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표가 연기했던 용수네 가족들과 용수가 근무했던 탄광 동료들은 모두 극심한 가난과 굶주림,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용수는 폐결핵에 걸린 아내를 위해 치료약조차 구할 수 없어 마침내 국경을 넘는 탈북을 감행한다. 우여곡절 끝에 용수는 대한민국으로 오게 되고 아들과 아내를 만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결핵으로 앓던 아내는 죽어 버리고 아들 준이마저 몽고의 사막을 헤매다 죽고 만다. 용수는 성경책을 팽개치며 왜 예수님은 남한에만 계시냐고 울부짖는다.

그런데 이 모든 고통과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 중 그 누구도 김정일을 비난하지 않는다. 이 모든 고통의 원인 제공자가 김정일 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김정일을 욕하지 않는다. 이게 말이 되는가? 때려 죽여도 시원치 않을 살인마를 향해 그 누구도 불평을 발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 대목에서 잠시 크로싱의 사실성을 의심했었다. 그러나 진실은 무엇인가? 그게 바로 북한의 실상이다. 혹자는 왜 북한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김정일 집단에게 저항하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그게 바로 북한의 현실이다. 어떤 불평도 말할 수 없는 무서운 현실, 위대한 지도자 동지에 대한 그 어떤 저항도 용납될 수 없도록 저들은 60년 동안 길들여져 왔다. 자유의 개념도 이미 망각되었다. 저항의 정신은 이미 오래 전에 다 마비되어 버렸다.

'쇼생크 탈출'이란 영화에서 모건 프리먼은 오랜 수감생활을 끝내고 가석방되어 한 식료품점에서 일하게 된다. 그런데 그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매니저에게 화장실 좀 갔다 오겠다고 허락을 구한다. 답답한 매니저가 그냥 다녀와도 된다고 일러준다. 수십 년의 수감생활 내내 그는 간수에게 허락을 받고 화장실을 다녀왔던 것이다.

길들여진 짐승처럼 북한 주민들의 자유 의식과 저항 의식은 말살되어 버렸다. 저들은 자신들을 비참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길들여진 것이다. 그게 60 년이다.

저들의 비참한 인권 상황을 누가 아프게 여기는가?

자유를 알고 누리는 사람들이다. 저들은 고통을 느끼고 고통의 원인에 저항할 만한 지각조차 모두 상실했기에 자신들을 비참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60년 노예 생활의 결과이다. 저들을 바라보는 자유인들만이 저들의 비참함을 느낄 수 있고 그로 인해 괴로워하게 된다.

자유 대한민국에서는 초등학생들도 대통령을 향해 병신이라고 욕하고 조롱한다. 경찰들이 불법시위자들에게 손만 대도 난리가 난다. 작은 억압에도 견디기 힘들어 즉각 저항한다. 이건 자유의 가치를 알고 누리는 나라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자유를 누리고 자유의 가치를 아는 자들만이 북한 동포들의 비참함을 느낄 수 있다. 저들의 자유와 사람다운 삶을 위해 자유를 아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일어나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