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에서는 선군정치의 우월성과, 그 관철을 위해 모든 힘을 다하는 가운데, 남북한 정상회담으로 평화체제를 구축한다고 떠들고 있다. 평화체제를 구축하자면 북한에서 먼저 선군정치를 선민정치로 바꿔야한다. 김정일이 선군정치를 주장하는 한 평화체제를 논의 한다는 정상회담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북한이 오늘도 끊임없이 외치고 주장하는 선군정치는 과연 어떤 정치인가?

북한은 90년대 후반부터 김정일의 정치방식 중 하나로 '선군(先軍)정치'를 내세우면서 군국주의를 완전한 국가이념으로 공식화고 있다.

선군정치란 '군대를 중시하고 군대를 강화하는데 선차적인 힘을 쏟는 정치'를 뜻한다.
원래 북한은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표방하여 왔다. 주체사상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인간 중심의 사상을 핵심원리로 출발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정말로 주체사상에 입각한, 사람을 귀중히 여기는 사회라면 선군정치보다 '선민(先民)'정치를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주체사상과도 인연이 없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론과도 인연이 없는 선군정치라는 엉뚱한 이론을 내놓고 주민들을 들볶고 있다. 오직 연관이 있다면 히틀러나 무솔리니 같은 사람들이 신봉했던 군국주의(軍國主義)하고나 비슷할까.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라면서 사회주의자인 척 공산주의자인 척 떠들던 김정일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론을 다 집어 던지고 군국주의를 독제체제 유지의 디딤돌로 이용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군대를 중심으로 핵(核)을 보유하면 독재정권만은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본질적으로는 인민들이 굶어죽건 말건 군대만 틀어쥐면 김정일 자신의 목숨만은 건질 수 있다는 이기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악착같이 군 병력을 늘이려고 노력한다.

의병제가 징병제로 되기까지

선군정치의 디딤돌은 군대다. 북한에서 군대 모집은 징병제를 실시한다. 몇 년전 까지는 의병제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징병제를 실시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군대에 가지 않으려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또 1994년부터 시작된 식량난으로 수많은 어린이들이 굶어죽는 바람에 지금에 와서는 군대를 모집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군 모집은 중학교 4학년(16세)부터 진행된다. 각 시, 군에 설치되어 있는 '군사동원부'에서는 이시기에 각 학교를 돌아다니며 학부형들과 담화(상담)를 진행한다. 한 마디로 자녀들을 군대에 보내겠는가 안 보내겠는가? 따지는 것이다.

부모들은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할 수가 없다. 만약 이런 말을 했다가는 정치적으로 걸려들게 된다. 군 기피는 곧 반역이기 때문이다. 설사 입대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는 외아들이라 할지라도 모두 군대에 보내겠다고 자청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간주된다. 그만큼 본인의 소견을 솔직히 밝힐 수가 없다.

군사동원부 지도원들은 학부모의 사인을 받아내면 학생들을 군사동원부에 집합시켜 정식 예비신체검사를 진행한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신체검사 지표는 거의 비슷하리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합격기준은 키 148㎝, 체중 48㎏ 이상, 시력, 간염검사, 악취 상태, 탈항(치질) 상태, 기타 등등. 1년 후면 정식 초모생(군입대생)으로 등록된다. 등록된 사람들은 군사동원부의 통지서에 따라 시, 군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합격되면 도마다 설치된 초모소로 이동한다. 이곳에서 다시 신체검사를 마치면 정식 군복을 입고 인솔 군관들을 따라 각 부대로 배치된다.

병종 배치는 출신성분에 따라

군 병종(兵種) 배치는 철저히 출신성분에 따라 구분한다. 주로 4월에는 호위국을 비롯한 평양시 주둔 구역의 군부대에 대거 입대시키고, 5월이면 기본 전투단위에서 모집을 진행한다.

6월 이후부터는 건설부대나 도로건설, 탄광건설과 같은 비전투부대에서 모집을 진행한다. 호위국이나 기본 전투단위에는 출신성분이 우수한 자녀들을 대상으로 하고, 건설부대나 도로건설, 탄광건설부대는 출신성분이 좋지 못한 사람들이 그 대상이 된다. 물론 1980년 이전에는 출신성분이 나쁜 사람들, 즉 지주, 친일파의 자녀, 반당? 반혁명분자로 분류된 가족의 자녀들은 군 입대 대상에서 제외되어 제일 어렵고 힘든 탄광에 배치되는 경우가 있었으나 건설을 위주로 하는 부대들이 생겨나면서 출신성분에 관계없이 대거 모집하는 현상이 생겨났다.

출신성분이 좋지 않은 자들은 건설부대에서 일이나 하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군복을 입혀 놓았으니 군인이지 복무기간동안 총 한번 제대로 쏴보지 못하고 삽이나 곡괭이를 들고 명령에 따라 노역동원만 하는 '노역부대'나 다름이 없다.

