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운명 이혜영

내가 혜영을 만난 것은 두만강을 건너 은신할 곳을 찾아 들어간 어느 조선족 집에서였다.

그녀는 등을 돌리고 앉아 아궁이에 불을 넣고 있었다. 엿을 고는 중이었다. 그 여자는 조선에 대한 것은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 여자를 중국 조선족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외모는 수수했다. 단신이었다.

나는 길을 나서려고 해도 아무런 계획이 없었기에 차일피일하면서 그 집에서 시간을 끌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부엌일에만 매달려 지내던 혜영은 이미 내가 도착하는 순간부터 도강한 조선인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동안 혜영은 말없이 나를 지켜본 모양이었다. 말을 나누게 된 것은 한 달이나 지나서였다.

나는 내가 조선에서 겪은 현실과 내 나름의 정세분석을 해주었다. 여기는 중국땅. 조선 안에서 감히 꺼낼 수 없었던 진실을 나는 처음으로 혜영을 상대로 풀어낼 수 있었다. 혜영이는 귀담아 들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처지도 점차 털어놓았다.

원산 교원대학에 재학중이던 혜영은 1997년 3월에 탈출했다. 탈출 이후 내내 국경지역에 자리한 그 조선족 집에서 일을 거들며 지내고 있었다. 그 집은 엿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다. 조선을 탈출한 나 역시 그 집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것은 우연이면서 우리의 짧은 생애를 결정짓는 운명이기도 했다.

혜영은 점차 나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좋아했다. 우리는 고립무원 속에 오누이나 연인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내가 떠나기로 결정한 날 혜영도 따라 나섰다. 그 집에 머물면 신변이나 숙식은 보장될 수 있었다. 나와 함께 길을 나선다면 그 어떤 보장도 없었다. 오히려 자기 발로 위험에 다가서는 기약 없는 행로였다. 그러나 혜영은 아무 주저없이 나를 따라 나섰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나에게 맡기려는 것이었다. 우리는 하나의 길을 글자 그대로 나란히 걷게 된 것이었다.

선택할 것이 많은 세계에서 서로 골라잡은 것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이 모두 사라진 뒤 텅 빈 자리에서 외톨이가 된 사람이 또 다른 외톨이를 만나 하나가 된 것이었다. 우리는 밝은 세상의 반대편에서 만나 밝음과 평온함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 함께 정처없이 길을 나선 것이었다. 그러나 불안의 그림자는 늘 따라왔다. 우리에게 목적지가 있을 리 없었다. 우리는 함께하는 것으로 서로를 목적지로 삼고 있는 셈이었다.

나는 몸을 숨긴 채 수소문 끝에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연길시의 한 공장에 보일러공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조그마한 아파트 단칸방에 우리는 보금자리를 꾸몄다. 혜영과 나는 과거의 일을 불러들여 스스로 마음의 평온을 해칠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우리가 마음 바닥에 죽음의 세월에도 살아남은 고통과 슬픔을 안고 있기에 오히려 행복은 더욱 소중했다. 우리 둘은 우리의 모든 것이었다.

혜영은 나에게 곧잘 그녀가 좋아하는 시구를 들려주었다. 나는 그녀의 낮은 목소리를 따라 시를 되뇔 수 있다.

나라는 망하고 산하만 남아

무너진 성에는 봄풀이 우거졌네

시절이 어지러우니 꽃도 눈물짓고

이별이 한스러우니 새소리도 슬프오.

혜영은 많은 시를 외웠고 노래와 문학을 좋아했다. 혜영은 잊을 만하면 “시절이 어지러우니 꽃도 눈물 짓고, 이별이 한스러우니 새소리도 슬프오”라며 버릇처럼 시를 외었다. 두보의 시라고 했다. 1000여 년 전 당나라의 시인이 노래한 것이 지금 우리의 심정에 이렇게도 간절하게 와닿는 것인지. 지금에서야 나는 그 시 속에 우리의 운명도 담겨 있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1998년 3월10일 퇴근 길이었다. 밤 11시쯤 되었을까. 어떤 할머니가 나에게 길을 물었다. 쪽지에 주소를 적어들고 있었다. 밤늦은 시간에 할머니 혼자서 길을 찾기가 어려워 보였다. 나는 택시비 5위안(한국돈 약 750원)을 꺼내 할머니 손에 쥐어드렸다. 그리고 지나가는 택시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연변팀의 축구 경기가 있었던지 빈 택시가 거의 없어서 빈 택시를 기다리게 됐다. 이때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여보게, 젊은이. 매일 밤 9시에 맹물 세 사발씩 동쪽으로 던지게. 그러면 1주일 후에 자네한테 다가오는 액운이 막아지네. 내 말 명심하게.”

연변 말씨가 아니었다. 내가 접해보지 못한 먼 지방의 말씨였다. 마침 택시를 잡았고 할머니는 떠났다. 나는 별 싱거운 소리 다하는 사람이라며, 할머니의 신신당부를 흘려들었다. 미신 같은 말에 귀를 기울일 내가 아니었다. 나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할머니의 당부를 까마득히 잊었다. 그러나 미신이건 아니건 정확하게 1주일 후에 들이닥칠 사태를 미리 알 수 있었다면 나는 무슨 짓이든 했을 것이다. 그 일을 당하니 귀신에 홀린 것 같았다. 그것이 진정 나의 운명이었더란 말인가.

액운은 그날로부터 꼭 1주일 뒤에 찾아왔다. 운명의 3월16일. 퇴근하여 아파트 근처에 이르렀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동리사람들이 경찰차를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불안한 느낌을 안고 급히 아파트로 뛰어 올라갔다. 현관에 도착하자 마침 혜영이 중국경찰에 끌려 나오고 있었다. 혜영은 붉은 빛이 나는 자주색 동복을 입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운명의 거대한 손아귀에 잡힌 것처럼 뿌리칠 수 없었다. 아니 언젠가는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각오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파트 골목에서 중국경찰의 불심검문에 꼼짝없이 걸려든 것이었다. 그동안 정이 들었던 이웃주민들은 발을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무슨 소용이 있으랴. 혜영은 경찰차에 태워졌다. 나 역시 나설 수 없는 밀입국자 아닌가. 그저 혜영을 데려가지 말기를 빌며 다른 사람의 등 너머에서 동동거리고 있었다.

나에게 남은 길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막 떠나는 경찰차에 몸을 날렸다. 혜영과 이별하는 대신 함께 체포되는 것을 택한 것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같이 걸어야 할 길이었다.

이제 자유의 날은 끝났다. 남의 나라에서, 밀입국자에게 주어진 자유가 있을 리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자유로웠다. 그 8개월간의 축복을 나는 누구에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이제 자유를 향해가던 우리의 날개는 꺾였다. 지난 날의 모든 것에 감사하면서 점점 다가오는 절망 속에 모든 것을 접어야 한다.

중국경찰에 잡히던 그 날, 낯익은 중국인 이웃들은 잡혀가는 혜영을 보고 눈물지었다. 작은 몸집에 착하고 귀염성을 가진 22세의 한 조선여성에게 주어졌던 짧은 햇빛은 이제 다시 길고 긴 어둠 속으로 잠길 것이었다. 그렇다. 혜영이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키스로 대신한 것은 지난 날에 대한 감사와 함께 이별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해석은 혜영과 둘 사이에서만 한정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수정주의 황색바람’이며, ‘악질 반사회주의 분자’라는 죄명을 받게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누가 조국을 어머니라고 했던가

수송차가 속력을 떨어뜨리더니 천천히 멈추었다. 회령이었다. 3월23일이면 중국공안부(경찰)가 조사한 서류와 함께 우리는 조선측에 인도되는 것이었다.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정적을 벗겨내듯 갑자기 수송차의 포장이 벗겨졌다. 햇빛이 환하게 비쳐들면서 야무진 소리가 울렸다.

“야. 내려.”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보위원들의 소리. 살기 어린 승냥이의 울음소리. 8개월 만에 듣는 조국의 소리. 사직(실크) 점퍼에 검은테 안경을 끼고 뒷짐을 진 그들을 보는 순간 나는 악마를 보았다. 그 몸서리치게 하는 누런 색깔의 살기와 증오. 누가 조국을 어머니라고 했던가. 이들이 말하는 ‘조국’에서 과연 어머니의 따스함과 사랑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돌아온 조국에서 공포에 질려 있었다. 왜 우리 앞에는 죽음만이 있는 것일까. 치밀어 오르는 억울한 심정도 다시 속으로 되삼키는 수밖에 없었다.

사람다운 생활은 낱낱이 찢겨나간 채 굶주려 무더기로 죽어가는 이 참담한 현실은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짐승보다 못하게 앉아서 죽지 않고 먹을 것을 찾아 강을 건넌 것이 죄악이 된다는 말인가. 이 길을 택하든 저 길을 택하든 우리는 죽어야만 된다는 것인가.

나야말로 진정한 ‘빨갱이’ 아니었던가. 부모님은 모두 ‘조선해방전쟁(6·25전쟁)’에 참전한 전사였다. 아버지는 대학교수 경력에다 대외협력국장을 맡았으니 조선에서는 상류층에 속했다. 외아들로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그러나 파탄난 나라에서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학자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나선 것이 조국의 첫 여행이었다. 이제 두 번째 조국여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처음 여행에서 나는 우리 현실의 참모습을 목격했다. 그리고 나 자신도 숱한 주검 가운데 하나로 시체실로 실려나갔었다. 이제 두 번째. 나는 죽음의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

조선의 현실을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감옥은 창살의 크기만 다를 뿐 그 안에 들어앉은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죄인’이라고 하지만 안에 있건 밖에 있건 그 많은 조선사람들이 죄인 아닌 죄인으로, 아니 죄인보다 못한 죄인으로 갇혀 있는 현실이 아닌가. ‘조국’이 무슨 설명을 해주랴. 돌아온 우리를 그저 침묵의 ‘환영식’으로 맞아주었다. 우리는 모두 땅바닥에 무릎을 구부린 채 머리를 다리 사이에 박았다. 뒤로 손을 돌려 수쇄를 채운 상태에서 어린이고, 여자고, 노인이고를 가리지 않고 각목으로 사정없이 5대씩 후려갈겼다. 그런 다음 우리는 수쇄에 묶인 채 회령시 보위부로 끌려갔다. 모두 28명이었다. ‘민족의 반역자’를 심판하는 첫 관문이 열린 것이다.

우리는 다시 보위부 감옥 땅바닥에 꿇어 앉혀졌다. 막막하게 상념에 젖어 있을 때 “강혁이 누구야?” “이혜영이 누구야?” 하고 총알 같은 소리가 연거퍼 날아왔다. 나는 무심결에 답했다.

“접니다.”

대답을 하며 고개를 드는 순간 눈앞으로 열찌(뜨거운 불덩어리 같은 기운)가 지나갔다. 그리고 얼마를 지났는지 눈을 떴다. 나의 몸은 성한 곳이 없이 짓밟혀 있었다. 내가 땅바닥에 박았던 머리를 드는 순간 보위원이 구둣발로 나의 눈을 걷어찬 것이었다. 순간 나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그 뒤에도 구둣발로 온몸을 짓이겨놓은 것이었다. 저항없이 기절했다고 해서 발길질이 멈춘 것이 아니었다.

혜영은 어떻게 되었을까. 돌아보니 머리카락이 산발이 된 채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입과 코에서는 선지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중국경찰이 일러준 ‘키스를 했다’는 사실을 놓고 마치 더러운 것에 모욕을 받은 것처럼 길길이 뛰면서 우리를 짓이긴 것이었다.

나의 배 밑바닥에서부터 진하디 진한 분노가 끓어 올랐다. 억울함과 분함.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연인을 지키지 못한 채 눈앞에서 매맞고 모욕당하는 것을 지켜보며 토하지도 못할 분노를 짓씹을 때, 아, 나는 속으로 그 어떤 폭력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그리고 더는 무섭지도 않았다.

매를 맞을수록 분노의 불꽃은 타올랐다. 나의 몸은 내가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고통을 받아냈다. 고통은 시작에 불과했다. 혜영과 나는 열심히 맞았다. 나는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혜영이 매를 맞는 것은 견딜 수 없었다. 혜영이 맞는 매를 내가 대신 맞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들은 항상 내 앞에서 혜영을 괴롭혔다.

회령보위부는 중국으로 월경했다가 따로 잡혀온 사람들을 우리와 합류시켰다. 우리 일행은 보위부 감옥에 수용되기 전 죄목에 따라 분류되었다. 일부는 다른 지역으로 바로 떠나는 것 같았다. 보위부 감옥에 수용된 우리 일행은 모두 128명이었다. 혜영과 나는 남녀 감방에 각각 수용되었다. 감방은 모두 지하에 있었다.

내가 들어간 감방에는 이미 7명이 수용되어 있었다. 산 송장. 악취에 찌든 채 햇빛을 보지 못해 핏기없이 누렇게 뜬 얼굴들. 그 얼굴들은 감옥에서 긴 나날을 보냈음을 말없이 그러나 뚜렷이 보여주고 있었다. 간첩죄가 2명, 반체제 조직을 묻다(지하활동)가 잡힌 2명, 중국에서 1년간 살다가 잡힌 1명, 그리고 중국인이 2명이었다. 여기에 내가 들어와 모두 8명이 되었다.

감옥에서 만난 김책공대생 송명준

나는 처음으로 들어간 감옥보다 여기서 만난 사람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것이 살아남은 나의 의무다. 나는 회령시 보위부 감옥에서 만난 이래 내 가슴속에 뜨겁게 묻어둔 송명준을 먼저 이야기 하고자 한다.

