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들은 풀밭을 찾아 계속 이동한다. 다 뜯어먹은 풀밭을 뒤로 하고 저 시계(視界)의 건너편에 있는 초원과 그곳에 내리고 있는 싱그러운 비와 새로운 봄을 향해 떠난다.

유목민의 삶의 터전인 몽골의 초원

그런데 만약 유목민들이 다 뜯어 먹은 풀판을 떠나지 못하도록 누군가 이동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그들은 겨울의 매서운 살기와 가혹한 건기(乾期)의 마성(魔性)으로 풀이 메마른 황량한 초원위에서 그들의 생명과도 같은 가축들의 시체만 쌓아가게 될 것이다.

유목민의 삶을 단편적인 예로 들었지만 사람이 기본적인 먹고 사는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자유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생존권은 곧 경제적 활동이며, 경제적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자유권이 우선 보장되어야 한다. 경제활동의 주체인 사람이 이동할 자유를 포함한 초보적인 자유권마저 누리지 못한다면 생존권을 보장하기 어렵다.

그런데 생존권과 자유권이 마치도 동떨어진 별개의 문제이며, 인간의 자유권보다 생존권이 먼저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7일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한 ‘재외탈북자 인권과 국제사회 동향’이라는 심포지엄에서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는 자유권ㆍ정치적 권리보다 생존권ㆍ경제적 권리부터 개선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생존권은 죽지 않고 살아남는 권리이자 먹고 사는 문제로 인간의 가장 중요한 기본권일 뿐만 아니라 인권의 핵심적 토대"라며 "인권의 보편성 존중과 한반도 평화실현이라는 대전제 아래 단계적으로 북한의 인권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존권은 가장 초보적인 인권의 핵심적 토대라는 말은 옳다. 그러나 생존권과 경제적 권리를 자유권과 정치적 권리로 분리하여 평가하는 것은 정세현 전 장관이 북한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말이다. 김정일 독재정권은 본질상 생존권이 정치권이고, 경제적 권리가 자유권으로 유착되어 있다. 이 가운데서 북한주민들이 제일 갈망하는 것은 자유권이다.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없는 생존권은 생각할 수 없다. 북한주민들의 생존권과 경제적 권리는 자유권과 떼어놓고 실현 할 수 없다. 경제 붕괴로 일자리가 없고, 공장에 출근하는 사람도 식량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형편에서 북한주민들의 생존을 위한 유일한 생계수단은 장마당에서 자유롭게 장사를 하는 것이다.

북한주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려면 우선 그들이 자유롭게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자유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장사자체를 체제의 근간을 허무는 자본주의 행위로 여기는 북한당국은 주민들의 자유로운 장사활동을 억압, 통제하고 있다.

함북. 무산 장마당의 모습 2007년 3월

지난 7일 대북인권단체인 ‘좋은 벗들’이 전한데 따르면 북한당국은 북한 전역에서 시장의 급격한 확산을 막기 위한 장사 금지령을 내리고 지속적으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좋은 벗들’은 “시장이 비사회주의 서식 장으로 됐다”는 김정일의 말에 따라 장사에 대한 ’8.26방침’이 나온 이후 장사 금지 대상이 20-30대에서 최근엔 함경북도의 경우 40세 이하로 확대된 데 이어 12월1일부터는 45세 이하 여성들로 더 확대 되고 있다며 전국적으로 “보안원들이 시장을 단속하는 모습들이 마치 계엄령이 내린 것처럼 살풍경해 보인다”고 전했다.

북한당국의 장사금지령은 비단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2002년 ‘7.1경제관리 개선조치’발표 이후에 북한당국은 장마당의 규모가 확산되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시장에 나가면서 주민통제와 사상교육, 노력동원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게 되자 2년 전부터 45세 이하 연령의 장사금지령을 내리고 장마당 통제를 강화했다. 또한 모내기나 벼 가을 등 바쁜 농번기에는 장마당 통제가 특별히 심하다.

장마당에 의지해 생계를 유지하는 대다수의 북한 주민들은 당국의 장사금지령에 불평, 불만을 터놓고 있다. 작년에 한국에 입국한 회령출신의 한 탈북자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북한의 가족과 통화하기 때문에 그곳의 형편을 상세하게 알고 있다며 장마당 통제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매우 크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린 지금 북한 주민들도 바깥 정세를 알기 때문에 회의 때나 할 수 없이 사회주의가 좋고, 장군님 정치가 좋다고 얘기하지만 뒤에 돌아서면 김정일이 하루빨리 죽었으면, 저 정치가 하루 빨리 끝장났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여기(남한)서 친구들끼리 앉으면 북한에 쌀 좀 주지 말라. 쌀을 주면 김정일과 군대들이다 먹고 백성들은 하나도 먹지 못하는데 왜 자꾸 쌀을 퍼 주냐? 저 늑대 같은 놈들은 먹고 힘이 나니까 순한 양 같은 백성들만 더 못살게 괴롭힌단 말입니다. 백성들이 더 살기 힘들어요. 백성들이 풀을 뜯어 먹어도 자유롭게 뜯어 먹고, 장사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자꾸 와서 통제하고 시끄럽게 하니까 백성들이 사는 게 힘이 드는 겁니다.”

풀을 뜯어도 자유롭게 뜯을 수 있고 장사를 해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통제만 하지 않으면 알아서 살아간다는 한마디 말에 북한의 민심이 담겨있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민심을 거스르는 자 오래가지 못한다는 게 역사가 우리에게 남겨준 교훈이다.

김정일 정권의 살만 찌운 햇볕정책의 실패를 어떻게 하나 합리화 해보려는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그는 삶의 자유를 갈망하는 북한주민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알기나 하는가?


김대성 기자 lstarki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