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길을 재촉하셨다.
탈출을 꿈꾸면서 준비하던 어느 날 아들이 일을 마치고 돌아와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건네주었다.

“어머니,  이 종이에 이상한 글이 적혀 있습니다. 저녁에 보세요.”
그날 저녁. 우리 모자는 종이를 읽어보았다. 종이는 여러 사람이 돌려보았는지 네 절로 접은 곳에 구멍이 나 있고 만년필로 깨알같은 글이 적혀있었다.

<창문 가리고 이불속에서 들은
극동방송의 성경 속에는 인간의 삶의 지침이 있었다>

첫머리에는 “요한복음 제8장 32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씌어졌고 계속하여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참으?이상하였다. 며칠을 반복하여 읽어 보았지만 북한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글들이었다. 하지만 우리 모자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듯 한 호기심을 버릴 수가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외부세계에는 또 다른 진리의 철학이 존재하고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세상이 있을 것 같은 충동이 강렬하게 솟구쳤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진리의 자유를 찾아 훨훨 날아가고 싶었다.
떠나기 위한 사전준비를 더 철저히 하자면 남조선 정보를 더 알아야 한다.
아들은 라디오를 조립하였다. 밤이 되면 우리 모자는 창문을 가려놓고 이불 속에 들어가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는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정확히 들렸다. 며칠을 들어도 분명히 극동방송에서 성경을 읽어주는 시간이라고 하였다. 놀랍게도 성경내용에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이 있었다.

<김일성 선집과 하나님이라는
이름만 바꿔놓으면 지침은 유사한 점 많았다>

김일성 저작선집과 하나님이라는 이름만 바꾸어 놓으면 지침은 유사한 점이 많았다. 성경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하여튼 인간의 앞길에 도움이 되는 말을 하는 구나 할 정도로 이해를 하였다. 수령중심사상만 배워온 우리에게는 너무나 생소하고 이해가 어려웠다. 그러나 구절구절 들을 때에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호기심만은 버릴 수가 없었다.

남조선은 자유스럽고 어느 인간을 우상숭배하지 않아도 문제되지 않는 세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북한의 중앙방송은 하도 틀에 짜 맞추어 놓은 김정일 사상만 보도하기 때문에 들어도 그 내용이 다 같은 내용이므로 들어볼 것도 없다. 인민들을 기만하는 교양 수단이다.

서울에서 방송되는 KBS사회교육방송의 “내가 본 서울이야기”에서 귀순자들이 남조선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자유가 있는 세상 남조선, 우리 모자의 마음은 벌써 서울에 가 있었다.
우리 모자는 빨리 떠나야 한다고 이미 결심을 굳혔다.

여름도 가고 겨울이 돌아왔다. 두만강은 굳게 얼어붙었다. 아들은 안전원들의 눈을 피해 작업이 끝나면 몰래 산에 올라 지형 정찰을 하였다.

길을 미리 밟아보고 오기도 몇 차례, 한 발자국이라도 실수하여 들통이 나면 우리는 현장에서 사살될 수 있었다. 한치의 시행착오가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사전준비를 빈틈없이 해 놓았다.

<한 많은 땅이지만 정작 떠나려니
마음 아픈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을 나갔던 아들이 급히 집으로 들어왔다. 매우 긴장된 얼굴이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정작 시간이 닥쳐오니 다리가 후들거려 방바닥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누가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목덜미를 움켜잡는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한 시간이라도 더는 지체 할 수 없는 순간이지만 여러 가지 아픈 상처를 뒤에 남기고 떠나야 한다. 평생을 고등중학교 교장으로 후대교육을 천직으로 여기던 남편은 사상범인 나 때문에 연좌 죄로 교장 직에서 강등되어 오지로 추방되었으니 살아있다고 하여도 다시 볼 수 있을지 앞날을 기약할 수 없었다.

원한 많은 땅이지만 정작 떠나려고 하니 마음 아픈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무남독녀 외동딸을 열 아들 부럽지 않다며 소중하고 귀하게 길러 주신 아버님, 어머님 산소를 두고 떠나자니 마음이 한없이 아팠다. 감옥에서 나왔어도 곧바로 추방지로 갔기 때문에 부모님 산소에 가보지 못했다.

이렇게 떠나면 언제 다시 온다는 기약이 없지 않는가.
반역자 부모의 산소가 되어 버리니 누가 감히 풀도 뽑아줄까.
마음속으로 부모님에게 말했다.

