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합의가 나온 이후 “평화”라는 말이 유행처럼 떠돌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일갈한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 여권의 대선후보중 한 명이 개성공단 현지에서 야심(?)차게 밝힌 ‘한반도 평화시대 구상’, 한동안 이 바람이 쉽게 잠들 것 같지 않다. 오죽하면 한나라당까지 편승해 “한반도 평화비전”이라는 신대북정책까지 발표 했을까. 이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김정일 정권이 한국에 대한 모든 적대정책을 철회하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협력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 지도자들의 이런 낙관(樂觀)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역설적이게도 평화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김정일 독재체제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같은 비극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제3국에서 떠돌고 있는 탈북자들의 절규에도 귀를 막고 있다. 평화를 함께 누려야할 북한 동포들이 내지르는 신음소리를 무시한 채 “평화”를 말하는 사람들, 그들의 목소리가 크게 울리는 한국사회, 과연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가?

북한 동포들의 목소리를 전하려고 한다. 우리가 장밋빛 미래를 외치는 무리에 동참할 수 없는 이유가 이들의 육성에 담겨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지난 7월 중국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한 것으로, 탈북자들의 안전을 위해 지명, 연령, 이름, 경력 등은 다르게 표현했음을 밝혀 둔다. 이런저런 명분에 떠밀려 뒷방살이로 전락한 북한 인권 문제를 잠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첫 번째 이야기: “죽을 것도 근심입니다”

할머니 두 분을 만났다. 이춘옥(가명, 61세, 함경북도 회령) 씨는 지난해 강제북송되어 보위부 구류장에서 조사를 받다가 앞니 세 개가 부러졌다. 이씨는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노동단련대에 들어갔고 출소한 이후 재탈북했다. 올해 2월의 일이다. 여전히 이 치료는 하지 못한 채였다. 김경자(가명, 70세, 함경북도 청진)씨는 입하나 덜기 위해 조용히 아들집을 빠져나왔다고 했다. 회령으로 이동, 올해 4월 두만강을 건넜다. 김씨는 인터뷰 도중 여러 차례 눈물을 쏟았다.

<왜 탈북하셨습니까>

김경자: 에휴, 내 늙은게 밥 한 숟가락 더 먹으면.... 자식들 하나 더 먹으라고 그러느라고 그저 여기로(중국으로) 왔지. 내 같은 건 그저 붙들려서 죽으면 죽고, 내가 (자식들) 도와도 못 주는데, 내 먹는 밥을 너네 한 숟가락씩이라도 더 먹으라 하면서....

<자식들이 말리지 않았습니까>

김경자: 어째 아이(아니) 말리겠습니까. (울음) 아이 말리 수가 없지.
이춘옥: (낮은 목소리로) 가만히 나왔지. 지금 부모 먹이기도 곤란합니다. 제 먹기 바빠서 그러는데 부모를 생각하겠습니까.

<중국까진 어떻게 나오셨습니까>

김경자: (회령에서 중국) 오는 사람 만나서, 청년들 만나서 왔지. 물은 깊지 않습디다. 물이 여기까지(김씨는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물이) 찹디다. 얼음이 약간씩 있는데... (중국에) 들어오지 못해서 애를 쓰고 그랬습니다. 늙은이 되니까 돈은 안냅디다. 할머니 무슨 돈이 있겠느냐면서 돈 아니 받습디다. 그저 손목 쥐고 같이 왔는데.....

<청진에서 회령까지는 어떻게 나오셨습니까>

김경자: 회령까지 나올 때는 버스 타고 나왔습니다. 기차는 있는데 어떤 때는 연착돼서 바로 기차가 안 옵니다. 그 전에는 버스도 없던 게 최근에 버스도 있고. 청진에서 회령까지 들어오자면 1천원(북한돈) 넘어 먹여야 됩니다.

<경비는 어떻게 마련하셨습니까?>

김경자: 쓸 것 못쓰고 아껴서, 그걸로 차비 마련했습니다. 빵장사를 하고, 그렇게 한잎 두잎 모아서 차비 마련했습니다. 아휴 살아가는게 말이 아니지. 차비를 모아서 회령까지 오자고 하면 (장마당에) 한 보름 나가 장사를 해야 돼지.

<두만강을 건넌 후에 내지까지는 어떻게 들어오셨습니까?>

김경자: 강 건너 버스 있습니다. 버스를 가만가만 타고 왔습니다.
이춘옥: 더러 걸어서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100-200리. 이틀씩 묵어 가면서. 자기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중국에) 못 댕기지.

<중국으로 탈북하려는 사람이 많습니까>

김경자: (강 건너는 사람들) 그전보다 많지 않지만 그래도 많습니다. (강 넘다가) 찬스 맞지 않으면 붙들리고 그저 그렇습니다. 돈 있는 사람들은 안전하게 오느라고 경비대 통해서 오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저 붙들리면 붙들리고 죽으면 죽고. 두만강 물이 피눈물이요, 정말 죽는게 많지.
이춘옥: 이제는 조선에서 사람들이 죽는 거 무서워 안합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겠는데 ‘어휴,떠나보자’

<중국 소식은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주민들은 중국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김경자: 중국에 가면, 중국이 세계적으로 먹는 데는 1등이라고 하는데 중국에 가면 아무거 먹어도 배는 아이(아니) 곯지,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중국에 갔다 와서 붙들려 (북한에) 온 사람들이 다 말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다 듣지. 어찌 못 듣겠습니까. (중국으로 나가다가 붙들렸다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런 말 들으면 “기차다 야. 먹고 살겠다고 해서 가다가 붙들렸구다”하며 붙들린 사람 동정합니다.

