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년간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교육부는 교육의 도깨비방망이를 곧추들고 자의반 타의반 의욕에 차서 5년지소계(五年之小計)를 내세웠지만, 그것은 오로지 사교육 고사(枯死) 작전밖에 없었다. 다른 모든 교육 정책은 아무리 중요해도 후순위로 천 리 만 리 밀렸다. 새 교육 점령군은 기기묘묘한 방법을 동원하여 금방이라도, 사교육의 괴물이 보기만 해도 혼비백산하는 사대천왕의 그림을 떡하니 그려 현실세계로 툭 튀어 나오게 할 듯 자신만만해 하지만, 뱀 꼬리 부적 하나 못 그리고 5년 후에는 자신이 종이호랑이로 변하여 연기처럼 물러간다. 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려다 체면만 잔뜩 구기고 물러난다. 무한히 너그러운 한국인은 혀만 차지 교육 도깨비 누구에게도 수갑을 선물하지 않는다.

교육 도깨비는 의사로 말하면 돌팔이요, 기사로 말하면 돈키호테다. 돌팔이는 병의 원인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증상에 대해, 열이 나면 무조건 해열제 하는 식으로 임시방편의 처방을 남발하면서 환자의 완쾌를 호언장담하는 사기꾼이다. 그리고는 재빨리 먼 마을로 도망친다. 돈키호테는 들판의 양떼를 오랑캐로 확신하여 비루먹은 말을 몰아 창을 꼬나들고 돌진하고, 여관의 포도주 가죽부대는 마귀로 확신하여 이빨 빠진 칼을 맹렬히 휘두른다. 돈키호테 기사에게 양의 울부짖음은 오랑캐의 단말마로 들리고 포도주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포도주는 마귀의 피로 보인다. 이에 고금의 명장은 무릎을 꿇고 신에게 요란하고 긴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사교육 잡는다고 공포탄을 쏘는 걸 보았는가. 그 동네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정치든 경제든 문화든 모든 게 그들의 손안에 있기 때문에 사교육 문제는 있더라도 그들의 수족인 공산귀족에게나 있다. 따라서 장려할지언정 말릴 필요가 없다.

한국에 사교육 시장이 번성하는 가장 큰 원인은 한국이 자유민주와 시장경제의 국가인 데 있다. 자유민주는 국민 스스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각자가 선택할 자유가 있는 체제이고, 시장경제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란 상호이익을 바탕으로 하되 국민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하여 상품이나 서비스를 교환하는 질서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대원칙을 무시하고 교육에 관한 한 유독 자유민주 대신 독재, 시장경제 대신 계획경제를 도입한다. 그 부작용으로 사교육이 발달한다. 그것은 피보다 아까운 돈을 더 주더라도 엉터리 공교육보다 나은 교육 서비스를 받겠다는 의지에 다름 아니다. 정부는 공교육 사회에 대해 공익과 국익의 거룩한 이름으로 자유민주 체제를 완강히 부인하고 초등에서 대학까지 ‘보이는 주먹(visible fist)’을 휘두른다. 선진 자유민주 국가의 학교에서 공기와 물처럼 누리는 자유와 자율이 한국의 어떤 학교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학부모와 학생과 교원 누구도 자유민주적 교육 기본권을 향유하지 못한다.

공사립 할 것 없이 학생은 몸집과 몸매가 부모보다 커지고 아름다워진 이팔청춘이 되어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성적과 전혀 무관하게 복불복 뺑뺑이로 결혼만큼 중요한 인생 문제를 결정해야 한다. 과학고나 외고, 국제고, 자율고, 자립고, 그 어떤 학교도 평준화 지역 안에서는 사교육을 유발하는 선발 필기시험을 못 본다고 하면(실지로는 이걸 못하니까 그 사이를 비집고 정규과정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제공할 수 있는 사교육 시장이 더 화려한 꽃을 피움) 아무리 그게 마음이 안 들어도 무조건 따라야 한다. 교육부가 정해 놓은 교육과정도 전국의 모든 학교가 로봇처럼 똑같이 이수해야 한다.

