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 사막을 넘어 몽골로 탈출하는 길이었다. 우기를 맞아 내리는 소나기로 바로 옆 사람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밤이었다. 일행은 황야를 헤매다 구덩이로 굴러 떨어졌다. 절망이 엄습한 찰나 자신을 돌봐 주던 선교사 부인이 새벽기도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난생 처음 ‘여기서 구원해 주면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간절하게 기도했죠. 죽을 힘을 다해 구덩이를 빠져 나오는데 저 만치 지평선에 불기둥이 보이는 거예요. 신기하게 풀포기까지 보이더라고요. ‘하나님 만세’를 불렀죠.”
중국서 숨어 있는 동안 마지못해 배운 찬양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 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내 너를 도우리.’

“나중에 한국에서 간증을 하니까 장로님 한분이 ‘번개를 보고 그러는 것 아니냐‘고 그러디 안아요?. 그래서 ‘새벽 한 시부터 해 뜰 때까지 치는 번개도 있소?’ 그랬죠. 누가 뭐래도 우린 하나님의 인도였다고 확신합니다.”

김용 씨는 탈북자 사회에선 ‘형님 오빠’로 통한다. 재미탈북난민협회 회장도 맡고 있다. 꼭 나이 탓만도 아니다. 대우를 받으려면 그 만한 진실과 헌신이 앞서야 한다. 그는 2003년과 2004년 미국 연방의회에서 탈북자 현황을 앞장서 증언했다. 탈북자 인권난민법안을 통과시킨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과는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덕분에 언론도 탔다.

그러나 높은 분들과 상대하며 행사 쫓아다닌다고 존경이 우러나올 리 없다. 재작년 김씨는 교통사고로 45일 간 의식을 못 찾을 정도로 중상을 입었다. ‘오줌통’을 차고 간신히 몸을 추스르자마자 암에 걸린 탈북자 여성을 LA서 시애틀의 친척집까지 데려다 줬다. 바로 이런 열정이 그를 받쳐준다.

탈북자나 북한 선교란 말이 들리면 과묵하던 그가 열을 받는다. 말로 다 표현 못할 일을 겪으며 사선을 오가다 겨우 숨을 돌리게 된 처절한 과정을 아는 까닭이다. 그는 교회에도 할 말이 많았다. “북한의 진짜 실정을 너무 모른다”며 “탈북자를 북한 선교에 적극 활용하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탈북자가 북한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거짓을 가리고 진짜 도울 수 있어요. 탈북자가 도움을 주면서 ‘내가 이러는 건 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의 사랑 때문이야’ 이래 보시요. 얼마나 효과가 크갔소. 교회가 인내를 가지고 탈북자를 품고 키워서 써야 합니다.”

김씨는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 중좌(중령급) 출신이다. 국가정보원에 해당하는 특수 기관이다. 그러다 소위 ‘관리소’라 불리는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됐다가 탈출했다. 탈북 후 서울서 신학 공부를 시작했고 남가주에 온 뒤 신학교를 졸업했다.

“한국이나 미국에 와 보니 인간 교육과 사회를 이루는데 종교가 큰 힘을 씁디다. 북한선 공산주의 도덕이 기준인데 여기선 종교가 그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우주 만물의 창조자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겠다 싶어 공부했습니다.”

그의 첫 모습은 강인하고 투박하고 딱딱하다. 하지만 서로 허물을 털고 나면 이내 뜨끈한 속정이 배어 나오는 평안도 사람이다. 내내 말 잘하던 그가 가족 이야기를 꺼내자 순간 거짓말 같이 눈가가 축축해졌다. 그 때 셀폰이 울렸다.

“그딴 이야긴 그만 합시다. 중국에서 온 전화인데요, 설이 끝나면 한 팀이 태국으로 떠나는데 기차 타기가 어렵다고 하네요. 어떻게든 도와야죠. 뭐,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거야요.“

김용씨가 전하는 북한 선교 해법
'북한 실상 잘 파악하고 탈북자 포용·활용해야'

KCC '통곡기도운동' 초기부터 참여 간증

북한 선교와 탈북자 문제는 남북 관계 만큼이나 복잡하고 민감하다. 어느 한쪽 방향으로만 보고 섣부른 판단을 했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저런 이론과 주장이 모두 그럴 듯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기준은 육신과 영혼 모두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KCC는 탈북자 인권을 이슈로 내세워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단체라고 할 수 있다. 남가주에선 베델한인교회 담임 손인식 목사와 웨스트힐장로교회 김인식 목사 뉴욕의 퀸스중앙장로교회 안창의 목사 시애틀 큰사랑교회 변인복 목사가 미주 지역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KCC는 3년 전부터 통곡기도운동을 벌이며 탈북자에 대한 교회와 세상의 관심을 불러 모으는 한편 미국 의회를 상대로 인권난민법안을 제정하도록 캠페인을 벌였다. 오는 26일과 27일에는 어바인 베델한인교회에서 '북한 탈북자에게 자유를!'이라는 주제로 'KCC 기드온 300명 대회'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선 탈북자 구출 사역을 확대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과 북한 인권 결의안 캠페인 확산 계획 등 다채로운 이슈가 논의될 예정이다. 탈북자 김용 씨 역시 통곡기도운동이 시작될 때부터 참여해 간증을 나누기도 했다.

북한에서 살다 탈출한 장본인으로서 김씨는 보다 효과적인 탈북자 구호와 북한 선교 및 자유화 운동을 위해 몇 가지 제안을 제기했다.

우선 첫째는 북한의 실제 현황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하교회가 있으니 지원해야 한다'는 식의 막연한 소문이 아니라 북한 사회가 운영되는 시스템을 이해해야 비로소 무슨 사역이 필요하고 어떤 일이 소용없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탈북자를 적극 활용하라는 주장이다. 북한 실상을 훤히 아는 크리스천 탈북자들은 탈북한 북한 주민을 만나 가장 효율적으로 구호와 복음 전도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셋째로는 교회가 탈북자를 참아주고 포용해달라는 것이다. 종교를 모르고 약육강식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탈북자들의 배경을 이해하며 인내와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교회가 한 사람의 탈북자 만 껴안아도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주변에 있는 탈북자도 사랑 못하면서 어떻게 북한을 선교하느냐"고 반문한다.

넷째는 탈북자가 교회의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경험을 부풀리거나 거짓을 간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일부 탈북 사역자는 경력을 과장하거나 있을 수 없는 일을 내세우며 후원금을 모아 전체 탈북자의 얼굴을 더럽히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탈북자를 내세워 몇몇 목회자들이 재물이나 명예를 모으려는 현실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유정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