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에게 희망을---.

트리나플러스 작의 번역판을 한 20여년전에 읽었었다. 줄무늬애벌레와 노랑애벌레가 항상 똑같은 일상의 삶 외의 다른 무엇이 있을 것 같아 그 삶을 찾아 길을 떠난다. 줄무늬 애벌레는 애벌레들이 기둥을 이루어 구름 위의 숨겨진 신기루를 찾는 것을 보고 그것을 찾는 길을 선택했다. 다른 애벌레들을 밀치고 밟고 올라서야지만 자기도 정상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줄무늬애벌레도 그렇게 정상을 올라가 보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때가 차면 누군가가 그것을 흔들어버리듯 거대한 애벌레기둥은 우수수 무너진다. 다시 애벌레들의 정상쟁탈전은 시작된다.

노랑애벌레는 나비를 만나면서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꼬치들을 보게 되고, 자기가 거쳐 가야 할 길임을 배우게 된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꼬치는 잠시 쉬었다가 가는 여인숙과 같다는 말을 듣고 용기를 내어 자기도 몸에서 실을 뽑아 꼬치를 만들기 시작한다. 자기 속에 그런 능력이 잠재해 있었음에 놀라면서---.

때가 되어 노랑애벌레는 노랑나비가 되어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날아갈 수 있게 되었다. 자기가 사랑했던 줄무늬애벌레가 보고 싶어 애벌레들 기둥에서 줄무늬 애벌레를 찾는다. 줄무늬애벌레도 다른 애벌레들과 싸우며 허무한 것을 찾는 것을 그만두고자 생각하자 노랑애벌레가 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자기 주변을 맴도는 노랑나비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느낌---, 그 노랑나비의 눈빛에서 한없는 사랑을 담은 노랑애벌레의 눈빛임을 발견하고 그를 따라가 줄무늬애벌레도 꼬치를 만들어 줄무늬나비가 되어 꽃들에게 희망을 안겨준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요즘 대한민국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서 문득 그 애벌레들의 기둥을 보는 것 같다. 김정일을 謁見하고자 북으로 북으로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북행에 대한 미련이 날로 그 도수가 심해지는 것 같다. 平和統一이란 허울 좋은 이름으로 다가오는 김정일과 그 주구들의 속셈이 구름에 쌓여서 무엇인지 보이지 않나보다. 때문에 더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김정일 알현에 애간장 타는 날들을 보내며 思母曲을 부르나 보다.

김정일을 알현한 자들이 자유대한민국에서 누리는 特權이 그다지도 절대적인지 북행에 대한 환상에 몸부림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6.15선언 기념을 운운하며 방북한 사람들을 통해서 그 구름에 가려진 김정일의 蜃氣樓 꼭대기에는 인간이하의 푸대접이 있다는 것을 단면으로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환상은 여전히 김정일의 품이 유토피아로 보이게 하나보다.

신기루를 향해 올라갔던 줄무늬애벌레도 다른 애벌레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애벌레들의 아우성을 들으며 頂上을 향해 올라갔다. 어느 순간이 되면 누군가가 흔들기라도 한 듯 거대한 애벌레기둥은 우수수 무너진다. 阿修羅場이 되지만 다시 정상을 향해서 밟고 밟히며 올라가기 시작한다. 남을 밀어내고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정상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줄무늬애벌레도 많은 경쟁을 뚫고 마침내 정상에 올라갔다.

구름에 가려진 그 꼭대기를 본 줄무늬애벌레는 獨白한다.

“제기랄,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잖아.”

그 소리를 들은 주변의 다른 애벌레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했다.

“바보야, 그들이 오고 싶어 하는 곳에 우리가 와 있으니 조용히 해.” 

소름끼치는 속임수다.

김정일 알현은 모든 대가를 치르고도 올라갈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 그 신기루의 꼭대기에서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다른 애벌레들과 아둥바둥 싸우며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해도 얻어지는 것은 虛無다. 애벌레는 나비가 되어야만 본연의 임무를 다 한 것이며, 마땅히 그 존재의 가치와 진가를 발휘하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노랑애벌레의 말처럼 입에서 실을 뽑아 꼬치를 만들고, 잠시 쉬어가는 여인숙처럼 그 꼬치 안에서 忍苦의 세월을 기다리며, 마침내 나비가 되어 꼬치를 탈출한 애벌레는 자기가 가고자 하는 곳은 어디든 날아가는 힘을 얻는다. 꽃들에게 희망을 주면서---. 

북행을 원하는 사람들의 기둥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유로던 북행을 할 口實을 만들어 나름의 기둥들을 만들며 서로가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자 버둥댄다. 정치인이면 정치인, 연예인이면 연예인, 기업인이면 기업인, 어느 분야든 예외인 분야가 없는 듯 보인다. 모두가 기둥들을 세우고 저마다 최고가 되는 길이 마치 김정일을 알현하는 길인 것처럼 虛無한 기둥들을 만들어 아우성이다. 김정일의 눈에 가장 가까이 크로즈업 되고자---. 근거 없이 기둥들을 만들랴마는 그 결과는 모래 위에 세운 것이므로 큰 파도가 치는 날은 물거품처럼 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기들의 수고와 노력으로 얻어진 부귀와 명예를 얻지 않는다면 그 정상정복은 허무하게 무너지고 마는 신기루에 불과할 것이다. 김정일을 등에 업고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사람들은 김정일이 무너지는 날 무엇을 등에 업고 일어설 것인가? 김정일 보다 더 악한 자가 다음 세대의 북한을 이어간다면 그 때는 어찌할 것인가? 지조 없는 여인네처럼 그 때는 또 그에게 충성맹세를 할 것인가? 김정일이 주는 부와 명예를 누리고 살면서 자유대한민국 하늘 아래서 어찌 부끄러워 스스로 머리 들고 살고들 있는지?

애벌레의 임무는 나비가 되어야 한다. 수많은 꽃들이 나비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를 진심으로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김정일이 통일 왕이 되면 자유를 줄 것처럼 막연한 가능성 없는 신기루를 쫒듯 김정일을 쫒아갈 것이 아니다. 김정일에게 압제당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찾아주고자 김정일의 만행을 외치며, 열심히 사랑의 실을 뽑아낼 때 비로소 나방이 되어 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북한주민들은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는 벗어날 수 없는 김정일 체제 아래서 굶어 죽어가고 있다. 열심히 사랑의 실을 뽑아 김정일이 더 이상 악을 행할 수 없도록 사랑의 실로 그의 만행을 묶어야 한다. 그것이 어떤 바람이 불고 창수가 엄몰해 온다 해도 무너지지 않는 반석 같은 자기의 명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