<북한에 계실 때 식량 사정은 어땠습니까?>

김경자: 돈 없는 사람은 죽은 목숨이지 뭐. 정말 눈물 나지. 간부들이나 군관 가족들 생활이 낫고 그 이외에는 생활하는 게 바쁩니다. 하루 나가서 한 끼 벌이 하고 그러느라 바쁘지 뭐. 지금은 옛날과 달라서 여자들이 벌어서 사는 때, 그러니까 여자들이 그저 앉을 새 없고..... 수령님 계실 때에 이팝(이밥) 먹는다고 했는데....
이춘옥: (고난의 행군 때보다) 점점 더합니다. 생활이 피는 게 아니라 날이 갈수록... (생활이) 좀 펴야 백성들도... 우리 가정도 그렇지 않습니까. 아버지 엄마를 잘 만나야 아이들이 얼마나 호화스럽습니까.

*이춘옥 씨의 말을 고난의 행군시기처럼 대량 아사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뒤에 언급되겠지만 만성적인 식량난으로 인한 누적된 고통, 통제의 강화, 각종 명목으로 이루어지는 수탈 등이 겹쳐 이 같은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인다.

<직장에서 월급 받는 걸로는 살지 못합니까>

김경자: 월급 받아 가지고 못 삽니다. 월급 받아가지고 아니됩니다. (쌀값이) 회령은 850원이고 청진은 1천원. (직장에서) 월급 줘도 1천-1천5백원. 한달 노임을 타가지고서 어떻게 하루나 사는지....

<밥은 주로 어떻게 먹습니까?>

이춘옥: 먹는 거는 조선 사람들은 옥수수쌀 세게 먹습니다. 왜 많이 먹는가 하면 그거 먹으면 조금 근기 있습니다. 중국에서 나가는 강냉이를 가공해서 그거 세게 먹습니다.
김경자: 여기(중국) 강냉이야 좋지. 조선에는 껍질 채로, 가공 잘 못합니다. 껍질 채로 가루 내서 풀을 넣고 또 풀이 없으면 바다 메기(미역) 넣어서 푸대죽을 쓴단 말입니다. 그래도 그게 생활에 보탬이 된단 말입니다. 야 그것도 부족해서이 먹는 집은 먹고 못 먹는 집은, 어떤 때 한 끼도 먹고 두 끼도 먹고 이렇게 해서 세월을 보냈구만. 다른 집, 잘 산다는 집들은, 간부집이나 이런 집들은 생활이 괜찮아서 밥이라도 먹는데, 생활이 곤란한 집은 죽도 빠르지(어렵지) 뭐. 죽 한 끼 먹으면 잘 먹는 거지.

*말을 끝낸 김경자씨가 자기 동네에서 밥 때문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아이) 에미가 밥을 높은데 치워 놓고 나갔다. 그걸 여자 아이가 보고 그 밥을 먹으려고 의자를 놓고 그걸 먹으려다가 떨어져 죽었다. (에미는) 밥 두고 나가면 아이들이 다 먹을 것 같애서, 그거 다 먹으면 (저녁에) 먹을 게 없으니까 높은 데에 올려 논 건데... 그런 아들(아이들)이 여기(중국에) 와서 주워 먹어도 배불리 먹겠는데... (눈물).

*갑자기 이춘옥씨가 “왜 한국에 가다가 붙들리는 사람들은 영원한 길(정치범수용소)을 갑니까? 한국에서 식량을 주곤 하는데”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김씨가 “그저 살겠다고 다 해바라(떠돌아) 댕기다가 붙들려서 오지 못하는 길을 가는게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구만”이라고 덧붙였다. 김씨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 한국에 가다가 붙들려서 (북한으로) 나간 사람들은 영원한 길로 가구만. 오지 못할 길로 간다고, 죽이진 않아도. 그저 중국에 갔다가 붙들려 가는 것은 심문 하고서 3-6개월 구류장. 요즘에는 (올해부터) 교화소 3년이다. 한국 가려는 사람들은 ‘영원한 길’을 갑니다.

