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칼럼
2020년 7월 10일   21:03
로그인 회원가입 기사제보
필자의 다른글   기사 확대기사 축소리스트프린트
10년 전에 썼던 대북풍선을 시작한 동기와 역사
이민복(대북 풍선단장) 

처음 할 때 누구도 쳐다보지 않던 대북풍선이 이제는 단골뉴스로 되고 남북관계의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역으로 부각되었다.
  
  민간인으로서 삐라를 처음 날리기 시작한 시기는 2003년 10월, 그러나 삐라를 보내야한다고 생각한 것은 북한에 있을 때부터이다. DMZ 가까운 고향에서 여름비 속에 남조선삐라가 나비처럼 떨어지는 것을 자주 보곤 하였다. 그럼에도 기억나는 내용은 없고 단지 마을 할머니가 편지형태로 보낸 삐라의 주소가 북한이 맞는가 물으시던 기억이 날 뿐이다. 그나마 중학교 초기 평양 근방으로 이사를 가 볼 수 없었다.
  
  성인으로 다시 본 것은 1990년 8월 철원군 대전리에서이다. 난생 처음 홀딱 벗은 처녀도 그때 보았다. 솔직히 대부분 삐라는 북한정서에 맞지 않아 별로 감동이 없었다. 오히려 역 후과, 즉 나체사진은 끌리지만 대신 사상적 결과는 <부르죠아 썩어빠진 문화>가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하고 확신시켜주는 꼴이었다.
  
  또한 실례로 <헝가리, 폴란드에서 폭동> 등 영어식 발음은 미국 식민지가 틀림없어 보였다. 북에서 흔히 쓰는 웽그리아, 뽈쓰까라는 단어 하나 생각지 못하고 더구나 민족혼도 없는 자들이 우리를 설득해?! 하면 벌써 제치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런 초보를 모를 수 없겠는데 아마 그 속에 분명 우리사람(북 간첩)이 있는 것 같아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그 의심은 탈북 후 남한에 와서 금방 풀렸다. 대북심리전단에 간첩은 고사하고 정보심리학의 수재들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치명적 문제는 북에서 살아본 탈북자를 한 명도 쓰지 않는 데 있었다.
  
  남조선 삐라가 다 한심한 것은 아니다. 나의 인생을 바꿀 만큼 깊은 의문점을 남긴 것도 있다. 침략전쟁을 일으켜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긴 6.25전범자를 뒤바꾸게 한 것이다. 비교할 수없는 폐쇄사회임으로 흐르쇼브 회고록이나 귀순인민군장교 이학구 대좌의 증언소리는 안 들어와도 왜 3일 만에 서울 먹히었겠는가고 한 것이 뇌리에 박힌 것이다.
  
  과연 어느 쪽이 거짓말 할가?! 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너무나 중대한 문제의 진실은 내 절로 간단히 연구해냈다. 전쟁초기 참가자와 3.8선 주민에게 조용히 물어보면 될 것이었다.
  
  정말 물어보니 남조선 삐라가 사실이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이보다 더 놀랍도록 충격을 받은 것은 남조선 사람들이었다. 이런 진실을 분단 반세기 동안 왜 한 마디로 깨우쳐주지 못했을까였다. 간단히 <전쟁초기 참가자와 3.8선 주민에게 물어봐라>만 반복해 보냈더라면 북한악령의 증오의 철학, 혁명주의 근간이 무너지겠는데 말이다.
  
  북한을 지탱하는 중추 어버이 수령숭배도 마찬가지이다. 만화로 김 부자 혹 달리고 배 튀어나오게 하는 식보다 <그래! 인민의 어버이라고 하자! 그런데 왜 인민대중인 당신들은 강냉이죽도 없어 굶어죽고/입 하나인 수령은 왜 그렇게 방방곳곳 사냥터, 별장, 동상 천지인가?!>고 반복 또 반복하여 보냈다면 저렇게 눈물 흘리며 만세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헐벗고 굶주린 남조선>과 <지상낙원 북조선> 문제도 간단한 것이다. 당시 삐라에서 본 한강시민공원의 자가용차 가족사진을 보내서 해결할 수 없다. 사실은 사실이지만 폐쇄 하의 공산당 선전술을 도무지 이길 수 없다. 저것은 부자 몇 놈들 사진이야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것도 한마디로 해결, <공화국을 방문하는 중국 조선족이나, 외국인들에게 조용히 물어봐라>
  
  내가 남조선에 가서 할 일은 이것이라고 생각했다. 4개 나라 국경을 넘나들며, 3개 나라 감옥을 거쳐 찾아갔지만 북을 자극 않기 위해 탈북자 받을 수 없다는 남한정책 하에 탈북한 지 6년째 되던 해에 절로 UNHCR 개척, 제1호 자격으로 서울에 도착.
  
  정말 나는 국방부 심리전단에 찾아가 6개월만 일해주고 싶다고 간청했다. 지인을 통해 99% 받아졌다고 알고 있었으나 결국 딱 1% 때문에 무산되었다. 사명보다 내 기득권, 내 밥탁이 더 앞서는 남한정서의 결과였다.
  
