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유연한 ‘상호주의’

미북(美北) 『북 핵 연내 불능화 합의』 허구성

미국이 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서 코너에 몰리고 내년의 대선에서 공화당의 입지가 축소된 지금 급한 마음에 북한카드라도 빨리 손질하려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국제정치학자로 북핵 문제를 수년간 연구해 온 필자에게 지금과 같이 빠른 속도로 외교적 성과를 염두 해 둔 미국의 대북(對北)접근법이 얼마나 위험한지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지난 2일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과 북한의 김계관이 만나서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고 힐의 입을 통하여 “북(北)이 연말까지 모든 핵 프로그램 신고, 모든 핵 시설 불능화하기로 했고 농축우라늄문제도 좋은 논의를 했고 앞으로도 계속 논의할 것이다.”는 발표를 했다.

북한도 김계관의 입을 통하여 “조미관계 정상화를 위해 현안(懸案)들을 전면적으로 검토하고 미국과 많은 일치를 보았으며 합의대로 핵 계획을 신고하고 무력화 실현의지를 명백히 했다. 미국은 약속한 정치.경제적 보상을 다시 한 번 확인 했다.”는 상응하는 멘트를 했다.

필자와 같이 북한의 본질을 많이 연구한 학자에게 이 번에 북미(北美)합의는 참으로 믿을 수 없는 ‘성과주의’에 급급한 미국의 실책(失策)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북한의 문화를 잘 알고, 북한 정권의 본질을 가장 잘 아는 한국의 연구진들에게 북한의 핵(核) 이 미국과의 담판으로 진정으로 제거 대상이 된다는 진실 된 믿음을 갖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필자는 대단히 유감스럽게 이 문제의 급진전이 과거 북한이 입만으로 행한 약속과 무엇이 다른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얻을 것은 다 얻어내고 상황변화에 따라서 얼마든지 유연한 입장을 정리하여 자신들의 약속을 철회해온 북한 정권의 본질을 두고 ‘유연한 상호주의’ 운운하는 미국의 태도는 결코 합리적이지 못한 것이다.

지금 대선용으로 전락할 수 있는, 10월에 개최예정인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한 통일방안까지 진보세력의 입장을 대폭 수용하여, 임기 수개월을 남겨둔 정부가 무리하게 명기하려는 시점에서, 미국이 이처럼 자신들의 조급한 외교적 성과를 위해서 북한을 하루 아참에 ‘악의 축 불량국가(axis of evil, rogue state)’에서 믿을 수 있는 국가로 둔갑시키는 저의(底意)를 우리 한국의 양심세력들이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답답할 따름이다.

우리가 북한과 합의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고 너무 급하게 가는 모양새가 영 불안한 것이다.

2007.9.4 박태우 대만국립정치대학 외교학과 객좌교수

(박태우 박사의 푸른정치연구소, www.hanbatforum.com)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연구위원/DPU Korea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