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에서 계속]

나는 처음 호실 여자들 속에서 쉬쉬하며 돌아가는 옥희의 뒷소리를 믿지 않았다. 내가 옥희의 남녀관에 대해서 나름대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옥희는 집안에서 외동딸이었다. 제철소 노동자로 일하는 아버지는 외동딸인 옥희를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키웠다고 했다.

옥희는 언제인가 나에게 자기는 섣부른 연애나 남녀관계로 아버지를 실망시키는 일 같은 것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었다. 얼굴이 예쁘고 착실한 옥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남자들이 많았지만, 옥희는 접근해오는 모든 남자들에게 어떤 빌미도 주지 않았다.

나는 옥희를 믿었기에 옥희의 뒷소리를 수군거리는 애들에게 “잘 알지도 못하는 일을 가지고 함부로 입을 놀리다가는 대가를 치른다.”고 오금을 박아 이야기했다. 각이한 지역에서 각이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돌격대여서 그들 속에서는 사소한 불만이나 불신도 쉽게 악의에 찬 질시와 갈등으로 커졌고, 그와 반대로 외지에서 함께 고생한다는 처지의 공통성을 의식하며 쉽게 친해지기도 했다.

나와 옥희는 쉽게 친해진 사이였다. 처음 만났을 때 두세 번 속심에 있는 진실 된 이야기를 나눈 것이 전부였지만 우리는 후에 서로 배려해주고 이해해주는 관계를 마지막까지 유지했다. 나이가 같은 동갑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내가 옥희와 친하게 지낸 것은 그가 마음이 곧고 일상생활에서도 적극적인 측면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호실에서 어린 처녀애들이 앓기라도 하면 제 손으로 주방에 가서 따뜻한 죽을 끓여오는 마음고운 처녀, 누구든지 친구나 애인으로 두고 싶을만치 호감이 가는 처녀였다.

나와 옥희는 호실 한 켠에 잠자리도 나란히 잡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밤중에 밖으로 나갔던 옥희가 거의 두 시간이 지난 뒤 조용히 들어와 다시 잠자리에 눕는 것을 잠결에 얼핏 보았다. 그때부터 나는 옥희가 이따금씩 깊은 밤중에 대대정치지도원의 침실인 정치부에서 나온다는 여자애들이 뒷소리가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반신반의하며 며칠 동안 옥희의 거동을 살피던 나는 어느 날 옥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옥희야. 너도 당원이 되려고 그러니?”

나의 물음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던지 옥희는 얼굴색이 심각해지며 아무대꾸도 하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착잡한 머릿속을 정리한 듯 나에게 되물었다.

“왜? 난 당원이 되면 안 되니?”

그 후 며칠 동안 나와 옥희의 관계는 서먹서먹했다. 옥희는 돌격대 여자애들 속에서 돌아가는 뒷소문을 알고 있는 듯 며칠 동안 괴롭고 침울한 나날을 보냈다. 나도 더 이상 옥희에게 그가 밤중에 정치부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들의 뒷소문에 대해 이야기하지도, 묻지도 않았다. 속으로 옥희가 허파에 바람이 들었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돌격대에서 제일 많이 장려하는 것이 당원이 되는 것이었다. 실제로 일 잘하는 사람들을 선발해서 입당을 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당원놀음에는 심각한 모순이 있었다. 사람들이 당원이 되려면 꼭 필요한 것이 정치부의 당 간부에게 잘 보이는 것이었다. 아무리 일 잘하고 성실한 사람도 정치부 간부에게 밉게 보이면 당원이 되기 어려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치부 간부에게 잘 보이려고 애썼다. 아첨하고 뇌물을 바치고 여자들은 성을 바쳤다. 그런 것들은 그 사회, 돌격대의 일상이었지만 그런 것들을 모른척하고 살아야 하는 곳이 그 사회였다. 그 사회에서 노동당의 영도체제와 정권강화는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 수단이었다.

노동당의 영도체제와 정권강화라는 노예화에 순응하게 되면, 권위에 대한 거역은 불손으로 인식되며 부정부패에 대한 판단 같은 것도 흐려지게 된다. 그렇게 살아야 무난하게 사는 것이 그 사회였다.

나는 옥희가 정치부 간부에게 성을 바쳐가면서까지 당원이 되려 한다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때 없이 여자들의 침실에 들어와 음침한 눈길을 흘리는 정치부 간부에 대한 혐오도 생겨나고 예쁘고 청순한 옥희가 당원이 되고 싶다는 이유로 나이 50살이 가까워 오는 정치부 간부에게 성을 바치는 것이 추잡하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속으로만 한탄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정치부에서는 갑자기 여성들로 별도의 소대를 꾸리고 옥희를 여성소대장으로 임명했다. 이를테면 옥희를 당원 만들어주기 위한 정치부의 계책이었다. 옥희는 기꺼이 힘겨운 소대장 직무를 수행해 나갔다. 

[계속]

탈북자 한 성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