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 TV, 소파를 갖추어 놓았다고 해서 잘사는 집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 그 집안의 생활수준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식사시간마다 밥상 차린 것을 봐야 한다.” 경제적으로 하층가구에 속하는 북한주민들일수록 소비주의 성향이 강하며, 이들의 소비욕구는 생계유지의 비상수단과 직결되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KBS 남북교류협력단이 2005년 12월에 펴낸 자료집 “1990년대 이후 북한사회변화”와 “북한주민의 계층구조와 주민의식의 변화”에 이 같은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자료집은 탈북자와의 심층인터뷰를 통해 북한의 경제적 하층가구 주민들의 사회적 정체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인터뷰에 응한 주민은 “오늘은 무엇을 해서 먹고 살 것인가 항상 불안해하고, 또 너무 힘드니까 콱 전쟁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돈이 사람을 잡는다고, 아파도 돈 생각하면서, 내가 오늘 아파서 장사안하면 이만한 이윤을 남한테 주는거구나! 그러니 벌어야 된다. ‘돈 버는 게 재미있구나’하는 것을 그 전에는 몰랐다. 돈이 많으면 좋긴 좋겠구나 하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돈을 버는 재미는 몰랐다. 똑같은 장사를 하지만 경쟁심에서 남이 잘되면 배 아파하는 그런 게 있다 .사람이 돈 버는데 재미 붙이면 조직생활 같은 게 다 싫어진다.” 고 말한다.

자료집은 이렇게 돈 버는 재미에 대한 집착은 생활이 어려운 집조차 먹는 것은, 강냉이밥을 먹는다 하더라도 남들에게 뒤지지 않게 하다못해 흑색 TV를 구입할 정도의 강력한 소비주의의 추구로 이어진다고 밝히고 있다.

대도시나 국경연선의 중소 시읍 같은 지역에서 죽도 못 먹는 최하바닥 사람들이나 고난의 행군 이전에는 흑색 TV도 놓기 힘들었던 사람들이 색TV를 놓자고 할 정도가 되었다. 또한 국경지역의 농장원들 사이에서는 다음해 여름에 배를 곯더라도 흑색TV나 가전제품을 경쟁적으로 사가는 바람이 불기도 했다고 밝히고 있다.

자료집은 경제적 하층가구의 이런 소비주의 실천은 국가공급제의 붕괴에 의해 촉발된 시장화의 효과로 분석하고 있다. 즉 국가를 바라보지 않고 자기 자체로 능력껏 살아야 한다는데 자극을 받으면서 평준화된 내핍소비생활의 집단주의적 강제가 소멸되었고, 시장에로의 적극적 참가를 통해 개별화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는 시장경제의 맛을 알게 되고 물질적 상징을 소유하는데 따른 자기만족이라 평가할 수 있다고 자료집은 분석한다.

그러나 자료집은 북한하층주민들의 소비에 대한 집착이 한편으로는 가족의 생게가 위협받게 될 경우 팔아서 장사밑천을 마련 할 수 있는 비상시 대비용 재산이라는 물질적 상징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며 이는 열악한 경제적 위치에 놓여있는 이들의 형편을 뜻하는 것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인터뷰에 응한 탈북자는 “돈이 없고,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해도 갖추어 놓자고 하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지속된다. 여기 사람들은 잘 이해를 못 할텐데 북한에서 먹는 것은 먹고 끝나는 것이다. 일해서 모을 돈이 없으니까 그래도 텔레비는 놓으면 밥은 없더라도 희망은 있다. 정 마지막에 가서는 팔수도 있고, 또 집에서 텔레비 사놓고, 소파 사놓고 하면, 잘 산다고 볼 수 있지만, 실제 그 집안의 생활수준을 보려면, 식사 시간에 밥상 차린 것을 봐야 한다. 입은 속이지 못하지 않는가?”라고 증언한다.

자료집은 이들이 한편으로 소비생활수준을 중심에 놓고 “지금 굶어 죽는 사람은 머저리이고, 살 자격도 없다”는 식으로 자기들보다 시장적응능력이 뒤떨어지는 최하층가구들을 냉소적으로 경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따라 잡을 수 없는 중상층 가구들에 대해서는 질시와 선망 심리적 견제와 우호적 평가 도식화된 계급적 적대감과 대면적 굴종과 같은 복합적인 이분법적 감정을 포지하는 자기분열적인 사회적 정체성을 띠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예를 들면 하층주민들은 외화벌이 같은 단위에서 당원이나 간부에 상관없이 횡재해서 부자가 된 사람이 외화벌이 소장을 한다면 “개xx, 옛날에는 정말 당원도 아니고 뭐도 아니고 하던 게 이제는 돈이나 있고 한다고 해서 외화벌이 소장한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런 부류의 사람이 도둑질 한 것도 아니고 시장에 나가서 자기가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벌었으니, 돈을 못 번 사람이 머저리이지... 돈을 번 사람은 그것으로 자식 개인교수를 놓던 말던, 그것을 가지고 뒤에서 생각은 나쁘게 할 수 있겠지만 비난한다고 해서 누가 옳다고 할 사람도 없고, 그저 돈 많은 사람을 부러워 할 뿐이다.”라고 생각한다.

또한 다른 탈북자는 “국경연선지역에 위치하기 때문에 시장경제 물을 많이 먹고 생활수준도 괜찮은 도시의 인민반에서 철도보수공사 같은데 세대주 동원이 떨어졌을 때 돈 좀 있다고 해서 사람을 사서 그런데 내보내면 사람들이 그 집을 바로 안 본다. 저 사람은 돈 좀 있다고 해서 사람을 사서 내보낸다고 수군거린다. 그러나 흙토를 몇 차 정도씩 가져와야 되는 일이다 하면 돈 많은 사람이 운전기사를 사가지고 한탕만 나가서 뛰어주면 인민반 일은 끝이니까 그런 사람한테는 아! 당신 최고다” 라고 말한다.

자료집은 이렇게 북한주민들은 기존의 정치적 신분체계와 더불어 시장화의 진척에 따라 새롭게 형성되는 경제적 불평등 체계가 착종되어 있는 이중적 불평등 체계와의 관계 속에서 사회적인 정체성이 재형성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김대성 기자 lstarki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