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은 개성시 판문군 월정리이다. 우리 가족은 1968년도에 부모님이 남한출신이라는 이유로 개성에서 함경북도 회령으로 추방되었다. 1977년 회령중학교를 졸업한 나는 유선탄광에 배치 받아 7년 동안 콘베아 운전공을 지내다 시집을 갔다.

그래도 회령에 대한 좋은 추억이라면 미공급(식량배급중단) 전까지 (옥수수) 밥이라도 배불리 먹으며 가족들끼리 오순도손 살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탄광에서 채탄공으로 일하는 남편은 미공급(식량배급중단)때 제일 먼저 굶어죽었다. 남편이 죽은 후 나는 남은 3명의 자식들을 굶겨죽이지 않으려고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처음에는 국수장사도 해보고, 97년도부터 산에 올라가 삽주 뿌리를 캐서 중국에 팔아보고 회령역전에 들어오는 중국 콕스 탄을 훔쳐 팔기도 했다. 청진 제강소로 나가는 수입 탄인데 회령 역전에 하루 동안 정차하는데 밤이면 나가 화차방통에 올라 석탄을 훔쳤다. 그렇게 훔친 석탄을 시장에 가져다 팔아 애들에게 강냉이 죽이라도 먹일 수 있었다.

동네사람들은 나를 탄쥐라고 불렀고 애들도 학교에 가면 탄쥐네 자식들이라고 놀림을 당했다. 그래도 나는 애들을 먹여살릴 수만 있다면 탄쥐가 아니라 생쥐라도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 식구는 모두 장티브스에 걸렸다. 먼저 작은 딸이 병에 걸렸고 다음은 아들이 앓았다. 아들이 앓고 난 후에는 내가 앓았다. 그래도 다행히도 큰 딸은 병에 걸리지 않았다. 온 가족이 병에 걸리다 보니 집 재산을 다 팔고 나중에는 집까지 팔았다.

집을 팔고 작은 집에 이사를 가서도 생활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에는 빚더미에 앉아 시집올 때 엄마가 이불 해준 두 채를 다 뺐기고, 시집올 때 입고 왔던 첫 날 옷도 다 빼앗겼다. 내가 몸이 아파 벌이를 못하니 집안에 먹을 것이 떨어졌다.

탄은 탄쥐인 내가 도적질해 온 게 조금 있었으니까 그나마 불은 땔 수 있었는데 가마 안에는 들어갈 게 없어서 맨 물만 끓고 있었다. 아이들은 배고프니까 물 둥기에 들어가서 계속 물만 퍼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몸이 아픈 나는 며칠 동안 이불도 개지 않고, 낮이나 밤이나 계속 누워있었는데 점점 잠만 오고 손맥이 나른한 게 땅으로 잦아드는 느낌을 받았다. 이틀을 굶으니까 기력이 다 빠져서 사람이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내가 이렇게 허기진데 애들은 얼마나 배가 고플까?” 정신을 차린 나는 일어나 자식들을 찾았다. 큰애는 학교에 가고 둘째만 집에 있었다. 셋째는 어디 갔냐고 물으니 밖에 나갔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람도 좀 쏘일 겸 딸을 찾으려고 밖에 나왔는데 작은 딸이 장마당 쪽으로 급히 가는 것이 보였다.

“저 애가 장마당에 왜 나가나?” 나는 딸의 뒤를 급히 쫓아갔다. 점심시간이라 장마당은 인파로 차고 넘쳤다. 작은 딸은 사람들 틈을 헤집고 강변 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강변 쪽에는 두부를 끓여 팔고 국수도 만들어 파는 음식 매대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 10 살배기 학생인 우리 딸이 돈도 없을 텐데 왜 음식매대로 가는지 엄마인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어 딸아이의 뒤를 따라 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멀리서 보니 딸은 음식 매대에 가더니 쭈구리고 앉아 땅에서 무언가를 주어먹고 있었다. 그리고는 국수 매대 앞에 가 손님이 국수를 건져먹고 버리는 국수물을 달래서 정신없이 받아먹는 것이었다.

남자들은 달려가면서 손님이 먹는 국수를 손으로 덮쳐서 막 먹기도 하고 그러는데 얘는 여자애고 나이도 어리니까 그런 짓은 못하고 땅에 떨어진 음식물 쓰레기를 주어먹는 것이다. 오죽 배가 고팠으면 그랬을까? 나는 그런 딸을 차마 부를 수 없어 그냥 지켜보면서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고 죄책감을 느꼈다.

딸의 모습에서 충격을 받은 나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자식들을 굶겨 죽이지 않는다는 생각에 무작정 중국에 있는 친척집을 찾아 갔다. 나는 장사밑천이라도 얻으려는 생각으로 들어갔지만 친척들은 썩 반가운 기색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것도 아니구나, 내가 벌어서 자식들을 살려야 된다 이런 마음에 연길에 가서 식당에서 일을 했다. 그러다가 얼마 안 돼 공안에 잡혀 북송되었고 회령시 노동 단련대에 보내졌다.

단련대는 노동강도가 세기로 유명한데 늘 배고픔과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러다 보니 배고픔과 노동강도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는 사람도 많았다. 하루는 한 남자가 도망을 치다가 맥이 없어 얼마 못가고 도중에 잡혀왔다.

그 날 저녁 도주하다 잡힌 청년은 100명의 단련대생들이 있는 앞에서 묶이운 채 참나무 몽둥이로 몰매를 맞았다.

죄수들을 책임진 반장이 몽둥이를 한아름 안고 와서 남자들의 손에 하나씩 쥐어 주면서 “너네 이제부터 이 새끼를 몽둥이로 쳐라 도망치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줘라!” 그러면서 다시는 뛰지 못하게 복사뼈를 분질러 놓으라고 명령했다. 나는 그때서야 복사뼈가 뭔지 알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감히 나서서 때리지 못하니까 반장이 ‘이새끼들아 너네 못 때리겠으면 니가 맞아라’ 하면서 몽둥이를 휘두르는데 여러 사람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 내렸다.

매를 맞은 사람들은 더 맞는 것이 무서워 한명씩 차례로 나가 몽둥이로 잡혀 온 청년을 때렸다. 때릴 때 마다 청년은 아우성치면서 울었고, 곁에서 지켜보는 여자들 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그렇게 5명 정도 나가서 몽둥이로 다리만 집중적으로 때리자 청년의 바지는 어느새 피 범벅이 되었다. 몽둥이찜질은 청년이 기절해서야 멈추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밤 10시까지 모여서 단련대 생활 준칙을 학습했다.

보름이 지나자 매 맞은 청년의 발은 골수염이 와서 퉁퉁 부어올랐다. 여름인데다 뼈가 부서지고 치료도 제대로 못하니 너무 아파 땅 바닥에서 뒹굴었다. 단련대 지도원은 사람이 죽을 것 같으니까 그제서야 달구지에다 싣고 대덕구 진료소로 내려갔는데 청년은 도중에서 죽었다. 청년의 시체는 담가에 담아서 관도 없이 그대로 묻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