“아버님. 어머님. 통일이 되면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기다려 주세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생전에 소중하게 안아 키워주신 동철이를 데리고 떠납니다. 어머니는 생전에 저더러 엄마가 하늘에 기도하여 하늘에서 주신 자식이라고 하셨죠? 가는 길에 무사하기를 빌어주세요. 하늘에서 지켜주신다고 하셨는데 이 딸이 무사하게 지옥을 탈출할 수 있게 어머니가 하늘에서 빌어 주세요.”

<내가 떠나면 나와 관련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시달릴까>

이렇게 마음속으로 부모님들에게 말하고 나니 좀 개운해지는 것 같았다. 어머님이 저세상에서 나를 내려다보시면서 더 마음 졸이고 계실 것이다. 무사하게 탈출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간절히 빌 것이다. 내가 떠나면 조국반역자라고 나와 연결되는 사람들을 더없이 괴롭히고 사상검토를 한다고 야단법석을 피울 텐데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아들의 재촉을 받으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옮겨 문을 나섰다.

<두만강 얼음을 타고>

오전까지만 하여도 맑은 하늘에 바람도 없이 오랜만에 포근한 날씨였는데 우리 모자가 문 밖에 나섰을 때는 어느새 하늘이 시커멓게 흐려오고 하얀 눈이 날리고 있었다. 겨울바람이 얼마나 몰아치는지 허약한 몸이 당장 날려갈 것 같았다. 뼈속까지 바름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다급하여 아들의 손을 잡았다. 날씨가 너무 추우니 좋은 날을 골라 떠나자고 하였다.
아들은 단 한 마디로 내 말을 잘랐다.
“어머니. 오늘은 하늘에서 내려준 기회입니다. 놓쳐서는 안됩니다.”
전후 사정을 들어도 보지 않고 내 팔을 끼고 마을을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한참을 허우적거리다가 아들의
손에 끌려 간신히 눈 구덩에서 빠져나와>

겨울의 짧은 해가 이미 서산에 기울고 있었다. 경황없이 한참을 달렸다. 눈가루가 바람에 날려 사정없이 뺨을 후려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고 볼이 얼얼하였다.

우리 모자는 묵묵히 달리기만 하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날씨가 안 좋은 것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일하던 사람들은 너무 추워 집으로 다 들어가고 밖에는 개미 한 마리도 얼씬 하지 않았다. 게다가 뽀얗게 날리는 눈바람은 우리를 가려주었다. 우리가 마을을 빠져나가는 것을 누구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아들의 예측은 맞아 떨어졌다. 우리는 무사히 마을을 벗어나 산으로 오를 수 있었다. 눈이 쌓여있는 산세는 험했다. 높은 산을 세 개를 넘어야만 두만강이다. 마른 나뭇가지를 간신히 잡고 한발자국씩 기어 올라갔다. 아차실수로 나뭇가지가 부러지면 주르르 미끄러져 아래로 떨어졌다.

우리는 그 때 최후의 힘을 다 냈다고 생각한다. 기고 또 오르고 하여 간신히 정상에 올라섰다. 우리는 한숨 돌리면서 떠나온 마을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좁은 계곡에 움막 같은 집들이 들어앉은 것이 눈발 속에서도 보였다. 그래도 저녁이 돌아오니 집집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눈앞에 얼어붙은 두만강이, ...
그러나 경비대원이 불쑥 나타나 총을 들이댈 것만 같았다>

정상에서 아래로 미끄러지면서 달렸다. 깊은 계곡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구르면서 미처 몸을 가누지를 못하고 계곡에 쌓여있는 눈 속에 처 박혔다. 눈이 얼마나 깊던지 혼자 힘으로는 나올 수가 없었다.
“어머니. 어머니. 어디 있습니까?”

아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몸을 움직이면 점점 눈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목구멍에서 쇠 비린내가 났다. 한참을 허우적거리다 아들의 손에 끌려 간신히 눈 구덩이에서 빠져 나왔다.

마침내 눈앞에 두만강이 나타났다. 높은 산을 세개나 넘었지만 시간은 그리 많이 걸리지 않은 듯싶었다. 우리가 두만강 국경을 지척에 바라볼 수 있는 곳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초저녁이었다.

국경 경비대의 순찰을 피하기 위해 강물과 벼랑이 붙은 곳을 선택하였다. 벼랑 밑에 몸을 숨기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달빛이 두만강 얼음에 반사되어 사방이 훤히 보였다. 그것이 불리한 것 같았다. 혹시 경비대원들이 불쑥 나타나 총을 들이댈 것만 같았다.

