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강혁(필명, 28)은 함경남도 신포 수산단과대학 출신으로 북한을 탈출해 현재 신분을 숨긴 채 중국에 체류하고 있다. '신동아'가 강혁씨의 수기를 입수하게 된 것은 중앙일보 홍콩북경특파원을 지낸 바 있는 전택원씨(54)를 통해서였다.

 

전씨는 언론사 재직시 뿐만 아니라 퇴직 후에도 북한의 기아사태와 탈북자 취재를 계속했는데 그 과정에 탈북자 구조활동을 하는 중국 연변 지역 인사들을 통해 강혁씨를 만나게 됐다고 한다. 전택원씨가 연변에서 강혁씨를 처음 만난 것은 1998년 8월 13일이었다.

 

강씨가 두 번째 북한 탈출에 성공한 뒤 10일이 지나서였다. 전씨는 당시 강혁씨에 대한 인상과 정황을 이렇게 말했다. "그의 첫마디는 '복수'였다. 온몸이 증오심으로 떨리고 있었다. 이마는 쉴새없이 흘러내리는 식은땀으로 가득했다. 나는 그에게 '사랑'뿐이라고 대답했다. 증오로는 아무것도 풀 수 없다고 말했다.

 

그 달 18일 연변을 떠나기까지 나는 내가 머문 호텔에서 강혁을 취재했다. 그러나 그는 이글거리는 불기운에 휩싸인 가마 속의 그릇처럼 손대기에는 너무나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물을 내리지 않은 변기에 그가 남긴 소변은 콜타르처럼 시커멓게 죽은 피였다. 그것은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호텔 계단을 간신히 딛고 올라서는 그가 과연 살아남을지 의문이었다."

 

전씨는 강씨에게 직접 수기를 쓰라고 권유했다. 전씨는 지난해 9월, 11월, 12월 세 차례 연변을 방문해 강혁씨의 원고를 받아 문장을 다듬었다. 강혁씨는 지난해 12월 23일 중국 공안원을 피해 행방을 감추었다고 한다. 전씨는 강혁씨의 수기를 '우리'라는 단행본으로 8월 말에 출간할 예정인데 '신동아'에서 주요 부분을 상, 하로 나누어 미리 소개한다. <편집자>

 

자료출처: 新東亞 8~9월호

 

 

굶주림의 땅에 쓰러져 죽음의 강을 건너다

 

나는 1971년에 함경남도에서 태어났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린 시절은 나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막내 외아들이라 하여 아버지와 어머니의 굄을 독차지하고 자랐다. 위로 누이가 셋 있었지만 부모님은 표나게 나를 싸고도셨고, 아버지의 사랑은 더욱 유별나셨다. 그러나 행복한 내 어린 날마저도 배고픔의 기억 속에 젖어 있다.

 

매일 주식으로 먹는 것은 감자였다. 밥상에 앉으면 속에서 물냄새부터 올라왔다. 감자에 물릴 대로 물린 뱃속은 늘 뭔가 다른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또래들과 과수원에 사과를 몰래 따러갔다. 그러나 과수원 할아버지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우리를 잡고 말았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실토했다. 나의 첫마디가 “감자가 너무 먹기 싫어요”였다. 그 말은 얼마나 오랫동안 내 머리 속을 맴돌고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먹을 것은 과수원의 사과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과를 먹으려고왔다고 했다. 사실은 훔치러 간 것이었지만 철없는 나이였기에 훔친다는 것에 죄책감이 들지는 않았다. 달콤한 사과를 씹어 목구멍으로 삼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과수원 할아버지는 한동안 우리를 말없이 지켜보셨다. 아마 우리가 애처로웠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잠시 후에 나타났다. 한 명에게 5개씩 사과를 쥐어주었다. 우리는 팔을 쭉 펴들고 사과를 받았다. 할아버지는 실컷 먹고 또 과수원에서 놀다가라고 했다. 우리는 사과의 단물을 빨아먹었다. 마냥 신이 났다. 해지는 줄도 모르고 과수원을 누비며 뛰어 놀았다.

 

해질 무렵, 할아버지는 그물주머니에 사과를 채워주었다. 우리는 사과가 든 주머니를 들고 뜀뛰기를 하며 마을로 들어섰다. 어둑한 저쪽에 누가 나를 향해 오고 있었다. 어머니였다. 나는 어머니의 엄한 눈길을 보자 그만 굳어지고 말았다.

 

어머니는 자초지종을 듣고서도 용서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가 도둑질을 했다고 생각했다. 8살이라 매를 8대 맞았다. 종아리에 굵은 뱀이 서고 검붉은 피가 나왔다. 밤에 잠을 자다 깼다. 눈물 투성이로 흐느끼다 잠들었는데 다시 깬 것이었다.

 

잠결에도 매를 맞은 다리가 쓰려 왔다. 살며시 눈을 뜨니 어머니가 솜에 빨간약을 묻혀가지고 바르고 계셨다. 옆에서는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듯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계속 잠든 척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어머니는 “어린 것이 얼마나 감자 먹기가 싫었으면 과수원에 갔겠어요. 허지만 바늘 도적이 소도적 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정말 마음을 먹고 오늘은 매를 때렸어요”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목이 메어 도저히 누워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일어나 꿇어앉았다. “어머니, 다시는 과수원에 가지 않을래요”라고 말하면서 엉엉 울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아버지는 대학에서 시간을 허락받아 쌍봉리에 가서 사과를 배낭 두 개에 가득 담아 가져왔다. 아버지는 땀을 흘리면서도 얼굴에 가득 웃음을 띠고 계셨다. 그러나 나는 사과를 보고도 즐겁기보다 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런 아버지에게 정말 송구스러운 마음이었다. 사과 배낭을 들고 환하게 웃으시며 대문을 들어서시던 아버지의 모습. 그 행복했던 시절은 달콤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나를 낳아준 어머니 첫걸음 떼어줄 적에

사슬차고 몸부림칠 아들을 바랐던가.

말해다오 말해다오 쓰디쓴 이 세상아

땅을 치며 울어봐도 산천은 대답없네.”

 

굶주림의 땅에 쓰러져 죽음의 강을 건너다

 

나는 1971년에 함경남도에서 태어났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린 시절은 나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막내 외아들이라 하여 아버지와 어머니의 굄을 독차지하고 자랐다. 위로 누이가 셋 있었지만 부모님은 표나게 나를 싸고도셨고, 아버지의 사랑은 더욱 유별나셨다. 그러나 행복한 내 어린 날마저도 배고픔의 기억 속에 젖어 있다.

 

매일 주식으로 먹는 것은 감자였다. 밥상에 앉으면 속에서 물냄새부터 올라왔다. 감자에 물릴 대로 물린 뱃속은 늘 뭔가 다른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또래들과 과수원에 사과를 몰래 따러갔다. 그러나 과수원 할아버지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우리를 잡고 말았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실토했다. 나의 첫마디가 “감자가 너무 먹기 싫어요”였다. 그 말은 얼마나 오랫동안 내 머리 속을 맴돌고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먹을 것은 과수원의 사과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과를 먹으려고왔다고 했다. 사실은 훔치러 간 것이었지만 철없는 나이였기에 훔친다는 것에 죄책감이 들지는 않았다. 달콤한 사과를 씹어 목구멍으로 삼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과수원 할아버지는 한동안 우리를 말없이 지켜보셨다. 아마 우리가 애처로웠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잠시 후에 나타났다. 한 명에게 5개씩 사과를 쥐어주었다. 우리는 팔을 쭉 펴들고 사과를 받았다. 할아버지는 실컷 먹고 또 과수원에서 놀다가라고 했다. 우리는 사과의 단물을 빨아먹었다. 마냥 신이 났다. 해지는 줄도 모르고 과수원을 누비며 뛰어 놀았다.

 

해질 무렵, 할아버지는 그물주머니에 사과를 채워주었다. 우리는 사과가 든 주머니를 들고 뜀뛰기를 하며 마을로 들어섰다. 어둑한 저쪽에 누가 나를 향해 오고 있었다. 어머니였다. 나는 어머니의 엄한 눈길을 보자 그만 굳어지고 말았다.

 

어머니는 자초지종을 듣고서도 용서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가 도둑질을 했다고 생각했다. 8살이라 매를 8대 맞았다. 종아리에 굵은 뱀이 서고 검붉은 피가 나왔다. 밤에 잠을 자다 깼다. 눈물투성이로 흐느끼다 잠들었는데 다시 깬 것이었다.

 

잠결에도 매를 맞은 다리가 쓰려 왔다. 살며시 눈을 뜨니 어머니가 솜에 빨간약을 묻혀가지고 바르고 계셨다. 옆에서는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듯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계속 잠든 척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어머니는 “어린 것이 얼마나 감자 먹기가 싫었으면 과수원에 갔겠어요. 허지만 바늘 도적이 소도적 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정말 마음을 먹고 오늘은 매를 때렸어요”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목이 메어 도저히 누워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일어나 꿇어앉았다. “어머니, 다시는 과수원에 가지 않을래요”라고 말하면서 엉엉 울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아버지는 대학에서 시간을 허락받아 쌍봉리에 가서 사과를 배낭 두 개에 가득 담아 가져왔다. 아버지는 땀을 흘리면서도 얼굴에 가득 웃음을 띠고 계셨다. 그러나 나는 사과를 보고도 즐겁기보다 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런 아버지에게 정말 송구스러운 마음이었다. 사과 배낭을 들고 환하게 웃으시며 대문을 들어서시던 아버지의 모습. 그 행복했던 시절은 달콤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나를 낳아준 어머니 첫걸음 떼어줄 적에

사슬차고 몸부림칠 아들을 바랐던가.

말해다오 말해다오 쓰디쓴 이 세상아

땅을 치며 울어봐도 산천은 대답없네.”

 

굶주림 속의 대학생활

 

조선사회에서 은밀하게 유행하는 노래의 한 구절이다. 아버지, 어머니는 지금의 나를 보고 계실까. 나를 보시면 무어라고 하실까.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감옥과 고문으로 겁질린 나. 캄캄한 죽음의 골짝에 혼자 버려진 절망뿐인 나. 아, 그때가 정말 그립다. 어머니의 사랑의 매. 나의 볼을 찌르던 아버지의 깔깔한 턱수염이 정말 그립다.

 

모든 그리운 것들로부터 나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죽음의 악몽에 놀라 캄캄한 밤중에 혼자 깨어 난다. 식은땀에 온몸이 흠뻑 젖어 있다.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아도, 앞으로 나아갈 길을 생각해보아도 내 주위는 오직 죽음과 공포가 차 있을 뿐이다. 굶주린 나는 병에 쓰러졌고,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어야 했다. 그러는 사이 나는 가장 소중한 것들을 모두 잃어버렸다. 나는 이제 두려움이 없어졌다. 내게 소중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과 동시에 두려움도 사라져버렸다. 이제 나는 내가 겪은 것을 모두 말하리라.

 

1993년 9월 나는 함경남도 신포 수산단과대학에 입학했다. 1990년대부터는 조선에 식량난이 심했다. 감자라도 배급되던 어린 시절과는 사정이 또 달랐다. 먹을 것이 없어 일하러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기더니 잠깐 사이에 많은 사람이 굶주림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이후 조선의 식량난은 극심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직장암 진단을 받았던 어머니는 바로 세상을 떠나셨다. 나의 아버지는 대학강단에서 자리를 옮겨 대외봉사총국의 국장을 맡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고정(고지식)한 성격으로 한눈을 파는 일이 없었다. 남들은 우리 집 형편은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우리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아버지는 어머니의 병치료를 위해 암 치료에 좋다는 약은 다 사들였다. 나도 좋은 약이 있다면 거리를 상관하지 않고 구하러 다녔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암 선고를 받고서도 4년7개월을 견뎌냈다. 속담에 “복은 홀로 오고, 화는 쌍으로 온다”는 말이 있다. 아마 이 속담이 맞았는지 정말 기막히게도 아버지까지 다음해 2월에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신문을 읽다가 앉은 자세 그대로 거짓말처럼 숨을 거둔 것이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이를 악물고 나는 살아가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이를 악문다고 만사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앞으로 다가올 극단의 굶주림과 죽음의 세계를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도 대학에서는 강냉이 밥 한 끼가 120g 정도였다. 대학교원(교수)들도 학교에 강의하러 나오지 못하는 사례가 생겼다. 가정 형편이 좋은 학생들은 한번씩 집에 갔다 올 때마다 강냉이를 30kg쯤 닦아서(볶아서) 배낭에 지고 왔다. 그 정도면 생활이 정말 좋은 편이다. 그것을 가지고 다음에 집에 갈 때까지 숙사 (기숙사)에 놓고 먹는다. 그러나 먹을 것이 없는 학생들은 사정이 다르다. 밤에 잠을 자노라면 옆에서 닦은 강냉이를 먹는 소리가 구수하게 들려온다. 얼마나 배가 고픈지 잠을 자려고 애를 써도 잘 먹던 때만 머리에 떠오른다. 영양실조에 걸려 중퇴하는 대학생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겨울에는 숙사가 너무나도 추웠다. 땔감이 없어 난로에 불을 넣지 못한다. 동복에다 버선까지 꽁꽁 신고 3개호실 학생들이 한 방에 모여 서로 부둥켜안고 잔다. 아무리 위생소독을 잘하고 제 몸을 깨끗이 한다고 해도 숙사 담요에는 이가 버글거린다.

 

이를 없앤다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처럼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숙사생들이 어쩌다 집에 가면 역전, 열차칸 어디라 할 것 없이 이가 있기 때문에 꼭 묻혀 온다. 처음에는 그래도 이를 없애기 위해 전 숙사적으로 담요에 소독약을 뿌리고 햇빛에 내다 쪼였다. 내의들은 다 모아 세척하고 목욕도 자주 했다. 수도에는 물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모두 강가로 나갔다. 겨울의 그 추위 속에서도 몸을 씻었다. 모두 이를 없애기 위한 노력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몇 차례였다.

 

전 숙사에 뿌릴 소독약이 어디 있으며, 빨랫비누는 또 어디에 있는가. 정신적 달관인지 자포자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국 이와 동거하기로 수락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건 그런대로 참고 견딜 만하다. 학교측에서 포치(요구)하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기숙사를 꾸밀 장판지, 못, 각종 공구들, 전등, 벽지, 각종 색감, 또 학생을 통해 구하기 어려운 것은 장마당에 가서 사기 위해 돈도 모은다. 어쨌든 한번 씩 집에 갔다 올 때마다 한짐씩 된다. 추운 것도, 배고픈 것도, 이에 시달리는 것도 참아낼 수 있지만 이런 것을 꾸려대기는 고달프기 그지없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공부라도 하려면 이번에는 농촌지원이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논밭에서 일을 한다. 일에 지치면 우리가 언제 공부하던 대학생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럭저럭 2개월이 지나면 농촌지원이 끝난다. 그로부터 학교에 돌아와 한 달 동안 공부하면 여름방학(15일간)이다. 이것이 대충 1995년 어간의 사정이다.

