰고 간다.


여섯째, 가치관의 무너짐

활동가들은 전형적인 전교조를 비호하지만 정체를 모르는 일반조합원일 경우 전교조의 정체에 대하여 알게 되면 자신이 전교조 안에서 살아왔던 가치관이 무너진다. 자신이 거짓된 참교육에 속아서 활동을 한 상황에서 자신이 속았다는 것과 그동안 거짓된 삶을 살아 왔다는 것을 믿으려하지 않고 안주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는 외부의 압박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의 압박으로 인정을 한다는 자체가 가치관의 무너짐과 스스로 패닉 상태로 빠지기 때문이다.


열성활동가나 주사파가 아니라면 또 일부활동가라도 전교조가 북한의 고려연방제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과 자신들을 수단으로 보며, 세뇌하고 기만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본다. 많은 주위환경에서 설득이 필요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스스로 빠진 최면에서 벋어나는 길이다. 전교조조합원뿐만이 아니라 민중민주주의 세력이 모두 그럴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죽은 김일성과 산 김정일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일곱째, 사상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빠진 열성활동가들은 탈퇴의 개념이 아니라 기존조합원을 탈퇴를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일반조합원이 빠져 나간다는 것은 결국 재원의 조달과 활동하는 세력이 줄어든다는 현실이다. 사상에 물든 활동가들은 탈퇴를 적극적으로 방지하고 방해를 한다.


여덟째, 부적절한 관계

일반조합원들의 부적절한 관계이며 또는 활동가들의 조직 강화를 위한 것으로 활동가들이 일반조합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면 일반조합원들은 공무원이라는 신분으로 꼼짝없이 전교조 안에서 생활해야 한다. 또는 분회에서 나오는 말은 곧 법이며 해야 할 지침으로 만들어 버린다. 많은 분회가 이런 관계를 거치면서 일반조합원을 억매고 있는 현실이다.(일곱째 글은 책에 나온 이야기와 인터넷에서 회자된 전교조 출신교사가 밝히는 전교조의 실체에서 근거함을 알림)


조합원들이 탈퇴를 하기란 너무나 어려운 게임이다. 대한민국에 탈퇴하기 어려운 집단은 조폭과 전교조가 있다. 가입과 탈퇴는 자유의지이나 전교조 안에는 자유가 없다. 이지메의 두려움, 동지애의 배반과 두려움, 가족애로 인한 친한 사람들과의 단절, 가치관이 무너짐으로 인한 두려움, 못된 교장에 대한 대응방안 부재 등 이런 여러 가지 상황으로 전교조의 해악에도 불구하고 탈퇴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전국적인 현상이며 전교조의 본질이다.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몸이 전교조에 늪처럼 빠진 몸의 정도에 따라서 나오기가 힘들다. 발만 조금 빠진 사람 중에 무엇인지를 알고 탈퇴를 하는 것이며 반 이상 빠지면 나오기가 힘들며 갈수록 늪으로 빠져들며 나중에는 스스로 자위하고 만족을 하는 것이다. 전교조는 늪과 같은 존재이다.


"늪과 같은 전교조에서 탈퇴란 말보다는 탈출이란 말이 더욱 적절한 단어이다."


두 얼굴을 가진 분회장(활동가)

전교조의 분회장은 두 얼굴을 가지고 생활을 한다. 우선 이들의 교육내용을 두 가지로 나눈다면 리더십 교육을 바탕으로 인간적인 면과 다른 하나는 투쟁을 교육을 받는다. 앞에 것은 조합원을 인간적인 리더십으로 친근하고 가깝게 지내는 것을 유도하고 뒤에 것은 선동, 투쟁을 교육받아 조합원을 증오-분노-선동-투쟁하게 만들도록 하는 것으로 앞에서는 잘해주면서 뒤에서는 투쟁하도록 조정을 하는 것으로 정말 간교한 방법으로 조합원을 대하게 된다.


대부분의 조합원은 분회장에게 많은 신뢰를 보이고 인간관계는 가깝게 지낸다. 분회장은 가입기간이 오래되거나 특히 투쟁성이 강한 조합원을 분회원이 직접 선출하여 분회장이 되며 1년에 2~3차례의 합숙훈련을 통하여 리더십교육, 투쟁교육을 받으며 투쟁교육은 해악하다.


리더십교육을 보면 유익한 것들이 많이 있다. 내용을 보고 나도 한번 받아보고 싶을 정도다. 그러나 이런 교육의 숨은 음모가 있으며 특히 인간적인 면으로 조합원들을 접근하는 면들이 특이한 사항으로 조합원들의 일상생활에 꾸준히 지속적으로 관여하고 일상선동이란 말로 참여토록 만들었다. 계속된 인간관계는 인간적인 끈끈함으로 연결시켜주는 고리가 되며 활동가의 높은 결혼률이 증명한다.


