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39세, 함북 무산)씨는 앓는 남편을 대신해 장사를 하며 생계를 책임지던 여성 가장이었다. 2000년 초반 남편이 사망한 이후 그동안의 병수발로 가세가 기울고 장사 밑천까지 바닥이 나자 탈북을 결심, 2004년 중순 중국으로 탈출했다. 박씨는 6개월간 중국에서 돈을 벌어 이듬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 중, 북 국경지역에서 중국 변방부대에 체포되어 강제 북송되었다. 이후 노동단련대까지 거치고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또 다른 불행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큰 딸(당시 17세)이 인신매매 조직에 걸려 중국으로 팔려간 것이다. 딸을 찾기 위해 재탈북을 한 박영순 씨, 하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딸이 아니라 인신매매 조직의 검은 손길이었다.

<조선에서 생계는 어떻게 꾸렸습니까>

- (남편) 병이 중하기 전에는 그런대로 생활이 괜찮았습니다. 그땐 내 장사를 했습니다. 무슨 장사 했느냐면 조선에 중국 화교들이 많습니다. (화교들의 물건을) 넘겨받으러 다녔단 말입니다. 하루 품이면 됩니다. **라는데 다녔단 말입니다. 아침에 갔다가 빠르면 저녁에 (물건을 받아서) 들어온단 말입니다. 늦으면 이틀 품이 걸리지. (돌아오면) 나그네 자전가 타고 나와 짐 다 옮겨줍니다. 남편이 밤마다 (역에) 나와서 날라다 줬습니다. (그렇게 받아온 물건을) 넘겨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때는 (남편 병이) 심하지 않을 때란 말입니다. 그렇게 다니면서 돈 많이 벌었단 말입니다. 그때는 내 생활이 참 좋았습니다.

<장사는 언제부터 시작했습니까>

- 내가 장사할 때가 97년 이후입니다.

<식량난이 한창일 때인데 힘들지 않았습니까>

- 혼자서 세 식구 먹여 살렸습니다. 아이가 2명 있었는데 아이 한 명은 죽었습니다. 아이 둘을 장사에 데리고 다녔는데 어떻게 한번 팔아보겠는가, 생각만이 앞서서 아이가(둘째) 앓고 있는 걸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무슨 장사를 하셨습니까>

- 그때 사사여행으로 중국 사람들이 (북한에) 많이 나왔습니다. 그 사람들이 앉아서 팔기 싫어합니다. (장사 밑천이 없는 북한 사람들은) 중국의 사사여행자들한테 가서 공업품을 넘겨받는단 말입니다. 빤스면 빤스, 그걸 가지고 나와서, 그 사람(중국인)들이 30원에 판단면 우리는 20원에 넘겨받는단 말입니다. 우리는 나가서 25원에, (매대가 없어서) 서서 판단 말입니다. 길에 서서. 장사를 하다가도 안전부 거기서 검열 나옵니다. (그때는) 공업품이랑은 하지(팔지) 말라고 했단 말입니다. 그 다음에 약품. 안전부에서 나오기만 하면 (물건) 딱 싸가지고서리... 대피 못하고 늦은 것은 돈 얼마주고 풀려나고, 어떤 것은 몰수하고.

<수입은 얼마나 됐습니까.>

- 초기 장사해서 하루에 잘 번게 기억으로 남는 건 8-9백원(북한돈), 많이 번다 하는게. 대단히 많은 양이란 말입니다. 못 벌면 한 2-3백원. 그때 당시 내가 머리가 좀 돌았단(머리 회전) 말입니다. (물건 있는 집 가서) 내가 다 독차지해야 이 장사가 잘 된단 말입니다(독점을 해야). (하지만) 자꾸 단속하지 빼앗지 이러니까 괘씸할 때 많지 뭐. 아니되겠다. 서서할 게 아니다. 그래서 **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화교집이 대여섯 집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 있는 화교들이 중국 물건 가져와도 **이 시골이라 처리를 못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 다음에 혼자서 **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거기) 물건 가져와서 (상인들한테) 넘겨주고. 99년부터는 물건을 대량적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래도 여기 가면 단속해 저기가면 단속해, 버는게 정말 헐치 않았습니다.