 

수석 입학 여대생의 황색재판

 

1996년도부터는 사정이 달랐다. 닦은 강냉이나마 가지고 오는 학생이 별반 없었다. 숙사에서는 끼니라고 칡뿌리에 강냉이 가루로 멀건 죽을 쑤어서 주었다. 그 죽을 먹으려면 한번에 다 마셔야 한다. 입을 댔다가 도중에 떼면 다시 입 대기가 역겨워 먹지를 못한다. 칡뿌리 죽을 한번에 쭉 들이키고는 물 한 모금 입안에 넣고 양치질을 한다. 그 다음 강의받으러 교실에 들어선다.

 

강의가 귀에 들어올 리가 만무하다. 머리속에는 배가 고픈 나머지 “무엇을 먹을까. 어디에 가면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다. 음식이 없는데도 먹을 것만 생각하는 것은 망상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현실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현대를 사는 문명인이 배가 고파 앉은 채로 골똘히 먹을 것만 생각하며 망상에 시달린다는 것은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와중에 터진 것이 김순녀의 퇴학사건이었다.

 

김순녀는 나와 동학이었다. 그 해 3월경이었다. 순녀의 집은 생활이 매우 곤란한 형편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 대학에 수석으로 들어온 이래 수석자리를 놓친 적이 없다. 그녀는 다른 여학생들과 똑같은 교복이라도 깨끗하게 입고 다녀서인지 궁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던 그녀가 며칠 동안 우울한 표정을 짓고 고심하고 있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그러나 그렇겠거니 하고 무심히 지나갔다. 다른 여학생들은 배가 고파 정말 죽을 지경이라고 아우성을 쳐댔다. 누렇게 뜬 얼굴로 견디다 못해 중퇴하는 학생이 줄을 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녀만은 묵묵히 공부에만 열중했다. 무서운 집념을 가진 듯이 그녀는 공부에만 매달렸다.

 

그러던 어느날 뜻밖에도 그녀가 사상투쟁회의의 비판무대에 올랐다. 황색바람. 매음행위를 했다는 것이었다. 정말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대학에서 말을 거는 남학생들에게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늘 피하듯 다니면서 책만 팠다. 나는 황색비판의 무대에 오른 그녀를 보며 내 눈을 의심했다. 학교 초급 당위원회는 그녀에게 퇴학처분을 내렸다. 우리 학교 수석학생의 운명은 그렇게 결말이 났다.

 

나는 그녀가 비판대에 섰던 자리를 지나다 무심코 마룻바닥을 봤다. 굵은 물방울이 툭툭 떨어져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비판을 받고는 아무 소리없이 나간 그녀가 남긴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큰 물방울이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것이라고 믿기가 어려웠다. 한마디 말도 없이 고개를 숙인 채 비판을 받는 동안 그녀가 뿌린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숙사로 찾아갔다. 먼 발치로만 보아오던 순녀였다. 숙사에서 짐을 싸고 있는 그녀를 도와 주섬주섬 짐을 챙겨주다가 나는 끝내 침묵을 깨고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순녀, 정말 그것이 사실이야?”

 

그녀는 잠시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글썽한 눈길을 던지고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말 못할 사연이 있으리라는 짐작이 갔다. 그녀는 결심을 한 듯 나에게 자리를 권했다. 말문을 열기 전 순녀는 얼굴에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웃음을 지으려고 했다. 그러나 채 피지 못한 쓰라린 웃음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짐을 챙기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것은 아마 대학의 꿈을 도중에서 접는 마지막 고별사일 것이었다.

 

그녀의 집안형편은 너무나 어려웠다. 그녀는 자신의 처지에서는 애초부터 대학에 갈 꿈도 꾸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그녀의 뛰어난 학업성적과 영민한 두뇌에 경탄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재주가 아깝다며 그녀가 대학에 가야 한다고 부추겼다. 그리하여 그녀는 대학입학시험을 치렀고 그것도 수석으로 합격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러나 그녀가 처한 현실은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영민한 두뇌가 있다고 한들 그것으로 풀리지 않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문제는 배고픔을 이겨낼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했다. 대학생활을 유지하려면 적어도 한달에 1000원 (식량난으로 북한의 배급제와 국정가격체계는 유명무실해졌다. 비공식적이지만 전국적으로 시장이 이를 대체하면서 가격구조도 현실화했다)은 있어야 했다.

 

그녀가 그 엄청난 돈을 어떻게 마련한다는 말인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느라 공부도 되지 않았다고 했다. 책상 앞에 켜둔 희미한 촛불마저 배가 고파 2개, 3개로 엇갈려 보였다. 앉았다 일어서면 눈앞에 열찌(뜨거운 기운)가 흐르며 어지럼증에 비틀거렸다. 영양실조에 시달리게 되자 시력마저 희미해지더라는 것이었다. 그녀 역시 학업을 포기해야 할 벼랑 끝에 매달려 있었다.

 

나는 그녀가 설명하지 않아도 그녀가 처한 현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학생반장이었다. 대외봉사총국에 계시는 아버지 덕으로 우리 학교는 인기있는 영화가 들어오면 시단위에서 3번째로 관람할 기회를 차지했다. 영화관람은 최고의 인기물이었다. 그런 인기영화가 들어와 우리 학교가 단체로 관람을 하게 되었다. 누구나 들떠서 서로 보겠다고 야단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당번을 자청했다.

 

나는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교실이 궁금했다. 교실에 아무도 없으면 언제 도둑이 들지 몰랐다. 그녀가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지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에 영화관을 벗어나고 말았다. 나는 혼자 학교로 되돌아 왔다. 그녀는 교실에서 대백과사전을 펼쳐놓고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놀랐다. 공부를 잘한다는 그녀지만 이렇게 수준이 높은 자료를 놓고 혼자 자습을 하는 정도인지는 몰랐던 것이다.

 

나는 별탈이 없는 것을 알고 안도하면서 무심결에 한마디했다.

 

“순녀는 형편이 어렵다면서 어떻게 공부를 할 만한가.”

 

나는 순전히 호의에서 한 말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학업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학생이 늘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획’ 하고 싸늘한 바람을 일으키며 일어섰다.

 

“없는 사람은 공부하지 말라는 법이 있습니까. 동무는 얼마나 잘사는가요.”

 

그것은 악에 받친 소리였다. 그렇게 심한 말을 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달래고 물러났다. 나는 내심 순녀가 왜 그렇게나 예민한 반응을 보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그때 순녀는 궁지에 몰린 작은 짐승처럼 갈기를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남의 일처럼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체념한 것이다.

 

그녀에게 불길한 운명이 찾아온 날은 전교생이 참가하는 등산행사날이었다. 경제력이 있는 학생들은 외화상점이나 장마당에 나가 음식물을 사느라 여념이 없었다. 친구들은 야영준비를 하느라 부산했지만 그녀는 돈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한 그녀에게 학교행사란 쓰잘데 없는 일이었다.

 

굶주림에 못 이겨 유혹에 빠지다

 

그녀는 등산행사에 등을 돌리고 집에나 다녀올 생각으로 역전으로 나갔다. 꼭 가야할 길은 아니었다. 그녀를 반겨줄 집안형편도 아니었다. 역전에서 서성거리는 그녀를 심철수가 발견했다. 심철수는 신포에서 돈을 물쓰듯 쓰며 부화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는 귀국자였다. 그는 일본 상공인인 조부모와 친척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일본친척들은 해마다 4월이면 조국방문단으로 조선에 들어와 심철수에게 돈을 주고 갔다.

 

심철수는 김순녀의 미모에 눈독을 들였다. 심철수는 또 그녀가 배고픔에 지쳐 있다는 것도 한눈에 알아 보았다. 간신히 몸을 가누고 있는 그녀에게 그는 무작정 흥정을 걸었다. 1000원을 줄 테니 하룻밤을 같이 지내자고. 모욕을 받은 그녀는 증오심에 찬 시선으로 심철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심철수에게는 순녀가 예절 바른 여성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심철수는 자신감을 가지고 그녀에게 접근했다. 굶주림 속에서 아무런 기약도 없이 학업을 유지하려고 발버둥쳐온 그녀는 곧 자신의 속에서 울려오는 다른 소리를 들었다.

 

배고픔은 더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다. 그녀에게 그것은 절망 속에 만난 기회일 수도 있었다. 단 한 번뿐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녀는 어지러움을 참으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아무런 말 없이 침묵을 지키는 것으로 동의해버렸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었다. 두 번째 만남은 처음보다 쉬운 일이었다. 꼬리가 길어졌다. 끝내는 심철수의 아내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심의 아내는 순녀의 머리칼을 짓뜯었다. 심철수는 순녀에게 모든 잘못을 뒤집어씌우고 빠져나갔다. 그는 주위에 뇌물을 뿌리는 것으로 무사할 수 있었다. 그것이 순녀가 황색바람 사상투쟁의 무대에 오른 경과였다.

 

나는 한마디도 위로할 수 없었다. 그저 창밖을 우두커니 내다보았다. 이상하게도 나는 순녀의 잘못된 운명을 위로하기보다 내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를 짓씹고 있었다. 햇빛이 환한 대낮이었지만 그 모든 것이 나를 초라하게 하고 조소를 던지는 것 같았다.

 

어제까지 모든 사람의 찬탄과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수석을 놓치지 않던 꿈 많은 처녀가 오늘은 ‘타락한 여자’가 되어 사회로부터 버림받게 되다니. 물론 황색바람은 나쁜 것으로 지탄받을 행동이다.

 

그러나 시력을 앗아가는 굶주림 속에서도 배움을 위해 버티려 했고, 끝내는 자신의 순결까지 포기해야 했던 상황은 누가 책임질 일이었을까. 그러나 그것도 부질없는 짓이었다. 시간은 묵묵히 흘러갔다. 나는 그녀의 짐을 들고 역까지 나가 바래다 주었다. 친구들도 몇몇 따라나왔다.

 

“순녀, 낙심하지 말고 계속 공부를 하기오. 공부라는 것을 대학에서만 한다는 법은 없지 않나. 이 세상에 자습으로 천만을 놀라게 한 명인이 얼마나 많아. 난 순녀의 영민한 두뇌를 믿어. 그 어디에 가서도 다시 만날 때가 있겠지.”

 

나는 정성 들여 포장한 선물을 주었다. 그 속에는 내가 사용하던 소형 녹음기와 돈 2000원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감사해요” 하면서 받았다. 그리고 자신의 배낭 안에서 두툼한 편지를 꺼내주었다. “내가 떠난 다음 이 편지를 뜯어보면 받을 사람의 주소와 이름이 있습니다. 수고스럽겠지만 전해주십시오”라고 했다.

 

그녀는 떠나갔다. 나는 숙사로 돌아왔다. 촛불을 켜놓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무심결에 편지 생각이 났다. 나는 호주머니에 넣었던 봉투를 찢었다. 그 속에는 편지와 함께 4000원이 들어 있었다.

 

“강혁 동지.

 

이제와서 마주볼 수도, 그 무엇이라고 부를 수도 없음을 알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강혁 동지는 나에게 아름다운 추억 중에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준 아름다운 이였습니다. 저의 마지막 성의라고 생각하고 돈을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업과 생활의 성공을 머리 숙여 빕니다.

 

순녀 올림.”

 

우리는 같은 대학, 같은 반에서 지내는 동안 무언의 시선을 나누어온 것인지도 몰랐다. 서로의 보잘것없는 자존심에 가려진 채. 그러면서도 순녀와 진심을 나눌 기회를 아껴 왔는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의 어설픈 만남은 자라지도 못한 채 여지없이 꺾이고 말았다.

 

그 이후 나는 중국으로 넘어와서 한국노래를 배웠다. 그중에 내 혼자 부르며 뒤늦게 순녀와의 만남이 사랑인 것을 새기게 하는 가사가 있었다.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 열차에

기적소리 슬피우는데

빗물이 흐르고 내 눈물도 흐르고

잃어버린 첫사랑도 흐르네

깜박깜박이는 희미한 기억 속에…”

 

 

어떻게 내가 북한에서 겪었던 사연을 남한의 노래가 더 잘 담고 있는지. 순녀는 신포역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내 창 밖으로 흔들며 떠나갔다.

 

대학생들은 칡뿌리를 캐야 하고

 

1996년 중반부터 대학은 공부하는 날이 정말 없었다. 너도 나도 공부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정말 그때는 숙사나 교실에 들어서면 “야, 아무개가 공부를 그만두고 집으로 갔대”라는 말만 들렸다.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지만 마치 꿈속에서 듣는 자장가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뿐만 아니었다. 여기 저기서 홍역, 파라티푸스, 콜레라와 같은 병이 번졌고 격리구역이 늘어갔다.

 

학교에서도 일부 학생이 콜레라에 감염되었다. 콜레라에 걸리면 걷잡을 수 없이 설사를 하게 되어 빈사 상태에 빠지고 일주일 정도 지나면 생명을 빼앗겼다. 게다가 전시 상태, 준전시 상태 등으로 최고 사령관의 명령이 연이어 발표되었다. 온 나라가 전쟁분위기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부의 위기를 통제하기 위한 연출이었다. 조선으로서는 외부에 군사적 위기를 조성해서라도 그 반발력으로 내부통제를 하는데 이용하려 들 것이었다. 위기가 심화되면 될수록 조선당국은 내부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가 없게 된다.

 

“‘총창 위에 평화가 있다.’ 이것이 당의 구호다.”

 

고정된 절차에 따라 고정된 말이 항상 따라다닌다.

 

“지금은 1950년 6월과 같다.”

 

조선에서는 한국이 먼저 1950년 6·25전쟁을 도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다시 한국이 쳐들어올 상황이라는 것이다.

 

“각성하라. 미국놈들과 남조선 괴뢰도당들이 언제 우리나라를 침범할지 모른다.”

 

이런 구호들이 판에 박힌 듯이 반복된다. 처음에는 우리 모두 자극받고 긴장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해지고 무의미하게 잊혀지더니 이제 와서는 사람들이 거부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시달림을 받을 대로 받아서인지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한다.

 

“언제부터 일어난다던 전쟁이 아직도 일어나지 않는데, 지금에 와서 일어나겠는가.”

