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를 안 하면 굶어죽는다’는 말은 사실일까.
사실이다. 배급은 문자 그대로 ‘주시나 마시나’하는 것이고, 혹간 한 달에 열흘 치 배급을 준다고 해도 군량미 떼고, 비상미 떼고, 애국미 까지 헌납하고 나면 하루 한 끼 옥수수 죽도 못 먹고 지낸다.
그렇게 한 달 중 열흘은 죽을 먹고 견딘다 해도 남은 20일간은 무엇을 먹든 먹어야 살 것 아닌가. 어른은 물론 아이들 까지 장마당을 떠도는 이유가 그것이고 여성은 물론 남성들까지 장마당에 뛰어드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장마당에 ‘앉아서 식은 죽 먹는 사람들’
장마당이 활성화됨에 따라 장사꾼들의 활동영력도 다양해 졌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은 라진-선봉에서 생산된 물건을 차판(트럭)으로 실어와 북한 내 주요 장마당의 장사군 들에게 도매로 넘겨주고 이윤을 챙긴다.
이런 사람을 ‘앉아서 식은 죽 먹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보위, 보안부 간부의 부인이거나 노동당 간부의 가족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물론 평백성도 이런 부류에 속하는 경우가 있지만 일단 여자고, 얼굴이 예뻐야 한다.
중국산이나 한국 산 물건을 파는 사람은 같은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B라는 사람이 중국물건을 판다면 그도 ‘앉아서 식은 죽 먹는 사람’이다. 중국제 신상(품/ 면 티 혹은 바지)한 개가 일반노동자 월급 5~8배와 맞먹는다면 더 말해 무얼 하겠는가.
한국산 물품은 대(내)놓고 팔지는 못하지만 역시 원가에 비해 떨어지는 이윤이 만만치 않다. 이들, ‘앉아서 식은 죽 먹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가장 북적거리는 시간에 맞춰 장마당 한편에서 한 고뿌(컵)에 1000원씩 하는 커피를 보란 듯이 마시는 여유를 부리기도 한다.
죽 한 그릇으로 하루를 버티는 사람들
예나 지금이나 북한 장마당의 주역은 석탄(가루)과 나무를 팔고, 꽈배기와 국밥을 파는 아낙네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장사밑천이 없어 장마당이 파하기 바쁘게 밑천확보에 나서는 사람들로, 철도변에서 석탄가루를 빗자루로 쓸어 모으거나 몇 개의 산을 넘나들며 땔감을 장만해 가지고 다시 장마당에 나오는 사람들이다.
야채장사며 그릇장사, 쌀이며 옥수수 장사도 보기엔 그럴듯하지만 역시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사람들로 대개 본전을 빼면 남은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온종일 장마당에 앉아 ‘죽벌이나 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장마당의 기술직
‘기술직’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역시나 ‘머리를 써서 먹고사는 사람들’이다. 한때 교원(교사)이었던 사람들과 이른바 과학자였던 사람들은 밑천 없이도 나름대로의 벌이를 한다.
예를 들면 자전거의 타이어를 땜질해주거나 밑창이 드러난 신발에 고무를 덧대주는 일이다. 휘발유와 고무공의 내피를 교묘하게 조합, 거기에 독자 개발한 첨가제를 적당히 섞어 사람들의 편리를 보아주는 대신 돈을 받는다.
좀 더 ‘현대적인 기술’을 장마당에 도입,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신 기술인재’들도 있다. 여성들을 대상으로 입술과 눈 섶에 문신을 새겨주거나 이름 하여 ‘귀 뚫어주는 기술’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여기엔 필요한 기계(장비)와 일정수준의 기술이 필요하다는데, 그래서인지 가격이 만만치 않다. 필자의 경우 각 2천원을 내고 귓불에 구멍두개 낸 적 있고...이후 오염된 탓인지 3개월이나 당나귀처럼 되어버린 스스로의 귀를 바라보며 후회한 적이 있다.
“돼지가 버선 신은 꼴”
‘호박 쓰고 돼지우리 들어간다’는 말은 예전부터 있어온 말이다. 하지만 “돼지 발목에 버선 신긴 꼴”이란 말은 최근 유행되는 북한의 신조어이다.
어느날 부터 북한의 장마당에 들어오는 중국산 물건들 가운데 한 개에 3천원에서 최고 3만원 까지 하는 팔찌며 발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짐작한 사람들이 있겠지만, 온종일 장마당에서 돌아가다 보니 얼굴은 까맣고 몸은 온통 먼지투성인데...유난히 팔이며 발목에서 광택이 나는 순간이 사람들의 눈에 포착된 것이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되지만 한편으로 장마당을 통해 급속히, 그리고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 그렇게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어 남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을 향해 “돼지 발목에 버선 신은 줄 모르고 우쭐렁 거린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등록일 : 2019-04-21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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