<탈북은 왜 하셨습니까.>

- 재산 다 팔고. 집에 걸 몽땅 드러내니까 남편이 사망되더란 말입니다. 남편 수발하느라 우리 애 수발을 잘 못해줬단 말입니다. 살기 좀 바빴지. 그래서 아니되겠다. (생활이) 힘들었단 말입니다. 장사골씨(어디로 가면 장사가 되겠다)를 아니까 밑천만 있으면 조선에서 살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고향에서는) 남편 사망되고 경제가 거덜 났으니 이제는 (돈을) 아니 꿔준단 말입니다.

*장사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탈북한 박영순 씨는 중국에서 6개월간 4천 위안을 마련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화룡시 **을 지나다가 중국 변방부대의 불심검문에 걸려 강제 북송되고 만다. 보위부-안전부-노동단련대를 거쳐 집으로 돌아왔을 땐 하나밖에 없는 딸이 사라지고 없었다.

- 돈 벌어가지고 조선에 나갔는데 우리 아이가 없어졌단 말입니다. 내가 조선 나가자 우리 아이는 나 찾으러 (중국) 들어가겠다고 했답니다. 돈 벌어서 딱 나가니까 아(이)는 없고. (그 뒤로) 장사를 하러 나가도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일은 하고 싶은 생각이 없고, 그냥 오고가는 아(이)만 쳐다보고, 그러다 보니 그냥 딸이 괘씸해지고. 문 소리만 나면 (딸이) 들어오겠지.....

<따님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 우리 아(이)를 팔아먹었단 말입니다. 조선 여자하고 연길에 있는 조선족과 해서. 그 여자로 말하면 우리 조선여자란 말입니다. 오래 전에 (중국) 나와서 한족하고 결혼한 여자. 여자가 기본 꼬셔서 남자들과 해서 중국에 애를 팔아먹었단 말입니다.

*박영순 씨는 딸의 행방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 재탈북까지 했다. 박씨는 길림성에서 식당을 다니면서 계속 딸을 찾다가 딸의 인신매매에 연루된 사람들의 행방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고.

- 내가 (중국) 나가서 (행적을) 잡았단 말입니다. 남자 둘이, 여자 하나 해서. 연길 사람 전화 호마(번호)를 다 알아서 이 사람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처음 이 조선족은 박영순 씨의 전화를 피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또 전화를 건 박씨에게 딸이 있는 곳을 자세하게 알려주며 찾아가보라고 알려준다. 랴오닝성 **에 딸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박영순 씨는 그길로 버스를 타고 랴오닝성으로 달려가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딸이 아니었다.

- 아이 소식을 듣고 정말 보고 싶고 꿈같아서, 이제는 만나갔다는 꿈을 안고 왔는데 팔려 나갔습니다. 애도 못 찾고 숱한 개고상하고서 숱한 수모를 받고, 매를 맞고, 돈 다 떼이고.......

<인신매매 낌새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습니까>

- 몰랐단 말입니다. (팔려서) 남자를 보니까 보기만 해도 무서웠습니다. 내 의지할 데 없으니까 살까 생각도 해봤는데, 아무리 봐도 정이 안들고, 막 무섭단 말입니다.

<생활이 어땠습니까>

- 내 어디다 다 말하겠습니까. 정말 짐승 같은.... 내가 당한 모욕은.... 내가 아니 산다고 하니까 나를 막 베껴(벗겨)놓고.....

*박영순 씨는 눈물을 훔치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방에 갇힌 박씨가 남자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것은 목숨을 건 단식이었다.