 

“이렇게 살 바에야 전쟁이건 폭동이건 콱 터져라.”

 

하지만 인민들의 기아나 빈궁은 헤아리지 않고 당은 좌경적 구호를 어렵지 않게 민중의 머리에 떨군다.

 

“천리마를 탄 기세로 사회주의 건설을 다그치자.”

 

“불타는 낙동강을 건너는 정신”

 

“고난의 강행군”

 

“당과 수령의 결사봉위 정신”

 

여기에다 ‘불사조의 정신’, ‘자폭정신’이 이어진다.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다. 한쪽에서는 굶어죽고 병들어 죽어가는데 거기에다 대고 계속 ‘사회주의 완전 승리를 향하여’라는 구호만 힘들이지 않고 외쳐댄다. 글쎄, 사람의 정신이란 게 몇 개나 되는지 그저 정신, 정신, 정신이다. 난파한 현실은 누가 살려내나.

 

나는 1997년 3월부터 방랑생활에 들어갔다. 대학을 잠시 떠난 것이다. 7월까지 돌아와 대학에 복귀할 작정이었다. 대학에서는 식량이 떨어져 학생들에게 칡뿌리를 캐오라는 과업을 주었다. 식량이 바닥난 것이었다. 우리는 대학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대학을 떠나 조선 현실을 더 깊이 배우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내가 조선의 현실을 배우면서 치르게 될 대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예상도 못한 채였다.

 

조선의 현실을 더 깊이 배우게 되는 학교란 어떤 것일까. 그것을 졸업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내가 꿈엔들 생각했던가.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온몸이 오싹오싹해진다. 하긴 그 일 때문에 내가 중국으로 오게 되었으니 참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지사란 측량할 수없이 묘하기만 하다.

 

학교에서 칡뿌리를 캐오라고 했을 때 나는 ‘에라,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시장판으로 나가 공부할 자금이나 쌀을 좀 구해야겠다는 타산이었다. 함흥에서 물고기를 구해서 황해도로 나가 팔고, 황해도 쌀을 구해서 함흥에 넘기면 돈이 될 것 같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3월부터 4개월 동안 5, 6차례 부지런히 다녀오면 12월 겨울방학까지 지낼 쌀과 돈을 해결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하여 얼마간 가지고 있던 돈으로 물고기를 샀다. 이면수 한 마리에 17원 쳐서 50마리를 준비했다. 850원이 든 것이다. 이것을 황해도에 가져가서 한 마리를 입쌀 1kg과 바꾼다. 쌀이 아니더라도 강냉이나 콩 등 닥치는 대로 바꾼다. 이것으로 잘 하면 입쌀 50kg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입쌀을 함흥에 가져오면 1kg에 70원씩 받는다. 계산상 한번 왕래로 1000원 이상 수입을 올릴 수 있다.

 

대개 환자가 있거나 생일을 쇠는 집이라든지 농촌 리당위원회 간부집이 입쌀 고객이었다. 그 밖에도 3대 혁명소조 식당, 농촌탁아소, 유치원, 부업반(직장 단위로 자체 수익사업이나 부식물을 해결하기 위해 조직한 작업반) 같은 데서 구입한다.

 

나는 물고기 배낭을 지고 황해도로 향했다. 대학생인 나까지 장삿길에 나선 판이니 다른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더구나 장사라는 것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랐다. 다르지 않다면 이 길로 나선 사람들은 모두 부자가 되었겠지. 하지만 나는 그때 그런 실정을 알 수 없었다. 물고기를 배낭에 지고 기차역으로 나오던 날이 바로 대학을 끝마친 날이 되었다.

 

나는 물고기 배낭을 진 채 기차가 들어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온다 온다 하던 기차는 36시간 미정(기차운행이 정시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되어서야 함흥역에 들어섰다. 예정시간보다 하루 반이 늦은 것이었다. 기차가 역두로 들어섰지만 기차는 인파에 덮여 보이지 않았다. 아마 8·15 광복의 그 날이 다시 찾아왔다고 해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먹을 것 찾아 헤매는 인파로 덮인 기차

 

해방을 맞아 기차를 타고 조국으로 밀려들어오던 인파를 영화에서 인상 깊게 보았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등장한 기차는 인절미에 콩고물 묻듯 사람들로 뒤덮여 영화 장면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다. 열차 빵통(승객이나 화물을 싣는 열차칸) 꼭대기를 지나는 고압선 바로 밑까지 사람들이 들어 차 있었다. 사람들의 몸뚱이로 한겹 씌운 그 속에 기차가 들어있을 것이었다.

 

현실은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나를 덮쳤다. 나는 그속으로 정신없이 빨려들어갔다. 밀고, 당기고, 달리고, 넘어지고, 밟고 하는 와중에 사람 찾는 소리, 호각소리, 꽥꽥거리는 안전원 호통소리, 싸구려 부르는 장사꾼 호객소리 등이 뒤범벅이 되었다. 그러나 소란도 잠시 기차는 기적소리를 ‘삑’ 울리며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죽을 힘을 다해 차지한 자리는 빵통 꼭대기 고압선 바로 아래였다.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겪은 조선의 현실이었다.

 

함흥역에서 겪은 난리는 어느 역에서나 기차가 들어설 때마다 되풀이되었다. 여기저기서 짐을 잃었다는 비명이 들렸다. 짐을 찾기 위해 외치는 소리가 생명을 앗기는 짐승소리처럼 처참했다. 그 혼잡 속에 도둑이 극성을 떨었다. 빵통 꼭대기 사람들을 향해 내려오라고 외쳐대는 안전원의 목소리마저 인파에 파묻혔다.

 

어떻게 차지한 자리인가. 여기서 내려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사람들이 그 정도 말에 고분고분 내려갈 리가 만무했다. 그 자리는 이틀을 기다렸다가 죽을 힘을 다해 겨우 차지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대개 공민증도 여행증도 없는 사람들이다. 조선에서 일반주민이 여행증에 차표를 다 갖추어 여행을 하려면 한달은 품을 들여야 한다. 당장 굶어 죽게 된 판에 어느 누가 한가롭게 한 달씩이나 절차를 밟고 다니겠는가.

 

창문으로도 들어갈 자리가 없으므로 마구잡이로 빵통 위로 올라타고 보는 것이다. 그래야 같이 갈 것 아닌가. 그리고 죽음을 각오하고 빵통 위에 드러눕는다. 드러누워서 바라보면 1m 쯤 위로 닿자마자 즉사할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선이 따라 오고 있다.

 

기차는 출발 정시가 따로 없다. 2, 3일씩 출발을 미루기 일쑤다. 떠난다 해도 가는 도중 또 얼마나 걸릴지 기약을 할 수 없다. 그동안 여비가 없는 사람들은 쫄딱 굶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죽어도 살아도 한사코 기차를 붙잡고 목적지까지 가야지 다른 방도가 없다. 도중에 기차가 멈추어 또 며칠을 잡아먹으면 굶기에 영 지친 사람들은 입었던 옷을 벗어서 판다. 그러나 그것도 사가는 사람이 없다.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기차에서 사정은 누구나 비슷했다.

 

나는 4일 만에 황해도 해주에 도착했다. 그래도 여비를 넉넉히 가지고 나온 덕으로 배낭 안의 물고기는 그대로 50마리였다.

 

황해도 배천에서 물고기 50마리를 몽땅 쌀과 바꾸었다. 입쌀이 50kg을 조금 넘었다. 그것을 짊어졌다. 비틀걸음이었지만 힘이 났다. 다시 기차 빵통으로 기어올라 함흥까지 무사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첫 탕으로 3500원을 손에 쥐었다. 대성공이었다. 나는 살 수 있다는 신념이 들었다. 정말 힘이 드는 것을 몰랐다. 오히려 재미가 있었다. 두 번째로 나는 또 이면수 50마리를 지고 배천으로 향했다. 기차여행도 이골이 나 빵통 위로 쉽게 올라갔다. 어떤 사람은 판자를 가지고 와서 깔고 앉기도 했다. 나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옆에서 감전사고가 나더라도 자신은 화를 면해보겠다는 준비라고 했다.

 

배천은 해주에서 자동차로 2시간 정도 달려야 했다. 해주에 내려서 자동차를 타려고 큰길에 나섰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동차를 세우려고 중국 담배 두세 갑씩을 손에 들고 지나가는 자동차마다 흔들며 안타까이 사정을 한다. 담배나 술, 식료품이 없는 사람들은 잡아먹으라는 심정으로 비위 좋게 적재함에 올라탄다. 그러면 운전수와 실랑이질이 벌어진다.

 

“야 임마야. 휘발유 값이야 줘야 하지 않나. 야, 휘발유는 누가 공짜로 주나, 엉? 다 내 돈 주고 산단 말이야. 내려.”

 

손님(?)은 통사정이다.

 

“야, 사정합시다. 며칠씩 오다나니 밑돈(밑천)을 다 부려먹지. 서너끼나 굶었는데 어디에 가서 돈을 구하겠습니까.”

 

그럭저럭 자동차는 배천으로 떠난다.

 

인민군이 강도로 변하다

 

그날이 아마 97년 3월17일이었을 것이다. 한참 달리는데 인민군 5명이 돌멩이와 몽둥이를 쥐고 길 위에 나타났다. 그들은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늙은이건 아녀자건 가리지 않고 짐을 몽땅 몰수하고 돈까지 빼앗았다. 인정사정을 두지 않았다. 해가 벌건 대낮에 적재함 위에는 인민군 소좌(소령)도 타고 있었고 대위도 있었다. 그러나 강도로 변한 하전사 5명은 그들까지 차례차례 수색하면서 짐을 길가에 떨구었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그래도 일행들은 애처로운 눈초리로 두 사람의 군관을 바라보며 구원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군관 역시 강도로 변한 하전사들을 무서워하는 판에 어찌하랴.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이 있었다. 나는 배낭을 발 밑에 내려놓고 긴장한 채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동무네, 인민군대 맞소” 하고 소리치는 사람이 있었다. 조선의 군대는 국가가 승인한 강도다. 그것은 만백성이 다 인정하는 판이다. 거기에 대고 시비와 도리를 따지고 나서는 사람을 다른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게 되었다.

 

“야, 이 새끼 보라, 말하기도 싫어. 너 죽어야 되겠구나” 하면서 군인강도 여럿이 와락 달려들었다. 그들은 몽둥이로 사정없이 그 사람을 쳤다. 그리고는 달리는 차에서 그 사람을 던져버리고 말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적재함의 사람들이 격분하여 일제히 소리쳤다. “강도새끼들아. 너희들도 사람의 종자야” 하면서 너나없이 외쳐댔다. 일이 꼬였음을 안 그들은 모두 튀어버렸다.

 

아까 소리를 친 사람이 떨어진 곳으로 운전수가 달려갔다. 그 사람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차에서 떨어지면서 즉사한 것 같았다. 모두들 시체 앞에 묵묵히 둘러섰다. 정적만 흘렀다. 침통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옆에 선 군관들에게 분노와 조소의 눈길을 보냈다. 하전사도 다스리지 못하면서 어깨에 별은 왜 붙였는가 하는 표정들이었다.

 

나는 인민군대는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고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충성하는 조직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이러한 강도짓을 처음으로 목격하게 되니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군대가 강도짓을 한다는 말은 많이 들어왔었다. 그러나 직접 보고 나니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과는 영 달랐다. 적재함에 탄 사람들 가운데 15명이 피해를 봤다. 짐을 빼앗긴 사람이 7명, 현금을 뺏긴 사람이 6명이었다. 이들은 울며 불며 야단이었다. 생명을 빼앗겨버린 사람은 말이 있을 리 없었다. 울다가 기절한 아주머니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묵묵부답으로 대할 뿐이었다. 나 역시….

 

어쨌든 두 번째 황해도 걸음도 성공이었다. 나는 세 번째 도전에 나섰다. 그것이 같은 달 27일이었다.

 

“굶어죽는 것이 사회주의 정형이야?”

 

달리던 기차가 도중에 멈추었다. 언제 다시 출발할지 감감했다. 하는 수 없이 신성천 역에 내렸다. 언제 발차할지 열차원들도 깜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함흥역을 떠난 지 14시간쯤 지났는데 비닐 포장이 새면서 물기가 흘러 배낭에 배기 시작했다. 나는 궁리끝에 신성천 역 앞에서 되거래(중간상) 장사꾼에게 그만 넘겨주기로 했다. 넘겨받은 돈이 9500원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홀가분했다. 이제는 기차가 떠나기를 기다리는 일밖에 없다. 그때였다.

 

“저, 아저씨. 군복을 사지 않을래요.”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올려다 보니 웬 처녀가 서있었다.

 

“아저씨라니. 남의 총각 장가 못 가게 말을 합니까.”

 

“아. 실례했습니다. 군복을 사지 않겠습니까. 눅게 주겠습니다. 한 벌에 900원입니다.”

 

모두 열 벌이 있다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900원이면 눅은 축이다. 함흥에서는 한 벌에 1400원 했다. 나는 눅은 값으로 판 물고기값으로 역시 눅은 값으로 군복을 사서 봉창하리라 생각하고 그 처녀를 따라갔다.

 

역에서 15분쯤 걸어 그 처녀의 집에 당도했다. 정말 능직 테트론 군복(군관용) 열 벌이 있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처녀는 돈을 받아서는 ‘로동신문’지로 알심있게 감싸넣었다. 그러더니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 500원만 더 내라는 것이었다. 더 줄 수도 있지만 사정이 허락하지 않았다. 9000원을 제하고 남은 돈으로 함흥까지 가기도 빠듯했다. 군복을 씹어먹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러나 처녀는 처음과 달리 막무가내로 버티기 시작했다. 나는 포기했다.

 

“좋소, 그만둡시다.”

 

그러자 처녀는 아쉬운 듯 “미안해요” 하면서 가방 안에 넣었던 돈을 되돌려주는 것이었다.

 

그 순간 정말 나는 귀신에 홀렸던 것인가. 역 대합실 문을 여는 순간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동신문’ 속에는 돈 크기로 자른 종이만 들어있었다. 한걸음에 그 집으로 달려갔으나 할머니가 나와 처녀가 이미 떠났다고 말해줄 뿐이었다.

 

나는 전신의 맥이 탁 풀렸다. 이제 함흥으로 되돌아가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마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차가 늦어질수록 사람들은 더욱 불어났고 좀도둑들이 기승을 떨었다. 여기저기서 짐을 놓친 사람들이 아우성이었다. 약삭빠른 음식 장사꾼들은 여행자들이 지녔던 음식이 바닥난 것을 알고는 값을 껑충 올려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금방 떨어졌다. 오늘도 기차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나 역시 굶는 수밖에 없었다.