  그나마 더 정책적으로까지 심각해진 것은 2000년 4월이었다. 첫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간청에 김정일 정권의 첫 요구조건, 대북삐라와 방송중단요청을 기꺼이 들어주고 평양에 간 것이다. 거대한 감옥인 북한이란 감방에서 눈, 귀, 입 막히고 사지와 정신까지 묶인
  불쌍한 이들에게 비치던 가느다란 희망마저 막아버린 것이다. 갈수록 태산, 2004년에는 남한 땅의 전광판마저 치우는 것에 합의해주고. 정권도 갈수록 태산, <국민의 정부>를 더 한 술 뜨는 <참여정부>.
  
  이제 더 바라 볼 것 없는 상황에서 백수라도 나설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2003년 10월부터, 당시 명칭인 기독탈북인연합 성원들과 시작한 것은 어린이 장난감인 고무풍선에 삐라 한 장씩 달아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기를 3년째인 2005년 6월까지 아무리 날려도 반응은 없었다.
  
  백 개 이상 고무풍선을 만들어도 손가락에 물집이 생기고 피가 난다. 바위 돌에 맨손 치기였지만 신념을 굽히지 않으니 그 피 속에서 대형풍선을 개발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와 지혜가 생겨났다. 물론 간단한 과정이 아니었다.
  
  정부가 매해 30억씩 쓰며 하던 것을 맨주먹인 탈북자가 한다는 것은 올라가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는 격이었다. 그래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믿음대로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내 집을 못 찾아갈 정도로 몰입하고 미치니 마침내 돈 없는 민간인도 할 수 있는 화학식 타임 대형풍선을 개발한 것이다.
  
  대형풍선 개발의 반응은 너무 빨리 놀라울 정도로 왔다. 불과 몇 개 날린 것 같지 않은 데 한 달이 지난 8월부터 북의 공식항의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증기기관 발견이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원자력 발견이 역사를 바꾼 것처럼 풍선개발 기술이 이렇게 놀라운 결과를 빨리 가져 올 줄을 몰랐다.
  
  다른 대북단체에 전수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가을부터이다. 처음 북한구원운동(김상철),호야선교회(이경자,이필생), 기독사회책임(서경석),일본납치자구출단체(아라키), 2006년부터 북한민주화운동, 여기서 나와 2008년 독립한 자유북한운동연합(박상학)과 탈북인단체총연합(한창권), 북한민주화위원회(강철환), 북송일본인구출(가토히로시),북한민주화네크워크(김성중), 인민의 소리(유상준)를 비롯한 여러 곳에 전수되고 협력하는 다각적인 구조.
  
  누구 하나 막는다고 못할 구조가 아닌 것으로 되어 더욱 안정적이고 희망적이다. 풍선기술개발은 계속되어 현재는 정부기술을 초월하고(단순명료, 값싸) 더 이상 개발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최신기술에 도달(특허증 소유).
  
  이번에는 회담 요청할 분위기 아닌데도 그 자존심 높은 북한이 제 발로 나와 최후통첩 식으로 항의한다.(대형풍선 개발한 2005년 8월부터 2011년 3월까지 도합 37차례로 알고 있다) 그만큼 내부의 반응이 크고 급하다는 반증이다. 김정일 와병설을 담아 갑자기 그렇다고 하는데 이것은 정말 여론몰이이다.
  
  그 어떤 대북운동에도 끄떡없던 강성대국이 이렇게 비명소리 하듯 항의 많은 것은 풍선삐라뿐이다. 왜 그럴까? 폐쇄가 최선, 최후, 최고의 통치수법으로 뚫리면 죽기 때문이다.
  
  3차 대전 같은 사변의 6.25 역사진실도 뒤집을 수 있고, 기껏 백여 명의 부대장이 천만 일군을 패망시킨 해방자이고 그 아들은 21세기 태양이라고 하는 수령숭배와 굶어죽는 유일나라. 테러와 핵개발로 세계를 교란하는 모든 악행은 폐쇄하에 가능한 것이다. 그 폐쇄를 자유롭게 뚫는 유일한 수단이 풍선이니 저리 놀랄 만도 한 것이다. 개방하면 곧 죽기에 필사적인데 이미 풍선으로 뚫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누가 진실로 풍선을 보내고 어떤 내용을 담는가가 결정할 것이다. 탈북자들이 기껏 2-3천만 원어치 풍선에 저리 놀라는 것을 보면 몇 억 원이면 무너질 것이란 자신감까지 든다. 쏘련태생으로 평양유학까지 한 대북전문가 란코브 교수는 <쏘련은 라디오 때문에 무너졌다>고 결론했다. 라디오와 방송파를 결사적으로 막는 북한은 레이더에도 안 걸려 어쩔 수 없는 <풍선 때문에 무너질 것이다.>
  
  2011년 2월14일 서울
  대북풍선단장 이민복
  



등록일 : 2020-06-15 (08:24)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기 원하세요?
아래 배너를 눌러 네비 툴바를 설치 하세요


                         
스팸방지 :    (필수입력 -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페 구현을 이루는 ...
[ 20-07-09 ]

글이 없습니다.



부정선거 고발 캠페인

  사이트소개기사제보 ㅣ 개인정보보호정책 ㅣ 즐겨찾기 추가
서울 특별시 강동구 길동 385-6 Tel 02)488-0191 ㅣ 사업자번호 : 212-89-04114
Copyright ⓒ 2007 구국기도 All rights reserved.  ㅣ 국민은행 580901-01-169296 (오직예수제일교회 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