나는 필명을 사용하고 있다. 언젠가의 만남을 위해 나는 내 자신을 숨기고 싶다. 다시 만날 때까지 나는 죽은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미 처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송명준은 본명이다. 나는 이 뜨거운 태양이 빛나는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그것은 비밀리에 처형된 송명준이 다시 살아나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나는 당시 살아서 나온다고 생각하면서 그와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었다. 이제 다시 살아난 내가 송명준을 되살리지 못한다면 그의 영혼을 망각 속에 영원히 파묻는 짓이 될 것이다.

송명준. 그는 조선의 비극과 모순 앞에서 진실을 살리기 위해 행동으로 옮긴 진정한 인간이다. 그는 반체제 조직을 묻다 잡혀 들어왔다. 우리는 같은 대학생이었고 조선의 젊은이였다. 지난날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은 출신과 빼어난 두뇌로 인정받던 우리가 뜻하지 않게 지하감옥에서 만난 것이었다. 우리는 언제 최후의 날을 맞을지 모르는 채 살아온 날을 이야기하고 서로를 격려했다. 우리는 몰래 낮은 소리로 틈만 나면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나에게 수시로 말했다.

“개똥무지에 굴러다녀도 자기 볼장은 보고 죽어야 한다.”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다. 행동할 때다.”

송명준, 그는 김책공대 대학생이었다. 감옥에 들어온 지 6개월. 잘 풀리면 관리소행, 그렇지 않으면 사형이라고 스스로 말했다. 보위부에서는 사형을 비밀리에 집행한다. 특히 반체제 활동은 범죄 그 자체를 비밀에 부친다. 관리소에 들어가는 것도 죽음을 의미할 뿐이다. 어느 때 어떻게 죽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죽어가는 것이 보위부의 죄범(죄수)들이다.

송명준과 나는 여러 면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는 반체제 조직운동에 나섰고 나는 중국을 택한 것이 달랐다. 그가 사회주의 조선의 실상을 샅샅이 알게 된 것은 1995년이었다. 그의 가정과 아내의 운명을 들려준 송명준은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그가 전해주었던 진실을 내가 말한다.

명준의 집은 평양이다. 방학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면 가족들은 모두 음식을 차려 놓고 함께 식사를 했다. 6개월 만에 돌아온 가장을 위해 정성을 다한 것이었다. 아내의 지극한 정성으로 마련했을 음식을 한끼는 근근이 에울 것이라 하여 타박할 것인가. 식구는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명준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모처럼 차린 음식을 그나마 먹지 못했다.

푸석한 얼굴에 지난번처럼 화장한 흔적도 없었다. 덜컥 가슴이 내려앉은 명준은 잠자리에 들기 무섭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캐물었다. 아내는 명준의 품을 파고들면서 ‘자신이 한 일을 자신이 모르는가?’고 되물었다. “글쎄, 내가 무슨 짓을 했기에?” 명준은 심각한데 아내는 해죽해죽 웃었다.

임신을 한 것이었다. 명준은 아내를 끌어안고 마냥 기뻐했다. 명준은 그 행복의 뒤로 다가오는 근심을 떨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기뻐하는 시간의 여운은 도리없이 참으로 짧게 끝날 것이었다.

그는 방학 동안 공부를 접어두고 산으로 땔나무를 하러 갔다. 아내도 따라 나섰다. 시부모와 명준의 만류를 기어코 물리치고서였다.

“나는 일하지 않고 당신이 나무하며 땀흘리는 모습만 보고 있을래요.”

아내의 이유 아닌 이유였다. 그러나 임신한 몸으로 땔나무를 하러 다니지 않을 수도 없는 현실이었다.

저녁 식사는 언제나 풀죽(풀잎을 뜯어 강냉이가루와 섞어서 끓인 죽)이었다. 풀죽을 놓고 식구들은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느꼈다. 연로한 시부모는 임신한 며느리가 풀죽을 먹는 것이 못내 안쓰러워했다.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시부모께 풀죽을 대접하는 것을 못내 미안하게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명준이 유머를 풀어대 그래도 웃음꽃을 피우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냉혹한 현실이 가려질 수는 없었다. 식구들은 굶주림 속에 하루가 다르게 죽음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배급이 끊어진 지도 몇 달이 지났고 뾰족한 생계수단도 없었다.

부모님에 대한 송구함과 아내에 대한 미안감 때문에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대학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슴을 짓눌렀다. 한 학기마다 적어도 3000원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풀죽도 겨우 먹는 처지에 어떻게 학자금을 마련한다는 말인가. 내색을 않고 있지만 생각에 잠긴 명준을 보고 아내는 벌써 눈치를 채고 가만히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어느덧 방학이 끝나는 날 명준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망연히 기차역으로 나섰다. 그런데 아내가 말없이 다가서더니 작은 포장물을 주었다. 그 속에는 4000원이 들어 있었다. 약혼 예물을 팔아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명준은 부모님과 아내의 기대를 내팽개치고 학교를 포기하고 집으로 내려오고 말았다.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기까지 돈을 물쓰듯 해야 했다. 설사 졸업을 한다 해도 빽이 없으면 직장에 제대로 배치되기도 어려웠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집에 손을 내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집으로 내려온 명준의 결단을 듣고 부모님은 자신의 무능을 탓했다. 아내는 가난한 처가를 탓했다. 상심이 겹쳐서인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부모님이 허약병에 걸려 자리에 드러누웠다. 풀죽도 어려워져 준비한 송기떡에 쑥떡이 어찌 연로한 사람들을 지탱해주겠는가. 송기떡은 소나무 속살과 강냉이 가루를 섞어서 만든다. 쑥떡은 쑥에다 강냉이 가루를 섞어 만든 것. 송기떡이나 쑥떡을 며칠만 먹으면 혼자서 변을 보기 어렵다. 어린아이들은 둘씩 변을 보러 가서 서로 나무 꼬챙이로 서로 뒤를 후벼 파내준다. 고통스러워 하는 이들을 보며 어머니는 울면서 돌아서 버린다.

굶주림은 소리 없는 전쟁이다. 보이지 않는 포연이 솟고 자취없이 총탄이 난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먹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먹었다. 쥐, 뱀, 개구리, 메뚜기. 이것들은 좋은 식품이다. 허기진 사람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먹을 것으로 보인다. 환각이 휩쓴다. 벌써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나라는 모든 것이 마비상태에 들어갔다. 배급은 끊어진 지 오래고 전기도 수도도 없다. 철도, 운수, 탄광, 광산, 보건, 체신, 교육 등 모든 것이 단절되었다. 이렇게 모든 사회기능이 정지된 상태에서도 사람들은 기적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살아야 한다고. 장마당에서 10원이라도 벌어야 한다고. 아니다. 이 표현은 옳지 않다. 그들은 죽음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칠 뿐이다. 그리하여 이 시대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는 것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승리가 될 것이다.

네 식구 가운데 3명이 사망

이런 판국에 명준이 대학을 그만두고 가사에 들러붙었다고 해서 해결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입이 하나 늘었을 뿐이다. 조선의 모든 가정에서 그러하듯 굶주림에는 어김없이 병마가 찾아든다. 명준네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먼저 숨을 거둔 것은 부모님이었다. 그리고 몸져 누운 아내. 가구나 집기 가운데 돈이 될 만한 것은 눅거리로 장마당에 내다 팔아 그럭저럭 그해 겨울을 넘겼다. 이제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오면 아사의 초연 속에 허덕이던 생령들을 구원해줄 풀들이 대지에 돋아날 것이었다. 그래서 누구나 새 봄이 오면 희망을 갖게 된다.

이제 한 달만 지나면 봄빛 속에 웃음꽃을 피워줄 아기가 태어날 것이다. 명준은 몸져 누운 아내를 보고 이제 우리집에도 새 생명이 태어나 자장가를 부를 날이 멀지 않았으니 기운을 내라고 다독거렸다. 그럴 때면 수척한 아내도 남편의 손을 잡고 빙그레 웃었다.

그러던 어느날 명준은 산에서 나무를 지고 내려오는 길에 금방 죽은 까마귀 한 마리를 발견했다. 더 생각할 사이도 없이 그것을 집어들었다. 허약한 아내를 대접할 수 있다는 기쁨으로 급히 발길을 옮겼다. 이제 고개 하나만 넘으면 집이 있는 마을이 보인다. 집 쪽을 바라보는데 어쩐지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나뭇단을 던져놓은 채 집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불길한 예감 그대로였다. 아내는 혼절해 있었다. 아직 숨길이 남아 가쁜 듯이 내쉬었다. 그는 아내를 들쳐업고 뛰었다. 병원까지 20리 길을 땀투성이가 된 채 쉬지 않고 달렸다. 그러나 병원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아내의 숨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아, 선생님. 아내를 살려만 주십시오.”

그는 오열하면서 애원했다. 엎드려 빌었다. 통곡을 했다. 아내는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그 안에는 그의 공민증 사진이 들어있었다. 정신이 희미해지기 전까지 사랑하는 남편의 사진을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진을 꼭 쥔 채 눈을 감은 것이었다.

그는 아내의 시신 앞에서 피눈물을 쏟았다. 금시라도 아내가 빙그레 웃으며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찌하랴. 한번 잠들면 다시는 깨지 못하는 것을. 그의 아내는 이 세상에 태어나 그를 지아비로 섬기며 사랑하였고 이제 아름다운 정만 고이 남겨둔 채 영원히 떠나갔다.

이밥(쌀밥) 한 그릇 떠놓고 웃으며 함께 먹어본 적이 한번이라도 있다면, 고운 옷을 차려입고 수줍음을 타며 나란히 한번이라도 걸어보았다면 이다지도 가슴이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제 누구도 그를 반겨주지 않는 텅 빈 집. 전혀 사람이 산 적이 없었던 것처럼 적막에 싸인 집. 그는 그 속에서 무엇에 얻어맞은 것처럼 허물어졌다. 다시 일어설 기력도 이유도 없었다. 그는 실신한 듯 멍하니 천장의 거미줄을 올려다 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오래간만에 방송이 터져나왔다.‘꽃 파는 처녀’ 가운데서 ‘사랑하는 오빠와 우리 삼형제’ 노래가 들려왔다. 일제의 압제에 갈갈이 찢겨나간 가족의 처지를 담은 노래가 자기 신세 그대로였다. 굶주려 죽음의 지경에 몰리면서도 서로 원망 않고 위로하던 가족들. 그들은 이제 모두 떠나고 없다.

그때 그는 진실을 알아야겠다는 욕구에 사로잡혔다. 절망의 끝에 서서 지금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그 정체가 궁금했다. 선량한 부모님과 신혼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뱃속에 아기를 가진 채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어야 했던 아내의 운명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는 그것을 현실로 받아 들이는 데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전국을 방랑했다. 그리고 이 시대와 사회의 진실을 알았다. 우리의 사상, 우리의 이념이 허위라는 것을 그는 그제서야 알았다고 했다.

그와 비슷한 처지의 불우한 남자들은 가는 곳마다 있었다. 동지들이었다. 이심전심으로 조직이 형성되어 갔다. 그는 비밀조직을 꾸리느라 밤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어디서 그런 정열이 솟아나는지 자신도 몰랐다. 예리한 두뇌, 바늘 끝 같은 경각심, 통솔력 있는 조직에의 수완 없이는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그는 사선을 넘나들며 전심전력으로 조직을 쌓아나갔다.

조선이 이미 망했다 하더라도 그 강철 같은 통치조직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굶주림으로 인민이 죽어 간다고 해서 그들의 체제가 약화되는 것도 아니었다. 감시와 탄압, 밀고로 짜인 폭압이 조선을 지탱하는 힘이었다. 조선이 설사 무너진다고 하여도 이것만은 혼자 작동을 계속할지도 모른다. 어찌 한 대학생의 반체제 조직활동이 그 앞에 적수가 될 수 있었겠는가. 1997년 8월9일. 그는 회령시 보위부 반탐과에 의해 동지들과 함께 체포됐다.

우리는 우리 손으로 낙원을 꾸려야 한다.

그 누가 우리의 낙원을 꾸려주지 않는다.

지금은 움직여야 한다. 행동해야 한다.

송명준과 마지막을 고하던 날, 그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는 이 지상에 잠시 머문 것처럼 감옥에서의 만남도 짤막하게 종말을 고했다. 이 땅에 풍성한 과일을 거두는 낙원을 일구자던 그는 나에게 뜨겁고 깊은 시선을 남긴 채 창살 저쪽으로 사라졌다. 그는 지금 사랑하는 아내와 낙원에서 함께 일하고 있겠지. 영원히 이별하지 않고.

언제나 선함과 희망을 잃지 않고 조용히 견디던 명준, 모든 것을 다 잃고서도 아무런 상실감도 보여주지 않던 명준, 오직 사람을 위해 진실된 세상을 염원하던 명준, 그는 나와 헤어지면서 또렷하게 말했다. “지금은 행동해야 할 때”라고.

지하감옥에서도 명준은 의연했다. 중국에서 내가 한국이 잘산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하자 명준은 “한쪽이라도 잘 살아야 한다. 그것은 축복이다”라고 말했다. 그 역시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소원이었다. 무차별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사람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던 명준. 분명 그에게는 소용돌이 치는 급류 속에 빠진 생명들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 용자의 결단이 있었다.

그것이 명준의 죄였다. 남이 만들어주지 않는 낙원을, 기다린다고 이루어지지 않을 낙원을 이제 우리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던 명준에게 낙원이 아닌 보위부의 지하감옥이 주어진 것이다. 그래도 그는 아무런 원망도 없었다. 그는 내 마음에서 영원하다. 그 맑은 얼굴, 그 맑은 눈빛.

사형집행장에서 피비린내를 맡으며

어디선가 밤까마귀가 울었다.