 

역대합실은 물론이고 바깥으로까지 사람들로 넘쳐났다. 어디고 발디딜 틈도 없었다. 사방이 땀냄새로 진동을 했다. 영화장면이 따로 없다고 생각하면서 한쪽 귀퉁이에 간신히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서 그 처녀가 지나가지 않나 하고 눈을 부릅뜨고 욱벼르는데 옆에 앉았던 젊은 사람이 빵을 먹기 시작했다.

 

“여보게, 나한테 빵을 하나 줄 수 없겠나. 이틀을 굶었더니 막 죽을 것만 같구려. 사정을 좀 봐주게.”

 

바로 곁의 할머니가 통사정을 했다.

 

“할머니, 내 주제를 좀 보라요. 나도 옷을 팔아가지고 빵을 샀습니다.”

 

그 젊은 사내가 말했다. 할머니는 체념한 듯 고개를 숙였다. 그때 그 옆자리에서

 

“야, 이게 사회주의 사회의 정형이야? 앉아서 굶어야 하는 이것이.”

 

작은 목소리도 아니었다.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몰렸다. ‘저 사람이 실수했다. 이제 어떻게 될까’ 모두 그런 표정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침묵이 싸늘하게 번지면서 소란하던 주변이 물을 뿌린 듯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납덩이 같은 침묵을 가르며 약속을 지키려는 듯 안전원이 바로 나타났다.

 

“동무, 증명서 봅시다.”

 

그 사람은 품속에서 공민증과 여행증을 꺼내서 주었다. 그러나 안전원은 건네주는 그 손에 바로 수쇠(수갑)를 채우며 “일어나 걸엇!” 하고 짧고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

 

“웬일이요.”

 

그는 침착했다.

 

“제가 한 말도 몰라. 말은 사상의 표현이란 말이야. 잔말 말고 걸엇.”

 

안전원은 그를 끌다시피 하여 밖으로 나갔다. 그 사람과 안전원이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나가는 동안 대합실 안의 얼굴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 사람은 말 한마디를 그의 목숨과 바꾼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 순간이었다. 애타게 기다리던 방송원의 목소리.

 

“손님 여러분. 이제부터 평양역을 떠나서 금골까지 가는 제3렬차에 대한 차표를 찍어드리겠습니다.”

 

‘와. 와.’ 함성이 울렸다. 여기 저기 사람 찾는 아우성이 들리고 역사 안팎은 순식간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아수라장, 우리에겐 그것이 차라리 편안했다. 나가려는 사람의 물결, 들어오려는 사람의 물결, 우리 주변도 자리를 털고 짐을 챙겨들고 막 흐름에 합류하려고 할 때였다. 어디선가 울려오는 쇠된 목소리.

 

“가만, 여기 손님들에게서 뭘 좀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머리를 돌려보니 안전원이 살기 띤 눈길로 우리를 주시하며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옷을 팔아 빵을 사서 먹던 사내가 짐을 울러메며, “뭘 확인하겠다면 빨리 하십시오. 우린 바쁩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나 안전원의 목소리는 냉혹할 뿐이었다.

 

“공무집행을 방해하지 말엇. 한두 마디로 확인할 일이 아니야. 자, 모두 날따라 왓.”

 

“어깨 별을 내놓고 사람 때려라”

 

아, 3일 만에 들어오는 기차를 눈앞에 두고 놓쳐야 하다니. 이 기차를 못 타면 언제 다른 기차를 타게 되려나. 막막하고도 막막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안전원의 소맷부리를 붙잡고 통사정을 했다. 그런다고 매몰찬 그네들한테 통하랴. 나 역시 몰랐다. 신성천역에서 달라진 내 운명이 고향에 머물지 못하고 중국으로 달아나게 되는 출발점인 줄을.

 

“잔말 말고 따라왓. 너희 주변에서 그 말이 나왔으니 확인해봐야 해.”

 

하느님 맙소사. 이제는 사정을 해도 소용이 없게 됐음을 깨달은 사람들은 그 쓸데없는 말을 한 사람에게 욕지거리를 퍼붓는 것으로 화를 달래며 줄레줄레 안전원을 따라나섰다.

 

도착한 곳은 신성천 역전 분주소였다. 우리는 차례차례 심문을 당했다.

 

- 그 말을 할 때 누구는 어떻게 있었으며 뭘 했는가?

- 저 사람이 어떻게 그 말을 하게 됐는가?

-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떤 감정을 받았는가?

 

 

정말 시끄러울 정도로 많은 것을 물어본다. 우리는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고직했다. 이것저것 깐깐하게 물어보던 안전원은 우리더러 짐과 증명서를 다 내놓으라고 했다. 그러더니 우리를 들여다 놓은 곳이 역전분주소 구류장이었다. 한 사람씩 신원을 확인한다는 것이었다. 직장과 집주소를 알아보고 여행목적지가 정확한지를 알아내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수시로 정전이 되는 현실에 그러한 확인작업이 2, 3일 안으로 끝난다는 보장이 없었다. 결국 역전 구류장 안에서 신원확인이 되기까지 꼬박 굶어야 하는 판이다. 나도 속에서 불만이 차올랐다. 옆에서 들은 것이 죄라면 도대체 죄가 없는 사람은 누구일까 싶었다.

 

구류장 속에서 꼬박 이틀을 굶었다. 나는 가슴이 막히면서 미칠 것만 같았다. 답답하고 억울하여 발광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발광을 한들 돌과 같이 단단한 머리를 가진 사람, 콘크리트 벽, 둘러 친 쇠창살들이 알아줄 리 만무했다. 그 날도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오후 4시가 되자 끌려온 사람들을 모두 불러냈다. 다시 어딘가로 끌려갔다.

 

안전원을 따라 끌려가는 우리를 길 가던 사람들이 쳐다보았다. 죄가 없어도 부끄럽게 생각되어 고개를 숙이고 우리는 걸었다. 갈 테면 가보자는 심정으로 부지런히 걸었다.

 

30분쯤 걸었을까. 철제 대문에 사방을 빈틈없이 전기철조망으로 두른 건물이 나타났다. 이른바 ‘여행자 집결소’였다. 안전원은 우리를 집결소 계호관리장에게 인계했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다시 불끈 치솟아 올랐다. 난생 처음 죄인이 돼 집결소에 들어온 것이다. 이럴 수는 없었다.

 

“나한테 무슨 죄가 있습니까. 여행자 집결소는 주소, 성명이 불비하고 공민증, 여행증, 차표 없는 사람이 들어오는 데 아닙니까? ”

 

나는 큰 소리를 내어 따졌다. 안전원은 쓴웃음을 지었다.

 

“너희는 그보다 더 엄중해. 사상이 불비하단 말이야.”

 

사상문제라는 한마디로 기세를 꺾으려 들었다. 나도 더는 물러설 수 없었다.

 

“사상이 무엇이 불비하단 말입니까. 말을 들은 것이 죄라면 그것을 취급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까. 안전원동지는 우리 옆에서 그 말을 몇 번 곱씹었습니까.”

 

그러자 안전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야, 이 새끼가 보통새끼가 아니구나. 이 새끼를 단단히 확인해야겠구나. 야, 이 새끼를 달구라, 너 이 새끼. 여기서 보름만 견디어 보라. 시체를 만들 테다.

 

” 악에 받친 안전원의 소리에 나도 지지 않고 대들었다.

 

“확인해보십시오. 안전원 동지의 집 물보다 우리집 물이 더 새빨갛습니다. 이제라도 우리 도 안전국 선전부부장한테 전화 쳐보십시오.”

 

순간 안전원의 주먹이 내 얼굴에 날아와 정통으로 부딪쳤다. 나는 쓰러질 뻔하다가 중심을 바로 잡았다. 그리고 안전원을 향해 반말을 던졌다.

 

“야, 네 어깨 별을 내놓고 사람 때려라. 피가 물이 아니다.”

 

그러나 안전원이 일개 학생 나부랭이를 무서워하랴. 그러면서도 내가 대드는 서슬에 밀린 듯 조금 양보하는 기색을 보였다.

 

“야, 이 새끼 담이 좋다. 너 이 새끼 삼촌을 믿고 날뛰는데 너 삼촌이 누구야?”

 

그는 재차 물었다. 나는 이름을 댔다. 그는 이름을 듣자 휙하고 돌아서서 직일관실(당직실)로 들어갔다. 아마 경비전화를 쳐서 알아보는 것 같았다. 한참 후에 나온 안전원은 “함남도 안전국 선전부에는 그런 사람이 없어. 이게 누굴 속이려 해.” 하고 눈을 부라렸다.

 

그리고는 계호과장을 향해 “야, 이것들을 끌어넣어라”는 한마디를 남기고는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여행자집결소에서 탈주하다

 

억울한 생각에 끓어오르는 분을 삭이기 어려웠다. “굶어죽는 것이 사회주의 정형이냐”는 한마디 말을 옆에서 들었다는 것만으로 죄인취급을 받아야 하다니. 억장이 무너졌다.

 

우리들의 억울함은 아랑곳없이 집결소 대문이 활짝 열렸다. 계호과장은 집결소의 생활준칙과 질서를 설명했다. 그리고 신성천 역전분주소에 전화를 쳤다.

 

“소장동지. 사람을 좀더 보내주십시오. 늙은이들은 필요없고, 건장한 사람들로 보내주어야 화목(땔나무)을 할 게 아닙니까.”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수작인가. 그제서야 우리가 끌려온 이유를 알았다. 사상이니 뭐니 한 것이 모두 땔감을 해올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구실이었다. 누구나 살기 위해 여행증이나 공민증을 가지지 않고 여행하는 형편이니 아무에게나 그물을 던져 잡아들인 것이다. 우리를 취조했으나 꼬투리를 잡지 못했으니 마땅히 우리를 보내주어야 했다. 그런데도 이들은 땔감을 해올 인력을 충당하기 위해 우리를 집결소로 데려온 것이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이유없이 안전원한테 뺨을 얻어맞아 코피가 터져도 어디 가서 하소연 한 마디 할 데가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눈에 보이는 철창은 없어도 조선은 그대로가 큰 감옥이었다. 우리는 사태를 알았지만 어떻게 풀려나갈 방도가 없었다.

 

나는 그 이후 중국에서 공안경찰에 취조를 당해보았다. 중국 공안경찰이 보이는 예절바른 태도와 두터운 인심, 단정한 풍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우리 안전원들이 중국 경찰의 절반만 되어도 좋으련만.

 

신성천 여행자집결소는 안전원의 지시에 따라 반장이 급식인원을 파악했다. 저녁식사로 강냉이가루와 배추를 썰어넣은 밥을 100g씩 나누어주었다. 최소한 이틀은 족히 굶었던 터라 맛있게들 먹었다. 그리고 각 방으로 수용되었다.

 

방에 들어가자 반장이 다시 신검을 했다. 그는 나의 사직 점퍼에 눈독을 들였다. 김정일이 기록영화에 나올 때 사직 점퍼를 입었는데 이때부터 대유행이 되었다. 그래도 사직 점퍼는 귀해서 함흥의 내 또래들도 입은 경우가 별반 없었다. 반장은 나를 따로 불러내더니 점퍼를 요구했다. 나는 생각해보았다.

 

주지 않는다고 해도 땔감을 하러 다니다보면 어차피 너덜너덜해져 못 입게 된다. 그럴 바에야 환심이라도 사놓는 것이 유리하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나는 웃으며 동의했다. 반장은 너무 좋아 어쩔 줄 몰라했다.

 

“정말 자넨 통이 커. 어려운 게 있으면 말하라.”

 

그도 나와 같이 단속당한 처지인데 무슨 권한이 있으랴. 남의 옷을 가져가고는 몹시 미안해하는 것이 그래도 양심은 있어 보였다. 그 이후로 그는 나를 도와주려고 신경을 많이 썼다.

 

며칠 사이 시래기 밥 서너 숟갈로 배를 달래고 땔나무를 하러 다니니 몸은 지칠 대로 지쳤다. 손바닥은 물집 투성이로 조금만 스쳐도 따가웠다. 그동안 공부만 하던 내가 죄인 취급을 받으며 노역을 치르려니 그 고통은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어느 정도 얼굴이 익은 일행에게 슬그머니 말을 걸었다.

 

“여기서는 도망치지도 못하겠구나. 빨리 우리 형제들이 와서 날 확인시켜주어야 하겠는데”라고 한탄조로 말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제꺽 “왜 도망을 못쳐. 뛰면 그뿐이지”라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그 말을 새겨들었다.

 

의논상대는 반장이었다. 그는 주의깊게 내 말을 듣더니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도망칠 기회가 오면 손을 흔들어 신호를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찰거머리 같은 안전원의 감시 속에 시간을 허비하던 중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나무를 끌어다 놓은 뒤 점심시간이 되었다. 안전원이 어디서 생겼는지 술 2병을 놓고 병째 마시는 것이었다. 그는 받침대 의자에 앉아 하품을 하면서 게슴츠레한 눈으로 반장에게 말했다.

 

“야, 인원을 잘 관리하라. 만약 한 명이라도 놓치는 날엔 어떻게 된다는 거 알겠지.”

 

그러더니 그는 잠이 들었다. 나와 반장의 눈길이 부딪쳤다. 절호의 기회였다. 반장이 나섰다. 감시(수용수 가운데 감시역할이 맡겨진 사람)들을 불러서 제자리에서 좀더 휴식을 취하도록 조처해 놓고, 몇 사람을 따로 불러 화목을 베어놓은 산 중턱으로 올라가라고 지시했다. 나와 반장을 합쳐 모두 5명이었다. 그 산중턱을 넘어서면 성천 땅이었다. 우리가 거의 중턱에 도달했을 때였다. 바로 뒤에서 앙칼진 소리가 들렸다.

 

“야, 너희들 어디로 가고 있어. 여기는 왜 왔어.”

 

술을 마시고 잠이 들었던 안전원이 어느새 권총을 빼들고 뒤쪽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흥. 어디 도망치려고. 난 이미 전에 알고 있었어.”

 

뒤에 안 일이지만 반장이 계획을 짤 때 누군가 밀고를 했던 것이다. 안전원은 우리가 기회를 찾지 못하자 일부러 술에 취한 듯 연극을 꾸며 우리를 현장체포하려 했던 것이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제 반주검이 되거나 감옥이다. 약 7m 후방까지 다가온 안전원은 살기 띤 눈초리로 명령했다.