신상파악을 하고 눈빛 하나라도 놓치지 말라는 이들의 교육은 정말로 감시수준의 교육이다. 정리하면 리더십으로 조직을 이끌고 인간관계의 면밀한 교육으로 친근함과 인간적으로 접근하고 또 감시하며 일상의 모든 면에서 같이하며 투쟁교육을 받아 조합원을 분노하게 만들고 선동하여 투쟁하도록 한다.


이들 교육은 노동자계급성을 가지고 꾸준히 선동·투쟁하도록 만드는 교육이다. 남녀알기, 선동문안작성, 선동연기연습, 조합원을 주최라고 인식하게 하기, 세뇌하기, 선동과 투쟁은 좋은 것으로 인식하게 하기, 노동자의식화교육 등 나름대로 분석을 하면 완전히 공산주의자들이 교육을 하는 것으로 이 문제에 있어서 증거와 논리를 가지고 있으며 해악이라 하겠다. 이런 교육을 받고 학교의 현장으로 돌아가서 같은 동료를 대하는 이들이 어떤 인간들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들은 인간적인 관계에 있어서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분회장(활동가)들에게 인간적인 신뢰를 보이는 것이다. 이런 해악의 사실적인 내용(앞에서는 인간적으로 잘해주고 뒤에서는 이용하도록 하는 것)을 알려주어도 믿으려하지 않고 보지 않으려고 하며 꾸준한 신뢰를 보이는 구조가 전교조의 특수공동체이다.


가족애와 애정을 통한 완전한 사육

일본 영화중 ´완전한 사육´을 본적이 있다. 처음과 중간 그리고 결말에 이르기 까지 우리는 전혀 다른 예상을 하게 된다. 납치된 여고생이 도리어 납치한 사람을 옹호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전교조조합원을 보면 영화 ´완전한 사육´이 생각이 난다. 전교조는 완전히 이성을 잃고 사회주의 사상을 신봉하며 무소불휘의 힘으로 국민을 우롱하고 학생에게 투쟁을 가르치고 있는데 조합원은 전교조가 정당하다고 하며 잘못 했다는 말은 한마디도 안하고 있다. 영화 ´완전한 사육´에서 처음부터 여학생을 납치 한다는 것은 인륜을 반하는 행동으로서 당연히 최고의 죄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학생은 납치법이 잡혔을 때 도리어 칭찬을 하며 행복했다고 한다. 만약 남학생을 납치하였으면 완전한 사육이란 존재하지 않으리라 본다. 그러나 전교조가 이념과 사상의 힘으로만 이들의 결속력을 강화 시키리라는 생각은 않는다.


애정 만들기는 조합원에게 가장 중요한 사항이 되어버린 역할이다. 이것 역시 인간의 본능을 자극한 경우이다. 기본적으로 애정 만들기에 적극적인 조직이 분회이다. 전교조의 활동가 교육지침에도 남녀를 알아야 한다는 사항이 명시되어 있다. 영화 ´완전한 사육´을 보면 애정이 만들어져 상상외의 결론을 돌출한다. 인간의 생각은 마음을 절대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생각이 난다. 인간은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 본능이다. 인간은 본능에서 벋어 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분회의 조직구성과 활동의 내역을 보면 충분히 전교조의 교육방침이 애정 만들기는 결과적으로 조직 강화에 이용 되었다는 것은 부정하기는 힘들다.


전교조는 과거부터 한총련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가족애를 결합하여 애정을 만들도록 유도를 하며 순수한 감정도 눈을 막고 귀를 막으며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이며 활동가는 조합원을 감시 및 남녀관계알기 등을 교육받으며 회의에서 반대의견을 내세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배신자와 반동분자 취급하는 사람들에게 일반조합원의 순수한 감정이 조직 강화에 이용되고 있다.


조합원과 대화를 하여 전교조의 문제점과 해악을 알려주면 조합원은 처음부터 귀 기울여 듣지를 않으려고 하며 믿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보통 우리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이 문제가 있으면 바로 탈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전교조조합원은 일반적인 이야기기를 믿지를 않으며 의심부터 하고 한편으로는 적대적인 반응을 표출한다. 인간관계 때문에 탈퇴를 하지 않거나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조합원은 완벽한 사육이란 단어가 과장된 단어가 아니라고 본다. 이는 가족애란 개념을 접목 시키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조직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분회의 인간관계로 탈퇴를 못하면 분회를 통한 완벽한 사육이 아니겠는가? 조합원은 마치 감옥에 갇힌 것과 같다. 전교조는 감옥이고 활동가는 간수이고 분회원은 죄수인 것이다. 모든 분회가 이러한 것은 아니지만 빠져나오지 못하는 조합원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결론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잘못되어도 인간관계로 탈퇴를 하지 못하면 전교조에서 탈퇴를 못하도록 사육을 한 것 아닌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오류로 출발한 분회

오류란 ´그릇되어 이치에 어긋나는 인식´을 말한다. 진리에서 한 걸음만 벗어나도 곧 바로 오류이다. 오류가 바탕이 되고 오류에서 출발을 하면 그때부터 오류에서 세상을 판단하고 오류를 진리로 알고 있으며 오류를 바탕으로 판단을 하며 새로운 오류를 만들어낸다. 전교조는 조합원을 오류로부터 시작하게 만들었다. 분회를 가족이란 개념과 동지란 개념으로 만들었다.