“까욱, 까욱.”

달은 떴을까. 찢긴 검은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을까. 회령시 보위부 반탐과 지하감옥에서 맞은 조국에서의 첫날 밤, 잠을 못 이루는 우리를 위해서인 듯 까마귀가 울면서 지나갔다.

“야. 일어낫.”

보위부 일직관의 구령에 엉거주춤 일어섰다. 아침이 온 것이었다. 월경분자로 분류된 일행 가운데 27명이 선발되었다. 아무 설명도 없이 트럭에 태워졌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트럭은 정처없는 듯 어슬렁거리며 가고 있었다. 풍천(천막) 틈으로 내다보았다. 트럭은 뱀처럼 굽이도는 산비탈을 따라 돌고 있었다. 골짜기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궁금증이 불안한 예감과 함께 온 몸을 죄어왔다. 우리가 내린 곳은 22호 관리소 부근이었다. 낮에도 어둑한 깊고 외진 골짜기에 펑퍼짐하게 펼쳐진 둔덕이었다.

우리는 내리는 순간 벌써 죽음의 싸늘한 촉각에 몸서리를 쳤다. 붉은 빛도는 구덩이 3개가 벌겋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금방 파낸 듯 구덩이 주변에는 진흙이 묻은 삽과 곡괭이가 여기저기 꽂혔거나 뒹굴고 있었다. 구덩이 깊이는 사람이 들어서면 머리만 위로 나올 정도였다. 까만 테 안경을 쓰고 하얀 장갑을 낀 사형집행인들. 어깨에는 특사견장이 침침하게 빛났다. 담배를 피워물며 살기 찬 눈초리로 우리를 노려보는 보위원들. 냉기 서린 정적이 잠시 흘렀다.

우리를 지그시 노려보던 보위원이 피우던 담배를 내던지며 단호하게 앞으로 나섰다. 이름 없는 나무들도 냉혹한 기세에 질려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바늘이 떨어져도 뇌성처럼 울렸으리라. 질식할 듯한 정적이 깨졌다.

“이름 부르는 자들은 앞으로 나오라.”

‘누구를.’

‘혹시 나라면.’

‘혜영이라면.’

온몸이 와들와들 떨려왔다. 처형장에 선 것도 처음이지만 이렇게 무서움을 느끼기는 정말 처음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죽음의 공포에 눌린 나는 얼이 빠져 멍하게 있었다.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환각을 보는 것처럼 이름이 불린 세 사람이 차례로 앞으로 나왔다. 하나, 둘, 셋…. 셋을 모두 확인했다. 나와 혜영은 불리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안도의 한숨이 가느다랗게 떨려 나왔다.

비릿한 피내음이 먼저 번지는 듯했다. 바위벽을 등지고 한 사람이 세워졌다. 그 앞으로 사형집행인들이 사격자세를 취했다.

“땅, 땅.”

두개골을 금속으로 난타하는 듯한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죽음과 삶이 엇갈리는 순간은 깨어나지 못하는 악몽처럼 눈을 감고도 보이는 것이었다. 총알이 가슴 한복판과 이마를 뚫고 나갔다. 그 사람은 무엇을 뿌리치려는 몸짓을 하면서 뒤편으로 튕겨나갔다. 총성의 여운이 풀썩 쓰러진 그의 주검 위로 귀가 멍멍하게 맴돌았다.

두 번째 사람은 가슴과 배에 한 발씩 맞았다. 그는 총을 맞은 뒤 배를 움켜쥔 채 1m쯤 뒤로 물러나더니 고개를 쳐들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을 쏜 사형집행인들을 보았다. 그리고는 채 녹지 않은 눈 위로 쓰러졌다.

그 순간으로 영원할 것 같던, 설명할 수 없는 그 잔혹한 영상은 허망하게 무너졌다. 한참이 지난 것 같았다. 그러나 실제 그 시간은 단 2초를 넘을 수 없었다. 그가 쓰러진 주변으로 피가 흘러내려 잔설이 순식간에 새빨간 불꽃처럼 번져올랐다.

세번째 사람은 바위벽에 기댄 채 기절해 있었다. 그 광경을 본 보위원이 싱긋이 웃으며 살쾡이처럼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머리에 대고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 이어서 몸통에 총을 난사했다. 세 번째 사람은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그렇게 죽어갔다. 총알이 박힐 때마다 푸르르 푸르르 살이 떨리는 것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다시 정적이 돌아왔다. 모두가 침 삼키는 소리도 내지 않고 숨을 멈춘 듯했다. 무섭게 고요한 정적이었다. 그동안 피 먹은 잔설만 붉게 물들어갔다. 처형을 본 우리 가운데 제 정신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잔혹한 영상을 잊을 수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을 것이다.

처형된 3명은 조선을 탈출하여 남조선으로 가려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중국 청도까지 내려가서 한국 청도주재 총영사관에 들어갔으나 망명을 허락받지 못했다. 중국의 한국영사관 주변은 항상 조선의 특무들이 감시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 총영사관 문전에서 쫓겨난 뒤 조선특무들에게 체포되어 이곳으로 끌려온 것이었다. 자유를 찾으려고 나섰던 세 사람은 눈덮인 골짜기에서 피를 쏟은 채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로 떠나고 만 것이다.

사실 중국에 나왔다는 것 자체가 조선당국이 수용할 수 없는 ‘사상과 정치적 범죄자’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조선에서는 남조선이 미국의 식민지이고 거지가 우글거린다고 선전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들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중국으로만 나와도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조선이야말로 거짓으로 넘친다는 것을 알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반김정일’이 되는 것이다. 조선보위부가 월경자들을 가려 한국사람을 만난 것을 ‘간첩죄’로 다스리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인 것이다.

김정일 자신도 ‘사상범죄자들을 지그시 말려 죽여라’라는 ‘5·30지시’를 내려놓고 있었다. 1997년 5월30일에 내렸다 하여 5·30지시다. 그리하여 조선의 체포조들이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잡아 3호 굵기 철사로 어깨뼈를 뚫어 데려간다거나 손바닥을 뚫어 잡아가는 광경이 벌어졌던 것이다.

‘중국에 있는 동안 한국인과 만난 적이 있다’는 것은 곧 한국 안기부(현재 국정원)와 접촉한 것으로 된다. 왜냐하면 조선에서는 중국에 나온 한국인은 모두 안기부라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 모든 월경자의 조국에 대한 배신행위 가운데 ‘한국사람’을 만났다는 것이 최대의 죄악이며, 그 사실 하나만으로 ‘사형’이다.

나도 우연히 한국 대학생 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러한 사실을 혜영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만은 한사코 감추어야 할 일이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것을 감추지 못하면 우리는 눈앞에서 처형당한 그 사람들처럼 죽음의 벼랑으로 굴러떨어진다.

죽음으로 지켜야 할 비밀

혜영과 나는 중국공안에 잡힌 직후 이에 대해 입을 맞추어 놓았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라도 실수가 있으면 우리는 끝장인 것이다. 한쪽의 설명이 다른 쪽의 설명과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었다. 보위부의 노회하고도 집요한 추궁에 과연 우리가 얼마나 버텨나갈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처형을 우리 눈앞에 보여주는 것도 그러한 사실을 캐내는 일이 시작되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설사 우리가 불지 않는다고 해도 처형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우리의 목숨은 보위부 손아귀에 있었다.

보위부는 죄수들을 마음대로 처분한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진 것처럼 즉시 총살에 처할 수도 있고 심문을 거쳐 법적 절차를 밟기도 한다. 그중에는 총살에 처하지도 않고 심문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저 감옥에 넣어놓고 천천히 말려 죽이는 것이다. 그런 경우의 죄수는 결국 죽어야 할 운명이면서 죽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에 더욱 철저히 절망한다. 그것처럼 잔인한 형벌을 나는 알지 못한다.

햇빛을 보지 못해 누렇게 변한 수염, 철창 사이로 보내는 허연 절망의 시선, 그는 차라리 죽음이 빨리 자신을 감옥에서 꺼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남은 것은 죽음의 길밖에 없는데도 고통과 절망을 한없이 연장하면서 그것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도 죽지 못하는 상황에 하염없이 죽음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눈빛을 누가 보았는가.

다시 보위원의 목소리가 정적을 깨고 울렸다. 아, 보위원. 사람의 형용 가운데 그 어떤 극단이 있다고 해도 보위원이 주는 형상과 비교라도 할 것인가. 확, 몸에서 끼쳐오는 피비린 악취.

“야. 정신 차리고 내 말을 똑똑히 들어. 이제부터 묻는 말에 솔직히 대답해야 돼. 그렇지 않다간 어떻게 된다는 건 두말하지 않겠다. 알았는가.”

보위원이 다시 월경자 명부를 쳐들었다. 새로운 긴장과 공포가 와락 밀려왔다.

“강혁.”

덜컥 숨이 멎었다. 나의 눈동자도 정지되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췄다. 그러한 상태에서 온몸이 어떻게 할 사이도 없이 와들와들 떨렸다. 나는 내가 앞으로 걸어나가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리가 앞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모두 그뒤에 일행들로부터 들었던 상황이다. 그들은 내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나가더라고 했다. 머리칼이 곤두선 채 아무 의식도 없이 나는 보위원 앞에 도달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심문이 시작됐다. 정신없이 속이 뒤집힌 듯 저절로 대답했다. 사실 내가 우연히 만난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이 한국에서 왔다고 해서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는 것인가. 나는 아무런 가책도 망설임도 없었다. 다만 혜영과 나는 우리가 겪은 중국에서의 생활만 말하면 그것으로 전부였다. 처분이 내려졌다.

“너는 됐어. 저기 가 서 있어. 만약 약간이라도 거짓말이 있을 때 가차없이 개처럼 죽일 줄 알아.”

1차 심문은 일단 넘긴 것이다. 다음은 혜영이 차례였다. 그녀도 무사히 심문을 마치고 나의 곁에 서서 대기하게 되었다. 그녀의 말이 나의 말과 딱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생사의 갈림이 눈앞에서 엇갈리고 있었다. 저절로 한숨이 ‘휴’ 하고 나왔다. 내 바지가 흥건하게 젖어 있다는 걸 안 것은 정신이 들고도 한참 지나서였다. 다른 사람들이 담이 크다고 말해줄 만큼 스스로도 겁이 없다고 믿어오던 나였는데 그런 내가 바지에 오줌을 싼 사실조차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내가 그럴진대 여자인 혜영은 어떠했을까.

1백번의 질문, 1백번의 대답

우리 일행은 세 사람의 시신을 뒤로 한 채 다시 회령시 보위부 감옥으로 들어섰다. 트럭 적재함에서 혜영은 내 옆에 기대 앉았다.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댄 채 처량한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신열이 끓어오르며 앓고 있었다. 1998년 3월26일. 조국에서 두 번째 맞는 날은 처형장에서의 일로 채워졌다.

내일은 또 어떻게 될까. 보위부에서 관장하는 사안은 그 자체가 비밀이며 심문이나 처형 자체가 비밀리에 이루어진다. 그러니 내일은 또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를 일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불 것이다. 그렇게 내일이 있다면 나도 그 속에 있겠지.

3월27일, 셋째 날부터 예심이 시작되었다. 혜영과 나는 보위원들이 수술칼같이 예리하게 던지는 질문에 몸을 맡겼다. 어떤 때는 입 속의 사탕이라도 내줄듯이 위해주는 척하다가 어떤 때는 어릴 적에 먹은 어머니 젖까지 토하게 할 듯이 창자 속을 훑어냈다. 그러나 어쩌랴. 혜영과 나는 월경을 했다는 사실 외에 조국을 배반한 다른 목적도 사실도 있을 리가 없었다. 100번의 질문이 반복되고 100번의 똑같은 답변이 되풀이되었다. 실제로 대답은 똑같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중국에서의 체류기간에 따라 우리를 분류했다. 1개월, 2개월, 3개월로 나누고 크게는 1년 미만과 그 이상으로 분류했다. 우리의 체류기간은 8개월이었다. 우리가 무어라고 대답하든 그들은 심증을 굳히고 있었다. 분명 그 기간에 한국인을 만났을 것이라고. 더구나 중국측에서 넘긴 서류도 우리에게 불리한 것 같았다.

예심 첫날 우리는 각자 독방에 앉혀졌다. 기록지 6장을 채우고 수표(서명)했다. 혜영과 나의 밤생활까지 진술하라고 했다. 그것도 썼다. 그러면 그들은 나와 혜영이 쓴 것을 대조한 다음 서로 어긋난다며 다시 쓰라고 했다. 우리는 무엇이 서로 어긋나는지도 모른 채 다시 고쳐 썼다. 그렇게 덧붙이고, 찢고, 고쳐 쓰고를 3일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나와 혜영은 그들을 만족시킬 만한 무슨 안기부 내막이나 한국사람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를 도와준 중국사람들과 한국대학생을 만난 일을 감춘 것 외에는 근심할 것이 없었다. 실로 교묘하고 끈질긴 유도심문과 반복질문에도 혜영과 나의 대답은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그들로서는 답답한 일이었다. ‘요것들이 어떻게 짜고 들었는지 앞뒤로 바늘 들어갈 틈이 없어’라고 감탄 아닌 감탄까지 했다. 그렇다고 쉽게 물러날 그들도 아니었다.

7일째. 기다리는 답변이 나오지 않자 심문은 고문으로 바뀌었다. 보위원들이 기대하고 있는 범죄행위를 자기 입으로 불 때까지 고문은 계속된다. 다양한 고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혜영이는 사실을 말하면 그 자신은 산다. 한국대학생을 만난 것은 나였다. 따라서 나는 죽는다. 그런데도 혜영은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혜영이 치러야 할 것은 죽음과 같은 고문이었다. 살아서 겪는 죽음의 고통.