 

“두손을 깍지 끼어 머리에 얹고 무릎 꿇고 앉아. 빨릿.”

 

우리는 모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만사를 체념한 채 속으로 오직 기적만 빌었다. 기적이여 빨리 빨리 일어나주십시오. 그런데 그때 정말 기적이 일어났다. 안전원이 우리에게 다가서려다 뱀을 밟은 것이었다. 그는 우리에게만 신경을 쏟으며 오다가 얼마나 놀랐던지 뒤로 넘어졌다.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순간 아무런 신호도 약속도 없었는데 모두가 일어나 혼신의 힘을 다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난사하는 총소리가 나뭇잎을 훑으며 흩어졌다.

 

얼마나 빨리 영마루에 올랐는지 그 경황에도 스스로 놀랄 지경이었다. 30분쯤 후면 안전원들이 주변에 깔릴 것이었다. 우리는 흩어져 달아나기로 했다. 나는 말없이 반장과 악수를 하고 주소를 나누었다. 언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은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기억에 담고 싶었다.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꽃바크로 불리는 노동단련대

 

나의 소년시절이 밤하늘에 고요하게 빛나는 별과 같았다고 한다면 대학시절은 비내리는 밤길이었다. 돌개바람 속에 흙먼지까지 뿌릴 줄이야 꿈엔들 알았으랴. 천신만고 끝에 집에 돌아온 것은 장삿길에 나선 지 5일 만이었다. 집 안에 들어서던 나는 순간 얼이 빠지고 말았다. 분명 시건(잠금)장치를 빈틈없이 해두었었는데 문을 까고 도둑이 들어와 싹쓸어간 것이었다. 신발자국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남았고 집안은 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다.

 

밤이 깊어가면서 텅빈 집에 나 혼자뿐이라는 생각이 가슴을 저며왔다. 돈을 벌어 공부를 하겠다고 나섰다가 죄 아닌 죄로 험한 꼴을 겪고 이제 난장판이 된 빈 집에 혼자 누우니 설움이 몰려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부모님을 여읜 고아라는 생각도 뼈에 사무치는 듯했지만 이제 정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그 누가 나와 같은 처지였을까. 나는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계속 불렀다.

 

“가난서린 내 운명은 타고난 팔자런가

눈물고인 내 앞길은 가시밭 천리만리.

말해다오 말해다오 쓰디쓴 이 세상아

땅을 치며 울어봐도 산천은 대답없네.”

 

“배고픔은 이를 물고 몇백번 참는다 해도

돈이 없어 받는 수모 내 어이 참을쏘냐.

야속하다 야속하다 쓰디쓴 이 세상아

돈이 없어 받는 수모 내 어이 참을쏘냐.”

 

나는 목소리를 죽여가며 몇 번이고 노래했다. 이 유행가가 우리가 처한 시대배경을 담고 있으며 우리 처지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절실하게 깨달았다. 보위부에서는 이 노래를 지은 사람을 끝내 추적하여 처형했다고 한다. 노래의 천재였다는 그 사람은 자신이 느끼는 심경을 순식간에 가사로 쓰고 곡을 붙여 하루에도 몇 곡씩이나 지어냈다고 한다. 이 노래 이외에도 그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상당히 많은 유행가가 지하로 번지면서 청년학생들 속에서 인기를 끌었다.

 

집으로 돌아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인민반장이 찾아왔다. 분주소에서 나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겁이 덜컥 났다. 혹시 집결소에서 통고가 된 것일까.

 

다음날 분주소에 찾아가니 예상대로였다. 신성천 여행자집결소에서 나의 집주소 담당 주재원에게 통보를 한 것이었다. 적어도 노동단련을 6개월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구역 안전부장을 찾아갔다. 이번 일을 상세히 설명하고 항의조로 말했다.

 

“정말 저한테 무슨 죄가 있습니까?”

 

구역 안전부장은 나의 말을 주의깊게 들어주었다. 그러고는 소식이 있을 때까지 집에 돌아가 기다리라고 했다. 다음날 열흘 동안 구역 노동단련대로 출근하라는 통지서가 왔다.

 

그곳에서 도망을 쳤기 때문에 그 벌은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별 재간이 없었다. 그나마 6개월이 10일로 되었으니 다행이라고도 생각되었다.

 

구역노동단련대의 열흘은 희극과 비극이 엇갈린 고달픈 시간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꽂바크’에 들어가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왜 노동단련대를 꽂바크라고 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노동단련대를 다른 나라(러시아) 말로 꽂바크라고 하는 것 같다.

 

꽂바크에는 주로 도둑질, 무결자(직장에 무단으로 결근한 사람), 무직자, 폭행, 협잡, 부정행위, 강도, 강간, 매음 등 온갖 범죄자들이 들끓는다. 이 밖에도 당일꾼에게 시비를 따졌거나 행정일꾼에게 달려들었거나 조직책임자에게 잘보이지 못한 사람들이 들어왔다.

 

교화소나 관리소 재판에 넘기기에는 죄질이 약한 사람이 주로 노동단련대로 들어온다. 그러나 그렇게 엄격하게 구별이 되는 것도 아니다. 교화소나 관리소에 갈 사람이 들어오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그런 사람 중에는 배가 고파 농작물에 손을 댄 사람이 많은 편이다.

 

꽂바크에는 아침 6시에 출근한다. 출근에 이어 대열을 맞춰 온 시내를 행진한다. “사회주의 지키세” “내 나라 제일로 좋아”와 같은 노래를 부르며 발맞춰 간다. 아마 사상개조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해보라는 것 같았다. 정말 그 광경을 보면 희극도 그런 희극이 없다.

 

아침 7시20분경이면 일반인들이 모두 출근길에 오른다. 이 시간에 맞추어 꽂바크생들이 대열을 지어 노래를 부르면서 등장하는 것이다. 철부지 아이들은 자기 아버지가 장한 일이라도 하는 줄 알고 대열을 따라오며 “아버지” “아버지”를 연호한다. 그러면 그 아버지는 너무나 창피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어쩔 줄을 모른다. 이런 광경을 보고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린다.

 

행진대열은 죄의 유형에 따라 분류된다. 예를 들면 강간, 매음, 부화행위(간통 등 남녀간의 음란행위)로 들어온 사람들은 자기네끼리 대오를 짓게 된다. 만약 이들이 10줄을 짓고 있다면 5줄씩 나누어 급보로 뛰게 하면서 앞쪽 5줄이 “부화!” 하면 뒤쪽 5줄이 “근절!” 하는 식으로 반복하면서 씩씩하게 외치도록 시킨다. 이런 광경을 보고 출근길에 든 사람들이 웃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꽂바크생이 어디로 도주했거나 아파서 나오지 못할 경우 대열은 그 집으로 향한다. 이들은 그 집 앞에서 “사회주의 지키세”를 합창한다. 동리망신을 주는 것이다. 동리사람들이나 조무래기들은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면서 온통 둘러서서 희희거린다.

 

그러나 나는 안전부가 오판하고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이 망신당하고 놀림 받아 개조될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철저한 오산이라는 것이다. 우선 그 방법 자체가 사회주의를 희극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희극을 보고 웃다가 끝내는 눈물이 핑 돌게 한다. 반성을 시킨다고 하지만 결국은 더 많은 반사회주의자들을 양성하는 학교가 된다. 꽂바크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치고 ‘교양개조’된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나는 단언한다.

 

얼굴이 다 팔려버렸다고 생각하는 꽂바크 출신은 그나마 가졌던 한 조각 양심마저 던져버리고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바뀐다. 반성을 하기보다는 범행실패의 원인을 가려내어 다시는 실패하지 않으리라고 노골적으로 결심을 하고 활개를 치게 된다. 개조가 아니라 개악인 것이다. 꽂바크가 반사회주의 정예분자를 양성하는 단기학교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나는 꽂바크에서의 노동강도는 굳이 말하려 하지 않는다. 앙상한 갈비뼈를 드러낸 사람들이 지게통에 벽돌을 지고 열숨(뜨거운 숨길)을 헉헉거리면서 7층 층집(아파트) 공사판을 오르내린다. 그것을 상상하는 것으로는 그 고통을 알 수 없다. 꽂바크생들은 그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는 실패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열흘이 지났다. 나는 분명 죄가 없다고 생각했다. 죄없이 꽂바크 생활을 했다고 하지만 부끄러움 때문에 얼굴을 들고 나다닐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집을 지키고 앉아 있다고 해서 누가 먹을 것을 가져다 줄 리도 만무했다.

 

신의주에서 만난 굶주린 처녀

 

나는 누님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번에는 신의주로 가기로 했다. 눅은 값으로 부채마(식용 열매)를 사서 밀가루와 바꾸어오면 3배 장사는 된다는 것이었다. 신의주 길에 오른 것이 그 해 4월 20일경이었다. 그러나 부채마를 쥐고 신의주에 들어서니 사정이 달랐다. 산지 사방이 강도, 도둑, 협잡꾼으로 시끌시끌했다.

 

그들은 초행길로 어리숙하게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면 무조건 달려들어 강도질이나 협잡질, 아니면 두들겨팼다. 이들은 안전원 규찰대를 끼고 있어 마음놓고 강탈을 했다. 강도질한 것은 5 대 5로 안전원과 나누어 먹었다. 보통 사람들의 앞가림이나 완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대개는 호신용 칼을 지니고 다녔다.

 

신의주 안전원이나 보위원들은 직접 장사꾼을 잡아 ‘비사회주의’라고 덮어씌우고 물건을 빼앗아 자기 배를 채웠다. 시비도 그럴 듯했다. “누가 국경지대에 마음대로 들어오라고 했는가?”였다. 신의주에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가 사회주의에 반한다는 것이다. 나도 별 재간없이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 발로 신의주까지 찾아와 안전원 좋은 일만 해주고 말았다.

 

결국 부채마는 다 털리고 말았다. 나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안주머니에 깊숙이 숨겨놓은 9000원이 무사한 것은 다행이었다. 기차 사정은 어디나 마찬가지였다. 기차 미정으로 기다리는 동안 또다른 신의주의 진면목을 접하게 되었다. 밤이나 낮이나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일제 패망 직후 만주나 일본에 징용, 징병 갔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돌아오는 영화장면 같았다. 정말 “조선이 해방되었소”라는 플래카드만 붙이면 그대로 영화를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발디딜 틈도 없이 붐비는 사람들 속에는 강도, 도둑, 협잡꾼, 몸파는 여자, 심지어 중국사람들에게 자신의 피라도 팔기 위해 안타깝게 선(중개인이나 소개해줄 사람)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많았다. 사방천지에 짐통 잃었다고 외치는 소리, 싸구려를 부르는 장사꾼 호객소리, 단속하며 쉴새없이 불어대는 안전원 호각소리, 매맞으며 비명을 지르는 행인과 때리는 규찰대의 고함소리. 그 속에는 행여나 자기 몸을 팔아 빵이라도 사먹을 수 있을까 하고 추파를 던지는 여인들의 웃음소리도 뒤섞였다.

 

역전 음식매대 앞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채먹을까 하고 노려보는 꽃제비(거지)들이 눈초리를 빛내며 행동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엄지손가락을 빨며 침을 삼키고 선 어린 소년, 소녀들이 몰려 있었다. 맥이 없어 비닐박막(추위나 비를 가리기 위해 지닌 비닐)을 뒤집어쓰고 땅바닥에 쓰러져 누운 노제비들(늙은 거지들). 거리에서 시체를 거두어 수레에 싣고 가는 9·27 상무들(김정일이 1995년 9월27일 전국의 방랑자들 생활을 안정시키라는 지시에 의해 9·27 상무위원회가 조직되었다. 그러나 이 기구 역시 감옥처럼 사용된다. 지금 북한에서 사람이 제일 많이 죽어나가는 곳이 바로 9·27상무위원회다. 1998년 겨울 이후 조직과 명칭이 개편되었다).

 

피로와 허기는 자연스럽게 나를 음식매대(자영업으로 음식을 만들어 파는 간이상점) 앞으로 끌어갔다. 우선 무엇이든 좀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매대는 70m쯤 죽 한 줄로 늘어섰다. 음식장수들은 저마다 자기 것을 팔려고 애를 썼다.

 

음식장사는 여자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한다. 반드시 남편이나 아들 같은 끌끌한 남정네가 지켜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꽃제비떼가 달려들어 한순간에 음식을 날려보낸다. 남자들은 밤을 지새우면서 자기 아내나 동생들의 음식장사를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나는 20원을 치르고 밥 한 그릇과 두부 한 모를 샀다. 그리고 입으로 가져가려고 했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니 웬 처녀가 서 있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저, 동무. 하필 있을 자리가 없어서 밥을 들 자리 뒤에 섰소?”

 

그런데 그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돌아서서 처녀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P> 초점 없는 눈동자, 갈라터진 입술, 홀쭉하게 팬 두 볼, 움푹 들어간 눈… 더이상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치밀었다. 나는 말없이 20원을 꺼내 밥 한 그릇과 두부 한 모를 사서 처녀 앞에 내놓았다.

 

처녀는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없이 마구 먹어대는 것이었다. 그 야릇한 광경을 보니 배는 고팠지만 먹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내것까지 그녀에게 주었다. 그러자 음식장수들이 별 이상한 사람 다 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유심히 보는 것이었다. 그저 그녀가 밥을 먹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데 그녀는 두 번째 것도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여전히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그녀가 밥을 먹는 속도는 내 눈을 의심케 했다. 나도 몰래 그것을 지켜보는 나의 시선이 흐릿하게 변했다.

 

그곳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없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체면을 돌볼 겨를이나 감각이 없어졌겠는가. 처녀가 생면부지의 사람이 산 두 그릇의 밥을 아무런 의식도 차리지 못하고 먹을 때는 오죽이나 굶주렸을까. 밥을 모두 비운 뒤 이윽고 처녀는 정신이 돌아왔는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참 고마워요”라고 한마디했다.

 

나는 빵과 떡을 얼마간 사들고 잠자리를 잡기 위해 역전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까지 반병신인 줄 알았던 그녀가 나섰다.

 

“저 손님은 잠자리가 없어서 그러지 않아요. 어디 외지서 오신 분 같은데”라고 주워섬기는 것이었다.

 

나는 웃음을 띠고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비록 얼굴이 까맣게 여위었어도 사기협잡을 한다거나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머리를 끄덕끄덕하자 자기와 같이 가자고 했다. 그녀의 이름은 영순이었다.

 

남신의주에서 피 파는 처녀들

 

“한 10리를 더 가면 남신의주라는 데가 있어요. 거기 우리 이모가 살고 있어요. 불편한 대로 거기까지만 가면 하룻밤은 그럭저럭 보낼 수 있을 거예요.”

