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영화 서울의 봄 스틸 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편집자 주] 영화는 역사적 사건이나 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실존 인물과 사건을 영상과 대사, 극적인 서사로 재구성하는 순간, 수십 년 전의 역사가 두 시간 남짓한 분량으로 압축돼 관객의 감정과 기억 속에 자리 잡게 된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작업은 어떤 사건을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무엇을 사실로 제시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다룬 수많은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남부군, 태백산맥, 웰컴 투 동막골, 화려한 휴가, 변호인, 택시운전사 등 다수 영화들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이런 류의 시대극이 대중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상당수 작품들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특정 정권의 부도덕성과 잔악상을 확대해석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이들 영화가 관객들의 머리와 가슴을 파고 들면서 어떤 인물은 악의 축으로 전락했고 어떤 인물은 희대의 영웅이 됐다.
최근 불거진 암살자(들) 논란은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좌파 세력의 진지전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동시에, 공고한 이 구조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당시 정권이 기획했을 수 있다는 망상을 다룬 이 영화에 분개하는 2030 세대의 모습을 보면서 드디어 반전의 실마리가 잡혔다는 반응이 나온다.
본지는 3회에 걸쳐 그동안 한국 영화계에서 어떤 편향적 서사가 전개됐으며 그로 인해 만들어진 시각이 어떻게 역사적 인식을 바꿔왔는지를 살펴보고, 이러한 확증편향적 굴레를 끊고 올바른 역사 인식과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함께 모색해 보기로 한다.
-
한때 한국 영화의 이념적 편향성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이름이 CJ였다. 한동안 충무로에서는 CJ가 투자·배급한 영화들의 정치적 색채를 두고 좌파 영화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명량(2014), 국제시장(2014), 인천상륙작전(2016) 등 전혀 다른 결의 작품들을 잇달아 배급하면서 CJ를 편향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많이 사라졌다.
-
- ▲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 컷. ⓒ쇼박스
CJ를 둘러싼 논쟁이 잦아들자 이번엔 새로운 이름이 도마 위에 올랐다. 2014년 설립된 하이브미디어코프는 유독 근현대사를 다룬 영화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 왔다. 김원국 대표 역시 "평소 한국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다"며 "역사를 알면 현재가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내부자들(2015)에서 권력과 언론, 재벌과 검찰의 유착관계를 그린 뒤 남산의 부장들(2020)에서 10·26사태를, 서울의 봄(2023)에서 12·12사태를 다룬 흐름은 우연한 연속으로 보기 어렵다. 한 제작사가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장면들을 연속해서 영화화하고 있는 것도 새롭지만, 이들 작품 모두가 운동권적 역사관 혹은 좌파적 현대사 인식으로 그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내부자들에선 권력기관과 기득권을 의심하는 시선이 가득하고, 남산의 부장들에선 국가 최고권력 주변의 암투가 난무한다. 또 서울의 봄에선 쿠데타를 막으려는 세력이 줄곧 호기롭고 정의롭게 그려진다. 이들 영화가 현대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분명하다. 권력은 의심해야 할 대상이고, 국가기관은 진실을 감추는 쪽에 서며, 그 틈을 파고드는 기자나 내부 고발자, 개인은 진실의 편에 선다.
이런 류의 서사는 영화적으로 강력하다. 실제로 관객의 감정을 움직이기도 쉽다. 책은 독자가 문장을 읽으며 사실관계를 따져볼 충분한 시간을 주지만 영화는 다르다. 배우의 얼굴, 음악, 조명, 카메라의 움직임, 한마디 대사가 한꺼번에 관객의 감정을 파고든다. 특히 실존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인상을 주면 관객은 화면 속 허구와 역사적 사실 사이에 경계선을 긋기가 쉽지 않다. 두 시간 남짓한 영화 한 편이 수십 년 전 사건에 대한 기억을 대신해버리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확인된 사실과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같은 무게로 배치하면 안 된다. 영화에 몰입한 관객에게 남는 것은 가능성이 아니라 새로운 사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
최근 개봉된 암살자(들)이 각계의 지탄을 받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영화는 단순히 과거 정권을 비판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1974년 8월 15일 일어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하나의 미스터리로 만들어 우리가 알고 있던 사건의 진실이 정말 전부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사건의 배후를 명시적으로 확정하지 않는다. 제작진 역시 특정 정치적 목적이 없으며 새로운 역사적 결론을 제시하려는 영화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허진호 감독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 피격을 지시했다는 내용은 영화에 없으며, 중정 윗선은 중앙정보부 내부의 권력 다툼을 뜻한다고 해명했다.