‘낙타고문’, ‘비행기고문’, ‘배구시합’ 등 온갖 고문 당해

드디어 심문이 고문으로 바뀌었다. 첫날 고문은 뒷짐을 지고 머리를 땅바닥에 박은 상태에서 각목으로 사정없이 내려치는 것이었다. 몸뚱이를 구부리면 팽팽하게 등허리가 당겨지면서 낙타처럼 된다. 그 위에 각목이 떨어진다. 매질에 견디다 못해 쓰러지면, 다시 몸을 구부리고는 매를 맞았다. ‘낙타고문’이라 고 했다.

그래도 “한국사람 만났지” 하고 묻는 말에 나는 부정했다. 부정에 이어 또 매가 쏟아졌다. 그렇다고 우리 답변이 달라질 수는 없었다. 고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둘째날 고문실에 끌려가는 동안 손을 채운 수갑에 연결된 쇠사슬이 와들와들 떨며 소리를 냈다. 매일 받는 고문은 습관처럼 되어갔다. 고문받기 전 2, 3분 동안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일단 고문에 들어가면 몸의 감각이 오히려 둔해지는 듯했다. 나의 마음에 아무런 미련도 남아 있지 않았다. 고문이 시작되면 차라리 편안했다. 피가 터지고 감각이 마비되면 더이상 아프지 않다. 그러나 고문이 시작되기 직전은 언제나 몸이 먼저 떨리는 것이었다.

‘비행기 고문’도 있었다. 그들이 양쪽 벽에 붙어 있는 굵은 쇠사슬로 나의 양팔을 묶고 쇠사슬을 당기자 내몸은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러다 갑자기 쇠사슬이 풀어졌다. 그 바람에 쇠사슬이 나의 몸을 사정없이 휘감으면서 얼굴이고 허리고 가리지 않고 뼈를 쪼개는 듯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허공에서 중심을 잃고 떨어지는 나에게 쇠사슬이 살아있는 뱀처럼 달려 드는 순간이 너무 무서워 사지가 굳는 것 같았다. 쇠사슬은 짧은 것은 좌우 각각 2m, 긴 것은 3m가 넘었다.

‘오토바이 교정’, 고문이나 교정이나 차이는 없다. 한쪽 발을 들고 오토바이를 탄 흉내를 내게 한다. ‘가라’ 하면 발동을 건다. 피의자는 입으로 ‘따따따따-’하고 소리를 낸다. ‘더 세게’하면 소리가 커진다. ‘오른쪽 구비’,‘왼쪽 구비’하는 신호에 따라 계속 소리를 내며 몸을 회전시키면서 한쪽 발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허약한 신체로 버티는데 금방 한계가 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착시가 생겼다. 허공을 쥐다가 쓰러졌다. 그러면 찬물을 퍼붓고 오토바이 타기를 다시 시켰다.

심문조서는 고문이 진행되는 것과 함께 두께를 더해갔다. 고문을 하는 동안 행적에 대한 질문이 되풀이 된다. 중국에서 누가 도와주었는지, 한국사람을 만난 일이 있는지에 대해 교묘하게 유도질문을 해댄다. 강박하다가 달래기도 하고 혜영이가 이미 말했다면서 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진술은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사실 한국대학생을 우연하게 만난 적이 있다. 나는 같은 대학생으로서 처음 만난 그에게 관심이 있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나에게 약간의 생활비를 보태주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것을 밝힐 수는 없었다. 내용이 무엇이건, 한국사람을 만났다는 것은 간첩죄였다. 의미없는 죽음을 자청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반대로, 혜영과 나, 이렇게 두 사람이 하나같이 지내온 나날은 우리로서는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그것을 진술하는 데 착오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보위원들은 우리 사이에 쐐기를 박아넣고 억지로라도 쪼개려 들었다.

아, 나는 기억하기조차 괴롭다. 그 어느날 회령시 보위부 반탐과장이 나와 혜영을 고문실로 데리고 갔다. 지하감방의 복도 한쪽 끝 외진 방이었다. 5m2 쯤 되는 방 안에는 체격이 건장한 4명의 고문담당 보위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같이 개기름이 흐르는 얼굴은 오랜 악행으로 주름잡힌, 말할 수없이 더러운 추악함이 배어 있었다. 인간성을 기대할 수 없는 그들을 쳐다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반탐과장은 “여기서 살아서 나갈 것은 꿈도 꾸지 말라”고 하면서 천천히 담배를 피워물었다. 각자로 만든 틀에 내 손을 올려놓고 고정시켰다. 그리고 그는 말없이 담배를 한 숨 빨아들이더니 내 손톱에 담뱃불을 갖다 댔다.

나의 비명과 함께 울려퍼지는 반탐과장의 웃음소리. 나는 누렇게 타들어간 손톱을 내려다보며 울부짖었다. ‘일당백’이라는 글자를 새긴 러닝 차림의 고문담당 보위원들은 혜영의 가느다란 다리를 눌러놓고 담뱃불로 지져대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는 그녀. 그런 그녀를 보는 순간 나는 한 마리 짐승으로 변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나의 두 팔을 뒤에서 묶어대는 보위원들을 뿌리치고 혜영에게 몹쓸 짓을 하는 놈들을 거세게 밀쳐버렸다. 살이 타면서 물씬 풍기는 노린내.

“야, 이것들이 택민(중국 국가주석 장쩌민, 江澤民)이네 집에 가서 살이 많이 쪄서 왔구나. 오늘은 손이 섭섭질 않겠는 걸.”

그들은 징그럽게 웃었다. 그리고 살기 차게 말했다.

“옷 벗어.”

우리는 옷을 벗었다. 팬티만 남긴 채였다. 순간 그들이 욕설을 퍼부으며 칼로 팬티를 사정없이 찢었다. 혜영은 두 손으로 앞가슴을 가리고 웅크리고 앉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를 4명이 둘러서서 이리 치고 저리 치기 시작했다. 이것을 ‘배구시합’이라고 했다. 나는 피투성이가 됐고 그리고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짐승, 인간을 부정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누군가 내 손을 포근히 감싸쥐는 감촉을 느끼면서 눈을 떴다. 차디찬 바닥에 누웠는데도 따뜻하고 온화한 기운이었다. 나의 머리가 혜영의 무릎 위에 있었다. 나의 한 손을 그녀가 귀중한 보배라도 되는 듯이 두 손으로 꼭 쥐고 있었다.

“왜 이렇게 조용할까.

“모르겠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 둘밖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강혁 동지 수고했습니다. 강혁 동지는 정말 강하십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 대목을 되새겼다. 그녀도 나처럼 배구시합을 당하고 졸도했던 것일까. 나는 안간힘을 쓰며 일어났다. 그리고 널려진 옷을 하나씩 찾아냈다. 팔, 다리, 얼굴 어디 한 곳도 성한 데가 없었다. 하지만 아픔을 참아가며 이를 악물고 옷을 다 입었다.

“저, 강혁 동지. 저를 좀 도와주세요.

나는 엉기적거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내의를 입지 못해 애를 쓰고 있었다. 아, 그녀의 등은 굵은 구렁이가 시퍼렇게 엉켜 있는 것 같았다. 머리카락도 피가 굳어 덕지덕지했다. 나는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무수한 매 자국마다 연약한 여자로서 견뎌야 했을 고통을 말해서 무엇하랴. 우리는 와락 부둥켜 안고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문이 벌컥 열렸다. 보위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아마 우리가 졸도를 하니까 그동안 휴식을 취하면서 우리가 깨어나기를 기다린 모양이었다. 우리가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자 추워서 그렇다면 아주 덥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다시 내 옷을 벗겨 이번에는 나무판 위에 눕히고 몸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숙달된 솜씨로 전깃줄을 끌어와 나의 양 엉덩이에 전극을 연결했다.

다른 보위원이 핏덩어리가 엉겨붙은 혜영의 머리채를 움겨쥐며 “이 간나, 눈이 있으면 저 새끼꼴을 똑똑히 봐라. 어떻게 썩어지는가” 하면서 내 쪽으로 머리를 돌리게 했다.

‘부웅’ 하는 전기음과 함께 내 몸은 허공으로 벌떡 치솟았다. 나는 모른다. 어떠한 형용이든 어떤 비유든 어떻게 설명해도 좋다. 벌떡 솟아오르던 몸뚱이는 사지가 묶인 반동으로 되돌아오고 되돌아오는 순간 다시 벌떡 솟아올랐다. 그것은 거의 한순간에 한동작처럼 반복되었다. 차라리 구둣발에 짓밟히는 지렁이가 그랬을까. 아니 아이들이 땅바닥에 태기질을 쳐버린 뒤 경련을 일으키며 죽어가는 개구리가 그랬을 것이다. 나는 점차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온몸이 나른해짐을 느꼈다. 마치 햇볕에 시드는 배추 잎사귀같이. 그 뒤는 어떻게 됐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의 온몸이 전류에 휘감겨 펄떡거리며 요동치는 것을 바라보며 혜영이는 울부짖다 까무러치고 말았다.

별안간 무엇이 나를 잡아채는 감이 들었다. 보위원들이 양동이에 물을 담아와 나에게 쏟아붓고 있었다. 나는 책상다리를 붙들며 일어나 앉았다. 그 옆에는 혜영이가 쓰러져 있었다.

사람이 아닌 사람. 짐승이 아닌 짐승. 사람의 고통을 깊숙한 쾌락으로 삼는 회령시 보위원 무리. 타락한 무리가 조선의 관리란 명칭을 사용하면서 사람으로서의 마지막 한계를 넘어서서 능욕하고, 강간하고, 고문하고, 처형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 담당을 정해서는 여자피의자들을 심문실에서 심지어 다른 피의자가 보는 앞에서 마음대로 강간했다. 아, 나는 내가 보는 앞에서 혜영에게 저지른 그 야수들의 행위를 차마 설명할 수 없다.

돌이켜보면 내가 이곳 감옥에 들어온 이후 135일 동안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회령시 보위부의 지하감옥에서 시작하여 회령시 안전부 감옥, 청진 도집결소, 곱사등이가 허리를 펴고, 벙어리가 말을 한다는 함흥시 ‘꼬매산’집결소, 내가 살던 구역의 안전부 감옥에 이르기까지 지옥이란 곳은 모두 거치며 이겨냈다.

그것은 용서할 수 없는 증오심 때문이었다. 우리가 불에 지져지고, 전기에 찢길 때마다 그들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오산하지 말라. 우리는 그 비천한 폭력에 굴복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몇십배, 몇백배로 강해지고 있었다. 나는 무서운 것이 없어져 버렸다. 처음에는 겁도 나고 불안과 공포에 떨었다. 그러나 이제는 몇천번을 죽는다고 하더라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나는 죽더라도 너희의 모욕과 고문에는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처형의 총탄 아래 주검으로 뒹굴지언정 너희를 더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다. 아, 얼마나 많은 조선의 인민들이 죄없이 이들의 손에 귀신도 모르게 사라지는가.

나는 내가 받는 고문은 차라리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혜영이 고문당하는 것을 바라보는 심경은 어떻게 설명할 수도 없다. 그들은 혜영을 고문하면서 꼭 내가 지켜보게 했다. 한국대학생을 만난 것은 나였다. 그녀는 그런 적이 없었다. 그런 모진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내가 혼자 만난 사실을 밝히기만 해도 그녀는 풀려날 수도 있었다.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고문을 견뎌내는 혜영이가 차라리 나를 고발했으면 하는 생각이 치밀어 오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혜영이는 나를 위해, 나와 함께 모든 것을 견뎌냈다. 사람도 짐승도 아닌 상태에서 바닥없는 모욕과 고문으로 피투성이가 되어 몇 번이고 의식을 잃으면서도 혜영이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변함이 없었다. 아, 고통 속에서도 얼굴을 들어 나를 보던 그 따뜻하고 맑은 눈빛. 혜영의 가냘픈 몸집 어디에 그렇게 강인한 힘이 깃들여 있었는지. 그것은 마치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푸른 샘과 같았다. 어딘가 그윽한 생명의 힘이 혜영이를 안고 있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그러한 혜영이의 생명력이 잔인한 고문 아래 얼마나 견뎌나갈지. 나는 한편으로 혜영이에 대해 놀라움을 느끼면서도 가슴이 저려왔다.

생지옥 속에서도 벌써 며칠이 흘러갔다. 아무리 쥐어짜도 나와 혜영이의 진술은 한치의 오차도 나지 않았다. 더더구나 안기부 요원과의 만남 같은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위원들도 모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에 관한 심문내용으로 두툼해진 문건과 함께 회령시 안전부 감옥으로 옮겨졌다. 우리를 쥐어짤만큼 짜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보위부 감방이 넘쳤기 때문이었다. 계속 잡혀들어오는 월경자들로 지하감옥은 콩나물 시루였다. 살아서 나가는 것을 포기하라던 보위부 감옥이었다. 비록 다른 감옥으로 옮겨진 것이었지만 우리는 그래도 살아서 나온 것이다.

회령 안전부 감옥으로

보위부 지하감옥을 나서기 전 머리와 얼굴에 묻은 피를 깨끗이 씻어내게 했다. 길거리의 일반인들을 자극시키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당초 월경죄로 분류된 우리 일행은 128명이었다. 그동안 그 수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총살 3명, 병사 9명, 미결감 7명, 교화소 11명, 관리소 5명, 노동단련대 21명, 보위부 잔류 4명 등 60명이 이탈했다. 나머지 68명의 우리 월경자 일행은 두 줄로 늘어서서 걸었다. ‘내 나라 제일로 좋아’ ‘사회주의 지키세’와 같은 노래를 부르며 회령시 안전부 감옥에 당도했다.