 

나는 불현듯 신성천 역에서 협잡당하던 일이 떠올라 그녀를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비록 얼굴은 몹시 상했지만 옷은 유행복 차림이었다. 상한 얼굴과 때묻은 옷이 그녀를 비천하게 보이게 했지만 그녀의 선량함을 가리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리는 남신의주까지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걸었다.

 

“아까는 몹시 시장했던가 보죠.”

 

인사삼아 한 말인데 그녀가 몸둘 바를 몰라 하는 것이 밤인데도 확연히 전해졌다. 괜히 그 일을 꺼냈구나 하고 후회가 될 정도였다.

 

“아까는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녀는 대충 자신이 처했던 사정을 설명해주었다. 나는 그제야 이 처녀가 그렇게나 굶주렸으면서도 앞가림을 하느라고 한마디 말도 못 하고 얼굴을 숙이고 내 뒤에 서 있던 정황이 이해되었다. 밥을 사달라고 할 용기가 없어 식사하려는 사람의 등뒤에 무작정 서 있기만 했던 것이다. 그녀의 집은 사리원이었다.

 

1995년 그녀는 양친을 모두 잃고 혼자 남게 되었다. 낮에는 직장인 도시건설사업소에 나가 일하고 밤에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처녀들과 역전에 나가 빵장사를 했다. 직장은 명색일 뿐 생계를 이을 수가 없었다. 일거리도 배급도 끊어진 직장은 이름만 걸어놓고 살길은 자기 자신이 열어야 했다. 빵 하나에 4원 50전에 받아와서 5원에 파는 것이 부업이자 생계수단이 되었다. 열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기차가 한시라도 빨리 들어오기를 고대하지만 자기는 계속 연착이 됐으면 했다고 한다. 그래야 빵을 많이 팔 수 있었기에.

 

아무리 빵을 많이 판다고 해도 하루 수입은 20~30원이 고작이다. 낮에는 근무하고 밤에는 새벽 1시까지 빵을 팔고 나면 잠자는 시간은 2~3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직장일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작업장의 자재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느 구석으로 들어가 새우잠을 청하곤 했다.

 

그러나 직장에서는 그녀가 역전에 나가 빵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손님을 상대로 매음을 한다는 헛소문이 퍼져 그녀를 괴롭혔다. 손님에게 빵을 팔기 위해 나오지도 않는 억지웃음을 짓는 것을 직장의 누가 보고 퍼뜨린 것이었다.

 

“쬐끄만 것이 덜되먹기도 하지. 매음행위를 한다고.”

 

소문은 그녀가 가는 곳마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녀는 빵소래를 집어던지고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죽는 일이 말처럼 그리 쉬운가. 빵소래를 집어던진다고 누가 먹여주는 것도 아니었다. 밉든 곱든 그 빵소래를 다시 챙겨들고 역전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역전주재’라는 별명이 붙었다.

 

날이 갈수록 장사는 여의치 않았다. 직장과 사로청조직에서는 그녀가 ‘비사회주의’를 한다면서 월·분기마다 비판했다. 그녀는 기어코 직장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누구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신의주로 와서 이모집에 의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신의주에 왔지만 금방 장사밑천이 바닥나고 말았다. 풍문으로 정주시에 가면 돈벌이가 될 무슨 선이 있다고 하여 찾아갔다, 그게 온통 뜬구름 잡는 일이었다. 허탕만 지르고 꼬박 이틀을 굶다가 화물차를 타고 겨우 돌아오던 길에 나의 뒤에 서게 되었던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영양식과 기름기를 섭취해온 사람이라면 하루 이틀 굶는다는 것은 별 부담이 되지 않는다. 물이나 우유 한 잔만 마셔도 견딜 수 있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의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기름이나 콩, 고기류 같은 단백질은 그 비슷한 것도 섭취하기 어렵기 때문에 허기가 지면 견뎌낼 재간이 없다. 몸속에 남아 있는 에너지원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항상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에서 이틀을 굶는다는 것은 그나마 빈 배를 채워줄 아무것도 넣지 못해 기진맥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남신의주에 들어섰다. 그야말로 다 쓰러져 가는 오막살이 한 채가 나타났다. 흙벽은 어둠 속에서도 여기저기 굵은 금이 간 것이 보였다. 녹슨 돌쩌귀가 떨어져 문이 너덜거렸다. 창을 가린 비닐박막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오두막집은 한숨이라도 크게 쉬면 금방 쓰러질 것 같았다. 이 속에도 과연 사람이 살고 있을까.

 

“이모, 문 열어 주세요.”

 

정말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래도 집이라고 문고리를 안에서 끈으로 동여매어 놓았던가 보다. 이모라는 40대 여인이 나왔다. 간단히 소개를 마친 뒤 집 안으로 들어갔다.

 

40~50분 지났을까, 이런 저런 앞일을 걱정하며 묵묵히 앉았는데 “언니” 하고 부르는 앳된 소리가 울렸다. 그녀가 문을 열자 20대 초반의 처녀 둘이 들어섰다. 각자의 손에는 3kg 정도의 강냉이를 담은 자루가 들려 있었다.

 

처녀들은 낯선 사람이 있는 것을 보자 누구냐는 듯이 눈알을 굴렸다. 영순이는 “일 없다”면서 저희들끼리 소곤거리는 것이었다.

 

온통 여자들이 넘치는 방에 혼자 있으려니 부자연스럽고 불편했다. 눈치 빠른 이모가 이부자리를 펴고 눕기를 권했다. 몸도 마음도 피곤해서 한시라도 빨리 눕고 싶던 차에 그 말을 듣자 한숨이 다 나왔다. 나는 가방에서 세면도구를 꺼내 거뜬하게 씻은 다음 자리에 누워 다리를 쭉 뻗었다. 얼마쯤이나 잤을까. 눈을 떠보니 캄캄한 어둠 속에서 소곤소곤 말소리가 들렸다. 나의 귀는 저절로 쫑긋하니 모아졌다.

 

“글쎄, 피를 팔겠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더라. 그런데 피를 뽑는 사람들이 보위부 눈길을 피하여 몰래 하니 무턱대고 어디에 가서 그런 선을 찾아 쥘 수 있겠니?”

 

그것은 영순이가 한숨을 내쉬며 한 말이었다. 나는 계속 잠을 자는 척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나는 궁금증이 생겼다.

 

나도 1995년 들어서 처녀들이 너무나도 살기가 바빠(어려워) 남몰래 몸을 팔고 피도 판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온 터였다. 그러나 피를 팔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을 처음 보니 내 자신도 아쓱한(춥거나 무서울 때 몸이 움츠러드는 것)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피라도 팔아 장사밑천을 만들어보려는 그녀들이 가엾기도 했다. O형 피가 몇십그램에 1만원이라고 하던가. 그렇게 소곤소곤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은화누이, 은화누이” 하며 밖에서 다급하게 찾는 소리가 울렸다. 두 처녀 중의 누가 은화인 모양이었다. 문을 따주자 자그마한 사내아이가 들어왔다. 그 소란에 모두 일어나고 불이 밝혀졌다. 나 혼자만 누운 채였다. 삽시간에 고무불(고무를 태워 비추는 불) 타는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우면서 검게 그을음이 일었다.

 

강냉이 열차에 몰려든 꽃제비들

 

그 소년은 까마귀가 왔다가 울고 갈 지경이었다. 새까만 얼굴가죽이 간신히 뼈를 덮고 있었다. 쇄골이 두드러졌고 그 위로 모가지가 가냘펐다. 그러나 두 눈만은 또렷또렷하게 정기가 도는 것 같았다. 그 소년은 숨을 헐떡거리면서 말했다.

 

“은화누이. 은철이가 죽어가요. 빨리 가봐요.”

 

“어찌된 일이냐. 무슨 일이게?”

 

은화가 다급하게 물었다. 나는 여전히 누운 채였다. 그들은 내가 자는 것으로 여기거나 아니면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글쎄 빨리 가봐. 말할 사이가 없어. 은철이 지금 까마귀 집에 누워 있어.”

 

한동안 부스럭거리더니 영순이 이모만 남기고 모두 나가버린 것 같았다. 다시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혼곤히 잠속으로 굴러떨어졌다. 내가 깨어났을 때는 시계가 아침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자리를 개키고 세수를 한 다음 영순이 이모에게 말했다.

 

“남신의주에서 신의주-청진행이 몇 시에 있습니까?”

 

“뭐 시간이란 게 없소. 영순이가 들어오면 열차문제를 알겠는데”라고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는 운동복만 걸치고 나가 그 집 앞쪽으로 위치한 작은 장에 가 밥을 사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빵을 몇 개 사들고 돌아오니 처녀들이 모두 돌아와 있었다. 영순이와 다른 한 처녀는 은화를 달래고 있었다. 은화는 넋이 나간 것처럼 멍하니 앉아 소리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은철이란 아이가 잘못되었구나 싶었다. 나는 짐짓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러나 대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무런 위로나 설명이 없어도 슬퍼하는 사람을 버려둔 채 시간은 흐른다. 내가 사정을 안 것은 한참이 지난 다음 영순이를 통해서였다.

 

은화, 은철 오누이는 창졸간에 부모를 잃고 고아로 남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제 집에서 풀죽이라도 끓여서 오누이가 다정하게 지내기로 했다. 그러나 양식이 바닥나면서 오누이가 배고픔에 서로 부둥켜안고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보며 우는 날이 이어졌다.

 

그러다 막막한 가운데 하나의 희망을 안고 신의주로 온 것이었다. 그 희망이란 중국 단동시에서 들어오는 강냉이 열차였다. 은철이가 이 열차에서 강냉이를 훔쳐오는 것으로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은철이 남매는 결국 꽃제비가 된 것이었다.

 

중국에서 강냉이 열차가 들어오면서 전국에서 수천명의 꽃제비들이 모여들었다. 은철이도 이들 가운데 끼어든 것이다. 결국 신의주 꽃제비들은 중국에서 들어오는 강냉이 열차를 노리고 전국에서 모여든 것이다. 꽃제비들은 자전거 살을 구부리고 그 끝에 날을 세워 칼처럼 예리하게 벼린 도구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이것으로 열차 빵통 밑바닥의 갈라진 틈을 쑤셔 강냉이가 줄줄 흘러내리면 배낭에 받아내는 것이다. 이것을 장마당에 팔아 하루하루를 먹고 살아가는 것이다.

 

강냉이 열차가 들어오는 시각을 꽃제비들은 귀신처럼 안다. 그때면 역구내는 꽃제비로 하얗게 덮인다. 이들은 열차가 들어오기 무섭게 강냉이 빵통 밑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그러나 강냉이 열차를 꽃제비만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꽃제비들은 좀도둑떼에 지나지 않는다. 역무원들과 단속 검열관, 안전원들은 여기에 비하면 큰도둑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열차 호송을 맡은 호송보위대는 큰도둑 중에서도 큰도둑이다. 그러나 강냉이를 똑같이 털어내도 매맞고 죽어나가는 것은 나이 어린 꽃제비들뿐이다.

 

그나마 열차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온종일 굶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은화는 동생 몰래 피라도 팔아 장사밑천이라도 쥐어보려고 했던 것이다. 피를 뽑아가는 중국인에게 선을 대려고 알아보다가 우연히 영순네를 알게 되었고, 처지가 비슷한 그녀들은 서로 언니, 동생하는 사이가 된 것이었다.

 

어젯밤에 처녀들이 들고 있던 강냉이도 바로 은철이가 훔쳐낸 것이었다. 그러나 은철이는 열차 빵통 밑에 다시 들어갔다가 보위대에 걸려 총짝(개머리판)에 맞아 아침 나절에 그만 숨을 거둔 것이었다. 그렇게 맞아죽어간 꽃제비가 수도 없이 많지만 누가 헤아려나 줄 것인가. 먹고 살기 위해 강냉이를 훔치다 총개머리판에 맞아 비명에 간 하나밖에 없는 동생도 불쌍했지만 그렇게 동생을 잃은 은화 자신의 심경은 또 어떠했을까. 그래서 은화는 울음소리도 내지 않고 눈물만 철철 흘렸는지도 모른다.

 

영순이의 설명을 듣고 또 내 눈으로 보았지만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충격이 컸다. 대학 도중에 장삿길로 나섰지만 여전히 나는 사회의 실상을 잘 모르고 있었다. 나는 이 충격적인 사태 속에서 정말 우리 사회의 실상이 무엇인지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새벽 2시의 강냉이 탈취 전쟁

 

나는 신의주에서 10일간 머물렀다. 내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이 10일간을 거치면서였다. 나는 은화와 영순이를 도와주려고는 했지만 이렇게 그들의 생활을 세상에 공개하게 되리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지금 희미하게 기억나지만 은화의 동생은 ‘9·27상무’들이 죽은 사람을 거두어 매장하는 어느 야산에 묻혔다고 한다. 이제는 그 위로 무심한 잡초가 우거지고 또 시들고 하겠지. 이야기는 다시 당시로 돌아간다.

 

은화는 한참이 지났지만 실성한 듯이 앉아 있었다.

 

“초면에 안됐구만요. 빵을 가지고 요기나 하시오.”

 

나는 빵을 내밀며 은화에게 말을 붙였다. 그녀는 들었는지 말았는지 미동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앞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뇌물용으로 지니고 있던 중국담배 ‘장백산’을 뜯어 입에 물었다.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였다. 김순녀가 가던 날 무력감에 잠겨 처음 담배란 것을 피워본 이래 두 번째였다.

 

돌아갈 기차시간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두 번이나 새벽기차를 놓쳤다. 세 번째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역전에 나가 기차가 올 시간을 부지런히 알아보고 다녔다. 그러나 기차가 언제 올지는 아무도 보장할 수 없었다. 맥없이 트럼프장을 만지고 있을 때였다.

 

“오빠, 한가지 부탁해도 되겠어요?”

 

1주일을 같이 지내다 보니 편안한 사이로 느껴졌는지 영순이는 나를 오빠라고 불렀다.

 

“무슨 일인데.”

 

나는 머리를 들지 않고 계속 트럼프장을 만지며 대꾸했다.

 

들어보니 사정이 딱했다. 중국에서 강냉이열차가 들어오면 강냉이를 중간에서 사들여 시장으로 가져다 파는데 도중에 남자애들에게 자주 뺏긴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강냉이 열차가 들어오면 자신들을 보호해 달라는 것이었다.

 

“어떡하면 좋을까.”