<그 곳에서 어떻게 벗어났습니까>

- 내가 일을 하면 정을 붙이려다 보나 생각할 것 같아서 일절 일 안하고 단식했습니다. 단식으로 (몸이) 못 쓰게 됐습니다. 심장에 압박 받기 때문에 조금 충격을 받으면 까무러치곤 했습니다. 그 다음에 겁이 난다 말입니다. (남자) 주변에서 친척들이 여기서 송장치면 어쩐가, 바꾸라, 그런 이야기를 해서 (남자) 마음이 바뀐 것 같습니다. (단식 초기에는) 회초리 있지 않습니까. 나무 깎아서 그걸로 때렸습니다. 약간 높이가 있는 데서 머리를 채서 회초리로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회초리가 부러지면 손에 잡히는 대로 때렸습니다. 어찌됐든 그렇게 그 남자 집에서 나와서 다른 곳으로 팔렸습니다. 이번에 팔린 집은 남자가 약간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박영순 씨에 따르면 탈북 여성을 산 사람들이 인신매매 범에게 환불을 요구할 경우 환불은 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일정 정도의 추가비용(박씨의 경우에는 3천 위안을 요구했다고 함)을 요구하고, 구매자 쪽에서 요구를 받아들이면 확보하고 있는 여성으로 교환 해준다. 보통 교환은 인적이 없는 밤에 이뤄진다. 반환된 여성은 구매자가 나타날 때까지 감금을 하는데 다른 지역에 팔 경우에는 웃돈을 받고서 넘긴다. 넘겨 넘겨 팔면서 웃돈을 붙여 이윤을 남기는 식이다. 탈북 여성들이 여러번 인신매매를 당하는 구조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박영순 씨는 정상이 아닌 남자와 같이 살 수 없다고 판단, 남자에게 계속 대들면서 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남자의 친척들이 만류하면서 같이 살길 설득하기도 했지만 계속 못살겠다고 버티자 결국 남자 집에서 교환을 요구한다. 구매자가 나올 때까지 다시 감금이 된 박씨는 감시가 허술한 틈을 타 탈출에 성공, 길림성 **로 나올 수 있게 됐다. 계속해서 탈북 여성들에 대한 인신매매 문제에 대해 박영순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북한 여성과 중국인과의 결혼중계는 어떻게 이뤄집니까>

- (북한에서는) 살기 바쁘고(힘들고) 하니까, 연선지대에서는 중국 가면되지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내가 여자다, 난 남편도 없고 아도 없고 이런 여자들은 중국에 가볼까, 힘들면 중국가면 되지,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러면 벌써 다 알립니다. 주변에서 강 건널 때 안내할 사람도 소개해주는 것도 있고, (본인들이) 알음알음해서 소개 받기도 하고, 어찌됐든 골씨(인신매매 조직원)가 그런 것을 포착해서 접근합니다.

<결혼 형태로 강을 넘겨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 (북한에) 골씨 다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아들(사람들이)이 있단 말입니다. 아삭아삭(살핀다는 모양) 본단 말입니다. 골씨들은 연길이면 연길, 화룡이면 화룡, 아는 사람이 다 있단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북한에서) 여자들이 중국 가겠다 하면 접근합니다. 여자 있다고 중국에 전화하고 조건이 맞으면 팝니다. 여자는 중국 간다고 생각했는데 팔려 가는 일도 있습니다.

<왜 원치 않는 결혼을 하려고 합니까.>

- 그 방법이 아니면 어떻게 (국경을) 넘어요. 또 중국말을 알아야 하는데 (중국) 나와야 말이 안통하고, 발붙일 때도 없고.....