-
- ▲ 영화 암살자(들) 스틸 컷. ⓒ하이브미디어코프
하지만 이 영화에는 "권력을 지키는 게 목숨보다 중요하다면?", "처음부터 타깃이 각하가 아니라 육 여사?", "계획된 비극이었다면?" 같은 대사가 나온다. 이런 대사를 영화 곳곳에 심어 놓고 "중앙정보부 내부의 권력 다툼"이라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암살자(들)은 사건 현장에서 여섯 발의 총성이 울렸지만 발견된 탄환은 네 개뿐이라는 문제를 핵심 미스터리로 삼는다. 행방이 묘연한 두 발의 탄환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현장 감식과 수사 기록에 무언가 감춰진 것이 있다는 의심이 커진다. 이 장치는 영화 전체를 움직이는 중요한 엔진이다. 두 발이 사라졌다는 전제가 성립하면 그렇다면 누가 쐈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뒤따르기 때문이다.
반면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 당시 수사 기록을 근거로 반박한 내용은 전혀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현장에서 여섯 발의 총성이 들린 것은 사실이지만 문세광의 권총에는 다섯 발이 장전돼 있었고, 첫 발은 자신의 허벅지에 오발, 두 번째는 연단, 세 번째는 불발, 네 번째는 육영수 여사, 다섯 번째는 태극기에 맞았다는 것이 당시 수사 기록에 근거한 재단의 설명이다. 나머지 한 발은 경호원이 범인을 향해 발사한 것으로 설명된다. 즉 여섯 발의 총성 자체가 두 발의 정체불명 총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영화와 역사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가 발생한다. 영화는 총성의 숫자와 탄환의 숫자 사이의 간극을 감춰진 진실을 추적하는 미스터리의 출발점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당시 수사기록은 총성과 발사 주체가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충분히 밝히고 있다. 관객에게 필요한 것은 숫자가 맞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질문만이 아니라, 그 숫자가 왜 맞지 않는지를 설명하는 수사 기록까지 함께 보는 것이다. 암살자(들)은 전자를 극적으로 확대하지만 후자는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 -
-
영화 후반부에서 신문사 사회부장 김재환은 이번 사건이 계획된 비극일 수도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한다. 이 사건으로 유신 반대 시위가 가라앉고 한일 경제협력이 재개됐다면 누군가에게는 일석이조가 아니었겠느냐는 식이다. 문제는 이 대사의 전제가 역사적 사실과 어긋난다는 점이다.
-
- ▲ 영화 암살자(들) 스틸 컷. ⓒ하이브미디어코프
사건 이후 한일관계는 회복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됐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수사 비협조에 강하게 반발했고 전국 곳곳에서 반일시위가 일었으며 급기야 양국은 국교 단절 위기까지 갔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일 경제협력이 되살아나 서울지하철 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것도 아니다. 지하철 일본 차관은 이미 수년 전 들어왔고, 피격 당일 오전 11시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됐다. 피격 사건과 지하철 사업은 전혀 무관하며 문세광의 배후에 일본 기업이 있다는 것도 터무니없는 낭설이다.
감독이 특정 인물을 지목하지 않았다고 해서 관객이 특정 인물을 의심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관객이 스스로 그 결론에 도달하도록 설계돼 있다.