12개의 옥사는 반지하로 설치되어 있었다. 감옥에 밴 역한 악취로 당장 골이 빠개질 듯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철저한 신체검사를 받았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옷을 벗었다. 여자를 검사하는 것도 남자 안전원들이다. 그들은 우리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다.

“너희는 이제부터 사람이 아니다. 즉 공민이 아니다. 그러니 여기서 절대로 이름을 부를 수 없다. 모든 것은 번호로 통한다. 대답은 ‘알았습니다’ ‘잘못했습니다’ ‘고치겠습니다’ 이 세 가지뿐이다. 알겠나.”

계호책임자가 감옥생활의 수칙을 말했다.

배정받은 감방에 들어서는 순간 ‘시범합창매’가 쏟아졌다. 감방장 이하 먼저 들어온 ‘구짜’들이 똑같은 팔자로 새로 들어오는 ‘신짜’들의 신고를 받는 것이 곧 매질이다. 매질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 뿐 아니라 옆으로도 오가는 것이다. 그 다음 감방장이 감방의 질서를 설명해주었다. 기본적으로 보위부 감옥에서와 차이는 없다.

감방 안에서는 올방자를 틀고 무릎 위에 두 손을 올려놓아야 한다. 만약 변을 볼 때는 손을 쳐들고 “선생님, 7호 감방 19번. 소변볼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서 “보라”는 허락을 받아야 한다. 허락이 없으면 볼 수 없다. 안전원 동지라는 호칭도 사용할 수 없다. 선생님으로 통일한다. 감옥이라는 극한상황 속에서 대소변과 같은 생리적 습관도 바뀌어버린다. 소변은 3일에 한 번씩, 대변은 1주일에 한 번이 원칙이다. 만약 매일 배설을 한다면 영양실조에 의한 허약이 더 빨리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즉 그만큼 죽는 시간이 빨리 온다.

식사를 할 때도 같은 요령으로 한다. “4호 감방 밥 먹을 수 있읍니까” 하고 감방장에게 보고하듯 물어서 “쳐먹어라” 하는 안전원의 허락이 떨어져야 먹는다. 식사는 통강냉이 체가루와 물 한 그릇이 전부다. 분량은 강냉이 속을 털어낸 껍데기 빻은 것으로 세숟가락. 소금은 한 톨도 없다. 소금 구하기는 하늘에 별따기다. 열흘이 못 가 수용수들은 살이 붓고 맥이 없어진다. 보위부 감옥이나 이곳이나 사정은 마찬가지다.‘황소 같은 사람이 들어가도 한 달이면 죽는다’는 곳이다. ‘승냥이 생활’로 불리는 감옥 생활, 수감자들은 굳이 악형을 받지 않아도 허약과 질병으로 죽어나가는 것이다. 만약 선생님이 부르면 뒷짐을 지고 고개를 숙이고 뒷걸음쳐 가서 머리를 숙이고 꿇어앉는다.

온종일 교정자세로 앉아 있자면 엉치가 빠질 듯하고 허리에 동통이 오며 무릎은 마구 쑤셔댄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십일을 이렇게 앉아 있다 보면 잠깐 일어나 다리를 옮기는 것조차 무척 힘들다. 그러나 자구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안전원에게 동료죄수가 떠들었다고 고해바치는 것이다. 안전원은 보통 ‘때려라’는 허락을 내린다. 그러면 우리는 한편은 때리는 역을 맡고 다른 편은 맞는 역을 하면서 몸을 풀었다. 서로 적당히 시늉을 하면서 때리고 맞고 나면 한결 나았다.

어느 날이었다. 안전원 한 명이 9호 감방에서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 혜영이가 있는 여자감방이었다. 쉰살쯤 먹은 여자감방장과 혜영이 불려나왔다. 여자감방장이 ‘신짜’인 혜영의 끼니를 들어온 날부터 지금까지 절반을 뺏어 먹었던 것이다. 잘 때도 찬 바람이 들어오는 입구에 눕게 하여 바람막이로 사용했다. 견디다 못한 혜영이가 항의하면서 문제가 불거진 것이었다. 감옥에서의 식사량은 최소한의 연명에도 부족할 정도다. 그것을 축내는 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한다.

감옥에서의 밥 한 알은 피 한 방울이다. 감방에서의 첫 식사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목에 걸려 넘어가지를 않는다. 바닥에는 득실거리는 이, 변기에서 넘치는 역한 냄새, 시꺼멓게 때가 낀 식기, 꼭지 없는 숟가락, 여기에 통강냉이 체가루와 물 한 그릇으로 식사를 즐기게 되기까지는 대략 1주일이 걸린다.

결국 배고픔이 모든 것을 맛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생명이 어떤 것이라도 먹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바로 꿀맛으로 변한다. 신짜들도 구짜들처럼 비닐봉지에 음식을 싸서 한동안 주물럭거려 떡처럼 만든 다음 줄어드는 것을 아까워하면서 한입 한입 베어 먹는다. 한입 베어물면 40번 이상 씹는다. 0.1%도 그냥 배설되지 말고 몸에 흡수되라고 공을 들여 씹어 삼킨다.

생명의 강냉이 가루 한줌

그래도 체가루 밥만 먹은 죄수들은 교정과 기합을 견디지 못해 무더기로 죽어나갔다. 죄수들은 안전원이 물어볼 때까지 자기 동료가 죽어도 보고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죽은 사람은 먹지 않기 때문이다. 체가루밥 한 끼라도 더 타먹기 위해 이틀쯤은 죽은 시체와 같이 지낸다.

“야, 그 새끼 언제 썩어졌어.”

안전원이 시체를 발견하고 물어오면,

“오늘 아침에 죽은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하면 그만이다.

안전원들도 이제 시체를 처리하다 못해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다. 치워도 치워도 시체는 굴러나왔다. 시체가 나오는 대로 치워내기도 벅차했다.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동안 죄수들은 죽은 자의 담요를 벗겨 덮고 잤다. 추위에 얼어죽은 시체가 담요를 차지하는 것보다 오늘 밤이라도 얼어죽을지 모를 죄수들이 가져가는 것이다. 그러면 죽은 사람 몸에서 쏟아져 나온 이가 이들 쪽으로 옮겨붙는다. 굶주림으로 생존본능만 남은 수용수들이 다투어 득실거리는 이를 잡아 손톱에 묻은 피마저 빨아먹는, 짐승보다 못한 광경.

바깥세상에서라면 바람에 날려가도 아깝지 않을 강냉이 체가루 한 줌. 그러나 감옥에서 그것은 사느냐 죽느냐를 의미했다. 그러나 누가 옳은가는 상관 없었다. 안전원은 그저 심심풀이할 좋은 일이 생긴 것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자, 이제부터 프로권투 ‘귀쌈때리기’하라. 감방장, 너부터 시작해.”

귀쌈때리기가 시작되었다. 혜영의 뺨에서 울리는 민망한 소리. 더욱 세차게 때려가는 두 사람. ‘힘껏 쳐라’는 안전원의 채근을 받아가며 10여분간 그녀들은 귀쌈때리기를 계속했다.

그때 안전원이 귀쌈때리기를 중단시키고 징그럽게 웃으며 말했다.

“야, 강혁이 일어낫.”

귀쌈때리기가 벌어지는 동안 내 얼굴이 고통과 분노로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던 모양이었다.

“어때. 너의 예메네 간나 맞아대는 걸 보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모욕을 느꼈다는 듯이 나를 무릎 꿇어 앉게 한 다음 두 손을 내밀라고 명령했다. ‘프레스 기합’이었다.

두 손을 내밀어 쇠창살 틈에 가로질러 놓으면 안전원이 군화발로 힘껏 찍는 것이 ‘프레스 기합’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아파서라기보다 분해서였다. 울면서 사정할 줄 알았던 안전원은 내가 이를 악물고 있는 것을 보자 사생결단을 내려는 듯이 날뛰었다.

나는 끌려나간 뒤 얼마나 맞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기절한 뒤 개처럼 질질 끌려서 감방으로 던져진 것만 어렴풋하게 생각난다. 감옥은 교정과 기합의 연속이었다.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는지, 그러한 고통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나를 낳아준 어머니 첫걸음 떼여줄 적에

사슬 사슬 차고 몸부림칠 아들을 바랐던가.

말해다오 말해다오 쓰디쓴 이 세상아

땅을 치며 울어봐도 산천은 대답없네.

죽음의 135일. 하늘이 뒤집힌다고 해도 내가 살아있는 한 결코 잊을 수 없으리라. 나는 비통하게 속으로 노래를 되풀이했다. 나의 비감한 심정은 언제나 이 노래를 타고 울려나왔다.

고문실에서 빵을 쥐어준 안전원

4월 초에 들어서면서 쇠살창 밖으로 보이는 살구나무에도 새싹이 돋고 있었다. 봄이 온 것이었다. 봄빛은 새로 태어난 아기의 웃음소리라도 들릴 듯 환했다. 그러나 감옥 안은 여전히 추웠다. 죄수들은 오히려 봄이 들면서 무더기로 죽어나갔다.

혜영이가 우리 감방 앞의 창문을 닦게 되었다. 나는 며칠 만에 혜영이를 봤다. 그동안 몹시 수척해 있었다. 내 모습도 처참했던지 혜영이가 나를 보는 순간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그녀의 얼굴 위로 소리없이 눈물 방울이 굴러떨어졌다. 악독한 보위부 고문을 받으면서도 그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안전부의 교정과 기합에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보위부나 안전부 사람들은 그녀를 보고 독종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그녀는 수척해진 나를 보고는 눈물을 글썽거리다가 소리없이 떨구었던 것이다.

그녀는 물소래와 걸레를 가지고 부지런히 우리 앞을 왔다갔다 했다. 아마 어떤 기회를 노리는 것 같았다. 계호원이 화장실에 간 순간 그녀는 감방에 앉은 내 앞으로 비닐봉지를 던졌다.

그 속에는 체가루 밥덩어리와 사탕 두 알이 들어 있었다. 혜영은 그날 아침 자신이 청소하러 나간다는 것을 알고 밥을 먹지 않고 비닐봉지에 담았던 것이다. 사탕은 면회를 한 사람이 안전원 몰래 가져와 혜영이한테 준 것을 그동안 먹지 않고 두었다가 함께 보낸 것이었다.

나는 행복했다. 체가루 밥 한 덩이와 사탕 두 알 때문은 아니었다. 감옥의 힘도 그녀를 굴복시키지 못했다. 그녀의 꿋꿋한 마음이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그녀의 정신보다 빛나는 것은 없었다. 나는 한없이 행복했다. 어떤 부귀영화도, 진수성찬도 내가 감옥에서 맛보는 그녀의 사랑보다 더할 수는 없었다. 사랑은 칼보다도 강하다는 신념이 내 몸 안에서 뜨거운 불길처럼 일어났다.

회령안전부 감옥에서 우리는 행운을 만났다. 그것은 심문을 맡은 나이 지긋한 안전원이 더이상 우리를 고문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우리와 함께 도착한 두툼한 심문철을 읽고서 이미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회령안전부 감옥에서 시작된 심문의 첫날. 그 안전원은 나를 고문실로 데리고 갔다. 그 참담한 심정이란…. 이제 받게 될 고문을 생각하자 먼저 온몸이 벌벌 떨려왔다. 고문받기 직전의 그 고통스러운 전율 만큼은 익숙해질 수 없었다.

고문실에 들어서자 그 안전원은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그것은 까맣고 딱딱한 빵이었다. 조선 빵 7개였다. 그는 나에게 먹으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먹으려 하는 순간 그가 나의 뒤통수를 후려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었다. 그는 그렇게 떨고 있는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다시는 중국에 가지 말아야지.”

그는 점잖게 타이르고 있었다. 고문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에게 은근히 중국의 실정을 물었다. 나는 무어라고 대답하기 어려웠다. 그는 이미 중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혼자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빵을 먹으라고 계속 권했다. 그제서야 그의 진심을 알 것 같았다. 나는 빵을 먹었다.

그 다음부터 나는 그가 나타나면 고문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또 빵이 있나 하고 살펴볼 정도가 되었다. 나는 죽음의 고문실에서 고문을 당하지 않고 빵을 씹고 있었다. 그의 배려로 나는 살아서 회령안전부 감옥을 나갈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결국 중도에서 기력을 탕진하고 감옥의 귀신이 되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인정어린 그의 마음씨가 감옥생활을 견뎌나갈 여력을 준 것이다.

회령안전부 감옥에서 지낸 40여일간의 ‘승냥이 생활’이 끝났다. 그동안 ‘죽음’은 가장 친근한 사이처럼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승냥이 생활 초기에 죽음은 낯설고도 공포어린 것이었다. 그러나 40여일을 지나면서 죽음은 공포와 광기의 외투를 벗고 평범하고도 흔하디 흔한 일상의 하나로 다가왔다.

살아나온 것은 ‘신의 기적’이었다

1998년 4월29일 아침.

다급하게 계호원이 소리쳤다.

“이름 부르는 자들은 나오라.”

혜영이도 불려 나와 있었다. 회령보위부 감옥에서 이곳으로 올 때는 모두 68명이었다. 그 가운데 34명이 호명되었다. 꼭 절반인 나머지 34명은 사망한 것이다. 나는 중국에서 75kg을 유지했다. 보위부 감옥의 고문실에서 어느날 체중을 달게 했다. 그때 42kg으로 줄어 있었다. 중국에서 잘 먹었기에 극심한 체력 소모 속에서도 살아남은 것이다. 보위부 감옥에서 일차로 9명(총살 3명은 별도)이 사망한 데 이어, 불과 40여일 만에 34명이 죽어나간 것이다. 이름 불린 우리 34명은 실로 수명이 긴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살아남은 사람들도 ‘신의 기적’이 없는 한 죽은 목숨으로 분류된다. 갈수록 체력이 소진되면서 사태는 급속하게 기울어진다. 감옥이나 관리소 등에서는 살아서 나간다는 기약이 없다. 그러나 죽어서 나가는 것은 시간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뜻에서 금방 호명된 34명에게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즉 한가닥 살아남을 가능성이 희미하나마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기적이라면 분명 기적이었다.

