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인당수로, 인당수에서 용궁으로, 용궁에서 다시 지옥으로--기구한 운명의 황해도 주민 22명이 민속명절(설날) 연휴에 겪은 인생 역정이다. 아직 그들의 생사여부는 검은 안개 속에 싸여 있지만, 살아 있다고 한들 죽음의 고단함에 뼈가 녹고 살이 타고 얼이 증발할 것임은 어떤 갠 날에 북한산에 올라 희뿌연 매연에 휩싸인 서울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뻔한 일이다. 

 뒤늦게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기자와 네티즌이 추궁하자, 조금씩 실체가 드러난다. 돌려보낸 시각이 처음에는 그들이 발견된 날의 다음날인 9일 밤늦은 시각이라고 했지만, 어제는 같은 날 곧 8일 오후 6시 30분이라고 했다가, 오늘은 다시 8일 밤 11시경이라고 한다. 8일 오후 6시 30분이 맞을 것이다. 당일에 보냈다는 말에 국민들이 경악하자, 같은 날에 보내되 오후 6시 30분보다는 늦은 밤 11시경에 보냈다고 둘러대는 듯하다. 그러나 이것도 익명으로 정부의 고위 소식통이 특별히 들려 준 말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발뺌할 수 있다.

 8일 오전 5시 10분 인당수에서 허우적거리는 이들을 용궁보다 화려한 대한민국의 해군 함정이 발견했을 때, 이들은 밥 먹는 것도 거절했다고 한다. 헌법상 대한민국의 국민 22명이 당국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는다고 해도 14시간 40분을 살을 에는 겨울바다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표류했는데, 대한민국 정부가 그들에게 밥 한 끼 안 먹였다는 말이다. 그 후에 따뜻한 쌀밥을, 푸짐한 설날 음식을 먹였다는 말도 없다.

 죽음의 땅에선 말 한 마디 헛나가도 평생 유태인 강제수용소가 마냥 부러운 조선인 강제수용소에 갇힐 수 있고, 발 한 번 헛디뎌도 재판 없이 바로 공개 총살당할 수 있다. 따라서 죽음의 땅에서 모진 목숨을 이어 온 사람들은 어린애도 안전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으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배에서 천둥소리가 나도, 입에서 폭포수 침이 흘러나와도, 체온 저하와 굶주림으로 온몸의 세포 10조 개가 동시에 덜덜 떨지언정 빵 한 조각 물 한 모금 받아먹지 않는다. 더군다나 22명이 함께 있는 자리다. 혹 돌아가게 되면, 유황불 생활총화와 숯불 자아비판과 용광로 호상(상호)비판의 무대에서 어떤 말의 비수와 어떤 말꼬투리의 독화살이 날아와 심장을 찌를지 모른다. 모름지기 인간은 배고픈 갓난아기도 낯선 환경에선 엄마 품에 꼭 안겨 자지러지게 울 뿐 너무너무 맛있는 젖을 한사코 밀쳐낸다. 하물며 눈치로 죽고 코치로 사는 땅에서 평생을, 적어도 15년을 살아 온 사람들이다.

--아하, 아무리 권해도 안 먹는 걸 보니까 이들의 사상무장은 강철무장이로구나!

아마 평생 눈치가 뭔지 코치가 뭔지 모르고 산 용궁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해군은 즉시 상부에 보고했고 상부 곧 국정원과 통일부와 합동참모본부의 높은 사람들이  새벽같이 달려왔다는 것도 밝혀졌다. 두 차례 서해교전에서 첨단무기보다 중요한 군인의 사기가 황해의 갯벌 속으로 쳐 박힌 해군은 아무 역할도 못했다는 말이다. 

 핵심 사항이 오늘 밝혀졌다.

 22명이 인당수에서 건져 올려진 지 3시간 후인 8시 20분쯤 북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2004년 6월에 설치된 국제상선통신망(함정 간 핫라인)을 통해 조난 당한 2척을 돌려보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했다. 거짓 정보로 해군을 헷갈리게 하여 해군의 명령 체계를 어수선하게 만들고 몇몇 유능한 군인의 애국충정에 불명예의 훈장을 달게 한 바로 그 요상한 핫라인이다.

 인도적인 조치임을 강조하기 위해, 정부는 일대일로 면담했다는 것과 귀순의사를 밝힌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에 새삼 밑줄을 쫙 그었다. 그들이 내세우는 무죄의 증거다. 