<그렇게 결혼한 여성들은 생활이 어떻습니까>

- 한번 팔려 가면, 결혼생활 하고, 아들 낳게 되고, 그러면 정이 붙어사는 사람도 있고. 그런데 조선 여성들은 다 나오겠다고 합니다. 생활, 처지별로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땅 뚜져(뒤져) 먹고 사는데, 달아나자고 해도 돈이 없으니까 못 달아납니다. 집 자체에 돈이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해 농사를 지어 (작물을) 팔아도 이문이 얼마 안 남습니다. 또 남편이 경제권을 주지 않습니다. 남편을 잘 만난 여자는 자유권, 경제권을 주긴 합니다. 돈도 맡기고 하지만 소채나 반찬이랑 나가서 사오라는 정도입니다. 거기에서 푼돈을 모으지만 100원(1백위안, 한화 1만 2천원 정도) 모으기도 힘듭니다.

<중국에서는 어떻게 생계를 꾸려가고 있습니까.>

- 한 3개월 추알집(식당, 뀀집)에서 일했습니다. 숙소에서 자고 있는데 집이 없다는 게 알릴까봐(발각될까봐) 언니 집에 간다며 밖으로 나와 찜질방 가서 자고 오기도 합니다. (숙속에서) 너무 안 나가면 의심 살까봐. 월급은 800원(중국돈) 받습니다.

<신분증도 없는데 취직은 어떻게 했습니까.>

- 취직은 광고 보고. 여기 여자들이 많이 없습니다, 외국가고 해서. (취직할 때) 신분증 아니봅니다. 묵묵하게 성실하게 일하면 붙어 있을 수 있습니다. 조용히 지내면 괜찮은데 늘 들킬까봐, 꼬장(신고) 들어갈까봐 조마조마합니다. 남자들도 (중국에) 들어온게 있단 말입니다. 하지만 살기 힘들단 말입니다. 여자들은 그나마 일할 데가 있습니다. 복무원, 가정보모. 여기 여자들 중에도 잘 사는 여자들도 있습니다, 남편 잘 만나서.

<같은 고향 사람들이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면서요.>

- 조선 사람하고 연결이 되는데 극히 안 만납니다. 실수를 하면 마음에 담아 놓았다가 꼬장질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집도 가르쳐 주지 않고.

<그렇게 지내시면 외롭지 않습니까.>

- 외롭다 마나 날마다 울고, 고향 떠나서 부모랑 헤어지고, 끄덕하면 눈물 나고 그리움이 그저..... 이제는 이 땅에서 동정하는 사람 없습니다. 울어도 소용했습니다. 어떻게나 이겨나가야지.

<알고 있는 탈북 여성들의 심리상태도 비슷합니까>

- 우울증에 걸리고, 고향보고 싶어서. 난 술도 아니 먹습니다. 한번 타락하기 시작하면......

<지금 제일 보고 싶은 사람이 누굽니까.>

- 그저 엄마하고 내 동생 보고 싶은데...... 보고 싶어 죽겠습니다. 이제는 몇 년째. 우리 아(이)도 본지도 이제는 2-3년 됩니다. 어째 어매를 기다리지 못하고.....

*인터뷰 말미에 박영순 씨의 핸드폰이 울렸다. 어떻게 연결이 됐는지 북한에 있는 여동생이라고 했다. 고향에 있는 어머니가 많이 아파 결혼해서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여동생이 병수발을 하러 왔다고 했다. “영희야, 영희 맞니. 그래 어떻게 사니. 어떻게 사는가. (울음) 됐다. 됐다. 나는 있지.... 무시기 걱정이냐 ...영희야 (흐느낌). 야, 엄마 어쩌니. 엄마 어느 정도래니.....”. 울음을 그치자 마자 박영순 씨는 어머니와 동생의 집에 강냉이가 있느냐고 물었다. 슬픔속에서도 동생과 어머니의 식량 걱정을 하던 박영순 씨,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탈북 여성들의 공통된 마음이 아닐까 싶다.

김우성 통신원

*이 글은 지난 7월 중국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한 것으로, 탈북자들의 안전을 위해 지명, 연령, 이름, 경력 등은 다르게 표현했음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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