김일성 사망 이후 처음으로 1998년 7월에 최고인민위원회 대의원대회의 대의원(한국의 국회에 상당) 선거가 있다는 것이었다. 김정일이 모든 사람의 주민등록을 확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인구의 대대적인 유동현상과 사망으로 조선의 주민 수는 격감하고, 또 그 소재현황이 일대 혼란에 빠져 있었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한다고 해도 먼저 투표인 수를 확보하는 것이 긴급한 사안인 것이다. 이를 위해 죄수들인 우리들까지 선거권자로 들어간 것이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 생사를 가름하는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렇게 하여 40여일간 지하감옥과 반지하감옥에서 심문 아닌 심문을 받아야 했던 예심기간이 막을 내린 것이었다. 고문과 감옥에 찌들어 살갗으로 뼈다귀를 싸놓은 듯한 몸이었지만 우리는 바깥 공기를 마시면서 아직 살아 있음을 느꼈다. 우리는 이제 보위부 손아귀에서 벗어나 다른 안전담당기관으로 넘겨지게 되었다. 사형을 면한 것이었다. 그것으로 우리는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가닥 희망을 어렴풋하게 가질 수 있었다.

이날 오전 10시, 이동을 위한 수속절차가 끝났다. 우리는 포승에 묶인 채 동방홍(東方紅；중국산 군용트럭) 트럭 2대에 분승했다. 목적지는 함경북도 안전부 집결소였다. 곧 청진 도집결소였다. 무장을 갖춘 보위원들이 탑승하여 우리를 감시했다. 트럭은 두만강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오후 1시쯤 되었을 때다. 보위원들은 차에서 내려 점심을 먹고 있었다. 이때 주변이 소란해졌다. 죄수 가운데 한 사람이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노려 포승을 풀고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는 두만강으로 뛰어들었다. 강을 건너면 중국 땅이었다. 그러나 그는 물살에 휩쓸려 빨리 달아나지 못하고 기우뚱거리고 있었다. 4개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그는 물 속으로 잠긴 뒤 다시 솟아나지 못했다. 우리는 이 때문에 청진 도집결소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고개를 숙인 채 있어야 했다. 밤 9시. 우리는 새 거주지에 도착했다.

물 담은 쇠양동이를 목에 걸고

야, 대가리 까라(고개를 숙이라”).

청진 집결소 관리장의 첫 마디였다.

“높은 노동강도에서 사상을 개조해야 한다. 이것이 당의 요구다.”

관리장은 그날 밤으로 수용자 생활준칙 12개항을 암기하라고 명령했다. 아침 검열 때까지 외우지 못하면 처벌이었다. 관리장의 별명은 ‘살모사’. 예외도 사정도 두지 않고 외우지 못하는 사람은 골통이 깨져 나간다는 것이었다.

감옥소나 집결소나 ‘승냥이 생활’을 하는 점에서는 쌍둥이나 다름없었다. 차이가 있다면 감옥생활은 교정과 기합 속에서 피를 말리고 살을 깎아내지만, 집결소에서는 높은 노동강도와 ‘스파르타 교육’으로 뼈짬(뼛속)의 물을 뽑아낸다.

스파르타 교육이란 눈에 거슬리는 죄수들을 몽둥이로 닥치는 대로 때리는 것이었다. 집결소의 노동강도를 말하면, 18세기 흑인노예를 착취하던 노예주들이 그것을 보았다면 그 자리에서 기절할 것이다. 차라리 자신들은 자선가가 아니었나 의심할 것이었다. 가정이 아니라 사실이 그랬다.

안전원들조차 집결소를 ‘18세기의 한 구석’ ‘18세기 한 마을’이라고 부른다. 그 속의 죄수들은 ‘일하는 로봇’ ‘꼬리 없는 황소’라고도 한다. 영화에서나 본 왜정 때 징용간 사람들이 당했던 노동 강도보다 몇십배나 더 처참할 것이다.

도안전국 예심과에서 관할하는 ‘범죄자’들이 자신의 죄행을 자인하지 않을 때 도집결소로 보낸다. 혹독한 노동을 통해 범죄자들을 굴복케 한다. 노동강도는 그러한 목적을 충족시킬 정도였다. 오죽 바쁘게 돌아갔으면 ‘날아가는 비행기를 먹었다’고 할까.

새벽 5시. 식전작업에 동원된다. 문자 그대로 아침 식사를 하기 전이다. 작업시간에는 일절 걸어다닐 수 없다. 뛰어다녀야 한다. 하루를 뛰어다니다 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저녁. 저녁은 작업총화시간. 그날 땀흘린 결과에 따라 지적받은 사람에게는 잔인한 교정과 기합이 따른다. 몽둥이 타작을 피할 수 없다.

지적받은 사람들은 허리를 90도로 꺾고 머리를 쳐들게 한다. ‘벤츠’라는 교정의 시작이다. 그리고 목에 쇠양동이를 건다. 죄의 정도에 따라 각각 일정량의 물이 채워진다. 어느 누구도 30초를 견디지 못하고 생땀을 쏟는다. 더는 참을 수 없는 한계에 이르면 죄수들은 소리라도 지를 듯이 입을 한껏 벌리게 된다. 그러면 안전원이 신발짝을 죄수의 입에 물린다. 이 신발이 ‘벤츠’다. 찰랑거리는 물이 가득한 양동이나 신발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떨어뜨리면 시간이 연장된다. 이런 기합과 교정은 내가 아는 것만으로도 수십가지가 될 것이다.

얼마나 힘이 들고 고달팠으면 월경자들이 “감옥의 승냥이 생활이 꽃시절이었다”고 회상했을까. 참으로 어처구니없게 감옥생활이 그리웠다. 감옥의 ‘승냥이 생활’을 그리워하게 하는 이곳 집결소 생활은 그러면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2~3일에 한 구 꼴로 나가는 뼈만 남은 시체들. 수용자들은 모두 뼈에 가죽만 덧씌운 듯했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모두 움직이는 ‘20세기 생물표본’들이었다.

도집결소 생활에서 금보다 귀한 것이 소금이었다. 집결소에서는 절대로 수용자들에게 소금을 주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소금성분은 깜뿌기 밥 속에 들어 있는 셈이었다. 주식이자 유일한 먹거리인 깜뿌기 밥이란 깜뿌기라는 바다풀을 강냉이 체가루와 같이 쪄낸 것이다. 하루 세 끼 최소한의 맨 깜뿌기 밥만 먹고 상상할 수 없는 노동과 매질 을 견뎌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가장 확실하게 죽음으로 다가가는 길이다. 안전원들도 자인한다. ‘여기에 들어오면 30% 사망, 30% 병신, 그리고 나머지 30%는 살 수 있다’고. 그러나 이 말은 안전원들이 불어댄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 말을 뒤집으면 ‘살 수 있다’가 아니라 절대다수의 수용자들이 죽어나간다는 뜻이 된다. 회령시 보위부 감옥, 안전부 감옥, 함북도 집결소, 함남도 도집결소를 거쳤던 나의 결론은 99%의 죽음뿐이다.

그러한 결론은 이론적 추산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내가 살아남기까지 나는 수많은 시체를 묻어야 했다. 한삽 한삽 흙을 덮어주면서 ‘나도 결국 저렇게 되겠지’하는 죽음에의 절망과 의구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분명히 죽음은 살아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가깝게 다가서 있는 동행자였다.

우리는 안전원의 총부리 앞에서 죽은 동료의 시체를 파묻었다. 땅을 50cm 깊이로 파고 시체를 묻는다. 그 다음 흙으로 덮어 평토해버리면 끝이었다. 따로 공동묘지가 없다. 다음날 지나치면서 보니 평토한 무덤은 밭이었다. 일반 주민들이 그 위로 강냉이를 심고 있었다. 때는 5월 말. 그 이후 지나칠 때마다 눈길을 주게 되었다. 그 주변의 강냉이는 더욱 무성하게 자랐다.

이른 여름날 우리는 모내기에 동원되었다. 허약해 비틀거리던 수용자들은 물매미나 개구리를 보면 날쌔게 몸을 날려 잡아먹었다. 우렁이, 뱀, 참새 등 살아서 움직이는 것은 모두 잡아먹었다. 그것은 완벽한 동물의 본능 그대로였다. 인간으로서는 퇴화한 것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동작은 어느 동물의 먹이사냥에 뒤지지 않는 민첩성을 가지고 있었다. 집결소 사람들이 지나간 자리는 풀도 돋아나지 않는다나. 그것이 사람으로서 진화인지 퇴화인지. 그런데도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은 그 자체가 생명에 대한 의지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맥이라고 불렀다. 도집결소에서 생존 이론은 오직 하나, ‘맥을 놓으면 죽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생명이 강제하는 마지막 집념이었다.

수용자들에게 암기시킨 적도 없는데 한결같이 이 이론이 적용된다. 수용자들은 모두 철두철미 이 ‘이론’을 지킨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눈에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씹어삼킨다.

“살아남는 자가 승리자다”

집결소에서 또 한 사람의 송명준을 만났다. 그의 이름은 김명수였다. 그는 비록 이곳에서 처음 나와 얼굴을 대했지만 어떤 상황에도 선함을 잃지 않는, 한없이 신뢰감을 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볼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혁아, 이 생활에서 살아남는 자가 승리자다.”

눈앞에 펼쳐진 것이 온통 죽음뿐인 지옥이라고 하더라도 오직 생명으로만 승리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는 항상 나를 격려했다. 그런 그가 전신마비로 쓰러졌다. 아, 정신은 맑디 맑은데 육신은 더이상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온 것이었다. 성성한 사람도 살아남기 어려운데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게 된 그가 어떻게 살 수 있으랴. 집결소 안에서 쓰러졌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의 말과 반대로 그는 이제 패배자로 몰리고 있었다. 죽음은 누가 보아도 완연하게 그에게로 다가서고 있었다. 그도 충분히 각오하고 있었다.

죽음, 누구나 하나씩 부둥켜 안고 있는 죽음. 언젠가 그 죽음이 우리를 부둥켜 안고 길을 떠나겠지. 누구나 가야 할 길이었다. 그러나 28세의 젊은 인생을 감옥 속에서 묻어야 하는 명수의 운명이 나는 너무도 억울했다.

왜, 우리는 정체도 모를 공포에 둘러싸여 징벌과 굶주림에 짓눌린 채 꽃다운 나이를 허망 속으로 던져야 하나. 우리가 세상이며 인생을 미처 알기도 전에, 아니 인생의 기쁨을, 보람을 미처 새겨보기도 전에 왜 생명은 먼저 우리에게서 등을 돌리나. 우리는 왜 가장 빛나야 할 젊은 날에 헛되이 죽음을 맞이해야 하나.

마른 걸레로 아무리 쓸어내도 그의 몸에는 이가 무리를 지어 바글바글 끓었다. 이떼는 숨을 거두려는 것을 아는 것처럼 사람을 떠나고 있었다. 새벽 2시였다. 명수는 신호라도 보내듯이 잡았던 내 손에 한번 더 희미하게 힘을 준 뒤 눈을 감았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승리를 주장하던 명수는 그렇게 떠났다.

그러나 죽었다고 해서 명수가 패배한 것은 아니다. 명수는 지옥 속에서 비열하게 살아남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시대를 가리고, 현실을 지배하는 비열한 폭력 앞에서 굴복하지 않으려 했음을 나는 믿는다. 명수가 나에게 들려주려 한 것은 오직 생명으로만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는 뜻임을 나는 이해한다. 나는 그가 지상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이곳에서마저 생명을 노래했던 진정한 승리자로 기억한다. 나의 벗 명수는 그렇게 눈을 감았다. 명수의 고향은 함경북도 명천이라고 했다. 그곳에는 갓 결혼한 아내가 있다고 했다.

여자감방에 괴질이 돌다

나는 도집결소에 옮겨온 뒤 얼마되지 않아 죄수반장이 되었다. 안전원의 눈에 그나마 내가 몸집이 있어 보인 듯했다. 고문으로 빠졌던 몸무게가 55kg까지 회복되고 있었고 감옥생활에도 적응을 하고 있었다. 죄수반장은 안전원의 앞잡이 노릇을 해야 하지만, 죄수를 대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죄수들에게는 또한 선생님(안전원)의 대리자이기도 했다.

혜영은 매일 아침 나를 기다렸다. 여자죄수들이 식당에서 먼저 식사를 했다. 그 다음이 우리였다. 혜영은 나오는 길에 기다렸다가 꼭 나를 보고 갔다. 그러면서 항상 손에 무언가 쥐어주었다. 그것은 자신이 먹지 않고 남긴 깜뿌기밥이었다. 비닐박막에 싸서 나에게 건네고는 자기 일행 쪽으로 사라졌다. 처음엔 질색을 하고 꾸짖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간절한 눈빛으로 말없이 건네는 그녀 앞에서 나는 더이상 저항할 수 없었다.

그속에는 모든 대화가 들어 있었다. 아니 거역할 수 없는 사랑의 힘이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라도 애정을 표시하지 않고는 감옥생활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는 기운을 얻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녀는 나를 보면 항상 활짝 웃는 얼굴이었다. 여위었어도 얼굴에 떠오르는 그 기쁨을 지우지 못했다. 그녀는 감옥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와 함께 있는 것이었다. 그곳이 감옥이라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매일 아침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했다.

