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한민국이 직면한 얼키설키 갈등의 밑뿌리는 김영삼과 김대중을 민주화의 주역으로 확신하는 무지몽매함이다. 그들이 민주화의 화신이라면 그 이전 대통령은 모조리 독재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의 틀에서는 그 이전의 한국 현대사를 아무리 긍정적으로 보더라도, 개발 독재 이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백번 양보하여 산업화는 인정하더라도, 그것은 민주를 희생한 독재 위에 세운 것이므로 필연적으로 풀뿌리를 도외시하고 재벌과 독재세력만 살찌운 정경유착(政經癒着)의 문제점이 도출된다. 따라서 개발 독재는 다수를 희생하고 소수만 배불린 정책이므로 양적인 면에서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다수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처럼 김영삼과 김대중을 민주화의 안중근과 유관순으로 명예의 전당에 모시면, 현실과 동떨어진 논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이렇게 되면, 김영삼과 김대중은 설령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이전의 누적된 잘못된 것을 고치려고 애쓰다가 기득권의 반발로 실현하지 못한 실패한 개혁가, 조광조와 이이(李珥)가 된다.

도대체 민주는 무엇이며, 김영삼과 김대중은 언제 어떻게 민주를 실천했나?

민주는 1945년 미국의 힘으로 어느 날 갑자기 조선이 일제에서 해방되면서 들어온 말이다. 그 이전에는 독립이란 명분만이 조선인에게 각인되어 있었다.

“나의 소원은 첫째도 독립, 둘째도 독립, 셋째도 독립입니다.”-- 김구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이런 낱말은 1945년 8월 15일 이전에는 모조리 사치요, 허구요, 공상이요, 망상이었다. 이런 생소한 말을 아는 사람도 극히 드물었다. 그 중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은밀히 소련이나 중공의 공산당과 연계되어 가느다란 조직이 있었지만, 그것은 소련군 대위나 남북의 꼭두각시 팬들이 날조하고 침소봉대한 것처럼 무슨 대단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조선의 프롤레타리아와는 동떨어진 삶을 사는 부르주아와 인텔리겐치아가 기생을 옆에 끼고 권커니자커니 하면서, 지리멸렬하는 독립운동에 독선의 비수를 들이대어 언젠가는 거기서 주도권을 장악할 속셈으로 어여쁜 기생 앞에서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침팬지처럼 혼자 뻐기며 혀를 꼬부려 믿거나 말거나 엘리트인 척 나불댔던 말에 지나지 않았다.

미국이 천신만고 끝에 드넓은 태평양을 온통 피로 물들이며 일제(日帝)와 벌인 전쟁에서 승리하자, 만주의 관동군과 서로 노려보기만 하다가 하이에나처럼 소련의 붉은 군대가 사기꾼의 달콤한 말과 강도의 구둣발로 어부지리를 취하여 한반도의 절반을 번개같이 취함에 따라, 난데없이 북한에서는 독립의 초석이었던 ‘민족’이 사라지고 밑도 끝도 없는 ‘계급’이 떠오르더니 완장 찬 자들에 의해 대대적인 숙청의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일제 헌병은 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독립을 대체하는 최대 명분으로 서슬 퍼렇게 강제 이식되었다. 그들은 공산주의가 곧 민주주의라고 강변하며 괴상망측 선거를 도입했다. 흑백 찬반 투표함에서 부리부리 완장 찬 자들이 지켜보는 데서 100% 참여에 100% 찬성이 나왔다. 그들에겐 오직 결과만 중요했다. 민주의 99%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들은 생각도 않았다. 그 후로 그들은 100% 북한 주민의 찬성에 의해서 100% 정통성 있는 국가가 탄생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선동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도 한꺼번에 들어왔다. 소련과 연계된 자들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뭔지 대충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뭐가 뭔지 몰랐다. 모르니 솔깃해 하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민주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생각과 행동은 하나같이 조선의 봉건주의 또는 일제의 식민주의였다. 아는 것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알려 준 주체는 둘이었다. 하나는 미군, 다른 하나는 미국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이승만이었다. 민족주의적 성향 때문에 이승만은 미군으로부터 만만찮은 견제를 받았지만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한국에 심고 뿌리를 내리는 데 가장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학교에선 교과서로 이를 가르쳤고 학급회의와 학생회를 통해 훈련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공산주의가 발을 아예 뻗치지 못하도록 과감하게 농지개혁도 단행했다. 일본과 대만과 더불어 전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농지개혁이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전국의 200만 농가에 거의 공짜로 1ha(3000평)씩 똑같이 농지를 나눠 주었다.

