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명분 사회다. 한국인은 명분에 죽고 명분에 산다. 한국인에게 명분은 절대선(絶對善)이다. 한국인에게 명분의 반정립(反定立 Antithese)은 실리(實利) 또는 실질(實質)이 아니다. 한국인에게, 특히 명분파에게는 실리나 실질은 참고사항일 따름이다. (한강의 기적도 그들에게는 거지발싸개 정도의 가치밖에 없다.) 그들에게 명분의 반정립은 명분을 더럽히는 것 즉 오명(汚名)이다. 그들에게 오명은 절대악(絶對惡)이다. 따라서 한국의 명분파에겐 타협이 있을 수 없고 그들의 사전에는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도 없다. 오로지 ‘너 죽고 나 사는’ 사생결단의 투쟁이, 전쟁이 있을 뿐이다.
20세기 전반의 명분은 독립이었고 그 반정립인 오명은 친일이었다. 후반의 그것들은 각각 민주와 독재였다. 독립과 민주의 깃발 부대는, 명분파는 친일과 독재를 절대악으로 확신하는 종교적 신앙 아래 똘똘 뭉쳐 있다. 그들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이에 동조하지 않는 자들은 모조리 인간의 탈을 쓴 악마이므로, 민족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므로, 짐승보다 못한 인간쓰레기이므로 절대, 절대, 절대 용서할 수가 없다. 대를 이어 용서할 수가 없다. 3대가 지나도 용서할 수 없다. (북한은 3대 세습 봉건적 성분사회다. 조선시대도, 일제시대도 상상 못하던 철두철미 연좌제적 계급사회다.)
그럼, 누가 독립이고 민주인가. 누가 친일이고 누가 독재인가. 그것은 그들에게 불문가지(不問可知)다. 김구와 김대중과 김영삼과 노무현과 문재인 편에 서면, 그가 바로 독립이고 민주다. 이승만과 박정희와 전두환과 박근혜 편에 서면, 그가 바로 친일이고 독재다. 왜? 김구와 김대중 등은 현실이나 상황 또는 행동과 무관하게 항상 독립과 민주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이승만과 박정희 등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명분은 말이므로, 붓이므로, 언론이므로, 신문이므로, 방송이므로, 포털이므로, 이 매체를 선점하거나 독과점하지 못하면, 두 귀는 아예 틀어막고 막무가내로 목에 피가 나도록 소프라노 목소리를, 두견새 목소리를, 돼지 목소리를 한껏 높이지 않으면, 아무리 행동이 금강산처럼 빛나고 성취가 백두산처럼 높아도 명분 싸움에서 속절없이 밀린다.
실리파가 행동은 개차반이면서 말만 아름다운 자에게 분통이 터져 주먹이라도 한 대 날렸다 하면, 또는 묵묵히 법에 따라 그런 자를 잡아 가두면, 그날로 끝이다. 두고두고 잘근잘근 뭇입에 오르내린다. 속된 말로 ‘씹힌다’. 대신 맞거나 큰집에서 벼락출세의 별을 단 사람은 독립과 민주의 순교자로 부활한다, 잘잘못을 떠나!
명분은 절대선이므로 제도 위에 있고 법 위에 있다. 촛불이 명령하면, 헌법재판관도 집단최면에 걸려, 동지(同志)는 방면하고(2004) 원수(怨讐)는 단죄한다(2017).
20세기 후반에 새로운 명분이 등장한다. 노태우 정부가 4대강, 8대강의 댐을 일제히 터뜨려 민주 저수지를 민주 물바다로 만들면서 더 이상 민주가 한국인의 가슴을 설레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때 386운동권이 높이 치켜든 명분의 깃발이 민족과 평화다. 그 반정립은 외세와 전쟁이다. 명분파는 명제의 범주를 넓힘으로써 사람을 속이는 데 도가 튼 선수들이라서 이 민족의 범주에 김일성 일당을 최우선으로 포함한다. 실은 그게 목적이니까! 이들에게 외세는 당연히 미국과 일본이다. 슬그머니 외세에서 6.25사변의 두 원흉 중국과 러시아는 빠진다.
반일(反日)과 달리 반미(反美)는 명분으로서 자리 잡기가 꽤 어려웠다. 미문화원 방화와 광우병 촛불을 비교해 보면, 그 사이에 얼마나 세상이 변했는지 알 수 있다. 드디어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친일에 이어 친미(親美)도 아름다운 명분에서 추한 오명으로 전락하여 성스러운 민족의 제단 앞에 고개를 떨궈야만 했다. 무릎을 꿇어야 했다. 이제 전쟁은 김씨공산왕조가 아니라 일본과 미국의 군산(軍産)복합체가 일으키는 것으로 바뀐다.
“한반도에 이제 전쟁은 없습니다.” (김대중, 2000)
김대중의 5억불 조공은 아랫사람들이 일부 책임지는 것으로 더 이상 재론되지 않는다.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몸통이요 머리요 심장이었지만 감히 조사할 엄두도 못 냈다. 국민들의 냄비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집사 박지원만 잠시 가두는 척했다가 이내 특별사면으로 순교자의 별을 달아 준다. 왜? 김정일은 민족이니까! 민족을 도운 적선이니까, 청사에 길이 빛날 적선이니까!
