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중국 연변에 출장

탄광 노동의 고된 일에서 나는 성장하여 1985년도에 장가를 가 가정을 가지게 되었다. 일하면서 배우는 아오지 공업대학을 5년 동안 열심히 다녀 기계기사 자격까지 받게 되었다.

하지만 북한에서 한 번 탄광에 들어가면 다시 못나온다는 규정에 따라 여전히 채탄공 일을 해야 했다.

항시 위험이 뒤따르는 고된 노동 속에서 십 년 넘어 일하였건만 주는 노임을 가지고는 텔레비전 한 대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고, 생활 형편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열심히 일한 덕분으로 그 후 나는 핵심 노동자로 내내 떠받들려졌고, 북한 노동당에도 입당하였으며, 채탄 중대장 직무까지 맡게 되었다. 탄광은 군대식으로 일해야 된다고, 50명 정도를 채탄중대로 묶어 명령식으로 일했던 것이다.

나는 1989년도에 중국 연변 자치주 쪽에 탄광에서 쓸 기계들을 인수하러 가게 되었다.

갈 때도 보위부에서 임무를 받았는데, 중국 쪽에 들어가 두 달 있는 동안 중국에 오는 한국 교회 목사나, 전도사, 신부들을 만나라는 지시였다.

우리 일행은 6명이었는데 모두 각기 임무를 받았다. 만나서는 그들의 한국 거주지 주소, 가정환경, 사업내용과 행동을 일일이 장악하고, 중요한 정보를 넘겨주겠다는 미끼로 손을 잡으라는 것이었다.

속심은 모르겠지만, 한국인들을 납치하자는 건지, 흡수하자는 건지, 어쨌든 간첩 임무였다. 그래서 연변 자치주 쪽의 도문, 연길 교회들을 형식적으로 몇 군데 가보았는데 한국인들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그때 솔직히 말해서 내 자신이 개방되기 시작하였다. 별 세상 같은 중국에 들어와 있는 동안에 못 먹어본 것을 실컷 먹어보고, 집 살림에 보탤 텔레비전과 재봉기, 옷가지들을 마련하기에 여념이 없어 보위부에서 맡긴 임무엔 신경이 통 가지 않았던 것이다.

기계를 인수해 가지고 탄광에 돌아간 나는 임무를 전혀 수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3일 동안 탄광 보위부에 불려 다니며, 눈이 빠지게 욕을 먹고, 비판서도 몇 번 썼다. 대신 중국에서 가져온 흑색 텔레비전과 재봉기가 남게 되어 기쁨은 실로 컸다.

1992년도까지만 하여도 그럭저럭 쌀밥은 명절 때만 먹었지만 옥수수밥은 끼니마다 먹으며 잘 살았었다. 그러나 1993년도 초에 접어들면서부터 식량공급을 거의 하지 않으니 삶의 보람을 느껴볼 여유가 없게 되었다. 탄광이라고 우대해 준다는 것이 한 달에 열흘 식량만 내주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가정들에서는 죽을 쑤어먹게 되었다. 풀죽을 먹으니 허기진 배를 안고 채탄 장에 들어가서는 도무지 곡괭이나 삽질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행복했던 시절

채탄 중대장 직무를 맡은 나는 미처 내 몸은 돌볼 사이 없이, 허기져 일 나오지 못하는 탄부들을 찾아다니며 동원시켜야 했다. 게다가 나는 탄광 당 위원회 위원으로 또 선출되었다. 예전 같으면 벼슬을 딴 것 같아 기쁘겠지만 별로 반갑지 않았다. 일하러 나온 炭父(탄부)들은 갱 안에 들어서서는 동발목에 기대어 맥없이 앉아 있다가, 집에 돌아가 땔 석탄 한 배낭씩 지고 나오곤 하였다.