 

나는 속으로 궁리를 했다. 돌아갈 기차가 언제 올지 몰랐다. 그렇다고 한밤중에 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꽃제비들이 어떻게 열차의 빵통을 털어내는지는 보고 싶었다. 또 영순이와 은화를 봐서는 도와주고도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가려는 사람의 것을 빼앗으려는 강도들을 조금이라도 저지하고 싶었다.

 

“그래, 그러마” 하고 동의하고 말았다.

 

내가 동의하자 영순이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은화는 꼬박 3일간을 음식을 전폐하다시피 하더니 요즘 들어 말도 하고 음식도 조금씩 먹는다는 것이었다.

 

새벽 2시쯤 되었을까. 드디어 출동이었다. 나는 허술한 옷을 걸치고 손전등을 들고 영순이를 따라나섰다. 도착하니 열차가 들어온 지 20분쯤 지났다고 한다. 살펴보니 강냉이를 실은 빵통은 12개였다. 그 빵통을 자동보총을 꼬나든 무장보위대 5명이 지키고 있었다. 군데 군데 조명등이 비추는 아래로 펼쳐진 삼엄한 광경이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저렇게 지키고 섰는데 어떻게 도둑질을 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그 의문은 홍수에 흙담 무너지듯 금세 풀렸다. 눈앞에는 환상과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웅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어디서 나타났는지 1000명은 실히 넘어보이는 꽃제비의 대군이 삽시간에 빵통을 덮치는 것이었다. 무장병력 5명은 그 속에서 흔적도 찾아낼 수 없었다. 누가 누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단 말인가.

 

꽃제비들의 대열은 달려오던 기세를 이기지 못해 앞으로 몰리다가 뒤로 붙고, 뒤로 붙다가 앞으로 확 쏠렸다. 한쪽에서 때리면 다른 쪽으로 밀려나면서도 사생결단으로 빵통 밑바닥으로 파고들었다. 빵통의 나무바닥 사이를 공구로 쑤시고 째고 하여 강냉이 알이 흘러내리면 배낭으로 받아내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꽃제비들 속에는 처녀들도 있었고, 아주머니와 노인들도 많이 뒤섞여 있었다. 그들의 얼굴 하나 하나마다 비장한 결의가 서려 있는 것 같았다. 사실이 그랬다. 그들은 이 열차를 놓치면 굶주리다 죽어갈 수밖에 없기에 생사를 판가름하는 전장으로 나아가는 용사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니 모든 것을 무릅쓴 자의 진지함이 어려 있었다.

 

철길 주변과 승강장 일대는 산지사방으로 강냉이알이 흩어졌다. 그러나 그것도 몇 분 지나지 않아 꽃제비들이 한알 두알 모두 주워갈 것이었다.

 

영순이와 은화는 길목에 쭈그리고 앉아서 기다렸다. 얼마 후 강냉이를 가지고 온 꽃제비들이 흥정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눅은 값으로 사들여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 그녀들의 몫이었다. 이제 얼마만 더 모으면 가지고 온 배낭을 다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때 스무살이 채 안 되어 보이는 청소년들이 한무리 나타나더니 그녀들을 에워쌌다.

 

“야. 강냉이 좀 보자.”

 

무리 중에서 땅딸보가 나서서 은화 앞에 있던 배낭에 손을 넣으려고 했다.

 

“가만.”

 

나는 손전등으로 그들을 비추면서 다가가 손전등 뒤통으로 땅딸보를 후려갈겼다. 그는 손 쓸 새도 없이 쓰러졌다. 다른 녀석들은 그 꼴을 멍하니 보고 있더니 정신이 들었는지 후닥닥 달아나버렸다. 땅딸보도 어느새 일어나 뒤질세라 후다닥 뛰었다. 아마 내가 규찰대라도 되는 것으로 오해한 것 같았다.

 

그들이 합세하여 대들었다면 나로서는 당해낼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짐을 챙겨서 돌아서는데 배낭이 하나 있었다. 꽃제비들이 정신없이 도망가면서 놓친 것 같았다. 그 속에는 강냉이가 가득 들어 있었다. 20kg은 되어 보였다. 30kg을 눅은 값으로 산 데다 공으로 강냉이를 얻었으니 수확이 있었다. 그러나 기분은 영 개운치 않았다. 어떻게 형언하기 어려운, 착잡한 심정이었다. 우리는 배낭을 울러메고 제방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하룻밤 사이에 신의주에서 또 하나의 참혹한 광경을 목격할 줄 내가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길가는 앞쪽으로 어느덧 아침기운이 부옇게 밝아왔다. 그 속으로 새카만 것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석탄구덩이에서 굴러도 사람이 그렇게나 새카맣게 될 수 있는 것일까.

 

새카만, 크고 작은 거지들이 저마다 불 위에 강냉이를 담은 깡통을 올려 놓고 덖고(볶고) 있었다. 지난 밤에 훔친 강냉이 같았다. 여기저기서 강냉이를 덖으려고 들락날락하는 거지가 한눈에 200여명은 되어보였다.

 

나는 불현듯 까마귀 집이 생각났다. 은철이가 마지막 숨을 거두며 머물렀던 곳, 바로 그 까마귀집이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이었다. 진정 사람이 아닌 까마귀의 무리가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는 새 한 발짝 한 발짝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가갈수록 고무불 그을음과 연기가 자욱했다. 어떤 사람은 이제 불을 붙이려고 엎드려 입으로 바람을 불어넣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기침소리, 앓는 소리, 신음소리가 뒤섞여 나왔다. 물고기가 썩는 듯한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까마귀집은 원래가 철도로 운반되던 시멘트 적재장이었던 것 같았다. 휑뎅그렁한 지붕 밑으로 운반할 시멘트가 없어진 뒤 오갈 데 없는 꽃제비들의 소굴로 변한 것이었다. 아니 소굴이라기보다 차라리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꽃제비들의 완전한 근거지이자 해방구란 느낌마저 들었다.

 

시체처럼 누워 죽음 기다리는 까마귀집

 

나는 신음소리를 내며 앓고 있는 거지에게로 다가갔다. 거동이 가능한 거지들은 강냉이를 주워서 그것으로라도 연명을 하느라고 애를 쓰는 반면, 이들은 죽을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열병으로 신음소리를 내는 것뿐이었다. 나는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거지를 내려다보았다.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는 것을 빼고는 완전한 시체였다.

 

해골바가지에 가죽을 씌운 형상이었다. 정말 어떠한 인체표본도 그렇게 정확하고 분명한 뼈의 형상을 고루 드러내지는 못할 것이었다. 옆에서 기다리던 영순이가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나는 영순이에게 집에 가서 갚기로 하고 돈을 꾸었다. 강냉이를 사고 남은 것이 60원이었다.

 

나는 빵과 사탕을 사왔다. 비닐주머니에 강냉이 2kg을 담아 함께 그 옆에 놓았다. 그 거지는 초점 없는 시선으로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 두 눈을 지그시 감아버렸다. 그 눈길이 영순이가 처음 나를 보았을 때를 연상시켰다. 그 눈빛은 더이상 이 세상을 담아내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빠. 저런 사람이 어디 한두 명이라고 동정을 주나요? 그런 동정을 준다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영순이는 내가 그 거지에게 동정을 주는 것이 못마땅한 눈치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네가 알아주면 되잖아” 얼버무리면서 길을 나섰다.

 

그때까지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따라 걷던 은화가 조심스럽게 한마디하는 것이었다.

 

“지금 사람들은 그렇게 하면 머저리라고 해요. 누가 먼저 꽃제비가 되고 거지가 되는가 하는 건 시간문제예요. 다만 그들이 먼저 되었을 뿐이지. 후에는 우리 세 명 중 누가 그렇게 되겠는지 알 수 없잖아요.”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저 말 속에는 현실이 들어있다. 어떻게 저 나이 어린 처녀가 현실을 꿰뚫어 보는 말을 할 수 있게 됐던가. 그런 말을 할 수 있기까지 저 처녀는 얼마나 많은 풍파를 거쳐야 했을까. 나는 새삼스럽게 은화를 한번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길을 걸으면서 고백 비슷하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나는 아직까지 고생이란 걸 별로 해보지는 못했어. 또 현실이 이렇게나 험악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별안간 까마귀집을 보게 되어 은철이 일이 생각났지. 거지의 눈길에서 신의주에 와서 처음 보았던 영순이의 눈길도 되살아났고…. 나도 알아.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나를 알아줄 사람은 없다는 걸. 하지만 난 그런 걸 피하지는 못해. 내일 당장 내가 거지가 된다고 하여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나는 내가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들은 묵묵히 걷기만 했다.

 

아마 속으로 “고생이란 걸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 것을 되뇌며 비웃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윽고 영순네 이모집에 당도했다. 나는 세수를 하고 가방에서 돈을 꺼내 100원짜리 한 장을 영순이에게 내밀었다.

 

“자. 잔돈도 없고 하니 그냥 받아.”

 

영순은 돈을 받아 쥔 손을 내리지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고압선을 쥐고 자살한 아주머니

 

나는 짐을 챙겨들고 역전으로 나가려고 했다. 이러다가 정말 신의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영순이가 와락 매달렸다.

 

“오빠. 정말 가려고 그럽니까. 열차가 언제 들어온다는 소리도 없는데. 오빠. 저 며칠만 있으면서 오늘처럼 우리를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오빠가 가면 나와 이모, 은화는 장사를 하지 못해요. 꽃제비 도적들이 계속 강도질을 하거든요. 저희를 좀 도와주고 떠나세요. 네.”

 

정말 난처했다. 매정하게 뿌리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나는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엉거주춤 망설이고 있는데 은화가 한마디 던졌다.

 

“언니. 갈 사람이야 가야죠. 어쩌겠어요” 하는 것이 아닌가.

 

이악스런 계집애 같으니라구. 말리면 못 이기는 체 주저앉으려고 했는데 갈 테면 가라고? 나는 섭섭하고도 괘씸한 느낌이 들었다. 은화에게 물었다.

 

“은화는 내가 있는 것이 영 싫은 모양이지” 하며 김일성 휘장을 옷깃에 달며 말했다.

 

“오해하지 말아요, 오빠. 오빠가 있으면 우리가 마음놓고 강냉이를 살 수 있는데 왜 그러겠어요. 하지만 그건 우리의 이기심이죠. 만약 우리 때문에 오빠 일이 헝클어지면 우리가 얼마나 미안해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나는 내심 또 한번 놀랐다. 은화의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 깊숙이 와닿았다. 그래 3일 간이다. 나는 3일만 더 머물겠다고 그녀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우리 세 사람은 시장으로 나갔다. 나는 3일간 먹을 쌀을 사고 영순네는 강냉이를 팔기 위해.

 

남신의주장은 온통 중국 물건으로 채워져 있다. 소금, 강냉이, 약품, 옷,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중국산이다. 아니 남신의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전국의 어느 장에 가도 모두 그럴 것이다.

 

3일이란 시간도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났다. 나는 행장을 갖추어 역으로 나갔다. 이제 4~5일만 있으면 학교 소집일이다. 그동안 이리저리 풀어헤친 돈이 3000원이다.

 

“빨리 함흥으로 가자.”

 

더이상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그녀들은 몹시 아쉬워하며 역전까지 따라왔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열차가 들어왔다. 열차라기보다 앞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사람으로 뒤덮인 괴물이다. 다 깨진 유리창을 통해서라도 안으로 들어갈 여지가 없었다. 역시 도전해볼 만한 곳은 열차 빵통 위였다. 빵통 위에도 사람들이 소털처럼 빼곡히 앉아 있었다.

 

검열관이란 완장을 찬 안전원들이 연신 호각을 불어대며 빵통 위의 사람들을 아래로 쫓아낸다. 그러나 누룽지보다 더 굳세게 들러붙은 사람들 가운데 어느 누가 고분고분 내려가려고 하겠는가. 너나없이 식량을 구하러 다니기 때문에 이 열차에 매달려서라도 가야 사는 길인 것이다. 안전원은 분통을 터뜨려대지만 사람들은 묵묵히 버틴다.

 

사람 못지않게 짐도 많다. 옆에 앉은 아주머니는 밀가루 자루 네 개를 자식처럼 싸안고 있었다. 안전원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이제 악을 쓰는 대신 짐을 빼앗아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치고 있었다. 생명과 같은 짐짝이 떨어지면 주인은 그걸 줍기 위해 내려가지 않을 수 없는 점을 노린 것이었다.

 

“호르륵.”

 

길게 울리는 열차원의 발차신호에 따라 기차는 천천히 앞으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이때였다. 빵통에서 아직도 내려가지 않은 그 안전원이 마지막 업무라도 되는 양 그 아주머니의 밀가루 자루를 사정없이 밑으로 내던졌다. 열차는 제법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순간 기차가 내는 소리가 귀에서 사라졌다. 아주머니가 지르는 비명소리가 압도했다. 떨어진 밀가루부대를 잡으려면 기차를 놓치고, 기차를 포기하지 않으면 밀가루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어느 쪽이나 죽음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기차는 제법 속력을 올리고 있었다.

 

 

고함을 지르는 아주머니의 눈이 허옇게 뒤집혔다. 머리카락은 바람결에 산산이 흩어졌다. 얼굴을 젖혀 하늘을 우르러듯이 목이 잠긴 채 헉헉대며 소리를 질렀다. 비명도 고함도 아니었다. 몇 번이고 목이 잠겨 고함을 지르던 아주머니가 벌떡 일어났다. 그 다음 순간 눈앞에 지옥이 펼쳐졌다. 아주머니가 한손으로 안전원의 손을 잡으면서 동시에 다른 손으로 고압선을 거머쥔 것이었다.

 

0.001초. “따당” 하며 빵통 바닥이 찢어지는 듯한 폭음과 함께 섬광이 “파팍” 눈앞에서 튀었다. 걸레쪽이 찢겨나가는 것처럼 사지를 비꼬며 두 사람은 허공에서 잠시 뒤엉키더니 빵통에서 땅바닥으로 털썩 떨어져 나갔다. 그 서슬에 다른 몇 사람도 함께 굴러떨어졌다. 몸도 고압전류에 충격을 받아 한동안 부들부들 떨렸다. 번개처럼 스치는 빵통 위에 판자를 깔고 앉던 그 사람. 그는 경험자였다.

 

그렇다. 그 아주머니의 판단이 옳은 것이었다. 밀가루 부대가 땅바닥으로 굴러떨어졌을 때 더이상 그 아주머니의 생명은 부지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그 가족들의 운명도 그 순간에 결정지어진 것이었다. 바로 그 밀가루 자루가 떨어지는 순간보다 조금 늦게 아주머니가 죽은 것일 뿐이었다.

