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으로 북한을 방문했다가 간첩 누명으로 억류된 지 17개월 만에 식물인간 상태로 귀국해, 6일 만에 숨진 故오토 웜비어 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그의 죽음에 대해 부모로서의 비통한 심정과 함께 생명의 존귀성을 저버린 북한집단의 무지막지한 고문 실상에 대통령의 마음을 담아 표현했다. “북한은 매우 잔인한 정권”(2017.6.19, 사망 애도 성명) 이라고.
미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었다. 2017년 9월1일 북한을 여행 금지지역으로 묶었다. 11월20에는 2008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해제한 이후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재 지정했다. 다시한번 북한 김정은 집단의 잔악성과 무자비한 행태에 국제사회가 몸서리쳤다.
여행 차 집을 나간 아들을 이역만리 타국, 그것도 희대의 독재 테러지원국에다 인권탄압으로 주민을 극한의 공포로 내몰며 오직 백두혈통 金씨 일가와 소수 권력 엘리트들만의 전유물로 전락해버린 ‘동토의 왕국’(북한)에서 고문(拷問) 후유증으로 잃어야 했으니 부모의 참담한 심정이 어찌할 것인가?
지난 1월30일 트럼프 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가진 연두교서 발표장에서 의외의 인물을 소개했다. 故 웜비어씨 부모가 자리를 함께 했다. 지난해 6월19일 이후 다시 선 카메라 앞이었다. 아들 사망 이후 7개월여로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이었고, 이 자리에는 목발을 짚고 한쪽 다리에 의지한 탈북자 북한 인권단체 나우(NAUH) 지성호 대표도 함께였다.
그 故 웜비어씨 부친 프레스 웜비어씨가 한국을 방문한다. 8일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석차 방한하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 등 미 대표단 일행과 함께다.
웜비어씨 부친의 한국 방문은 1월30일 트럼프 대통령의 연두 교서 발표장을 통해서나 이후 연계된 탈북자들의 백악관 방문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될 사항이기도 했다. 이 날 트럼프는 미국을 위협하는 김정은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함께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를 연계했다.
“북한 핵 위협의 본성을 이해하려면 타락한 북한 정권을 살펴봐야 한다. 어떤 정권도 북한의 잔인한 독재보다 더 완전하고 잔인하게 자국 시민을 탄압하지 않았다”고 北 인권을 부각했다. 더불어 “북한의 무모한 핵무기 추구가 우리의 본토를 곧 위협할 수 있다”며 “우리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고의 압박작전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북 핵에 대한 압박과 제재 일면 인권을 곧추 세운 것이다.
2006년 10월9일 1차 핵실험 이래 2017년 9월3일까지 여섯 차례에 걸친 핵실험과 2017년만 해도 열일곱 차례에 걸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함한 각종 미사일 도발을 자행한 북한이다. 미국은 물론 중국까지 적극 동참하고 있는 유엔의 최 고강도 압박과 제재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정권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서 단 한치의 물러섬이 없다. 미국과 극 대 극, 강 대 강 대결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연두교서를 통해 또 다른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어느 국가라도 예민하게 여기는 북한 인권문제다. 이는 미국 중심의 국제사회가 줄기차게 시행하고 있는 강도 높은 제재와 압박을 더욱 거세게 밀어붙이는 한편, 자국민인 오토 웜비어씨가 ‘간첩죄목’으로 억류돼 무자비한 고문으로 사망하고, 최소한도의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 북한을 탈출하는 탈북자들의 입을 통해 ‘인간생지옥’ 북한실상을 그대로 전함으로써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지 않고는 체제 존속 자체를 유지케 할 수 없다는 양면 작전의 병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시작과 함께 미국은 북한의 인권문제를 전면으로 띄울 것이란 예감도 없지 않다. 미국의 북한 인권문제 언급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정부당국은 물론 수잔 솔티 여사(디펜스포럼 재단 대표)를 중심으로 한 북한자유연합은 오래전부터 한국과 미국에서 북한자유주간을 개최하며 북한의 열악한 인권실태를 고발하고 우리 정부와 국회가 앞장서 줄 것을 주문해 왔다. 탈북자단체나 북한인권단체도 힘을 보탰다.
