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지하철 안에서 이러저런 안타까운 사연을 호소하며 동냥 하는 장애인들을 가끔 목격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관심하게 지나치지만, 동정심이 많은 사람들은 불쌍해서 동전도 넣어주고, 천원짜리도 넣어준다. 또 요즘은 연말이라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며 구세군의 ‘자선냄비’에 돈을 기부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길거리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2007년 8월 계속된 폭우로 집을 다 잃고 천막생활을 하고 있는 평안남도 북창군 주민들

북한에서 자본주의는 인정도 없고 피도 눈물도 없는 극단적인 개인이기주의 사회라는 교육을 받아 온 내게 비록 적은 것이지만 자신의 부를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으로 안겨왔다. 북한이 제국주의 악으로 썩고 병든 자본주의 표본이라 부르는 미국은 가구당 평균 기부액이 1660달러이며 국민의 72%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금을 낸다고 한다.

선진국일수록 기부문화가 발달되어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북한의 이웃나라인 중국도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자선기부문화가 발전해 2006년 자선모금액이 한국을 초과하고 있다.

그러나 평등을 부르짖는 우월한 우리식 사회주의 북한에서는 곁에서 사람이 굶어죽어도 외면하고, 친척이 찾아와도 쫓아 보낼 정도로 인심이 점점 야박해지고 있다.

요즘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함북 나선시에서는 수해 피해로 살기가 힘들어 친척 집에 온 수재민들을 내쫓는다고 한다. ‘좋은벗들’의 북한 소식지 101호는 나선시 보안서에서 대부분 친척을 찾아 온 수재민들을 미거주자로 취급, 2-3일 내로 나가지 않으면 단련대에 넘기겠다고 엄포를 놓으며 닦달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소식지는 보안서의 미거주자 집중 단속은 나선시 주민들의 탄원이 빗발쳤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한 가족도 먹고 살기 바쁜데 친척들이 와있으니 생활 형편이 막막해 진다고 하면서 자기들은 차마 가라는 소리를 못하겠으니 정부가 나서서 보내달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수해 피해로 오갈 데 없어 멀리 친척 집을 찾아 왔던 수재민들은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데 어디로 가라는 가” 항의를 해보지만 사실 오래 버틸 재간이 없다고 한다.

하도 각박한 세상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북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동정심 따위는 없어진 지가 오래 된 것 같다. 국가가 외면하고, 친척들마저 외면한다면 갈 곳이 없는 수재민들은 거리로 나가는 수 밖 에 없다.

겨울은 시작되는데 거리로 내몰린 수재민들이 혹독한 겨울을 무사히 이겨낸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수재민들 속에서는 북한에 앉아 굶어 죽고 얼어 죽을 바에야 차라리 탈북 하는 것이 더 나을 거라는 말까지 나온다고 한다.

하긴 북한이라는 국가자체가 국제사회로부터 동정을 받아 원조물자로 연명하는 국제사회의 어려운 이웃인데, 어떻게 남을 동정할 마음의 여력이 있겠는가? 북한주민들은 “자기 혼자도 살기가 힘이 드는데 어떻게 돌봐 주겠는가, 요즘 세월에는 동정이 함정이 되고 있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북한당국이 지금처럼 개혁개방을 거부하고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고집한다면 북한주민들의 삶은 점점 더 빈궁해 질 것이다.

탈북자 오영재(2004년 입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