 

그것은 아주머니가 자살하는 절차를 취하고 있지만 현실은 아주머니가 자살하건 말건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완벽하게 사라진 것을 뜻했다. 다만 아주머니는 자신을 살아남을 수 없게 한 사람을 자신의 죽음에 대한 덤으로 데리고 간 것뿐이었다. 아, 바로 내 눈앞에서 사람이 고압선을 거머쥐고 튀긴 강냉이처럼 뛰어오르던 그 영상을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시체실에서 물방울 소리에 깨다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자기 눈동자처럼 지키자.”

 

조선에서 외치는 구호다. 이것이 인민을 기만하기 위한 위선적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 이렇게 가혹한 현실을 보여주어야 하는지. 나는 어디에고 항변할 곳도 없었다. 그리고 기차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잠시의 멈춤도 없이 내달렸다. 이렇게만 달린다면 다음날 저녁이면 함흥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몸에서 이상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얼굴에 화끈화끈 열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점점 온몸이 떨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악화되어 몸을 움직일 힘도 없어졌다.

 

‘열병이 옮겨온 것일까. 아니면 파라티푸스?’

 

엎친 데 덮친다더니 열차마저 정주역에서 미정이 되어 멈추어버렸다. 언제 떠날지 알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가며 역대합실로 간신히 발걸음을 옮겼다. 대합실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나는 콘크리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가방을 꼭 끌어안고 다시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리고는 ?퓰컥?잃어버렸다. 그것은 지독한 열병이었다.

 

그동안 의식이 돌아왔다가 다시 나갔다가 했던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났는지 조금 정신이 들었는데 살펴보니 가방이 없어졌다. 내 품속의 소지품과 돈도 모두 없어져버렸다. 나는 지독한 열병에 시달리는 한가닥 목숨만 남긴 채 모든 것을 다 잃고 말았다.

 

그때 누군가 나를 들쳐 업었다. 그의 등에 업혀 다시 의식을 잃었다. 그는 나를 정주인민병원으로 데려다 놓고 사라졌다. 나는 그의 얼굴도, 이름도, 주소도 모른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생명을 구해준 그 누구를 향하여 고마운 마음을 느끼는 것뿐이다.

 

정주인민병원은 간판만 병원이었다. 치료약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조선의 병원이란 환자가 머물다 가는 여관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사실상 거지였다. 그런 나를 의사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나는 완전히 기력을 상실한 채 까맣게 죽어갔다. 어찌나 심하게 앓았던지 국물 한 숟가락도 입안으로 넣지 못했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나 자신을 놀라게 했다. ‘사람이 이렇게 죽는구나’ 하고 절절하게 느꼈다. 나를 본 사람들은 백이면 백 모두가 2~3일이면 내가 죽는다고 말했다. 어차피 죽을 것이므로 포도당 한대 놓아주기를 아까워했다. 나는 만사를 체념했다. 그리고 멱(기력)을 놓아버렸다. 나의 넋은 껍데기같이 메마른 육신을 침대에 널어놓은 채 어디론가 떠나고 말았다.

 

“똘랑.”

“똘랑.”

“ ---똑.”

“ ---똑.”

 

어둡고 고요한 곳에서 맑은 소리가 한가롭고도 서늘하게 울려왔다. 나의 의식도 그렇게 돌아오고 있었다. 물방울 소리였다. 물방울 소리가 귀를 두드리며 나를 깨우고 있었다. 내가 가느다랗게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내 귀에 들렸다.

 

“물.”

“물.”

 

웬일인지 몸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데 머리가 환하게 맑았다. 그리고 몹시 갈증이 났다. 나는 물방울 소리가 울리는 쪽으로 몸을 굴려 안간힘을 쓰며 기어갔다. 무심히 무언가를 타넘은 듯했는데 또 하나의 물체가 가로막았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았다.

 

그것은 시체였다. 천으로 가리지도 않은 맨 얼굴?시체들이 나와 함께 주런히 누워있었다. 그곳은 시체 실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동안 시체실로 보내졌던 것이다. 내가 죽었단 말인가.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방향을 바꾸어 힘껏 문 쪽으로 기어갔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문을 두드렸다. 온 기력을 다해 두드리는데 소리가 나지 않았다.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설사 바깥으로 소리가 울렸다고 해도 시체실 문지기 노인이 듣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 노인은 맑은 정신으로 있는 날이 없었다. 죽은 사람의 가족이나 친지들이 울어대는 동안 장례에 나온 술을 공으로 마셨는지. 언제나 불콰하게 취해 있었다. 매일 시체를 다루느라 역한 냄새에 시달리는데다 맨 정신으로 곡소리를 듣기보다 얼큰하게 취해 있는 것이 훨씬 편할지도 몰랐다.

 

정주인민병원은 지상 2층 건물이었다. 그런데 시체실이 2층에 있었다. 원래는 지하실에 있었을 것이었다. 내 짐작으로 지하에서 위로 시체냄새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위층으로 옮긴 것 같았다. 바로 그때 그 층으로 원장과 초급당비서가 우연히 지나가고 있었다.

 

“저 안에 사람이 있지 않소?” 하고 원장이 물었다고 했다. 술에 취한 문지기 노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는 것이다.

 

“글쎄.”

 

생각하기 나름으로 절묘한 대답이었다.

 

원장은 문을 열게 했고, 문턱에 쓰러져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는 나를 구급실로 옮겨 포도당을 맞게 해주었다. 나는 인간세상에서 사망처리되어 시체실로 넘겨졌던 것이다. 그런데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나 왔다. 그 문턱에서 나를 살려낸 것은 그 원장이었다.

 

원장은 나의 회복까지도 신경을 써주었다. 몸이 점차 회복되고 있을 때 뜻밖에도 둘째 누님이 찾아왔다. 아마 내가 말한 주소에다 원장이 전보를 보낸 모양이었다. 나는 그 원장의 이름 역시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진실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나는 학자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여행에 나섰다. 그러나 나를 품어키워준 조국의 현실을 목격하고 돌아왔다. 그것은 악몽과도 같은 죽음의 순례였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하는 가운데 끝내 내 자신마저 죽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 시체실에서 떨어지던 물방울 소리를 환각으로 듣는다. 꿈속에서 물방울 소리가 울리면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나곤 한다. 온몸이 식은땀에 젖은 채로.

 

자유를 찾아 두만강을 건너다

 

여행을 나서기 이전의 나는 그것으로 죽어버린 것일까. 과거에 내가 믿고 생각했던 그 모든 가치와 질서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식대로 살아나가자”는 구호 아래 살아온 우리. 그러나 가는 곳마다 굶주림 속에 죽어가는 현실을 보았다. 그 현실을 통해 자각된 나의 마음속에서는 우리의 사상, 우리의 이념, 우리 당의 지도노선이 하나씩 힘을 잃고 무너져내렸다.

 

내가 다시 생명을 얻었듯이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찾아내야 할 것인가.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막막했다. 그러나 나는 결코 과거로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이었다.

 

과거는 완전한 부정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나의 앞에 미래는 없었다. 1997년 3월에서 5월까지 2개월에 걸친 나의 조국순례는 그렇게 끝났다.

 

나는 평소에 존경하던 선배를 만났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정의와 진리는 진정 어디에 있습니까?”

 

“역사와 시간만이 정의와 진리를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지론을 펼쳤다. 나는 그가 더이상 말할 수 없는 것도, 더이상 알지 못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의할 수는 없었다. 나는 돌아서버렸다.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이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목숨이 바쳐졌던가. 천길 지하공사장 막장에서 터지는 물구멍을 막기 위해 자기 몸을 던져 생매장당한 병사들은 또 얼마인가. 아, 병사였던 나는 터널공사장에서 생매장당한 그들을 구조하기 위해 도끼로 다리를 찍어대지 않았던가. 무너진 흙더미에 묻혀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는 길은 다리를 끊는 것밖에 없었다. 사고가 나자 군관들은 우리에게 술을 한잔씩 먹이고 도끼를 쥐어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취기가 돌기도 전에 사고 현장에 도착해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당이 결심하는 대로 살아왔다.

 

그들의 희생에 값하는 현실은 어디에 있는가. 정신착란을 일으켜 어머니가 아들을 잡아먹는 상황 아닌가. 캄캄한 어둠을 뚫고 천여명의 꽃제비가 쏟아지던 신의주 역두, 까마귀 집에서 죽어가던 수백명의 거지들, 협잡꾼과 강도, 그리고 이들보다 더한 안전원들, 인민의 생명은 무의미하게 죽고 있었고 사람으로서의 존엄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런데도 당의 이름으로 죽어간 사람들에게 영웅칭호를 주는 것으로 우리 사회는 과연 정의로울 수 있는가. 그렇게 목숨을 바쳐 이루어낼 정의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도대체 사람이 죽어가는 것으로 이루어낼 사회는 어떤 것인가.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분명 자유와 진리였다.

 

1997년 8월. 나는 두만강을 건넜다. 일제시대 한민족이 건넜던 두만강을 60년이 지나 조선의 대학생이 건너고 있는 것이다. 나는 중얼중얼 노래를 불렀다.

 

“이 등진 세상을 만났으니

나의 할일은 무엇인가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점박할가.

푸른 하늘 달 밝은 고국을 생각하니

나라 없는 부귀영화 어디에 쓸까.”

 

 

나는 한 마리 까마귀였다. 무사히 강을 건넜다는 안도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불안하기 그지 없었다. 외로움도 사무쳤다.

 

“내가 여기서 죽으면 누가 길가다 술 한잔을 뿌려줄까.”

 

이제 나는 일제의 총칼 아닌 조국의 보위부와 그 대리자들인 ‘조교(조선 국적의 중국교포)’들의 눈길을 피해 중국대륙에서 살 길을 뚫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8개월 뒤에 다시 두만강을 건너 조선으로 끌려오는 신세가 되고 만다.

 

지금 조선에서 중국 동북지방으로 탈출한 사람은 줄잡아 30만명을 헤아린다(1998년 1월 기준). 조선은 보위부 조직을 동원하여 중국에서 탈출한 조선사람들을 수색하고 있다. 중국으로 탈출한 것은 결과적으로 97년 봄의 조국순례에 이어 조선의 또 다른 진실을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다.

 

중국에서 다시 조선으로 압송된 뒤, 나는 심사를 받으며 감옥을 전전했다. 나는 처음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선의 현실 속으로 여행했다. 그러나 그 다음 여행은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별세계였다. 그 세계는 내가 원한 것도 아니었다.

 

그 세계는 조선의 안에서도 금지된 지대였다.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내가 벗어나려 했던 조선의 현실 가운데 가장 깊숙한 현실일지도 몰랐다. 그것은 내가 조국이라 불러왔던 조선의 진정한 모습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실상은 생명이나 희망을 뜻하는 것과는 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외부세계에서 또 다른 조선의 진실을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살이 타고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 속에서 조국의 다른 얼굴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것은 지울 수 없는 나의 불행이었다. 생명의 마지막 이유까지 말살하는 야만이었다.

 

이름 없는 땅에

한 줌의 흙이 되어 묻혀 있는 그들

자유를 갈망하다가

이슬로 사라진 그들에게

머리 숙여 조의를 표한다.

조선의 강산에 자유의 밝은 태양이

떠오르는 그날을 위하여.

1998. 10 중국에서.

 

다시 조선으로 끌려가다

 

내가 살아있는 한 영원히 잊히지 않을 1998년 3월25일. 체포된 우리는 조국으로 압송되었다. 우리가 탄 수송차는 메마른 비포장 도로를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삼합교두로 달리고 있었다. 그 뒤를 또 한 대의 호송차가 따르고 있었다. 그 차에는 우리를 조선에 인계할 중국측 책임자가 앉아 있었다.

 

삼합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조선의 회령과 대하는 중국 땅이다. 차가 점점 조선 국경으로 다가갈수록 수송차 안은 더욱 침울해졌다. 중국 군인 2명이 자동보총을 겨누고 선 아래로 우리 일행은 넋이 빠진 듯, 체념한 듯한 얼굴이었지만 갈수록 긴장을 더욱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조선에 들어가면 우리는 ‘혁명의 배신자’ ‘민족의 반역자’가 된다. 그 죄명을 쓰게 되는 순간 우리의 운명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연히 알고 있는 것과 앞으로 닥쳐올 현실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것은 역경을 거치며 목숨을 대가로 치르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다.

 

늙은이건 젊은이건 모두가 긴장으로 몸이 굳어 있었다. 어린아이들조차 벌써 눈물이 글썽글썽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될까.’

 

‘사형을 당할까.’

 

나의 심장은 얼어붙은 듯했다. 머리속에서는 같은 상념만 수도 없이 맴돌고 있었다. 차가 덜컹거려도 그 상념만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때 혜영이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그녀는 나를 보고 웃음을 띠며 말했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왠지 이제 나가면 무서운 곡경을 치를 것만 같아요. 강혁 동지. 지금까지의 모든 일에 감사드려요.”

 

내가 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동안 혜영이는 우리의 운명을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가 중국에서 같이 지낸 날들을 돌이키며 그 모든 인연을 생각하고 정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혜영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조용히 지켜보더니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키스를 해주세요.”

 

나는 내심 놀랐다. 이 모든 사람과 함께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운명 속에서, 중국군인이 총을 겨누고 선 아래에서, 혜영이는 분명 나에게 키스를 마지막으로 부탁한 것이다. 사회가 개방되지도 않은 나라에서, 사랑도 인생도 그 의미를 묻지 않는 시대의 암흑 속에서, 체포되어 가는 길에서, 키스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혜영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마지막 부탁이며 모든 것을 담은 인사였다. 우리가 지금 수쇄(수갑)에 두손이 묶여 있지만 아마 앞으로 이보다 자유로운 시간도 없으리라. 혜영은 어쩌면 모든 것을 알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소중하게 자신의 가슴속에 접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수쇄에 찬 손을 뒤로 한 채 그녀에게 입맞추었다. 우리는 같이 눈물을 쏟았지만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것이 우리가 만남을 가진 이래 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입맞춤이며 기약 없는 이별을 뜻하는 것인 줄 어찌 알았을 것인가.

 

또한 그것이 그 사회에서 용납받지 못할 죄가 되는 줄 어떻게 알았을 것인가. 고문과 능욕과 살육의 권력 앞에서 사람이 미소를 짓고, 사랑을 맹세하고, 그 기쁨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 더할 수 없는 범죄행위라도 되는 것처럼 그들은 우리를 짓밟았다. 그들의 눈에 우리가 한 행동은 씻을 수 없는 반사회적 범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