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89년과 1992년, 두 차례에 걸쳐 병 감방에 격리되었다. 죄수들 사이에 생명을 위협하는 ‘파라티푸스’라는 전염병이 돌았다. 전염병의 증세는 아랫배가 꼬이는 것처럼 아프고 낮 12시를 전후해서 하루 두 번 고열이 난다.

한 번 열이 오르면 39~40도로 2시간가량 계속 오르고 열이 내리면 몸에 땀이 비 오듯 하면서 전신의 맥이 탁 풀리게 된다. 열이 오르면 오한이 나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도무지 일을 할 수가 없다. 1989년 5월부터 그 병이 교화 소에 발생했다.

<감방 두 칸을 비워 한방에 50여 명씩 전염병 환자들을 마구 쓸어 넣어>

죄수들이 무더기로 쓰러지자 군의는 격리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 감방 두 칸을 비운 후 전염병 환자들을 한 방에 50여 명씩 마구 쓸어 넣었다.

그들 중 숨이 붙어 있고 의식이 회복된 사람은 “선생님, 살려 주십시오.”라며 손을 허우적거리고 사람들 속에서 빠져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곤 했다.

군의나 감방안전원들은 행여 병에 전염될까 봐서 격리감방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위생원들에게, “야 저 송장 같은 것들 빨리 처리해”라며 성화를 부렸다.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좁은 방에 몰아넣으니 밑에 깔린 사람은 의식이 회복되어도 맥이 없어 제때 손을 쓰면 살릴 수 있는 사람까지 무더기로 죽는 경우가 많았다.

영희는 어머니와 함께 모녀가 교화소에 왔다. 19살의 어린 나이에 교화소에 끌려와 혹사를 당하다 전염병에 걸렸다. 그는 내 옆에 끼여 있었다.

“엄마. 사과...... 엄마 물.......”
그녀는 풀벌레 소리처럼 가냘픈 음성으로 엄마를 찾다가 숨이 넘어갔다. 영희는 구두공장에서 일하고 엄마는 일용공장에서 일했기 때문에 엄마는 딸이 죽은 줄도 모르고 지냈다.

1989년 8월 중순 유난히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이 끝없이 죽어나갔다. 위생원 들은 죽은 사람들 중에서 숨이 붙어있는 사람을 골라 다른 방으로 업어갔다. 그때 50명가량이 죽었는데 3명의 위생원으로는 제때 처리하기기 힘들었다. 무더운 여름 날씨에 송장 썩는 냄새가 옆방에까지 진동을 해 눈알이 쓰릴 지경이었다.

‘파라티푸스’는 대장균으로 오는 전염병이기 때문에 환자들은 물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게 되면 더 심하게 설사를 했다. 설사를 계속하다 항문이 벌어지면 숨이 넘어간다고 위생원들이 말했다. 약은 반드시 신토미찐을 써야만 하는데 신토미찐이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위생원 들이 자체로 만든 약초를 썼다. 치료가 잘 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가운데서 나도 목숨이 질겼던지 살아났다.

<안전원도, 위생원도 얼씬 않는 병동에서 죽어간다>

시신 틈에서 벗어난 뒤에도 의식을 잃고 있던 나는 며칠 후 정신을 좀 차렸다. 이 전염병은 물을 먹으면 더 악화된다고 해서 군의관의 지시로 감방 안의 모든 수돗물은 공급되지 않았다. 고열로 목구멍이 타들고 갈증이 심해 미칠 것만 같았다.

옮겨간 감방에는 자강도 전천에서 온 최영옥(38살)과 김옥희(60살) 노인이 함께 있었다.
최영옥은 고열 때문에 정신을 잃고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들 이름인지 남편 이름인지 “광혁아��.”를 계속 불렀다. 며칠 후 헛소리가 사라지고 잠잠하기에 나는 그가 좀 나았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밤마다 정전이 되기 때문에 감방안은 캄캄하였고 옆에 누운 김옥희 노인의 가쁜 숨소리만 들려왔다.
감방안전원들은 전염된다고 얼씬도 하지 않았고 위생원 들이 하루 세 끼 밥을 취사장에서 타다가 배식구멍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옆 사람이 다 죽었어 에그 죽은 사람 속에서 용케 숨이 붙어있었구나”>

옥희 노인도 가망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뼈만 남은 가냘픈 손을 허공중에 허우적거리며 “나 배고파. 밥 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며칠이 지났는지 누군가가 문을 따고 들어오는 기척이 났다.
위생원 김신옥이 나를 흔들며 “계산공 정신 차려. 옆 사람이 다 죽었어. 에그 죽은 사람 속에서 용케 숨이 붙어 있었구나.”하고 말하는 소리가 멀리서 앵앵거리며 들려왔다.