우리가 집을 떠날 때에는 날씨가 흐리고 눈이 날려 지척을 분갈할 수가 없었는데 어느 사시에 구름이 걷히고 보름달이 주위를 훤히 밝힌다. 너무 경황이 없었기에 언제 달이 나왔는지 감을 잡지 못했지만 국경을 코앞에 놓고서야 대지가 밝아졌다는 것을 알고 매우 당황하였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갑자기 푸드득,
소리가 요란히 ─ 잠자던 꿩 건드렸나보다,
소스라치게 놀라>

나는 아들에게 당부하였다.
“만약 국경을 넘다가 경비 대원에게 발각되면 총을 쏠 것이다. 그러니 네가 내 앞에 서라. 총을 쏴도 두 사람은 관통할 수 없을 거야. 내가 만일 총에 맞아도 너는 뒤돌아보지 말고 뛰어라. 너 하나만이라도 살아서 자유세상으로 가야 해!”

아들을 앞세우고 발자국 소리를 죽이며 두만강 얼음까지 10cm정도 거리를 두고 접근했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갑자기 푸드득 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잠자던 꿩을 우리가 건드렸나보다. 그 소리는 쥐 죽은 듯 조용하던 정적을 깨뜨렸다.

기절할 듯 놀랐다. 그 순간 아들이 나를 걷어채더니 옆에 끼다시피 하며 얼음 위로 총알같이 튀어 달려 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강을 넘어섰다.
자갈이 발에 밟히는 순간 긴장이 풀려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끓어오르는 숨을 돌리며 방금 지나온 시커먼 산봉우리를 애증의 마음으로 돌아보았다.

<보이지 않는 손길에 이끌려>

우리 모자는 한참을 자갈밭에 앉아 쉬면서 행동방향을 정하였다.
집을 떠나기 전에 아들에게 중국만 가면 도와줄 분들이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아들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국경을 넘으니 걱정되는 모양이다.
“어머니.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합니다. 예전에 어머니가 한창 잘 나가던 시기에 만난 사람들입니다. 지금 우리 처지는 그 때와는 다릅니다. 이런 꼴로 찾아가면 누가 반갑다고 받아 주겠어요.”

<몇 시간 후면 날이 밝을 텐데
날 밝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

아들의 걱정이 백번 이해는 된다. 나도 아는 분들을 찾을 자신은 없었다. 십년 전에 잠깐 지나가다 들린 집을 찾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꼭 찾아가야만 되었다.

몇 시간 후면 날이 밝을 텐데 날 밝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산에 숨어 다음날 어둡기를 기다려야 한다. 대낮에는 거리를 다닐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북한 쪽에서 우리가 없어진 것을 눈치 채기 전에 멀리 도망가야 한다.

엄마를 위안하고 힘을 주던 아들이 당황해 했다. 오히려 나는 마음이 가라앉으며 부지런히 걷기만 하였다. 누가 내 손을 잡고 끌어주는 듯하였다. 다리가 후들거려 자칫해도 넘어지곤 하던 것이 웬일인지 아주 가볍게 걸음을 옮길 수가 있었다. 내가 앞에서 얼마나 빨리 걸었으면 아들이 미처 따라오지 못할 정도였다.

한참을 걸으니 시내가 나타났다. 짐작으로 방향을 잡아 도시 가운데를 가로질러 갔다. 지금 생각하면 동쪽인지 북쪽인지는 기억이 안 난다.

무작정 누구의 손길을 따라가듯 도시의 어느 구역에 위치한 큰 아파트 단지에 도착하였다. 어느 블럭인지는 모르나 분명히 이 집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출입문을 두드렸다.
새벽잠에 취해 대답하는 주인의 말소리가 들렸다.

<“여보, 하늘에서 도와줬소...
죽었다던 순옥이가 살아왔소”>

“누구요? 우리 집을 찾아왔소?”
대답을 듣는 순간 너무 반가워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귀에 익은 목소리였던 것이다.
다급하게 문을 쾅쾅 두드렸다. 집안에서 불이 켜지고 미처 옷을 제대로 걸치지도 못한 주인이 급하게 문을 열었다. 주인아저씨는 밖에 서있는 우리 모자를 보는 순간에 깜짝 놀랬다.

나는 정중하게 인사를 드렸다.
“과장님. 제가 십년 전에 과장님과 거래하던 북조선 순옥 입니다. 그때 소장입니다.”
과장은 무슨 말인지 믿을 수가 없다는 듯 한참동안을 아래위로 흩어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환성에 가까운 소리로 외쳤다.