2017년 9월 14일, 동해로 태평양으로 미사일이 쏟아지고 백두산 자락에서 인공지진이 나는 와중에, 6차 핵실험 후 UN에서 초강력 대북 제재안이 통과한 단 이틀 후에, 문재인 ‘한겨레’ 정부는 8백만 달러를 UN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저 불쌍한 북한 주민에게, 그중에서도 가장 불쌍한 겨레에게 대신 전해 주십사, 간곡히 부탁하면서!
UN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에 따르면, UN을 통한 대북 인도적 지원은
2000년 2억 2,415만 달러(일본 42.7%, 한국 24%, 미국 13%).
2001년 3억 7,760만 달러(일본 27.8%, 미국 27.2%, 한국 18.2%).
2002년 3억 6,084만 달러(한국 22.7%, 미국 17.6%, 일본 0%).
2003년 1억 8,289만 달러(미국 17.2%, 한국 9.2%, 일본 0%).
2004년 3억 178만 달러(한국 39.0%, 일본 15.5%, 미국 6.4%).
2002년은 일본인 납북자 문제가 들통 났던 해다.
2005년부터는 UN을 통한 대북 인도지원이 급전직하한다.
2005년 4,617만 달러(한국 0.1%, 미국 0%, 일본 0%).
2006년 4,004만 달러(한국 29.9%, 미국 0%, 일본 0%).
2007년 1억 306만 달러(한국 22.7%, 미 4.0%, 일본 0%).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
2008년 이후 2017년까지 미국과 일본이 공히 0%(소수 첫째자리 기준)다.
2009년 2차 핵실험 다음 해인 2010년은 2,449만 달러로 2009년의 3분지 1로 줄었다.
2016년 4,368만 달러(한.미.일 공히 0%)
2017년 10월 27일 현재 3,390만 달러인데, 여기에 문재인 정부의 소신 지원 8백만 달러가 더해지면, 북한이 요구한 것이 1억 1,350만 달러니까, 29.9% 목표 달성에서 36.9%로 치솟는다. 2016년 26%보다 무려 10.9% 수직 상승한다.
올해 전 세계적으로는 목표의 49%에 이른다. 남수단은 1억 6,397만 달러를 요구했는데, 1억 1,582만 달러가 모금되었다(70.6%). 최고 요구액은 시리아로서 5억 5,759만 달러인데, 2억 5,907만 달러가 모금되었다(46.5%). 그래 봤자, 북한이 최고로 많이 받던 해에 훨씬 못 미친다.
인도적 지원도 90% 깡패에게 뜯기는 앵벌이 지원이냐, 100% 당사자에게 돌아가는 불우이웃 돕기냐에 따라 달라진다. 김씨공산왕조는 얼마나 가증한 집단인지, UN에서 지원한 것도 낮에는 주었다가 밤에는 빼앗는다. 그렇게 대부분의 인도적 지원이 폭군의 측근에게 하사된다.
그것은 다시 2배, 3배, 심지어 10배 값으로 시중에 팔린다. 이걸 문재인 정부가 모를까... 모를까? 모를까! 여전히 김일성 3세는 북핵과 인권유린으로 단연 세계 1위의 악명을 떨치고 있는데도, 과연 모를까... 모를까? 모를까! 정적에게는 그렇게 집요하고 야비하고 잔인한 집단이!
명분파인 한명숙은 1심 무죄, 2심 유죄, 3심 유죄, 내내 불구속으로 ‘민주 만세’ 부르며 성경을 가슴에 꼭꼭 품고 순교자인 양 당당하게 푸근하게 웃으며 재판 받았다. 국회의원의 임기도 거의 다 채웠다. 그 동안의 세비를 한 푼이라도 국가에 반납했는가.
명분파인 곽노현도 3심 유죄 판결 받을 때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어 불구속으로 서울시 교육감의 감투를 쓰고 교육 현장을 들쑤셨다.
명분파인 조희연도 1심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어 서울시 교육감으로서 5만 원 비리 교육 공무원에게도 저승사자로 군림했다. 2심 무죄로 기세등등하다. 그 사이 교실은 침실로 바뀌었다. 욕설과 저주와 불만의 배출구로 바뀌었다.
민족의 명분은 오로지 이념을 공유하는 자들에게만 적용된다. 아무리 지구촌 역사상 가장 악랄한 인권유린으로 악명을 떨쳐도, 아무리 노동자농민을 노예로 삼아 시리아 내전에서 죽은 사람의 10배 이상을 굶겨 죽이면서, 6.25동란 때 중공군과 미군, 국군과 인민군, 민간인이 죽은 사람보다 더 많이 굶겨 죽이면서, 적화통일용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도, ‘남조선’의 정적 말살용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도, 그들은 민족의 범주에 넣어 용서하고 보듬고 지켜 줄 형제자매로 본다. 대신 대한민국의 정적은 명명백백 대한민국의 민주 헌법 아래 존재해도 심증만으로, 정황만으로, 악마요, 마녀요, 민족의 원수로,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어 버린다. 그저 눈이 무서워 말 그대로 당장 때려죽이지 못할 따름이다.
고객을 위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횟집 숙수가 펄떡거리는 물고기에 칼침을 놓듯이, 민주와 민족과 평화의 깃발 부대를 위해, 만인이 지켜보는 백주에도 정의의 사도처럼 당당하게, 안중근 의사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정적의 우두머리와 미국 대통령의 한국 대리자를 번개처럼 날래게 몸을 날려 냅다 칼로 그어 버리는 자들도 있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