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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에서 가장 악질적 이데올로기 '북한식 사회주의'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천하려는 당을 지지했던 공직자들이 아무런 수사도 받지 않고 있다.
김필재 

CIA의 舊소련 분석팀을 이끌었던 리처드 파이프스(Richard Pipes) 美 하버드대 역사학과 교수는《Communism: A History》에서 “역사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전통이 없는 국가에서 공산주의가 도입될 경우, 그것은 예전 정권의 가장 나쁜 특성들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밝혔다.

파이프스 교수의 연구를 기초로 통진당이 실현하려했던 ‘북한식 사회주의’를 해석하면 역사상 자유민주주의 전통이 전무한 북한이 조선의 前近代的(전근대적) 封建(봉건)체제와 舊일본의 天皇制(천황제)를 모방해 만든 ‘민족사에서 가장 악질적인 체제’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1997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공산주의 黑書》에는 이런 통계가 있다. 숙청, 집단 처형, 집단 강제이주, 정부가 만든 대기근 등을 통해 공산주의 체제로부터 죽임을 당한 무고한 사람들이 약 1억 명이란 통계이다. 2500만 명을 학살한 나치(Nazi)의 범죄 조차 역대 공산정권이 자행한 학살 규모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이다.

전향한 左翼 사범 김정익 씨가 자신의 과거를 참회하며 쓴 《囚人番號 3179: 어느좌익사상범의 고백 》(국민일보社 발간)에는 옥중에서 김 씨에게 사상교육을 했던 南民戰(남민전) 사건 연루자 김○○의 발언이 아래와 같이 등장한다.

<남조선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나면 최우선적으로 해야 될 일은 이 사회의 민족반동세력을 철저하게 죽여 없애야 한다. 그 숫자는 대략 2백만 정도는 될 것이다. 그래야만 혁명을 완전하게 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2백만이라는 숫자가 엄청날 것 같지만 인류역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민족 전체를 놓고 볼 때에 그것은 소수에 불과하다. (중략) 민족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온 것이다. 우리에게 적은 숫자의 반동세력의 피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한 차원 높은 애국이요, 진정한 민족주의자의 길을 가는 숭고한 행진곡인 것이다. 우리가 있는 이 감옥은 애국 애족의 위대한 과업을 하기 위한 학교인 것이다. 버림받고 핍박받은 소외감이 눈물처럼 넘치는 우리에게 주어진 유토피아적인 학교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의 實體이다. 다행히 이를 실현하려했던 통진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이 黨을 만들고 이끌었던 從北세력은 여전히 우리사회 곳곳에서 암세포가 되어 지금 이 시간에도 활개치고 있다.

從北세력의 조직화‧네트워크화

憲裁가 통진당 해산 판결을 내리자 일각에서는 “이제 從北세력은 끝장났다”는 다소 성급한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筆者의 생각은 이와 다른데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통진당 해산은 국회에서 활동했던 從北세력의 일부가 사라진 것에 불과하다. <조갑제닷컴> 확인결과 2015년 현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중 국보법․반공법 위반자는 21명이며, 새누리당의 국보법․반공법 위반자는 3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총 24명의 국회의원이 국보법․반공법 위반 전력이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19대 국회 출범 당시 28명). 그리고 이들 가운데 과거 反국가단체, 利敵단체에서 활동했던 정치인만 16명이었다.

19대 국회는 남로당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한 제주4𔆉사건을 2013년 6월27일 재석의원 216명 중 212명(기권 4명) 찬성으로 4월3일을 ‘국가추념일’로 지정했다.

제주4.3사건의 주동자인 김달삼(남로당원)은 폭동이 진행 중이던 1948년 8월25일 越北(월북), 김일성에게 4𔆉폭동의 전과를 보고하고 국기훈장2급을 수여받았으며, 1950년 3월 강원도에서 사살됐다. 김달삼은 死後(사후) 평양근교의 애국열사릉에 안장됐다.

이석기 체포동의안의 국회 통과(2013년 9월4일) 당시에는 31명의 국회의원이 이 씨의 체포에 사실상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당시 표결은 새누리당은 물론 민주당(現 새정치민주연합), 정의당까지 ‘찬성 당론’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도 반대 14표, 기권 11표, 무효 6표가 나왔다. 당시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 6명이 이석기 체포에 반대․기권‧무효를 선택했다하더라도 25명의 他黨(타당) 소속 정치인들이 ‘이석기 편’에 서거나 그 앞에서 ‘머뭇거린’ 셈이다.

9·11테러는 19명의 이슬람 원리주의로 무장한 알카에다 조직원들이 권총 한 자루 없이 커터 칼로 무장, 네 대의 비행기를 납치해 3000여명을 죽였다. 공산혁명 당시 러시아의 인구는 1억 5000만 명이었다. 그러나 볼셰비키 혁명은 3명의 노동자 해방동맹에서 시작해 레닌 시기 17명에서 46명으로 늘려 가며 성공했다. 중국의 공산화는 공산주의 소조 50여명이 씨앗이 됐고, 쿠바의 공산화는 80여명의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달성됐다.

둘째, 從北세력의 활동을 제압․감축시킬 수 있는 법적․제도적 역량이 크게 미흡하다. 과거 左翼세력은 주로 학원가․노동계․재야 시민단체 등에 포진되어 있었으나 19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정치․경제․문화계 등 사회 全 영역에 침투해 네트워크화 됐다.

이들이 주로 활동하는 인터넷 공간은 이미 오래 전에 국보법이 무력화된 상태이다. 雪上加霜(설상가상)으로 현행 국보법은 利敵단체의 구성 및 가입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있지만, 利敵단체나 反국가단체에 대한 강제해산에 관한 근거 규정이 없다.

이와 함께 9·11테러 이후 정부의 ‘테러방지법’을 모태로 ‘국가대테러활동과 피해보전 기본법(새누리 송영근 대표발의)’,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새누리 이병석 대표발의)’, ‘사이버테러방지법(새누리 서상기 대표발의)’등 다양한 對테러법안이 국회에 발의되어 있지만 통과는 五里霧中(오리무중)이다.

이석기가 주도했던 지하혁명 조직 RO의 비밀집회 참석자들은 아직까지 법적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 2012년 공안당국은 통진당 부정경선 파동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통진당의 黨員(당원) 명부를 확보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들 당원 중에는 공무원과 군인 등 정당에 가입할 수 없는 ‘불법 당원’이 일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천하려는 당을 지지했던 공직자들이 아무런 수사도 받지 않는 셈이다.

김필재(조갑제닷컴) spooner1@hanmail.net

 

 

등록일 : 2015-06-17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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