<주민들 인심은 어떻습니까?>

이춘옥: 도로 건설에도 돈 뜯어내고, 인민들 동원가도 돈 뜯어내고 원래 나라에서 내야 하는데. 항상 허리띠 졸라매고, 푸대죽 먹이고, 나라가 잘 살면 백성들도 잘 살고 백성들이 잘살면 나라가 잘 살사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하나 백성들을 풀어 놔야 하는데 자꾸 매어 놓고.
김경자: 말을 못합니다. 말하면 잡아가는데. 그저 불만이 많지. 백성들은 말은 못하는데,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데 에휴 전쟁이나 콱 나라는 심정.
이춘옥: 노임은 조금 주고, 배급은 아니주고, 그러곤 생활총화요, 그러니까 날이(권위가) 섭니까. 모든 게 풍부하면..... (북한에) 자유라는게 없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내일 모레 썩어질(죽을) 것도 여기(중국) 와서 밥을 얻어 먹고, 사실은 거기(북한)서 죽어야 합니다. 피눈물 납니다. 희망이 없단 말입니다.
한국에 가다가 잡히면 영원한 길로 가라고 하고, 개조해서 써야지. 어디 우리나라 같은 데가 있습니까? 정말 우리나라 ‘너무’ 한단 말입니다. 어느 머저리가 제 조국이 나빠서 (탈북을 하겠습니까). 나라가 나빠서 사상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닙니다. 어떻게 돈 벌어서 가족을 살리겠는가 (그 생각 뿐입니다). (그런데) 제끼리(자기끼리) 물어뜯고 해서 제 인민을 잡아넣는단 말입니다. 사람 맹구는게(만드는게) 국가적 임무인데 인민을 가두고, 죽이고 하고 있습니다.

<나라에서 통제가 심합니까?>

김경자: 거기는 인민반 회의도 계속하고 무슨 외국에서 손님이 온다고 무슨 사업해라, 아들(아이들) 옷 깨끗하게 입혀 내놔라. 인민반 회의를 계속하지, 동원을 계속 나가지....

*김경자씨는 북한에서 얼마나 시달렸던지, 중국에 와서 보니까 인민반 회의가 없는 게 좋다고 했다.

<청진은 공업도시로 알고 있는데 공장 사정은 어떻습니까>

김경자: 공장이 다 못 돌아갑니다. 지금은 공장이 서는 게 많구만. 원료도 제대로 없지, 전기도 제대로 없고 하니까 어떻게 돌아갑니까. 거기 노동자들은 사는 게 형편없이 살지. 놀아도 직장은 나가 놀아야 된다. 월급은 나오는 날이면 나오고 없으면 없고 그저 그렇지.

<직장에 나가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김경자: 안 나가면 아이 되지. 안 나가면 그게 조직인데....

<장마당 사정은 어떻습니까>

김경자: 장마당은 그전보다 조금 낫습니다. 그 전에는 6.4(비사회주의 현상을 타격하기 위해 조직되었던 ‘6.4그루빠)들이 있었습니다. 6.4들이 장사하는 걸 걷어차고 이 간나 저 간나 하면서 (물건을) 몰수해서 가고, 달아나는 장사꾼도 있고. 최근에는 6.4들 통제를 해서 지금은 안 그러는데 그래도 무스기 받아 가는게 많습니다. 장사할 때 (매매) 지표가 있는데 그 외의 거는 다 뺏아가고.... 금지 물품이 시기시기 다릅니다. 어쨌거나 바쁩니다(힘듭니다).
물건은 중국에서 수출해 오는 것도 있고 외국에서 수출해 오는 게 그 전보다 낫습니다. 그래도 돈이 있어야 사지. 아무리 눈에는 풍년이어도 돈이 없으면.....

<중국에 나오시니까 어떻습니까>

김경자: 여기를 오니 맨 먹을 것 천지, 정말 기차지. 여기 와 보면 저런 것(음식) 뒈지는(버리는) 거 보면 아들(아이들) 생각이 났구만. 여기는 맛이 없어서 못 먹는데 거기는 없어서 못 먹고.....

<북한과 비교했을 때 중국 먹는 사정이 어떤 것 같습니까>

김경자: 음식이사 거기다 대면 부자도 그렇게 못 먹지. 거기(북한) 아들은(아이들은) 그저 사탕과자도 먹어 못 보지. 여기 와보니까 눈에는 풍년인데..... 저기(북한) 아들이 불쌍하구만. 밥을 치워놓고 에미 먹자는 걸 내려 먹다가 죽은 것도 불쌍하지. 아들(아이들) 재 양껏 못 먹입니다. 야 그러니까 이 중국에 와 보니 먹는 거는, 어느 새 그렇게 먹어 보겠는지. 그 뒈지는 건(버리는 건) 영(얼마나) 아까운지. 모두 뒈진거 보시오. 기 딱 맥히지.

<중국 생활이 불안하지는 않으십니까>

김경자: 무서봐서 (마음대로) 못 댕기지. 어째 이렇게 살아야 되는지. 이야.. 정말 기차구만. 이렇게 살아야 되는지. 이러다가 또 어느 때 붙들려 가겠는지.
이춘옥: 어휴 이게 뭡니까. 오래지 않아 죽겠는데 자기 조국을 버리고서... 죽을 것도 근심입니다. 죽어서 화장(火葬)하자면 돈이 드는데 우리 같은 거 누가.... 포부도 없는 사람을 어디다 어떻게 합니까. 내 조국땅에선 이러지 않을 텐데

*두 할머니는 능력이 없어서 자식들한테 돈을 보내주진 못해도 “그 저 내 입만 먹고서 이래 살다 죽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것이 자식들 부담을 덜어주는 길이라면서.

김우성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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