“아니 네가 살았다니... 정말 순옥이 맞아? 순옥이 분명하단 말이지?”
아저씨는 우리 모자를 빨리 들어오라고 하였다. 새벽 단잠을 깬 부인에게 소리친다.
“여보. 하늘에서 도와줬소. 누가 왔나 보시오. 북조선 소장이 살아왔소. 내 앞에 왔소. 죽었다던 순옥이가 살아왔소.”

<만나자 마자 이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과장님 댁>

부인도 놀라면서 나를 와락 끌어안고 눈물부터 글썽인다.
“살아있었어? 얼마나 고생이 심했을까... 잘 왔어. 이제는 됐어. 하늘이 도왔어.”
두 부부가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니 마치 친정에 온 것처럼 긴장이 풀린다. 가슴을 졸이면서 누가 기다려 주는 사람도, 반갑게 맞아줄 가족도 없는데 무작정 떠난 길이지만 우리 모자를 이리도 반갑게 맞아주었다. 과장님 내외는 동철이가 고생 속에서도 잘 성장하였다고 등을 어루만지며 이제는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10여년만의 감격적인 상봉이었다.
과장님 집에 도착하여 언뜻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시계바늘은 새벽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과장님 부인은 새벽시장에 나가 우리 모자의 옷을 사들고 왔다. 정성스레 차린 아침상은 몇 년만에 처음 보는 음식들이다. 고마움과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는 흥분으로 목이 메이고 자꾸 눈앞이 흐려와 먹을 수가 없었다. 아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우리 모자는 밖에 출입을 하지 않고 안방에 숨었다. 피곤할텐데 한잠 푹 자고 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하면서 자리를 펴주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를 이끌어 주신 게 틀림 없었다>

그 동안 과장님은 우리를 더 안전하게 피신시키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본 모양이다. 우리가 자지 않고 일어나 있으니 방으로 들어오시어 만나자마자 이별이 된다고 하시면서 다음날 새벽기차를 타고 철령을 넘어서야 안전할 것 같다고 하였다.

우리가 집에 있다는 것은 옆집에서도 눈치 채지 못하였다. 다만 결혼한 딸만이 알고 있다.
작별인사는 남들의 눈을 의식하여 방안에서 하였다.

“꼭 성공해야 돼. 몸조심하고...”
과장님은 목이 메어 더 말을 잊지 못했다.  부인이 눈물을 훔치자 먼길을 떠나는 사람들 앞에서 웬 눈물이냐고 나무랐다.

“건강히 오래 사세요.”
다른 인사말은 할 수가 없었다. 가는 앞길에 어떤 일들이 있을는지 기약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른 아침 우리는 역으로 향하였다. 전날 밤 그 집을 찾아왔지만 날이 밝아 밖으로 나와보니 우리가 도대체 어느 길로 왔는지 너무 생소한 곳이었다. 10년전에 다녀간 도시는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변했다.

이렇게 생소한 곳에서 단 한 번도 헤매지 않고 과장님의 집을 정확히 찾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보이지 않는 손길이 우리를 이끌어 준 것이 분명했다.

자유세계의 사람들은 대부분 북조선의 교화소에 관한 내 얘기를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관계기관에 있는 분들의 반응도 그랬다. ‘북쪽도 사람이 사는 곳인데 설마 그 정도까지야’ 하는 식이었다. 아마 그게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믿기 어려운 일들이 북조선 교화소에서는 일상사로 돼있기 때문이다. 말로는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직접 경험해본 사람만이 안다. 그 ‘사회주의 낙원’ 깊숙한 곳에 웅크리고 있는 ‘구천지옥’을...

<요즘도 나는 밤마다 꿈을 꾼다,
총살 대에 재갈을 물리고 선 사람들의 슬픈 눈빛,
하루 서 너 시간 밖에 못 자면서
할당량 채우려고 안간힘 쓰던 여자들...>

요즘도 나는 밤마다 꿈을 꾼다. 농포집결소에서 고문당하던 순간, 총살대에 재갈을 물리고 선 사람들의 슬픈 눈빛, 하루에 기껏해야 서너 시간밖에 못 자면서도 주어진 할당량을 채우려고, 미달밥을 안 먹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여자들...
목숨이 살아 있는 날까지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개천 교화소에서 신음하는 수많은 불쌍한 사람들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