그 후 기적적으로 열이 내려 나는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매해 5월이면 전염병의 후유증으로 그때의 병 증세가 되풀이되는 것이 이 병의 특징이다. 후유증이 고질병으로 굳어진다고 하였다.

병이 좀 나아져 일어나 앉게 되자 곧바로 일감이 들어왔다. 한 달 반 동안 밀렸던 장부 정리, 월말 결산서, 원가 계산서, 생산물 종합보고서, 계획수행통계 등등 한 보따리의 일감이 들어왔다. 한 달 반 동안을 고열 속에서 헤매다가 겨우 머리를 들게 되었는데 가혹하게 일부터 시키니 분한 마음이 앞섰다.

며칠 후 더 나아진 나는 병 감방에서 나와 의무실로 사용하는 방으로 옮겨갔다. 그 날은 임산부 6명을 조산시키는 날이었다.

군의가 나에게 “재정과장 선생이 아직 오지 않았으니 너는 여기서 기다려”라고 하기에 한참 동안 의무실에서 기다렸다.

<“야 빨리 죽여버려, 죄짓고
교화 소에 온 주제에 아기는 무슨 놈의 아긴가!”>

내가 있는 동안 3명의 임산부는 아기를 낳았다. 나는 끔찍스러워 외면했다. 짐승도 새끼를 낳을 때면 자리를 깔아주는 법이다. 그런데 자리도 깔지 않은 맨 시멘트바닥에 사람을 눕혀놓고 스스로 아기를 낳게 하는 것이다.

군의나 안전원들은 실내화도 아닌 바깥에서 신던 신발로 돌아가며 산모들을 걷어찼다. 조산시키는 도중에 아기가 태어나면 옆에 지키고 선 군의가 “야 빨리 죽여 버려, 죄 짓고 교화소에 온 주제에 아기는 무슨 놈의 아긴가. 죽여 버려.”하고 매몰차게 내 뱉았다.

그럴 때면 맨 바닥에 누운 여자들은 자신의 신세가 너무도 한스럽고 또 아기에 대한 모성애 때문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껴 울었다.

<“우리는 맹수보다 더 무서운 악마야,
그 아기들 가져다 실험용 약을 제조한대”>

강제 조산을 시켜 낳아도 처음엔 아기가 숨이 붙어 버둥거리며 운다.

군의관의 지시를 받은 위생원들은 떨리는 손으로 아기 목을 비틀어 죽였다. 그럴 때면 잠깐동안 찍찍 소리가 나다가 이내 아기는 숨을 거둔다. 위생원들은 헌 작업복을 폐기시킨 걸레조각에 아기 시신을 둘둘 만 후 양동이에 담아 감방 뒤쪽 공지에 내다 놓는다. 그것을 남자 죄수들이 가져다 묻는다고 했다.

나는 몸서리치는 그 광경 때문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지금도 가끔 꿈속에서 그들이 자기 아이를 부르며 달려가는 모습이 나타나는데 그럴 때면 비명을 질러대곤 해 아들이 흔들어 깨우곤 한다.

그 후 내가 급식통계를 받으러 갔을 때 위생원인 김신옥과 조미옥은 울면서 “계산공, 우리는 맹수보다 더 무서운 악마야. 그 아기들을 가져다가 실험용 약을 제조한대.”하고 말했다.

나는 너무 끔찍스럽고 무서워 위생원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너희들이 한 말을 나는 절대로 듣지 못했어. 나는 아무 것도 듣지 못했어.”

나는 급히 그 자리를 피해 버렸다. 혹시 말이 누설될 경우에는 나 역시 감옥귀신이 되기 때문이었다. 또한 말끝마다 세상에서 사람을 제일 귀중히 여기는 나라이며, 아이들은 나라의 왕이라고 하는 새빨간 거짓말 보자기 속에서 이런 무서운 짓들을 저지르고 있구나 하는 환멸감으로 그때부터 내 사상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1992년 6월이었다. 갑자기 고열이 나고 발걸음을 떼기가 힘들어지면서 왼쪽 가슴부위가 결리고 숨이 넘어가는 것 같은 통증이 왔다. 도무지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 지경이 되니 재정과장(중좌)이 나를 병방으로 데려갔다. 군의가 보더니 늑막염이라고 진단하고 왼쪽 가슴 부위에 물이 찼다고 했다.