처음부터 중앙정보부, 방탄 연단, 수상한 경호, 사라진 탄환 등의 장면이 하나의 퍼즐처럼 결합한다. 이어 사건 발생 → 반대 시위 약화 → 한일관계 개선 → 누군가에게 이익이라는 연결고리를 만들어 놓으면,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누가 이익을 얻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특히 "각하 목숨이 달린 일"이라는 대사와 함께 "권력을 지키는 것이 목숨보다 중요한가"라는 질문이 이어지는 장면은 그런 불순한 의심을 더욱 키운다. 여기에 무전기를 가진 수상한 인물이 등장해 정부 요원임을 암시하고, 중정 윗선이라는 표현까지 반복된다. 이런 장면들이 겹치면 관객 입장에서는 감독이 명시적으로 지목하지 않더라도 사건의 배후를 정권 또는 그 핵심부와 연결해 해석할 수밖에 없다. -
-
또한 암살자(들)은 기자들이 사건의 배후를 취재하고, 중앙정보부의 언론 통제에 맞서 자유언론을 선언하는 과정을 연속적인 이야기인처럼 묘사하나, 당시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한 직접적인 계기는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이 아니었다. 1974년 10월 23일 동아일보가 서울대 농대생들의 시위 기사를 보도하자 중앙정보부가 편집국장과 기자들을 연행했고, 이에 기자들이 편집국 농성에 들어가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
- ▲ 영화 암살자(들) 스틸 컷. ⓒ하이브미디어코프
그런데 영화에서는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과 언론탄압, 유신체제, 자유언론실천선언이 하나의 서사적 선으로 이어진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총격 사건의 배후 → 권력기관 → 언론탄압이라는 구조를 읽게 된다. 역사적으로 서로 다른 사건들을 하나의 영화적 세계관 안에서 연결하는 것은 창작의 자유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 역사에서도 하나의 계획 아래 움직였던 것처럼 받아들여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박정희가 지시했다는 대목이 없다는 해명만으로 역사왜곡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영화는 대사 하나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사건의 순서와 인물의 배치, 카메라가 비추는 표정, 반복되는 의혹, 설명되지 않는 빈틈을 통해 관객의 판단을 유도한다. 나는 결론을 말하지 않았다는 제작자의 해명과 관객이 무엇을 믿게 되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더구나 이 영화는 단순한 창작 판타지가 아니다. 1974년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하고, 실존 인물과 실제 수사 기록, 실제 언론사의 서사를 재료로 사용한다. 그렇다면 창작의 자유가 넓게 보장돼야 한다는 원칙과 별개로, 무엇이 확인된 사실이고 무엇이 영화적 상상인지 구분해 줄 책임 역시 커진다.
창작자는 역사학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삼으려면 최소한 사실과 허구의 경계는 의식해야 한다. 특히 아직 유족이 생존해 있고, 사건을 기억하는 세대가 존재하며, 당시 수사 기록과 외교 문서가 남아 있는 사건이라면 더욱 그렇다.
JFK가 보여준 음모론적 서사가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실제 역사와 뒤섞여 소비되고 있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한 번 대중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영화적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는 관객에게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말하지 않고도 진실처럼 기억하게 만들 수 있다. 그것이 영화라는 매체의 힘이며 동시에 역사를 다루는 영화가 져야 할 무거운 책임이다. -
-
앞선 1·2편에서 우리는 충무로의 역사 소재 영화들이 어떤 시대적 인식과 인물상을 반복해 왔는지를 살펴봤다. 어떤 작품에서는 국가권력이 악마화됐고, 어떤 작품에서는 운동권이나 저항세력이 영웅으로 그려졌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한국 현대사를 바라보는 하나의 렌즈가 됐다.
-
- ▲ 영화 암살자(들) 스틸 컷. ⓒ하이브미디어코프
암살자(들)은 그 렌즈의 또 다른 진화를 보여준다. 기존의 역사적 사건을 정면으로 뒤집기보다 의문점을 심는다. 공식 기록에 빈틈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실제 인물의 증언과 영화적 상상을 결합하고, 서로 다른 사건을 하나의 거대한 권력 서사로 엮는다. 그리고 마지막 판단은 관객에게 맡긴다. 하지만 관객에게 판단을 맡긴다는 것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역사를 의심하는 건 자유다. 과거를 다시 볼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한 만큼 정설에 질문을 던질 권리도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의혹을 사실처럼 기억하게 만드는 것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질문을 던지는 것과 확인되지 않은 결론을 극적 장치로 포장하는 것은 다르다는 이야기다. 특히 그 질문의 대상이 한 국가의 지도자이고, 한 가족이 실제로 겪은 비극이며, 아직 살아 있는 유족의 기억과 맞닿아 있다면 더욱 그렇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는 확인된 기록은 기록대로, 새로운 해석은 해석대로, 영화적 상상은 상상대로 구분하는 것이다. 그 경계가 무너지면 영화는 역사를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역사를 다시 만들어내는 도구가 된다.
창작의 자유는 역사를 비틀 자유까지 포함한다. 하지만 그러한 자유가 역사적 사실을 마음대로 바꿔도 된다는 면허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스크린이 만들어 온 역사의 문법을 다시 써야 할 때가 왔다. 특정 이념의 반대편에 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를 영화로 기억하는 이 시대에 사실을 사실로 남겨두기 위해서다. -
















출처 : 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6/10/05/2026100500083.html
트위터
페이스북





사이트 바로가기

유튜브 바로가기








시편23장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잠언10장18미워함을 감추는 자는 거짓을 감추는 자요 참소하는 자는 미련한 자니라
잠언10장17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