그런데도 정작 우리사회는 이 문제에 외면했다. 정치권은 더더욱 한심했다. 북한 눈치 보기에 급급한 정당이 대놓고 반대했다. 가장 앞장서서 요구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 대한민국이 그랬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2017년 12월20일 유엔총회는 북한의 인권침해를 규탄하고 즉각적인 개선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표결 없이 전원합의로 통과시켰다.
또 유엔 결의안은 북한의 인권유린 사례로 고문, 강간, 공개처형, 연좌제, 강제노동 등을 적시했다. 유엔 안보리에 ‘가장 책임 있는 자’에 대한 제재와 국제형사재판소 회부를 촉구하는 내용을 4년 연속으로 담았다. 사실상 북한의 최고 권력자로 공포통치의 대명사 김정은을 칭한 것이다.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 채택은 2005년 이후 13년째 계속이다.
세계 많은 나라가 북한주민의 인권촉구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는 여전히 뒷북이다. 북을 알리는 데는 KBS의 ‘남북의 창’이 인권 실상과는 거리가 있음에도 그나마 공영방송의 체면치레 정도하고 있다고 할까!
우리 국회는 2016년 2월 국회 발의 11년 만에 북한인권법을 제정, 통과시켰다. 하지만 그걸로 ‘땡’이다. 핵심인 북한인권재단 출범이 2년 가까이 제 자리 걸음이기 때문이다. 재단 이사진 구성을 둘러싼 여야 가 서로 상임이사 자리를 두고 다투는 탓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북한인권팀에 팀장만 있고 직원은 1명도 없다고 한다.
6일 전희경 한국당 의원은 대정부질문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국가인권위원회의 북한인권 담당자 수를 1명으로 줄이고 예산도 깎은 정부”라고 했다. 실제 지난해 7월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팀에는 팀장 1명만 남고, 올해 예산은 2016년 대비 반 토막 난 1억5000여만 원으로 줄었다.
이날 총리는 한 야당 의원의 “왜 이렇게 북한 인권에는 무관심하신 것이냐”는 질문에 “저희도 (북한 인권에) 충분히 관심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2월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이 코앞이다. 6일 북한 예술단이 만경봉 92호(5.24조치 예외적용)로 한반도기의 환영 속에 입항한데 이어 7일 태권도 선수단과 응원단이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에 도착, 방남이 완료됐다. 축제분위기의 고조다. 펜스 미 부통령과 故웜비어 부친도 8일 입국한다. 소위 백두혈통 일가라는 김정은 여동생 김여정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상임회의 위원장도 북측 대표단장으로 방남한다.
그러나 팬스 미 부통령의 언급처럼 북에 주는 메시지는 “핵무기 프로그램과 탄도미사일 야욕의 완전 포기”일 뿐이라는 말을 모두가 섣불리 들어선 안 될 것 같다.
주인은 상을 차리고 축제는 모두가 즐길 때 즐겨야 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주인이 마냥 절절대며 저급자세로 축제를 상납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 아니겠는가? 그 날(1.30) 트럼프 대통령의 소개를 받아 목발을 번쩍 치켜들고 일어선 탈북자 지성호씨를 향해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를 보내는 미 국민을 보며 지성호씨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평창에서의 평화올림픽과 안전올림픽, 성공올림픽은 세계에 대한국인으로서의 우리의 위상을 떨치는 또 하나의 위대한 여정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잊지 않아야 할 게 있다. 북한 대표단장으로 누가 오느냐가? 삼지연관현악단이, 미녀 응원단이,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이, 5.24조치의 예외적 적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점을. 북 핵과 미사일이 향후 어떻게 진전될 것인가? 세계인이 지대한 관심을 갖는 탈북자에게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오늘도 비인간적 삶을 영위해 가고 있는 12만에서 20만 명 북한주민의 인권에 왜 우리는 침묵해야 하는지?(konas)
이현오 / 코나스 편집장. 수필가(holeekv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