예를 들어, 7차 교육과정에서 재량교과라는 게 신설되었는데, 이것은 이름도 거창하게 학생의 자기주도적 학습을 돕는다며 평가 없이 ‘이수’ 표시만 기록한다. 고등학교에서는 주로 1학년에서 연간 12단위, 일주일에 6시간을 듣는다. 전국의 6대 사립 자립고마저 이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이들 학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주당 시간을 늘려서 기초학습을 보충한다. 만약 그것이 원래 취지와는 무관하게 자습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며 아예 빼 버리고 평가가 있는 교과목으로 대체하면, 그 날로 그 학교는 문을 닫아야 한다.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교육부(교과부)는 이것의 폐해를 알고 격주 토요 휴업 등을 이유로 연간 6단위로 줄였다. 그러나! 전국의 어떤 학교도 2011년까지는 감히 시행할 수가 없다. 35% 국민공통과정의 자율화, 말뿐이다.

전교조의 거룩한 뜻을 받들어 학생의 건강과 수면권을 존중하여 0교시 보충수업을 폐지한 것도 그렇다. 그 후로 학원은 재빨리 밤 12시까지 영업시간을 연장했다. 그런 사정은 고려하지 않고 이번에는 사교육에도 엄포를 놓아 밤 10시 이후 수업에는 드르륵 학원폐쇄의 기관단총을 쏘겠다고 교육의 실세가 비장하게 통고한다. 교육 권력이 엉터리 공공 서비스 기관만이 아니라 매혹적인 민간 서비스 기업에도 무식하게 개입한다는 말이다. 다른 분야라면 세계 10대 선진부국에서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하긴 일개 사기업에 지나지 않는 교육방송의 교재는 지금은 거의 사라진 국정교과서보다 수십 배 권력이 있다(권위가 아님). 영어 지문은 일찍이 국정 교과서 시절에도 이미 아는 지문은 독해 실력을 측정하기에 부적당하다고 하여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데, 사교육을 줄인다며 똑같은 지문을 방송교재에서 여러 개 내버린다. 이걸 50%까지 늘리겠다고 또 다른 교육 실세가 어금니 사이로 말한다. 학교도 아닌 일개 방송 사교육 시장까지 정부가 독점하겠다는 발상이다. 한편 일선학교는 아직 어떤 학교도 감히 0교시 수업은 못한다. 등교시간 (8:00 이전) 하나 정하지 못한다!

교육의 시장경제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지 못할 것 같은가. 시장경제는 이익이 있는 곳에는 보통사람도 제갈량의 아이디어를 쏟아낸다. 새벽반을 만들 수도 있고, 권력과 돈과 등화관제 등으로 상위층에서는 얼마든지 조무래기 암행어사를 피할 수도 있다. 늘 잡히는 것은 피라미 소시민이다.

대학도 헌법이 보장한 자율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 모든 것이 사교육 대책의 일환이다. 특히 학생선발에 관한 한 5년 임기 정부마다 사교육 대책의 일환으로 내놓는 신기백출(神技百出) 입시정책에 안 맞출 수 없다. 돈으로 손짓하고 권력으로 조인다.

교육은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 만들기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 원칙이 실종된 지 오래다. 어떡하면 자유민주와 시장경제의 틀 안에서 움직이는 교육 서비스를 독재와 계획경제의 틀 안에 강제로 집어넣어 북한처럼 어기적 공교육 공룡만 존재할 뿐 그를 보완할 물 찬 사교육 제비는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아무런 사회문제가 되지 않는 나라로 만들려고 한다. 그것은 한국이 공산독재국가가 되지 않는 한,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교육 시장은 더욱 번성하게 마련이다. 사교육이 아예 존재하지 않던 모택동의 중국과 사교육이 한국 못지않게 번성하는 등소평의 중국 중 어느 것이 탐나는가. 시장경제만 있을 뿐 자유민주가 없는 중국도 그러한데, 하물며 자유민주와 시장경제가 이미 골수가 되고 피와 살이 된 한국에서 무슨 수로 사교육을 없앨 수 있을까.

해답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 대통령과 실세와 교육부는 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려는 과욕을 부리지 말고, 사교육은 아예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사교육에 감사하고 사교육에 배우며, 21세기의 통일한국에 적절한 인재를 키우는 방식을 노파심과 애국심에서 독점하지 말고 대폭 일선 학교와 대학에 나눠주는 데 있다. 민족사관고와 대원외고, 과학고와 상산고, 포스텍, 한동대,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의 예에서 보듯이 약간의 자율만 주어도 세계적 고등학교와 대학이 쑥쑥 자라는데, 미국과 일본만큼의 자율권을 부여하면 세계가 깜짝 놀랄 명문이 속출할 것이다. 그러면 사교육은 사라질 리는 없지만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교육 서비스도 선택 사항이니까.

(2009.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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