<학생들의 과외노동이 너무 많다고
이의제기 했다 잡혀온 평양공전 교장>

전에 농포집결소에서 물고문을 받을 때 가슴 부위에 많은 타박을 받은 후 늑막에 걸려 고생했는데 치료도 없이 어느 사이엔가 저절로 나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 영양상태가 악화되고 힘에 부치는 일을 하니 다시 늑막염이 재발한 것이다. 재정과장은 고열에 들떠 신음하는 사람 걱정보다 6월이면 분기결산을 해야 하는데 그 일을 못하게 되었다고 야단이었다.

그때 설계 교화 반에는 김헌식이라는 여자가 나와 같이 있었다. 그는 평양경공업전문학교 교장으로 일하다가 학생들의 과외노동이 너무 많아 학업에 지장이 간다며 시 교육부에 이의를 제기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여러 번 사상검토를 받은 후 5년형을 받고 교화소에 잡혀왔다. 직권남용이라는 법조에 걸렸던 것이다. 북한식으로 말하면 “교장 직을 악용하여 학생들에게 노동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심어 주었으며 안일하고 부화뇌동했다”는 비판을 받은 후 잡혀온 것이다.

교화소에서는 그에게 디자인 설계를 맡겼다. 교화소에서는 김일성의 80회 생일에 사회안전부 교화국 산하의 노무자들에게 김일성의 선물로 수입한 나일론 양복천으로 점퍼를 만들어 공급하기로 하고 그 작업과제를 김헌식에게 맡겼다.

<“야 이 백당년아! 멀쩡한 것이 누굴 속일 셈이냐”>

이때 그는 약간의 착오를 해 옷의 치수를 바꿔 설계했는데, 즉시 발견하고 시정하였기 때문에 자재낭비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 일이 의식적으로 생산날짜를 지연시키기 위한 행동이라면서 선물 생산이 끝난 뒤 그에게 독방처벌로 10일 동안 가두었다. 나온 후 그는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 매일 출, 입방할 때마다 옆 사람이 양쪽에서 끼고 걸어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교화과(생활통제부서)에서는 꾀병이라고 계속 닥달을 하였다. 매일같이 매질과 발길질을 되풀이했다.

설계실에 들어오는 안전원들마다 “야 이 백당년아! 멀쩡한 것이 누굴 속일 셈이냐.” “네 년이 몸이 편안하니 속이 근질거리냐?” “저년 눈깔에 먹물이 터지게 해야 정신을 차릴 거다.” 등등 별의별 악담을 다 퍼붓곤 했다.

독방에서 나온 후 그는 근 한 달 가량을 축구공처럼 이리 차이고 저리 몰리면서도 이빨을 사려물고 버텨냈다. 두 다리는 끌고 다니느라 온통 상처투성이로 변했다. 그 상처가 화농하여 더는 일을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경우도 생겼다.

그렇게 되자 그는 병방에 넣어졌다. 병방에서도 일을 계속하라고 일감을 가져다 주었다.
그는 8월 중순 한창 무더울 때 죽었다. 죽기 전에 그가 정말 다리를 못쓰는지 신경마비가 왔는지 실험한다면서 군의는 그를 엎어놓았다. 두 엉덩이 위에 불에 달군 돌을 올려놓고는 감각이 있으면 뜨겁다고 소리칠 것이라고 했다.

“이년, 솔직히 대라. 꾀병 부리지 말고.”
시뻘겋게 달아오른 돌을 살 위에 올려놓으니 뿌지직 소리가 나며 살이 타는 노린내가 역하게 피어 올랐다. 사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배운 의술인데 군의관은 어떻게 그다지도 잔인한지, 그야말로 악마 같은 노친네였다. 그는 사람의 살이 다 타들어 가도록 돌고문을 하면서도 눈 한 번 찡그리지 않았다.
나는 살이 타는 노린내 때문에 구역질이 나고 하늘과 땅이 빙빙 도는 것 같은 현기증을 느꼈다.

<“나는 파란 하늘을 보고 싶어 아이들이 나를 기다린단 말이야”>

처음 교화소에 입소할 때 접수안전원인 대위가 매섭게 쏘아보며 “너는 이제부터 인간이 아니다. 사람이라는 것을 포기해야 옥귀신을 면할 수 있다”고 내뱉은 말이 생각났다.

