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6일 평양에서 진행된 뉴욕필 하모닉의 공연을 두고 서방언론들은 北․美관계를 해소하고 국제사회로 나오려는 북한의 변화조짐이라 대서특필했었다. 북한의 심장인 평양에서 미국국기가 게양되고, 미국국가가 연주된 것을 두고 동토의 북한을 녹인 역사적인 사건으로 높이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화려한 뉴욕 필공연의 막 뒤에서 미국에 대한 적의를 감추지 않고 노골적인 반미선전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5일 일본의 니혼 텔레비(일본TV)에서는 뉴욕 필의 평양공연 취재를 위해 평양을 방문했던 일본 니혼 TV 취재단에게 북한주민이 “미제는 우리와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철천지 원수입니다.”라는 말을 하는 장면이 방영되었다. 이 말을 한 북한주민은 다름 아닌 평양 만수대의 김일성 동상에서 해설 강사로 근무하고 있는 여성이며, 이 말은 뉴욕 필의 평양공연 직후에 나온 말이어서 더욱 흥미를 끈다.

계속하여 니혼 TV 취재단이 대동강에 전시되어 있는 미군 해군첩보함 “푸에블로호”를 참관 할 때도 북한해설원들은 세계최강국인 미국의 항복을 받아낸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의기양양한 모습 을 연출한다.

이런 모습은 북한이 뉴욕필의 평양공연을 허락한 진의가 북미관계의 진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는 미국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미국이 먼저 북한에 백기를 들고 찾아 왔다는 이미지를 연출해 주민결속을 다지려는데 있다는 생각을 낳게 한다.

1990년대 김정일은 걸프전을 보면서 당,정,군 고위간부들에게 미국은 쉬운 상대가 아니라 강적이라는 취지의 말을 해 미국에 대한 두려움을 은연중에 표현했었고 미국을 종이범이나 썩은 나무토막으로 인식해오던 북한주민들에게 이 말은 미국은 강적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 주기에 충분한 작용을 했었다.

이미 열 번도 망했어야 할 북한독재정권이 아직도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침략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개혁개방을 거부하고 폐쇄정책을 펼친데 있다. 김정일 정권이 폐쇄정책을 포기한다는 것은 곧 독재체제의 멸망을 의미하기 때문에 완전한 美․北관계의 개선은 북한정권으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뉴욕 필의 평양공연은 과거 미․중관계의 해빙무드를 열었던 핑퐁 외교와는 그 차원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핑퐁외교’의 주역은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였다.

1971년 7월 미국 닉슨 대통령의 특사 헨리 키신저와 저우언라이 총리는 비밀리에 회담을 가졌으나 회담 초기 쌍방은 서로의 의중을 파악하느라 말을 아끼느라 긴장이 감돌았고 시간이 흐른 뒤에도 회담에 진전이 없었다고 한다.

이 때 저우언라이는 화제를 돌려 “먼저 식사한 후에 이야기 합시다. 카오야(북경오리로 알려진 중국의 대표요리)가 식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키신저에게 먹는 법을 소개하고 직접 오리고기를 집어주기도 했다. 게다가 오찬이 끝날 무렵 중국의 국주 마오타이주로 회담의 성공을 위한 건배를 제안했다고 한다. 오찬 후에 회담은 급진전을 보였으며 결국 이 회담을 통해 미국 닉슨대통령의 역사적인 중국방문이 이루어진 것이다.

첫 중국 방문 당시 닉슨의 회고에 의하면 저우언라이는 자신이 암을 앓고 있으며 언제 죽게 될지 모른다고 말하고 자신이 죽기 전에 미국과의 수교를 끝내고 싶다고 말했고 닉슨은 이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죽의 장막’이라 불리었던 중국을 국제사회로 진입시켜 경제적 도약의 발판이 된 ‘핑퐁외교’, 그 뒤에는 솔직하고 인간적이며 따뜻한 성품을 잃지 않은 저우언라이의 공이 컸다고 할 수 있다.

개별적인 사람의 관계나 국가 간의 외교관계에서도 솔직하고 따뜻한 인간적인 면이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그런 면에서 저우언라이의 솔직하고 인간적인 외교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절실한 북한당국자들이 따라 배워야 할 대목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북한에는 제2의 저우언라이는 없었으며, 속임수에 능한 모사군들만 있었다.

10일 뉴욕타임스는 뉴욕 필 공연단의 평양 방문시 북한당국이 참담한 경제난을 감추기 위해 노력했다는 기사를 냈다. 뉴욕타임스는 25일과 26일 북한을 방문해 연주했던 약 300명의 뉴욕 필 단원과 동행 취재진의 눈에 보였던 평양의 야경은 축제분위기를 연출하는 듯 화려한 조명 속에 밝게 빛났고 체류한 양각도 호텔에서는 취재진에 대여한 휴대전화와 인터넷 사용이 가능했으며 덥다고 느낄 정도로 난방이 잘 됐다고 소개했다.

또 저녁 식사에서는 연어와 게살 그라탱, 양고기, 꿩고기 요리 등 다양한 코스를 맛볼 수 있었고 뷔페로 제공된 아침 식사 장소에는 얼음 조각까지 마련되는 등 북한 당국이 한국전쟁 이후 미국인으로는 최대 규모로 찾아온 방문단을 위해 배려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그러나 뉴욕 필 방문단을 태운 비행기가 떠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야경을 밝혔던 불빛들이 꺼지고 휴대전화 대여점이 문을 닫는가 하면 인터넷이 끊김으로써 북한은 예전의 빈곤 국가 모습으로 되돌아갔다면서 '최대의 쇼'는 번화한 모습을 연출했던 평양 그 자체였다고 타임스는 밝혔다.

타임스는 지난달 북한의 식량 상황은 200만명이 굶어죽었던 1990년대 중반과 흡사하며 현재 10~20%의 주민만이 제대로 먹고 있다고 전하면서 북한은 현재 외국의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심각한 경제난의 실체를 감추려 애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루속의 송곳은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북한의 빈곤과 폐쇄성을 감추기 위해 “생쇼”를 벌리는 북한정권의 작태는 차마 눈뜨고는 바라볼 수 없을 정도이다.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북한의 모습은 말 그대로 무덤에 회칠한 바리새인들의 모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김대성 기자 lstarkim@naver.com