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 잠시 나의 시선이 멈추었다. 사람이의 손길로 다듬어 지지 않은 길거리 작은 화단이었다. 진한 흙 갈색으로 빛바랜 나뭇가지들과 바람에 날라 온 비닐봉투 등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버린 쓰레기 등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런 중에 내 눈에 간간히 보이는 파란 새싹들이 있었다. 어른 새끼 손가락만한 크기의 파란 새싹들이 피어있는 것이다. “아니 쓰레기장처럼 되어 버린 환경 속에서도 저렇게 파란 새싹들이 피어나네!” 하며 속으로 말하면서 감탄하였다. 누가 정성껏 돌보지도 않은 곳에서 겨우 내내 얼어 붙어있었던 땅속에서 사람들이 던져 버린 쓰레기더미 속에서 파란 새싹들이 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신기했다. 불가능의 환경 속에서 피어나는 파란 새싹들이 이곳저곳에서 살아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 새싹들은 햇볕과 바람과 비가 가져 다 주는 양분으로 더욱 더 자라서 더 많은 잎을 내고 꽃도 피우고 할 것이다. 꽃을 피울 때 즈음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봄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행복을 선사 할 것이다. 불가능의 환경 속에서 강하게 피어난 꽃들은 비록 이름 없는 꽃들이지만 삶에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봄의 향취를 맡을 수 있는 잠시의 여유로움을 선물로 줄 것이다. 비록 화려한 자태를 가진 꽃들은 아니지만, 겨우내 움츠려 있던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한 행복을 줄 것이다.
신비롭기만 하다. 경탄스럽기만 하다.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다. 김정일 수령독재의 환경은 사람으로 하여금 도무지 살아 갈 수 없는 불모지의 땅일 것이다. 황폐된 사막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도 사람들은 살고 있었다. 비록 고통과 아픔과 절망과 죽음을 겪어야 하지만, 그 곳에도 사람은 살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들의 삶에 취하여 돌아보지 않아도 불모지의 땅에서 황폐된 사막과도 같은 곳에서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강한 믿음으로 오늘도 끊임없이 다가오는 모든 흉악의 결박과 압제와 멍에의 줄에 묶인 채 견뎌내고 있었다. 흉악의 결박에서 풀어주는 자유의 햇볕은 언제나 찾아올까 기다리면서...
멍에의 줄을 끊어주고 꺽어 줄 바람은 언제나 찾아올까 기다리면서... 압제당하는 고통과 아픔을 깨끗하게 씻어 줄 비는 언제 쏟아질까 기다리면서...오늘도 북한주민들은 하늘을 바라며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훗날 어떤 모습으로 북한주민들과 만나게 될까? 이제 곧 북한주민들이 잎을 내고 꽃을 피워 모진세월의 아픔을 양분 삼아 피어낼 그날의 영광에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그날에 우리는 북한주민들에게 어떤 자의 모습으로 북한주민들 앞에 서게 될까? 우리는 심각하게 자문해 보자. 지금 이 시간에도 삶과 죽음 앞에 힘겹게 서 있는 북한주민들을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김정일 정권의 흉악에 결박되어지고 멍에의 줄에 묶여 있으며 끊임없이 압제 당하여 자유를 잃어버린 북한주민들을 돌아보아 4500만이 깨어나도록 김정일의 악마성을 밝혀 주고 탄압 받는 북한주민들의 고통을 돌아보자고 소리를 지를 것인지 우리는 이제 분명하게 선을 긋고 선택해야 한다. 이후에 북한주민들이 사랑으로 용납해 준다고 해도 우리 자신에게는 하나님께는 씻을 수 없는 수치와 불명예가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해 본다. 북한주민들에게 자유와 해방이 찾아오는 그날에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눠주는 사랑의 메신저로 복음의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우리가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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