하루하루 교화소 생활을 하면서 그날 접수안전원이 했던 말뜻이 생생하게 실감났다.
그날 김헌식은 살이 타들어 가도 뜨거운지 아픈지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후 며칠 동안 그는 용변을 보는 느낌조차 모르고 지냈다. 그렇잖아도 무더운 여름에 끌려 다니느라 하반신이 온통 상처투성이인데 생가죽을 태워놓았으니 금방 살이 뭉개져 화농하였다.

나 역시 고열에 신음하는 중이었지만 그가 너무도 불쌍하여 한쪽 가슴을 손으로 움켜잡고 위생원이 주는 낡은 걸레조각으로 엉덩이의 피고름을 닦아주었다.

그때 그는 “계산공, 나는 파란 하늘을 보고 싶어. 아이들이 나를 기다린단 말이야.”하고 혀 꼬부라진 소리로 겨우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의 두 눈에 눈물이 글썽해 있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그후 며칠 동안은 나도 병이 더 악화되어 그의 시중을 들어주지 못했다. 누구 하나 그를 들여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계속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야 이 백당년. 뒈졌으면 뒈졌지  시끄럽게 밤중에 왜 떠들어?”>

나는 가까스로 기어가 그의 엉덩이에 붙여놓은 천 조각을 뗐다. 그 순간 “으악!!!”하고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 자리에는 수백 마리가 넘는 구더기가 득시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구더기들이 양쪽 엉덩이 살을 다 파먹은 것 같았다.

그때까지도 숨이 붙어 있던 김헌식은 계속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구더기는 온 방바닥으로 기어다녔다. 그날 밤 그는 말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끝내 세상을 떠났다.

밤이면 정전이 되기 때문에 암흑 속에서 지내야 했다.
나는 모기소리로 “선생님, 사람이 죽었습니다.”하고 문구멍(배식구멍)에 대고 말했다.
그러자 북도쪽에서 “야 이 백당년. 뒈졌으면 뒈졌지 시끄럽게 밤중에 왜 떠들어?”하며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아니 이게 웬일이야 구더기가 헌식이를 다 파먹었나?”>

그 날 나는 죽은 헌식이와 함께 마지막 밤을 같이 지 샜다.
날이 밝은 새벽에 보니 마룻방 바닥에 온통 구더기가 깔려 있었다.

“아니 이게 웬일이야. 구더기가 헌식이를 다 파먹었나.”
나는 고열에 들떠 위생원이 배식구멍으로 들여보낸 비닐자루에 구더기를 손으로 쓸어담고 주워담으면서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죽은 시체 옆에 있으면서도 무섬증은 없고 그저 그가 당한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을 뿐이었다. 언젠가는 나한테도 그런 일이 닥쳐올 것만 같았다.

“죽어서는 안돼! 이대로는 죽을 수는 없어.”
이를 악물고 부르짖었다. 그리고 그 오기 때문인지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났다. 나는 다시 한 번 회생하여 의무실로 나갔다.

의무실은 7평정도 되는 작은 방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날 역시 방바닥에 임산부 10여명이 누워 있었다. 강제 조산을 시키느라 주사를 놓았는데 임산부들은 24시간동안 진통을 겪어야 아기를 낳는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영양실조와 힘겨운 노동에 지친 여자들이 산고를 치르노라면 맥이 다 빠져 숨을 거두는 경우도 있다.

<“우리 아기는 죽이지 말아 주십시오. 제발 죽이지만 말아 주십시오.”>

살아있는 아기를 낳는 것보다 죽은 아기를 낳는 것이 더 힘들다고 위생원이 말해 주었다. 아닌게 아니라 그들의 얼굴은 백지장 같았고 이마에서는 비지땀이 쏟아져 내렸다.

고통에 겨워 신음소리라도 내면 옆에 있던 군의가 사정없이 구둣발로 배를 걷어찼다.
“야, 이게 누가 알아준다고 엄살이야 아가리 닥쳐라.”

재정과장이 오기를 기다리며 의무실 복도에 서 있던 나는 구두공장 김병옥(32살)이가 울음을 터뜨리는 소리를 듣고 열려진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방금 아기를 낳은 참이었다. 새빨간 핏덩이는 사내아이인지 고추가 달려 있었다.

눈물이 범벅이 된 병옥이는 “선생님. 우리 아기 죽이지 말아 주십시오. 시어머니가 우리 아기를 눈 빠지게 기다립니다. 제발 죽이지만 말아 주십시오.” 하고 통사정하였다. 그때 그의 눈에서 흐르는 것은 눈물이 아니라 시퍼런 불이 펄펄 일어나는 것 같았다. 그는 이성을 다 잃어버린 사람 같았다.