이런 부대에는 식량을 비롯한 군수물자들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데다 노동 강도가 높아 영양실조 허약자들이 수 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이 만연하면서 일부 사람들 속에서는 군 기피현상이 생겨났다. 신체검사 전에 간장 물을 마셔서 간염의 증상을 보이게 한다든지,

또 심하게는 팔을 부러뜨리는 방식 등이다. 또한 '간질','뇌진탕 후유증' 과 같은 정신지체 병이 있는 것처럼 속이기도 한다. 간부들은 자녀를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고 대학에 보낸다. 1980년 초부터 대학 진학으로 인한 간부자녀들의 군 기피가 만연하자 김정일은 "중앙당 간부의 자녀들은 대학에 재학 중이라 하더라도 3년 이상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김정일의 지시를 거역할 수 없는 간부들은 자녀를 먼저 군대에 입대시켜 3년 후 군에서 빼내 대학에 입학시키는 수법과 대학 재학 중 3년 간 군복무를 하도록 하는 두 가지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도 간부를 부모로 둔 덕에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군복무를 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13년이란 긴긴 세월을 마쳐야 하는데 말이다. 또 한편으로 간부 선발을 제대군인 위주로 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심지어 결혼 배우자 선택도 제대군인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기풍을 세우도록 선전했다. 따라서 처녀들 사이에는 '군, 당, 대, 기, 실'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다. '군'이란 제대군인을 의미하고, '당'은 노동당원, '대'는 대학졸업생, '기'는 5장 6기를 일컫는 말이며, '실'은 집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이 다 갖춰진 사람을 결혼 대상 1순위로 삼고 있다.

지원제를 의무제로 바꾼 배경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북한은 지난기간 지원제를 의무제로 바꾸면서 남한과 같이 대학 재학중 군에 입대하여 3년 이상 군복무를 하도록 조치하고 있다.

얼마 전, 본 방송이 입수한 인민군 내부 강연 자료에는 "당중앙군사위원회 명령에 따라 국가적으로 취한 조치"라며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 모든 남자들은 초모 나이가 되면 무조건 군대에 나가야 한다. △ 고등중학교 졸업생들이 학교를 졸업한 후에 대학이나 양성기관, 노동현장에 직접 가는 경우에도 재학기간이나 근무기간 그리고 그것이 끝난 다음에 반드시 군사복무를 하도록 한다. △ 감정 제대(의가사 제대), 처벌 제대(징계로 인한 강제 제대) 등 만기 전 제대자들은 병을 고치거나 결함을 고친 다음 반드시 이미 복무하던 부대(중대)에 다시 가서 만기를 채워야 한다. △ 미복무자들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제한조건을 만들어 군사복무를 하지 않고서는 배겨 내지 못하도록 강한 대책을 세운다.

이러한 조치의 배경은 여러 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초모 인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1994년부터 기아상태로 굶어죽은 10대 어린이들은 수십만 명에 달한다. NGO들에 의해 발표된 북한 주민들의 아사자 수는 많게는 350만 명에서 적게는 200만 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노인들과 10대 어린이들이었다. 2004년에 들어서면서 그들의(당시 어린이들의) 연령은 이제 18∼19세에 이르는 초모 적령기다. 결국 북한은 현재 한 세대가 비어있는 상태이다. 그러니 170만 명에 달하는 군대와 사회보안성 경비대, 비전투 군인들까지 거의 200만 명의 군인을 유지하기 어렵다. 따라서 20세∼30세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초모 연령을 높이는 강제적 방법은 필연적이라고 분석된다.

남한의 일부 북한전문가 중에는 북한의 군대 모집에서 출신성분을 따지지 않고 모두 징집하게 된 것을 '출신성분을 따지지 않게 된 개혁 조치'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또 "복무기간이 줄어들어 실질적인 병력감축"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무슨 평화적이고 전향적인 발상에서 나온 감축이 아니라 숱한 사람들이 죽어서 어쩔 수 없이 그 길로 가게된 것일 뿐이다.

청년들을 바보로 만드는 군 생활

그렇다면 김정일은 왜 이렇게 많은 군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무력을 늘이는 측면도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심각한 경제난에 따른 주민 불만이나 동요를 막고 체제를 단속하는 방법으로 군사주의를 이용하는 측면이 있다. 새것에 민감하고 진취성이 강한 북한의 젊은이들을 군대라는 틀 안에 가둬 놓고 생각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한참 활발한 두뇌활동을 할 나이에, 단순한 생활의 반복인 군대에서 청춘을 다 보내니 모두 바보가 되어 사회에 나온다. 또 경제적인 측면에서 노동력을 손쉽게 짜내자면 젊은 층을 대대적으로 징집하여 이용하는 것이 잉여가치를 보다 많이 창출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김정일은 오판하고 있다. 북한의 인민군대는 이미 마적단과 같이 되어 부족한 물자를 얻기 위해 인민들의 재산에 피해를 주고 있다. 건설부대의 인근 마을에는 군인들의 도둑질과 강도행위가 끊이지 않는다. 북한 주민이라면 누구나 인민군대를 무서워하고 지겨워한다. 사람들은 "도둑질도 군대에서 배우고, 사람을 때리는 폭력도 군대에서 배운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질서 붕괴로 인해 결국은 김정일 체제도 붕괴될 것이다. 마치 쇠가 녹슬어가다 어느 날 갑자기 건물이 무너지듯. 청춘을 빼앗기고 노예적인 삶을 살아야만 하는 북한의 청춘들이 각성되어, 인민군이 김정일을 체포해 군법에 회부할 날이 곧 올 것이다.

이주일 논설위원 liju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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