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시대 양반과 상놈을 구분하는 기준은 갓과 상투였다면 평등을 주장하는 사회주의 북한에는 화장실문화에도 보이지 않는 신분차별의 벽이 존재한다.

얼마 전 유엔의 물·위생 전문가가 북한 주민의 94.3%가 아직도 구덩이를 파서 만든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위생관리에 대한 지식이 아주 없는 상태"라며 북한 주민들이 깨끗한 화장실과 물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수동펌프를 설치하는 등의 WASH 프로젝트를 실시하는 한편 기초위생의 중요성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이 위생의 중요성에 대한 홍보가 부족해 구덩이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서 ‘구덩이 화장실’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북한의 하층계급에 속하는 주민들이다. 북한의 간부들은 주로 아파트에서 살기 때문에 구덩이 화장실을 사용할 기회가 거의 없다.

북한은 농촌의 경우에는 개인집마다 구덩이 화장실이 있으며, 도시에는 주민들의 주거 밀집지역마다 구덩이 식 ‘공동화장실’이 있다. 북한의 구덩이 화장실은 모든 악취공해의 원인이 되고 있으며, 여름이면 구더기와 파리 떼 가 우글거려 화장실에 들어가기조차 무서울 정도이다.

게다가 화장실에 있는 전구를 뽑아가기 때문에 밤에 시커먼 화장실에 들어가 발을 잘 못 디뎌 깊이 3~4m의 똥통에 빠지는 일도 가끔씩 발생하는데, 어떤 사람은 똥독이 올라 죽는 경우도 있다.

또 겨울에는 제때에 인분을 퍼가지 않아 얼어붙은 배설물이 위에까지 올라와 사람이 앉을 수도 없게 된다. 그러면 도끼나 지렛대를 들고 얼어붙은 똥 무지를 까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구덩이 화장실이 북한의 인분생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북한에서는 협동농장에 종사하는 농장원은 물론이고, 도시에서는 공장, 기업소, 학교와 관공서, 가두 인민반까지 해마다 김정일의 방침으로 내려지는 인분생산 지시를 집행해야 한다.

그래서 구덩이 화장실은 평소에는 인분을 처리하지 않아 악취가 진동하고, 오물이 넘쳐나 주민들의 불평이 높지만, 인분생산 철에는 저마다 차지하려고 싸울 정도로 그 인기가 높다.

구덩이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는 간부들은 화장실에서 풍기는 악취 때문에 제기되는 주민들의 고충을 알지 못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주민들이 구덩이 화장실 개선문제로 민원을 제기해도 간부들에 의해 묵살 당하다 중요한 국가적 행사가 제기될 때마다 화장실 외벽에 회칠을 다시 하고 청소나 하는 것이 고작이다.

21세기의 태양이 비추는 북한에 아직도 구석기 시대의 구덩이 화장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탈북자 오영재 (2004년 입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