<아기는 닭 모가지 비틀 듯 순식간에 목이 비틀려 숨이 끊어졌다>

지금까지 조산을 시켜도 모두 속으로만 울어야지 두려워서 말 한 마디 못했는데 조병옥이 그처럼 돌발적으로 항의를 하니 군의도 처음에는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 그는 본성을 드러냈다.

“야 이 백당 간나 새끼야. 숨통이 붙어있는 게 원수구나. 너 죽어볼래?”
군의는 구둣발로 그의 배를 걷어찼다.

“야, 위생원 빨리 처치해. 목을 비틀란 말야!”
아기는 닭모가지 비틀듯 순식간에 목이 비틀려 숨이 끊어졌고 걸레짝에 싸여 양동이에 담겼다. 이때 안전원인 병원원장이 들어섰다.

“왜 소란을 피워. 이 간나를 독방에 처넣어라.”
원장은 피자리도 채 거두지 못한 산모를 그 구둣발로 사정없이 짓밟아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았다. 산모는 그 몸으로 독방에 끌려갔다.

그 날 받은 충격은 눈에 흙이 들어가도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김병옥은 평안북도 의주의 13호 군수공장에 다녔는데, 교화소에 온 지는 4개월밖에 안 되었다. 그는 5대 독자 외며느리로 임신했기 때문에 시부모님들이 손꼽아 손자를 기다린다고 했다. 1992년에는 병옥이와 그 남편이 다니는 군수공장도 4개월 동안 식량배급이 끊겼다. 시어머니는 아들과 며느리가 공장에서 타온 알루미늄 냄비 몇 개를 내놓으면서 며느리의 친정이 있는 농촌으로 가서 식량을 바꾸어오라고 했다. 여행증명서도 없이 몰래 길을 나섰던 그는 암거래 집중단속에 걸려 미처 집에 소식도 전하지 못한 채 3년형을 받고 교화소에 왔다.

그는 독방에 들어간 지 닷새만에 죽었다고 한다.
나는 그의 모습을 잊을 수 없어 마지막으로 북한을 떠날때 의주 집에 편지를 보내 병옥이의 죽음을 알려주었다.

개천교화소 수용자들의 명단이 공장별로 다 있고, 그들의 죄명과 형기, 집 주소가 기록된 문건이 교화소 참모부역할을 하는 종합계산공에게 비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주소를 기억해서 나왔던 것이다.

<왜 태아를 파묻지 않고 바깥 병원으로 가져가는지>

어느 날 위생원 김신옥이 내게 와서 말했다.
“계산공은 살아서 나갈 거야. 그렇지만 나는 죄를 받아 감옥귀신이 될 것 같아.”
그의 음성은 푹 가라앉고 젖어 있었다.

“내가 왜 의학공부를 했을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 이 세상에서 제일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의학공부를 했는데 지금 이렇게 무서운 짓을 하고 있어.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거야.”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의사에게는 생명을 살릴 의무만 있는 거야.”

가끔씩 신옥이는 가슴 아픈 일이 생기면 병방의 환자 급식통계를 가져온다는 핑계로 나한테 와서 마음속의 불만을 터뜨리곤 했다. 그와 나는 어느 때부터인지는 모르나 서로 속을 터놓는 친구가 되었다.

내가 석방되기 얼마 전 위생원 김명숙이 예심방에 들어갔다고 얼굴이 새카매진 신옥이가 알려왔다.
“계산공은 못 들었다고 했지? 왜 태아를 파묻지 않고 바깥병원으로 가져가는지 명숙이가 한 말 못 들었지.”

<그렇게 그는 우리 앞에서 영영 종적을 감추었다>

그 말이 어떻게 군의관의 귀에까지 들어갔는지, 갑자기 명숙이 예심방에 들어갔는데 정말 큰일이라고 벌벌 떨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이 안에서는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울고 웃고하는 것마저도 다 금지되어 있는데 왜 입을 놀려 스스로 제 죽을 함정을 파는 거야? 나 외에는 그 누구 앞에서도 입을 다물어.”

그 후 6개월이 지난 뒤 내가 석방되었는데 그때까지 명숙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감방 변소를 푸는 낙후자반에도 그는 없었다. 후에 취사장에서 그에 대한 말이 나왔는데 예심방에도 그의 모습은 없다는 것이었다. 취사장에서 밥을 넣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우리 앞에서 영영 종적을 감추었다.                  

출처 : 한국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