여자감방에 괴질이 돌았다. 괴질에 전염된 여자들은 입과 귀에서 피를 흘렸다. 여자감방은 특히 위생상태가 나빴다. 여성들의 생리 처리도 불결할 수밖에 없었다. 더러워진 헝겊조각으로 처리하고 그것을 다시 사용하였다. 120여명이 갇힌 여자감방은 악취가 진동했다. 소독약이 있을 리 없다. 나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볏단을 구해왔다.

여자감방의 통로 입구에 볏짚을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그 연기가 감방 안으로 흐르도록 유도했다. 불이 붙은 볏단을 횃불처럼 들고 감방을 돌며 연기를 쏘였다. 이것으로 괴질이 멈추기를 빌면서.

괴질은 한 달쯤 지나면서 저절로 없어졌다. 연기를 쏘였기 때문에 사라졌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마치 효과를 본 것 같았다. 더이상 괴질은 번지지 않았다. 그동안 앓고 누웠던 사람들도 1주일 남짓 지나면서 일어나 앉았다. 다행히 그 병으로 죽은 사람은 없었다.

나는 죄수반장이라는 위치를 십분 활용했다.

“일절 찬물을 마셔서는 안 된다.”

이건 내가 내린 명령이었다. 아무리 더워도 반드시 끓인 물을 마시도록 했다. 찬물을 마시면 강한 ‘교정’으로 벌을 주었다. 남자들에게는 담배도 피울 수 없게 했다. 독한 담배 한 모금에 ‘핑’도는 허약한 죄수들이었다. 그래도 죽어라고 담배를 찾아댔다. 그러나 죄수반장 앞에서 반항하는 죄수는 있을 수 없었다.

혜영이의 죽음을 확인하다

6월 중순이 되었다. 우리는 도안전부의 땔감을 마련하기 위한 벌목작업에 동원되었다. 제일 건장한 20명을 추리는데 나도 포함되었다. 청진시 나남구에서 조금 떨어진 깊은 산속이었다. 수용자 가운데서 체력이 좋아 뽑혔다고 하지만 깜뿌기밥을 먹고 산비탈을 따라 통나무를 끌고 간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비틀거리다 통나무에 깔리기 십상이었다. 앉았다 일어나도 눈앞에 별찌(별똥)가 흘렀다.

그렇게 1주일을 일하다 내려오니 혜영이 보이지 않았다. 서로 말할 수 없는 수용자라 내놓고 물어볼 데도 없었다. 하루, 또 하루. 피를 말리는 날이 하나씩 접혀갔다. 감옥마당 저쪽으로 세상의 끝이 보였다. 그 끝까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기어코 찾아야 했다. 나의 사람 이혜영. 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4일이 지났다. 나는 까맣게 말라가고 있었다. 감옥에서 개인적 관심을 가지거나 표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벌써 5일째. 아침에 핀 꽃처럼 눈부시게 웃으며 나를 기다리던 혜영은 여전히 나타나질 않았다. 그녀가 방글방글 웃으며 나를 기다리는 환각만 둘러쌀 뿐이었다. 조용한 기회에 호실장(감방단위 실장)에게 물어보았다. 벽에도 귀가 있다는 집결소에서 끄나풀이 두려운지 호실장은 자리를 피했다. 죄수의 행방은 알려고 해서도, 발설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불안에 떨었다. 그녀는 어떻게 된 것일까.

나는 화목장에서 구한 담배를 경비에게 뇌물로 주었다. 그는 같은 죄수지만 반장을 맡고 있는 나로부터 뇌물을 받자 황송해했다. 그리고는 별생각이 없는 듯이, 무심하게 말을 건넸다.

“야, 내가 없는 동안 별일 없었어? 또 몇 사람은 죽어나갔겠지.”

그도 무심하게 대답했다. 내가 없는 동안 죽어나간 월경자는 여자 4명, 남자 1명이었다고 했다. 가슴이 예리한 칼에 베인 듯 섬뜩했다.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326호냐’고 되물어볼 수도 없다. 혜영의 죄수번호였다. 있는 구실 없는 구실 다 붙여 식당칸으로 갔다. 급식인원을 헤아리는 척하면서 급식대장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내가 산에서 내려온 직후 급식인원 7명이 줄어들어 있었다. 혜영이는 틀림없이 그 속에서 사라진 것이다.

나는 경비에게로 갔다. 다시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참, 월경자들은 어디에 묻었어.”

“우리 집결소 뒷산에 묻었습니다.”

“야단이구나, 여자 4명이 죽었으면 4명이 장가 못 가겠네” 하며 나는 농을 쳤다.

“흔한 게 여자인데 근심할 것이 있습니까”라며 경비도 제법 농담을 받아주었다.

나는 내가 알고 싶었던 심중의 질문을 던졌다.

“곱게 생긴 계집이 있던?”

나는 ‘없었습니다’는 대답을 간절히 바랐다. 그랬다면 비록 불가능한 일로 접어두었지만 그래도 살아서 나간 2명 가운데 혜영이가 끼어 있으리라 기대해 볼 수도 있었다.

“다른 것들은 모르겠는데 한 계집애는 정말 ‘아깝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긴장하면서도 짐짓 건성인 듯 “누군데?” 하고 물었다.

“반장동지와 함께 온 4·29조(우리는 4월29일에 도집결소에 도착하여 4·29조라 불렸다)에 있던 계집애입니다. 동복을 입었는데 자주색 옷이었습니다.”

더 물어볼 것이 없었다. 중국에서 체포되던 날, 혜영이는 그 옷을 입고 있었다. 아, 죽음으로 떠나는 길에 혜영은 다시 그 자줏빛 옷으로 단장했단 말인가. 나는 살고 싶지 않았다. 아니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죄였다.

“물러가라.”

마지막 정신을 가다듬어 경비를 돌려보냈다.

나는 텅 빈 공중에 두 손을 내밀었다. 아, 어디엔가 혜영이가 있었다. 내가 벌목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햇빛 속에 드러난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혜영의 손길을 분명히 느꼈다. 혜영은 깜뿌기밥을 전해주고 내 손을 살그머니 잡아주던 때처럼 나의 손바닥에 그의 손을 포개고 있었다. 나는 그 손을 잡고 진심으로 같이 떠나기를 원했다. 나는 혜영의 손을 잡은 채 의식을 잃고 천천히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감방 동료들이 나를 옮겨놓은 모양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나는 자리에 누운 채 정신이 혼미해져 자주 까무러치곤 했다. 밥은 쳐다보기도 싫었다. 식음을 전폐했다. 나에게 바람이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죽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났는지도 몰랐다. 나는 진정으로 그렇게 죽기를 원했다.

“너 하나는 살아나가서…”

눈을 떴다. 누군가 내 입에 죽물을 떠넣고 있었다. 감옥에서 죽물이라니. 호사였다. 죽을 넣고 있는 것은 명선이었다. 경비를 담당하는 41세의 중년. 주먹이 세고 날파람 있고 결단성 있는 사나이.

“형님.”

나는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만하오, 반장. 운다고 해결되는 것이 있는가. 여기가 어딘지 알고 그런 모험을 하는가. 죽으면 끝장이야. 살아서 해뜨는 날을 보아야지. 난 반장의 마음을 잘 알아.”

그는 나의 손을 꼭 잡아 쥐었다. 조용해진 가운데 또 말해주었다. 그것은 진정한 용기와 신뢰 없이는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네가 죽으면 우리의 억울한 사정을 누가 알아주겠니. 너 하나는 반드시 살아나가서 우리의 억울한 일을 바깥세상에 전해주기 바란다.”

감방 동료들은 점심밥에서 한숟가락씩 모아 나에게 내놓았다. 해골 같은 그들이 자신의 살점을 내놓은 것과 무엇이 다르랴. 혼자 살아남은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부탁 아닌 부탁 때문에 내가 살아남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진정 감옥에서 살아서 나간다는 것은 기적이었다. 감옥에서 살아서 나왔고, 국경을 다시 넘은 지금. 갈 곳 없는 도망자라고 하지만 이제 나는 자유의 몸이다. 바깥세상을 향하여 우리의 진실을 말하고 있는 지금까지 어찌 나 한 사람의 힘으로 왔겠는가.

나는 증오의 힘으로 일어섰다. 사랑하는 모든 것이 사라졌다. 불탄 자리에 남은 재처럼 나에게 남은 것은 새카만 증오뿐이었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는 속담이 진실이기를 나는 빌었다. 원수여 제발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자. 나는 속으로 맺힌 독기를 물고 살아났다.

하늘과 땅,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이 야속하기만 했다. 혜영이는 나에게 그리움과 아픔만 남겨놓은 채 떠났다. 나는 이 세상에 사나이로 태어나 어찌하여 자기 여자 하나 살피지 못하여 저승길을 걷게 했는가.

어떤 역경을 치러야 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도 웃으면서 마지막 ‘키스’를 부탁하던 그녀, 악독한 보위부 고문과 잔인한 안전부 감옥의 승냥이 생활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던 그녀, 고문의 나날에도 굳게 비밀을 지키며 오히려 나를 격려하고 위로하던 그녀, 어떠한 모욕에도 더럽혀지지 않던 그녀. 사랑으로 방울방울 눈물을 흘리던 그녀, 언제나 사랑과 믿음으로 나를 고난 속에서 보호하고 따뜻하게 가려준 아름답던 그녀.

누가 그녀의 임종을 지켜주었을까. 두보의 시를 외며 곱게 핀 꽃이 더욱 서럽고 새도 이별을 탄식하는 어려운 시절을 견디던 그녀, 그녀는 이 쓰라린 시절에 곱게 핀 꽃이었다. 하늘도 그녀의 죽음을 슬퍼함인지 삭막한 집결소의 지붕과 담장 위로 잔잔히 보슬비를 뿌리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간 자리에 그리움이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부모도 여읜 나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절통하게 깨닫게 되었다. 정말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이었던가. 영원히 혼자 서서 죽어갈 때까지 그리움에 젖어 있을 나에게 그 무엇이 다시 소중할 수 있는가.

만약이라도 그녀가 살아만 있다면, 두 팔, 두 다리가 없어도 살아 있기만 하다면 나는 주저없이 그녀를 나의 영원한 벗으로, 생활의 반려자로 삼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 곁에 없다. 구름 타고 날아가 초가삼간 짓고 계수나무 아래서 다정하게 절구 찧는 잿빛 토끼가 되었다.

시멘트보다 못한 사람의 목숨값

우리로서는 참변이었다. 그러나 안전부측은 눈도 깜빡하지 않는 일이었다.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만큼도 여기지 않는 안전원들은 청진시 라남구역 수산물가공공장 증축현장으로 죄수들을 사정없이 ‘돌격’시켰다. 공사판의 안전을 신경쓸 이유가 없는 안전원들이었다. 더구나 죄수들의 안전이라니.

집결소측은 죄수들의 노동력을 철저하게 착취했다. 우리는 볏짚과 진흙, 석회석을 다져서 토피(벽돌을 찍어내는 틀)에 넣고 하나씩 벽돌을 만들었다. 시카린 벽돌이다. 죄수 1인당 하루 생산량이 500개였다. 한 개 값이 2원으로 죄수 한 사람의 노역으로 하루 1000원어치가 나오는 것이었다. 집결소는 이것을 팔아 선생님(안전원)들의 양식을 구입했다.

수산물가공공장 건설작업에 죄수들이 동원되는 것은 공장측은 눅은 값으로 일손을 부릴 수 있고, 집결소측은 노임을 가로챌 수 있기에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은 것이다. 그러나 죄수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노동’뿐이었다.

날이 갈수록 허약자가 늘어났다. 강도 높은 노동은 그칠 날이 없는데 먹는 것은 깜뿌기밥으로 변함이 없다. 변심하거나 꾀를 부리면 몽둥이로 다스린다. 현장에서 쓰러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우리 같은 수용수들의 몰골을 보라. 누렇게 뜬 얼굴로 때때로 피를 토한다. 제발로 잘 걷지도 못 한다. 누런 콧물이 뚝뚝 떨어진다. 귓속은 전동기가 돌아가는 듯 와글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시력이 떨어져 사물이 어렴풋하다.

그런 상태에서 우리는 시카린 벽돌을 짊어지고 오르내리며 건물을 쌓아올렸다. 쌓아올린 벽체가 채 마르기도 전에 ‘돌격’만 외치는 안전원의 강박에 따라 급속하게 공사가 진행되었다. 벽체가 5층까지 올라갔다. 건물 외양이 일단 마무리되었다. 땀에 젖어 비틀거리며 작업하던 수용자들이 기진한 몸을 끌며 증축공사장의 마감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집이 무너진다.”

그 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5층 높이의 건물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꽝 꽈르릉.”

집이 무너진다고 외친 사람도 그 속에 파묻혀버렸다.

“사람이 묻혔다.”

우리는 달려갔다. 여기저기서 수용자들이 사람을 구하기 위해 뛰어왔다. 정신없이 달려들어 밑에 깔린 수용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벽돌더미를 집어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내는 것은 우리가 한 장의 벽돌이라도 빨리 치우는 데 달려 있었다.

이때 나의 눈이 뒤집혔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 달려오는 수용자들을 안전원들이 시멘트 창고 쪽으로 빼돌리고 있었다. 공사판에서 흘러들어간 물이 시멘트 창고 쪽으로 향하자 시멘트를 먼저 건져내려는 것이었다.