반면에 김영삼과 김대중이 평등의 이름으로 부러워 마지않거나 못 본 척하는 공산당의 협동농장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비참한 국가노예제였다. 새로운 10% 지배층을 위해 90% 피지배층 곧 협동농장의 농노(農奴)와 생산판매협동조합의 상공노(商工奴)가 공동소유란 명목으로 100% 원천징수 당하고 극히 일부만 돌려받아 화장실의 생쥐처럼 눈치 보며 연명하다가 수천만 명이 굶어 죽고 맞아 죽는 생지옥을 연출한 것이다. 그렇게 공산귀족 10%만 빼고 나머지 공산노예 90%끼리 평등하게 된 것이다!

한국은 경제적인 측면이나 비밀이 보장된 1인 1표의 정치적인 측면이나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누렸다. 사실상의 신생독립국으로서 한국만큼 정치나 경제 양면에서 산업화만 아니라 민주화도 급속도로 발전시킨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드물다. 박정희도 마찬가지고 전두환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이들은 공산주의로부터 나라를 지켰다. 힘이든 말이든 제도든 이들이 집권하는 동안에는 감히 공산주의가 활개를 치지 못했고 김씨공산왕조가 주도권을 쥔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등을 해코지하려고 때로 발작했을 뿐이다. 아무리 무장간첩을 내려 보내고 선전선동해도 육이오를 겪은 한국인들은 굳이 정부가 시키지 않아도 반공으로 똘똘 뭉쳐 그들에게 절대 속지 않았다. 마침내 노태우는 이론상이든 현실이든 여야 합의로 서구 수준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 제도적 민주주의도 완성했다.

정경유착도 이론상 대한민국을 헐뜯기 위해 상상과 책과 드라마와 술집에 존재하는 거지 현실과 경험과 삶터와 가정에서는 씨도 안 먹힌다. 대기업이 매출이 아니라 GDP로 계산되는 부가가치는 예나지금이나 겨우 10% 정도다. 나머지 90%는 중소기업이나 노동자 몫으로 그들은 누진세에 의해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월등히 적은 세금만 내고 대부분 가졌다. 그래서 농지개혁에 이은 산업화 과정에서도 그 어떤 나라보다도 한국은 소득분배가 잘 되었다. 다만 여건이 미숙하여 사회보장제도가 미흡했다. 경제적 평등을 가장 객관적으로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미국보다 낮은 0.35 이내였다. 이게 급격히 높아진 것은 오히려 김영삼과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에서다.

선거에서 일부 유보 조항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200년, 300년 민주 역사를 자랑하는 극소수 서구가 아니라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어떤 나라와 비교해도 한국은 항상 정치민주에서도 모범적이었다. 오히려 발전 단계에 비해 너무 많은 자유를 누렸는지도 모른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걸고 넘어지는 것은 바로 이 선거 부분이다. 그들이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민주란 명목으로 언제나 조선시대 붕당의 괴수와 똑같은 짓을 일삼았다. 그들이 결정하면 아무도 바꾸지 못했다. 절대복종이 있을 따름이었다. 그래서 정당도 이들은 수틀리면 언제든지 만들 수 있었다. 오히려 아랫사람들의 말은 박정희나 전두환이 월등히 잘 들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돈도 민주화의 종자돈 명목으로 공천의 갈퀴로 마구잡이로 거둬서 마구잡이로 썼다. 전두환 노태우보다 하나도 나을 게 없다. 장부는 일체 남기지 않았다. 구멍가게 장부보다 못했다.

이른바 당내 민주화가 민주의 첫걸음인데, 그들은 당내 민주화를 한 번도 실천한 적이 없었다. 조선시대 붕당정치 판박이였다. 그들은 말만 민주지 봉건주의와 대중영합주의밖에 몰랐고 행동도 그렇게 했다. 또한 그들은 북한의 수작에 완전히 놀아나서 친북좌파가 대한민국에서 주도권을 쥐게 만들었다. 자유민주를 가장 위태롭게 만들었다. 이들이야말로 자유민주의 적이다. 경제적 평등도 이들에 의해 더욱 왜곡되고 고착되었다. 노동조합에 지나치게 힘을 실어 줌으로써 그들이 새로운 노동귀족으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노사(勞使)갈등을 노노(勞勞)갈등으로 변질시켰다. 비정규노동자와 중소기업노동자들은 이들에 의해 대기업 및 공기업의 노조 소속 노동자와, 일제시대 일본인과 한국인처럼 확연히 구별되는 두 계층으로 딱 나누어졌다. 총이윤은 정해져 있는데, 그것을 노동귀족이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에게 돌아갈 몫까지 챙겨 가면 누구의 허리가 휘어질지는 자명하다. 중소기업의 사장이 대기업의 노조 소속 말단 노동자보다 못하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봉건주의자들이요, 인기영합주의자다. 반한(反韓)파요, 친북좌파의 숙주 또는 친북좌파다. 민주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몸만 약삭빠르게 민주의 편에 서서 성동격서(聲東擊西)하는 자들이다. 자유민주의 단물을 가장 많이 빨아먹으면서 자유민주를 가장 위태롭게 만든 자들이다. 이들의 정체를 똑바로 보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혼란과 갈등, 위기와 비극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2009. 5.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