가족의 개념은 부부를 중핵으로 근친인 혈연 자가 주거를 같이하는 생활공동체 이다. 즉 혈연을 관계로 만들어진 것이다. 여인과 헤어질 수는 있어도 부모와 자식 간에는 헤어질 수가 없다. 가족은 인류에게 있어 보편적인 기본 형태라는 것은 가족만이 가지는 본질적인 기능이 있다. 이러한 혈연으로만 가지는 특성을 분회에 적용을 시켰다. 커다란 오류의 출발점이자 느끼지 힘든 오류이자 마약과 같은 오류이다. 지금 조합원은 자신들끼리 가족의 느낌으로 지낸다. 인류역사상 9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가족의 개념으로 도입된 것은 인류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전교조는 가족을 만들어 신적인 존재가 되었다. 9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가족이며 전교조는 문중과 같은 존재이다.


분회를 가족의 개념을 도입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조합원에게 전교조의 정체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나 조합원은 탈퇴하기 어려움을 인간관계로 말하고 아무리 전교조가 공산주의라도 탈퇴를 하지 않는 조합원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이것이 지금의 분회의 전국적인 현상이다. 일반적인 예를 벗어난다고 보지는 않는다. 어긋난 인식이 정착된 분회는 어긋난 판단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단추를 하나 잘못 끼우면 나머지 단추도 잘못 끼우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로 이어져 스스로들 판단을 기본과 원칙에서 하지 않고 인간관계를 기준으로 하는 가족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이미 조합원들의 판단은 가족이라는 잘못된 구성으로 오류를 만들었고 오류는 잘못된 판단을 하며 계속된 오류는 합리화를 시키고 결국은 합리화를 시키기 위한 자아세뇌의 길을 걷고 있다.


가족의 개념은 어떤 부분적이라도 무의식 적인 부분은 반드시 적용이 되게 되어 있다. 인간은 법적질서 안에 일부일처제의 제도 안에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본능은 다부다처제 이다. 법까지도 통제하기 못하는 부분이 본능이며 인간의 생각은 마음을 절대이기지 못한다. 그런데 인간의 가장 기초이며 기본적인 가족의 개념을 분회에 적용을 시켜 통제로 부터 벋어나게 만들었다. 그릇된 인식을 처음부터 분회에 적응을 하고 어떤 결과가 올지는 누구나 직감으로 판단할 수가 있다. 결과는 조합원만이 알 것이다. 남녀 간에 친구를 불인정의 논쟁도 끊임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섹스가 소통의 최고 경지라는 것에 거의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문제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소통할 상대가 법적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생각이란 사람이 머리를 써서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작용이며 마음이란 인간의 정신활동으로 일반적으로 ‘정신’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는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마음’은 ‘정신’에 비해 훨씬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뜻으로 쓰이는 일이 많고, 그 의미 내용도 애매하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의식’의 뜻으로 쓰이는가 하면, 육체나 물질의 상대적인 말로서 철학으로는 ‘정신’ 또는 ‘이념’의 뜻으로도 쓰이는 막연한 개념이 되었다.


가족은 무의식적으로 믿게 되는 경향이 가족의 심리적 특성이다. 무의식은 각성되지 않는 심적 상태이다. 심리학자들은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대립하다가 무의식이 의식 밑으로 대기하다가 의식되게 대기하는 것으로 본다. 프로이드의 이론을 적용하면 가족애를 접목시키면 무의식적으로 시작하여 의식화 되며 융의 이론 이라면 전교조는 오랜 세월을 같이 지낼수록 종족의 이념이 공유하게 된다는 이론으로 가족의 개념이 적용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자각이란 마지막 단계가 남아 있다. 자각이란 즉 일정한 상황에 놓인 자기의 능력·가치·의무·사명 등을 스스로 깨닫는 것으로 무의식적인 개념에 행동을 통제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자각을 한사람만이 가족의 개념에서 행동을 벋어날 수가 있으나 자각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자각이란? 단지 내가 나를 인식하는 것으로 내가 나를 보는 것이다. 내 생각이 나를 보는 것이 아닌, 내가 내 생각을 보는 것이다. 과연 조합원은 자각을 할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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