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4일 전쟁기념관에서 있었던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특별담화와 그 뒤 곧바로 있었던 국방·외교·통일 3부 장관 합동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모처럼 국민에 앞서가는 대한민국의 기상을 보았다.

그런데 그 기상 넘치는 대한민국 이명박 정부의 모습은 지금 어디로 갔나?

이 대통령은 지난 5월 3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우리 정부의 중도실용기조는 변함이 없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칫 천안함 사태로 우리의 중도실용기조가 흔들리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우리 정부의 중도실용 기조는 변함이 없다. 국제사회에 원칙과 비전을 제시하면서도 국정운영과정에서 중도실용정책이 확고하게 유지되도록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분단된 국가상황에서 국가정체성을 더욱 확립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청소년,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도 들여다보고 노력을 기울여 달라”

이처럼 이명박 정부가 중도실용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 한반도에서 이념전쟁 및 체제경쟁이 끝났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전 좌파 정부에서 벌여온 대북사업 등을 지속하고 아직까지도 정치·사회·문화·․예술 등 각 분야에 자리하고 있는 좌파적 인사들에게도 관대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남북한은 이념전쟁과 체제경쟁을 이미 끝냈다”는 이명박 정부의 정말 한가롭고 낭만적인 대북인식이 잘못되었다고 가르쳐 준 사건이 바로 천안함 사건이다.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실용(實用)이란 무엇일까?

이대통령은 기업가 출신이기 때문에 경제적 의미의 실용에 주안점을 두고 정치적 현안들에 접목시키려고 하는 듯하다.

‘비핵개방3000’과 그리고 마치 백화점의 그랜드세일(Grand Sale)을 떠오르게 하는 ‘그랜드바겐’(Grand Bargain)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고도의 정치적 집단인 북한의 김정일 정권을 개혁 개방의 자리로 끌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사실을 보아서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명박정부는 이러한 경제적인 의도를 가지고 3차 남북간 정상회담도 기대하고 있었다.

실용주의(實用主義)는 원래 영국의 공리주의(功利主義)가 바다 건너 미국에서 자라난 사상으로 과정보다는 결과(end-results)를 중요시하는, 그러니까 “꿩 잡는 게 매다” 즉 “좋은 것이 좋다”는 식의 사상이다. 만고 불면의 이치인 진리라는 것도 그러한 인식 선상에서 정립 된다. 결과가 좋아야 그게 진리라는 것이다. 종래는 그 결과가 현금가치(cash-value)가 있어야 됨을 강조한다. 결과가 없으면 진리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실용주의는 청교도정신과 함께 미국의 다른 한 쪽을 구성하는 사상으로 자리하였다.

미국은 이러한 철학적인 사조로서의 실용주의를 정치에는 원용하지 않는다. 왜냐면 미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대표적인 국가이기 때문이며 뚜렷한 이념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철두철미한 자유민주주의 이념 위에서 실용주의를 생활의 지혜로 선용하고 있다. 그들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청교도 정신과 이에 반(反)하는 듯한 사조인 실용주의가 두 기둥처럼 미국을 지탱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해방 이후 극심한 사상대립을 겪으면서 끝내 남북이 분단되는 비극을 맞았고 북한을 추종하는 이념은 이 자유대한이 수립된 남쪽 땅에도 여전히 국민들 사이에 공존하고 있었다. 또한 불행하게도 좌파 10년 세월을 겪으면서 그 이념들이 무분별하게 수면 위로 부상하고 드디어는 자유대한의 정체성까지 흔들게 되었다.

다행이 정권이 바뀌었으나 바뀐 정권마저도 그 후폭풍에 시달리는 듯, 자유대한의 올바른 이념을 바로 세우지 못하고 있던 차에 천안함 사건을 맞아 그나마도 정신을 차리는가 했는데 역시 아닌가 보다.

정부는 지난번 이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발표 후에 있었던 국방·외교·통일 3부 장관 합동기자회견을 통해 확성기 방송, 대북 전단 살포, FM라디오 방송 등 대북심리전을 재개하겠다고 밝혔으나, FM방송을 빼 놓고는 모두 보류한 상태다.

남·북의 체제를 잘 알릴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인 전단 살포에 대해 바람 등 기상 여건을 봐가면서 실행하겠다는 것이 국방부 입장이었으나, 지난 5월 30일 국방부 관계자는 "정치적인 상황도 고려해 전단 살포를 당분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힌바 있다.

지난 5월 24일-26일 사이에, SBS와 중앙일보, 동아시아연구원에서, 전국 5개 지역 2288명 대상 전화면접조사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4.1%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지지 후보를 정하는 데 '천안함 사태'를 고려했다고 한다. 그리고 동시에 이 사건이 지방선거에 이용되고 있는 것 같다는 응답도 67.2%로 나타났다고 한다. 천안함 사건이 이명박 정부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는데, 많은 국민들도 이를 잘 알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보수층이 이병박 정부에게 유리하게 집결하는 것 같으니 이제는 진보층을 향하여 다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중도실용을 재천명하면서 말이다.

이명박 정부는 태생적으로 북한에 대하여 강경드라이브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집단이다. 그들 말대로 중도실용이 그들 평상시의 모드이기 때문이다. 색깔 없는 회색빛이 그들의 칼라라는 말이다. 경제적 마인드에 무슨 이념 따위가 필요한가?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면 좌도 우도 없다는 것 아닌가? 그게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이 아닌가?

그런데 북한은 철저하게 이념으로 뭉친 사상적 집단임을 명심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