탄부들과 같이 있노라니 여러 얘기를 듣곤 했다. 老(로)탄부들은 일제 때에도 지금 세월보다 못하진 않았고, 6·25전쟁 시기에도 이렇지는 않았다고 통탄하곤 하였다. 생산 실적은 나날이 떨어져 사업 총화 때마다 탄광측에 불려간 나는 줄창 욕을 달고 다녀야 했다.

석탄이 나오지 않으니, 메탄올을 생산하는 아오지 화학공장이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였고, 잇달아 함흥 2·8 비날론 공장도 생산이 중지되다시피 되었다.

1994년도에 석 달 동안 생산이 정상화 된 적이 있었는데, 정무원 홍성남 부총리가 노동당의 결정에 따라 두 달 동안 아오지 탄광에 내려와 있을 때였다.

그는 선봉-라진에서 밀가루를 가득 실어다가 배급도 주고, 갱 안에 들어가서는 베개통 같은 빵을 나눠주어 탄부들이 열성적으로 동원되어 일했다. 기진한 탄부들은 나라를 살리려는 마음보다 빵을 얻어먹으러 열성적으로 일을 나오고 하였다.

메탄올을 공급받은 2·8 비날론 공장은 군복 생산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석탄이 나오자 땔 것이 없는 주민들이 달라붙어 석탄을 배낭으로 날라가기 시작했고 군대들이 들이닥쳐 총을 메고 석탄무지를 지키기 시작했다.

어찌나 삼엄했던지 탄광이 아니라 군수품을 생산하는 공장 같았다. 그 후 식량을 공급받지 못하자 탄부들은 일하러 나오지 않아 탄광은 폐갱이 되다시피 되었다. 나는 책임감이 있어 허기진 배를 안고 갱 안에 들어가 갱도에 물이 차지 않게 양수기라도 돌려 물을 뽑아내야 했다.

이런 저런 고생이 겹쳐도 1995년도까지는 그래도 인간생활이 있는 행복했던 옛 시절이라 추억할 수 있었다. 1996년도 초부터는 탄광도 전혀 식량을 공급받지 못했다.

식량난, 경제난이 몇 해째 계속되자, 아오지 땅이란 곳은 상상 못할 인간 생지옥으로 변해버리기 시작했다. 속담에『사흘 굶은 양반 언 똥도 먹는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속담이 그른 데 없다고 느껴 보았다.

하루는 허기진 몸을 끌고 겨우 갱에 들어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때는 작년 7월 말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옥수수 밭 옆을 지나는데 옥수수 밭을 지키는 군인 초병들이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슬며시 옥수수 밭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갓 수염이 나와 이삭이 달리기 시작하는 옥수수를 송치째로 정신없이 와락와락 씹으니 참 별맛이었다. 열 다섯 이삭쯤 먹으니 정말 배가 불룩했다. 건 트림을 하며 옥수수 밭을 나서는데 등성이에서 군인 두 명이 불쑥 나타났다. 붙잡힌 나는 변소 보러 들어갔댔다고 변명했으나, 그들이 밭에 들어가 확인을 하는 바람에 꼼짝 못하게 되었다.

『군인 동무, 내 탄광 당 위원회 위원이자 중대장인데, 어떻게 좀 체면을 봐주어....』

어린 군인들은 막무가내였다.

『그런 책임을 진 사람이 도적놈 질을 왜 해?』

할 수 없이 붙잡혀 郡 안전 부로 압송된 나는 탄광 측의 열렬한 보증으로 풀려 나왔지만 개코망신을 당했다. 또 간부회의에서 된 비판도 받았다.

비판받는 자리에서 속으로 생각한 것은, 내가 아니라 郡의 군수라도 배고프면 나 같은 짓을 했을거라 생각하며 위안해 보았었다. 적지 않은 인구를 가진 郡안에서는 먹을 것 때문에 상상 못할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곤 하였다.

작년 5월 말, 하루는 영양부족으로 얼굴이 팅팅 부은 아내가 집에 들어와 하는 말이 은덕 군 은덕 읍 하농경에 있는 자기 동창생이 죽었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