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한(韓)민족의 숙원이자 지상과제다. 통일은 분단의 아픔과 비극을 해소하고 남북공동체 형성의 길을 열 것이다. 통일된 한국은 동북아에서 강력하고 번영된 선진국가로 부상하면서, 역내 안정과 평화의 초석이 될 수 있다. 특히 북한주민을 인권유린의 질곡(桎梏)으로부터 해방하여 보편적 기본권을 만끽하게 한다는 점에서, 통일은 세계사적 의의를 지닌다.

이렇듯 통일의 당위성엔 의문의 여지가 없으나, 실제 어떤 통일을 어떤 방식으로 추구할 것인가에는 백가쟁명식 주장이 한반도에 난무한다. 북한 주도의 무력통일 및 연방제 통일로부터 한국 주도의 평화적 합의통일과 북한 급변사태로 인한 흡수통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통일 시나리오가 존재하고 이에 대한 찬반논쟁으로 우리 사회가 통일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통일준비위원회의 ‘흡수통일 준비’ 여부가 논쟁을 한층 고조시켰다. ‘흡수통일 반대’ 주장에는 우리가 통일 이니셔티브를 포기하고 반드시 북한과의 합의를 거쳐 통일해야 한다는 맹목적 전제가 엿보인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북한붕괴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스스로 무너질 경우의 통일준비에도 반대하는 뉘앙스다. 그러나 북한 급변에 따른 통일 대비는 정부가 시행해야 할 필수적 안보ㆍ통일 책무다. 이를 회피하면 직무유기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대한민국 주도 흡수통일을 지지하는 국민여론은 60%에 달한다.

남북 합의통일이 이론적으로는 바람직하나, 북한의 변치않는 군사 적대와 수령ㆍ주체중심 통일전략을 감안할 때 실현 가능성이 문제다. 한반도 안보현실과 북한정세를 외면한 통일논의는 사상누각과 같다. 독일통일이 주는 교훈은 ‘접촉을 통한 변화’ 끝에 획득된 열매로서의 통합이다. 양독(兩獨)은 상대를 인정하고 교류를 확대해 통일을 달성했지만, 그 이면에 수십년 간 수백만의 인적교류와 자유로운 접촉의 밑거름이 있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과연 지금 남북 주민 간 의미있는 접촉과 대화가 가능한가? 과장된 인적교류 통계치가 통합에 도움이 되는가? 독일과 한반도를 비교할 때 나오는 자조(自嘲)어린 질문이다. 한반도에 독일통일 사례를 무비판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위험하다. 남북경협이 자칫 실질적 인적교류 없는 대북지원으로 변질돼 세습독재 강화에 악용될 소지가 큰 때문이다.

1994년 정립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합의통일을 목표로 ‘화해협력-남북연합-국가통일’ 3단계 로드맵을 상정했으나, 20년이 넘도록 1단계에도 진입 못하고 있다. 북한 핵ㆍ미사일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천안함 폭침 후 남북관계는 최악에 이르렀다. 사과 한마디 없이 적반하장식 말 폭탄으로 일관하는 북한의 태도때문에 해빙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없었다.

박근혜 정부가 ‘통일대박론’으로 통일담론을 활성화한 것은 업적이다. 그러나 국가이념과 통일원칙에 합당하고, 현실에 부합하는 통일방안을 보완하는 일이 시급하다. 서독이 통일과정에서 자유민주체제의 기본이념을 포기한 일은 없었다. 또 동독주민들은 자유투표를 통해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서독의 자유체제로 흡수통일되는 길을 선택했다.

북한은 무력통일과 별도로 非군사적 통일전략을 추구한다. 북한과 남한 종북세력의 합작에 의한 ‘연방제’ 통일 음모가 그것이다. 남한에 용공(容共)정부를 세워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킨 후, 연방정부를 구성해 북한 주도로 통일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념이 다른 체제 간 연방제는 불가능하다. 이를 잘 아는 북한이 연방제를 명시한 6.15선언을 앞세워 남한을 교란하는 것은 평화적 적화음모다.

진정한 남북통합은 정상적인 자유체제가 중심이 돼 세습독재를 변화시킬 때 가능하다. 북한 눈치를 보느라 통일의 정도(正道)를 외면했다간 우리 내부로부터 자기부정의 위기에 휘말릴 수 있다. 아울러 북한내부에서 진행중인 ‘자본주의 실험’이 어디로 향하는지 주시해야 한다. 북한변화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긴 호흡으로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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