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에서 계속
 
그 후 나와 그는 자주 만났다. 그 만남에는 서로의 불우한 처지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있었다. 그러나 차츰 나는 그가 순수한 연민의 감정을 벗어나, 이성으로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처음 느꼈을 때에는 감사하게 생각했다. 세상에 나 같은 여자를 진정으로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는 사실에 막연한 것이지만 가슴 설레 이는 희망 같은 것을 느껴보기도 했다.
 
그러나 차츰 나의 생각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사랑이라는 영역은 내가 감히 바라 볼수 없는 구름위의 햇볕 같은 것이라는 위축감을 느끼군 했다. 내가 뭇 사내들에게 더럽혀진 여자라는 생각과, 사장에게 때 없이 농락당하는 몸이라는 사실은 나를 끝없이 괴롭혔다.
 
나의 주위에서 맴돌기 시작하는 사랑을 느끼며, 그 사랑이 감미로운 것이라는 것을 느낄수록 나에게는 최소한의 인격이라도 가진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겨나고 정상적인 인간으로 살고 싶은 욕망도 키 돋음을 하군 했다.
 
나는 2004년 가을, 인부들의 식모로 일하던 공사판을 떠났다. 때 없이 사장에게 농락당하는 처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고 싶었다. 나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춘범에게서도 멀리 떠나고 싶었다.
 
갈수록 더해가는 그의 관심은 고마운 것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자신감이 나에게는 없었다. 나는 공사판을 떠나 서탑가의 춘방이모를 다시 찾아갔다. 춘방이모는 1년만에 만난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때 너를 그렇게 보내고 엄마(선화할머니)한데서 전화로 싫은 소리를 많이 들었어" 그는 경찰의 단속이 시끄러워 나를 냉정하게 떠밀어 보낸 1년 전의 일을 후회하고 있었다. 나는 1년 전처럼 식당일을 시작했다.
 
그때는 1년 전처럼 중국공안들이 북한여자들을 잡으러 돌아치지도 않았다. 심양시의 공안들은 특별한 범죄 사건이 터지거나, 음력설이나 국경절 같은 중요한 계기 때마다 집중단속을 하군 했다.
 
나는 심양시 서탑가의 춘방이모 식당에서 1년3개월 동안 일했다. 내가 중국에서 비교적 평온하게 살아본 기간은 그때였다. 평온했다는 말은 치욕을 당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저 열심히 일하며 살았다. 중국요리도 배우고 중국말도 배우며 하루도 빠짐없이 식당일을 했다. 춘방이모는 월말이면 꼭꼭 월급을 주군 했다. 그렇게 전에 없던 활기를 느끼며 정상적인 삶을 찾아가던 어느 날, 내가 일하는 식당에 춘범이 나타났다.
 
중국인 친구들과 식당에 왔던 그는 나를 보고 퍼그나 놀란 듯 했다. 그는 반가움과 야속함이 엇갈리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네가 남모르게 떠난 후에 오랫동안 너를 찾아다녔어" 그 후부터 그는 매일 식당에 찾아왔다.
 
그는 나에게 자기와 결혼해 달라고 졸라 대군 했다. 여기에서 졸라댔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의 결혼 요구가 나에게는 얼토당치않은 것이였다는 얘기이다. 나는 그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런데도 그는 무려 1년이 넘도록 매일같이 나를 찾아왔다. 그의 구애는 끈질겼다. 그런 그를 납득시키려고 춘방이모도 몇번씩이나 만나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가 인신매매 범들에게 잡혀 팔려갔던 여자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고 앞으로 중국 땅에서 살아갈 신분조차 보장되지 않은 북한여자라는 사실을 이야기해주군 했다.
 
하지만 춘범은 막무가내였다. 그는 거꾸로 춘방이모를 설득하군 했다. 과거가 없는 여자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는 얘기와, 자기의 매형이 연길시의 공안국 경찰간부로 근무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나에게 중국인의 호구(신분확인 증서)도 곧 만들어줄 것이라고 장담했다.
 
탈북자 정경옥. 정리 한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