그 광경을 본 나의 눈에서 새파란 불꽃이 튀었다. 나는 곡괭이자루를 거머쥐고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시멘트 창고 쪽으로 가려던 사람들을 제지하며 소리쳤다.

“어디로 가는가. 시멘트가 중한가, 사람이 중한가. 저 밑에는 당신들의 아들, 딸, 동생 되는 사람들이 깔려 있다. 저들의 목숨은 분과 초를 다투고 있다.”

나는 한쪽 손으로 사고현장을 가리키며 그쪽으로 빨리 가라고 지시했다. 밑에 깔린 사람은 내가 인솔해 온 월경자 가운데 일부였다. 수용자들은 어느쪽 명령을 따라야 할지 모르는 듯 우왕좌왕했다. 두말할 사이가 없었다.

“돌아서지 않는 자들은 무조건 죽이겠다. 돌아섯.”

나의 눈은 뿜어져 나오는 독기로 새파랬을 것이다. 벽돌무더기에 파묻혀 숨을 쉬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답답함이 내 가슴에서 독기로 치솟는 것 같았다. 한순간도 지체할 수 없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벽돌제거 작업을 거들어야 했다. 나는 다시 옆에 선 경비에게 명령했다.

“야, 경비. 우리 사람이건 사회사람이건 스파르타 교육을 시켜라. 눈치보는 자들은 사정보지 말라.”

현장지휘를 맡은 안전원은 21살의 애숭이였다. 갑자기 들이닥친 사고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증축 공사장은 순식간에 폭탄을 맞은 것처럼 폐허더미로 변해 있었다. 모두가 달려들었다. 이윽고 13명이 모두 드러났다. 사망자가 6명이었다(3명은 즉사, 나머지 3명은 병원에 도착한 뒤 죽었다). 팔다리가 부러진 사람이 5명, 머리나 허리에 타박상을 입은 사람이 2명이었다.

나는 구조결과를 보고 받는 즉시 수산물 가공공장 지배인을 찾았다.

“지배인 없는가?” 하고 사람 속에다 대고 소리쳤다. 키가 장대 같은 녀석이 껌을 씹으면서 자기라고 대답했다.

“빨리 차를 내 이 사람들을 병원으로 호송하시오.”

한마디로 말했다. 그러나 지배인의 태도는 냉랭했다. 자동차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렴 공장 지배인이 죄수반장의 말을 듣겠는가. 나도 길게 말할 것이 없었다. 옆에 있던 곡괭이를 번쩍 집어올렸다.

“이 새끼. 골통을 찍을 테다. 그러면 병원에 차 타고 가겠지. 해결책은 이것밖에 달리 없어!”

벼락같이 소리를 치며 내리찍었다. 지배인이 용케도 몸을 피했다. 사람을 살리고 못살리고가 나의 발악에 달려 있었다. 지배인은 마지못한 듯 동의했다. 차가 왔다. 다친 사람들을 실으면서 나는 미적지근한 지배인에게 다짐을 놓듯 한마디 보탰다.

“병원에 가서 만약 이 사람들이 잘못되었을 때는 네 새끼 간을 씹어 먹을 테다.”

나는 안다. 우리가 목숨을 지탱하는 방법은 악밖에 없다는 사실을. 현실이 우리에게 남겨준 것은 그것밖에 없다는 것을. 그렇지만 여기서 부상당한 사람들은 결국 얼마 가지 못해 죽을 것이다. 성한 사람도 살아 남을 기약이 없는데 어찌 관 속에 인정을 넣어놓고 사는 조선의 현실에서 살아 남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선거 덕분에 석방되다.

멀쩡한 사람도 미치게 하는 나라. 얼마나 험악하기에 멀쩡한 사람이 미칠 수가 있겠는가 하고 되물을 것이다. 조선의 현실을 겪지 않은 사람이 어찌 알겠는가. 말해준다고 알 것인가. 이해가 아니라 그런 사실 자체를 믿으려 들지 않을 것이다.

해마다 식량타격 때문에 사람들의 정신은 팽팽하게 당겨진 나머지 약간만 스쳐도 신경질을 부리고 악을 쓴다. 굶주리다 못해 환각이 들어 눈에 보이는 것이 온통 먹을 것으로 보인다. 대낮에 두 눈을 멀건히 뜬 상태에서 먹을 것의 환각 속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보았는가. 그 속에서 집단으로 퇴화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알겠는가.

조선당국은 처음에는 인육을 먹은 사람을 공개처형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비밀처형으로 바꾸었다. 공개처형이 징벌 효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공개처형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민심이 흉흉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비밀처형으로 바꾼 것이다. 아비가 자식을 잡아먹고, 오빠가 누이동생을 잡아먹는 사태는 극단의 경우라고 치자. 그러나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도 시멘트를 먼저 구하겠다는 것이 어찌 감옥 안의 일이기만 하겠는가.

7월1일. 김정일이 선거를 확정지었다고 했다. 6월 내내 선거에 대한 선전이 이어지더니 결국 선거를 치르는 모양이었다. 선거에 동원시키기 위해 안전원들은 우리를 출신지역별로 분류했다. 함흥으로 가는 일행은 모두 28명이었다.

‘4·29조’에서 13명의 이름이 불렸다. 다른 지역으로 옮겨지는 4·29조 가운데 내가 맨 마지막으로 호명되었다. 그것은 서운하고도 두려운 것이었다. 내가 일어선 자리 뒤로 우리 조에는 아무도 없었다. 3월25일, 월경죄로 회령 보위부 감옥에 합류한 128명이 회령안전부 감옥을 거쳐 34명으로 줄어 이곳 청진 도집결소로 왔었다. 그것이 4월29일. 불과 60여일 만에 다시 21명이 죽고 13명이 살아남은 것이다. 생존이 확인된 13명을 제외한 나머지 115명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석방된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13명은 승리자들이다. 승리자라기보다 불사조라고 불러도 좋다. 나는 뼈와 살가죽으로 살아남았다. 혜영이의 사랑으로,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이 사라진 뒤의 증오심으로.

함경남도로 가는 일행 28명 가운데 4·29조 소속은 나까지 3명이었다. 한 사람씩 수갑이 채워졌다. 청진의 함경북도 집결소에서 함경남도 함흥의 도집결소로 떠나는 것이었다.

청진시 농포 도집결소의 육중한 철문이 소리를 내며 열렸다. 김정일이 지시한 선거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우리 같은 죄수까지 동원되는 것이었다.

철문을 나서면서 나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사랑하는 혜영이, 명수, 그리고 낯익은 얼굴들. 집결소 뒤편의 황량한 산기슭에 그들을 묻어놓고 떠나는 나의 마음은 누군가 칼로 사정없이 찌르는 듯했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함흥으로 가기 위해 청진역두로 갔다. 역광장 한 귀퉁이에 죄인이라 머리를 숙이고 앉았는데 사람들은 우리를 동물을 보듯 바라보았다.

청진에서 함흥으로 가는 기차에 실렸다. 기차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기차는 가다서다를 되풀이했다. 정상이라면 5시간 정도 걸릴 것이 3일이 소요됐다. 누가 우리 같은 죄수를 돌보아줄 리도 없었다. 우리는 기차칸에서 꼬박 3일간을 물 한모금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수갑에 채여 있었다. 누가 나에게 “사람이요?” 하고 물었다면 나는 무어라고 대답했을까.

“네 날개를 훨훨 펼쳐라”

함흥에 도착한 것은 3일 저녁 무렵이었다. 거리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거리 여기저기에 누운 사람이 보였다. 숨이 붙어 있지 않은 시체일 것이다. 그런 광경을 보는 내 마음은 아팠다.

함흥에는 아는 얼굴들이 있었다. 안전부는 내가 죽기를 바랐다고 했다. 비틀비틀 걸음조차 힘든 병골이라 그냥 내버려 두면 죽을 것이었다. 아니 원래 계획은 청진에서 다 죽이는 것이었는데 선거를 앞두고 계획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죽이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선거는 내가 살아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죽음의 손아귀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7월28일 병보석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7월26일이 선거날이었다. 텅 빈 집에 혼자 찾아든 내 자신이 유령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강혁이 돌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진 모양이었다. 나는 마음으로 이웃의 정에 깊이 감사했다. 내가 없는 동안 우리 집을 깨끗이 청소하며 관리하고 있었다. 누군가 방에 불을 지펴놓아 따뜻했다. 전기고문으로 시커멓게 문드러진 볼기짝을 방바닥에 부렸다. 거의 1년 만에 돌아온 집이었 다.

여기서 병이 낫는다고 해도 나는 다시 감옥으로 끌려간다. 결국은 감옥에서 죽는다. 김정일이 월경자는 죽이라고 내부명령으로 지시했다는 것이다. 살 길은 하나뿐이다. 남아 있는 목숨을 몽땅 걸고 도망치는 것이다.

나는 은밀히 집을 내놓았다. 눅은 값으로 3000원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3일간 몸을 추스렸다. 어머니가 나오셨다.

“너를 둘러싼 장애물이 이제 모두 걷혔다. 네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가라.”

꿈이었다. 8월1일. 드디어 결행의 날이 밝은 것이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내가 위기에 빠지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꿈에 나오셨다. 내가 탈출을 작정한 그날 밤에도 어머니는 어김없이 나타나셨다. 이제 나의 액운은 끝났다면서 내가 살아서 도망갈 수 있음을 암시해주셨다.

마침내 생명의 전화벨 소리가 울리다

함흥 회상구역에서 낙원군까지는 자동차로 갔다. 1차 목적지는 낙원시 해변에 자리잡은 수산사업소였다. 그곳에서 배를 타고 청진으로 갈 참이었다. 밤이 되어도 깜깜한 암흑뿐이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지도 오래되었다.

그런데 내가 부두에 들어서자 갑자기 전기가 들어왔다. 수산사업소의 콘베이어 벨트가 작동을 시작했다. 생선가공반에서 어선으로 연결된 생선수송용 벨트였다. 나는 몸을 날렸다. 컨베이어의 고기 담는 통 속에 몸을 감추었다. 나를 실은 컨베이어는 생선 썩은 냄새와 비린내로 진동하는 어창으로 빨려들어갔다. 그 배는 나를 청진으로 실어날랐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나는 청진시내에 있는 혜영의 삼촌집을 찾아갔다. 혜영의 유일한 피붙이였다. 그 집에는 혜영이의 쌍둥이 동생이 있었다. 그러나 형은 죽고 없었다. 나는 동생에게 “누나가 있는 곳으로 가자”고 권유했다. 그러나 동생은 나서려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앞에서 차마 누나가 죽었다는 말을 남기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다.

청진에서 무산까지는 기차를 탔다. 무산서 삼장까지 8km를 걸었다. 삼장에 도착하니 밤 12시쯤 되었다.

삼장에 도착한 다음 산에 들어가 웅크렸다. 두만강을 지척에 두고 잠복초소가 눈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위치였다. 2명의 보초가 잠복초소 속에 총을 기대놓고 앉은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보초를 피해 강을 건너기는 무망했다. 그저 몸을 숨긴 채 기회를 엿보는 길밖에 없었다.

하늘에는 은하수가 가득했다. 자정을 넘겨 밤 1시쯤 되었을까. 갑자기 구름이 몰려들더니 비가 쏟아졌다. 억수로 내린 비는 기슭에서 모여 삽시간에 고랑을 이루었다. 세차게 물길을 튼 고랑물은 잠복초소를 덮쳤다. 보초들은 당황한 듯 급히 총을 챙겨들고 물에 잠긴 초소에서 빠져나와 다른 곳으로 옮겨가버렸다. 그것은 두 번째 기적일 것이었다.

천우신조였다. 나는 기슭으로 내려가 두만강 물속에 발을 디뎠다. 그러나 비가 든 두만강 물살은 급류를 이루고 있었다. 골병든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나는 물살에 반쯤 몸을 맡긴 채 대각선으로 위태위태하게 걸었다. 한번이라도 쓰러지면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다. 체력이 고갈되어 물속에 잠기면 죽는 것이다. 세찬 흐름을 따르던 몸이 강 한복판에서 무언가에 부딪혔다. 뜻밖에도 승용차였다. 살펴보니 일제 도요타였다. 밀수꾼들이 강물 속에 빠뜨린 것 같았다. 나는 잠시 그 차에 몸을 의지하여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가까스로 중국 쪽 대안에 닿았다. 그때 별주부의 꾐에 빠졌던 토끼가 생각났다. 육지에 올라서는 나는 그 토끼의 심정이었다. 많고 많은 사연 중에서도 왜 하필이면 동화가 머리에 떠올랐을까. 나는 도저히 생각이 미치지 않는, 너무도 비현실적인 동화 속에서 현실로 되돌아오는 느낌이었다.

두만강을 건너 도착한 곳은 숭선이었거나 아니면 화룡(두만강을 끼고 있는 중국 쪽 마을들)이었을 것이다. 나는 바로 아무 집이나 들어갔다. 마침 집주인은 기독교인이었다. 그는 나를 도와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도 무턱대고 나를 숨겨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나에게 중국에 혹시 아는 사람이 없는가 물었다. 연결이 안 되면 바로 나가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지난번에 중국에서 만났던 사람이 생각났다. 그의 핸드폰 번호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밤 3시가 되고 있었다. 상대편에게 달려가는 전화 벨소리가 내 귓전을 울렸다. 그 중국인은 매일 잘 때는 핸드폰을 껐다. 그러나 그 날은 실수를 한 것이었다. 핸드폰은 잠을 자지 않고 나를 기다렸다가 잠이 든 주인을 깨워 일으켰다. 그가 빚은 작은 실수 하나가 나의 생명의 옷에 마지막 단추를 채워 준 것이었다. 그것은 세 번째 기적일 것이었다. 1998년 8월3일의 새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