 한겨레신문에서는 조개잡이에 필요한 어구(漁具)가 있었다는 것도 자세히 밝혔다. 그것이 얼마든지 위장용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인권 이야기만 나오면 두꺼비 눈을 끔벅거리는 신문답다. 설날에 6세대의 가족 13명을 포함한 22명이 우르르 조개잡이 배를 탄다? 꽃게는 제철이 아니고 바지락은 뭍에 이어진 갯벌에서 캔다고 의문을 제기하자, 이제는 굴 따러 갔다고 한다. 엄마 아빠가, 언니 오빠가, 아저씨 아주머니가 설날에  22명이 동시에 던지는 살인미소 세례로 철통같은 해안 경비대를 유유히 뚫고 섬 그늘에 굴 따러 간다? 한국의 동요에도 그런 건 없다. 섬 마을의 아기가 졸음에 겨워 잠들락 말락 할 때, 엄마가 살그머니 아기 입에서 젖을 떼고 살그머니 일어나 살그머니 가슴을 여미고 살그머니 여름 해가 너무 뜨거워 섬의 그늘진 바위로 가서 아기가 빤히 보이는 그 곳에서 연신 아기를 쳐다보면서 잠시 잠깐 굴을 캘 따름이다. 듣다 보면 사르르 잠이 오는 그 동요의 시대 배경은 참 가난했던 50년대나 60년대다. 한국의 50년대보다 못 사는 곳이라고 해서 겨울에! 설날에! 22명이 무리를 지어 통통배에 민간인은 절대 탈 수 없는 고무배 두 개를 싣고 섬 마을로 굴 따러 간다? 통통목선에 무슨 고무보트를 두 척이나 실어?

  북한으로부터 강력한 협박성 요구를 받고, 최소한 한 달에 걸쳐 조사할 일을, 대한민국의 이마빡에서 핵실험을 함에 세계가 경악해도 며칠 동안 쿨쿨 잠이나 자던 정부의 사람들이, 대대적인 합동작전을 펼쳐 일대일 면담으로(집단면담 후에 했겠지만) 길어야 8시간 만에 후다닥 조사하여 인당수에 빠져 굶주림과 체온저하와 공포로 사경을 헤매던 무려 22명을, 우리 민족을, 우리 형제자매를, 풀뿌리를, 노동자농민어민을 밥 한 끼 안 먹이고 잠 한 숨 안 재우고 당일에 죽음의 땅으로 되돌려 보냈다.
 
  남북간에는 물론 국제간에도 1994년 이래로 거창하게 합의한 그 어떤 것도 북한은 반의반도 지킨 것 하나 없이 꿀꺽꿀꺽 받아먹기만 하고 질질 끌기만 했을 뿐, 전기도 안 들어오고 난방도 안 되는 평양의 아파트보다 호화스러운 대한민국의 감옥에서 30년 40년 잘 대접받은 공화국의 영웅들을(죽음의 땅에선 진짜 간첩은 길어야 6개월이면 싸늘한 시체로 변함을 국정원이 모를 리 없음), 이른바 인도적인 차원에서 이인모 포함 64명을 전원 돌려 받아 보란 듯이 김씨공산왕조 체제선전에 몽땅 동원했지만, 제2의 건국과 과거사 정리로 새로 태어난 한국은 국군포로는 말할 것도 없고 고기 잡다가 표류된 어부도 단 한 명 돌려 받지 못했는데, 한국이 필요할 때는 절대 울리지 않는 전화 한 통에 '한국은 천국이요 북한은 지옥'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황해도 주민 22명을, 겨울바다에서 14시간 아마 24시간 헤맨 황해도 주민 22명을 당일에 바로 돌려  주었다고 한다. 전화 받자마자 1시간 이내에 돌려보낼 수도 있었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13시간 20분 만에 또는 18시간 만에 천천히 돌려 주었다고 한다. 용궁 구경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렇게 주장하고 싶은가.

 남북공조 정말 잘한다! 아하, 이게 바로 남북공조구나!

 나는 두 달 전에 뱃속에 쓸데없는 게 들어있어서 개복수술을 받았다. 수술에서 깨어났을 때 아픔이 어지간했다. 그러나 내 육체적 아픔을 포근히 감싸는 사랑이 있었다. 가족과 친척과 친구와 직장동료의 애틋한 사랑이 있었다. 다들 한 마음으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나를 걱정해 주는 것을 보고, 나는 영혼의 안식을 느꼈다. 이대로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나는 천국의 행복을 느꼈다. 의사와 간호사도 여간 친절하지 않았다. 수술도 잘 되었다고 했다. 22명의 조난자 또는 탈북자가 해군에 구출되었을 때, 그들의 육체적 고통은 내가 난생 처음 겪었던 그 고통과 비슷했을 것이다. 가물가물 정신은 있으되, 정신이 육체에 온통 지배되던 그런 처절한 상황에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은 드디어 용궁에 왔는가 했지만, 천만 뜻밖에도 어디에서도 민족공조의 따뜻함을, 사랑의 눈길을 받지 못했다. 아마 우리 자랑스러운 해군은 그들을 따뜻이 맞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힘이 없었다. 

 가족 동반으로 배를 탈 수 없다는 것을 총책임자인 국정원이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합동수사본부는 한눈에 물에 빠진 생쥐보다 가련한 그들이 지옥에서 탈출한 탈북자라는 것을, 그들이 남북민족공조가 아닌 남북정권공조를 일거에 뒤집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알았지만, 북한으로부터 이미 전화통지를 받은 상태였다. 또한 그들은 이미 그들보다 높은 사람으로부터 틀림없이 엄한 지시를 받았을 것이다.

                (2008. 2. 19.) 

출처 : http://www.chogabj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