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秘의 意義

갈라디아서 1.15~18

종교는 신비에서 출발한다. 합리적인 세계관에 영향을 받은 현대인들 중 일부는 합리적인 종교관에 젖어, 신비를 종교에서 제거하는 일을 대단한 과제로 알고 그것에 긍지를 갖기까지 한다. 그러나 종교에 있어서 신비는 마치 나무의 뿌리와 같아서, 신비를 제거하려는 일련의 모든 노력들은 나무의 뿌리를 절단하는 행위처럼 종교의 생명력을 쇠잔하게 만드는 위험한 작업이 될 것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도 신비가 남아있어야 윤택한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 生전체를 검사와 분석이라는 삽으로 샅샅이 파헤치는 작업은 생의 황폐화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合理至上主義的 태도는 마치 사랑을 할 때 생기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 같은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과 유사할 것이다. 사랑은 서로에 대한 신비스러운 동화를 그 본질로 하고 있다. 사랑은 서로 간에 거리가 없는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동화의 이유와 과정과 목적을 일일이 분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분석될 수 없는 것을 기초로 하여 형성되기 때문이다. 또한, 어렵사리 분석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분석하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가 제시될 수 있고, 그 제시된 분석의 결과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그가 이러저러한 모습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아직도 그가 대상의 조건을 의식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따라서 상대적으로 그만큼 피상적인 관계, 겉도는 기쁨만을 느끼는 상태에 머물러 있음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미치너(J.Michener)의 소설을 영화화한 [남태평양]의 사운드트랙'에서 어느 황홀한 저녁'에도, 왜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오직 바보들이나 대답할 뿐, 현명한 사람은 결코 대답하려고도 하지 않는다."라는 대답이 이어진다.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대목이다. 만약 왜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대답이 가능하다면 아마 기껏해야 이 말 한 마디가 될 것이다. "왠지 모르게!" 이 '왠지 모르게'의 내용이 바로 神秘다.

성서에 나오는 모든 기적이야기들을 비롯하여,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신앙의 세계를 모두 합리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 기독교는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쓸데없이 소모시켜왔다. 신앙세계의 핵은 신비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 모두를 논리적인 차원으로만 설명하려 하면 이내 한계에 부닥치게 된다. 기독교는 역사상의 한 인물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데서 출발한다. 바로 이 예수가 참 인간이요 참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명제는 분석되기도 설명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러한 명제가 믿음직한가?"라고 질문하는 것 또한 적절치 않다. 오히려 "너희야 말로 그 명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느냐?"라는 질문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비는 비밀을 동반해야 유지된다. 신비에 해당되는 희랍어'musterion'은 '신비'로도 '비밀'로도 번역될 수 있는 단어이다. 바울은 다메섹의 그 놀라운 신비를 체험하고서도 그 결정적인 사건을 자신의 서신들 전체에서 단 한 차례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단지,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했다."(갈1.15~16)는 보도 정도가 바울이 그 사건에 대해 언급한 것의 전부이다. 여기서도 '사건'이라고 꼭 집어서 내세울 만한 것은 거의 없다. 그 다메섹 사건에 대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는 바울의 기록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바울에 관한 사도행전 저자의 드라마틱한 기록에 의한 것이다. 만일 사도행전이 우리에게 전해져 오지 않았다면 바울의 그 신비체험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바울의 선교적 삶을 열정적으로 지탱시켜 준 것은 바로 그 신비체험이었을 것이다.

*신비는 비밀스러워야 그 힘이 유지된다. 신비는 그것이 발설되면 그 힘을 차차 잃기 시작한다. 더 많이 더 자주 발설될수록 그에 비례하여 그 힘은 현격히 감소한다. 요즈음, 종교적인 신비체험을 했다. 하며 이리 저리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들과 그로 인해 빈약해진 신비의 내용을 바울의 것과 비교해 보면, 역시 바울은 큰 인물이었구나 하는 판정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서로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알아버리고 나면 그 관계가 피폐해지기 쉽다. 남김없이 다 알려하는 것도, 또는 있는 것 전부를 알리려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엄격한 의미에서는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런 태도를 솔직하지 못한 태도로 몰아붙인다면 그는 인간의 깊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일뿐 아니라, '솔직'의 기본정의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더 나아가 그러한 사람들이 제시하는 '솔직'의 내용은 거의 귀담아 들을 것들이 없는 무미건조한 것들로 구성되어있기 일쑤이다.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내면의 몫을 상대가 어느 정도 비밀로 지니고 있도록 오히려 도와주는 일이 필요하다. 상대의 신비의 부분까지 속속들이 끄집어내어 분석하려는 것은, 마치 씨앗을 잘게 썰어 생명력을 훼손하는 것처럼 상대의 생명력을 치명적으로 손상시키는 무서운 과오가 될 것이다. 나의 신비가 소중하듯, 상대방의 신비도 소중하다. 상대방의 신비를 내 잣대로 재거나 재단하려는 태도를 포기하고, 그의 신비를 나름대로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려는 자세가 서로의 삶의 질을 생기 있게 유지시켜주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